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20(화)

부천형 주차로봇 ‘나르카’ 안전을 위한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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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영상진흥원, 웹툰 원작 신규 콘텐츠 발굴에 나선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원장 신종철)이 문화 콘텐츠 원작산업으로서의 웹툰 원작 콘텐츠 발굴을 위한 우수 신규 작품 공모전 '2020 만화 원작 활성화 공모전'(이하 공모전)을 개최한다.    만화 원작 활성화 공모전은 웹툰 원작을 토대로 다양한 사용처를 개발할 수 있는 OSMU(원 소스 멀티 유스: One Source Multi Use) 콘텐츠 발굴과 프로듀싱 및 기획개발 지원을 통해 만화작가의 2차 산업화를 위한 비즈니스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공모전에는 연재 혹은 출판 경력이 없는 예비 작가, 80회차 이하 연재 또는 단행본 3권 이하의 출판 경험이 있는 신인작가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접수는 10월 26일(월)부터 30일(금) 오후 5시까지며,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통합사업관리시스템(pms.komacon.kr)을 통해 지원서와 함께 기획서 및 2화 분량의 원고를 제출하면 된다. 기획서에는 작품 제목·작가명, 완결까지 전체 예상 분량, 장르 및 작품의 주요 키워드, 타겟 독자층, 완결 스토리가 포함된 시놉시스, 주요 캐릭터 디자인 및 설정, 주요 인물 관계도 등을 담아야 한다.    접수된 작품을 대상으로 예선심사와 본선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작을 선정한다. 심사 기준은 ▲소재 및 이야기의 참신성(40점) ▲작화의 안정성 및 독창성(30점) ▲2차 사업화 가능성(20점)이다. 심사위원 평가 후 최고점과 최하점을 배제한 합계 최고점으로 총 6작품을 선정한다.    수상작에게는 상장과 함께 대상 1작품에 1,000만원, 최우수상 1작품에 700만원, 우수상 2작품에 각 500만원, 그리고 장려상 2작품에 각 25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특히 수상작이 웹툰플랫폼과 연재 계약 시, 만화작가의 비즈니스 역량 강화를 위해 작품별로 프로듀싱 비용을 지원하고, 프로모션 동영상을 제작해 국내외 플랫폼 및 비즈니스 미팅 등에서 배포 예정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신종철 원장은 “웹툰은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 스토리의 주요 원천으로 성장하면서 웹툰을 활용한 OSMU 성공 사례들이 늘고 있다.”면서 “이후로도 다양한 만화 원작 콘텐츠 발굴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2020 만화 원작 웹툰 공모전’과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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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일 부천시의회 의장과의 대화 "시의회가 협치와 소통의 장으로 효율적인 의회를 추구할 것이다."

12일 부천시의회 의장실에서 가진 기자단 인터뷰에서 강병일 부천시의회 의장은 부천시의회와 부천시 집행부의 긴장감있는 정책적 노력을 통하여 부천시민의 향상된 권익과 보다 공정한 삶을 유지하는데 주력할 것임을 피력하였다.   강병일 제8대 부천시의회 의장이 촘촘한 공직사회의 설정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기자의 요청으로 마스크를 벗은채 사진촬영한 모습입니다. - 사진기자 주)   12일 주말 오전 부천시의회 의장실에서 마스크로 무장한 채 기자를 맞이한 강병일 의장은 어둠의 긴 터널을 벗어난 듯 한결 여유로운 모습으로 반겼다.   “힘있는 의회의 위상을 되찾겠다.”   강병일 의장은 시 집행부에 비하여 크게 실추된 의회의 권위를 되찾는 한편 지방분권하에서 시의회의 독립성과 시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한층 강화하겠다고 강조하였다.   강 의장은 “의회사무국 팀장들이 시집행부 과장들에 사정을 한다"거나 "질의한 시의원에게 부천시 집행부 국장이 ‘공부 좀 하라’고 질타를 하는등 고압적으로 대응한다”며 대단히 유감적인 태도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우선적으로 시정하여야 할 적폐로 지적하였다.   강 의장은 또한 “시의회 전문위원들이 노력하고 연구해서 시의원들에게 정책과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 집행부의 편의성에 동조하기도 한다”며 낮아진 의회 사무국의 태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강 의장은 공무원들이 의회 업무와 입법활동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물론 예산상에서도 의회패싱을 시도하는등 바람직하지 못한 점과 의장단의 의회장악력의 부족 개별 시의원들의 전문성 결핍으로 이와같은 현상이 발생한다고 진단하며 우선 의회사무국의 독립성과 강화된 업무추진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밝였다.   강병일 의장은 의회사무국부터 정비하는 자정 노력을 펴는 동시에 “제출되는 조례 전반에 대한 법적, 행정적 검토를 정밀히 할 것" 임을 밝혔다.   지금까지의 제8대 부천시의회가 역동적인 의회의 역활을 하지 못했다는 강의장은 "원내의석의 절대다수당인 민주당 소속의원들의 정책적 검토의 부족과 소극적 대응은 지양하여야 할 일이고 소수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정책비판등 대안제시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부천시민을 위한 생산적 의회운영에 임하여야할 것"이라 강조하였다.                                      "시민을 바라보는 의회가 되겠다."   강병일 의장은 의장선거에서 보여준 격렬한 당내갈등과 의회내에 산재해있는 이해구조는 조만간 순리에 입각하여 정리될 것이라고 희망섞인 관측을하여 의회의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앙금을 털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의회내의 문제는 의회내에서 이해와 대화로 풀 수 있는 것이라며 이후 모든 의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협치를 이룰 것이라고 자신하였다.   오히려 시의회의 균열을 틈타 친분을 앞세워 의회와의 업무에 임하려는 일부 시집행부 공무원의 무사안일에 젖은 자세를 질타한 강의장은 시 집행부를 자당인 민주당의 행정부로 간주하거나 시집행부 공무원이 자신을 더불어민주당의 동료 당직자로 인식하는듯한 태도로 시와 시의회의 오해를 초래하는 시의원과 집행부가 자세를 전환하기를 주문하였다.   강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을 자당계열로 인식하는 시집행부가 자신들의 업무 편의성 추구를 줄이고 시민들의 권익보호와 공정성의 확보를 위한 노력의 경주를 촉구하기 위하여 의회와의 긴장감을 늦추게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였다.   여러차례에 걸쳐 야당의 분발과 적극적인 정책적 전진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한 강 의장은 필요한 경우 야당의 역할분담에 대하여 협치적차원에서의 총체적 지원의사를 분명하게 밝혀 야당의 협치적 지원을 크게 바랐다.    (사진은 기자의 요청으로 마스크를 벗은채 사진촬영한 모습입니다. - 사진기자 주)      "상임위원회가 효율적이고 생산적이 되도록 역동성을 증진하겠다."     의회 주변에서는 제8대 부천시의회 상임위원회의 원활한 활동에 의구심을 보이는 경향이 많은 편이다.   부천시의회의 4개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이 모두 초선의원으로 구성되어 위원장의 위원회 장악력에 대한 의구심은 물론 위원회의 정책적협의 및 감사에 대한 신뢰성에 의구심이 여전하고 전임 이동현 의원의 영향에 따라 구성된 각 상임위원의 위원조합이 크게 왜곡되어 있다는 의견도 많다.   일례로 재정문화위원회의 경우 여-야당의 당대표의원 모두와 3선의 관록으로 경험이 풍부한 전반기 시의회 의장 및 부의장이 모두 이 위원회 소속이며 의회운영위원장도 이 위원회 소속으로 업무역량의 적부 여부를 떠나서 과연 효율성이 있을것인지에 대하여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있다. 힘있는 시의회를 지향하는 강병일 의장의 첫번째 장벽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강병일 의장은 시의원들이 강화된 역량으로 시집행부와의 긴장된 관게를 유지함으로서 정책적대립도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한편 시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철저히 할 것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시의원들의 정책입법을 위한 노력을 강하게 독려할 것이라고 부연하였다.   (사진은 기자의 요청으로 마스크를 벗은채 사진촬영한 모습입니다. - 사진기자 주)    "시의회가 협치와 소통의 장으로 효율적인 의회를 추구할 것이다."   지난 7대부천시의회에서 합의된 다선 수, 연장자 순에 따른 당내추대에 의한 부천시의회 의장선출을 외면한 일부 지역구출신 국회의원의 이해타산에 따른 경선결정으로 줄서기 계파분쟁으로 치달은 더불어민주당의 시의장 경선은 지난 6월에 3명의 지역구 국회의원의 적극적인 묵인으로 설훈 국회의원(부천을)의 지역구 출신인 이동현 의원이 선출된바 있다.   그러나 이동현 의원이 불미스러운 형사문제로 16일만에 탈당, 부천시의회 의장직을 사퇴함에 따라 부천시의회는 56일간의 장기간에 걸친 초유의 의장 부재사태를 겪었다. 이 기간 중에도 여전히 당초에 합의된 순리적 원칙은 계속 무시되었다.   이 기간중 부천시의회내의 더불어민주당계파는 더욱 갈라져서 이번 시의회 의장선거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표 분산이 4개 이상의 갈래를 보였고 당내에서는 배신의 양상으로 대립되었고 이런 현상은 야당인 국민의힘까지 내분으로 치닫게하여 소수야당의 8명의 표까지 분산되게하는 극도의 분열상을 보였다.    강병일 의장은 지난기간 보인 이와같은 의회내의 갈등은 서로간의 대화와 소통으로 오래지 않아 치유될 것으로 낙관한바 있으며 본인 역시 적극적인 대화와 이해를 구함으로 의회내의 화목과 조화에 노력하겠음을 강조하였다.    "자신의 다주택소유 문제에 대한 이해를 구체적으로 구하다."   강의장은 지난 2012년부터 기회가 있을때 마다 불거져나온 자신의 다주택보유 문제는 부인이 운영하는 대형무용학원이 사용하는 5채의 상가건물과 장인부부등과 어머님등 대가족이 한 지역에서 모여사는 것에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강의장은 자신의 가족이 사는 아파트(강의장 명의), 부인이 운영하는 무용학원이 사용하는 상가오피스텔 5채, 장인부부께서 생활하시는 오피스텔, 자신의 성장한 딸의 소유인 오피스텔 1채, 어머니(작고)의 반지하 빌라 1채(오래전에 매물로 내놓은 상태), 노할머니로부터 유산상속으로 받은 오피스텔 1채(전세임대중), 자신의 상가 1채만 해도 11채인데 해명할 것이 무어 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자신이 이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해명에 대하여 역문제제기등 악순환적 논쟁을 우려한 것이라는 강 의장은 자신은 지금까지 여하한 이유에서든 투기적 이익적 목적을 갖고 부동산거래를 한 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지방정치인으로 한정된 수입과 과다한 지출로 가정의 경제문제에 관한 한 약자인 강 의장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분양상의 어려움을 겪는 건축사업자를 위해 부인에게 임대사업자등록까지 내게하면서 매입한 각 8, 9평인 도시형생활주택까지 문제가 되게하여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허탈해 했다. 강의장은 어쨌던 이 기회에 이들 다주택보유 문제에 대하여 매도를 더욱 서두르는 등을 포함하여 경기도보의 기재문제에 적극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친 강병일 의장은 부천시의회가 부천시민만을 보고 개혁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부천시민께서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주실것을 읍소하였다.    

부천시의회 최초의 여성의장 제 8대 김동희 의장을 만나다.

지난 8월 19일 부천시의회 의장실에서 김동희 의장과 본지 이재욱 논설위원의 인터뷰가 있었다. 김동희 의장의 배려로 편안한 분위기 속에 이어진 담소를 겸한 대담의 주요 내용을 발췌 정리했다.   김동희 시의장      안녕하십니까.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8대 부천시의회 최초의 여성의장으로 피선 되셨습니다. 그리고 의장으로 재임하신지 도 1년이 경과 됐습니다. 그 동안의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장으로 선임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의장이 되고 첫 의사봉을 잡으면 서 부천시의회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고 부천시민의 기대와 욕구에 부응하는 훌륭한 의 회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꾸준히 여야가 서로 협조하며 일하는 좋은 의 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데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동안 여야 가 약간의 이견은 있었지만 7대에 비해 나름 큰 충돌 없이 순조롭게 잘 지내 온 것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부천시의회 최초 여성 의장인 저를 비롯해 이번 8대 여성의원 비율은 50%에 가깝습니다. 여성의원들의 의회 활동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대변자 역할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동료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충실하게 지원할 것이며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의정에 반영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의회 의장으로 취임하셨을 때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에 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책의 입안 단계부터 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면밀히 분 석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어 의원 한 분 한 분이 주민과 소통하며 지역사회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8대 부천시 의회의 전반기에 시의회가 주민과의 소통을 통한 지방자 치발전이 바람직하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의장님의 평가는 어떠하신지, 또 미진한 것 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 8대 부천시 의회는 전체 28명의 의원 중 초선의원이 20명으로 70%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초선 의원들의 열정과 패기, 그리고 재선 이상 의원들의 연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어느 때보다 화합과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의회의 분위기 가 조성됐다는 평입니다. 김동희 시의장 또한 제8대 부천시의회는 정책발전연구회, 열린광장 포럼, 지방분권연구 포럼, 청년미래 포럼 등, 4개의 연구단체를 구성하여 외부인사 초빙강의, 공청회, 자료 출판 등 공부하는 의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의원 조례발의는 물론 정책개발을 통한 입법 활성화를 도모할 뿐더러 개인의 지식과 교양의 함양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천의 숲(생태)을 관찰하고 조사하는‘숲생태 보전연구회’라는 의원연구단체도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심도 있는 분야별 연구 활동과 시민과의 소통을 통한 정책개발에 매진하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시민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토론회나 의원연구단체 활동을 더 많이 활성화해야 할 것입니다.     부천시 시민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함에 있어서 부천시가 집행하 는 창작활동지원액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의견이 문학, 예술인들 사이에 팽배한 것으 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예산이 쪼들리는 시 집행부나 문화 경제국이 이와 같은 예산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의회가 의안발의 등을 통하여 창작발전기금을 조성 한다던가 또는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특례조례 등을 제정한다면 문화-예술인들의 커다란 호응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에 대한 가능성이 있을까요?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에서는 문화예술인 창작활동을 위해 다양한 지원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부천시문화예술발전기금(1억 3천만 원) 외에 문학관련 사업으로 일인일저 책 쓰기 등 15개 사업에 2억 2백만 원, 수주문학제 5천만 원, 신진작가 지원 사업에 2,820만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천문화재단에서 하는 사업 중에도 창작활동 지원 사업으로 청년예술가S 4,500만원, 우리동네 예술프로젝트 공모지원 사업에 1억 1천만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발전기금의 경우 50억 원을 기금으로 운용으로 1년에 1억 3천만 원의 이자를 받고 있습니다. 이율이 낮아 예산법무과에서는 기금은 폐지하고 일반회계 예산을 세울 것을 권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천시 재정자립도가 2019년 본예산 기준 34.4%에 그치고 있습니다. 향후, 재정 상태가 좋아지면 문화특별시 부천의 명성에 걸맞게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에 더 많은 예산을 지원토록 하겠습니다.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 의회의 조례제정 등에 있어 의원발의의 수가 매우 적거나 어떤 경우 발의된 조례의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에 대한 의장님의 견해 는 어떠신지요?더불어 의회구성이 여당의 점유율이 지나치게 높아서 시 집행부가 제출한 조례 등에 대한 심의가 섬세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영상문화단지라던가 문화예술센터 건립 등에 대한 의회의 심의가 졸속적으로 처리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의장님의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8대 부천시의회 의원들이 지난 1년간 발의한 조례는 26건으로 앞선 제7대 의회가 같은 기간 발의한 7건에 비하면 3배 이상 많습니다. 단순히 조례 제정 건수만을 비교하는 것을 떠나 그만큼 입법 활동이 활발했고 시민들의 요구 사항에 따른 필요한 조례들이 적절하게 제정됐다고 봅니다.    내용의 충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조례라는 것이 항상 독창적이고 획기적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모법에 의해 개정해야만 하는 조례도 있고 현 상황에 맞게 변경되어야 할 부분을 잘 짚어주고 정비해 나가는 조례도 필요합니다.   김동희 시의장 문화예술회관 건립, 영상문화단지 졸속처리 질문에 대한 문제의 핵심은 여대야소의 우려와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여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서로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견해에 귀 기울이는 경청이 먼저입니다. 여야가 대화를 통한 타협을 끌어내는 정치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야당 의원들과도 현안사항이 발생하면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회관 건립은 부지 선정에만 15년이 걸렸고 설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 속에 지난 6월에 첫 삽을 떴습니다. 오랜 시민들의 숙원 사업인 문화예술회관은 부천시만의 문화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리려 합니다. 클래식공연 외에도 365일 보고 즐길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문화도시 부천의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상문화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부천의 마지막 남은 노른자 땅으로 문화 및 숙박시설을 모두 갖출 수 있도록 통합 개발하여 관광과 문화산업을 연결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도시교통위원회 활동 때에도 아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이재욱 논설위원과 김동희 시의장  의회 의장으로서의 바람직한 역할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앞으로 남은 기 간중에 의장님께서 특히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시는 부문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남은 임기 동안에도 안정적인 의회운영과 더불어 의회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신뢰받는 의회, 일하는 의회가 되도록 의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시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의회를 이끌어 나가고자 합니다. 집행부와 시의회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정작 시민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노력은 효과도 없고 지지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소통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것은 엄정하게 가려서 진정 무엇이 시민을 위한 것인지 꼼꼼히 살피는 의정활동을 펼쳐 가겠습니다.   또한, 현재 부천시에는 대장동 3기 신도시, 영상단지 조성, 역곡 북부역 등 크고 작은 대규모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업들 대부분이 지금부터 향후 5년이 부천의 백년대계를 좌우할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기간 동안 이런 대규모 사업들로 인해 크고 작은 갈등과 난제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집행부와 시의회 간 소통을 통해 당면 과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민들에게 혹은 시 집행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 떤 것들이 있을까요?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배려로 지난 1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부천시의회 28명의 의원들은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를 되돌아보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의정활동에 전념할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또 한 번 더 다짐하고자 합니다.   김동희 시의장과 이재욱 논설위원 질책도 좋고 따뜻한 격려의 한 말씀도 좋습니다.  진정한 민의의 대변 기관으로 부천시 지방자치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장시간 할애해 주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의장님을 비롯한 모든 의회 의원님들의 선전과 건강을 기원 드립니다.     인터뷰 진행: 이재욱 논설위원  정리 : 부천시티저널 편집부                                   

세상은 꿈꾸는자의 것이다 -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인터뷰 -2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한국의 영화역사에 있어서 기획제작을 최초로 도입한 선구적 영화제작자로 "엽기적인 그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등 수많은 흥행작을 만들어 온 영화제작자이며 한국형 블록버스터 제작을 시도한 선각자로 볼 수 있다.  비록 수차례의 대규모의 영화제작을 위한 노력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 대한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야하고 그가 이룩한 토대위에서 성장한 한국영화의 제작관행이 오늘날 외국의 영화와 경쟁하고 최근의 동남아시장의 확대에 기틀이 된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이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 그와의 인터뷰 2회를 연재한다.      우리나라에도 영화제가 많지요? 170여개가 넘는다고 하던데요.   세계에는 몇천개의 영화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판타스틱을 주제로하는 영화제로 브뤼셀(Brussels) , 스페인의 시체스(Sitges)가 유명합니다. 물론 우리 부천도 판타스틱영화계에서는 유명하지요. 우리도 별써 23회를 기록하는 오랜 역사를 갖게 되었어요,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아시겠지만 “칸느 영화제“ 기간 중에는 물가도 뛰고 호텔비도 50%이상 뛰어요. 도시 경제에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지요. 로버트레드포드가 만든 선댄스 영화제에는 젊은 애들이 많습니다.스텝진이던, 자원봉사자 그룹이던 활기가 넘치고 이 인원들이 또 이어져서 새로운 맨 파워를 갖게합니다. 우리 부천영화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키워야 되고. 크게 생각을 해야지요. 거시적으로 봐야되요. 부천은 대도시인서울과 인천 사이에 끼어있고 도시반경도 적습니다. 머무를 수 있는 도시가 되지 못하는 약점이 있어요. 그래도 우리 부천만이 할 수 있는 유인책이 있어야 합니다.   일본 요리사 중에 장사 안되는 곳에서만 개업을 하는 요리사가 있대요.그 사람은 그 곳에서 장사를 키운다고 해요. 물론 그 가게를 파는지 어떤지는 별개로 하고요. 나도 영화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면 관객이 온다“는 믿음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비젼이 있는 곳에 꿈이 이루어 지듯이 우리 부천이 비젼을 갖고 충실한 계획을 수행하면 미래가 있다고 봐요.   그렇다면, 위원장님께서 5년을 맞고 운영한다면. 그러면 5년뒤의 부천 영화제의 그림을 그릴수 있을까요?  이번 해보고, 그리고 난 후에 그때 얘기합시다. 이번이 처음이니까.  오늘,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나면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요?          후원은 어떤가요? 경제도 안 좋다고 그러는데요.   후원담당자에게 물어봐요 “책을 만드는데, 그 책을 함께 만들고 싶게 작업하는지?” “ 누군가 그 책 만드는 걸 보면서 따라서 해보고 싶게하는지?” “참여하고 싶게 해야지요, 같은 그룹이 되고 싶게 해야지요.” 난 습관적으로 하는 것 좋아하지 않아요 자랑거리를 넣어야지요, 그런걸 찾아야지요, 그래야 후원도 있고 도움도 있겠지요. 물론 우리 팀원들이 그렇게는 안했지요, 그렇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잠재력을 끌어내야합니다. 그 잠제력을 끌어냄으로서 미래를 볼 수 있는거지요.   부천사람이 부천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느끼도록..영화제가 그걸 끌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갖어야 할 목표가 있고 또 그런 목표로 일을 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중에 후원도 함께 하겠지요. 지금까지는 대체로 잘 진행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부천시민이 자기 돈을 내서 영화제에 참가하는 돈이 외지사람들의 돈보다 많을 것으로 보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울이나 인천 등 수도권의 사람들도 오겠지만 아직까지는 부천시민이 더 많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데이터를 축적해 봐야겠지만 예년의 경우 전체 좌석점유율이 6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부천시민의 참여가 우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영화제가 갖는 의미가 우리만의 축제가 아니고 이름에서도 보듯이 국제적인 행사라는 측면에서 볼때 부천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에 더해서 수도권의 시민들이 부천을 더 많이 찾도록 하는 것은 부천의 경제, 사회등에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위원장님께서 영화제 운영하는동안 자신의 영화제작과 충돌할 수도 있고 선택하여야 할 시간도 있을수 있을텐데. .  처음에 영화제 제의 받았을때 못하겠다고 했어요.."영화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랬더니 프로그래머들도 잘하고 그러니까 옆에서 두고 보고 조언을 하면서..뭐 그래라 그래서 왔는데..와서 보니까 일이 밑도 끝도 없는 거예요. 뭐 하면 할수록 일은 더 많아지고. 지금은 매일 출근해요, 그래도 여전히 바쁘고. 속은거지요. (웃음) 지금은 영화하느라고 쌓아두었던 여러 곳에서 , 특히 미국의 친구들,프로듀서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제 영화고 남의 영화고 필요한 모든것을 갖다씁니다.   위원장님께서는 우리나라 기획영화의 선구자이면서 흥행기록도 갖고 있으시면서 흥망이 극적이셨는데, 영화에 대한 꿈과 영화제의 운영이 상충하면 어떤 결론을 내게 될까요?  그만두어야지요, 영화제와 영화제작은 전혀 다른분야예요. 그 둘을 병행하는것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에게 이야기 했어요, 내가 오래 못할수도 있다..그런 충돌지점이 오면 결정해야지요.    신성복 기자(왼쪽) 신철 위원장(오른쪽)  사실 요즈음의 영화시장이 많이 변했다고들 하는데요, 위원장님이 보는 시장은 어떠신지요?   시장이 많이 변했지요, 외국의 직배 모델이 일반화 되면서 지금 영화시장은 넷풀릭스, 유튜브같은 배급사, 유통업체에 의한 시장이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크리에이터들의 고민이 있게되는 겁니다. 시장의 흐름이 그렇게 되니까 대기업에 의한 독점 시장화가 지속되니까 크리에이터들이 대기업에 속하게 되는겁니다.   실질적으로 프로덕션은 불확정적이지요. 잘 될수도 있지만, 프로덕션이 평생 한두개가 성공할지 말지 그런데 지속적으로 수입이 될 수 있는 수입구조를 갖으려고 다들 노력하지만 만족한 결과를 얻는데 부족한점이 많아요, 시장도 크지 않지요. 그러다 보니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이들이 유통업자로 변하고 결국 크리에이터들도 대기업에 더욱 예속해 가지요. 시장이 단순화되는건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안되요.   우리나라도 CJ 같은 대기업에 의한 시장이 되고, 이에 대한 공과는 따져봐야겠지만, 어쨋던 이런 기업에 의해 시장이 커졌어요 파이도 커졌는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영화시장이 작아서요. 앞으로 이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될겁니다. 배급업자 입장에서도 크리에이티브 입장에서도요.   영화제가 몇달 안남았는데,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잘 진행되요, 영화제라는 것이 마지막까지 변수도 많고 협상에 따르는 일정등도 많고 늘 살얼음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점점 더 할 일이 늘어난다는 의미지요. 많은 협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공적인 영화제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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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회(夜會)- 4회

김찬숙 소설가 어쨌든 황노인은 우심이 가출했던 그해 겨울, 인근마을 사람들로부터 우심이 죽었으니 시신을 거두어 가라는 전갈을 받았었다. 안골에서 불과 30리 안팎의 그리 머잖은 마을의 한 외딴 오두막에서 우심은 여섯 달 동안이나 해산을 기다렸고, 난산 끝에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 여섯 달 동안 우심의 뒷바라지를 맡아 온 노파가 우심이 난산 끝에 죽자 시신을 앞마당 눈 속에 가매장한 뒤 수소문하여 황노인에게 전갈을 보낸 것이었다. 황노인은 이미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신을 큰 바위 구릉에 묻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일조차도 마을 사람들은 황씨를 안심시키기 위한 우심의 고도의 계략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는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우심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구만! 그게 무엇이든 그는 두 번째 굿판에서의 우심의 불타던 눈빛과 애원하며 흘리던 눈물만큼은 진정한 것이었다고 끊임없이 되새김하며 살아왔다. 우심!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뛰고 목이 마르고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 깊은 갈증과 알 수 없는 허기를 느끼게 했던 그 이름. 그녀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듯했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 한 끝으로부터 집채만 한 커다란 저녁놀이 부서지고 있었다. 들판의 다른 한쪽 끝으로부터는 또한 누군가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온 천지에는 굿거리 소리만이 자욱하게 퍼져나가고, 아마도 그 굿거리 소리는 지금 제자리걸음을 하듯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저 춤추는 형체가 거기 있는 한 언제까지나 계속될 듯싶었다. 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며 오고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그나저나 저 춤꾼이 어서 들판 밖으로 사라져버리든지, 아니면 이쪽으로 어서 다가와서 집채만 한 저 햇덩어리를 좀 막아주었으면 좋으련만. 황노인은 저녁 햇빛에 눈이 부시어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굿거리 소리가 점점, 점점 높아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뚝 그치면서 별안간 귀가 멍멍한 고요 속에 그 춤꾼의 검은 형체가 해를 등지고 물끄러미 황노인을 굽어보고 서있는 것이었다. 그 춤꾼은 어서 일어나세요, 어서 일어나라구요, 하고 마치 타이르는 듯한 말을 남기고는 햇덩어리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버렸다. 그렇다 우심이로구나! 그 춤꾼의 형체가 어쩌면 죽은 아내 우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황노인은 온 힘을 다해 일어나려고 했지만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황노인에게는 하루 중 하산하는 길이 가장 쓸쓸했다. 자기도 언젠가는 백사를 잡으리라, 그것은 땅꾼으로서는 명예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이긴 했으나 그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일이기도 하니까. 황노인이 하산 길에 느껴야 하는 쓸쓸함은 아마 백사를 찾아내지 못한 서운함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언제나처럼 황노인은 큰 바위 구릉이 내려다보이는 등성이에 뱀 자루를 내려놓은 채 쉬고 있으면, 조금 전의 그 이상한 춤꾼을 통째로 삼킨 바로 그 햇덩어리가 소래산봉에 아슬아슬 걸려 있는가 싶더니 이내 천천히 굴러 떨어지며 온 천지는 바야흐로 황홀한 황혼녘이 되어 있었다. 그 무렵 황노인은 마흔을 한참 지났건만 장가들 꿈조차 꾸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늘 한탄해 오던 터였고, 특히 하산 길에는 그 같은 감정에 쌓여 매우 울적해 하곤 했었다. 백사를 잡으려면 먼저 사람-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그래야 백사 잡을 힘이 생긴다고 산에서 만났던 노인은 말하지 않던가 말이다. 갑자기 소래봉 뒤에서 뿜는 황홀한 황혼의 빛줄기 한 가닥이 저 아래 큰 바위 구릉에 내리꽂히는가 싶더니, 거기 언제부터 있었던지 열여섯 앳된 우심이 어깨를 들먹거리며 울고 있고 서른 살의 황노인이 그때처럼 다리를 후들거리며 다가가 어깨를 잡자 우심이 재가 되어 폭삭 꺼져 버리는 게 아닌가.    

펄 벅 부천에 오다 - 제4회

  제4회   10 유일한은 9살 때 미국으로 갔습니다. 유일한의 아버지는 이승만 박용만 등의 개화파 지식인들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서양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강연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유일한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서양의 문물을 배워 나라에 공헌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남인 유일한을 선교사를 통해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미국으로 떠나는 어린 아들 유일한에게 아버지는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유일한은 낯선 곳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고 자꾸만 부모님과 고향 생각이 나서 힘들었지만 곧 그곳의 생활에 적응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었지만 유일한은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당부를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유일한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더욱 노력하였습니다. 부지런한 유일한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어느덧 청년이 된 유일한은 대학에 다니면서 중국 사람을 상대로 사업을 하였습니다. 유일한이 있는 곳에는 유일한과 마찬가지로 고국을 떠나와 말 설고 낯 설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중국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일한은 무슨 사업을 할까 궁리하다 중국 사람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비단, 찻잔, 부채 등 중국 물건을 팔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물건이 잘 팔릴까 걱정하였지만 오랫동안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는 중국 사람들에게 중국 물건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유일한은 중국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습니다. 첫 사업에서 성공한 유일한은 이번에는 중국 사람들에게 숙주나물을 팔기로 하였습니다. 숙주나물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두에 꼭 들어가므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유일한이 콩나물을 팔았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유일한은 콩나물이 아니라 숙주나물을 통조림에 넣어 팔아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유일한의 사업은 번창했지만 그럴수록 유일한은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일한이 사업을 한 것도 일본에게 강제 합병된 조국의 독립을 위한 방편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일한은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유일한은 미국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귀국하였습니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유일한은 유한양행을 세웠습니다. 유한양행의 상표 버드나무는 서재필 박사가 유일한에게 선물한 목판 그림속의 버드나무였습니다. 유일한은 조회 때 마다 직원들에게 강조하였습니다. 유한양행은 결코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회를 위해서 있는 것이며 이 길을 통하여 경제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일제의 방해에도 1924년 시작한 유일한의 사업은 크게 번창했습니다. 1936년 유일한은 부천 심곡본동에 유한양행의 소사공장을 세웠습니다. 소사공장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과 목조 건물 세 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곳에는 직원들을 위한 사택과 기숙사 운동장 수영장 등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편히 쉴 수 있도록 좋은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11 아빠는 몹시 궁금한 게 있는지 선생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질문을 했습니다. “그 유명한 유일한 선생님의 유한양행이 부천에, 그것도 깊은구지 심곡본동에 있었다니 정말 놀랍네요.” “놀랍죠. 사실 유한양행이 부천 심곡본동 깊은구지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아마 부천에 사시는 분들도 잘 모를 걸요.” “그런데 선생님 유일한 선생님이 왜 부천 심곡본동에 유한양행 공장을 세웠을까요?” “저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대강 짐작할 수는 있어요.” “왜죠?” “공장은 대부분 교통이 좋은 곳에 짓죠. 그리고 공장을 돌리려면 전기가 있어야겠죠.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서 교통이 좋고 전기가 들어오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천 소사역에는 서울 인천을 왕래하는 기차가 다니고, 소사역 주변의 소사삼거리에는 전기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인천의 항구도 가깝고요. 깊은구지가 소사역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공장이 들어서기에 안성맞춤인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죠.” “선생님 설명을 들으니 정말 이곳이 좋은 입지조건을 갖고 있었네요.” “이제는 다 이전하고 부천에 없지만 좋은 입지조건 덕분에 2000년 전까지만 해도 부천에 많은 공장들이 있었죠. 사실 부천은 산업도시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파트 도시라는 오명을 덮어쓰고 있으니 참 안타까워요.” 아빠와 선생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아가 끼어들었습니다. “펄벅 할머니는 유일한 할아버지의 소사공장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빠도 이제 생각이 난 듯 정아의 말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선생님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 사이에 무슨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선생님이 아빠와 정아를 바라보면서 말을 했습니다. “당연히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 사이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죠.” 아빠가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두 분의 나이 차이가 겨우 두 살인데 혹 연인 사이는 아니었나요?” 아빠의 말에 깜짝 놀란 선생님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습니다. “무슨 그런 엉뚱한 말씀을 하세요. 연인이라니.” “그럼 두 분이 어떻게 알게 되었죠?” “시대 상황이 두 분을 만나게 만들었죠.” “시대 상황이라니 무슨 뜻이죠?” “일본이 세계 제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국은 대한민국과 중국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죠. 당시에는 미국에서 대한민국과 중국에 대한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죠. 한마디로 미국은 미국에 좋은 정보를 제공해줄 만한 특별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그 특별한 사람으로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가 뽑힌 거고. 펄벅 할머니는 중국에서 오래 살았고 중국어에 능통하니 중국 담당 고문으로, 유일한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대한민국의 사정에 밝으니 대한민국 담당 고문으로 OSS의 요원이 되셨죠. 아! OSS는 미국 CIA의 전신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국정원이 맞겠네요.” “그러니까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가 정보원이 되었네요.” “참 내가 깜빡했는데 유일한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OSS의 요원이 되셨죠. 대한민국으로의 침투를 대비해서 힘든 훈련을 모두 받으셨지요. 그때 유일한 할아버지의 나이가 50대였습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OSS에서의 인연이 유한양행의 소사공장으로까지 이어졌군요.” “아버님의 말씀이 맞아요.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는 두 분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죠. 우선 두 분은 서로 마음이 통했으니까요. 펄벅 할머니는 자신의 고국과도 같은 중국이 일본의 침략을 당하고 있죠. 유일한 할아버지는 조국을 일본에 빼앗겼지. 그러니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죠.” 12 대한민국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펄벅은 대한민국에 있는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의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유일한 할아버지도 교육사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펄벅 할머니의 뜻을 알게 된 유일한 할아버지는 부천 심곡동의 유한양행 소사공장을 펄벅재단에 기증하기로 하였습니다. 유일한 할아버지로부터 유한양행 소사공장 건물을 기증받은 펄벅재단은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시작하였고 많은 수의 혼혈 아이들이 펄벅재단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펄벅 할머니가 우리 부천 심곡본동 깊은구지에서 소사희망원을 하게 된 게 우연이 아니었군요?” “우연이 아니죠. 펄벅 할머니의 마음과 유일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으로 이어져서 소사희망원이 탄생한 것이니.”   13 “아빠 펄벅 할머니 같은 훌륭한 분이 우리 동네에서 소사희망원을 했다는 것을 알아서 너무 기뻐요.” “아빠는 펄벅 할머니가 우리 동네에서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하신 것도 좋지만 유일한 할아버지가 펄벅 할머니의 소사희망원에 도움을 주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정아는 아빠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도 크면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 같이 불우한 이웃을 돕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그럼 아빠도 분명히 좋아하실 거야.’ 정아는 빨리 집에 가서 엄마와 오빠에게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정아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아빠의 손을 잡고 끌었습니다. 아빠는 정아가 왜 서두르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끝---               이재학 마라토너/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협회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부천 소새울에 산다(1,2,3,4,5호)      

한계령을 위한 연가 - 9회

12월 19일 이 나라 대통령선거가 있던 날, 드디어 상현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낯선 번호였다. “정은이니?” 그 한마디에도 그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래 오빠. 나야, 정은이.” 금방 내 목이 메고. “보고 싶다. 많이, 아주 많이.” “나도야, 오빠. 많이, 아주 많이.” 사랑을 느끼는 데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어감만으로도, 숨결만 들어도 족했다. 일본 출장 중이란다. 이제야 메일을 보고 전화한다며 감격해했다. 바로 돌아올 거란다. 내가 너무 긴장하고 있었던가. 전화를 끊자 일시에 피로감이 밀려왔다. 나는 이번에도 보수의 편을 들지 않았다. 출신지에 대한 심정적인 끌림이 아니었다. 내 생애 최초로 선거에서 의지를 드러냈다고 봐야 했다. 출구조사는 보수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고 개표 결과는 단 한 번도 진보가 앞서는 걸 허락하지 않다가 끝내 보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세상인심은 기득의 보호막을 슬그머니 감춘 채 허울 좋은 애국이라 포장하여 변화가 위험을 동반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진보에게 패배를 안겼다. 한 시민의 말이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망각의 유령에 싸여 헤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친일을 망각했고 독재를 망각했다. 우리의 현대사는 망각의 역사라는. 나는 내 사랑을 망각하지 않았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리라. 설령 진실을 안다 한들 세상의 눈은 이런 나를 위험하다고 하겠지. 꿈에서 깨라고, 어리석다고,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사랑타령이고 십대의 유치한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세상을 헛살았다고 매도하겠지. 그래 헛살았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맘껏 비웃을 테면 비웃으라지. 이제부터라도 나는 나를 위해 살 것이니. 텔레비전에서 하루 종일 보수의 승리를 떠들어대던 20일이 지루하게 지나가고 마야달력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21일, 드디어 우린 만났다. 어제까지 맑았던 날씨가 우리의 연가를 위함인지 오전부터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요, 오빠. 우리는 그냥 우리가 헤어졌던 시간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모든 인사를 생략한 채 아파트 입구까지 찾아온 그의 차속으로 빨려 들어가자마자 내가 한 말이다. 나는 완전무장을 했다. 털모자와 장갑과 두꺼운 파커, 지팡이까지. “그대로구나.” “오빠도 그대로야.” 우린 눈도 껌벅거리지 않고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옛날일 수 없는 모습을 애써 그대로라고, 달라진 게 없다고 이심전심으로 말했다. 싸라기눈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했다. “가자.” 그가 입을 달싹였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휴대전화의 전원도 껐다. 내 행동을 설명하기가 싫었고 어떤 간섭도 받고 싶지 않았다. 주방의 식탁엔 메모를 남겼다. 나를 되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는. 진부하나 사실이잖은가. 내일은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지만 두렵지도 않았다. 그는 두꺼운 파커는 뒷자리에 두고 체크무늬 남방에 카키색 조끼를 걸치고 골이 진 바지를 입은 채 운전했다. 무엇이 그리 힘들었을까, 얼굴은 팽팽했으나 머리가 반백을 넘어 올백에 가까웠다. 그것은 눈가의 잔주름과 함께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계속 흘렀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흰머리가 신기하게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 북한강을 따라 경춘가도를 지나는 내내 눈이 내렸다. 강은 눈을 온몸으로 받아 속으로 흔적도 없이 빨아들였다. 내가 그랬었다. 그의 사랑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온몸과 온정신으로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었었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강이고 또한 눈이었다. “같이 살아야겠어요.” 오랜 침묵을 깨고 내가 한 말이다. 침묵도 우리의 오랜 공백의 산물이었다. 예전엔 침묵이 어색하다는 걸 느낄 새가 없었다. 나는 지금 그에게 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던, 동거하자는 말을 하기 위해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십 수년을 거슬러 올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수에 반발하여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결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그러기 위해선 아이를 빨리 만들어야 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리. 격정을 참기 힘들었는지 그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나야 좋지만 괜찮겠어?”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오빠만 좋다면 나야 상관없어요.” “정은이가 곤란해지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다 감수할래요.” “이런 날이 오게 되리라는 걸 간절히 희망했지만 현실로 다가오다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조차. 내 인생은 결정적인 순간에 내 바람과는 다르게 꼭 틀어지기 일쑤였어. 영화에서 본 것이지만 그 격정이 지금의 내 심정과 너무 생생하게 닮았구나.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나의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온다고 믿어. 몇 번을 다시 산다 해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정은이를 사랑해. 깊이, 완벽하게, 그리고 영원히.” 아, 불륜의 전설이 된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로버트 킨케이드의 명대사를 그가 읊조리고 있었다. 첫눈에 빠져든 두 사람. 이미 중년에 이른 그들은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같이 나누지는 못했어도 앞으로 살아갈 시간만은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세상사의 잣대로 엄연한 불륜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그 무엇도 갈라놓을 수 없을 것같이 여겨지던 격정적인 그 사랑은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함께 떠나리라 철썩 같이 믿었기에, 프란체스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쏟아지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에 비를 흠뻑 맞은 채 기다리고 기다리다 끝내 돌아서야만 하는 로버트의 처절하고도 망연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죄책감이 없을 리는 없다. 아내의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 남편도 희생자일 수 있으니까. 나의 진실을 안다면 남편은 그 얼마나 억울할까. 속아 살아온 내게 그 얼마나 치가 떨릴까. 아이들이 받아들일 혼란도 부산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사기꾼이고 파렴치한이다. 이런 게 우주의 애매함일까. 빛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이 있기 마련인. 로버트의 사랑이 빛이라면 로버트의 아내(있었던가, 없었던가?)가 느껴야 할 절망은 어둠이다. 프란체스카의 사랑이 진실이라면 그녀의 남편이 갖고 있는 사랑은? 나도 나의 확실한 감정을 프란체스카의 대사로 실토하고 있었다. “숨 쉬는 간격이 길다고 느껴질 만큼 오빠가 보고 싶었어요.” 이러한 프란체스카에 비해 그녀의 남편이 느껴야할 배신감은?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보상 받을까? 정답이 없는 이 애매함. 이 지독한 이기심. 아, 생각지 말자. 나는 나만이 알 수 있는 도리질을 해댔다. 이윽고 아련했던 숨결이 느껴지고 그의 입술이 내 얼굴 전체를 누볐다. 감동이었다.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 나도 숱하게 입술도장을 찍고 또 찍었다. 지나가는 차의 경적이 짓궂게 울렸다. 그제야 우리는 떨어졌다. 눈은 필사적으로 앞 유리에 몰아쳤다. 윈도브러시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차량들의 속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춘천을 지나 추곡휴게소에서 우리는 바퀴에 체인을 감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보금자리는 어디로 하면 좋을까?” 내 어깨를 안고서 차로 돌아와 그가 한 말이다. 아까와는 달리 많은 여유가 느껴졌다. 우린 이십육 년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는 들어보지 못했던. 같이 살려면 당연히 그게 순서겠지. “오빠가 좋을 대로,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면 아무 데도 상관없어요.” “정말?” “그럼요.” 차가 다시 출발했다. 우리의 의지는 확고했다. “우리의 내일을 방해하는 에고의 세력들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꺾이지 말아요.” “나는 정은이가 아니고는 내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이 말을 기다렸다. 도덕과 윤리와 사람의 도리를 앞세운 표피만 그럴 듯한 엄숙주의자들이 우리 길을 막아설지라도 멈추지 않을 거라는. “내 안의 윤리와 패배주의에도 초심을 잃지 말아요.” “제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한계령은 우리의 신혼여행지예요.” 여기는 해발 900M입니다. 인제를 지나 44번 국도를 따라가자 오르막 끝에 드디어 팻말이 나타났다. 한계령. 도착했을 때는 다섯시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날이 어둑해지고 눈발은 가늘어졌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거세게 눈을 흩날리게 해 얼굴을 차갑게 때렸다. 눈은 제법 쌓였으나 그렇다고 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상황이어야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바드라재라 기록돼 있고 국도가 생기기 전에는 오색령이라 불리던 고개. 그 한계령휴게소 광장에서 우리는 문정희의 시가 주는 우리만의 간절함을 한동안 음미했다. 저녁어스름에 드러난 설악의 기암괴석들, 멋들어진 나무들, 눈이 만들어낸 장관, 거기에 딱 어울리게 자리 잡은 휴게소 건물은 신비하고도 황홀한 풍경이었다. 우린 어느새 이심전심으로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다음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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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현의 명상노트/행복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사소한 일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소홀하게 취급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한 만큼 주변인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나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시간이 낭비되고 쓸데없는데 에너지가 낭비될 수 있는 문제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경중을 헤아려 선별적으로 소신껏 처리할 수 있다. 공적인 일은 경중에 따라 선별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환경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충실해야 양질의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언행이 일치되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 잘잘못이 언행대로 결부된다.    단적인 것을 예로 든다면 휴지를 떨어트리고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고 줍지 않으면 환경이 지저분하고 불결한 환경이 형성된다. 이런 유형의 일들이 생활 중에 아무렇지 않게 하면 청결한 환경을 유지할 수 없다. 얼마 전 교복이 다르고 못 보던 학생이 학교에 와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어보았다.  “버스 타고 왔어요.”라고 하는 데 아무 말도 덧붙일 수 없었다. 우리 학교 학생 중에도 늦게 오는 학생에게 늦게 온 이유를 물으면 ‘늦게 일어났어요.’ 라는 대답으로 돌아온다. 부모나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고 교육은 안 했을 것이다. 이런 아이 걱정을 나눌 때 대뜸 요즈음 아이들 다 그런데  “골치 아프게 뭘 생각하느냐?” 라고 요즈음 아이들이 다 그렇고 그렇다며 일축해버린다. 이런 학생에게 관심을 두고 진정성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하는 이야기가 부정적으로 들리는지 잘못하는 아이보다 잘하는 아이가 더 많다며 무안을 당하기 일쑤다. 대안이 아닌 이런 이야기를 막연하게 나누면서 심한 모욕감마저 든다. 이렇게 아이가 잘못을 모르고 태연하게 말을 하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마냥 잘못한 아이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아이에게 잘못을 알려줘서 돌아갈 때는 선생님“죄송합니다.”,  “늦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늘 부실한 교육을 운운하면서 개선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잘잘못을 모르고, 어른은 아이를 칭찬만 하고 관용으로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아이가 잘못을 모르는데 바뀌지 않는다. 아이의 거울은 어른이다. 어른이 역할을 잘해야 본보기가 된다. 어른이 본보기가 되지 못하면서 아이의 잘못을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이는 어른이 하는 대로 따라 한다. 이를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모나 선생님이 잘 가르치려고 해도 힘든데 사회 환경이 거울이 되지 않으면 교육은 백년하청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고충에서 벗어나야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칠 수 있다.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잘살고 있다.”  “ 잘못하는 학생보다 착한 학생이 더 많다.”  “요즈음 아이들 똑똑하다.” 며 교육의 본질을 흐리고 교육해야 할 것을 희석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불가능한 가능성을 막연하게 기대하지 말자.  잘못된 것이 있으면 못 본 척하지 말자. 사소한 것을 그냥 보지 말고 짚고 가자.  미국 작가이자 언론인인 ‘스테트슨 케네디’는 1940년대에 ‘지푸라기 힘 Frown Power’라는 운동을 전개했다. 어디서든 인종차별적 행동이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 얼굴을 찌푸림으로써 불쾌함을 표현하자는 것이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공공연한 인종차별이 그나마 줄어든 데는 지푸라기 힘 운동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한다.  잘못된 것을 보고 묵인, 두둔, 무관심한 것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깨진 유리창 법칙’처럼 방치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소한 문제라고 간단하게 보지 말고 분명히 아이가 알게 하여 아이의 잘못이 왜곡되지 않고 바르게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모르면서 바르게 생각할 수는 없다.

과잉보호

 칭찬이 좋다고 하여 분별없이 하기보다는 내용을 고려하여 선별적으로 하여야 한다. 듣기 좋은 말만 들어본 사람은 거북한 말을 소화해 내기 어렵다. 누구나 할 말만 하면서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꼭 맞는 말보다 듣기 싫고, 불필요한 말을 더 많이 한다. 이를 잘 알면서도 매번 언어적 갈등을 느끼면서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고민을 한다. 원인은 상대에게 있다고 해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당사자는 자기 자신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없이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무모한 칭찬은 상대를 착각하게 만든다. 부질없는 태도를 잘한 행동으로 칭찬했을 때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 행동을 허용하게 된다. 운동경기에서는 결과에 따라 칭찬을 하는 데 무리가 없다. 일상생활에서는 막연한 내용이어서 칭찬으로 부추길 수도 있고 오류를 범할 수 있어 마냥 칭찬이 능사는 아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과잉보호로 이어질 수 있고 결코 성장의 장애 요인이 되지 않을까. 성장과정에서 과잉보호나 무모한 칭찬은 아이들을 병약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고난과 시련은 훌륭한 청소년을 만드는 최고의 학교다. 청소년은 자연스럽게 힘든 것을 다양하게 체험하고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자라면서 실패의 경험이 없다면 성장한 후에 무기력한 사람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적절한 좌절은 아이들의 바른 성장에 필수 요건이지만, 분별없는 무모한 칭찬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일정한 숙제를 주고 통과해야 먹이를 주고, 하나는 편안히 먹게 해주었다. 행복하게 편안히 먹이를 받아먹던 쥐들은 무기력과 비만으로 죽었고, 숙제를 풀던 쥐는 체중도 늘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죽었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순탄하고 편안한 삶을 바라지만 잘 성장하고 강해지기를 바란다면 적당한 고통과 좌절을 겪으면서 성장해야 한다. 부모와 선생님의 과잉보호는 성장이 아니라 독약이다.”  조류가 알을 낳아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며 키워 떠나보내고, 하이에나, 물소, 호랑이 등과 같은 동물이 새끼를 낳아 어미 떠날 때까지 제 새끼 키우는 것을 보면서 왜 사람은 저렇게 할 수 없을까 하고 나 스스로 자책을 하고 반성을 하였다. 운동을 하다 보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써 붙인 곳이 종종 보인다. 여객선에서 여행객이 주는 새우깡을 받아먹기만 하는 갈매기는 야성을 잃게 되면 손님들이 떠나고 난 후에 어떻게 먹이를 구해 먹을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이를 반면교사로 할 수 있으리라.  

친절해야 손님이 끈다

 한비자(韓非子)에 ‘맹구지환(猛狗之患)이라는 고사가 나온다. 사나운 개가 있는 가게에는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말이 아닐까. 친절해야 마음이 끌리고 공감대가 형성된다. 상대가 예가 없고 무모한 행동을 보이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어느 사람이나 배려하고 존중할 줄 모르며 사악하고 양심 없는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은연중에 잘못된 생활방식을 고집하고 주장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앙금이 쌓인다.  구맹주산(狗猛酒酸)이란 말이 있다.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라는 뜻이다. 까닭은 이렇다. 춘추시대 송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었다. 술 맛이 일품이었고 양을 속이지도 않았으며 늘 밝은 얼굴로 친절했다. 그런데도 영 장사가 되지 않았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던 그는 마을 노인에게 지혜를 구했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 집 개가 너무 사납기 때문이라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에게 노인이 설명했다. “사나운 개가 손님들에게 짖어대고 술심부름 하는 아이들을 물어 달아나게 하는데 누가 올 수 있겠소. 그러니 술이 팔리지 않고 쉬어버릴 수밖에.” 한비자 외저설(外儲說) 편에 나오는 얘기다.    음식점에서 주인이 손님에게 친절하게 해도 점원이 서비스가 부족하고 불친절하게 보여서는 손님이 많아질 수 없으며 오던 손님도 떨어진다. 음식점에 가서 손님에게 하는 것을 보면 누가 주인이고 점원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주인은 성심성의껏 손님을 모시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고 점원은 일이 힘들다거나 짜증을 부리고,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면들이 속속 드러난다. 이런 점원을 두고는 음식장사가 잘 될 수 없다. 점원을 빨리 내 보내고 좋은 점원을 고용해야 음식장사를 잘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주전자를 들고 어른들의 술심부름 할 때가 있었는데 개가 으르렁 거리고 사납게 짖어대면 무서워서 주점에 얼씬거리기도 싫었다. 옛날 개들은 무섭게 달려들며 잘 짖었다.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혐오감이 들면 그만큼 기피하게 된다. 왜 저렇게 사나운 개를 키울까. 나는 어른들이 술심부름을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했지만 개만 생각하면 불안해서 정말로 심부름하기가 싫었다.  전통이 있고 훌륭한 학교에는 학생들이 서로 가고 싶어 한다. 반면에 학생들이 말썽을 부리고 품행이 좋지 못한 학생들이 다닌다는 평판이 나면 기피하게 된다. 잘잘못은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준다. 좋은 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로 학생을 보내려는 학교가 되어야 좋은 학생을 받아서 학생교육을 잘 할 수 있다. 모두가 합심하여 문제성을 극복해서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훌륭한 인재를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서로 각자의 아집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계발하여 다 함께 잘 살 수 있어야 한다. 상처가 되는 헛된 소모가 없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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