• 최종편집 2020-04-06(월)

올드보이 경연장, 부천시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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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의회 여야 한마음으로, “부천시 재난기본소득 지급” 전폭지원 나서
 ‘부천시 긴급 재난지원금 기자회견’이 3일 오전 11시 부천시청 3층 스튜디오에서 온라인 브리핑으로 진행됐다.    부천시의회에서는 김동희 의장, 강병일 당대표(더불어민주당), 윤병권 당대표(미래통합당)가 장덕천 부천시장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해 재난기본소득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의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시는 먼저 소득과 관련 없이 모든 시민에게 재난기본소득 5만 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경기도가 지급하는 10만 원을 합하면 부천시민 1인당 15만 원을 지원받는다.    시는 또한, 소득 하위 70% 이하 가구(4인 가구 기준)에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80만 원과 연계하여 부천시 지원금 20만 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정부 80% 부천시 20%)   김동희 시의회 의장    부천시 재난기본소득 지급에 414억 원이 소득 하위 70% 이하 가구에 285억여 원, 총 700여억 원 규모의 부천시 긴급 재난지원금이 투입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부천시의회는 긴급 원포인트 임시회를 오는 4월 8일, 1일간 개최하고 부천시 재난기본소득 지급 조례안과 2020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을 빠르게 처리할 계획이다.    김동희 의장은 브리핑을 통해 “비상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부천시와 부천시의회에서는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고통받는 시민들을 위해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배분하면 좋은지 여러 차례 논의했다”면서  “시의회는 부천형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포함되는 긴급 추가경정 예산안 편성이 신속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병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강병일 당대표(더불어민주당)는 “부천시 재난기본소득 지급에 필요한 근거마련과 예산 확보를 위해 4월 8일 원포인트 임시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으며, 추가지원 재원 마련을 위해 2020년도 시의원 해외 연수비 등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윤병권 당대표(미래통합당)는 “부천시가 코로나19 초기대응에 나름대로 선방했지만, 일부 교회와 콜센터 근무자 등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해 관내 요양병원이 코호트 격리에 들어갔으나 다행히 어제 추가 확진자 없이 전원 격리 해제했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등 시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빠른 회복을 위해 부천시의회가 앞장설 것을 약속했다.   윤병권 미래통합당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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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경연장, 부천시 국회의원 선거

부천시의 국회의원 선거는 노인들의 잔치로 경기도에서 최고령의 양노원 선거가 될 전망이다.   비교적 젊은층이 출마하는 정의당등 군소정당을 제외하고 이번 선거에서도 당선가능성이 지배적인 더불어민주당 과 미래통합당 양당의 후보들의 평균 연령은 61.5세이고 최고령은 66세의 4선 의원이고  최저 연령은 55세의 서영석 부천정 더불어민주당 후보이다. 부천시의 의원은 비교적 장수의원이 많은데다가 이들 의원에 대적하는 미래통합당의 후보들 역시 고령의 나이로 재차 삼차 도전하는 후보들에 의해 출마자의 연령대가 높다. 부천시의 현역의원중 최고령인 부천정 지역의 원혜영 의원은 69세이나 이제 더이상 출마하지 않는다. 그 뒤를 이어서 부천을의 설훈 의원으로 66세의 4선 의원이고 당의 최고위원이다, 그 다음은 부천병의 김상희 의원으로 3선을 자랑한다.  김상희 의원은 당의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점차 당운영의 중심권으로 진입중이다. 부천갑의 재선의원인 김경협 의원은 약관(?) 57세로 전기 설훈 의원 및 김상희 의원에 비교한다면 앞으로도 2회를 더 역임하고 4선의원으로 23회 총선에도 더 출마 할 수 있는 연령이다. 그런면에서 김경협 의원의 경우는 부천시의 의회자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부천병의 차명진 후보는 60세이나 이미 17대 와 18대 국회의원을 역임환 재선 의원임으로 3선에 도전하는 적정한 연령대로 보인다.   그러나 부천을의 이음재 후보의 경우 65세로 비 의원으로서는 최고령에 속한다. 역시 부천을의 서영석 후보도 62세로 고령화 대열에 속한다. 이들 두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 초선의원으로 의회에 진출하게된다. 과연 60세를 훨씬 넘은 연령에 국회에 진출하여 초선의원으로 국가와 지역을 위하여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부천정의 두 후보자중 더불어민주당의 서영석 후보는 55세로 이번 선거 후보자중 가장 젊은연령이고 미래통합당의 안병도 후보는 61세로 두 후보 모두 당선시에는 초선의원이 될 것이다.   국회에 진출하는 초선의원이 역량이나 의욕만 앞설뿐 실질적인 역활을 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측면에서 초선의원의 연령이 높다는 것은 지역구에 이득이 될 가능성은 비교적 낮은 것으로 평가한다 그런 이유로 정치전문가들은 초선의원의 연령이 낮은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세대교체에 실패를 하였던 세대교체를 거부했던간에 부천의 정치계는 차세대 인재를 키우지 못했다는 오명을 벗어나기 어렵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미 다선인 기존 의원에게 승리하는 경우 이들이 다선의원을 대체하는 국회 초선의원이 된다는 점이다. 과연 이들이 다선의원의 국회내 지도력과 경륜을 대체할 수 있을지의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부천시에서 출마하는 노년층의 후보들에 대한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는 의견들이 있고 이들 노년층이 오래전부터 젊고 미래가 있는 인재들을 키웠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에도 4명의 후보가 출마한 정의당의 후보들은  부천갑의 김선자 후보가 48세, 부천을의 이미숙 후보가 52세,  부천병의 신현자 후보가 48세, 그리고 부천정의 구자호 후보가 45세로 평균 48세에 불과하여 당선여부에 상관없이 오히려 이들에게로 부터 참신한 개혁과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경기도의 대부분의 지역에 비교해도 부천시의 중앙정치계를 향한 기반은 세대교체에 가장 둔감한 지역으로 이들 노년층 의원들과 지역의 토호적 성격을 갖는 정치인들에게 부천의 개혁과 혁명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오히려 다선의 경륜과 의회내에서의 지도력에 의지하여 부천시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입법부의 지원을 모색하는 것이 낳을 것이다.  다만 부천시는 다선의원의 지역구일수록 낙후도가 비례한다는 점에서는 다선의원들의 분발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변화와 혁신은 60대가 넘어야 가능한가?

부천시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 과연 변화와 혁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소위 거대양당이라 칭하는 더불어민주당 과 미래통합당을 보면 가장 어린나이의 후보가 3선을 노리는 "부천갑"의 김경협 의원으로 57세로 한창 활동할 때로 적절한 연령임에 반해 같은 지역에서 경쟁하는 미래통합당의 이음재 후보는 65세의 나이에 초선을 노리고 있다.   "부천을"의 경우에도 5선을 목표로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설훈 의원이 66세인 반면 미래통합당의 서영석 후보는 62세로 초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하기에는 적은나이로 보이지 않는다.   "부천병"은 4선에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김상희 후보가 65세이고 이에 도전하는 미래통합당의 차명진 후보가 60세로 차명진후보는 이미 17대와 18대에 국회의원을 역임한터로 이번의 선거가 첫번째도 아니라는 점에서 두후보 모두 적절한 연령으로 볼 수 있다.   양당의 후보가 모두 초선이되는 "부천정"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의 서영석 후보가 55세, 미래통합당의 안병도 후보가 61세로 두 후보가 모두 정치적 경력이 충분하다.   안병도 후보는 정치전문가로 지역당협위원장으로 역임하며 3번째 도전하고 있는 한편 서영석 후보는 지역의 기초의원 및 광역의원으로 경력을 축적해 왔다.   "부천갑"의 김경협 의원이 초선으로 당선된 나이가 49세, 김상희 의원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데뷔한 때가 53세 그리고 설훈 의원이 국회에 입성한 때가 50세인 점을 감안할 때 초선으로 60세가 넘었음은 소위 말하는 물갈이론에도 훨씬 도가 지났다고 볼 수 있다.   자천-막천이라는 오명속에 퇴진환 전 미래통합당 공관위원장 김형오는 물갈이론, 험지론등 갖은 험한 표현을 사용하며 나이든 노쇠한 정치인의 물갈이를 주장하면서 부천은 그대로 두어 60세 이상의 천국으로 만든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평균나이가 85세에 이르고 요즈음 60대는 청춘이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과연 이들에게서 경륜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으나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는 것이 옳바른 것일까?   현역으로 3선이상인 경우 정치경력을 포함하는 다양한 경력으로 입법활동과 대정부와의 업무 및 입법활동에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60대 중후반의 의원은 의회에서 중진으로 예우되고 안정된 국회운영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초선의 경우 연령에 상관없이 국회법등의 미숙은 물론 다양한 입법처리와 대 행정부와의 업무에서 파열음을 내기 쉽고 그런 이유로 각종 당의 또는 당정협의 등에서 소외되는 서러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부천의 미래를 위해 진정한 변화는 젊고 패기에 넘친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래세대이지 늙고 노쇠하며 때로 교활한 올드세대는 아닐 것이다 더욱이 그 교체및 대체가 노년세대일 경우에는 그 변화의 필요성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변화를 이야기하고 혁명적 혁신을 소리높여 주장한다면 그것은 자기고집일 가능성이 많다.   오늘의 선택이 4년후에 후회로 돌아올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는 수고로움을 주저하지 말자.     

21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시작

2일 0시를 기해 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기위한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개시되었다. 부천시는 4개 선거구에서 총17명의 후보자가 여의도의석의 주인자리를 놓고각축을 벌인다.   황교안 통합당대표의 "n번방 망언"에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김상희 의원      [부천갑]  3선을 목표로하는 더불어민주당의 김경협(57세)에 재차 도전한 미래통합당의 이음재(65세) 후보간의 대결로 관심을 끄는 지역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떠오르는 중진으로 당의 주요업무에 관여하는 힘있는 의원을 강조하는 김경협 후보는 부천시에 필요한 많은 지원을 갖어올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여 지역의 발전을 획기적으로 이룰수 있는 후보임을 강조한다. 미래통합당의 이음재 후보는 교육의 전문가임을 자청하는 한편 낙후된 지역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있다. 이 지역의 여론을 읽을수 있는 15일 이내의 여론조사의 결과가 없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김경협 후보측은 압도적인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반면에 통합당의 이음재 캠프는 최근에 변화된 민심에 크게 고무되어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고 분석한다. "부천갑" 지역에는 정의당의 김선자(48세) 후보와 국가혁명배당금당의 조은지(59세) 후보가 함께 출마하였다.     [부천을]  "부천을"지역에는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인 설훈(67세) 의원에  미래통합당의 서영석(62세) 후보가 도전하였다.5선을 노리는 설훈 후보는 민주당내에서도 원칙주의자로 당의 검찰공정수사특위의 위원장을 맡고있는 한편 영상문화단지의 개발에 있어서도 부천시의 개발방향보다는 상향된 계획으로 일자리창출과 부천의 첨단산업을 위한 기지화를 주변에 설파하고있다. 출정식 캠프팀과 함께하는 설훈 의원(중앙)   순복음중동교회 장로이기도한 미래통합당의 서영석 후보는 같은당의 원외중진인 임해규 후보를 경선에서 누르는 이변으로 순식간에 다크호스로 부상하였으나 일부에서는 순복음교회의 집단표에 의한 것으로 수천표의 당내경선에서나 유효한 평가로 폄하되기도 한다.   설훈 의원 지지자들은 정치경력이 경기도의회 의원 1회가 전부인 서영석 후보가 정치계에서 다양한 경력으로 경험이 풍부한 설훈 의원을 대적하는데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래통합당은 이 지역을 경합지역으로 분류한 상태로 당차원의 강력한 지원을 에정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숙(52세) 후보가 정의당으로 이종남(42세) 후보가 민정당으로 그리고 남궁진숙(56세) 후보가 혁명배당당의 후보로 표다툼에 나선상태다.       [부천병]      "부천병"지역은 더불어민주당의 김상희 후보가 4선의 고지를 향하고있는 상황으로 이전 19대와 20대 선거에서 김상희 의원에게 패퇴한 통합당의 차명진 후보가 명예회복을 선언하고 4선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있다. 부천역 지하상가에서 출근인사 김상희 후보     김상희 의원이 지난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민주당의 "검찰개혁특위"의 공동위원장으로 사법개혁을 위한 중요한 역활을 한 것에 반하여차명진 후보는 거리에서 이에 반대하는 투사로 거리의 유튜버로 태극기당등 우파의 높은 인기를 누렸다.   지난 31일 경인일보의 의뢰로 "알앤리서치"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김상희 후보가 53.2%로 26.7%에 불과한 차명진 후보를 거의 두배나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변이 없는한 김상희 후보의 무난한 4선달성이 이루어 질 것으로 관측된다.   [부천정]      "부천정"지역은 이곳에서 3번째 도전하는 미래통합당의 안병도 후보와 피말리는 당내경선에서 25%의 가산점에 힘입어 전부천시장인 김만수 후보를 제친 더불어민주당의 서영석 후보가 각축을 벌이는 지역이다.   경선경쟁자 서영석 선대위원장과 안병도 후보   지난 32년간 민주당의 텃밭인 이 지역의 전통을 이으려는 서영석 후보와 이를 완전히 바꾸려는 안병도 후보는 서로 승리를 장담하고 있으며 양당은 모두 이 지역을 경합지구로 분류해 놓고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원혜영 의원이 5선으로 이 지역에서 20년이상 독점했음에도 부천시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의 하나로 남아있는 이곳에  대한 후계자로 개발을 외치는 서 후보와와 이지역의 낙후성과 소외된 지역을 개혁하려는 안후보에 대한 지역민의 선택 경쟁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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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의회 최초의 여성의장 제 8대 김동희 의장을 만나다.

지난 8월 19일 부천시의회 의장실에서 김동희 의장과 본지 이재욱 논설위원의 인터뷰가 있었다. 김동희 의장의 배려로 편안한 분위기 속에 이어진 담소를 겸한 대담의 주요 내용을 발췌 정리했다.   김동희 시의장      안녕하십니까.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8대 부천시의회 최초의 여성의장으로 피선 되셨습니다. 그리고 의장으로 재임하신지 도 1년이 경과 됐습니다. 그 동안의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장으로 선임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의장이 되고 첫 의사봉을 잡으면 서 부천시의회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고 부천시민의 기대와 욕구에 부응하는 훌륭한 의 회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꾸준히 여야가 서로 협조하며 일하는 좋은 의 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데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동안 여야 가 약간의 이견은 있었지만 7대에 비해 나름 큰 충돌 없이 순조롭게 잘 지내 온 것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부천시의회 최초 여성 의장인 저를 비롯해 이번 8대 여성의원 비율은 50%에 가깝습니다. 여성의원들의 의회 활동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대변자 역할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동료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충실하게 지원할 것이며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의정에 반영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의회 의장으로 취임하셨을 때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에 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책의 입안 단계부터 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면밀히 분 석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어 의원 한 분 한 분이 주민과 소통하며 지역사회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8대 부천시 의회의 전반기에 시의회가 주민과의 소통을 통한 지방자 치발전이 바람직하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의장님의 평가는 어떠하신지, 또 미진한 것 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 8대 부천시 의회는 전체 28명의 의원 중 초선의원이 20명으로 70%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초선 의원들의 열정과 패기, 그리고 재선 이상 의원들의 연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어느 때보다 화합과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의회의 분위기 가 조성됐다는 평입니다. 김동희 시의장 또한 제8대 부천시의회는 정책발전연구회, 열린광장 포럼, 지방분권연구 포럼, 청년미래 포럼 등, 4개의 연구단체를 구성하여 외부인사 초빙강의, 공청회, 자료 출판 등 공부하는 의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의원 조례발의는 물론 정책개발을 통한 입법 활성화를 도모할 뿐더러 개인의 지식과 교양의 함양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천의 숲(생태)을 관찰하고 조사하는‘숲생태 보전연구회’라는 의원연구단체도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심도 있는 분야별 연구 활동과 시민과의 소통을 통한 정책개발에 매진하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시민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토론회나 의원연구단체 활동을 더 많이 활성화해야 할 것입니다.     부천시 시민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함에 있어서 부천시가 집행하 는 창작활동지원액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의견이 문학, 예술인들 사이에 팽배한 것으 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예산이 쪼들리는 시 집행부나 문화 경제국이 이와 같은 예산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의회가 의안발의 등을 통하여 창작발전기금을 조성 한다던가 또는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특례조례 등을 제정한다면 문화-예술인들의 커다란 호응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에 대한 가능성이 있을까요?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에서는 문화예술인 창작활동을 위해 다양한 지원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부천시문화예술발전기금(1억 3천만 원) 외에 문학관련 사업으로 일인일저 책 쓰기 등 15개 사업에 2억 2백만 원, 수주문학제 5천만 원, 신진작가 지원 사업에 2,820만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천문화재단에서 하는 사업 중에도 창작활동 지원 사업으로 청년예술가S 4,500만원, 우리동네 예술프로젝트 공모지원 사업에 1억 1천만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발전기금의 경우 50억 원을 기금으로 운용으로 1년에 1억 3천만 원의 이자를 받고 있습니다. 이율이 낮아 예산법무과에서는 기금은 폐지하고 일반회계 예산을 세울 것을 권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천시 재정자립도가 2019년 본예산 기준 34.4%에 그치고 있습니다. 향후, 재정 상태가 좋아지면 문화특별시 부천의 명성에 걸맞게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에 더 많은 예산을 지원토록 하겠습니다.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 의회의 조례제정 등에 있어 의원발의의 수가 매우 적거나 어떤 경우 발의된 조례의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에 대한 의장님의 견해 는 어떠신지요?더불어 의회구성이 여당의 점유율이 지나치게 높아서 시 집행부가 제출한 조례 등에 대한 심의가 섬세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영상문화단지라던가 문화예술센터 건립 등에 대한 의회의 심의가 졸속적으로 처리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의장님의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8대 부천시의회 의원들이 지난 1년간 발의한 조례는 26건으로 앞선 제7대 의회가 같은 기간 발의한 7건에 비하면 3배 이상 많습니다. 단순히 조례 제정 건수만을 비교하는 것을 떠나 그만큼 입법 활동이 활발했고 시민들의 요구 사항에 따른 필요한 조례들이 적절하게 제정됐다고 봅니다.    내용의 충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조례라는 것이 항상 독창적이고 획기적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모법에 의해 개정해야만 하는 조례도 있고 현 상황에 맞게 변경되어야 할 부분을 잘 짚어주고 정비해 나가는 조례도 필요합니다.   김동희 시의장 문화예술회관 건립, 영상문화단지 졸속처리 질문에 대한 문제의 핵심은 여대야소의 우려와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여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서로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견해에 귀 기울이는 경청이 먼저입니다. 여야가 대화를 통한 타협을 끌어내는 정치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야당 의원들과도 현안사항이 발생하면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회관 건립은 부지 선정에만 15년이 걸렸고 설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 속에 지난 6월에 첫 삽을 떴습니다. 오랜 시민들의 숙원 사업인 문화예술회관은 부천시만의 문화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리려 합니다. 클래식공연 외에도 365일 보고 즐길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문화도시 부천의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상문화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부천의 마지막 남은 노른자 땅으로 문화 및 숙박시설을 모두 갖출 수 있도록 통합 개발하여 관광과 문화산업을 연결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도시교통위원회 활동 때에도 아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이재욱 논설위원과 김동희 시의장  의회 의장으로서의 바람직한 역할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앞으로 남은 기 간중에 의장님께서 특히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시는 부문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남은 임기 동안에도 안정적인 의회운영과 더불어 의회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신뢰받는 의회, 일하는 의회가 되도록 의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시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의회를 이끌어 나가고자 합니다. 집행부와 시의회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정작 시민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노력은 효과도 없고 지지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소통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것은 엄정하게 가려서 진정 무엇이 시민을 위한 것인지 꼼꼼히 살피는 의정활동을 펼쳐 가겠습니다.   또한, 현재 부천시에는 대장동 3기 신도시, 영상단지 조성, 역곡 북부역 등 크고 작은 대규모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업들 대부분이 지금부터 향후 5년이 부천의 백년대계를 좌우할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기간 동안 이런 대규모 사업들로 인해 크고 작은 갈등과 난제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집행부와 시의회 간 소통을 통해 당면 과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민들에게 혹은 시 집행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 떤 것들이 있을까요?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배려로 지난 1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부천시의회 28명의 의원들은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를 되돌아보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의정활동에 전념할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또 한 번 더 다짐하고자 합니다.   김동희 시의장과 이재욱 논설위원 질책도 좋고 따뜻한 격려의 한 말씀도 좋습니다.  진정한 민의의 대변 기관으로 부천시 지방자치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장시간 할애해 주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의장님을 비롯한 모든 의회 의원님들의 선전과 건강을 기원 드립니다.     인터뷰 진행: 이재욱 논설위원  정리 : 부천시티저널 편집부                                   

세상은 꿈꾸는자의 것이다 -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인터뷰 -2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한국의 영화역사에 있어서 기획제작을 최초로 도입한 선구적 영화제작자로 "엽기적인 그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등 수많은 흥행작을 만들어 온 영화제작자이며 한국형 블록버스터 제작을 시도한 선각자로 볼 수 있다.  비록 수차례의 대규모의 영화제작을 위한 노력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 대한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야하고 그가 이룩한 토대위에서 성장한 한국영화의 제작관행이 오늘날 외국의 영화와 경쟁하고 최근의 동남아시장의 확대에 기틀이 된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이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 그와의 인터뷰 2회를 연재한다.      우리나라에도 영화제가 많지요? 170여개가 넘는다고 하던데요.   세계에는 몇천개의 영화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판타스틱을 주제로하는 영화제로 브뤼셀(Brussels) , 스페인의 시체스(Sitges)가 유명합니다. 물론 우리 부천도 판타스틱영화계에서는 유명하지요. 우리도 별써 23회를 기록하는 오랜 역사를 갖게 되었어요,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아시겠지만 “칸느 영화제“ 기간 중에는 물가도 뛰고 호텔비도 50%이상 뛰어요. 도시 경제에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지요. 로버트레드포드가 만든 선댄스 영화제에는 젊은 애들이 많습니다.스텝진이던, 자원봉사자 그룹이던 활기가 넘치고 이 인원들이 또 이어져서 새로운 맨 파워를 갖게합니다. 우리 부천영화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키워야 되고. 크게 생각을 해야지요. 거시적으로 봐야되요. 부천은 대도시인서울과 인천 사이에 끼어있고 도시반경도 적습니다. 머무를 수 있는 도시가 되지 못하는 약점이 있어요. 그래도 우리 부천만이 할 수 있는 유인책이 있어야 합니다.   일본 요리사 중에 장사 안되는 곳에서만 개업을 하는 요리사가 있대요.그 사람은 그 곳에서 장사를 키운다고 해요. 물론 그 가게를 파는지 어떤지는 별개로 하고요. 나도 영화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면 관객이 온다“는 믿음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비젼이 있는 곳에 꿈이 이루어 지듯이 우리 부천이 비젼을 갖고 충실한 계획을 수행하면 미래가 있다고 봐요.   그렇다면, 위원장님께서 5년을 맞고 운영한다면. 그러면 5년뒤의 부천 영화제의 그림을 그릴수 있을까요?  이번 해보고, 그리고 난 후에 그때 얘기합시다. 이번이 처음이니까.  오늘,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나면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요?          후원은 어떤가요? 경제도 안 좋다고 그러는데요.   후원담당자에게 물어봐요 “책을 만드는데, 그 책을 함께 만들고 싶게 작업하는지?” “ 누군가 그 책 만드는 걸 보면서 따라서 해보고 싶게하는지?” “참여하고 싶게 해야지요, 같은 그룹이 되고 싶게 해야지요.” 난 습관적으로 하는 것 좋아하지 않아요 자랑거리를 넣어야지요, 그런걸 찾아야지요, 그래야 후원도 있고 도움도 있겠지요. 물론 우리 팀원들이 그렇게는 안했지요, 그렇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잠재력을 끌어내야합니다. 그 잠제력을 끌어냄으로서 미래를 볼 수 있는거지요.   부천사람이 부천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느끼도록..영화제가 그걸 끌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갖어야 할 목표가 있고 또 그런 목표로 일을 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중에 후원도 함께 하겠지요. 지금까지는 대체로 잘 진행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부천시민이 자기 돈을 내서 영화제에 참가하는 돈이 외지사람들의 돈보다 많을 것으로 보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울이나 인천 등 수도권의 사람들도 오겠지만 아직까지는 부천시민이 더 많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데이터를 축적해 봐야겠지만 예년의 경우 전체 좌석점유율이 6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부천시민의 참여가 우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영화제가 갖는 의미가 우리만의 축제가 아니고 이름에서도 보듯이 국제적인 행사라는 측면에서 볼때 부천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에 더해서 수도권의 시민들이 부천을 더 많이 찾도록 하는 것은 부천의 경제, 사회등에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위원장님께서 영화제 운영하는동안 자신의 영화제작과 충돌할 수도 있고 선택하여야 할 시간도 있을수 있을텐데. .  처음에 영화제 제의 받았을때 못하겠다고 했어요.."영화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랬더니 프로그래머들도 잘하고 그러니까 옆에서 두고 보고 조언을 하면서..뭐 그래라 그래서 왔는데..와서 보니까 일이 밑도 끝도 없는 거예요. 뭐 하면 할수록 일은 더 많아지고. 지금은 매일 출근해요, 그래도 여전히 바쁘고. 속은거지요. (웃음) 지금은 영화하느라고 쌓아두었던 여러 곳에서 , 특히 미국의 친구들,프로듀서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제 영화고 남의 영화고 필요한 모든것을 갖다씁니다.   위원장님께서는 우리나라 기획영화의 선구자이면서 흥행기록도 갖고 있으시면서 흥망이 극적이셨는데, 영화에 대한 꿈과 영화제의 운영이 상충하면 어떤 결론을 내게 될까요?  그만두어야지요, 영화제와 영화제작은 전혀 다른분야예요. 그 둘을 병행하는것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에게 이야기 했어요, 내가 오래 못할수도 있다..그런 충돌지점이 오면 결정해야지요.    신성복 기자(왼쪽) 신철 위원장(오른쪽)  사실 요즈음의 영화시장이 많이 변했다고들 하는데요, 위원장님이 보는 시장은 어떠신지요?   시장이 많이 변했지요, 외국의 직배 모델이 일반화 되면서 지금 영화시장은 넷풀릭스, 유튜브같은 배급사, 유통업체에 의한 시장이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크리에이터들의 고민이 있게되는 겁니다. 시장의 흐름이 그렇게 되니까 대기업에 의한 독점 시장화가 지속되니까 크리에이터들이 대기업에 속하게 되는겁니다.   실질적으로 프로덕션은 불확정적이지요. 잘 될수도 있지만, 프로덕션이 평생 한두개가 성공할지 말지 그런데 지속적으로 수입이 될 수 있는 수입구조를 갖으려고 다들 노력하지만 만족한 결과를 얻는데 부족한점이 많아요, 시장도 크지 않지요. 그러다 보니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이들이 유통업자로 변하고 결국 크리에이터들도 대기업에 더욱 예속해 가지요. 시장이 단순화되는건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안되요.   우리나라도 CJ 같은 대기업에 의한 시장이 되고, 이에 대한 공과는 따져봐야겠지만, 어쨋던 이런 기업에 의해 시장이 커졌어요 파이도 커졌는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영화시장이 작아서요. 앞으로 이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될겁니다. 배급업자 입장에서도 크리에이티브 입장에서도요.   영화제가 몇달 안남았는데,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잘 진행되요, 영화제라는 것이 마지막까지 변수도 많고 협상에 따르는 일정등도 많고 늘 살얼음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점점 더 할 일이 늘어난다는 의미지요. 많은 협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공적인 영화제를 기대합니다.

세상은 꿈꾸는자의 것이다 -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인터뷰 -1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990 ~2000년대 한국의 성공적인 영화제작자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89), '엽기적인 그녀' (2001 출시작품중 흥행순위 2위) 등을 제작하였다.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한국영화사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영화사를 차리고 글로벌 마켓에 도전하였다. 다시 '로보트 태권브이'로 새롭게  도전했으나 수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숙제와 가능성을 남기고 후퇴했다. 이후 일본과 중국에서 불법으로 3억장 이상의 VOD가 제작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 "엽기적인 그녀"를 리메이크하는 "엽기적인 그녀 2"를 중국측과 합작으로 제작하기로 한  기획은 중국쪽의 이해할수 없는 여러가지의 이유로 계속 지체되어왔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 주장하는 영화제작자 신철이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은 2018년 8월이다.                           미국으로 가게된 동기가 있을까요?   한국시장에서 성공하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첫 번째 미션이었는데 그것이 1990년 ~2000년대 초에 거의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이후에 한국시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이룬 듯한 느낌도 있고, 한국시장이 좁게 느껴져서 그래서 내 인생에 신의 축복이 더해진다면, 글로벌로 성공하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지요.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일본의 한 스님의 소개로 일본의 게임사 남코(Namco)의 회장이 1억불중 6천만불을 투자하기로 하고 진행했는데 그 당시의 할리우드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습니다.  외국의 기술자들과 연결해서 4년동안 준비했는데 미국 영화계에서의 일의 추진이 험난했고, 여러가지 법적 처리등의 난제등으로 결국 4년만에 철수하게 되었읍니다. (注: 미국영화사 사무실이 4층 404호실이었고 미국으로 간지 4년만에 철수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여러 가지 분석을 했습니다.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서 준비 부족에 대한 후회도 하면서 다시 전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것은 동시에 한국영화의 확산 방안이 될 것으로 보고 전세계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않군요.    처음에 한국 영화계에서 제대로 기획된 영화하나 만드는데 10년 걸렸으니  까, 경험도 있고 한점을 감안해서  대략 4~5년 예상하고 추진했는데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환경도 많이 변한데다가 중국 당국의 관련규정, 허가 절차등이 명확하지 않아서요.   제작자로서 스티븐 스틸버그와 무척 닮은듯한 느낌을 갖는데-   미국 영화계에는 천재들이 많아요.제 경우 기술적인 천재를 아는데..그 친구가 진짜 천재이고 그 밑에 있는 애들도 다 천재지요. 그런 스텝들과 작업하는 스필버그도 천재지요. 대단한 천재라고 봐야지요.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그런데 나는 뭐 돈있는 집 자식도 아니고, 충암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때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영화를 하기로 결심했는데,재수해서 서울대학교 미대에 진학했지요.처음에는 서울대 응시해서 떨어졌지만..  그리고 영화계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 느낀게 있는데 그것은 내가 천재는 아니라는 거예요.그런데 천재가 아닌 내가 영화계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별 수 없지요. 남보다 두배를 더 해야지요.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해요.   스필버그도 고생을 많이 했을거 아닙니까?   스필버그는 초등학교때 이미 8mm촬영기를 갖고 다닐정도였는데 무슨 고생을... 거기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자기집처럼 드나드는 기회를 갖었다는 점에서 조건도 좋았고요. 천재적인 작업자들도 주위에 널려있는데..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제작자의, 국내에 잘하고 있는 제작자들의성공의 원인을 보면?    김용화 감독 같은 경우는 자신이 직접 CGI회사를 갖고있어요.거기에서 다양한 시도를 거친 결과로 성공적인 작품의 조건을 갖추는 이점도 있겠지요. 그런데 성공적인 제작을 위해서는 좋은 원작이 있어야 돼요. 몇 일전에 인터뷰기사를 봤는데 거기서 "시나리오가 전부야, 나머지 것은 전부 장식이야(script is everything, anything else is dressing, just dressing)"그러더라구요.근데 이어서 말하기를 “그런데, 나는 좋은 작가를 살 수 있는 돈이 있어!! 여유가 돼 ! 그러더라구요. (웃음)  영화 '엽기적인 그녀' 좋은 제작자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시나리오가 몰려 옵니다. 그 많은 시나리오중에 좋은 시나리오를 볼줄 알아야 돼요. 물론 감독도 그래야 합니다. 재주있는 애가 시나리오 잘못 골라서 망해요.배우도 시나리오를 잘 봐야지 맨날 망하는 시나리오를 보면 같이 망하는 겁니다 . 성공하는 배우는 시나리오를 잘 봐야 돼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거기서 내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성공할지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못 보면 망하는 것이예요. 재주있는 애들이 사라지는 이유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송광호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 선택이 탁월하지요. 그러니까 성공적인 작품에 함께 작업하는 빈도도 많지요. 성공하는 배우의 조건이 되는겁니다.    위원장님은 몇년간에 걸쳐서 스테디하게 성공했는데-     글쎄요 그때 한국에서 계속하면서 건물사서 그대로 한국에서 있어야 하는데, 미쳐버려서 괜히 미국가서,.고생만 엄청하고..돌아와서도 고생하고..   현재의 신철이라는 프리미엄으로 투자가치를 펀딩으로 평가해 본다면?    한국시장만 보면 최대치가 250억 정도로 봅니다. 250억이면 관객이 800만명이 들어야합니다. 참고로 150억이면 600만, 50억이면 200만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이 되는데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한국시장만 보면서 800만을 목표로 하는것은 쉽지 않을거예요,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저는 외국시장을 함께 봅니다. 한국에서는 미국시장까지 보고 4~500억의 투자가 최대치인데, "엽기적인그녀 2"의 경우에 600억까지 이야기가 된 적이 있어요, 아시아 시장까지 함께 보고. "로보트태권 브이도 적지 않은 투자가 예상되었지만" 구설수에 오르내리면서 지체가 되고 그랬지요. 아쉬운 점이 있어요.      다시 기회가 된다면 글로벌 영화계에 뛰어들 것인지?   세계로 향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글로벌 시장은 포기할수 없는거지요. 내가 지금도 영어를 계속 공부하고있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지금도 계속 추진하고 있어요. 포기하면 안되지요. 이제는 우리 영화도 세계를 향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어야합니다. 이미 몇 편의 영화는 아시아 시장에서 상당한 성공도 얻었고요.    신철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한국에 외국 영화직배사등도 포함해서 많이 들어와 있는데-   많이 와 있지요.직배사도 많이 와있고 디즈니사도 벌써 몇년전에 들어왔는데, 성공적이라고 그래요. 예전에, 미국영화 직배반대를 위해서 미국에 여러번 갔고 , 스크린쿼터 지키려고 무척 노력했어요. 너무 한꺼번에 들어오면 안되니까요. 그러면 한국영화가 설 자리를 잃는거니까요. 내가 잘 아는 카나다 교수가 그러더라구요. "스크린쿼터, 목숨을 걸고 지켜라, 그거 한번 무너지면 우리꼴 난다. 영원히 찾을 길이 없다."그 말 맞는겁니다. 그때 우리가 무너졌으면 요즘과 같은 한국영화 힘들었을 겁니다. 프랑스도 스크린쿼터 갖고 버티고,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자기들 영화 엄청 좋아하고, 미국영화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자기들만의 눈으로 보는 영화 만들고, 그것이 스크린 쿼터로 다져진 눈인데 요즈음 우리나라 영화도 우리 눈으로 보는 영화 만들잖아요. 한류성 영화지요. 그것이 다시 세계시장으로 목표를 향하기도 하고 일부 성공하기도 하고..그것이 스크린쿼터로 다져진 것으로 볼 수 있는겁니다.      부천영화제가 경영적 마인드를 갖는 영화인으로 처음인것도 같은데, 부천영화제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요? 우선 예산이 50억 정도인데 이 예산이 적절한가요?   그것도 감지덕지지요, 예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능성이 높아지지요. 그러나 그것이 모든건 아니잖아요? 부천영화제가 초기에는 무척 좋았어요, 부산영화제가 칸느 스타일이고 전주가 에술영화, 인디 쪽으로 갔으니까 두 영화하고차별화하기 위해서 판타스틱 영화제로, 그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특화된 초기 한10년은 매우 좋았어요. 시청 앞 영화제 사무실 그러던 영화제가 2005년 정치적인 이유로 집행위원장을 강제로 그만두게 하면서 영화계가 보이콧트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영화제가 표류하기 시작해서 4~5년전까지 이어져왔지요. 영화제마다 지역적 정체성을 갖어야 하는데,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해야하고. 그런데 정치적인 영향에 의해서 영화계에서 차별받는 와중에- 너 갈데가 없어서 거기가서..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부천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적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번 핵심을 놓치면 회복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상황이 바뀌기 위해서는 숱한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과거의 조직위원장, 집행위원장들 심지어 프로그래머들이 힘을 못썼지요.영향력이 크지 못했어요. 영화계의 도움이 없이 프로그래머등 관련자들을 키우는데 어려움도 있었고. 비록 해외에서는 아시아에서 유일한 판타스틱 영화제로 유명하고 기대도 컸지만 잃어버린 영화제의 특성을 찾아가고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런 측면에서 볼때, 부천영화제가 추구하는 방향이 분명하지 않다는 의문을 제기하는데..모티브가 없다는 말도 있고-    부천판타스틱영화제가 초기에 잡았던 정체성은 이제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봐요. 이제는 시간도 달라졌고..환경도 크게 변한데다가 기술적인 발전도 감안해야 합니다.   처음 위원장 제의 받았을 때 부천영화제에 대한 평가는 잠재력(신철 위원장은 potential이란 단어를 굳이 사용했다.)은 있지만 기대치에 못미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잠재력(potential)을 극대화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고  현재는 갖고있는 잠재력의 50%정도가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데..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제 직원들의 잠재력과 능력을 끌어올리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그럼으로서 다시한번 부천의 개성과 정체성을 찾아갈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내 역할이고 부천 영화제가 변화기에 그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위원장직에 대한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현재는 개막식에 가면 부천인지..부산인지 구분이 되지 않지만, 정체성을 갖는 영화제에서는 여기가 어딘지 구분이 가능하게 됩니다. '개막식의 한 커트만 봐도부천의 정체성이 들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그걸 위해서 우리 식구들과 노력하기로 했지요.   그런 맥락에서, 지금 떠오르는 프로그램등이 있나요? 그건 프로그래머들의 몫이지요, 각 프로그래머들의 영역을 인정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그들의 개성 과 능력을 극대화 시켜야지요.   영화제가 프로그래머들의 개성이 아니라 총 기획의도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프로그래머 개인들의 taste나 개성이 모여서 합쳐짐으로서 전체적인 조합이 이루어질수 있을 것이고 그 조합이 일치 될 때 통합된 영상이 나올 것이다. 그 통합된 영상이 개성으로 정체성으로 나올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일이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중에 이견이 있고 이해해가는 과정이 있고 결합이 반복되고 타협하면서 부천이라는 개성이 창조되지요. 결국 이런 모든 과정이 영화제의 역사와 축적된 경험이 되고 그리고 이렇게 정립된 영화제의 정체성을 갖게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영화제 운영자로는 초보니까 나 역시 집행위원장으로서의 경험이 필요하지요. 해외 영화제들을 보면 위원장들의 경력이 수십년 됩니다. 20, 30년 40년 계속하면서 영화제의 개성을 축적해 가는거지요. 예전에 영화사 사장으로 영화제를 볼 때와 집행위원장으로 영화제를 볼 때 전혀 다른 면을 보게되는데. 일례로 선댄스 영화제에 가면 자원봉사자만도 1800여명이 넘어요, 우리는 300여명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저런 참여가 가능할까? 하는 면에 관심이 크게 가는데 영화제작자의 눈은 결코 아니지요.          프로그래머들을 키우는 것도 중요합니다.이야기가 흐르도록 하자, 대화가 막히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믿도록 하자'고 다짐하지요. 감독과 이야기해서 확정했으면 믿어주어야지 그걸 계속 간섭하면 개성이 나오기 어려운 겁니다. 그렇게 볼때 프로그래머 각자를 훈련시키고 능력을 배양하는 작업도 중요합니다.      ["인터뷰 2" 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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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을 위한 연가 - 9회

12월 19일 이 나라 대통령선거가 있던 날, 드디어 상현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낯선 번호였다. “정은이니?” 그 한마디에도 그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래 오빠. 나야, 정은이.” 금방 내 목이 메고. “보고 싶다. 많이, 아주 많이.” “나도야, 오빠. 많이, 아주 많이.” 사랑을 느끼는 데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어감만으로도, 숨결만 들어도 족했다. 일본 출장 중이란다. 이제야 메일을 보고 전화한다며 감격해했다. 바로 돌아올 거란다. 내가 너무 긴장하고 있었던가. 전화를 끊자 일시에 피로감이 밀려왔다. 나는 이번에도 보수의 편을 들지 않았다. 출신지에 대한 심정적인 끌림이 아니었다. 내 생애 최초로 선거에서 의지를 드러냈다고 봐야 했다. 출구조사는 보수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고 개표 결과는 단 한 번도 진보가 앞서는 걸 허락하지 않다가 끝내 보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세상인심은 기득의 보호막을 슬그머니 감춘 채 허울 좋은 애국이라 포장하여 변화가 위험을 동반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진보에게 패배를 안겼다. 한 시민의 말이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망각의 유령에 싸여 헤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친일을 망각했고 독재를 망각했다. 우리의 현대사는 망각의 역사라는. 나는 내 사랑을 망각하지 않았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리라. 설령 진실을 안다 한들 세상의 눈은 이런 나를 위험하다고 하겠지. 꿈에서 깨라고, 어리석다고,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사랑타령이고 십대의 유치한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세상을 헛살았다고 매도하겠지. 그래 헛살았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맘껏 비웃을 테면 비웃으라지. 이제부터라도 나는 나를 위해 살 것이니. 텔레비전에서 하루 종일 보수의 승리를 떠들어대던 20일이 지루하게 지나가고 마야달력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21일, 드디어 우린 만났다. 어제까지 맑았던 날씨가 우리의 연가를 위함인지 오전부터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요, 오빠. 우리는 그냥 우리가 헤어졌던 시간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모든 인사를 생략한 채 아파트 입구까지 찾아온 그의 차속으로 빨려 들어가자마자 내가 한 말이다. 나는 완전무장을 했다. 털모자와 장갑과 두꺼운 파커, 지팡이까지. “그대로구나.” “오빠도 그대로야.” 우린 눈도 껌벅거리지 않고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옛날일 수 없는 모습을 애써 그대로라고, 달라진 게 없다고 이심전심으로 말했다. 싸라기눈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했다. “가자.” 그가 입을 달싹였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휴대전화의 전원도 껐다. 내 행동을 설명하기가 싫었고 어떤 간섭도 받고 싶지 않았다. 주방의 식탁엔 메모를 남겼다. 나를 되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는. 진부하나 사실이잖은가. 내일은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지만 두렵지도 않았다. 그는 두꺼운 파커는 뒷자리에 두고 체크무늬 남방에 카키색 조끼를 걸치고 골이 진 바지를 입은 채 운전했다. 무엇이 그리 힘들었을까, 얼굴은 팽팽했으나 머리가 반백을 넘어 올백에 가까웠다. 그것은 눈가의 잔주름과 함께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계속 흘렀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흰머리가 신기하게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 북한강을 따라 경춘가도를 지나는 내내 눈이 내렸다. 강은 눈을 온몸으로 받아 속으로 흔적도 없이 빨아들였다. 내가 그랬었다. 그의 사랑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온몸과 온정신으로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었었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강이고 또한 눈이었다. “같이 살아야겠어요.” 오랜 침묵을 깨고 내가 한 말이다. 침묵도 우리의 오랜 공백의 산물이었다. 예전엔 침묵이 어색하다는 걸 느낄 새가 없었다. 나는 지금 그에게 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던, 동거하자는 말을 하기 위해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십 수년을 거슬러 올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수에 반발하여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결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그러기 위해선 아이를 빨리 만들어야 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리. 격정을 참기 힘들었는지 그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나야 좋지만 괜찮겠어?”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오빠만 좋다면 나야 상관없어요.” “정은이가 곤란해지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다 감수할래요.” “이런 날이 오게 되리라는 걸 간절히 희망했지만 현실로 다가오다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조차. 내 인생은 결정적인 순간에 내 바람과는 다르게 꼭 틀어지기 일쑤였어. 영화에서 본 것이지만 그 격정이 지금의 내 심정과 너무 생생하게 닮았구나.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나의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온다고 믿어. 몇 번을 다시 산다 해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정은이를 사랑해. 깊이, 완벽하게, 그리고 영원히.” 아, 불륜의 전설이 된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로버트 킨케이드의 명대사를 그가 읊조리고 있었다. 첫눈에 빠져든 두 사람. 이미 중년에 이른 그들은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같이 나누지는 못했어도 앞으로 살아갈 시간만은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세상사의 잣대로 엄연한 불륜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그 무엇도 갈라놓을 수 없을 것같이 여겨지던 격정적인 그 사랑은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함께 떠나리라 철썩 같이 믿었기에, 프란체스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쏟아지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에 비를 흠뻑 맞은 채 기다리고 기다리다 끝내 돌아서야만 하는 로버트의 처절하고도 망연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죄책감이 없을 리는 없다. 아내의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 남편도 희생자일 수 있으니까. 나의 진실을 안다면 남편은 그 얼마나 억울할까. 속아 살아온 내게 그 얼마나 치가 떨릴까. 아이들이 받아들일 혼란도 부산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사기꾼이고 파렴치한이다. 이런 게 우주의 애매함일까. 빛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이 있기 마련인. 로버트의 사랑이 빛이라면 로버트의 아내(있었던가, 없었던가?)가 느껴야 할 절망은 어둠이다. 프란체스카의 사랑이 진실이라면 그녀의 남편이 갖고 있는 사랑은? 나도 나의 확실한 감정을 프란체스카의 대사로 실토하고 있었다. “숨 쉬는 간격이 길다고 느껴질 만큼 오빠가 보고 싶었어요.” 이러한 프란체스카에 비해 그녀의 남편이 느껴야할 배신감은?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보상 받을까? 정답이 없는 이 애매함. 이 지독한 이기심. 아, 생각지 말자. 나는 나만이 알 수 있는 도리질을 해댔다. 이윽고 아련했던 숨결이 느껴지고 그의 입술이 내 얼굴 전체를 누볐다. 감동이었다.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 나도 숱하게 입술도장을 찍고 또 찍었다. 지나가는 차의 경적이 짓궂게 울렸다. 그제야 우리는 떨어졌다. 눈은 필사적으로 앞 유리에 몰아쳤다. 윈도브러시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차량들의 속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춘천을 지나 추곡휴게소에서 우리는 바퀴에 체인을 감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보금자리는 어디로 하면 좋을까?” 내 어깨를 안고서 차로 돌아와 그가 한 말이다. 아까와는 달리 많은 여유가 느껴졌다. 우린 이십육 년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는 들어보지 못했던. 같이 살려면 당연히 그게 순서겠지. “오빠가 좋을 대로,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면 아무 데도 상관없어요.” “정말?” “그럼요.” 차가 다시 출발했다. 우리의 의지는 확고했다. “우리의 내일을 방해하는 에고의 세력들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꺾이지 말아요.” “나는 정은이가 아니고는 내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이 말을 기다렸다. 도덕과 윤리와 사람의 도리를 앞세운 표피만 그럴 듯한 엄숙주의자들이 우리 길을 막아설지라도 멈추지 않을 거라는. “내 안의 윤리와 패배주의에도 초심을 잃지 말아요.” “제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한계령은 우리의 신혼여행지예요.” 여기는 해발 900M입니다. 인제를 지나 44번 국도를 따라가자 오르막 끝에 드디어 팻말이 나타났다. 한계령. 도착했을 때는 다섯시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날이 어둑해지고 눈발은 가늘어졌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거세게 눈을 흩날리게 해 얼굴을 차갑게 때렸다. 눈은 제법 쌓였으나 그렇다고 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상황이어야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바드라재라 기록돼 있고 국도가 생기기 전에는 오색령이라 불리던 고개. 그 한계령휴게소 광장에서 우리는 문정희의 시가 주는 우리만의 간절함을 한동안 음미했다. 저녁어스름에 드러난 설악의 기암괴석들, 멋들어진 나무들, 눈이 만들어낸 장관, 거기에 딱 어울리게 자리 잡은 휴게소 건물은 신비하고도 황홀한 풍경이었다. 우린 어느새 이심전심으로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다음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한계령을 위한 연가 - 8회

가슴이 설레고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며칠 이내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는 없었다. 만약 가게 된다면 남편에겐 뭐라 할까. 결혼 이후 학교의 수학여행이나 친정과 시댁의 애경사와 같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의 외박은 없었다. 나는 누가 보기에도 표면적으로는 충실한 아내이고 아이들의 자상한 엄마였다. 남편의 외박은 잦았다. 며칠씩 걸리는 출장도 잦았다. 물론 회사 일 때문이었다. 그 모두가 회사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외박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직도 뭘 기다리나. 내가 뭘 두려워하나. 우리에게 한계령의 한계가 무엇인가. 눈이 오지 않으면 눈이 온다 생각하면 될 것을. 허울뿐인 명분이 굳이 필요하단 말인가. 스물여섯 해, 구천사백구십 일, 이십이만 칠천칠백육십 시간을 새장에 갇혀 살았는데 아직도 먹이가 오기만 기다리나. 문은 열려 있거늘. 나가서 먹이를 찾으면 될 게 아닌가. 경숙에게 전화를 했다. “상현 오빠 전화가 몇 번이니?” “갈쳐 준다고 헐 때는 내비두람서 갑자기 왜?” “빨리 가르쳐 주기나 해.” “별일이네, 가시내.” “그런데 너 상현 오빠 부인이 죽은 거 아니?” “뭐라고? 상현이 오빠 부인이 죽다니?” “너도 모르고 있었어?” “오매, 어째쓰까. 전화 한 번 해봐야겠네. 그 오빠 카페에도 안 들어오잖아. 시골에 산만 샀다 뿐이지 발 끊은 지도 아주 옛날이고. 사실 오빠가 그러니까 나도 전화하기도 조심스럽당게. 너는 그 소식 어떻게 들었간디?” “그럼 그 오빠가 글을 쓰는 줄도 모르겠구나?” “네가 어떻게 나보다 상현 오빠에 대해 훤히 아냐?” “우연히 그 오빠 책을 보게 됐어.” 전화번호를 알게 된 순간 기쁘다기보다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억울했다. 타의에 의해 왜곡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뭘 망설이겠는가. 경숙과 통화를 끝낸 후, 머뭇거리지 않고, 서성대지도 않고 전화했다.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콩콩거리며 뛰던 가슴이 슬그머니 까무러졌다. 무슨 일일까. 초조해졌다. 남편이 들어왔어도 그가 보지 않는 데서 나는 수시로 전화기를 만지작거렸으며 컴퓨터를 내내 켜둔 채 틈만 나면 메일을 살폈다. 침대에 누웠어도, 남편이 오랜만에 배 위에 올라와 용을 쓰는 동안에도, 내 생각은 온통 그에게만 가있었다. 이윽고 욕심을 채운 남편이 잠에 빠져들었을 때 나는 슬그머니 침대를 빠져나와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보낸 메일도 그는 아직 열어보지 않은 상태였다. 전화기는 여전히 꺼져있고. 소리샘에 안달이 난 내 목소리를 남겼다. “오빠, 나 정은이. 왜 전화기가 꺼져있어? 나 오빠의 진실을 오늘에야 알게 됐어. 책을 봤어. 버마재비의 사랑. 나 한계령에 오빠와 함께 갇히고 싶어.” 나의 이런 행위와 생각들이 다른 사람이 보기엔 불륜이라 하겠지. 나는 나에게 위선적이고 싶지 않았다. 그게 중요했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여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박빙이 되어갔다. 남편은 대상은 다르지만 나만큼 초조해 하고 있었다. 벌써 남편이 참여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살리기’는 죽어가는 것을 살린다거나 살아있는 것을 더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건설사들의 담합과 보의 부실공사가 드러나고, 녹조가 심화되고, 걸핏하면 침수가 일어나는 판이고, 철새는 찾아오지 않고, 물고기는 죽어가고, 멀쩡했던 습지에 인공의 구조물들이 들어서 매끄럽게만 보이니 강에 깃든 생명들에게 혼란은 빤한 일. 국민의 혈세 22조원이 들어간 대역사가 결과적으로는 강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기’가 되고 말았다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국민들이 동조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자연은 인간이 간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그 대안으로 밀어붙인 게 4대강 살리기였다. 건설업체에서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생존방식으로 경영주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성공가도를 달려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에 오르고 모든 샐러리맨들의 신화가 되더니, 그 여세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마침내 서울시장과 일국의 지존의 자리를 거머쥔 이.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부릴까마는 여론은 그의 사심마저 의심하기에 이르렀으니. 야당이 집권한다면 4대강 살리기는 도마 위에 오를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초조해진 남편은, 아니 남편의 회사는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만약을 위해 반대편에 미래의 생존을 담보하는 보험 들기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했으리라. 이런 행태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재벌들의 생존 방식이었음에랴. “나 감쪽같이 사라질지도 몰라.” “이 가시나가 미쳤구나!” 경숙인 내 말에 실소를 터뜨리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도 짓지 않고 실없는 소리 마라는 듯 내뱉었다. 상현 오빠의 전화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 못해 경숙이라도 만나 초조감을 달래려한 자리였다. 책을 읽었다면 그 못 잊을 여인이 나라는 걸 알 수도 있으련만 경숙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긴 읽지 않았으니 잠잠하지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전화로 난리를 쳤으리라. 경숙인 원래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젠 행복에 겨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왜 금방이라도 옆에 없으면 죽고 못 살 연하라도 생겼간? 요즘 신간 편한 여편네들 연하 하나씩 키우는 게 대세라등만 너까지 그런 거시여?” “왜 안 믿기니?” “세상 여자들이 다 그런다 하더라도 너는 그런 짓 못 혀.” 이렇다. 나를 보는 세상의 눈은 여지없이 현모양처다. 윤리에 반하는 나를 상상하기 힘들다는. 나는 세상을 감쪽같이 속인 셈이다. 상현 오빠에 대한 아직도 변함없는 내 사랑과 앞으로 어떻게 하리라는 심사를 털어놓으려던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아직 이르지. 철썩 같이 믿었던 결혼이 헝클어졌던 것처럼. 내 보험은 의뭉한 침묵이었다. 내 소갈머리에도 화사 몇 마리는 똬리를 틀고 있는가보다. “참, 상현 오빠에겐 전화해봤어?” 경숙이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내게 물었다. 그것까지 감출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그래, 그런데 전활 받지 않더라. 아니 전화기가 계속 꺼져 있던데?” “그렇지? 나도 해보니까 꺼져 있더라. 집전화도 받지 않고. 워낙 고향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이라 알 만한 사람도 없고.” 그가 고향이나 고향사람들과 담을 쌓고 산 건 설움 받은 기억도 있겠지만 더 큰 원인은 나와 무관치 않으리라. 그보다 더 한 상처가 어디 있었으랴. “암이었다더라, 부인이.” 난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암? 부인의 성격이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요즘엔 암도 초기에만 발견하면 병도 아니라는디, 자세한 내막을 알아야 중매라도 서지.” 경숙의 중매라는 말에 어이가 다 없었다. 일편단심인 내가 있는데 중매라니? “넌 자세한 거 알지도 못하면서 벌써 짝 지워 줄 생각부터 하니?” 아차,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짜증이 묻어나왔다. “옴마야, 네가 왜 성질을 부려? 네가 갈 것도 아니면서. 참 별 꼴이네 얘.” “얘는 내가 무슨 성질을 부렸다고.” 나는 금방 오그라들었다. “한 번으로 족하다. 너 그 오빠 아프게 한 거.” 경숙으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면서 내 몸이 아득한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알고 있었다. 경숙인 우리의 사랑과 파국을. 아니, 요즘의 내 심사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의 파국이 나라고? 내가 원인이라고? 내가 아프게 했단다. 아니야, 경숙아. 그게 아니야. 내가 아팠어.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뎌냈는데? 나는 변명하지 못했다. 그 잘난 보수를, 보수의 딸임을. 나는 한없이 무력했다. 그 무력감에 화가 솟구쳐도 아무 말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오빠한테 전화하지 마. 그 오빠 언니가 살아있다면 몰라도 죽었다면서…… 그런께로 더욱이 전화하지 마라는거시여.” 나는 경숙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나는 내가 피해자였다. 그렇게 믿고 나를 가엾어 하며 살았다. 그런데 가해자가 되어 있다니. 나의 진실은 어떤 것인가. 영혼을 빨려버렸다 생각해온 내 진공의 세월은? 나도 혼란스러웠다. 상현 오빠에게 전화하는 나는 파렴치한 여자가 분명했다. 오빠의 처지를 이용해 화냥기를 채우려는, 다시 한 번 농락이 될 게 빤한 파렴치한 나. 오기가 생겼다. 그래? 그렇다면 파렴치한 년이 되리라. 경숙과는 서먹해진 상태에서 헤어졌다.   -다음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한계령을 위한 연가 - 7회

  그로부터 이십육 년이 흘러 그가 내게 다가왔다. 버마재비의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저자의 말을 마저 읽었다. ‘내게 못 잊을 사람 하나 있다. 죽어도 잊지 못할 여인이. 나는 그녀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겼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주지 않으면 안 될 상처였다. 그녀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는 버마재비의 사랑을 왜곡했다. 버마재비는 온몸을 바쳐 사랑을 완성한다. 나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통은 고통대로 안기고 쓸데없이 죽었다. 그러고도 버마재비의 사랑이라 우겨댔으니.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 여인이 다른 이의 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사랑에 무슨 변명이 필요할까. 사랑은 양보가 아니었다. 나는 이제야 나를 위로할 필요를 느꼈다.’ 나는 행복한 게 아니야. 아름다운 옷을 입혀 놓은 마네킹에 불과하고 새장에 갇힌 새일 뿐이었어. 재빠르게 인터넷으로 버마재비를 검색했다. 버마재비의 본질을 알아야 했다. 수컷사마귀는 암컷과 교미 후 서슴없이 자신의 육신을 암컷과 후손의 번식을 위하여 상대에게 잡아먹힌단다. 그런데? 목차로 넘어갔다. 더 정확한 진실을 알 필요가 있었다. 본문의 버마재비의 사랑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음울한 음모가 적나라했다. 내가 동거하자는 말을 하려 했던 만남 이전에 우리 오빠가 그를 만났고 거기에 협박과 호소와 거짓말까지 등장했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미 내가 선을 봤다는 지금의 남편도 등장한다. 내가 그를 맘에 들어 한다는. 우리 오빠는 남편과 그를 비교하며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포기하라고 했단다. 누가 과연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그의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인 눈으로 판단하라고 강요했단다. 또 보고도 보지 않은 척,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마을사람들의 눈을 생각하라고 하더란다. 이제까지 우리 집안에서 입에조차 올리기 싫어했던, 당숙과의 관계에서 그의 엄마가 우리의 숙모뻘이 되잖으냐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그가 가장 치욕스럽게 여길 치부까지 들먹이며. 다 이해할 수 있었단다. 어떤 모욕도 달게 받을 수 있었단다. 남편과 자신이 비교되는 게 제일 가슴 아팠단다. 우리 오빠가 내세운 남자의 이력은 그가 애당초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태생적인 한계, 그의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이미 피투성(被投性)이로 결정지어진 이력들. 그가 어떻게 집안을 골라 태어날 수 있겠는가. 그가 어떻게 부모를 결정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그게 나를 체념하고 연극을 하게 한 결정타였다. 그는 내가 가족과 척을 지는 걸 원치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의 발목을 잡아버리는 사슬의 DNA. 육사의 좌절이 그랬고 그 좌절마저 충분히 위로 받은 나와의 사랑이라 여겼었는데 그것마저 태생적인 한계로 위기에 처했다. 그는 인간의 노력을 의심한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넘을 수 없는 피의 한계. 불행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연민이 교차했다. 어린 시절부터 숙명처럼 따라다닌 자격지심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손가락질과 눈총과 이웃의 위선에 지쳤다. 그래, 져 주리라. 마침내 그는 연극을 결심하고 같이 근무하는 여인에게 부탁하여 내 앞에서 실연했다. 그리고 그날 밤 약을 먹었다. 흔해 빠진 드라마가 내가 모르는 사이 벌어졌었던 것이다. 그는 바보였다. 죽으려고 했던 바보가 아니라 나를 그렇게 쉽사리 포기했다는 게 바보스러웠다. 어째서 죽을 용기로 나를 뺏기지 않기 위해 버텨낼 용기는 없었을까. 그는 내가 그가 없어도 정말로 행복할 거라 믿었을까. 내 사랑이 그토록 가볍다고 여겨버린 그가 바보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를 구한 건 그때의 그 아가씨. 내가 떠난 후 절망하여 엉망진창으로 취한 그에게서 위태로운 자포자기를 보았단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고 불길한 예감에 집으로 달려가 보니 약을 먹어 사경을 헤매고 있더라고. 위 청소를 하고 가까스로 살아난 그는 그때까지 살아온 김상현은 그때 죽었다고 서술했다. 결과적으로는 쇼가 되고 말았지만 그런 쇼라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을 설득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후의 김상현은 새로 태어났단다. 따라서 그에게 나는 없었다. 그 후의 그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그 아가씨의 것이 되었다. 그녀와 결혼했던 것이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거기에 진정성을 따져 뭣하리. 나는 다른 여자를 잊지 못해 죽으려고 했던 사내를 사랑한 여자의 용기가 가상하게 느껴졌다. 그는 나로 인해 단 한 번도 아내를 속상하게 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했던 죽음 이전마저 그녀에겐 아픔일 것이기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리움 따위도 전혀 내색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고 적었다. 믿음이 가는 대목이었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암으로 죽었다. 내게 연극을 해보일 수밖에 없었던 때 이상으로 가슴에 커다란 공동이 생겼노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죽어가면서 그를 사랑할 수 있어 행복했노라고 말했단다. 진부한 신파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다음 생에 만나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되자고 말해주었다고. 나를 의식한 표현이었다. 그는 짝 잃은 기러기가 되었다. 누가 알아줄지 모를 그 내밀한 얘기를 이제 와서 고백했다. 그녀가 살아있다면 이러한 고백마저 하지 못했을 거란다. 도대체 무얼 바라고? 나는 아리면서도 은근하게 기쁨이 용솟음쳤다. 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니! 내 윤리가 불순한 것인가. 그는 배신하지 않았다. 바보스러웠을 뿐. 버마재비의 사랑을 잘못 해석했을 뿐. 그게 중요했다. 그가 바란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오직 나 하나만을 바라고, 내가 읽어주길 바라고 책을 냈던 게 아니었을까. 죽어도 잊지 못할 여인. 전율이 일었다. 소름이 끼칠 만큼 기분 좋은 전율. 극치의 오르가즘과도 같은. 그는 다시 나의 우상이 되었다. 초판 발행일이 삼 개월 전이었다. 나는 그에게 결국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이라는 불행을 선물한 치명적인 여인, 팜므파탈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한 사람을 죽음의 지경까지 몰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우리 오빠는 그를 자격지심의 늪으로 몰아넣었던, 이미 만나 내가 맘에 들어 했다는 남자, 현재의 남편을 그 후 내게 소개했다. 객관적인 눈으로 남편은 그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다. 나는 그때 마네킹에 불과했다. 옷을 입혀주면 입고 벗기면 알몸뚱이가 되어야 하는. 내 영혼은 언제 잠이 깰지 모르는 휴면기에 들어간 상태였다. 의식의 실종상태에서 남편이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내 의지가 있을 수 없었다. 상현 오빠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에 대한 소식이나 이야기라면 철저하게 귀를 닫았다. 그게 바로 그의 배신에 대한 나의 복수라면 복수였다. 그리고 결혼했다. 그것도 복수의 일환이었음을 어찌 숨기랴. 남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사랑의 감정도 없이 결혼했으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나는 나를 방치했다. 내 사랑이 간절했던 만큼 원망도 간절했다. 남편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결혼 초기에 남편과 섹스 할 때는 그라고 착각할 때가 많았고 절정의 순간에 내가 매달리면서 외쳐 부른 오빠라는 비명은 남편이 아닌 그였다. 내 사랑과 미움은 그렇게 불가항력이었다. 아버지와 오빠는 남편과 아이들 낳고 별 탈 없이 사는 나를 보며 그와 헤어지게 만든 음모를 두고 다행이라고, 아주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의 물기 없는 마른 콩깍지 같은 내면은 들여다 볼 생각도 안 하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서 말이다. 무엇을 바라고 그런 짓을 했을까. 아직 거친 세상의 맛을 보지 못한 내 판단의 미성숙을 고려해서? 아닐 것이다. 오로지 우리를 알고 있는 눈들이 두렵고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럴 듯한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아, 인간의 어처구니없는 에고여. 만약 내게 지금도 남편과 그를 선택하라 한다면 설령 내가 그와 불행하게 될지라도 서슴없이 그를 선택할 것이며 그 선택을 추호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그에게 나는 전부였지만 남편에게 나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 그도 불행했고 나도 불행했다. 나는 분노했다. 남편도 불행한 남자다. 이 모두를 불행으로 몰고 온 위선투성이의 보수, 저주를 받을지어다. 나는 메일을 열었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다시 읽기 위해서. 그로부터 장난삼아 보낸 메일에 대한 답장이 와있었다. '그래 가자. 우리 가서 한계령의 한계에 부딪쳐 보자. 일기예보를 보고 전화할게.’ 난 내가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버마재비가 그라는 걸 알았다면 난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함을 열어봤으리라. 그 얼마나 다행인가. 설령 장난이었을지라도 내 심중의 일단이었으니. 참된 내 영혼이 긴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버마재비는 분명히 그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어볼 법도 하건만 이 말뿐이었다. 그동안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었으니 알고 싶지도 않았으리. 그런데 ‘일기예보를 보고’라니? 그는 아직도 보수를 두려워하는가. 우리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갇히게 되길 바라고 있으니. 답장을 보냈다. 내 마음이 고스란히 표현된 문정희의 <겨울 사랑>으로.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하얀 네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 년 백설이 되고 싶다  -다음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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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꿈꾸는 부천" - 부천여고 '사제동행 책읽기'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부천시티저널>에서는 부천의 문학적 비전을 찾아서 연재해온 기획시리즈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와 함께 시민들의 문학활동과 독서활동을 취재하는  ‘문학으로 꿈꾸는 부천’을 추가하여 연재하고자 합니다.          부천여고의 '사제동행 책읽기' 독서글 모음집-'책으로 꿈꾸기'    부천여자고등학교는(교장 이용남) 개교 40주년이 된 유서깊은 학교이며 상동의 석천로 16번길 37에 위치해 있다. 84명의 교직원과 700명의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고 교육지표는 '실력과 덕성을 갖춘 당당한 여성상 정립'이다.  과학중점학교로서 수학적 탐구심과 과학적 탐구심 소양함양을 위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인문학 분야에도 매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부천시티저널>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기념 기획시리즈로  인문사회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제동행 책읽기’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 대담 임지향 국어선생님(인문사회부 부장) 진행 김용진기자   부천여자고등학교   이용남 교장선생님 '사제통행 책읽기'는 이미 튼튼한 뿌리를 내릴 정도로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해오고 있는 프로그램이다.간단히 요약하면 학기 초에 학교에서 공지를 하고, 참여를 원하는 학생들 2~4명이 모여 책 선정을 한 뒤에 직접 담당 선생님을 섭외하여 계획서를 제출한다. 그 후 접수된 계획서에 따라 선생님과 학생들을 멘토와 멘티로 맺어주고 각 팀의 시간계획에 따라 주기적 만남을 가지며 1권의 책에 대하여 1년간 이야기를 풀어가는 프로그램이다. 단순 독서 모임이나 수업과는 달리 책을 읽은 뒤 서로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경험을 나누고 적용하려고 애쓰는 프로그램이다. 사제가 동행하여 독서활동을 하고 독후감을 엮어‘책으로 꿈꾸기’를  제작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많이 읽으려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을 깊이 읽고, 오래 읽고, 자꾸 삶에 적용해보고 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에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번 읽을 때 다르고, 혼자 읽을 때 다르고, 언제(어떤 마음상태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르거든요. 책을 읽고 이야기할 때 혼자 읽었을 때와 둘이 읽었을 때의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혼자 읽고 생각을 서로 나눈 다음에 또 적용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임지향 국어 선생님(인문사회부 부장)의 말이다.   1.이 프로그램은 언제 시작하였고 시작하게 된 취지는 무엇인가요?  제가 부천여고에 2015년에 발령왔을 때부터 있었던 프로그램이어서 시작된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리면, 학생이 자신의 ‘책’을 결정하고 그 책에 대한 독서계획서를 세워 선생님께 멘토가 되주시기를 요청하고, 선생님께서 이에 응해주시면 학생과 선생님의 멘토-멘티 관계가 맺어집니다. 멘티 학생과 멘토 선생님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삶에 대하여 깊이 있게 성찰하게 됩니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교사와 학생의 대화와 성찰의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과 삶을 향해 더욱 성장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함입니다.   임지향 국어선생님(인문사회부 부장) 2.이 프로그램의 대상과 참여율은 얼마나 되나요?  멘토 이용남 교장선생님과 이영숙 교감선생님 외 교사 46명, 멘티 학생 314명으로 총 97팀이 사제동행 독서 공동체를 구성하였습니다. ( 2019년 교사 76%, 학생 45% 참여)   3.이 프로그램의 그룹구성과 진행(시간 및 장소)은 어떻게 하나요?  보통 아침 8시에서 8시 40분에 교내 약속된 장소에서 계획서대로 진행됩니다.  (그룹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4.책선택은 어떻게 하며 주로 어떤 장르의 책이 선정되나요?  학생이 한 해 동안 관심을 갖고 깊이 있게 탐독할 수 있는 책이 선정됩니다. 보통 자신의 진로 및 취향을 고려하여 선정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5.이 프로그램에서 참여자로서 선생님들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의 멘토로서 함께 책을 읽으며 책의 내용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과 성찰의 과정이 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며 상담자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영숙 교감선생님(좌)이 학생들과 '사제동행 책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6.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나 책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개인적으로 학생들과 함께 독서를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다른 세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교장, 교감 선생님들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학생들과 동행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사제동행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7.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얻어진 성과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깊이 읽으면서 토론도 하고, 여러 번 읽으면서 읽을 때마다 다른 감상도 느끼고, 다른 친구의 감상을 들으면서 공감도 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함께 읽는 독서를 통해서 즐거움, 행복,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임지향 선생님이 진행한 책과 부천여고의 독후감 모음집을 들고 있다.   8.이 프로그램 진행 시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읽고자 했던 책이 기대보다 별로여서 책을 바꾸고 싶은 경우가 생기거나 함께 멘티를 구성한 친구들끼리 사이가 틀어져서 모여도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9.간혹 프로그램이 진행이 안되는 그룹의 경우도 있나요?  계획서대로 이행되지 않는 그룹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10.앞으로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발전시키시고 싶으신가요?  현재 많은 학생들이 진로와 관련한 도움을 받고자 참여하고 있지만 진로뿐만이 아니라 인성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독서토론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학교가 진로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용진 객원기자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구유현의 명상노트

훌륭한 인품을 지닌 친구를 둔 사람은 훌륭한 인품을 가질 확률이 높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인간관계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설정해야 하고 또 이를 실천해야 한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도 있다. 이 말도 친구의 중요성을 비유한 말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과 같이 성장과정에서 친구의 영향이 크다. 스포츠, 음악, 게임, 일탈행위 등을 보면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만난다. 굳이 잘잘못을 떠나서 같은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정보를 함께 공유한다. 부자가 되려거든 부자 친구를 두는 것이 좋다는 말대로 부자 친구로 가깝게 지내게 되면 부자의 습관, 생각하는 방식을 은연중에 배우게 된다고 한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든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친구와 함께 있으면 습관, 생각하는 방식을 아무리 조심해도 은연중에 배우게 된다.     문제 행동을 보고 흔히 가정교육 운운하고, 가정교육이 잘 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가정결손이 없고 가정교육이 잘 되었다고 해서 일탈행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물이 들게 마련이고 따라하게 된다. 그렇듯 사회적 규범, 규칙, 관습을 존중하고 준수할 줄 아는 친구들 속에 있어야 인간관계가 원만하다.  예의가 없는 친구들 속에 있으면 생활습관이 나아질 수 없다. 공중도덕을 안 지키고,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고, 배려심이 없이 무례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게 된다.  잘못해도 관대하기만 하는 사회구조에서 가정교육으로 아이를 됨됨이 있게 기르기 힘들다.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을 반영하는 사회의 일관성 없는 기대로 우리 사회가 존중될 수 없다. 가까운 일본은 사회교육자체가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선진국에서는 하나같이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질서위반에 대하여 엄격하게 적용될 때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될 수 있다 하겠다.  어떤 것은 다른 나라의 사례나 제도를 절대적이라 인용을 하면서 불리한 것은 선진국에서나 할 일이라고 무시해 버리는 일들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서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쌓이면서 무기력하게 될 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철저히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아닐까.

주는 대로 받는다./구유현의 명상노트

 “한국인 사업가 두 사람이 필리핀 마닐라 공항의 트랩을 내려서는 순간 같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필리핀 청년 여섯 명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았다. 즉시 공항 경찰대에 신고를 했고 이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연행된 청년들이 한국에서 취업기간 중에 당한 학대와 모욕을 이야기 하니 이에 흥분한 경찰들까지 합세하여 재차 폭행을 하고 강제 출국까지 당했다”는 부끄러운 내용이 있었다.    “네팔을 여행하던 대학교수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필리핀에서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라는 이유로 불을 질러 전소 되었다고 한다. 네팔에서는 한국에서 산업재해를 당하고 보상을 받지 못한 이들이 잘라진 팔뚝 사진을 넣어 달력을 만들었는데 달력을 볼 때마다 한국을 원망하고 저주하지는 않을까?”    한국을 찾은 중국동포들 중 비인간적인 대우와 산업재해, 임금체불, 폭력,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어떤 경우라도 내, 외국인을 막론하고 수치심을 자극하고 모욕을 주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일을 하고도 잘못을 모르기 때문에 반한 감정이 생기고 분노와 원한이 쌓이는 것이다. 나쁜 짓, 못된 짓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 다 안다.    우리는 항상 나만 중시하고 상대를 경시하기 때문에 별의별 짓을 다 하고도 반성할 줄 모른다. 상대의 어려운 입장에 무관심하거나 무시하면 당하는 사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증오심이 남게 된다. 이를 겪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을 때 한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로 기억되면서 한국 사람을 보면 분노가 폭발할 것이다.    존중할 줄 모르면 존경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상대의 약점은 사정없이 파고들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변명일색이다. 막말을 예사롭게 하고 추태를 부려 인상을 찌푸리게 하고 신경질 나게 하는 행동이 비일비재하다. 잘못된 사람을 말하면 좋은 사람이 더 많다며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모를 말을 하여 기분을 상하게 한다.    조금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살아가면 모두 극복할 수 있는데 상대를 조금도 배려할 줄 모르고 쉽게만 대하려 하기 때문에 불쾌한 면들이 나타나 신뢰받지 못하는 것이다. 신중하지 못한 행동으로 상대의 관용을 바라지 말고 정중하게 사과를 해야 한다. 남에게 폐가 되어도 별 문제 아니라고 그냥 넘어 가면 안 된다. 그렇게 할 때 서로 존중할 수 있고 신뢰가 쌓인다.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서로가 노력하고 실천해야 친근감이 생긴다. 서로 아껴주고 챙겨주면서 따뜻한 삶을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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