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07-20(토)

"학교의 13년 숙원을 해결했습니다."-권정선 도의원과 아름다운 후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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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경 작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선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하 진흥원)은 이해경 이사장을 선임하고, 제7기 이사회를 새롭게 출범했다.   제7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해경 작가는 최초의 여성 이사장으로, 7월 15일(월) 개최된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임됐다.   이해경 이사장은 “만화계에 50년 가까이 지내오며, 자신을 만화와 결혼한 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많은 만화계 선배, 후배, 동료들이 일궈놓은 한국 만화계와 우리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더욱더 값진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신종철 원장을 포함한 진흥원 임직원 여러분과 함께 사랑과 겸손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해경 이사장을 포함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제7기 이사회의 임기는 2년으로 2021년 7월까지다.     새롭게 출범하는 제7기 이사진은 웹툰협회 회장이자 <풀 하우스>, <매리는 외박중>의 원수연 작가, <프리스트>의 형민우 작가 등 창작계를 비롯해 목원대 만화애니메이션과 김병수 교수,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고경일 교수, 인천대 불어불문학과 한상정 교수 등 학계, 한국과학창의재단 최연구 단장, 평화문화창작소잇다 유수훈 대표, 경기문화재단 박준영 이사,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 집행위원장인 서채환 이사 등 콘텐츠 산업계 및 유관기관 종사자로 꾸려졌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한국 만화영상콘텐츠 산업의 중심기지’를 비전으로 2009년 만화도시 부천을 기반으로 부천시가 경기도,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건립한 국내 유일의 만화진흥 전문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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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기념 특집 - 이재욱 소설가와 함께하는 부천 향토 문학이야기 / 부천이 낳은 시인- 素鄕 李相魯 연구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기념 특집- 이재욱 소설가와 함께하는 부천 향토 문학이야기 부천이 낳은 시인- 素鄕 李相魯 연구                      들어가며   소향(素鄕) 이상로(李相魯)는 1916년 10월 8일 경기도 부천군 계남면(桂南面) 궁리(宮里)(1963년 서울시 구로구 궁동으로 편입)에서 평범한 농부인 전의(全義) 李씨 근영(根泳)의 4남으로 태어났다. 부천문단(1966년)에는 7남매 중 막내라는 또 다른 기록이 있어 전의(全義) 이씨 종친회에서 확인했던 바 4남과 7남매의 막내라는 기록 모두가 맞는 사실이라 했다.    소향관-부천 태생의 시인 이상로(李相魯)[1916~1973]의 호 소향(素鄕)에서 이름을 따온 행사 및 공연장이다.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에 있던 구 소사구청이 1996년 소사본동 새 청사로 이전하면서 구청 내 별관에 신축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아들로는 4남이고 형제자매를 합치면 7남매였으니 7남매의 막내라는 사실도 틀린 기록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만 소향(素鄕)이라는 그의 호를 소경(素卿)으로 표기해 놓은 족보의 오기를 발견하고 소향(素鄕)으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소향이 태어난 궁리는 안동(安東)권씨(權氏)와 더불어 전의(全義)이씨(李氏)가 대대로 살아 온 집성촌이어서 이웃 모두가 일가친척이었다. 불행하게도 이상로는 젖먹이를 면하지도 못한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아버지마저 저세상으로 떠났다. 잘 살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이 보살펴 주던 시절은 잠깐 동안에 불과했다.  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이상로는 17세가 되어서야 한문을 배우러 서당에 다녔고 이어 보통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24세가 되던 1940년 일본 메이지(明治)학원 고등문학부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빼앗긴 땅,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여 중퇴하고 떠돌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귀국해서 언론계에 투신하였다. 귀국하던 그해인 1945년 5월 서울 YMCA에서 개최된 「예술의 밤」에서 시 「5월」을 발표했으나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회원이 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 소사(素砂)를 사랑한 소향(素鄕)    이 벌을 지나면 저기 남향받이 산기슭 다소곳한 마을에 복사꽃 오 오  화안한 그 복사꽃을 피리니   소향 이상로 이 시(詩)는 이상로와 친했던 박두진의 작품으로 이상로가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을 무렵인 1941년 이상로에게 보낸 편지 속에 포함 돼 있었다. 편지에서 박두진은 복사꽃 피는 마을을 찾아 시혼(詩魂)을 불러야 한다며 복사꽃 피는 마을을 마치 유토피아인양 서술하였다. 소사가 고향인 친구 이상로에게 마치 복사꽃 흐드러지게 핀 고향 소사의 소식을 전해주는 작품 같기도 해서 이상로가 무척 좋아했던 시 구절이지 않았을까 해 본다. 박두진의 편지전문을 소개한다.  친한 시인에게 만연히 집을 나와 만연하게 다니는 길이 예정이 일그러져 최초 일정의 세 배가 늦어졌습니다. 오늘은 스무 나흘, 지금은 0시 반쯤, 추풍령까지 왔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차 중입니다. 옥천에서 묵을 때 군서라는 촌을 찾아가다가 물이 푸르고 맑기가 금강산 옥류천과 맞선다는 것을 알고 곧 금강에 가 보았는데 물가의 흰모래가 하도 깨끗하기에 한나절 동심에서 어린애같이 놀다가 온 것입니다. 소박한 자연에 안기어 새로 어린 춘색에 나는 겨울을 벗어난 사슴과 같이 즐겁고 편안합니다. 어떤 글을 쓰는 동안 차는 황간에서 벌써 영동에 왔습니다. 차 안에는 불과 8,9인이 있을 뿐 거진 반 빈 것 같게 한적합니다. 바같 풍경이 매우 화창하여 차에서 내려 걸어가고 싶습니다.  소향 형! 그간 어떠하십니까? 형은 무엇을 생각하며 지내십니까? 흰 구름 둥둥 구름은 가고………… 이제 다시 저 잠자는 시혼, 나의 잠자는 시혼을 일깨워야 하겠습니다. 또는 멀리로 나들이 간 시혼! 복사꽃 피는 마을, 화안하니 복사꽃 피는 마을을 찾아 혼자 나들이 간 나의 시혼을 나는 어서 불러야겠습니다.   이 벌을 지나면 저기 남향받이 산기슭 다소곳한 마을에 복사꽃 오 오  화안한 그 복사꽃을 피리니 형! 나는 이제 복사꽃, 복사꽃 피는 마을을 향하여 가오리까? 영원히 영원히 화안한 나라를 찾아 가오리까? -그러므로 이 세상 장막이 무너지면 , 그는 너희를 위하여 다른 한 성을 예비하였나니- 성서(뜻만) 소식 주십시오. 더욱 강건하시기를 비옵니다.                         1941년    월     일                                           박 두 진    그의 호 소향(素鄕)은 소사(素砂)가 고향(故鄕)이라는 뜻이지만 소사(素砂)를 무한하게 사랑한다는 의미도 포함 돼 있다. 그의 작품에는 소사(素砂) 곳곳의 지명이 많이 등장하며 이런 작품 모두에서 고향 소사(素砂)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게 묻어난다. 『실락원(失樂園)』에서 보이는 여월리.(오정구 여월동) 『분이』에서 보이는 당아래,(원미구 춘의동) 『인간파편』에서 보이는 성골,(오정구 성곡동) 『냄새』에서 보이는 까치울,(오정구 작동)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실락원(失樂園)  하얗게 눈이 덮힌 소래산(蘇萊山)이 바라다 보이는 사랑방 툇마루에서 발돋음하며 나는 곧잘 산봉우리들을 바라보곤 하였다. 어느 해 여름날이었다. 나는 혼자서 논두렁 밭모퉁이로 나비, 잠자리와 뭔지 모르게 좋기만 한 그 야생(野生)의 꽃들에 취(醉)하여 노는 중에서도 염록색(廉綠色) 이파리와 엷은 자색(紫色) 항가새 꽃에 나는 매혹(魅惑)되었었다.    일록달록 꽃배암- 꽃풀 속에 도사렸던 꽃뱀 떼가 머리를 들면 꽃다발이랑 꽃신짝을 동댕이치며 달아났고 낡은 빛 비석(碑石)이 서 있는 산(山)모롱이 길로 질겁을 하여 도망하였다.    한번은 아마 무슨 난리(亂離)소동이었는가 생각한다.   여월리(如月里)로 시집간 누나와, 치맛자락에 매어 달리듯이 언제나 내가 따르더란, 지금은 가고 없는 다홍치마를 입은 과천(果川) 누이 손에 잡혀 집들을 텅텅 비운 채 동네 사람들 서낀 산 너머 골짜기로 난피(難避)를 하여 쫓기던 일    ----이 집이 비록 북향(北向)이로되 아예 옮기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고 청룡(靑龍)골에서 하아얀 선노인(仙老人)이 나타나 할아버지께서 이르드란 그 현몽(現夢)의 집은 지금 삼종숙(三從叔)께서 증손(曾孫)까지 거느리시고, 앞으로 소래산(蘇來山)을 향하고 오른 편으로 계양산(桂陽山) 왼켠으론 북한(北漢)을 동남(東南)향으론 관악(冠岳)의 봉(峰)들이 바라다 뵈는 이 마을은 려조(麗朝)때부터 내려오는 우리문중과 이씨부마(李氏附馬)의 후손 안동권씨(安東權氏)들로 지켜오는 옹긋한 터전, 그리 멀지 않은 고장으로 출가(出嫁)한 대고모(大姑母), 고모(姑母), 누님들이 시시(時時)로 와서 반가웠고 어른들과 곧잘 나드리도 떠나곤 하였다.  때로는 먼 조상(祖上)쩍 얘기며 병자호란(丙子胡亂)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얘기를 들려주시곤 하였다.     원미산 진달래 축제 그 훗날,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진달래꽃이 진하게 핀 뒷동산엘 올랐었다. 아무것도 잊고 멀리 양아두 나루쪽과 제물포의 아득한 수평선(水平線)을 바라보다가 해 저뭇이 눈물 지었었다. 오늘, 원추리꽃 한떨기 피지 않은 산마루에 나는 오른다. 갈포기도 아쉬운 산은 산울림도 없다. 갈려진 벗들, 원수를 일컫는 핏줄들을 생각해 본다. ---------황폐한 산과 들들, 그래도 철따라 연두빛 어려오는 먼 산들.    이윽고 나는 현무봉(玄武峰)이며 청룡(靑龍)이며 백호(白虎)며를 살펴 본다. 주작(朱雀)을 안(案)하여 머언 봉(峰)들을 바라본다.    실락원(失樂園)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해가는 그의 고향 소사(궁리)마을을 안타까워하는데서 쓴 작품이다. 사랑방 툇마루에서 발돋움하여 바라보았다는 소래산(蘇來山)은 부천과 경계에 있는 시흥시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주말이면 많은 등산객들이 붐빈다. 2연부터 그는 그의 마음껏 뛰 놀던 대자연속의 궁리(宮里)를 회상한다.  4연에서 지금의 여월동인 여월리(如月里) 그리고 과천(果川)이라는 지명과 함께 애틋한 누님들에 관한 회상이, 5연에서는 풍수설(風水說)을 인용하며 대가족이 함께 살던 고택(古宅)을 그리고 있다. 이어 계양산과 관악의 봉우리가 보이는 마을 위치며 부마(附馬) 마을이 된 안동권씨(安東權氏)를 비롯한 마을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 웃어른들을 통해 들어오던 먼 옛날이야기까지 전설처럼 아름답게 펼쳐지다가 마지막에는 황폐한 산과 들을 만나며 사라져 가는 고향마을에 대한 강한 회한의 가슴을 내 보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분이(粉伊)    길마봉(峰) 언저리에 시울진 노을빛이  아주 산너머로 스러지는 것을 보자  분이(紛伊)는 누구도 모르게 없어지고 말았다.    〈당아래 고갯길에 山 그림자 가리도록 오늘도 긴 하루를 시름 짓던 분이는  「----눈물은 덧없어라-------」 갓 낳은 것 묻은 자리. 상수리 이슬 받는 뒷 산골에 다시 허리끈을 졸라맸었다.〉    삼년째 신었대야 서슬도 닳지 않은  별표 고무신만이 나란히 놓여 있는 -----    무슨 일이냐는 듯이 삽사리도 짖지 않는 밤    마을은 모밀꽃으로  환하기만 하였다.    갈마봉에 죽은 갖 나은 아이를 묻고 시름에 젖어 있던 분이는 오늘도 갈마봉이 보이는 당아래 고갯길에서 긴 하루를 보낸다. 당아래 고갯길에 산(山) 그림자가 드리우자 눈물이 덧없음을 느끼며 치마(허리)끈을 졸라매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 온 분이-. 별표 고무신이 나란히 놓여 있는 삽사리도 짖지 않는 고요한 밤 메밀꽃만 환하게 펴 있는 분이의 집, 분이의 고달프고 애달픈 마음을 읽게 해 준다.      인간파편        -성골 누님 영전(靈前)에.    팔쭉지며 흐므러져 선지피 흐르는 기총탄상(機銃彈傷)  응급 구호도 받을 길이라고는 없이 죽어 간다는  두 시체(屍體)의 모습이랑 마음 저리게 하는 기별 들으며.    피투성이 된 모자(母子)의 사랑---- 한 덩어리의 시체(屍體)로 쓰러진 수원(水原) 남양(南陽) 땅의 눈길 위.    엄마 잔등에 업힌채 곤드래 수그러진 모가지의 꼴이랑 죽어서 있는 인간(人間)- 고사리같은 두 주먹에    계레의 원한(怨恨)을 움켜 쥔채.  아아.우리 다시 원한(怨恨) 남기지 못할지니---     성골 누님의 최후를 그린 가슴을 애는 시(詩)다. 기총 탄환을 맞고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있는 모자(母子)는 성골 누님과 조카일 텐데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엄마 등에 업힌 조카는 고사리 손을 움켜쥐고 목이 꺾인 처참한 모습이었다. 가슴이 뭉클해 온다. 전쟁은 재앙이다. 우리 인류에 다시는 없어야 할 일임에도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일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기회가 있다면 이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전쟁의 폐해를 널리 알리고 싶다.     백오(白烏)의 노래    저도 모르게  내려 왔음이여!    먼 나라의 향수(鄕愁)로  두 눈에는 항시 이슬 맺히고    종일내 나의 날아 갈 곳을 응시(凝視)하기    놀 빛 바알갛게 시울지노니----    마지막 「백오의 노래」에서는 스스로도 모르게 고향(素砂)에 내려 왔음을 알고는 감격한 나머지 느낌표 하나로 그 감동을 나타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고향 소사(素砂)를 그리던 소향(素鄕)은 한국문학사에 작품으로는 커다란 공은 남기지 못했다. 시인이라기보다 언론활동이 더 활발하던 언론인이었던 때문이다. 그가 6.25를 겪는 동안은 어수선한 나라를 걱정하며 ‘나라 실정이 이러한데 내가 글을 써서는 뭐한단 말이냐’ 며 한동안 펜을 버린 적도 있었다. 소향관 앞의 베롱나무 꽃이 피었을때 1953년 첫 시집 『귀로』를 시작으로 그의 문단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는데 출판이 되자마자 과감한 그의 시 세계가 독자들에게 어필하여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이어 1957년 두 번째 시집 『불온서정』을 출판하고 1961년에는 세 번째 시집인 『세월 속에서』를 펴냈는데 이 두 권의 시집에서 이상로는 정적인 표현의 정서적인 시와 사회풍자의 정치적인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사회 부조리와 정치적 부패를 신랄하게 고발한 대표작으로는 「남대문 시장」 「태평로」등이 있다. 일부 평론가들이 사회 혐오와 정치적 부패에 대한 시류를 부각시켜 문제화하자 그것은 ‘오직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는 것으로 맞섰다. 유독 그런 주제들을 많이 다루게 된 원인으로는 아마도 그가 언론에 종사해 온 때문일 것이다.  그는 또한 술과 담배를 많이 즐겼다. 어린 시절 이미 부모를 여의고 항상 외롭다는 마음에 술을 퍼 마셨으나 술이 그의 마음을 달래 주지는 못했다. 담배 또한 입에 달고 살았으며 술을 마실 때와 글을 쓸 때는 아예 줄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즐기는 것은 생각을 하는 - 새로운 싯귀를 연상케하는 매개체로 생각했다.  온화하면서도 내성적인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개성이 강했다. 일찍이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의 문하에서 수학한 그는 주로 민족적 향토성과 윤리적 역사적 의식으로 창작에 몰두했다.  소향은 시 외에도 수필을 많이 썼다. 그 중에도 세 번째 수필집「저 태어난 고장에 살면서도」는 수주 변영로의 시 구절을 인용했는데 수주 변영로를 존경하고 따랐음에 기인했다. 수주의 수필집 『수주수상록(樹州隨想錄)』을 책임 편집하기도 했다. ---계속   글/ 이재욱     한국소설가협회 서사문학연구위원 장편소설 -귀천의 길목, 아버지의 가슴앓이, 왕의 연인 소설집-연탄 두 장의 행복

부천시 문화예술 발전기금, 3년 연속지원 금지규정에 관한 제언

  이재욱(소설가, 한국문인협회 서사문학연구위원) 부천의 유일한 문예창작 지원금은 부천시 문화예술발전기금 하나뿐이다. 그나마 이 기금은 영화, 연극, 음악, 미술, 등 크고 작은 다양한 부천의 모든 문화예술단체들에게 배분된다. 많은 수혜자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주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지원금은 당연히 작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원금 수혜자로 선정되는 날부터 또 다른 걱정을 해야 하는 수혜자로의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지원금만으로 소요예산의 전부를 충당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스스로 마련해야 할 자부담의 금액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가뭄의 단비처럼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그만큼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이 미미한 때문이다. 문학 분야의 출판지원금만 보더라도 지원금은 출판비의 20-25% 내외에 불과하다. 거의 자비 출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다.   문제는 이런 지원금의 많고 작음을 논하고자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3년 연속지원이후 일 년의 휴식기간을 요하는 금지규정에 관한 제언이다.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는 기본취지에는 동의한다. 한사람이 3년 동안 연속해서 혜택을 받았다면 1년 정도 제외돼야 한다는 규정도 당연한 것 맞다. 그러나 문학 분야의 출판물은 다른 예술단체 활동과는 구분돼야 하는 특성이 있다. 도서 출판비는 개인의 것이나 단체의 것이나 한 권의 책이라는 데서 그 금액이 대동소이하며 이는 한 개인이 희생되는 금액으로 많은 다른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문학 분야만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학 분야의 단체에게만 이런 특성이 있음을 강조하며 이런 단체로의 수혜를 거론하는 것임도 전재돼야 한다.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부천   음악이나 미술, 그 외 다른 모든 단체의 경우에도 연속적인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올해 공연을 내년에도 후년에도 이어나가야 한다는 조건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 단체에 배분되는 지원금을 문학 쪽으로 이월해 달라는 특혜를 요구하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문학은 문학 분야에 배분된 금액 내에서 어떤 한 개인이 희생되는 금액으로 단체의 많은 수혜자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경제원칙과도 부합하는 논리를 주장할 뿐이다. ‘가능하다면 골고루’ 라는 배분취지에도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개인출판물은 수혜자가 한명이지만 단체는 수혜자가 거의 개인의 10배 이상 수준이다. 때문에 개인 수혜자는 종전대로 3년 연속지원 금지규정이 존속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문학 분야의 연속성을 가지는 단체 출판물에 한해서는 예외규정이라도 있어야 한다.   문학단체의 출판물은 연속성을 가진다. 예를 들면 부천소설가협회에서 발간하는 “부천, 소설과 비평”은 매년 연속적으로 발간하는 부천 소설가들의 작품 활동지다. 일 년 동안 활동(집필)해 온 작품을 게재한 결과물로 부천은 물론 전국적으로 배분 전달되어 부천 소설문학을 함께 공유하게 하는 출판물이다. 각 도 단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간행물이나 부천이라는 작은 도시에서는 벌써 10년 이상 발간해 오고 있는 중인 부천문학의 자랑스러운 출판물이다. 어쩌면 부천시의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선정에도 일조했을지 모를 출판물이기도하다. 그런데 이 3년이라는 금지규정에 묶여있는 해에는 작가들 스스로가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야 한다.   그동안 부천 작가들에게 꽤나 많이 회자되었던 새로울 것도 없는 사안이며 몇 차례 담당부서에 건의하기도 했었지만 자리 이동이 잦은 부서원들이다 보니 또 다른 자리로 이동하면서 그때마다 유야무야 돼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행정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제언하는 것이니만큼 이번에는 꼭 검토해 주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하는 바이다.    

2019 펄벅학술심포지엄, 부천에 화두를 제시

"2019 펄벅학술심포지움"이 6월14일 솔안아트홀에서 진행되었다.   부천 펄벅기념관이 주최하고 부천문화원이 후원한 펄벅 학술심포지움은 작년에 이은 2회째 행사로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면서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펄 벅에 대한 행사여서 여러 시민들과 문인들의 관심속에 진행되었다. 금년의 주제는 "펄 벅, 부천에 살다."이다.     2018년의 주제가 방향을 잃은 주변잡담의 수준이었다고 볼때 금년의 주제는 다수의 부천 문인들로 채워진 부천의 목소리가 실린 행사라고 볼 수 있었다. 관객들이 각각 다른 입장과 기준이 있어 기대에서 다소 벗어난다고 하는 의견도 들렸지만 그럼에도 "과연 부천이 펄벅 연구 또는 펄벅 기념사업으로 얻고자하는 이념, 가치, 내용이 무엇인가?" 에 대한 진정한 자기 의식에 대한 화두를 제시한 것에서 그 의미를 크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펼벅 기념사업과 부천의 인문학 또는 부천의 가치학에 대한 컨셉을 제시한 이희용 교수(서울신학대학교)의 부천학과 연계된 인문학적 접근은 연구의 치밀함에 여러면에서 보충할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천시가 심각하게 고민해볼 사항이다.     최종고 교수   송도영 교수   이희용 교수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펄벅기념관에서 소장자료를 조사하고 돌아온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 송도영 교수가 부천에 제시한 "부천시와 부천시민들은 펄벅이 추구했던 가치와 노력을 기울였던 실천적 행동들을 실제로 계승하고 확대 발전시킬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가?"의 물음에 대하여 부천시민은 부천시와 부천시민이 소사희망원의 원아들에 대한 대우를 뒤돌아 보면서 그 질문이 주는 책임성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펄벅의 박애정신의 실존 여부에 대한 다툼에도 불구하고 부천시는 이 사업에 대한 정의를 확보하여야 할 것이고 더 늦기전에 이 사업에 대한 존재의의를 갖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펄벅의 문학적, 사회학적 그리고 그녀의 생애적 정리가 초기적 접근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고찰해 볼때 부천시의 몫을 평가해 보는 것은 좋은 관점일 것이다.    심곡본동 펄 벅 기념관 부천시는 무엇을 바라고 펄벅 기념사업을 하는가? 유네스코창의도시와 펄벅 기념사업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가? 펄벅의 작품과 그의 생을 디아스포라 개념에 억지로 꿰 맞추거나 펄벅의 생, 웰컴하우스와 소사희망원의 개념을 다문화사회로 연계 시키는데 모순이 있는것은 아닌가? 펄벅의 문학적 접근을 배제한 채 사회학적, 복지적 접근이 펼벅기념사업에 합당한 것인가? 심포지움은 언제나 그 추구하는 방향성이 온전하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가치가 있다고 볼 수있다. 다만 여전히 펄벅에 대한 인간적인 면에대한 개념적 고찰에 머물러있고 전문적인 연구결과로 보기에는 미심쩍은 연구로 펄벅의 정체성에 대한 객관적 정의 없이 부천과의 연관성을 끼워맞추려는 목적성이 두드러져 기념사업의 순수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갖게함은 이번 심포지엄의 흠이라 할 수 있다.    펄벅의 소사희망원 사업이 펄벅의 사후,1976년 그 존재의의에 대한 고찰을 따지기도 전에 10년만에 공중 분해되었듯이, 2007년 잭 부쉬 플로리다 주지사의 소사희망원 방문으로 떠들썩 했던것과 같이 또 다시 단기성 행사로 예산을 낭비할 일은 아닐것이다.   특히 그동안의 펄벅과 관련된 여러가지 행사가 일부를 제외하면 소모성이고 과시성에 치우쳤다는 점에서 주변으로부터 경시 되거나 냉소적 비판이 있는것에 대하여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부천시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받아 모처럼 부천시 차원의 지원을 받아 강력한 동력을 구축하여 국내에서 펄벅에 대하여 유일하게 학술적으로 접근한 부천문화원, 펄벅기념관의 학술심포지엄이 이전의 행사와 같은 평가를 받는다면 심히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2018년 "펄벅심포지엄"을 진행한 "A 학예사" 가 국내의 펄벅관련 전문가에 대한 수소문과 자료검색의 지난함으로 당시 막 출범한(2018년 7월에 연구회가 결성됨) "한국펄벅연구회"와 함께 심포지엄을 진행한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만한 일이나 이를 금년에도 여전히 이어간다는 것은 이 연구회를 부천시의 공적인 행사파트너로 격상하여 부천시의 예산을 함께 향유할 공동주최의 기회를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점에서 볼때 담당 학예사를 비롯한 직원들의 엄청난 수고에도 불구하고 부천시가 연간 학술발표가 거의 전무한 사설모임에 의존한 듯한 모습을 보인  "펄벅기념관"의  무책임한 자세로 이를 비판하지 않을수 없다.   이런 점에서 "펄벅기념관"을 위탁운영하는 부천문화원은 현재의 펄벅 기념사업을 학예사 위주의 사학적 접근에서 전환하여 기념사업에 맞는 전문가들에 의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인원보강등 추가적인 정비는 물론 현재 이 분야에 대한 전문적 배경에 의구심이 있는 펄벅기념관의 이사진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수반한 전면적인 교체도 검토해볼 일이다.  

이재학 칼럼/ '목일신- 정지용- 펄벅'을 찾아가는 ‘인연의 길’ 만들기를 제안한다.

  이재학/ 마라토너, 작가, 소새울 소통미디어협력단 대표 도시재생이 진행되는 소사본동의 문학적 자산은 시인 정지용이다. 우연인지 모르나 소사본동과 이웃한 동네인 범박동에는 동요작가 목일신이 있고, 심곡본동에는 소설가 펄벅이 있다. 소사본동, 범박동, 심곡본동은 각자 이들 작가를 기념한다. 소사본동에는 2019년 ‘정지용 향수 길’이라는 정지용 문학공원이 만들어진다. 범박동에는 목일신 공원과 동요시비가 있고, 심곡본동에는 펄벅기념관이 있다. 부천이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가 되면서 세 작가의 문학과 삶을 더욱 깊게 조명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정지용, 목일신, 펄벅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이들은 모두 부천이 고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지용은 충북 옥천이 고향이고, 목일신은 전남 고흥이 고향이고, 펄벅은 미국인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부천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그것도 산 하나씩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다. 범박동에서 할미산을 넘으면 소사본동이고, 소사본동에서 성주산을 넘으면 심곡본동이다. 산을 넘으면 시(詩)가 있고, 또 산을 넘으면 소설(小說)이 있다.    정지용, 목일신, 펄벅이 어떤 이유로 부천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정지용, 목일신, 펄벅의 결코 단순하지 않은 부천과의 인연을 찾아보는 문학의 길을 만들기를 제안한다. 범박동 목일신에서 시작해, 소사본동의 정지용을 만나고, 심곡본동의 펄벅까지 이들을 찾아가는 길에는 많은 역사 문화적인 자산이 숨어있다. 신앙촌도 있고, 소사삼거리와 소사성당도 있고, 심곡도서관과 부천남초등학교가 있다. 펄벅기념관은 어떤가? 그곳은 단순한 기념관이 아니라 유한양행 유일한 선생님의 삶이 녹아있는 곳이다. 그런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을 하나씩 찾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의 문화와 역사를 좀 더 내밀하게 알게 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위의 목일신 공원부터 펄벅기념관까지 코스는 목일신, 정지용, 펄벅을 찾아보는 길이다. 나는 이 길을 ‘부천의 목일신, 정지용, 펄벅을 찾아가는 인연의 길’이라 부르고 싶다. 인연의 길은 한편으로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목일신, 정지용, 펄벅이 부천에 뿌린 인연이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때문이다.    목일신, 정지용, 펄벅을 찾아가는 인연의 길은 부천의 문화적 콘텐츠를 풍성하게 만들고, 부천시민에게 자부심을 갖게 할 것이다. 문화도시 부천의 자산은 부천시민이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연의 길 연결 코스 목일신 공원 - 범박로 사진길 - 목일신 동요비(일신초, 일신중) - 신앙촌(오만제단, 시온고) - 은성로(소사천, 봉배약수터) - 소새마을 역사관 - 소사삼거리 - 정지용 집터 - 소명지하차도 - 소사성당 - 심곡도서관 - 부천남초등학교 - 펄벅기념관 유일한

펄벅과 유일한, 그리고 펄벅 테마 파크/ 이재학의 시사칼럼

이재학 (작가, 소새울 소통미디어협력단 대표) 심곡본동 깊은구지에는 펄벅기념관이 있다. 부천역에서 보면 성주산 밑 후미진 곳에 펄벅기념관이 있어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부천이 부천시가 되기 전 세계와 연결된 곳이다. 펄벅기념관에서 펄벅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세계문학 속에서의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펄벅이 부천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펄벅은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문호일 뿐 아니라 소외받는 사람들을 자신의 품으로 안으려 한 사회사업가이다. 성인이 되기까지 중국에서 보낸 펄벅은 중국 농민들의 빈곤한 삶을 보았고, 중국에서의 남녀차별과 세계대전 이후의 아시아인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이 자국의 사회에서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현실 등을 목도(目睹)하면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사회사업에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여 펄벅재단을 만들었다. 펄벅은 중국과의 인연으로 동양사회에 대한 애정이 많았으면 육이오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혼혈 아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알고는 펄벅재단 대한민국지부를 설립하고 ‘소사희망원’을 부천 심곡본동 깊은구지에 개원하였다.   소사희망원의 펼 벅- 중앙에 앉아있다.   펄벅이 부천에 정착한 것은 한 사람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펄벅은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존경하는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었다. 펄벅과 유일한 두 사람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공통점이 없다. 펄벅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사회사업가이고, 유일한은 기업을 운영하는 경제인이고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교육사업을 하는 교육자였다. 그리고 펄벅이 비록 중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더라도 미국인이고, 유일한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했더라도 대한민국 사람으로 두 사람이 연결될 여지가 없었다. 그럼 두 사람이 어떻게 인연을 맺을 수 있었을까? 펄벅과 유일한의 만남은 당시의 시대상황이 만들어준 것이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한창일 때 미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중국과 대한민국에 대한 고급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에는 중국과 대한민국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것도 고급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럴 때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에서 오래 살아 중국을 잘 알고 중국어에 능통한 펄벅과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유일한은 아주 훌륭한 정보원이었다. 미국은 즉시 펄벅을 중국 담당고문으로, 유일한은 대한민국 담당고문으로 임명하였고 그때부터 펄벅과 유일한의 오랜 인연이 시작되었다. 펼벅이 대한민국에서 사업사회를 한다는 말을 들은 유일한은 펄벅에게 ‘소사희망원’의 부지를 제공했다. 현재 펄벅기념관이 있는 곳과 그 주변이다. 일제강점기 유일한은 미국에서 숙주나물을 팔아 번 돈으로 대한민국에 들어와 유한양행을 창업했다. 유일한은 유한양행 공장을 대방동으로 옮기면서 남게 된 공장 부지와 건물을 펄벅재단에 기증했다. 이것은 펄벅과 유일한의 오랜 인연의 결과였다.     고 유일한 박사   그러나 지금 펄벅기념관에는 유일한의 흔적이 없다. 펄벅과 유일한의 인연의 의미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확정된 펄벅테마파크 사업에는 펄벅과 유일한의 인연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펄벅이 부천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도움을 준 유일한 박사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면 좋을 것 같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펄벅테마파크에 작게나마 유일한 박사의 독립된 코너도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부천 시민들도 펄벅의 부천에서의 활동에 유일한 박사가 동참했다는 것을 알면 더욱 긍지를 가질 것이다. 부천 심곡본동 깊은구지에 만들어질 펄벅테마파크는 단순한 공원이 아닌 펄벅과 유일한이라는 두 나라 국민의 인류애의 산물이다. 부천은 펄벅과 유일한의 아름다운 인연 때문에 소중한 문화자산을 갖게 되었다. 부천의 행운이다.   펄 벅 기념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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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꿈꾸는자의 것이다 -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인터뷰 -2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한국의 영화역사에 있어서 기획제작을 최초로 도입한 선구적 영화제작자로 "엽기적인 그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등 수많은 흥행작을 만들어 온 영화제작자이며 한국형 블록버스터 제작을 시도한 선각자로 볼 수 있다.  비록 수차례의 대규모의 영화제작을 위한 노력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 대한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야하고 그가 이룩한 토대위에서 성장한 한국영화의 제작관행이 오늘날 외국의 영화와 경쟁하고 최근의 동남아시장의 확대에 기틀이 된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이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 그와의 인터뷰 2회를 연재한다.      우리나라에도 영화제가 많지요? 170여개가 넘는다고 하던데요.   세계에는 몇천개의 영화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판타스틱을 주제로하는 영화제로 브뤼셀(Brussels) , 스페인의 시체스(Sitges)가 유명합니다. 물론 우리 부천도 판타스틱영화계에서는 유명하지요. 우리도 별써 23회를 기록하는 오랜 역사를 갖게 되었어요,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아시겠지만 “칸느 영화제“ 기간 중에는 물가도 뛰고 호텔비도 50%이상 뛰어요. 도시 경제에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지요. 로버트레드포드가 만든 선댄스 영화제에는 젊은 애들이 많습니다.스텝진이던, 자원봉사자 그룹이던 활기가 넘치고 이 인원들이 또 이어져서 새로운 맨 파워를 갖게합니다. 우리 부천영화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키워야 되고. 크게 생각을 해야지요. 거시적으로 봐야되요. 부천은 대도시인서울과 인천 사이에 끼어있고 도시반경도 적습니다. 머무를 수 있는 도시가 되지 못하는 약점이 있어요. 그래도 우리 부천만이 할 수 있는 유인책이 있어야 합니다.   일본 요리사 중에 장사 안되는 곳에서만 개업을 하는 요리사가 있대요.그 사람은 그 곳에서 장사를 키운다고 해요. 물론 그 가게를 파는지 어떤지는 별개로 하고요. 나도 영화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면 관객이 온다“는 믿음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비젼이 있는 곳에 꿈이 이루어 지듯이 우리 부천이 비젼을 갖고 충실한 계획을 수행하면 미래가 있다고 봐요.   그렇다면, 위원장님께서 5년을 맞고 운영한다면. 그러면 5년뒤의 부천 영화제의 그림을 그릴수 있을까요?  이번 해보고, 그리고 난 후에 그때 얘기합시다. 이번이 처음이니까.  오늘,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나면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요?          후원은 어떤가요? 경제도 안 좋다고 그러는데요.   후원담당자에게 물어봐요 “책을 만드는데, 그 책을 함께 만들고 싶게 작업하는지?” “ 누군가 그 책 만드는 걸 보면서 따라서 해보고 싶게하는지?” “참여하고 싶게 해야지요, 같은 그룹이 되고 싶게 해야지요.” 난 습관적으로 하는 것 좋아하지 않아요 자랑거리를 넣어야지요, 그런걸 찾아야지요, 그래야 후원도 있고 도움도 있겠지요. 물론 우리 팀원들이 그렇게는 안했지요, 그렇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잠재력을 끌어내야합니다. 그 잠제력을 끌어냄으로서 미래를 볼 수 있는거지요.   부천사람이 부천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느끼도록..영화제가 그걸 끌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갖어야 할 목표가 있고 또 그런 목표로 일을 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중에 후원도 함께 하겠지요. 지금까지는 대체로 잘 진행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부천시민이 자기 돈을 내서 영화제에 참가하는 돈이 외지사람들의 돈보다 많을 것으로 보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울이나 인천 등 수도권의 사람들도 오겠지만 아직까지는 부천시민이 더 많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데이터를 축적해 봐야겠지만 예년의 경우 전체 좌석점유율이 6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부천시민의 참여가 우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영화제가 갖는 의미가 우리만의 축제가 아니고 이름에서도 보듯이 국제적인 행사라는 측면에서 볼때 부천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에 더해서 수도권의 시민들이 부천을 더 많이 찾도록 하는 것은 부천의 경제, 사회등에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위원장님께서 영화제 운영하는동안 자신의 영화제작과 충돌할 수도 있고 선택하여야 할 시간도 있을수 있을텐데. .  처음에 영화제 제의 받았을때 못하겠다고 했어요.."영화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랬더니 프로그래머들도 잘하고 그러니까 옆에서 두고 보고 조언을 하면서..뭐 그래라 그래서 왔는데..와서 보니까 일이 밑도 끝도 없는 거예요. 뭐 하면 할수록 일은 더 많아지고. 지금은 매일 출근해요, 그래도 여전히 바쁘고. 속은거지요. (웃음) 지금은 영화하느라고 쌓아두었던 여러 곳에서 , 특히 미국의 친구들,프로듀서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제 영화고 남의 영화고 필요한 모든것을 갖다씁니다.   위원장님께서는 우리나라 기획영화의 선구자이면서 흥행기록도 갖고 있으시면서 흥망이 극적이셨는데, 영화에 대한 꿈과 영화제의 운영이 상충하면 어떤 결론을 내게 될까요?  그만두어야지요, 영화제와 영화제작은 전혀 다른분야예요. 그 둘을 병행하는것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에게 이야기 했어요, 내가 오래 못할수도 있다..그런 충돌지점이 오면 결정해야지요.    신성복 기자(왼쪽) 신철 위원장(오른쪽)  사실 요즈음의 영화시장이 많이 변했다고들 하는데요, 위원장님이 보는 시장은 어떠신지요?   시장이 많이 변했지요, 외국의 직배 모델이 일반화 되면서 지금 영화시장은 넷풀릭스, 유튜브같은 배급사, 유통업체에 의한 시장이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크리에이터들의 고민이 있게되는 겁니다. 시장의 흐름이 그렇게 되니까 대기업에 의한 독점 시장화가 지속되니까 크리에이터들이 대기업에 속하게 되는겁니다.   실질적으로 프로덕션은 불확정적이지요. 잘 될수도 있지만, 프로덕션이 평생 한두개가 성공할지 말지 그런데 지속적으로 수입이 될 수 있는 수입구조를 갖으려고 다들 노력하지만 만족한 결과를 얻는데 부족한점이 많아요, 시장도 크지 않지요. 그러다 보니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이들이 유통업자로 변하고 결국 크리에이터들도 대기업에 더욱 예속해 가지요. 시장이 단순화되는건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안되요.   우리나라도 CJ 같은 대기업에 의한 시장이 되고, 이에 대한 공과는 따져봐야겠지만, 어쨋던 이런 기업에 의해 시장이 커졌어요 파이도 커졌는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영화시장이 작아서요. 앞으로 이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될겁니다. 배급업자 입장에서도 크리에이티브 입장에서도요.   영화제가 몇달 안남았는데,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잘 진행되요, 영화제라는 것이 마지막까지 변수도 많고 협상에 따르는 일정등도 많고 늘 살얼음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점점 더 할 일이 늘어난다는 의미지요. 많은 협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공적인 영화제를 기대합니다.

세상은 꿈꾸는자의 것이다 -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인터뷰 -1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990 ~2000년대 한국의 성공적인 영화제작자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89), '엽기적인 그녀' (2001 출시작품중 흥행순위 2위) 등을 제작하였다.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한국영화사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영화사를 차리고 글로벌 마켓에 도전하였다. 다시 '로보트 태권브이'로 새롭게  도전했으나 수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숙제와 가능성을 남기고 후퇴했다. 이후 일본과 중국에서 불법으로 3억장 이상의 VOD가 제작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 "엽기적인 그녀"를 리메이크하는 "엽기적인 그녀 2"를 중국측과 합작으로 제작하기로 한  기획은 중국쪽의 이해할수 없는 여러가지의 이유로 계속 지체되어왔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 주장하는 영화제작자 신철이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은 2018년 8월이다.                           미국으로 가게된 동기가 있을까요?   한국시장에서 성공하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첫 번째 미션이었는데 그것이 1990년 ~2000년대 초에 거의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이후에 한국시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이룬 듯한 느낌도 있고, 한국시장이 좁게 느껴져서 그래서 내 인생에 신의 축복이 더해진다면, 글로벌로 성공하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지요.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일본의 한 스님의 소개로 일본의 게임사 남코(Namco)의 회장이 1억불중 6천만불을 투자하기로 하고 진행했는데 그 당시의 할리우드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습니다.  외국의 기술자들과 연결해서 4년동안 준비했는데 미국 영화계에서의 일의 추진이 험난했고, 여러가지 법적 처리등의 난제등으로 결국 4년만에 철수하게 되었읍니다. (注: 미국영화사 사무실이 4층 404호실이었고 미국으로 간지 4년만에 철수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여러 가지 분석을 했습니다.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서 준비 부족에 대한 후회도 하면서 다시 전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것은 동시에 한국영화의 확산 방안이 될 것으로 보고 전세계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않군요.    처음에 한국 영화계에서 제대로 기획된 영화하나 만드는데 10년 걸렸으니  까, 경험도 있고 한점을 감안해서  대략 4~5년 예상하고 추진했는데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환경도 많이 변한데다가 중국 당국의 관련규정, 허가 절차등이 명확하지 않아서요.   제작자로서 스티븐 스틸버그와 무척 닮은듯한 느낌을 갖는데-   미국 영화계에는 천재들이 많아요.제 경우 기술적인 천재를 아는데..그 친구가 진짜 천재이고 그 밑에 있는 애들도 다 천재지요. 그런 스텝들과 작업하는 스필버그도 천재지요. 대단한 천재라고 봐야지요.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그런데 나는 뭐 돈있는 집 자식도 아니고, 충암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때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영화를 하기로 결심했는데,재수해서 서울대학교 미대에 진학했지요.처음에는 서울대 응시해서 떨어졌지만..  그리고 영화계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 느낀게 있는데 그것은 내가 천재는 아니라는 거예요.그런데 천재가 아닌 내가 영화계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별 수 없지요. 남보다 두배를 더 해야지요.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해요.   스필버그도 고생을 많이 했을거 아닙니까?   스필버그는 초등학교때 이미 8mm촬영기를 갖고 다닐정도였는데 무슨 고생을... 거기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자기집처럼 드나드는 기회를 갖었다는 점에서 조건도 좋았고요. 천재적인 작업자들도 주위에 널려있는데..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제작자의, 국내에 잘하고 있는 제작자들의성공의 원인을 보면?    김용화 감독 같은 경우는 자신이 직접 CGI회사를 갖고있어요.거기에서 다양한 시도를 거친 결과로 성공적인 작품의 조건을 갖추는 이점도 있겠지요. 그런데 성공적인 제작을 위해서는 좋은 원작이 있어야 돼요. 몇 일전에 인터뷰기사를 봤는데 거기서 "시나리오가 전부야, 나머지 것은 전부 장식이야(script is everything, anything else is dressing, just dressing)"그러더라구요.근데 이어서 말하기를 “그런데, 나는 좋은 작가를 살 수 있는 돈이 있어!! 여유가 돼 ! 그러더라구요. (웃음)  영화 '엽기적인 그녀' 좋은 제작자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시나리오가 몰려 옵니다. 그 많은 시나리오중에 좋은 시나리오를 볼줄 알아야 돼요. 물론 감독도 그래야 합니다. 재주있는 애가 시나리오 잘못 골라서 망해요.배우도 시나리오를 잘 봐야지 맨날 망하는 시나리오를 보면 같이 망하는 겁니다 . 성공하는 배우는 시나리오를 잘 봐야 돼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거기서 내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성공할지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못 보면 망하는 것이예요. 재주있는 애들이 사라지는 이유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송광호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 선택이 탁월하지요. 그러니까 성공적인 작품에 함께 작업하는 빈도도 많지요. 성공하는 배우의 조건이 되는겁니다.    위원장님은 몇년간에 걸쳐서 스테디하게 성공했는데-     글쎄요 그때 한국에서 계속하면서 건물사서 그대로 한국에서 있어야 하는데, 미쳐버려서 괜히 미국가서,.고생만 엄청하고..돌아와서도 고생하고..   현재의 신철이라는 프리미엄으로 투자가치를 펀딩으로 평가해 본다면?    한국시장만 보면 최대치가 250억 정도로 봅니다. 250억이면 관객이 800만명이 들어야합니다. 참고로 150억이면 600만, 50억이면 200만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이 되는데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한국시장만 보면서 800만을 목표로 하는것은 쉽지 않을거예요,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저는 외국시장을 함께 봅니다. 한국에서는 미국시장까지 보고 4~500억의 투자가 최대치인데, "엽기적인그녀 2"의 경우에 600억까지 이야기가 된 적이 있어요, 아시아 시장까지 함께 보고. "로보트태권 브이도 적지 않은 투자가 예상되었지만" 구설수에 오르내리면서 지체가 되고 그랬지요. 아쉬운 점이 있어요.      다시 기회가 된다면 글로벌 영화계에 뛰어들 것인지?   세계로 향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글로벌 시장은 포기할수 없는거지요. 내가 지금도 영어를 계속 공부하고있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지금도 계속 추진하고 있어요. 포기하면 안되지요. 이제는 우리 영화도 세계를 향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어야합니다. 이미 몇 편의 영화는 아시아 시장에서 상당한 성공도 얻었고요.    신철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한국에 외국 영화직배사등도 포함해서 많이 들어와 있는데-   많이 와 있지요.직배사도 많이 와있고 디즈니사도 벌써 몇년전에 들어왔는데, 성공적이라고 그래요. 예전에, 미국영화 직배반대를 위해서 미국에 여러번 갔고 , 스크린쿼터 지키려고 무척 노력했어요. 너무 한꺼번에 들어오면 안되니까요. 그러면 한국영화가 설 자리를 잃는거니까요. 내가 잘 아는 카나다 교수가 그러더라구요. "스크린쿼터, 목숨을 걸고 지켜라, 그거 한번 무너지면 우리꼴 난다. 영원히 찾을 길이 없다."그 말 맞는겁니다. 그때 우리가 무너졌으면 요즘과 같은 한국영화 힘들었을 겁니다. 프랑스도 스크린쿼터 갖고 버티고,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자기들 영화 엄청 좋아하고, 미국영화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자기들만의 눈으로 보는 영화 만들고, 그것이 스크린 쿼터로 다져진 눈인데 요즈음 우리나라 영화도 우리 눈으로 보는 영화 만들잖아요. 한류성 영화지요. 그것이 다시 세계시장으로 목표를 향하기도 하고 일부 성공하기도 하고..그것이 스크린쿼터로 다져진 것으로 볼 수 있는겁니다.      부천영화제가 경영적 마인드를 갖는 영화인으로 처음인것도 같은데, 부천영화제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요? 우선 예산이 50억 정도인데 이 예산이 적절한가요?   그것도 감지덕지지요, 예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능성이 높아지지요. 그러나 그것이 모든건 아니잖아요? 부천영화제가 초기에는 무척 좋았어요, 부산영화제가 칸느 스타일이고 전주가 에술영화, 인디 쪽으로 갔으니까 두 영화하고차별화하기 위해서 판타스틱 영화제로, 그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특화된 초기 한10년은 매우 좋았어요. 시청 앞 영화제 사무실 그러던 영화제가 2005년 정치적인 이유로 집행위원장을 강제로 그만두게 하면서 영화계가 보이콧트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영화제가 표류하기 시작해서 4~5년전까지 이어져왔지요. 영화제마다 지역적 정체성을 갖어야 하는데,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해야하고. 그런데 정치적인 영향에 의해서 영화계에서 차별받는 와중에- 너 갈데가 없어서 거기가서..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부천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적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번 핵심을 놓치면 회복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상황이 바뀌기 위해서는 숱한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과거의 조직위원장, 집행위원장들 심지어 프로그래머들이 힘을 못썼지요.영향력이 크지 못했어요. 영화계의 도움이 없이 프로그래머등 관련자들을 키우는데 어려움도 있었고. 비록 해외에서는 아시아에서 유일한 판타스틱 영화제로 유명하고 기대도 컸지만 잃어버린 영화제의 특성을 찾아가고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런 측면에서 볼때, 부천영화제가 추구하는 방향이 분명하지 않다는 의문을 제기하는데..모티브가 없다는 말도 있고-    부천판타스틱영화제가 초기에 잡았던 정체성은 이제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봐요. 이제는 시간도 달라졌고..환경도 크게 변한데다가 기술적인 발전도 감안해야 합니다.   처음 위원장 제의 받았을 때 부천영화제에 대한 평가는 잠재력(신철 위원장은 potential이란 단어를 굳이 사용했다.)은 있지만 기대치에 못미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잠재력(potential)을 극대화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고  현재는 갖고있는 잠재력의 50%정도가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데..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제 직원들의 잠재력과 능력을 끌어올리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그럼으로서 다시한번 부천의 개성과 정체성을 찾아갈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내 역할이고 부천 영화제가 변화기에 그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위원장직에 대한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현재는 개막식에 가면 부천인지..부산인지 구분이 되지 않지만, 정체성을 갖는 영화제에서는 여기가 어딘지 구분이 가능하게 됩니다. '개막식의 한 커트만 봐도부천의 정체성이 들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그걸 위해서 우리 식구들과 노력하기로 했지요.   그런 맥락에서, 지금 떠오르는 프로그램등이 있나요? 그건 프로그래머들의 몫이지요, 각 프로그래머들의 영역을 인정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그들의 개성 과 능력을 극대화 시켜야지요.   영화제가 프로그래머들의 개성이 아니라 총 기획의도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프로그래머 개인들의 taste나 개성이 모여서 합쳐짐으로서 전체적인 조합이 이루어질수 있을 것이고 그 조합이 일치 될 때 통합된 영상이 나올 것이다. 그 통합된 영상이 개성으로 정체성으로 나올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일이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중에 이견이 있고 이해해가는 과정이 있고 결합이 반복되고 타협하면서 부천이라는 개성이 창조되지요. 결국 이런 모든 과정이 영화제의 역사와 축적된 경험이 되고 그리고 이렇게 정립된 영화제의 정체성을 갖게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영화제 운영자로는 초보니까 나 역시 집행위원장으로서의 경험이 필요하지요. 해외 영화제들을 보면 위원장들의 경력이 수십년 됩니다. 20, 30년 40년 계속하면서 영화제의 개성을 축적해 가는거지요. 예전에 영화사 사장으로 영화제를 볼 때와 집행위원장으로 영화제를 볼 때 전혀 다른 면을 보게되는데. 일례로 선댄스 영화제에 가면 자원봉사자만도 1800여명이 넘어요, 우리는 300여명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저런 참여가 가능할까? 하는 면에 관심이 크게 가는데 영화제작자의 눈은 결코 아니지요.          프로그래머들을 키우는 것도 중요합니다.이야기가 흐르도록 하자, 대화가 막히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믿도록 하자'고 다짐하지요. 감독과 이야기해서 확정했으면 믿어주어야지 그걸 계속 간섭하면 개성이 나오기 어려운 겁니다. 그렇게 볼때 프로그래머 각자를 훈련시키고 능력을 배양하는 작업도 중요합니다.      ["인터뷰 2" 에 계속됩니다]   

남미경 의원, 오늘과 내일을 위한 대화

부천시 시의회에서 가장 온화한 의원 중의 일인으로 손꼽히는 의원으로 지난 8개월간 인상적인 의회 활동으로, 왕성한 지역 활동에 참여한 의원으로 여러 여야 의원이 인정하는 남미경 의원(비례대표. 재정문화위원회)을 부천시의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남미경 자유한국당 시의원   제8대 부천시의회에 비례대표로 처음 입성한 남미경 시의원(자유한국당)의 정치경력은 짧지 않다. 2003년 아파트 연합주택 대표조합장으로 부천중동역 푸르지오 사태를 해결하고 분쟁아파트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일반분양까지 완료한 5년여간의 긴 여정을 이끈 투사이며, 2007년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협의회 위원으로 정치에 입문, 2010년의 시의원 당내경선 및 2016년의 보궐선거(부천시 바 선거구)에 출마한바 있는 정치,사회적으로 오랜 경험이 있는 지역인사이며 그녀 스스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할 정도의 능력을 갖는 음악전문가 이기도 하다. 인하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함으로 교과과정을 이수하여 2급 중등과학교사 자격증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나 보육교사(2급) 및 요양보호사 자격증 등을 추가로 갖추는 것을 보면 열정과 적극성을 이해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강력한 우파에 속하는 남 의원은 본인의 소극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 차명진 전 의원과 함께 친김문수계열에 범 황교안 계보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페이스북등에 정치적 의견에 대한 표시를 함에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하는 것으로 중앙에 알려진 몇 명의 시의원으로 꼽히고 있다. 문화예술 특히 음악에 깊은 조예를 갖고 있어 2019년 부천시 예결위에서 부천필의 독일공연 필요성을 강력히 지원 이를 전액 예산에 반영하는 뚝심을 보였다.      2019년 부천시장 연두 동사무소 방문에서 주변의 눈초리를 무시하고 20여개 이상의 동 방문에 함께 참여하여 남의원의 행보에 대한 기대와 의구심에 대한 의견을 분분하게 하였다.   의원생활 8개월이 되는데 소감이랄까..   의원생활의 기준이 "부천시민을 위한.."으로라는 기본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부천시민을 위한..” 에는 “판단의 기준이 됨은 물론 행동의 기준도 되는 것으로 현재까지는 이 기준에 변함이 없다.” 이에 덧붙여 “이 기준은 내가 30여년동안 부천시민으로, 부천에 거주하는 한 사람으로서 살면서 얻은 것이기에 이 기준에 변함이 있는 경우 의원생활에 미련은 없다.” 따라서 의원이기 이전에 부천시민이고, 시민으로서, 또 시민의 이웃의 한 사람으로 부천시민을 위한 여하한 활동을 함에 있어 정말 좋은 도시 부천의 사람으로 살기를 바란다 .”   부천시장에 대한 인상과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하면?    우선 내가 비례대표인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지역구를 갖고 계신 의원님들과 다르게 부천시 전역의 문제에 자유롭게 다가 갈 수 있으며 또 시민과 호흡하는데 불편함이 없어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초선의원에게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진행된 부천시장의 동 순회에 20개동 이상을 동행 한 것은 크게 도움이 되었다. 당연히 시장의 모습을 꾸준히 보면서 비교하는 기회도 있었고 시정에 대한 전체적인 구조이해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번 동 방문회를 통해 시장님의 시민과의 대화중에 특히 느낀 것인데, 내 생각에는 시장님이 토론하려고 하지 말고 귀를 기울이고 가능한 많이 들어주었으면 했다. 어떤 경우 시민과 1:1 토론회처럼 진행했는데 그 모습이 설득력과 무관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장 시장의 직업적 경력에서 나온 자연스러움이라 할까, 장 시장이 시민을 설득하려는 듯 한 인상을 많이 느꼈다. 다소 공격적이랄까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인 설득 노력이 안타까웠다.   또 장시장이 전임자의 업무에 너무 끌려 다닌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광역동도 그렇고.. , 예술회관도 그렇고..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도 그렇고.. 과연 장덕천 시장의 독자적인 그림이 무엇인가 찾게 되는데 선명한 그림을 볼 수 없어서 다소 답답한 마음이 있다. 오히려 당면분야와 이전의 프로젝트사이의 틈새정책에 불과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연립건물 등의 지하를 공영주차장화 하는 주차장의 Block화와 같은 참신한 정책도 이와 같은 관점으로 치부될 가능성마저 있어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부천시만의, 장덕천 시장의 특징을 갖는 커다란 밑그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부천시의 대표적인 논란거리가 광역동 문제이고 이에 대한 분석과 반대가 만만치 않은데, 의원님만의 시각에서 본 것은?   현재의 광역동 문제는 시의 분명하지 않은 목적설정과 일방적인 계획에 원인을 찾을 수 있으나 지난 수년간 지속되어온 광역동 문제에 대하여 오피니언 리더들인 소위 지역 유지들과 주민자치회로 대별되는 시민들도 그 원인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주민자치위원 및 각 단체들은 시 행정부의 공무원들과의 마찰을 껄끄러워 해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나타내지 않았고 일반 시민들은 자신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불편함이 없는 상태에서 광역동 문제에 대한 개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광역동 시행과 같은 시행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이러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장기간 진행되어 지금의 문제 많은 광역동이 시행되기 직전인데 여러 가지 당면문제의 해결이 없는 광역동 시행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게다가 광역동의 구획이 실생활에 근거한 생활 주도적 행정구획으로 보기에는 여러 면에서 부족하고 오히려 정치적인 구획으로 볼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볼 때 현재의 인위적 구획은 앞으로 오랜 동안 문제 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원미동을 “부천동”으로 명명하는 것부터 동사무소의 위치 등 각 동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서 “주민자치협의회“를 필두로 광역동체제의 조기시행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에 대하여 충분히 공감하고 이를 지지한다.   나는 부천시가 이 문제가 많은 “광역동체계”의 조기 시행에 매달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시 공무원의 이해관계로만 분석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이외에 광역동 시행에 대한 필수적인 이점이나 기본적인 필요성을 찾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부천시 특유의 독립적인 논리개발의 정당성이 정립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부천시가 전국 최초로 광역동의 시행을 진행하여야 하는 논리적 정당성은 어디서 근거한 것인지 동의할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   시행에 대한 홍보는 있는데 시행하여야 할 필수적 요건에 대한 정당성과 그 요건이 무엇인지 에 대한 홍보는 없다. 편리하고 실용적이라는데 무엇이 편리해 지고 어떤 것이 실용적이라는 것인지에 대한 실체적 근거가 없다.   시 행정 질의중인 남미경 의원    문화예술회관 건립이 확정되어서 이제 공사가 시작될 시점이 되었는데,   건립지점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겠다. 현재의 건립 지점에 완공된 후 이 지역에 대한 교통량의 집중등 문제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단한 혼란이 분명히 예상된다. 저 창밖을 보자 , 현재도 각종 고층 건물들이 솟아오르고 계획된 고층 건물의 수가 절대 적지않다. 이미 포화된 현재의 교통 혼잡에 더하는 이런 계획의 타당성에 누가 공감 할 수 있을까? 문화회관이 완공된 후에 시청이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오지 않을까? 오히려 현재의 시민회관 지점에 또는 여월동 지역에 건립하는 것이 훨씬 낳을 것으로 생각한다.   부천시는 문화회관 건립 후 충분한 관객의 동원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이유를 모르겠다, 서울시의 관객을 어떻게 부천으로 유인 할 수 있는지, 인천시, 시흥, 광명시의 관객에 대한 합리적인 관객유치에 대한 계획이 검토 되었는지?   부천필의 서울 공연에서 상당한 관객동원에 성공했음을 지표로 내세우기도 하는데 서울시 내에서의 문화 활동과 그 관객들이 부천시에 와서 부천시의 문화예술에 동참하는 것과 같은 비교평가를 내리는 것에는 늘 괴리가 있었다. 그들에게 왕복 2시간에 걸친 시간적, 공간적 소모에 대한 평가는 정확한가? 이와 관련하여 시에서 주장하는 문화예술회관의 건축 목적에 대한 부천시의 지리적 입장을 검토해 보면 부천시는 문화예술회관 건립과 수반하여 컨벤션센터 와 부천시의 제반 문화행사 유치에 필요한 적정수준의 호텔유치가 동시에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르는 부수적인 면에도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문화예술회관의 건립에는 회관 건설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좀 더 세밀하고 효율적인 계획이 첨가되어야 할 것으로 보아 금년도 회기에는 이점에 대해 따져볼 생각이다.   의원에 따라서 개인적으로 시와 의회를 정의하는 관점이 다른데, 의원님의 관점을 표현하면,   시 행정을 시행정과 시장을 가장역활을 하는 남편의 역할 로 볼 때 의회는 어머니의 역할 로 볼 수 있다. 실행하는 역할 과 이를 지원, 협조하는 형태로도 설명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의 행동력에는 얼마간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을 수 있다. 의회는 가능한 시의 위험성 부담을 완화하고 그 위험성의 실재적 출현 감소를 위해서 협조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시 행정부 와 의회간의 의견교환 과 협력체제의 구축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행동 과 견제 , 의견의 개진 과 결심에는 늘 충돌이 있게 마련이고 이 충돌이 효과성이나 효율성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충돌은 어떤 경우 독선 과 아집을 낳게도 하고 일방적인 흐름으로 상대적인 폭력적 저항을 낳게 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부천시의 미래에 대한 커다란 밑그림을 찾을 수 있는가? 나는 부천시가 부천시와 부천시민을 위한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기를 희망한다. 미시적인 틈새계획이 아닌 거시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를 위한 노력을 한다면 당을 떠나서 당의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동참 할 의사가 있다.   의회가 시 행정의 발목을 잡는 것은 옳은 결정이 아님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시 행정이 의회의 협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행정을 하는 것은 독선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모든 행정의 실행은 의견교환 과 충분한 검토에 근거한 협조가 필요한 것임을 공감할 때 시와 의회의 충돌이 경감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시장의 동사무소 순시에 동행한 것과 같이, 개인적으로도 시의 행정에 협조할 의사가 있고 나 자신은 늘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시가 의회의 협조를 예단하고 무시하고 의회가 이에 대하여 개혁을 위한 메스를 댈 경우 충돌은 불가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타협을 통해 합의에 이르고 이러한 합의가 효율성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볼 때 시와 의회의 활발한 의견 교환은 타협과 성취를 위한 중요한 과정임을 서로가 인정해야 할 것으로 본다.   부천시의 문화발전에 대한 의견은? 작년에는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 부천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베를린 공연을 관철하시기도 했는데..   부천의 문화 와 예술에 대한 관심은 매우 크다. 가능한 모든 부천시의 문화행사에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비례대표니까, 부천시 전역구 의원으로 생각하고 크던 작던 기회가 되는대로 참여한다. 많은 경우, 특히 비교적 규모가 작은 행사에서 당황될 정도로 크게 환영도 받는다.   아직 의원으로 활동한 기간이 일천한 관계로 부천의 방대하고 다양한 문화 활동에 충분한 검토가 부족한 상태이고 또 부천문화재단, 한국만화영상진흥원등 규모가 큰 산하기관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충분하지 않다. 물론 이들의 비효율성이라던가 비 합리적인 제반 문제에 대한 인식은 앞으로 더욱 연구하고 분석해서 이들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때 대책을 강구해볼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시간을 갖고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최근까지 어려움을 겪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문제가 신임 신종철 원장의 부임으로 개선되고 새로운 성장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아 신임 원장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부천시가 오랫동안 지원해온 이 기관을 특히 지켜보고 있다.   부천 산업 경제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한데 이에 대한 관점이 어떠한지?   재정문화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당연히 부천시의 산업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부천도시공사”, “부천산업진흥재단”을 필두로 부천의 도시재생 과 도시재개발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분야보다 크다. 특히 일자리 문제, 청년 일자리를 포함해서, 에 대한 관심이 많다.   나의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재개발, 도시재생에 대하여 폭 넓은 지지의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책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시민을 위한 것이라는 원칙이 있어야 된다는 점이다.   도시재생 그리고 도시재개발은 부천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인데 공청회, 설명회 등의 빈도 수가 너무 적고 참여도가 그리 높다고 보기 어렵다. 도시재생 과 도시재개발등에 정치적인 고려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경향에 대해 우려감이 있다. 도시재생이나 재개발에 있어 지역 편중성이나 실현의 편의성에 우선하는 집행도 염려가 된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 질 경우 난개발이 되고 도시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위험을 낳을 수 있다. 이 점을 예방하여야 한다.   “부천도시공사”의 경우 도시의 능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부천산업진흥재단”의 경우 부천의 미래산업에 대한 첨병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조직을 키우는 것에 동의한다. 이 기관들이 앞서서 부천의 미래를 선두에 서서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부천도시공사가 현재의 HS를 대체하여 부천의 자족적 건설계획을 수행하는 것은 부천시의 도시재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오랜 시간 회견에 응해주신 남미경 의원님께 감사합니다.     봉사활동중인 남미경 의원    

부천의 애니메이션 자산 김성일 프로그래머

2018년 20회로 성년을 맞은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은 세계적인 영화제인 "얀시" 와 "자그레브"에 버금간다고 국제 만화영화계로부터 인정받는 만화영화제가 되었다. 이를 반증하듯 2018년부터는 단편만화분야에서 아카데미 영화제 지정 영화제가 되어 국제적인 인식도가 한층 높아졌다 . 페스티벌이 이렇게 되기까지 만화영화계 및 부천시 만화애니과 관계자의 땀과 노력이 터전이 되었으며 항상 그렇듯이 여기에도 부천시의 꾸준함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이 되도록 핵심적인 역활을 해온 인물이 있다.  김성일 프로그래머는 2009년부터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 의 프로그래밍을 책임져온 핵심 인물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국내외 영화계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한 몇 안되는 프로그래머로 정평이 나있고 국제적 영화제의 흐름에 상당한 식견이 있는 독보적인 전문가로 널리 인정되고있는 인물이다.   하나의 영화제를 기획, 운영함에 있어 해외 작품을 도입하고 국내작품을 해외에 소개하거나 이와 관련한 업무, 해외 감독, 배우등의 초청과 심사위원 섭외등을 수행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의 규모에 따라 다수(보통 3~8명)가 필요 함에도 불구하고 부천의 경우는 예산상의 문제와 상대적으로 소외된 행정지원으로 인하여 한명이 이를 담당해 왔었다. 이것은 프로그래머 당사자에게는 과도한 업무량이 되었을 것이나 오히려 업무의 집중을 갖게했을 것이고 업무 수행의 연속성을 갖고오게 할 뿐만 아니라 전문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하는 폭 넓은 인적 네트워크의 구축이 가능하게 하였다. 이런 점에서 김성일 프로그래머는 부천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부천시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키운 부천시의 자산일수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BIAF"의 성공에는 그의 깊은 인적교류에 의한 요인도  커다란 역활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같이 부천시가 문학과 예술에 대하여 방임에 가까운 자유스러움을 제공한 결과로 초기부터 자신들의 능력을 키워온 전문가는 재단 창립때부터 열정을 쏟아온 손경년 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위시한 심재연 본부장과 문화재단의 직원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이용철, 김선미 본부장, 백수진 정책팀장 그리고 박물관의 정미현 학예실장등 부천시가 키워온 비관료 출신의 창의적인 문화적 인적자산이 의외로 많다. 김성일 프로그래머와 인터뷰를 진행하는동안 애니메이션 영화계에 대한 장황한 인물평을 듣게 되는데 그 많은 사람들, 관련자 그리고 애니메이션에 대한 해박하고 깊은 지식을 접하게 되면서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집요한 노력의 일면을 보고 다시 놀라게 된다. 기자와의 대화속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이슈, 변화와 도약 그리고 이어지는 연관 작품의 나열등으로 대화의 논점을 쉽게 정리하기가 난해할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 당연히 주장에는 정리와 혼돈이 병존하고 현실과 꿈 그리고 희망이 섞여들어 주제가 명확하지 않을때도 있다. 그러나 함께 대화하는 동안에 꿈과 희망에 대한 공감에 젖어드는 나른한 즐거움이 수반된다.  기자는 김성일 프로그래머를 2018년 9월 "제20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기자회견장에서 처음 보았고 이후 여러번 대화를 나누면서 누가 이사람을  좀 진정시켰으면 하는 바램이 일정도로 그의 날개는 꿈과 영혼을 매달고 언제나 비상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단편영화제의 일차 지명권을 얻은 것에 불과한 오스카영화제를 이야기 할 때 그의 눈은 오스카 본상을 보고 있었고 머리는 본선 지명권과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프로세스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현실에서 오스카상의 지명권을 유지하기위한 노력을 이야기하며 최근의 애니메이션 추세에 대한 설명을 붙이고 있었다. 그의 설명에는 10년전의 또는 그 이전의 사람들을, 죽었던 살았던,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이야기하듯 끌어내는 재주를 지녔고 이는 그의 탁월한 설득력에 힘을 불어 넣었을 것이다. 누가 이 열정과 노력에 찬물을 부을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의 예술성에, 일반 영화와 같은 흥행성에 더하여 다큐멘터리가 갖는 진실성과 사실성을 추구한다. 갖고있지 못한, 어쩌면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 모든 것들에 아쉬움을 갖고 그것들의 실현을 이루는 방법을 찾는다.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야기 하면서.  누가 그의 열정에 대답할수 있을까? 기자가 알고있는 많은 사람들이 김성일 프로그래머에 대한 평가는 "열정으로 뭉친 남자"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허상을 스토리로 화면에 구체화하기를 바라고 사실의 영상화에 대한 끝없는 환상을 쫒는 한편 애니메이션이라는 경계선 없이 날아오르는 변화, 이 모든것을 이루려는 ,환상일 수도 있는, 희망에 대한 김성일 프로그래머의 끊임없는 추구를 부천시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즐겨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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