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15(수)

김상희 부의장, 「주택임대차보호법」 발의! 코로나19 여파로 주거비 부담 커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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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 대한 관심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조양일 BIFAN 부집행위원장을 만나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생활속 거리두기가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부천시티저널은 기대와 우려 속에 열리고 있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현장에서 조양일 BIFAN 부집행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조양일 BIFAN 부집행위원장      부천시티저널: BIFAN이 부천의 큰 행사인데 코로나19 때문에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예년하고 달리 코로나19 때문에 영향을 받거나 어려움이 없었는지요?  조양일 부집행위원장: 작년에 한국영화 100년이고, 올해가 101년이고 해서 준비를 나름 한다고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 29일 그 무렵에 코로나19가 와서 금방 끝나지도 않고... 그리고 5월5일 연휴기간에 다시 한 번 창궐했고. 전주에서는 조금 부침을 겪었지만 4월에는 조금 숙으러 들어서 하반기에 열리는 우리 영화제까지는 괞찬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살짝 했습니다. 그런데 백신도 늦어지는 것 같고, 깐느 영화제도 5월이었는데 프랑스는 더 큰일이 났었구요. 그래서 조심조심 하면서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안전한게 최고인거 같구요.  부천이 경기도 중에서 상당히 심한 거라서 더더욱이나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걱정해주시는 분들은 “이거 정말 할 수 있는가?” 이런 말씀도 많이 하셨고 또 어떤 분들은 오셔서 “영화제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 침체되어있고 너무 오래가니까 해야 되지 않을까?”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대 반 우려 반, 그런 속에서 하고 있습니다.   출입구 방역데스크에서 QR체크인을 완료한 뒤 상영실 입구에서 안전팔찌를 지급하고 있다.   부천시티저널: 개막한지 절반 이상 지났는데 성과는 어떠신가요?   조양일 부집행위원장: 자세한건 보도 자료로 드릴텐데요, 일단 온라인에서 성과 몇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올해 시작한 괴담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짧은 기간인데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어요. 그래서 대단히 감사했고, 또 하나는 한국 단편영화 부문도 작년보다 더 많은 편수가 응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제에 대한 관심은 사그러 들지 않았다. 전주든 다른 데서도 이렇게 하셨어야 했는데 싶습니다. 그런데 대한 갈망이 부천영화제에서 표현이 된 것 같구요.   조양일 BIFAN 부집행위원장   저희 영화제 중에 환상영화학교 라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많은 분들을 모셔야 되는데 이번에는 자가 격리 14일도 있고, 돌아가면 또 자가 격리 14일 해서 한 달을 격리해야 되고 해서 외국 분들을 못 모신 상태에서 모든 진행을 온라인으로만 했습니다. 오프라인 없이. 이제 비즈니스 미팅을 하거든요. 어제 신청을 받아보니까 정확한 숫자는 따로 홍보팀에 문의해주시고요, 신청이 약 1010여건이 왔어요. 오늘 아침에 보고를 받았는데 1,000건이 넘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부천시티저널: 작년보다 눈에 확 뜨이게 많이 늘었나요? 조양일 부집행위원장: 작년에는 오프라인에서 만났기 때문에 집계가 안돼요.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저희가 중앙에서 집계를 해야 돼요. 왜냐하면 시간이 다 다르고, 어디는 낮 시간이고, 밤 시간이고, 새벽 시간이고 하기 때문에 이걸 한 곳에서 다 보게 되는데 그 중에서 600여 미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놀랄만한 숫자가 아닌가 합니다.   환상영화학교 포스터 부천시티저널: 환상영화학교는 일대일로 매칭이 되나요? 조양일 부집행위원장: 일대일이나 회사대 회사나 프로젝트 관련해서 유통사도 그렇고, 투자사도 그렇고 감독님, 작가님들 이런 미팅 좀 맺어달라는 신청을 저희가 받거든요. 그런데 천 건 이상 신청이 들어오고 600건 이상 미팅을 했다는 건 큰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   부천시티저널: 오히려 온라인으로 해서 장벽이 없어진거나 마찬가지인데요.  즉 오프라인이 여기 참석하신분만 대상으로 한다면 온라인은 다 접속이 가능하니까 그래서 더 성과가 좋았던건 아닐까요? 조양일 부집행위원장: 온라인이니 좀 뜸하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오프라인으로 대면하면서 하는게 축제 잖아요. 그런 페스티발의 기능이 없는 상태에서 가능할 수 있을까 했는데 예상 밖으로 성과과 좋았어요. 부천영화제를 통해서 온라인 요소들이 많이 발현이 된 것 같아서 저희도 놀라고 있어요.   부천시티저널: 홍보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오프라인으로 하는 거보다 온라인으로 하니까 홍보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요. 조양일 부집행위원장: 저희 홍보팀에서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영화제 개막 몇 일 전부터는 보도자료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옵니다. 언론사에서 다들 받아보시고 감사하게도 잘 써주시는 것 같구요. 그리고 처음에는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아니 이 시국에 웬? 사람모아가지고 뭐 하겠다고? 그리고 저 밑에 부스도 치워야 되는거 아니냐. 사람들 줄 서면 위험하다' 라고 우려가 많았어요. 저희가 거리두기라든가 이런 거 잘 지키고 있구요. 이제 폐막까지 이틀 남았습니다. 그리고 폐막이 끝난 게 아니고 이후에도 14일간 더 봐야 될게 아닌가 합니다. 딴데서 확진이 되었다해도 영화제에 오셨으면 그 분들 다 체킹할 수 있게 지금 다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14일 후가 되어야 그때가 영화제가 끝나는 기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양일 BIFAN 부집행위원장 부천시티저널: 폐막식 행사는 따로 없는건지요? 조양일 부집행위원장: 저희가 개막식도 없이 ‘개막작 상영회’로 했잖아요. 폐막식은 예년부터 수상작들, 수상자들, 그리고 관계자분들 좀 모셨는데 이번에는 딱 시상자들 모실 수 있는 공간밖에 안돼요. 그리고 폐막식에 단편 시상도 많이 했는데 올해는 어제 이미 단편 시상식을 했습니다. 협소한 장소에서 그래도 거리 두고 할 수 있게 폐막식을 위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부천시티저널: 레드카펫이나 개막식이 없어서 불만들은 없으셨나요? 조양일 부집행위원장: 했으면 큰일날뻔 했습니다. 바깥에 레드카펫을 설치하면 분명히 주변에 팬들이나 시민들이 거리두기 안하고 몰렸고 통제가 안됐을 텐데 하는 게 맞느냐, 그래서 상영관 안쪽에 만들려고 했는데 상영관 안은 조명 시설도 그렇고 너무 협소했습니다. 지금 고려호텔에 포토월 세워놓고 있거든요. 죄송하지만 아주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부천시티저널: 어려운 시기에 운영하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조양일 부집행위원장: 여하튼 이렇게 영화제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천시티저널: 성공리에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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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의회 최초의 여성의장 제 8대 김동희 의장을 만나다.

지난 8월 19일 부천시의회 의장실에서 김동희 의장과 본지 이재욱 논설위원의 인터뷰가 있었다. 김동희 의장의 배려로 편안한 분위기 속에 이어진 담소를 겸한 대담의 주요 내용을 발췌 정리했다.   김동희 시의장      안녕하십니까.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8대 부천시의회 최초의 여성의장으로 피선 되셨습니다. 그리고 의장으로 재임하신지 도 1년이 경과 됐습니다. 그 동안의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장으로 선임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의장이 되고 첫 의사봉을 잡으면 서 부천시의회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고 부천시민의 기대와 욕구에 부응하는 훌륭한 의 회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꾸준히 여야가 서로 협조하며 일하는 좋은 의 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데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동안 여야 가 약간의 이견은 있었지만 7대에 비해 나름 큰 충돌 없이 순조롭게 잘 지내 온 것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부천시의회 최초 여성 의장인 저를 비롯해 이번 8대 여성의원 비율은 50%에 가깝습니다. 여성의원들의 의회 활동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대변자 역할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동료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충실하게 지원할 것이며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의정에 반영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의회 의장으로 취임하셨을 때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에 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책의 입안 단계부터 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면밀히 분 석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어 의원 한 분 한 분이 주민과 소통하며 지역사회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8대 부천시 의회의 전반기에 시의회가 주민과의 소통을 통한 지방자 치발전이 바람직하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의장님의 평가는 어떠하신지, 또 미진한 것 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 8대 부천시 의회는 전체 28명의 의원 중 초선의원이 20명으로 70%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초선 의원들의 열정과 패기, 그리고 재선 이상 의원들의 연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어느 때보다 화합과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의회의 분위기 가 조성됐다는 평입니다. 김동희 시의장 또한 제8대 부천시의회는 정책발전연구회, 열린광장 포럼, 지방분권연구 포럼, 청년미래 포럼 등, 4개의 연구단체를 구성하여 외부인사 초빙강의, 공청회, 자료 출판 등 공부하는 의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의원 조례발의는 물론 정책개발을 통한 입법 활성화를 도모할 뿐더러 개인의 지식과 교양의 함양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천의 숲(생태)을 관찰하고 조사하는‘숲생태 보전연구회’라는 의원연구단체도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심도 있는 분야별 연구 활동과 시민과의 소통을 통한 정책개발에 매진하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시민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토론회나 의원연구단체 활동을 더 많이 활성화해야 할 것입니다.     부천시 시민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함에 있어서 부천시가 집행하 는 창작활동지원액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의견이 문학, 예술인들 사이에 팽배한 것으 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예산이 쪼들리는 시 집행부나 문화 경제국이 이와 같은 예산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의회가 의안발의 등을 통하여 창작발전기금을 조성 한다던가 또는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특례조례 등을 제정한다면 문화-예술인들의 커다란 호응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에 대한 가능성이 있을까요?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에서는 문화예술인 창작활동을 위해 다양한 지원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부천시문화예술발전기금(1억 3천만 원) 외에 문학관련 사업으로 일인일저 책 쓰기 등 15개 사업에 2억 2백만 원, 수주문학제 5천만 원, 신진작가 지원 사업에 2,820만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천문화재단에서 하는 사업 중에도 창작활동 지원 사업으로 청년예술가S 4,500만원, 우리동네 예술프로젝트 공모지원 사업에 1억 1천만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발전기금의 경우 50억 원을 기금으로 운용으로 1년에 1억 3천만 원의 이자를 받고 있습니다. 이율이 낮아 예산법무과에서는 기금은 폐지하고 일반회계 예산을 세울 것을 권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천시 재정자립도가 2019년 본예산 기준 34.4%에 그치고 있습니다. 향후, 재정 상태가 좋아지면 문화특별시 부천의 명성에 걸맞게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에 더 많은 예산을 지원토록 하겠습니다.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 의회의 조례제정 등에 있어 의원발의의 수가 매우 적거나 어떤 경우 발의된 조례의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에 대한 의장님의 견해 는 어떠신지요?더불어 의회구성이 여당의 점유율이 지나치게 높아서 시 집행부가 제출한 조례 등에 대한 심의가 섬세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영상문화단지라던가 문화예술센터 건립 등에 대한 의회의 심의가 졸속적으로 처리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의장님의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8대 부천시의회 의원들이 지난 1년간 발의한 조례는 26건으로 앞선 제7대 의회가 같은 기간 발의한 7건에 비하면 3배 이상 많습니다. 단순히 조례 제정 건수만을 비교하는 것을 떠나 그만큼 입법 활동이 활발했고 시민들의 요구 사항에 따른 필요한 조례들이 적절하게 제정됐다고 봅니다.    내용의 충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조례라는 것이 항상 독창적이고 획기적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모법에 의해 개정해야만 하는 조례도 있고 현 상황에 맞게 변경되어야 할 부분을 잘 짚어주고 정비해 나가는 조례도 필요합니다.   김동희 시의장 문화예술회관 건립, 영상문화단지 졸속처리 질문에 대한 문제의 핵심은 여대야소의 우려와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여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서로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견해에 귀 기울이는 경청이 먼저입니다. 여야가 대화를 통한 타협을 끌어내는 정치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야당 의원들과도 현안사항이 발생하면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회관 건립은 부지 선정에만 15년이 걸렸고 설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 속에 지난 6월에 첫 삽을 떴습니다. 오랜 시민들의 숙원 사업인 문화예술회관은 부천시만의 문화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리려 합니다. 클래식공연 외에도 365일 보고 즐길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문화도시 부천의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상문화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부천의 마지막 남은 노른자 땅으로 문화 및 숙박시설을 모두 갖출 수 있도록 통합 개발하여 관광과 문화산업을 연결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도시교통위원회 활동 때에도 아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이재욱 논설위원과 김동희 시의장  의회 의장으로서의 바람직한 역할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앞으로 남은 기 간중에 의장님께서 특히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시는 부문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남은 임기 동안에도 안정적인 의회운영과 더불어 의회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신뢰받는 의회, 일하는 의회가 되도록 의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시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의회를 이끌어 나가고자 합니다. 집행부와 시의회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정작 시민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노력은 효과도 없고 지지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소통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것은 엄정하게 가려서 진정 무엇이 시민을 위한 것인지 꼼꼼히 살피는 의정활동을 펼쳐 가겠습니다.   또한, 현재 부천시에는 대장동 3기 신도시, 영상단지 조성, 역곡 북부역 등 크고 작은 대규모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업들 대부분이 지금부터 향후 5년이 부천의 백년대계를 좌우할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기간 동안 이런 대규모 사업들로 인해 크고 작은 갈등과 난제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집행부와 시의회 간 소통을 통해 당면 과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동희 시의장     부천시민들에게 혹은 시 집행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 떤 것들이 있을까요?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배려로 지난 1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부천시의회 28명의 의원들은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를 되돌아보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의정활동에 전념할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또 한 번 더 다짐하고자 합니다.   김동희 시의장과 이재욱 논설위원 질책도 좋고 따뜻한 격려의 한 말씀도 좋습니다.  진정한 민의의 대변 기관으로 부천시 지방자치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장시간 할애해 주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의장님을 비롯한 모든 의회 의원님들의 선전과 건강을 기원 드립니다.     인터뷰 진행: 이재욱 논설위원  정리 : 부천시티저널 편집부                                   

세상은 꿈꾸는자의 것이다 -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인터뷰 -2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한국의 영화역사에 있어서 기획제작을 최초로 도입한 선구적 영화제작자로 "엽기적인 그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등 수많은 흥행작을 만들어 온 영화제작자이며 한국형 블록버스터 제작을 시도한 선각자로 볼 수 있다.  비록 수차례의 대규모의 영화제작을 위한 노력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 대한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야하고 그가 이룩한 토대위에서 성장한 한국영화의 제작관행이 오늘날 외국의 영화와 경쟁하고 최근의 동남아시장의 확대에 기틀이 된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이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 그와의 인터뷰 2회를 연재한다.      우리나라에도 영화제가 많지요? 170여개가 넘는다고 하던데요.   세계에는 몇천개의 영화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판타스틱을 주제로하는 영화제로 브뤼셀(Brussels) , 스페인의 시체스(Sitges)가 유명합니다. 물론 우리 부천도 판타스틱영화계에서는 유명하지요. 우리도 별써 23회를 기록하는 오랜 역사를 갖게 되었어요,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아시겠지만 “칸느 영화제“ 기간 중에는 물가도 뛰고 호텔비도 50%이상 뛰어요. 도시 경제에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지요. 로버트레드포드가 만든 선댄스 영화제에는 젊은 애들이 많습니다.스텝진이던, 자원봉사자 그룹이던 활기가 넘치고 이 인원들이 또 이어져서 새로운 맨 파워를 갖게합니다. 우리 부천영화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키워야 되고. 크게 생각을 해야지요. 거시적으로 봐야되요. 부천은 대도시인서울과 인천 사이에 끼어있고 도시반경도 적습니다. 머무를 수 있는 도시가 되지 못하는 약점이 있어요. 그래도 우리 부천만이 할 수 있는 유인책이 있어야 합니다.   일본 요리사 중에 장사 안되는 곳에서만 개업을 하는 요리사가 있대요.그 사람은 그 곳에서 장사를 키운다고 해요. 물론 그 가게를 파는지 어떤지는 별개로 하고요. 나도 영화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면 관객이 온다“는 믿음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비젼이 있는 곳에 꿈이 이루어 지듯이 우리 부천이 비젼을 갖고 충실한 계획을 수행하면 미래가 있다고 봐요.   그렇다면, 위원장님께서 5년을 맞고 운영한다면. 그러면 5년뒤의 부천 영화제의 그림을 그릴수 있을까요?  이번 해보고, 그리고 난 후에 그때 얘기합시다. 이번이 처음이니까.  오늘,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나면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요?          후원은 어떤가요? 경제도 안 좋다고 그러는데요.   후원담당자에게 물어봐요 “책을 만드는데, 그 책을 함께 만들고 싶게 작업하는지?” “ 누군가 그 책 만드는 걸 보면서 따라서 해보고 싶게하는지?” “참여하고 싶게 해야지요, 같은 그룹이 되고 싶게 해야지요.” 난 습관적으로 하는 것 좋아하지 않아요 자랑거리를 넣어야지요, 그런걸 찾아야지요, 그래야 후원도 있고 도움도 있겠지요. 물론 우리 팀원들이 그렇게는 안했지요, 그렇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잠재력을 끌어내야합니다. 그 잠제력을 끌어냄으로서 미래를 볼 수 있는거지요.   부천사람이 부천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느끼도록..영화제가 그걸 끌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갖어야 할 목표가 있고 또 그런 목표로 일을 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중에 후원도 함께 하겠지요. 지금까지는 대체로 잘 진행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부천시민이 자기 돈을 내서 영화제에 참가하는 돈이 외지사람들의 돈보다 많을 것으로 보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울이나 인천 등 수도권의 사람들도 오겠지만 아직까지는 부천시민이 더 많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데이터를 축적해 봐야겠지만 예년의 경우 전체 좌석점유율이 6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부천시민의 참여가 우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영화제가 갖는 의미가 우리만의 축제가 아니고 이름에서도 보듯이 국제적인 행사라는 측면에서 볼때 부천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에 더해서 수도권의 시민들이 부천을 더 많이 찾도록 하는 것은 부천의 경제, 사회등에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위원장님께서 영화제 운영하는동안 자신의 영화제작과 충돌할 수도 있고 선택하여야 할 시간도 있을수 있을텐데. .  처음에 영화제 제의 받았을때 못하겠다고 했어요.."영화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랬더니 프로그래머들도 잘하고 그러니까 옆에서 두고 보고 조언을 하면서..뭐 그래라 그래서 왔는데..와서 보니까 일이 밑도 끝도 없는 거예요. 뭐 하면 할수록 일은 더 많아지고. 지금은 매일 출근해요, 그래도 여전히 바쁘고. 속은거지요. (웃음) 지금은 영화하느라고 쌓아두었던 여러 곳에서 , 특히 미국의 친구들,프로듀서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제 영화고 남의 영화고 필요한 모든것을 갖다씁니다.   위원장님께서는 우리나라 기획영화의 선구자이면서 흥행기록도 갖고 있으시면서 흥망이 극적이셨는데, 영화에 대한 꿈과 영화제의 운영이 상충하면 어떤 결론을 내게 될까요?  그만두어야지요, 영화제와 영화제작은 전혀 다른분야예요. 그 둘을 병행하는것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에게 이야기 했어요, 내가 오래 못할수도 있다..그런 충돌지점이 오면 결정해야지요.    신성복 기자(왼쪽) 신철 위원장(오른쪽)  사실 요즈음의 영화시장이 많이 변했다고들 하는데요, 위원장님이 보는 시장은 어떠신지요?   시장이 많이 변했지요, 외국의 직배 모델이 일반화 되면서 지금 영화시장은 넷풀릭스, 유튜브같은 배급사, 유통업체에 의한 시장이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크리에이터들의 고민이 있게되는 겁니다. 시장의 흐름이 그렇게 되니까 대기업에 의한 독점 시장화가 지속되니까 크리에이터들이 대기업에 속하게 되는겁니다.   실질적으로 프로덕션은 불확정적이지요. 잘 될수도 있지만, 프로덕션이 평생 한두개가 성공할지 말지 그런데 지속적으로 수입이 될 수 있는 수입구조를 갖으려고 다들 노력하지만 만족한 결과를 얻는데 부족한점이 많아요, 시장도 크지 않지요. 그러다 보니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이들이 유통업자로 변하고 결국 크리에이터들도 대기업에 더욱 예속해 가지요. 시장이 단순화되는건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안되요.   우리나라도 CJ 같은 대기업에 의한 시장이 되고, 이에 대한 공과는 따져봐야겠지만, 어쨋던 이런 기업에 의해 시장이 커졌어요 파이도 커졌는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영화시장이 작아서요. 앞으로 이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될겁니다. 배급업자 입장에서도 크리에이티브 입장에서도요.   영화제가 몇달 안남았는데,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잘 진행되요, 영화제라는 것이 마지막까지 변수도 많고 협상에 따르는 일정등도 많고 늘 살얼음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점점 더 할 일이 늘어난다는 의미지요. 많은 협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공적인 영화제를 기대합니다.

세상은 꿈꾸는자의 것이다 -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인터뷰 -1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990 ~2000년대 한국의 성공적인 영화제작자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89), '엽기적인 그녀' (2001 출시작품중 흥행순위 2위) 등을 제작하였다.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한국영화사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영화사를 차리고 글로벌 마켓에 도전하였다. 다시 '로보트 태권브이'로 새롭게  도전했으나 수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숙제와 가능성을 남기고 후퇴했다. 이후 일본과 중국에서 불법으로 3억장 이상의 VOD가 제작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 "엽기적인 그녀"를 리메이크하는 "엽기적인 그녀 2"를 중국측과 합작으로 제작하기로 한  기획은 중국쪽의 이해할수 없는 여러가지의 이유로 계속 지체되어왔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 주장하는 영화제작자 신철이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은 2018년 8월이다.                           미국으로 가게된 동기가 있을까요?   한국시장에서 성공하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첫 번째 미션이었는데 그것이 1990년 ~2000년대 초에 거의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이후에 한국시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이룬 듯한 느낌도 있고, 한국시장이 좁게 느껴져서 그래서 내 인생에 신의 축복이 더해진다면, 글로벌로 성공하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지요.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일본의 한 스님의 소개로 일본의 게임사 남코(Namco)의 회장이 1억불중 6천만불을 투자하기로 하고 진행했는데 그 당시의 할리우드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습니다.  외국의 기술자들과 연결해서 4년동안 준비했는데 미국 영화계에서의 일의 추진이 험난했고, 여러가지 법적 처리등의 난제등으로 결국 4년만에 철수하게 되었읍니다. (注: 미국영화사 사무실이 4층 404호실이었고 미국으로 간지 4년만에 철수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여러 가지 분석을 했습니다.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서 준비 부족에 대한 후회도 하면서 다시 전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것은 동시에 한국영화의 확산 방안이 될 것으로 보고 전세계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않군요.    처음에 한국 영화계에서 제대로 기획된 영화하나 만드는데 10년 걸렸으니  까, 경험도 있고 한점을 감안해서  대략 4~5년 예상하고 추진했는데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환경도 많이 변한데다가 중국 당국의 관련규정, 허가 절차등이 명확하지 않아서요.   제작자로서 스티븐 스틸버그와 무척 닮은듯한 느낌을 갖는데-   미국 영화계에는 천재들이 많아요.제 경우 기술적인 천재를 아는데..그 친구가 진짜 천재이고 그 밑에 있는 애들도 다 천재지요. 그런 스텝들과 작업하는 스필버그도 천재지요. 대단한 천재라고 봐야지요.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그런데 나는 뭐 돈있는 집 자식도 아니고, 충암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때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영화를 하기로 결심했는데,재수해서 서울대학교 미대에 진학했지요.처음에는 서울대 응시해서 떨어졌지만..  그리고 영화계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 느낀게 있는데 그것은 내가 천재는 아니라는 거예요.그런데 천재가 아닌 내가 영화계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별 수 없지요. 남보다 두배를 더 해야지요.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해요.   스필버그도 고생을 많이 했을거 아닙니까?   스필버그는 초등학교때 이미 8mm촬영기를 갖고 다닐정도였는데 무슨 고생을... 거기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자기집처럼 드나드는 기회를 갖었다는 점에서 조건도 좋았고요. 천재적인 작업자들도 주위에 널려있는데..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제작자의, 국내에 잘하고 있는 제작자들의성공의 원인을 보면?    김용화 감독 같은 경우는 자신이 직접 CGI회사를 갖고있어요.거기에서 다양한 시도를 거친 결과로 성공적인 작품의 조건을 갖추는 이점도 있겠지요. 그런데 성공적인 제작을 위해서는 좋은 원작이 있어야 돼요. 몇 일전에 인터뷰기사를 봤는데 거기서 "시나리오가 전부야, 나머지 것은 전부 장식이야(script is everything, anything else is dressing, just dressing)"그러더라구요.근데 이어서 말하기를 “그런데, 나는 좋은 작가를 살 수 있는 돈이 있어!! 여유가 돼 ! 그러더라구요. (웃음)  영화 '엽기적인 그녀' 좋은 제작자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시나리오가 몰려 옵니다. 그 많은 시나리오중에 좋은 시나리오를 볼줄 알아야 돼요. 물론 감독도 그래야 합니다. 재주있는 애가 시나리오 잘못 골라서 망해요.배우도 시나리오를 잘 봐야지 맨날 망하는 시나리오를 보면 같이 망하는 겁니다 . 성공하는 배우는 시나리오를 잘 봐야 돼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거기서 내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성공할지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못 보면 망하는 것이예요. 재주있는 애들이 사라지는 이유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송광호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 선택이 탁월하지요. 그러니까 성공적인 작품에 함께 작업하는 빈도도 많지요. 성공하는 배우의 조건이 되는겁니다.    위원장님은 몇년간에 걸쳐서 스테디하게 성공했는데-     글쎄요 그때 한국에서 계속하면서 건물사서 그대로 한국에서 있어야 하는데, 미쳐버려서 괜히 미국가서,.고생만 엄청하고..돌아와서도 고생하고..   현재의 신철이라는 프리미엄으로 투자가치를 펀딩으로 평가해 본다면?    한국시장만 보면 최대치가 250억 정도로 봅니다. 250억이면 관객이 800만명이 들어야합니다. 참고로 150억이면 600만, 50억이면 200만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이 되는데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한국시장만 보면서 800만을 목표로 하는것은 쉽지 않을거예요,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저는 외국시장을 함께 봅니다. 한국에서는 미국시장까지 보고 4~500억의 투자가 최대치인데, "엽기적인그녀 2"의 경우에 600억까지 이야기가 된 적이 있어요, 아시아 시장까지 함께 보고. "로보트태권 브이도 적지 않은 투자가 예상되었지만" 구설수에 오르내리면서 지체가 되고 그랬지요. 아쉬운 점이 있어요.      다시 기회가 된다면 글로벌 영화계에 뛰어들 것인지?   세계로 향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글로벌 시장은 포기할수 없는거지요. 내가 지금도 영어를 계속 공부하고있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지금도 계속 추진하고 있어요. 포기하면 안되지요. 이제는 우리 영화도 세계를 향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어야합니다. 이미 몇 편의 영화는 아시아 시장에서 상당한 성공도 얻었고요.    신철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한국에 외국 영화직배사등도 포함해서 많이 들어와 있는데-   많이 와 있지요.직배사도 많이 와있고 디즈니사도 벌써 몇년전에 들어왔는데, 성공적이라고 그래요. 예전에, 미국영화 직배반대를 위해서 미국에 여러번 갔고 , 스크린쿼터 지키려고 무척 노력했어요. 너무 한꺼번에 들어오면 안되니까요. 그러면 한국영화가 설 자리를 잃는거니까요. 내가 잘 아는 카나다 교수가 그러더라구요. "스크린쿼터, 목숨을 걸고 지켜라, 그거 한번 무너지면 우리꼴 난다. 영원히 찾을 길이 없다."그 말 맞는겁니다. 그때 우리가 무너졌으면 요즘과 같은 한국영화 힘들었을 겁니다. 프랑스도 스크린쿼터 갖고 버티고,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자기들 영화 엄청 좋아하고, 미국영화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자기들만의 눈으로 보는 영화 만들고, 그것이 스크린 쿼터로 다져진 눈인데 요즈음 우리나라 영화도 우리 눈으로 보는 영화 만들잖아요. 한류성 영화지요. 그것이 다시 세계시장으로 목표를 향하기도 하고 일부 성공하기도 하고..그것이 스크린쿼터로 다져진 것으로 볼 수 있는겁니다.      부천영화제가 경영적 마인드를 갖는 영화인으로 처음인것도 같은데, 부천영화제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요? 우선 예산이 50억 정도인데 이 예산이 적절한가요?   그것도 감지덕지지요, 예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능성이 높아지지요. 그러나 그것이 모든건 아니잖아요? 부천영화제가 초기에는 무척 좋았어요, 부산영화제가 칸느 스타일이고 전주가 에술영화, 인디 쪽으로 갔으니까 두 영화하고차별화하기 위해서 판타스틱 영화제로, 그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특화된 초기 한10년은 매우 좋았어요. 시청 앞 영화제 사무실 그러던 영화제가 2005년 정치적인 이유로 집행위원장을 강제로 그만두게 하면서 영화계가 보이콧트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영화제가 표류하기 시작해서 4~5년전까지 이어져왔지요. 영화제마다 지역적 정체성을 갖어야 하는데,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해야하고. 그런데 정치적인 영향에 의해서 영화계에서 차별받는 와중에- 너 갈데가 없어서 거기가서..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부천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적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번 핵심을 놓치면 회복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상황이 바뀌기 위해서는 숱한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과거의 조직위원장, 집행위원장들 심지어 프로그래머들이 힘을 못썼지요.영향력이 크지 못했어요. 영화계의 도움이 없이 프로그래머등 관련자들을 키우는데 어려움도 있었고. 비록 해외에서는 아시아에서 유일한 판타스틱 영화제로 유명하고 기대도 컸지만 잃어버린 영화제의 특성을 찾아가고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런 측면에서 볼때, 부천영화제가 추구하는 방향이 분명하지 않다는 의문을 제기하는데..모티브가 없다는 말도 있고-    부천판타스틱영화제가 초기에 잡았던 정체성은 이제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봐요. 이제는 시간도 달라졌고..환경도 크게 변한데다가 기술적인 발전도 감안해야 합니다.   처음 위원장 제의 받았을 때 부천영화제에 대한 평가는 잠재력(신철 위원장은 potential이란 단어를 굳이 사용했다.)은 있지만 기대치에 못미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잠재력(potential)을 극대화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고  현재는 갖고있는 잠재력의 50%정도가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데..    신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제 직원들의 잠재력과 능력을 끌어올리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그럼으로서 다시한번 부천의 개성과 정체성을 찾아갈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내 역할이고 부천 영화제가 변화기에 그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위원장직에 대한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현재는 개막식에 가면 부천인지..부산인지 구분이 되지 않지만, 정체성을 갖는 영화제에서는 여기가 어딘지 구분이 가능하게 됩니다. '개막식의 한 커트만 봐도부천의 정체성이 들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그걸 위해서 우리 식구들과 노력하기로 했지요.   그런 맥락에서, 지금 떠오르는 프로그램등이 있나요? 그건 프로그래머들의 몫이지요, 각 프로그래머들의 영역을 인정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그들의 개성 과 능력을 극대화 시켜야지요.   영화제가 프로그래머들의 개성이 아니라 총 기획의도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프로그래머 개인들의 taste나 개성이 모여서 합쳐짐으로서 전체적인 조합이 이루어질수 있을 것이고 그 조합이 일치 될 때 통합된 영상이 나올 것이다. 그 통합된 영상이 개성으로 정체성으로 나올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일이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중에 이견이 있고 이해해가는 과정이 있고 결합이 반복되고 타협하면서 부천이라는 개성이 창조되지요. 결국 이런 모든 과정이 영화제의 역사와 축적된 경험이 되고 그리고 이렇게 정립된 영화제의 정체성을 갖게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영화제 운영자로는 초보니까 나 역시 집행위원장으로서의 경험이 필요하지요. 해외 영화제들을 보면 위원장들의 경력이 수십년 됩니다. 20, 30년 40년 계속하면서 영화제의 개성을 축적해 가는거지요. 예전에 영화사 사장으로 영화제를 볼 때와 집행위원장으로 영화제를 볼 때 전혀 다른 면을 보게되는데. 일례로 선댄스 영화제에 가면 자원봉사자만도 1800여명이 넘어요, 우리는 300여명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저런 참여가 가능할까? 하는 면에 관심이 크게 가는데 영화제작자의 눈은 결코 아니지요.          프로그래머들을 키우는 것도 중요합니다.이야기가 흐르도록 하자, 대화가 막히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믿도록 하자'고 다짐하지요. 감독과 이야기해서 확정했으면 믿어주어야지 그걸 계속 간섭하면 개성이 나오기 어려운 겁니다. 그렇게 볼때 프로그래머 각자를 훈련시키고 능력을 배양하는 작업도 중요합니다.      ["인터뷰 2" 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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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 부천에 오다 - 제4회

  제4회   10 유일한은 9살 때 미국으로 갔습니다. 유일한의 아버지는 이승만 박용만 등의 개화파 지식인들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서양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강연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유일한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서양의 문물을 배워 나라에 공헌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남인 유일한을 선교사를 통해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미국으로 떠나는 어린 아들 유일한에게 아버지는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유일한은 낯선 곳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고 자꾸만 부모님과 고향 생각이 나서 힘들었지만 곧 그곳의 생활에 적응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었지만 유일한은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당부를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유일한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더욱 노력하였습니다. 부지런한 유일한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어느덧 청년이 된 유일한은 대학에 다니면서 중국 사람을 상대로 사업을 하였습니다. 유일한이 있는 곳에는 유일한과 마찬가지로 고국을 떠나와 말 설고 낯 설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중국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일한은 무슨 사업을 할까 궁리하다 중국 사람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비단, 찻잔, 부채 등 중국 물건을 팔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물건이 잘 팔릴까 걱정하였지만 오랫동안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는 중국 사람들에게 중국 물건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유일한은 중국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습니다. 첫 사업에서 성공한 유일한은 이번에는 중국 사람들에게 숙주나물을 팔기로 하였습니다. 숙주나물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두에 꼭 들어가므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유일한이 콩나물을 팔았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유일한은 콩나물이 아니라 숙주나물을 통조림에 넣어 팔아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유일한의 사업은 번창했지만 그럴수록 유일한은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일한이 사업을 한 것도 일본에게 강제 합병된 조국의 독립을 위한 방편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일한은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유일한은 미국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귀국하였습니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유일한은 유한양행을 세웠습니다. 유한양행의 상표 버드나무는 서재필 박사가 유일한에게 선물한 목판 그림속의 버드나무였습니다. 유일한은 조회 때 마다 직원들에게 강조하였습니다. 유한양행은 결코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회를 위해서 있는 것이며 이 길을 통하여 경제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일제의 방해에도 1924년 시작한 유일한의 사업은 크게 번창했습니다. 1936년 유일한은 부천 심곡본동에 유한양행의 소사공장을 세웠습니다. 소사공장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과 목조 건물 세 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곳에는 직원들을 위한 사택과 기숙사 운동장 수영장 등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편히 쉴 수 있도록 좋은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11 아빠는 몹시 궁금한 게 있는지 선생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질문을 했습니다. “그 유명한 유일한 선생님의 유한양행이 부천에, 그것도 깊은구지 심곡본동에 있었다니 정말 놀랍네요.” “놀랍죠. 사실 유한양행이 부천 심곡본동 깊은구지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아마 부천에 사시는 분들도 잘 모를 걸요.” “그런데 선생님 유일한 선생님이 왜 부천 심곡본동에 유한양행 공장을 세웠을까요?” “저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대강 짐작할 수는 있어요.” “왜죠?” “공장은 대부분 교통이 좋은 곳에 짓죠. 그리고 공장을 돌리려면 전기가 있어야겠죠.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서 교통이 좋고 전기가 들어오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천 소사역에는 서울 인천을 왕래하는 기차가 다니고, 소사역 주변의 소사삼거리에는 전기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인천의 항구도 가깝고요. 깊은구지가 소사역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공장이 들어서기에 안성맞춤인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죠.” “선생님 설명을 들으니 정말 이곳이 좋은 입지조건을 갖고 있었네요.” “이제는 다 이전하고 부천에 없지만 좋은 입지조건 덕분에 2000년 전까지만 해도 부천에 많은 공장들이 있었죠. 사실 부천은 산업도시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파트 도시라는 오명을 덮어쓰고 있으니 참 안타까워요.” 아빠와 선생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아가 끼어들었습니다. “펄벅 할머니는 유일한 할아버지의 소사공장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빠도 이제 생각이 난 듯 정아의 말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선생님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 사이에 무슨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선생님이 아빠와 정아를 바라보면서 말을 했습니다. “당연히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 사이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죠.” 아빠가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두 분의 나이 차이가 겨우 두 살인데 혹 연인 사이는 아니었나요?” 아빠의 말에 깜짝 놀란 선생님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습니다. “무슨 그런 엉뚱한 말씀을 하세요. 연인이라니.” “그럼 두 분이 어떻게 알게 되었죠?” “시대 상황이 두 분을 만나게 만들었죠.” “시대 상황이라니 무슨 뜻이죠?” “일본이 세계 제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국은 대한민국과 중국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죠. 당시에는 미국에서 대한민국과 중국에 대한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죠. 한마디로 미국은 미국에 좋은 정보를 제공해줄 만한 특별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그 특별한 사람으로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가 뽑힌 거고. 펄벅 할머니는 중국에서 오래 살았고 중국어에 능통하니 중국 담당 고문으로, 유일한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대한민국의 사정에 밝으니 대한민국 담당 고문으로 OSS의 요원이 되셨죠. 아! OSS는 미국 CIA의 전신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국정원이 맞겠네요.” “그러니까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가 정보원이 되었네요.” “참 내가 깜빡했는데 유일한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OSS의 요원이 되셨죠. 대한민국으로의 침투를 대비해서 힘든 훈련을 모두 받으셨지요. 그때 유일한 할아버지의 나이가 50대였습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OSS에서의 인연이 유한양행의 소사공장으로까지 이어졌군요.” “아버님의 말씀이 맞아요.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는 두 분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죠. 우선 두 분은 서로 마음이 통했으니까요. 펄벅 할머니는 자신의 고국과도 같은 중국이 일본의 침략을 당하고 있죠. 유일한 할아버지는 조국을 일본에 빼앗겼지. 그러니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죠.” 12 대한민국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펄벅은 대한민국에 있는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의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유일한 할아버지도 교육사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펄벅 할머니의 뜻을 알게 된 유일한 할아버지는 부천 심곡동의 유한양행 소사공장을 펄벅재단에 기증하기로 하였습니다. 유일한 할아버지로부터 유한양행 소사공장 건물을 기증받은 펄벅재단은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시작하였고 많은 수의 혼혈 아이들이 펄벅재단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펄벅 할머니가 우리 부천 심곡본동 깊은구지에서 소사희망원을 하게 된 게 우연이 아니었군요?” “우연이 아니죠. 펄벅 할머니의 마음과 유일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으로 이어져서 소사희망원이 탄생한 것이니.”   13 “아빠 펄벅 할머니 같은 훌륭한 분이 우리 동네에서 소사희망원을 했다는 것을 알아서 너무 기뻐요.” “아빠는 펄벅 할머니가 우리 동네에서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하신 것도 좋지만 유일한 할아버지가 펄벅 할머니의 소사희망원에 도움을 주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정아는 아빠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도 크면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 같이 불우한 이웃을 돕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그럼 아빠도 분명히 좋아하실 거야.’ 정아는 빨리 집에 가서 엄마와 오빠에게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정아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아빠의 손을 잡고 끌었습니다. 아빠는 정아가 왜 서두르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끝---               이재학 마라토너/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협회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부천 소새울에 산다(1,2,3,4,5호)      

한계령을 위한 연가 - 9회

12월 19일 이 나라 대통령선거가 있던 날, 드디어 상현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낯선 번호였다. “정은이니?” 그 한마디에도 그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래 오빠. 나야, 정은이.” 금방 내 목이 메고. “보고 싶다. 많이, 아주 많이.” “나도야, 오빠. 많이, 아주 많이.” 사랑을 느끼는 데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어감만으로도, 숨결만 들어도 족했다. 일본 출장 중이란다. 이제야 메일을 보고 전화한다며 감격해했다. 바로 돌아올 거란다. 내가 너무 긴장하고 있었던가. 전화를 끊자 일시에 피로감이 밀려왔다. 나는 이번에도 보수의 편을 들지 않았다. 출신지에 대한 심정적인 끌림이 아니었다. 내 생애 최초로 선거에서 의지를 드러냈다고 봐야 했다. 출구조사는 보수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고 개표 결과는 단 한 번도 진보가 앞서는 걸 허락하지 않다가 끝내 보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세상인심은 기득의 보호막을 슬그머니 감춘 채 허울 좋은 애국이라 포장하여 변화가 위험을 동반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진보에게 패배를 안겼다. 한 시민의 말이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망각의 유령에 싸여 헤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친일을 망각했고 독재를 망각했다. 우리의 현대사는 망각의 역사라는. 나는 내 사랑을 망각하지 않았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리라. 설령 진실을 안다 한들 세상의 눈은 이런 나를 위험하다고 하겠지. 꿈에서 깨라고, 어리석다고,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사랑타령이고 십대의 유치한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세상을 헛살았다고 매도하겠지. 그래 헛살았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맘껏 비웃을 테면 비웃으라지. 이제부터라도 나는 나를 위해 살 것이니. 텔레비전에서 하루 종일 보수의 승리를 떠들어대던 20일이 지루하게 지나가고 마야달력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21일, 드디어 우린 만났다. 어제까지 맑았던 날씨가 우리의 연가를 위함인지 오전부터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요, 오빠. 우리는 그냥 우리가 헤어졌던 시간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모든 인사를 생략한 채 아파트 입구까지 찾아온 그의 차속으로 빨려 들어가자마자 내가 한 말이다. 나는 완전무장을 했다. 털모자와 장갑과 두꺼운 파커, 지팡이까지. “그대로구나.” “오빠도 그대로야.” 우린 눈도 껌벅거리지 않고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옛날일 수 없는 모습을 애써 그대로라고, 달라진 게 없다고 이심전심으로 말했다. 싸라기눈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했다. “가자.” 그가 입을 달싹였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휴대전화의 전원도 껐다. 내 행동을 설명하기가 싫었고 어떤 간섭도 받고 싶지 않았다. 주방의 식탁엔 메모를 남겼다. 나를 되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는. 진부하나 사실이잖은가. 내일은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지만 두렵지도 않았다. 그는 두꺼운 파커는 뒷자리에 두고 체크무늬 남방에 카키색 조끼를 걸치고 골이 진 바지를 입은 채 운전했다. 무엇이 그리 힘들었을까, 얼굴은 팽팽했으나 머리가 반백을 넘어 올백에 가까웠다. 그것은 눈가의 잔주름과 함께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계속 흘렀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흰머리가 신기하게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 북한강을 따라 경춘가도를 지나는 내내 눈이 내렸다. 강은 눈을 온몸으로 받아 속으로 흔적도 없이 빨아들였다. 내가 그랬었다. 그의 사랑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온몸과 온정신으로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었었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강이고 또한 눈이었다. “같이 살아야겠어요.” 오랜 침묵을 깨고 내가 한 말이다. 침묵도 우리의 오랜 공백의 산물이었다. 예전엔 침묵이 어색하다는 걸 느낄 새가 없었다. 나는 지금 그에게 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던, 동거하자는 말을 하기 위해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십 수년을 거슬러 올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수에 반발하여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결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그러기 위해선 아이를 빨리 만들어야 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리. 격정을 참기 힘들었는지 그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나야 좋지만 괜찮겠어?”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오빠만 좋다면 나야 상관없어요.” “정은이가 곤란해지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다 감수할래요.” “이런 날이 오게 되리라는 걸 간절히 희망했지만 현실로 다가오다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조차. 내 인생은 결정적인 순간에 내 바람과는 다르게 꼭 틀어지기 일쑤였어. 영화에서 본 것이지만 그 격정이 지금의 내 심정과 너무 생생하게 닮았구나.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나의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온다고 믿어. 몇 번을 다시 산다 해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정은이를 사랑해. 깊이, 완벽하게, 그리고 영원히.” 아, 불륜의 전설이 된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로버트 킨케이드의 명대사를 그가 읊조리고 있었다. 첫눈에 빠져든 두 사람. 이미 중년에 이른 그들은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같이 나누지는 못했어도 앞으로 살아갈 시간만은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세상사의 잣대로 엄연한 불륜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그 무엇도 갈라놓을 수 없을 것같이 여겨지던 격정적인 그 사랑은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함께 떠나리라 철썩 같이 믿었기에, 프란체스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쏟아지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에 비를 흠뻑 맞은 채 기다리고 기다리다 끝내 돌아서야만 하는 로버트의 처절하고도 망연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죄책감이 없을 리는 없다. 아내의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 남편도 희생자일 수 있으니까. 나의 진실을 안다면 남편은 그 얼마나 억울할까. 속아 살아온 내게 그 얼마나 치가 떨릴까. 아이들이 받아들일 혼란도 부산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사기꾼이고 파렴치한이다. 이런 게 우주의 애매함일까. 빛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이 있기 마련인. 로버트의 사랑이 빛이라면 로버트의 아내(있었던가, 없었던가?)가 느껴야 할 절망은 어둠이다. 프란체스카의 사랑이 진실이라면 그녀의 남편이 갖고 있는 사랑은? 나도 나의 확실한 감정을 프란체스카의 대사로 실토하고 있었다. “숨 쉬는 간격이 길다고 느껴질 만큼 오빠가 보고 싶었어요.” 이러한 프란체스카에 비해 그녀의 남편이 느껴야할 배신감은?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보상 받을까? 정답이 없는 이 애매함. 이 지독한 이기심. 아, 생각지 말자. 나는 나만이 알 수 있는 도리질을 해댔다. 이윽고 아련했던 숨결이 느껴지고 그의 입술이 내 얼굴 전체를 누볐다. 감동이었다.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 나도 숱하게 입술도장을 찍고 또 찍었다. 지나가는 차의 경적이 짓궂게 울렸다. 그제야 우리는 떨어졌다. 눈은 필사적으로 앞 유리에 몰아쳤다. 윈도브러시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차량들의 속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춘천을 지나 추곡휴게소에서 우리는 바퀴에 체인을 감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보금자리는 어디로 하면 좋을까?” 내 어깨를 안고서 차로 돌아와 그가 한 말이다. 아까와는 달리 많은 여유가 느껴졌다. 우린 이십육 년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는 들어보지 못했던. 같이 살려면 당연히 그게 순서겠지. “오빠가 좋을 대로,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면 아무 데도 상관없어요.” “정말?” “그럼요.” 차가 다시 출발했다. 우리의 의지는 확고했다. “우리의 내일을 방해하는 에고의 세력들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꺾이지 말아요.” “나는 정은이가 아니고는 내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이 말을 기다렸다. 도덕과 윤리와 사람의 도리를 앞세운 표피만 그럴 듯한 엄숙주의자들이 우리 길을 막아설지라도 멈추지 않을 거라는. “내 안의 윤리와 패배주의에도 초심을 잃지 말아요.” “제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한계령은 우리의 신혼여행지예요.” 여기는 해발 900M입니다. 인제를 지나 44번 국도를 따라가자 오르막 끝에 드디어 팻말이 나타났다. 한계령. 도착했을 때는 다섯시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날이 어둑해지고 눈발은 가늘어졌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거세게 눈을 흩날리게 해 얼굴을 차갑게 때렸다. 눈은 제법 쌓였으나 그렇다고 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상황이어야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바드라재라 기록돼 있고 국도가 생기기 전에는 오색령이라 불리던 고개. 그 한계령휴게소 광장에서 우리는 문정희의 시가 주는 우리만의 간절함을 한동안 음미했다. 저녁어스름에 드러난 설악의 기암괴석들, 멋들어진 나무들, 눈이 만들어낸 장관, 거기에 딱 어울리게 자리 잡은 휴게소 건물은 신비하고도 황홀한 풍경이었다. 우린 어느새 이심전심으로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다음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한계령을 위한 연가 - 8회

가슴이 설레고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며칠 이내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는 없었다. 만약 가게 된다면 남편에겐 뭐라 할까. 결혼 이후 학교의 수학여행이나 친정과 시댁의 애경사와 같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의 외박은 없었다. 나는 누가 보기에도 표면적으로는 충실한 아내이고 아이들의 자상한 엄마였다. 남편의 외박은 잦았다. 며칠씩 걸리는 출장도 잦았다. 물론 회사 일 때문이었다. 그 모두가 회사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외박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직도 뭘 기다리나. 내가 뭘 두려워하나. 우리에게 한계령의 한계가 무엇인가. 눈이 오지 않으면 눈이 온다 생각하면 될 것을. 허울뿐인 명분이 굳이 필요하단 말인가. 스물여섯 해, 구천사백구십 일, 이십이만 칠천칠백육십 시간을 새장에 갇혀 살았는데 아직도 먹이가 오기만 기다리나. 문은 열려 있거늘. 나가서 먹이를 찾으면 될 게 아닌가. 경숙에게 전화를 했다. “상현 오빠 전화가 몇 번이니?” “갈쳐 준다고 헐 때는 내비두람서 갑자기 왜?” “빨리 가르쳐 주기나 해.” “별일이네, 가시내.” “그런데 너 상현 오빠 부인이 죽은 거 아니?” “뭐라고? 상현이 오빠 부인이 죽다니?” “너도 모르고 있었어?” “오매, 어째쓰까. 전화 한 번 해봐야겠네. 그 오빠 카페에도 안 들어오잖아. 시골에 산만 샀다 뿐이지 발 끊은 지도 아주 옛날이고. 사실 오빠가 그러니까 나도 전화하기도 조심스럽당게. 너는 그 소식 어떻게 들었간디?” “그럼 그 오빠가 글을 쓰는 줄도 모르겠구나?” “네가 어떻게 나보다 상현 오빠에 대해 훤히 아냐?” “우연히 그 오빠 책을 보게 됐어.” 전화번호를 알게 된 순간 기쁘다기보다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억울했다. 타의에 의해 왜곡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뭘 망설이겠는가. 경숙과 통화를 끝낸 후, 머뭇거리지 않고, 서성대지도 않고 전화했다.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콩콩거리며 뛰던 가슴이 슬그머니 까무러졌다. 무슨 일일까. 초조해졌다. 남편이 들어왔어도 그가 보지 않는 데서 나는 수시로 전화기를 만지작거렸으며 컴퓨터를 내내 켜둔 채 틈만 나면 메일을 살폈다. 침대에 누웠어도, 남편이 오랜만에 배 위에 올라와 용을 쓰는 동안에도, 내 생각은 온통 그에게만 가있었다. 이윽고 욕심을 채운 남편이 잠에 빠져들었을 때 나는 슬그머니 침대를 빠져나와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보낸 메일도 그는 아직 열어보지 않은 상태였다. 전화기는 여전히 꺼져있고. 소리샘에 안달이 난 내 목소리를 남겼다. “오빠, 나 정은이. 왜 전화기가 꺼져있어? 나 오빠의 진실을 오늘에야 알게 됐어. 책을 봤어. 버마재비의 사랑. 나 한계령에 오빠와 함께 갇히고 싶어.” 나의 이런 행위와 생각들이 다른 사람이 보기엔 불륜이라 하겠지. 나는 나에게 위선적이고 싶지 않았다. 그게 중요했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여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박빙이 되어갔다. 남편은 대상은 다르지만 나만큼 초조해 하고 있었다. 벌써 남편이 참여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살리기’는 죽어가는 것을 살린다거나 살아있는 것을 더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건설사들의 담합과 보의 부실공사가 드러나고, 녹조가 심화되고, 걸핏하면 침수가 일어나는 판이고, 철새는 찾아오지 않고, 물고기는 죽어가고, 멀쩡했던 습지에 인공의 구조물들이 들어서 매끄럽게만 보이니 강에 깃든 생명들에게 혼란은 빤한 일. 국민의 혈세 22조원이 들어간 대역사가 결과적으로는 강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기’가 되고 말았다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국민들이 동조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자연은 인간이 간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그 대안으로 밀어붙인 게 4대강 살리기였다. 건설업체에서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생존방식으로 경영주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성공가도를 달려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에 오르고 모든 샐러리맨들의 신화가 되더니, 그 여세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마침내 서울시장과 일국의 지존의 자리를 거머쥔 이.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부릴까마는 여론은 그의 사심마저 의심하기에 이르렀으니. 야당이 집권한다면 4대강 살리기는 도마 위에 오를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초조해진 남편은, 아니 남편의 회사는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만약을 위해 반대편에 미래의 생존을 담보하는 보험 들기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했으리라. 이런 행태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재벌들의 생존 방식이었음에랴. “나 감쪽같이 사라질지도 몰라.” “이 가시나가 미쳤구나!” 경숙인 내 말에 실소를 터뜨리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도 짓지 않고 실없는 소리 마라는 듯 내뱉었다. 상현 오빠의 전화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 못해 경숙이라도 만나 초조감을 달래려한 자리였다. 책을 읽었다면 그 못 잊을 여인이 나라는 걸 알 수도 있으련만 경숙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긴 읽지 않았으니 잠잠하지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전화로 난리를 쳤으리라. 경숙인 원래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젠 행복에 겨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왜 금방이라도 옆에 없으면 죽고 못 살 연하라도 생겼간? 요즘 신간 편한 여편네들 연하 하나씩 키우는 게 대세라등만 너까지 그런 거시여?” “왜 안 믿기니?” “세상 여자들이 다 그런다 하더라도 너는 그런 짓 못 혀.” 이렇다. 나를 보는 세상의 눈은 여지없이 현모양처다. 윤리에 반하는 나를 상상하기 힘들다는. 나는 세상을 감쪽같이 속인 셈이다. 상현 오빠에 대한 아직도 변함없는 내 사랑과 앞으로 어떻게 하리라는 심사를 털어놓으려던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아직 이르지. 철썩 같이 믿었던 결혼이 헝클어졌던 것처럼. 내 보험은 의뭉한 침묵이었다. 내 소갈머리에도 화사 몇 마리는 똬리를 틀고 있는가보다. “참, 상현 오빠에겐 전화해봤어?” 경숙이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내게 물었다. 그것까지 감출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그래, 그런데 전활 받지 않더라. 아니 전화기가 계속 꺼져 있던데?” “그렇지? 나도 해보니까 꺼져 있더라. 집전화도 받지 않고. 워낙 고향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이라 알 만한 사람도 없고.” 그가 고향이나 고향사람들과 담을 쌓고 산 건 설움 받은 기억도 있겠지만 더 큰 원인은 나와 무관치 않으리라. 그보다 더 한 상처가 어디 있었으랴. “암이었다더라, 부인이.” 난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암? 부인의 성격이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요즘엔 암도 초기에만 발견하면 병도 아니라는디, 자세한 내막을 알아야 중매라도 서지.” 경숙의 중매라는 말에 어이가 다 없었다. 일편단심인 내가 있는데 중매라니? “넌 자세한 거 알지도 못하면서 벌써 짝 지워 줄 생각부터 하니?” 아차,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짜증이 묻어나왔다. “옴마야, 네가 왜 성질을 부려? 네가 갈 것도 아니면서. 참 별 꼴이네 얘.” “얘는 내가 무슨 성질을 부렸다고.” 나는 금방 오그라들었다. “한 번으로 족하다. 너 그 오빠 아프게 한 거.” 경숙으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면서 내 몸이 아득한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알고 있었다. 경숙인 우리의 사랑과 파국을. 아니, 요즘의 내 심사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의 파국이 나라고? 내가 원인이라고? 내가 아프게 했단다. 아니야, 경숙아. 그게 아니야. 내가 아팠어.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뎌냈는데? 나는 변명하지 못했다. 그 잘난 보수를, 보수의 딸임을. 나는 한없이 무력했다. 그 무력감에 화가 솟구쳐도 아무 말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오빠한테 전화하지 마. 그 오빠 언니가 살아있다면 몰라도 죽었다면서…… 그런께로 더욱이 전화하지 마라는거시여.” 나는 경숙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나는 내가 피해자였다. 그렇게 믿고 나를 가엾어 하며 살았다. 그런데 가해자가 되어 있다니. 나의 진실은 어떤 것인가. 영혼을 빨려버렸다 생각해온 내 진공의 세월은? 나도 혼란스러웠다. 상현 오빠에게 전화하는 나는 파렴치한 여자가 분명했다. 오빠의 처지를 이용해 화냥기를 채우려는, 다시 한 번 농락이 될 게 빤한 파렴치한 나. 오기가 생겼다. 그래? 그렇다면 파렴치한 년이 되리라. 경숙과는 서먹해진 상태에서 헤어졌다.   -다음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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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을 회복하자 / 구유현의 명상 노트

 사회 곳곳에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어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삶의 환경이 개별적으로 존중되기 때문에 공동체적 미덕이 존중되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사회생활에 요구되는 덕목의 구현에 대하여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IT기기를 통해 사람과의 소통보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피할 수 있고 타인으로부터 배신, 간섭을 배제할 수 있어 특별히 인간관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인은 스마트폰이나 IT기기에 길들여져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는 저절로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 사람 됨됨이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게 되어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덕목이 점차 퇴행되어 가기에 이르렀다. 인간관계를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제심을 잃어가며 폭력, 자살, 협박, 우울증, 인터넷 중독 등의 현상이 증가되어 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소통을 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사회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관용, 배려, 나눔, 존중, 예의, 협동과 같은 덕목이 신장될 수 있는데 스마트폰이나 IT기기에 생활의 전부를 의존하다 보니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더없이 필요한 시대다. 현대인들은 물질문명의 의존도가 높고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상대를 부정하기만 한다. 스마트폰이나 IT기기에 의존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데 관심이 있어 공동체가 무기력하고 사회생활이 무시당하면서 예의가 실종된 불신사회가 되어 간다. 관용과 배려할 줄 모르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은 날로 증가하나 치유할 방법은 막연하다. 불편한 삶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회성을 신장시켜야 하는데 이기적인 개인화로 이에 필요한 덕목이 신장되지 못하고 있다. ‘화가 나는 세상 만들지 마.’가 정답이다.  마미클 그린은 ‘도피하는 현대인’에서 현대인에게는 두 개의 병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자아상실이요,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일이라고 했다. 스마트폰이나 IT기기 같은 문명의 이기로 인간의 삶은 편리해졌으나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는데 가속도가 붙고 있다. 상대적으로 인간은 기기에 묻혀 살게 되어 인간관계가 왜소해지고 있다. 불편부당한데 대해서는 많은 목소리를 내며 이의 해소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하지만 문명의 이기에 묻혀서 상대적인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추려하기 때문에 소통과 이해가 아쉽다. 개인적으로 변화하는 데는 관심이 있어 다양화해 가는데 아집으로 남아 자기주장만 하게 되어 소통이 불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과 같이 인간으로 돌아가야 인간성이 회복될 수 있다. 기기에 의존한 나머지 인간관계를 거부해서는 인간성이 회복될 수 없다. 사회생활의 가치가 존중되려면 공동체 덕목 신장에 대한 인성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더 이상 인성교육을 미룬다면 재앙이 될 수 있다. 아는 것만큼 할 수 있다. 사람 됨됨이 교육을 하는데 소홀히 하지 말자.

듣기 좋은 말 / 구유현의 명상 노트

교직을 처음 시작한 초임교사 시절에는 아이들에게서 문제가 발생하면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선배교사들께 조언을 구하면 당신들이 교육 현장에서 겪으며 쌓아온 전가의 보도 같은 노하우를 가르쳐 주기보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는 말을 흘리며 신참교사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화가 되니 내버려 두는 것도 보신(保身)의 한 방법이라며 교권 추락을 자조적으로 한탄했던 기억이 난다.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의견들은 많다. ‘병은 하나여도 약은 만 가지’라고, 체질과 환경에 따라 다른 처방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떤 대책이든 옳은 말이다. 원인 분석과 대책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다.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생활지도상의 개선점을 간과하지 말고 그 때 그 때 지적해주며 지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학생 지도다. 의견은 많지만 실천 없이 모두가 못 본 척하고 싫어하고 기피하면서 학생들의 교육이 될 리 없다.     교육은 무엇인가?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교육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원시인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은 교육을 통하여 보다 성숙한 사람 노릇을 하게 된다. 미성숙한 학생에게 사회의 가치와 문화를 전달하는 ‘사회화’ 과정이 교육이다. 학교만 다닌다고 모든 학생들이 성숙한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면 나이든 어른도 잘못을 모른다. 건전한 사회인으로 만들려면 마냥 ‘오냐오냐’ ‘잘 될 거야.’ ‘사람은 살게 돼 있어.’ ‘군대 갔다 오면 달라져.’와 같이 면피성 말로 어물쩍 넘겨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사소한 일이라도 짚어주어 달라지게 해야 한다. ‘요즈음 아이들 똑똑하다’는 말로 입술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면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다. 긍정적인 말, 칭찬이라는 듣기 좋은 말을 무분별하게 의미 없이 하면 학생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립스틱 입술에 바르듯 한 말로는 교육이 위축되기만 하지 교육 에너지가 집중되지 못한다.    ‘학생들이 잘 한다’는데 그 이상의 말이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싸워서 물어보면 ‘장난했어요.’ 선생님도 ‘장난이래요.’ 하면 그냥 넘어가야 하는지 착잡하다. 학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진정으로 잘못된 언행과 생각을 타일러서 깨닫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근본은 잘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용을 써봐야 볼 수 있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움직인다. 용렬(庸劣)한 사람이 제아무리 희생한다고 떠들어도, 제 가족을 위해 몸을 던질 수만 있어도 대단하다.’는 말과 같이 이런 사람이 교사를 한다면 학생은 불행하다. 교육은 학생의 근본을 잘 갖추게 하기 위하여 교육의 중요성이 있다. 학생 지도는 선생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열정으로 해야 학생 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아이와 어른은 어떻게 다를까 / 구유현의 명상노트

 아이는 배우고 자라야 할 입장이고 어른은 지혜, 성품, 예절, 책임감, 성실성, 자주성 등의 덕목을 고루 갖추어 독립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어른이라면 덕이 있어 보이고 아이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고 무엇인가 잘 챙겨줄 것 같은 사람쯤으로 간주한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믿고 따른다. 어른은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이 있고 집의 주인을 칭하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다른 집을 방문하여 주인을 찾을 때 “주인장 어른 계십니까?”라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찾았다. 아무개 댁 아이들이 잘못됐을 때는 부모가 누군가부터 물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도 주인이 살고 있는 집과 비워 둔 집은 차이가 난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못을 박고 손질하여 돌보기 때문에 허름하고 낡은 집이라도 무너지지 않지만 빈집은 풀이 나고 지저분하여 집 구실을 못한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도 세 들어 살고 있는 집과 주인이 살고 있는 집은 차이가 있다. 세 들어 사는 사람은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나그네와 같다고 할 수 있고 주인이 살고 있는 집은 잘 손보고 고쳐서 살기 때문에 보존이 잘된다.  주인으로 키울 것인가 나그네로 키울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부모와 교사의 몫이다. 아이들이란 주인의식을 가진 어른이 되기 위하여 노력을 해야 한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나그네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주인의식을 갖는 어른이 되기 위하여 그걸 배우고 준비하기 위하여 학교에 다닌다. 주인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떤 일이 주어지든 자신이 주인이라고 인식하여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주인정신이 없는 사람은 피동적이며 남의 눈치나 보면서 불평불만이 많다.    식당에서도 주인은 최선을 다하여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지만 주인이 아닌 점원은 손님을 불친절하고 소홀히 대할 수도 있다. 주인정신이 없는 사람은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하기보다 막연한 내일에 대한 기대감만 간직한 채 살아간다. 전통이 있는 학교나 회사를 보면 구성원 스스로가 매사를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처리한다. 주인정신은 타인의 명령이나 지시에 의존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준비하고 실천하는 정신을 말한다. 따라서 주인정신이 있는 사람은 책임감과 참여도가 높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주인의식이 뚜렷해서 본받을 만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정신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매사에 눈치를 보며 시키는 일만 요령껏 하는 것이 재주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책임감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조직의 발전을 위하여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주인의식을 가진 인재를 키우고 발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 않다. 거름을 주어 농사를 짓듯 미래를 책임질 후손들을 반듯한 주인정신을 지닌 어른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번 삐뚤어진 사람을 바로 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동식물을 다 키워놓고 잘해보자고 하여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사람이라고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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