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09-1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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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구유현의 명상노트 기사

  • 금연
    금연을 하는 것은 소중한 생명을 끊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는 우스운 말을 많이 듣는다. 길거리에 지나가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다. 예전에는 담배를 피우라고 재떨이를 비워주고 별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예전과 달라 금연구역에서만 가능하다. 한 번 습성이 들게 되면 절제하기도 어렵고 흡연은 마약과 같아서 웬만한 인내심이 없으면 끊기 어렵다는 것을 흡연을 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내용이다.   방법은 처음부터 아예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나쁜 습관은 들이지 말아야 한다. 한번 입에 대면 자신도 모르게 피게 되고 좀처럼 담배를 끊지 못한다. 하루 담배 량을 줄인다든가, 금연침 맞기, 담배 휴대 않기 등과 같은 방법으로 끊고자 하지만 흡연의 유보는 될지언정 효과를 보지 못한다. 흡연은 식욕이나 맛으로 피는 것이 아니고 단지, 습관성인 경우가 많다.     금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담배의 맛을 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담배를 피우기 전에 담배 맛이 어쨌는지, 느낌이 어떠했는지를 되돌아보면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복기를 해서 담배를 싫어지게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이 보기 싫듯이 담배가 싫어지는 노력을 해야 하리라. 이런 마음이 들지 않으면 금연을 하는데 백약이 무효다. 정말 담배는 백해무익이다. 이런데 담배를 왜 끊지 못할까. 금연을 한다고 한 두 달 참아 보고, 반년을 참다 또 피게 되고, 기분 나쁘다고 태운다면 금연은 하나마나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금연하는 것은 자신의 인내심에 달려있다. 자신과의 게임이다. 담배가 좋은 친구가 아닌 나쁜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 나쁜 친구에게 끌려 다녀서는 절대 생활습관이 개선될 리 없다. 금연을 하려면 담배를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정을 떼야 한다. 담배가 싫어지는 싸움에서 이겼을 때 금연을 할 수 있다. 결국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참은 것이라고 한다. 금연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속적 인내의 과정이라 생각 된다. 금연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내 욕구를 효과적으로 억누를 수 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나쁜 습관은 노력을 안해도 저절로 된다. 좋지 못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가능하다. 좋은 습관은 노력을 해서 길러야 하기 때문에 미루게 되고 힘이 들어가게 된다. 내 인생을 이끌어 가는 힘은 무언의 습관의 힘이다. 습관을 들이기 위하여 운동이든, 전문성이든, 인간관계든 부단히 노력하고 게을리 하면 안 된다 하겠다. 금연을 원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9-03-03
  • 스스로 할 수 있게
    스스로 할 수 있게   “영국의 과학자 알프레드 윌리스가 참나무산누에나방이 고치를 뚫고 나오는 과정을 관찰하게 되었다. 나방이는 누에고치 안에서 작은 구멍 하나를 뚫고 그 틈을 빠져 나오기 위한 고통을 한나절이나 참아내야 했다. 작은 구멍을 빠져 나오는 나방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과학자 알프레드는 예리한 가위로 누에고치의 구멍을 넓혀 주었다. 그런데 스스로의 힘으로 고치를 빠져나온 나방의 경우는 예쁜 색깔로 변해 훨훨 날아가는 것과는 달리, 도움을 받아 편하게 구멍을 빠져나온 그 나방은 몇 번의 날개를 퍼덕이다 날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고 한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요즈음에는 실천력이 없는 학생들이 많다. 학교 급식에서 생선이 나오는 날이면 가시를 발라내기가 귀찮아서 먹던 밥을 남기고 식탁을 떠난다고 한다. 집에서 어머니가 생선 가시를 발라주는 것을 먹다 보니 가시를 발라내고 먹을 줄을 모르는 것이다. 조금만 날씨가 덥고 추워도 참아내질 못하고 아이들 더운데 왜 하복을 못 입게 하느냐, 날씨가 추운데 동복을 무슨 이유로 못 입게 하느냐고 어머니의 항의가 대단히 거칠게 하신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부모님이상으로 아이들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대학교에서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엄마들이 자녀 수강 신청을 대신하여 주기까지 한다고 한다. 이렇게 타성에 맛이 들어 있다 보니 할 줄 아는 일이 없고, 실천력이 없는 무기력한 학생들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을 의타적으로 기르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스스로 일어서고 해결할 수 있는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사람을 기를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노려해야 한다. 어른들의 욕심이 지나치다 보니 아이들의 교육을 그르치는 경향이 있어 매번 안타깝다 하겠다.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격언이 있듯 문제 해결력이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9-03-02
  • 삶의 기도
       내 인생의 삶은 어떤 그림이었을까요   허욕에 눈멀어 가식의 삶 살지 않았을까요 재물에 군침 흘리지 않았을까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범사에 겸허하게 하소서   오케스트라의 뒷전에 서서 제 목소리는 감추고 전체를 빛나게 하는 콘트라베이스가 되게 하소서      
    • 예술/창작
    • 명시산책
    2018-11-27
  • 세월의 고개를 넘으며
    세월의 고개만큼 어려운 것이 없더라.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앞을 막더라. 돌아보니 첩첩산중이었고 나는 아직도 그 산속에 있더라. 하지만 인생의 고개 중에 어릴적 보릿고개만큼 무서웠던 것은 없더라.    
    • 예술/창작
    • 명시산책
    2018-10-14
  • 세월
    내 자식 방에서 뛰면 재롱이고 남의 새끼 위층에서 뛰면 폭동이다.  
    • 예술/창작
    • 창작활동
    2018-09-10
  • 경종
                                                           경조사는 누구나 일생일대의 큰 개인사로 축하와 위로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혼례를 올리는 날은 일가친척을 비롯하여 평소 알고 지내는 하객이 들려서 축하하고 슬픈 일에는 서로 위로해 주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일처럼 아름다운 시간이 없다. 우리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당연지사로 안다. 당사자는 이럴 때 얼마나 좋고 다급하면 안면밖에 없는 사람까지 연락하겠는가.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내 일머리 모두 끝났다고 눈을 감고 모른 체 할 일인가.    가는 정속에 오는 정이 싹튼다고 하는데 어느 경우가 더 불쾌하고 기분 나쁜 이야기가 될까. 자기의 일머리만 중요하다고 챙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애경사에 오고 가는 마음은 불문율로 직접적인 이야기 자체를 꺼린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이 많이 나가는 고운정은 영웅담 하듯 긍정적으로 바쁘다고 이야기 한다. 가고 오지 않는 미운 정을 말하면 부정적이고 잘못된 사람으로 금기시한다. 가는 정은 일반화되어있지만 오지 않는 정을 말하면 시선이 곱지 않게 인식한다. 언제나 가는 정만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게 하며 속내를 불편하게 만든다. 속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 언급 자체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이를 말하면 왕따를 당한다. 애경사는 개별적으로 당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대소사에 축하와 위로는 당연하다면서 자기 일이 모두 끝났다고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하여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인가. 이렇게 얄팍하고 천박한 생각이었다면 자신의 애경사를 타인에게 알려서 우를 범하게 하는 일처럼 치사한 게 없으리라. 혼례에 하객이 찾아서 축하를 해주면 더 없이 감사한 일이다. 애사가 있을 때는 슬픔을 서로 나누어 갖고 힘을 보탠다. 애경사에 다녀오면 하나같이 ‘귀댁에 대소사가 있으시면 꼭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러한 중차대한 일에 삼십 수 년 봉사를 해서 정작 돌아오는 것은 낯 뜨겁게 하는 실망일때 유구무언이다. 어떤 사람보다도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하며 존중했는데 미온적이고 언제 봤냐는 식이라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좋게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런 사람은 상실감을 넘어 배신감이 든다. 시장에서 사 온 과일이 집에 와서 보고 썩었다면 속상한데 하물며 내가 정성을 들인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면 두고두고 기분이 상할 일이다. 부조한 만큼 돌려받는다는 마음으로 부조하는 사람은 없다. ‘썩어도 준치’라는 데 정성을 들여서 나 몰라라 물리게 한다면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리라. 남이 하는 것은 당연지사로 알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방관하는 사람과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해야 할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말인가. 그런 사람과 ‘콩 한쪽도 반으로 나누어 먹는다’라고 생각했으니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는 싫어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청구서 같은 청첩장을 내밀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 마지막 남아 있는 미풍양속이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아가듯’ 허접스럽게 되어간다니 무슨 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4차 산업의 문명을 목전에 두고 고작 이렇게밖에는 할 수 없다니 안타까운 일이리라. 어느 연세가 지긋하신 수필 작가님이 축하를 해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가장 감사를 느끼는 부분이 저의 아들딸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주신 분들이 가장 고마웠어요. 그래서 저는 저와 안면이 있는 분들의 자제 혼사 때는 꼭 참석하려고합니다’라는 말씀이 감명 깊었다. 감사란 내가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진정성을 알 수가 없는가 보다. 막상 우리 아들 결혼을 시켜 보니 그 말씀이 새삼스럽게 들렸다. 그래서 달걀로 바위 치기 하듯 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은 돌에다 새겨야 한다고 했던가. 내 일머리 모두 끝났으니 앞으로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일이 있을 때 대문짝만하게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있었는지 염치도 없다. 고작 자신이 필요할 때만 들러리 서게 하겠다는 뜻이었나. 손 한번 잡아 보고 문고리 한번 잡아 봤다고 연락을 할 정도로 자기 일은 중시하면서 다른 사람 들러리 서게 할 수는 없다. 서로 돕고 살자고 앞장섰던 사람치고는 너무나 비겁하고 고약하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늘 오해의 진실 게임은 상대적이어서 생각하기에 따라 화가 나게 한다. 자기 대소사는 빠짐없이 보내면서 ‘누가 오라고 했나. 하기 싫으면 말지’ ‘그러려면 왜 하고 말해’ ‘나는 부조를 하면서 받을 생각은 안 한다’라고 하며 할 말 없게 만들고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든다. 누구는 돌려받을 생각을 하고 경조사를 가나. 아무렇지 않다는 불필요한 말이 오고 가며 물리게 한다. 돌려받는 다는 생각으로 애경사에 다니지는 않는다. 미래에 우리 모두 겪을 일이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닥치는 일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으리라. 사회생활하면서 선배분의 애경사에 수없이 다니며 축하를 해준 일들이 마냥 흐뭇하기만 하였다. 오가다 만났다고 알릴 정도로 자기의 일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남의 일에 무관심한 이 시대의 구경꾼에게 아쉬운 대목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틀리다’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리라. 이런 사람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가 신뢰 없고 불편하게 되어간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 일은 금과옥조처럼 중시하면서 다른 사람 일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일인가. 애경사가 있을 때 가까운 지인에서부터 문고리 잡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대소사가 있다고 연락이 오면 어떤 일보다도 더 챙겨 다녀왔다. 안다고 친하다며 기별을 했는데 하등의 망설일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다녀와서 봉투의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 놓는다.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시쳇말이 되리라.    자기 일만큼 다른 사람 일도 소중하다. 남에게 베풀 줄 모르면서 자기 일은 꼬박꼬박 챙기면 얄미울 정도다. 쩨쩨하다고 하기 전에 얌체 짓부터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을 만큼 비겁하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비난을 받기보다 돈이 많고 갑질을 하며 부자로 더 잘 산다. 얄미울 정도로 야비하고 치사하게 하면서 성인군자 같은 말은 다하고 다닌다. 이런 사람에게는 편들어주고 두둔하는 사람이 많고 비서 역할까지 자임한다. 그러니 이런 사람에게 놀아 날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자기 일이나 잘해야 할 사람이 사돈 남말 하 듯 놀아나게 부채질한다. 갚는 정이 없는 사람보다 고운 정을 보여준 사람이 억울하고 낯 뜨거워지게 만들며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서로가 위로해야 할 일을 흐지부지하며 수수방관하면 되겠는가. 자기 일은 계약을 하듯 하는데 남의 일은 계약해지가 된다. 자기 애경사는 연락을 했으면서 자기의 일머리가 끝났다고 어떻게 상대의 일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아무 나무랄 데 없는 말로 망신을 준다. 뭐 주고 뺨 맞는 것도 억울한데 망신까지 당하다니 고개를 들 수 없다.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의 짓거리는 덮어주고 다리를 뻗고 자게 하면서 어떻게 살기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편견과 아집이 공동체가 되어 물레방아 돌고 돌 듯 한다. 싹수가 노란 사람은 한두 번 겪어보면 대충 안다. 잘 될 수 있다고 고운정이 미운정 따라하게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기막히게 들린다. 헌신짝 버려지듯 하는데도 긍정적으로 보라며 부정적이라고 한다. 누구 좋아하라고 하는 말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사악한 무리에게 기분이나 비위를 맞추어 주면서 더는 들러리 서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귀댁에 대소사가 있을 때 꼭 연락하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꼭 헌신짝 버리듯 하면서 진짜 낯 뜨거워질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진짜 나쁜 놈이라고 불리어지리라.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6-16
  • 버팀목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일이 내 마음 같은 줄로 알았다. 내 마음인 줄로 알았지만 나를 떠나면 절벽이었다. 그 벼랑 끝에서 손을 내밀고 잡아달라고 아우성치게  될 줄  미처 몰랐다. 안 사람도 나와 같았으리라.     누구나 물어보면 다 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당당하게 말하는 순간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라는 의미가 된다. 모두가 매번 잘한다고 하면서 왜 못하는 걸까. 정말로 진정성을 모르고 자기 마음만으로 살아가려고 하니 파열음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철없이 부모가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각기 다른 두 바퀴로 굴러가고 사랑을 말하고 행복을 말한다. 우리 아이는 꼭 나를 닮아서 고지식하다.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면서 잘 아는 줄 알고 마음의 상처를 받기 때문에 부모로서 걱정이 많다.   누구든 아이를 낳아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을 진작 알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고민은 안 하리라.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를 보지 말고 애의 눈높이로 봐야 하는 건데 그렇게 보지를 못 했다. 부모의 생각으로 길흉화복이 점쳐지지 않을까. 나 역시 그렇다. 잘 먹여주고 입혀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이 끝났다고 한다. 그렇지 않은 줄로 알지만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 터널의 끝은 있게 마련이다. 그길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이렇게 키워서 아이를 장가보낸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출가하는 청춘 쌍을 흐뭇하게만 바라다보았다. 나조차도 결혼할 때 부모님이 다 해준다고 생각했으니 무슨 생각이 들었겠는가. 자식 키우면서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부모의 푸념을 위로로 삼았다. 지금까지 그저 그런 것 같았다. 결혼은 나이가 차면 당연히 하는 일쯤으로 여겼다. 느지막하게 우리 아들 결혼시키면서 그걸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니 여태까지 무슨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나 자신조차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내 자식을 장가보내면서 그걸 알았다니 무슨 말인들 못하랴.     우리 애 장가보낸다고 청첩장을 보내 드릴 때 만감이 교차하였다. 좋은 일이나 궂은 일로 대소사가 있을 때 찾아가서 위로와 축하를 당연한 일로 여겼으나 막상 내 자식이 장가든다고 하여 알리려니 선뜻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이런 경우를 두고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했던가. 하늘에서 내린 절호의 기회로 알고 일가친척과 평소에 우리를 알고 있는 존경하는 분들을 모시고 오월 이십일 한 시에 남산골 한옥마을 민씨 가옥에서 아들이 사모관대를 하고 전통혼례를 올리게 되었다니 보시는 분에게 뜻밖의 일처럼 보였으리라.   남산골 한옥마을 민씨 가옥은 남산 위에 서 있는 소나무가 내려다보는 우리의 전통 민속한옥이다. 우리 조상의 예스러움이 묻어나고 소나무로 정원이 되어 있는 자연 친화적인 곳이다. 우리 조상의 얼이 담겨있는 곳에서 죽마고우와 같은 친구들, 한때 교육을 함께 했던 동료 선생님, 탁구를 사랑하는 에스에스피 선생님, 시인정신, 서대반수필작가님, 일가친척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제 내 아들은 명실공히 군에서 ‘씨’로 신부는 ‘양’에서 여사로 어른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존경하는 모든 분의 성원과 사랑으로 더욱 빛났으리라 믿는다.   먼 곳에서 들르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 아이 혼례에 기꺼이 들려주신 분을 뵈니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반갑고 형언할 수 없이 감개무량하다. 소금으로 음식 맛을 내듯 사람 살아가는 맛은 무엇으로 낼 수 있을까.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 말이 있듯이 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어야 제대로 사는 게 아니겠는가. 서로 찾아보고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 기화로 한마당 한자리에 모이게 되니 새삼 잘 살아왔다는 데 대해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결혼은 새로운 출발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하였다. 결혼은 남녀가 서로 다르게 살다 하나로 되어 한평생 함께 산다. 결혼 전에는 더 없이 애지중지하고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이는데 결혼 후에는 점점 관심이 없어지고 소홀해지는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부부가 잘살고 행복하려면 처음과 끝이 항상 같아야 하지 않을까.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혼례를 올린 신랑 신부가 어른이 되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잘 살았으면 하는 게 이 애비의 마음이다. 남산 기슭 늘 푸른 저 소나무처럼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그 아이는 내 아들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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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02
  • 파수꾼
      파수꾼의 역할은 사람을 지켜주는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역할을 능가한다고 한다. 의사의 손이 미처 닿기 어려운 사람의 인체를 로봇이 대신 수술까지 해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지킴이의 역할은 홀대를 받는다. 부모와 자식, 경비, 안내자, 산불지킴이, 횡단보도지킴이를 파수꾼이라고 불러야 되하지 않을까. 안내견, 진돗개 등의 동물과 담, 문, 신호등, 무인카메라, 과속 카메라, 위험표시판, 차단기, 위험경보기, 알람, 등대 등의 무생물을 지킴이의 역할로 봐야 하지 않을까.   안전하게 지켜주는 지킴이를 귀찮게 여기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킴이의 역할에 따라 나누고 구별하면서 불편부당한 부분을 허용해야 할 경우도 있다. 사람 관계는 가족호칭, 직급, 계급, 학년, 직능별로 서열이나 순서를 정하고 끈끈하게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삶의 가치를 창출한다. 부조화로 반응을 하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쉽게 허용을 하지 않는다. 지킴이가 되어 차례를 기다리고 차를 타면 감동이 되고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무언의 지킴이가 행복하게 해준다는 걸 항상 감사하게 경험하다가 생각이 뒤바뀐다. 지킴이를 봉사라는 이름으로 무한 희생을 강요하거나 할 일 없는 사람의 소일거리 정도로 폄훼하기 때문에 불편하고 달갑지 않다. 벚꽃길처럼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보일 수는 없을까.     공원을 깨끗하게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깔고 앉았던 종이, 음료수병, 우유팩이 널브러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렇게 버린 과자봉지나 쓰레기는 누가 주워야 할까. 버리면 미안한 줄은 아는지 버려야 일자리가 창출된다면서 양심까지 쓰레기가 된다. 당연히 청소도우미나 환경미화원이 치워야 할 일이리라. 우리도 모두 공원을 깨끗이 하는 지킴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킴이가 자꾸 허수아비쯤으로 보인다니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까. 봉사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보인다면 하는 일들이 만족할 수 있으리라. 서로 존중해주지 않기 때문에 반목이 생기고 떳떳하지 못하다. 봉사하는데 자신감이 떨어지고 마지못해 때우는 봉사활동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킴이가 할 수 있을까.   끼어들기는 왜 그토록 집요하게 집착할까. 삶이 여유가 없고 매사 짜증이 나기 때문이 아닐까. 차선을 지키면서 가야 하는데 성질이 급하다. 차선을 지켜운전하다 뒤차가 빠져나와 앞으로 살짝 끼어들면 매우 불쾌하다. 미안하다는 신호를 하면 화가 나다가 가라앉기라도 하는데 어떤 얌체는 혓바닥을 내밀며 약을 올리기까지 하는 인간도 있다. 양보가 미덕이라고 하는데 지키는 사람만 손해를 보고 건강까지 해가 된다. 비열하고 얌체 짓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서로 불신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하는 것이다. 안 보이는 데서는 누구나 무한 질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한다. 다른 사람 다하는데 못하는 사람이 뒤에쳐졌다고 인식을 한다.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재주껏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러니 과속촬영기가 있으나 마나다.    인터넷상 축약어를 일상생활에서 버젓이 쓰고 있다. 조금 불편하면 귀찮다는 생각부터 하는 것인가. 반가워 요를 ‘방가’ 어서 오세 요를 ‘어솨요’ 선생님을 ‘샘’으로 편하게 부르는 게 멋스러워 보이기까지 하고 따라 한다. 우리말조차 지킴이가 되지 못한다. 이렇게 편하게 선택적으로 골라 하다 보니 서로가 불편하면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시류에 영합하여 묻어가며 몇 달 차이밖에 안되면서 세대차이가 난다고 한다. 서로서로를 불신하고 세대 차이가 난다 하고 만족할 수 없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농경사회를 살아온 세대와 지금 세대와는 물과 기름이다. 변하면 변할수록 갈등이 많고 불평불만이 많은 것이다. 갈등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가 힘들고 못 살겠다고 불평불만이 일상화되어있다. 나 힘들고 안 되는 것 있으면 탓을 한다. 부족하다 싶으면 외국의 문화나 제도를 말하면서 서로 불신하고 탓을 하는 게 정도를 넘었다. 서로가 지킴이가 되어 줄 수는 없을까.   지킴이가 있어도 안 되는데 없는 데서는 오죽할까. 탁구 하러 갔는데 잘 치는 사람한테 배우려는데 순서가 없다. 늦게 온 사람이 자기가 친다며 다른 사람까지 순서를 정해준다. 먼저 와서 치려고 순서를 기다리는데 순서가 아니라고 거들 사람조차 없다니 난감하다. 자기 차례다 싶으면 본인이나 칠일이지 오지랖 넓게 다른 사람까지 챙겨주다니 말이 안 된다. 이럴 때 ‘아니야, 저분이 칠 차례야’라고 하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이런 경우는 편들고 두둔하는 게 아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알려주니 고마운 일이 아닌가. 억지가 능사로 자기 밥도 못 찾아 먹는다며 어쭙잖은 말을 듣기까지 한다. 여럿이 함께 운동하면서 사실 여부를 이야기해 줄 수 있으면서 침묵이 양심이라 생각하는지 묵묵부답이다. ‘자기 밥도 못 찾아 먹는 게 바보’라는 말을 듣고 억지가 정당화된다. 남의 말 하면 안 된다고 하나 이런 경우는 아니리라. 애초에 배려와 존중하려는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다. 그러잖아도 꼴불견이 끝이 없는데 그러려니 하라며 개선될 일이 없게 한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유명한 배우, 저명한 인사가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혼을 쉽게 한다. 우리나라가 자살률과 이혼율이 세계 1위라고 한다. 왜 우리나라가 자살률과 이혼율이 셰계에서 가장 높을까. 불의 불식 간에 적절치 못한 언행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서 죄책감이 없고 상처를 받은 사람이 소심하다는 등 더 고통을 받고 치유할 방법이 없다. 마음이 아파서 힘든데 이해하고 참으라하며 소심하다고까지 한다. 사람이 행복할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상처투성이인데 우리는 이들을 얼마나 위로해주려고 노력을 했는지 용서를 구해야 하리라. 우리 주변에서 지켜줘야 할 자들이 만들어낸 불행이다. 자살율과 이혼율이 세계 1위라 하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배려하고 존중할 줄 모르는 데서 기인한 결과라고 생각되지 않은가.   인간 이외의 지킴이는 나를 종일 1년 365일 지켜준다. 언행이 필요 없으면서 나를 양심에 따라 행동하게 한다. 절대 배신하는 법이 없다. 서로 감싸주고 인정해주며 존중하는 지킴이가 되어야 하리라. 순수의 눈, 관용의 마음으로 지킴이가 될 때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고 배려와 존중으로 행복한 파수꾼이 될 수 있으리라.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고,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고, 기다려 주는 파수꾼이 있기에 살맛 나고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5-11
  •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즐거움은 재미있는 사람, 잘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놀며, 운동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직장에서 근무하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즐겁고 행복하다. 만나는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 욕설, 폄하, 비하, 억지, 무시, 반말, 막말, 예의 없는 태도, 거짓말 등을 예사롭게 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주변에 있다면 곤욕스러움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편치 못한 사람들로 천지를 이룬다면 즐겁게 생각하려 해도 쓸데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힘들고 편한 마음으로 이원화 되어있어 힘든 일은 피하고 좋은 것과 편한 것만 찾으려 한다면 상대에게 즐거움을 줄 수 없다. 언제 보아도 밝고 상냥하게 환한 웃음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아름다움을 나누어 갖는 모습이고 상대에게 호감을 준다. 만나면 너무나 좋아 헤어지고 싶지 않는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밝고 환한 미소로 긍정적으로 되려면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배려, 존중, 신뢰, 책임, 봉사, 희생, 열정, 적극성과 같은 덕목을 길러줘야 한다. “미국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봉사를 많이 하라고 가르치고, 영국의 엄마는 항상 양보하라고 가르치고, 일본 엄마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엄마들은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공부 잘하라고? 절대 져서는 안 된다고? 맞고 다니지 말라고?” 사람은 대개 끼리 끼리 어울린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사이좋게 지내라라고 가르치고 싶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 그중 첫 번째는 꽃과 같은 친구, 둘째는 저울과 같은 친구, 셋째는 산과 같은 친구, 넷째는 흙과 같은 친구가 있단다. 꽃과 같은 친구는 한창 꽃이 만개하여 예쁠 땐 다가오지만 시들어 꽃잎이 질 때는 외면하고 마는 친구란다. 저울과 같은 친구는 항상 이것저것을 견주어 보아 이해관계에 따라 사귀는 친구들을 말하고, 산과 같은 친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보아 주는 친구를 말한단다. 흙과 같은 친구는 친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도움을 주는 친구를 말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네 자신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할 것 같구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잖은가. 은연중에 친구를 닮아 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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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3-22
  • 인간관계?
    사람은 만남을 통하여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간다. 이해관계에 따라 마지못해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오래 갈 수 없고 진정성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사람과 십 수 년을 함께 생활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며 모든 사람들이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 관계론의 바이블’이라고 할 만한 저서를 남긴 카네기는 ‘수천 명의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지만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관계일 뿐 진정한 친구로 만난 것이 아님을 밝혔다.’ 유명한 인간관계론의 저자인 카네기조차도 수천 명의 사람들과 우호 관계를 맺었지만 진정한 친구로 만난 사람이 없었다며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고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사회생활에서 사람의 만남은 필수적이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진정한 친구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만나서 부딪히는 장애물들이 있으면 원만한 인간관계형성이 어렵고 불편하다. 무례한 언행을 보여서 기분을 상하게 하고 상대에게 ‘예의’ ‘매너’를 다하지 못해 상실감을 줄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무례한 언행을 보이는 것은 금물이다. 타인에게 결례가 있을시 일회적 현상으로 단순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불쾌감이 남는다. 본의 아니게 상대에게 결례가 될 수 있는 경우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상대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고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게 여기며 상대에게 불쾌감을 준다. 서로가 절제를 하고 ‘예’를 다하여 존중할 때 감동이 있고 유쾌한 인간관계가 된다.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오늘 하루는 누구든지 똑같이 주어진 것이다. 일을 하는데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 쉬운 일이냐, 어려운 일이냐, 편한 일이냐 아니냐를 따져 묻는 사람과 생활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 주어진 하루 최선을 다하고 잘 하겠다는 마음이 즐겁게 살아 갈 수 있는 보험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왜 하는지 모르고 짜증을 내고 게으름을 피우며 부정적으로 접근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부담을 준다. 쌩텍쥐페리의 저서 ‘어린왕자’에는 소외와 고독에 찬 현대인들에게 관계의 진정성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똑 같은 장미꽃 수천송이가 있지만 그 중 하나의 꽃이 중요한 이유는 그 꽃에 정성과 애정을 기울이고 함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라는 내용이 있다.   직장인은 회사에서 근무한 대가로 봉급을 받는다. 책임 있게 일한 사람은 인정을 잘 받을 수 있다. 승진이나 개인적인 일로 책임감이 훼손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마냥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서로 불신을 하고 상실감으로 인간관계가 불편하게 형성된다. 이거 내 일 아니야 귀찮게 매일 같이 이것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생각으로 한다면 기분 좋은 만남이 되지 못하고 신뢰를 쌓을 수 없다. 어떤 상황이든지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 인간관계도 잘 형성된다. 예전에 이웃 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단 한 번의 만남일 수 있는데 관계하는 사람들이 빈틈없이 최선을 다하여 배려하고 안내하여 주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나는 지금도 그 분들에게 감사함을 잊지 못한다. 흔히 사람들이 하루 이틀 잠깐 만나는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나라 사람은 어디에서 봐도 차이 없이 친절하게 똑 같이 대해 주었다. 이와 같이 잘하는 모습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져야 인간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귀찮게 생각하거나 억지로 하듯이 하면 인간관계가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2-25
  • 일을 하면 건강하다
       중국 철학자 펑여우란은 젊은 시절 서양학자로부터 “중국에도 철학이 있느냐”는 놀림을 받았다. 분발한 그는 7권짜리 ‘중국철학사 신편’을 쓰는데 평생을 바쳤다. 1990년 95세에 세상을 뜰 때도 원고가 손에 들려 있었다. 그 마지막 모습은 그가 생전에 자주 읊조렸다는 이상은(李商隱)의 당시(唐詩) 구절 그대로다.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뽑기 그치고 (春蠶到死絲方盡)촛불은 재 돼야 비로소 눈물이 마른다(蠟燭成(恢淚始乾).’   100세 생일에 맞춰 버스회사 수리공을 그만뒀던 미국 LA의 아서 윈스턴이 은퇴 20일 만에 숨을 거뒀다. 이 버스회사에서만 76년을 근무했고, 모두 81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내가 죽었을 때 딱 하루 결근했다는 윈스턴이다. 이미 10년 전에 클린턴 대통령은 그를 ‘세기의 직장인’으로 표창했다. 윈스턴의 사인(死因)은 심장이 점차 기능을 잃으면서 생기는 울혈성 심부전이라고 한다.  윈스턴은 최근까지도 건강을 뽐냈다. 섹시한 20대 흑인 여가수 비욘세의 사진을 옷장 안쪽에 붙여 놓았던 것이다. 은퇴하던 날도 그는 “아직 건강하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도 한구석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무얼 해야 할지 초조하기도 하다.” 그가 두려워 한 것은 ‘일’이라는 평생 동력이 멈추는 것이었다.  미국 장수(長壽)학자 토머스 펄스가 100세 넘은 노인 169명을 조사했더니 평균 78세까지 생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오래 일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이른 은퇴를 꿈꾸지만 막상 은퇴하고 나면 일을 몹시 그리워한다. 독일 철학자 훔볼트는 “일은 먹는 것이나 자는 것보다 인간에게 필수적”이라고 했다. 일하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증거다. 100세 윈스턴이 남겼던 말을 이제 음미해 보니 마치 자기 죽음에 대한 예고처럼 들린다. “너무 오래 멈춰 있으면 얼어붙는다. 계속 일하라. 일하는 것이 오래 사는 길이다.” 인생의 초반전에는 일하는 것이 지옥이었다. 젊었을 때는 일이 몸에 배지 않아서인지 화가 나고 상사가 고달프게 하는 존재로만 생각되었다.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최선을 다해 일해도 잔소리는 여전했다. 지금은 자신이 일을 못하는 것도 일이 많아서 못하는 것이고 놀고 있어도 바쁘다 하며 이현령비현령으로 참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유가 어디에 있던 지나고 보니 헛살아 왔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이왕 할 일이면 즐겁게 할 것을 바보처럼 생각하며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다. 학생은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하여 노력을 해야 성장할 수 있고, 직장인은 주어진 역할을 흔쾌히 받아들일 때 건강해질 수 있고 행복한 일터가 된다. 어차피 이왕에 할 공부나 일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고 평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런 역할을 못한다면 게으름, 태만, 소극성, 무능, 피동성, 수동성, 의타적으로 매사를 부정적으로 그르칠 수밖에 없으며 타인에게 폐가되기도 한다. 자기 역할을 잘하는 것은 자신이 성공적일 수도 있고 남에게 폐가 되지 않아 건강하고 행복하게 될 수 있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2-05
  • 부부별곡
        사람은 속병이 없으면 오래 산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구순의 할머니가 손자한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었나 보다. 자율적으로 오는 병은 병원에 가면 되지만 심리적 병은 치료할 방법이 묘연하다. 시도 때도 없이 마음에 쌓이는 시름은 타율적이어서 한 번 마음 집에 들어오면 나갈 줄 모른다. 사람들은 쉬 잊으라고 남 말하듯 상처를 내면서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라 하지만 한번 마음 속에 박힌 상처는 들어 올 때는 쉬워도 지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골치 아픈 일 빨리 잊을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안 된다. 몸이 아플 때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나 마음이 아플 때는 갈 데가 없는 게 문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플 일도 아닌데 배 아파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기적인 속성을 가진 인간은 내일 변할 것도 없는 그네를 타며 헛수고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니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덫에 걸려 남들이 내는 상처를 마다하고 희망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몸과 마음 따로 병이 났을 때 어느 경우가 힘들까.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지만 마음의 아픔은 유통기한이 없다. 우리는 매일 사람을 만나며 본의 아닌 스트레스와 갈등을 겪는다. 병은 마음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산다는 게 다 그렇고 그렇다며 모두가 무관심하게 병 주고 약 준다. 마음이 불편하면 행복할 수 없지 않은가. 인간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마음 속 아픔은 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부부는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즐거움과 괴로움, 걱정과 분노, 절망과 고통을 함께 나눌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체다. 잘잘못을 그대로 함께 느낀다. 우리나라는 세계 열두 번째로 잘 살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데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운동을 해서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는 있으나 타인과의 갈등이나 스트레스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치유하고 극복하는 데 힘이 부친다. 건강하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을 아끼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당연한 일이지만 인간관계에 나타나는 문제는 공동체적으로 노력해야 할 일이라면 잘못된 소견일지 모르겠다. 인간관계가 잘못되면 정신 건강을 해치는데 직접적인 문제가 아니어서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 게 문제다. 육체적 건강 못지않게 정신적 건강이 중요하다. 정신이 건강하려면 무엇보다 관계가 중요하고 주변인들 역시 함께 노력해야 하리라. 여건에 따라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습관적인 생활화로 이어지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덩달아 할 때가 있다. 분위기에 편승하여 대화가 오고가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일이 전개되기도 한다. 대화를 하든 음식을 먹든 자기 의지대로 반영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이런 저런 말에 놀아나게 될 때가 있다. 남 보기는 쉽게 보이고 말은 쉽지만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지 걱정이 팔자라며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모임이 있으면 으레 술자리로 이어지는데 개인사정에 따라 먹고 싶을 때도 있고 내키지 않을 경우가 있는데 먹기 싫다 하면 ‘죽을 때가 다 됐다’다며 억지로 먹이려 한다. 술잔을 돌릴 때는 먹기 싫어도 막무가내기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따라 맡겨 둘 수 있어야 하는데 굳이 강요하다시피 하는 저의는 뭘까. 나 혼자 마시고 망하지 않겠다는 심산이 아니고서야 강제로 술을 요구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오래간만에 특별히 시간을 내어 만난 자리인데 기분이 상하는 대화가 일방적으로 오고 간다면 안 만나느니 못한 만남이 된다. 만남은 더 따뜻하고 돈독하기 위해서 마련되는 자리인데 그렇지 않다면 모임을 가져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는가. 모임이 불쾌하게 끝나고 만족스럽지 못해도 모임에 나가는 이유는 앞으로 잘 되겠지 낳아지겠지 하는 마음인데 언제나 불쾌한 감정이 쌓이기만 한다.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잘못이 쌓이고 기대할 수 없는 아쉬운 날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억울하게 소모적인 일로 배려받지 못하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불행을 경작하는 선수가 되기 싶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문턱에 있으면서 삶의 질은 팍팍하기만 하다. 왜 그동안 나는 남들처럼 영악하게 살지 못했을까. 대책 없이 노년을 맞게 된 나를 질책하곤 한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와 같은 나눔과 따뜻한 삶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뒤 늦게 나름대로의 희망을 갖는다. 땅거미가 지는 어스름한 저녁 어느날 노부부로 보이는 내외를 보았다. 영감이 꾸부정한 부인의 손을 꼭 잡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황혼의 나이에 꾸부정한 부인의 손을 잡고 가는 영감이 내 모습이고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들면 자식이 출가하여 분가를 하고 남은 건 부부다. 나이가 들어 병이 들고 거동이 불편하면 본인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자신조차 모르고 가족들이 모르는 세월을 보내면서 모두가 힘들다. 가족이 수발을 들어준다 해도 한계가 있다. 건강하게 사는 방법밖에는 없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건강하지 못하면 집안 식구에게 짐이 된다. 집안 식구 들에게 짐이 되고 싶어서 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 병들고 거동하기가 힘들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말도 어눌하고 움직이는 데 부자연스럽고 어쩔 수 없다. 사는 날까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말고 건강하게 사는 노력이 절실하다. 고령이 되어 자신을 자각할 때는 이미 속수무책이다. 운동을 하는 것은 아이가 눈을 떠야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여태까지 일회적으로 일관성 없이 핑계를 대면서 운동을 미뤄왔는데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닌 것 같다. 젊었을 때 건강이 나빠지기 전에는 움직이는 것이 귀찮고 움직이는 것조차 일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은 젊을 때부터 꾸준히 해오면 병원에 가지 않고 즐겁고 건강을 지키며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건강을 잃고 노년을 힘들게 보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찾아든다.잘못된 생활습관이 쌓여 건강을 잃고 노년을 힘들게 보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찾아든다. 내가 좋아 하는 운동 하나만이라도 해 올 걸 하는 후회가 된다. 운동이 행복한 삶을 만든다는 걸 건강을 잃어봐야 안다고 하는데 나에게 던져 주는 말 같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나는 내 건강관리 못지않게 집사람 건강을 잘 챙긴다. 밀레의 이삭 줍는 저녁노을 만종처럼 건강한 부부로 낭만적으로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년에는 부부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복된 삶이다. 부부 중 건강을 잃어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우리 부부의 꿈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요양원 신세가 안 되게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기도를 하며 매일 아침을 열곤 한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1-20
  • 용두사미가 되어서는 미래를 보장 할 수 없다
    처음에는 왕성한 의욕으로 시작했으나 작심삼일도 길게 느껴진다. 기대도 크고 계획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맘처럼 안 된다. 안하든 것을 착수해 옮기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익숙하지 못한 일을 하려니 힘든 것은 당연하다. 해오던 일 같으면 보완을 해서 실천해 가면 되겠지만 우리 생활에서 습관을 필요로 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가령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그동안 안하던 공부를 하려면 머리도 쑤시고, 앉아있기도 힘들고, 머리에 들어오는 것도 없으면서 한 시간, 두 시간을 앉아 있는 다는 것은 고역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놓여있고 안하느니만 도 못하게 포기해버리기 십상이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인내심과 끈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허약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어렵게 취직을 하여 회사에 들어가서 나름대로의 포부가 대단할지라도 입사하고 난 후에는 기대만큼 회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나 승진 전에는 부지런하고 열의와 각오가 대단했던 사람이 목적을 달성하고 난후에는 현격하게 게을러지거나 교만하여 질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 취직 또는 승진을 하여 목적을 달성하면 그동안 힘든 것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안일함이 다음단계로의 도약보다는 목적 달성의 기쁨에 만족하는 것이 고작이고 자만심에 빠진다. 이는 우리 식의 일반적인 생활방식이 되고 있어서 승진한 사람들의 축하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처음에는 좋았으나 말년에는 좋지 못하게 결말이 난다. 승진을 하면 편하게 지내는 줄만 알고 고생 끝 낙이 되어 사람들이 사악해지고 시건 방지는 셈이다. 취직이나 승진을 하면 거기에 걸맞게 사명감으로 일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목적 달성을 위해 일을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이렇게 기회주의적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피곤한 일이고 유감스럽게도 속이 들여다 보인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근무하는 것이 즐거울 수가 없다. 이해관계에 따라 분위기가 조작되면서 실망을 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회사에 들어 왔으면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었으니까 의욕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무기력한 모습으로 동료들로부터 빈축을 받게 된다.   열심히 해서 승진한 후에는 긴장감이 없이 맥이풀려 성과가 좋지 않다. 이렇게 취직이나 승진을 해서 열정이 멈취 버린다면 개인적으로도 큰 손실이 된다. 처음과 끝이 시종일관 같아야 하는데 우리의 생활방식이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이끌어내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으니 나도 그렇게 한다는 식이다. 요즈음 말로 레임덕이 어디서든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큰 권력을 가진 대통령조차도 레임덕이 있는데 아랫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높은 분들은 권력누수 아랫사람들은 맥아리가 없어지게 된다. 하루를 그럭저럭 떼우는 것으로 보인다면 낯을 붉힐 일이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 사실인 것을 잘못하면 뭇매를 맞던지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부인해도 그렇게 밖에 안 보인다 학생들도 이에 다를 바 없다. 새 학기에는 생동감 있고 역동적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강도가 떨어져 학기말이 되면 학생들의 학교생활이 흐지부지되듯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2학기말 시험이 끝나면 새로운 준비보다는 긴장이 풀리고 학교생활이 내실 있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나 어른이나 시작과 끝이 일관성 있게 되어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의욕을 잃고 방황을 한다. 이런 것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얄퍅한 잔꾀로 목적 달성을 한다 해도 처음처럼 끝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다 평가 할 수 없다. 성공한 사람들은 시작할 때의 패기와 열정을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끝까지 시종일관 일관성있게 고수하여 성공을 한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7-12-20
  • 기쁨과 감동을 주는 일은 무엇일까
    기쁨과 감동을 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희생정신으로 친절하고 상냥해야 아름다운 행복을 저축할 수 있다.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탑승객이 많다. 상대에게 불편을 피하려 해도 피할 수가 없어 좌석 앞에서 서 있을 때가 많다. 함께 서 있던 분이 자리가 비어 아버지 앉으시라고 양보를 하고 권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감사하다. 얼른 의사표현이 익숙하지 않아 결례를 할 때 자책을 하면서 마음을 나눠 갖는 일의 감사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보고 거들어 주고 양보 하면서 배품으로 나눠 갖는 일이야 말로 아름다운 일이구나 하면서 나도 밤나무가 너도밤나무가 된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들은 메달 감이라고 가끔 생각해본다. 사람은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감동의 순간으로 행복하다. 이런 면들을 나눌 줄 모르고 욕심대로 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감동, 신선함을 주는 일은 자타의 일이 아니라 체질적으로 쉽지 않는 일이며 열심히 의지력을 갖고 노력을 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고 자부를 하면서 과연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아름답게 보여주고 희망을 갖게 하고 기쁨을 주고 용기를 갖게 하고 감동을 주며 살아 왔는지 뒤돌아 봤을 때 너무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대게 다른 사람의 일은 관심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발레리나 강수진씨는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연기로 감동을 주고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성한 데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발가락이 툭툭 불거지고 몰골이 망측할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통하여 관중들에게 아름다움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피겨스케이트 여왕 김연아는 3000번 이상 넘어지고 일어나는 피나는 연습으로 세계적인 일류 선수가 되었다. 다른 선수들이 2시간 노력할 때 3시간 4시간 더 많이 노력하여 얻은 값진 결과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구어낸 히딩크 감독은 히딩크니까 할 수 있었다로 알고 있지 만 (조선일보 2017년 10월 26일) 히딩크 감독 제자 박지성에 의하면 히딩크 감독과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지도자는 나에게 무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히딩크는 2002년 월드컵과 에인트호번, 퍼거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의 스승이다. “감독은 365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는 직업”이라며 “좋은 감독이 되려면 전술도 중요하지만 상황을 즉시 파악해 선수들 의욕을 이끌어야 하고 때로는 호통으로 선수들 자존심을 자극해 분발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히딩크와 퍼거슨처럼 할 자신이 없었다”며 지도자의 꿈을 포기하고 행정가의 길을 선택 했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타고 나야지 노력만으로 누구나 다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노력은 경우에 따라서 할 수 있지만 예체능은 재능을 타고 나야 가능하다. 자기 분야에서 잘하려면 재능과 더불어 열심히 해야 가능하다. 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실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아름다운 연기 뒤에는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안 뒤에는 어디에 가든 무슨 일을 하던 선수들의 모습이고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로 존경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는 자기 나라 오스트리아를 떠나 타국에 와서 43년간 소록도에서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며 봉사활동을 해오 신 하늘에서 내려 준 분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분들이다. 얼마 전에는 거동이 불편하고 치매로 소록도에 있으면 짐이 될까봐 지금은 본국으로 들아 갔다고 한다. 참으로 기적 같은 분들이라 아니 할 수 없고 감동적인 분들이다. 이런 분들에게 노벨상이 돌아갔으면 한다. 우리 부천 시민이 나서서 노벨상으로 추천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해봤다.   1980년대 초 남태평양의 작은 섬 사모아 나 환자 촌에 들어가 뭉툭해진 손을 만지고 치료를 해주며 희생과 봉사로 과로로 돌아가셨다는 분이 이종욱 박사다. 나병 환자가 옆에 있으면 피하고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없을 텐데 환자를 직접 돌보고 한평생 거기에 남아서 의료행위를 하고 봉사활동을 한다는 건 말이 쉽지 기적 같은 일이다. 백신 예방으로 어린이 소아마비를 현저히 줄였다고도 한다. 아시아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분이다. 이런 분들에게 노벨의학상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어떤 분에게 돌아 갈 수 있을까. 세상에는 잘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어렵고 힘들거나 운명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은데 이만큼 사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하며 숙연해진다. 이런 분들을 생각하면서 작은 실천이라도 하고 작은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감동을 저축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자체만으로 행복이 걸어오는 기분이다. 우리 모두가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나누고 베푼다면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삶이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7-10-31
  • 소통과 논쟁-구유현의 명상 노트
       소통은 상대의 인정과 경청이 기본요소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경청하지 않으면 대화의 의미가 없다. 토론역시 대화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가치적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토론이 논쟁으로 흘러서는 의도하고자 하는 방향이 될 수 없다.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주고받으면서 주제에 접근할 수 있고 입장의 차를 극복할 수 있다. 내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상대를 무안하게 만들고 비난하고 부정적이라면 더 이상 대화나 토론할 여지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처한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른 정보로 개개인이 나름의 기준이 될 수 있는데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를 비난 하고 부정적이라고 일방적으로 말하고 정당화 하려고 하면 제대로 된 대화나 토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사람들은 말을 잘 바꾸고 아무렇지 않게 편하게 생각하면서 즐기면서 말을 하지만 자신의 불이익에 대해서는 참지를 못한다. 남에게는 쉽게 잊어라, 머리 아프게 뭘 생각하느냐고 성인군자답게 그런 것처럼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 미치는 화는 참지를 못한다. 다른 사람이 말하면 골치 아프게 쓸데없는 생각이라 폄하 하며 일축해 버리고 지극히 무성의한 말로 무기력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제대로 된 대화나 토론 문화가 정착되려면 대화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고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매일 함께 생활해 가는 사람일수록 존중하고 잘 지내기보다 마음에 없는 말로 이중적이며 거래관계로 대화를 기피하게 된다. 날이 날마다 피할 수 없는 사람이면서 가장 보기 싫고 지겨운 사람으로 느껴진다면 이 보다 더한 불행이 없다. 즐겁게 일하고 운동하고 여행하면서 믿고 도우며 살아가는 분위기가 조성 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니 고민스럽다. 이런 경우는 분별력이 없고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같이 있는 사람들끼리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누구든 이런 잘못된 분위기를 밀고 당기면서 벗어나자고 하면서 이런 사람이 말만 많고 제일 먼저 분위기를 망치는데 앞장선다. 가족, 친구, 동료, 이웃 등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만 신실한 이야기를 나눌 상대는 그리 많지 않다. 개미 쳇바퀴 돌 듯 정해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는 가까운 사람과 원수처럼 지내면서 달라질 날은 요원하다.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차단하고 자신의 편견이나 정보로 상대의 이야기를 부정해 버리는 사람과 더 이상 대화를 나눈다는 건 거북스러운 일이다. 이런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하고 예로 대해야 한다. 우쭐대고. 이중적이고, 교만하고, 경솔하고. 갈등을 유발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피할 수 없는 대화는 논쟁거리를 유발하고 매번 섭섭하고 우울한 만남이자 생활이 된다. 인간관계에서 좋은 일은 쉽게 잊는 반면 마음에 상처나 본의 아니게 잘못된 경험들은 잊으려 해도 잊어지지 않는다. 이런 토양에서 대화나 토론은 잘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대화나 토론의 문화가 활성화 되고 긍정적으로 되려면 대화나 토론 자체를 상대적으로 접근하기만 해서는 대화나 토론 자체가 무의미 하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경험이나 습관을 기준으로 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사안 따라 의도적으로 왜곡 할 수도 있지만 평소의 소신대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경우가 많다.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상대를 무시하듯 하면 대화나 토론자체가 부정적으로 논쟁이 유발된다. 바람직스럽지 못하면서 적반하장으로 문제시 하고 정상이 아니다 며 주장하며 갑론을박 주객이 전도된다. 잘못에 대하여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이야기 하면 그런 상식적인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말 같지 않은 말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상식을 넘어 가증스럽고 위선적이고, 이중적이고, 영악하고, 매사 계산적인 잣대로 정당화 하고 거래관계가 되면서 인간관계가 무너진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원론적인 수준의 이야기라며 의미를 축소한다. 따라서 ‘악화는 양화를 구축 한다’는 사회 환경이 존중되고 있는 셈이다. 교과서 적으로 말하며 사는 사람은 부족하고 어리석게 보이는 사람으로 취급되고 항상 피해를 입는 것이 당연하듯 우리 환경의 저변에 악의 선택이 기정사실로 익숙하고 안타까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공허하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 식대로 개별화 되어 가고 수평적으로 포장되어 고통 속의 피로감만이 있을 뿐이다. 소통이 안 되도록 일방적으로 구조화 되어 있는 데서는 논쟁을 유발 할 뿐 토론의 문화를 기대할 수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그냥 두어야 창의적이고, 다양성이 존중되고 개성을 살릴 수 있다 단다.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춘다.’는 화사한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렇게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성장한 사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고 듣기 싫은 말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모인 조직이나 사회 구성원이 소통이 잘 이루어질 수 없다. 서로 통하지 않으면 토론이 잘 이루어질 수 없다. 글씨를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말을 매일 같이 금과옥조로 삼으면서 잘하자고 하지만 연목구어다. ‘내 배 째라’ 하는 쨀 수 없는 배를 상대방에게는 내 놓으라고 하며 불통이 된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지배되면서 소통이 단절되어 가고, 더욱 인터넷 매체나 스마트폰 영향으로 대면 소통보다는 매체를 통한 간접 소통이 강조되면서 사람이 고립을 자초 하고 사고의 사유화만 심화되며 소통의 중요성만 제시 되고 소통 부재의 늪으로 매몰되게 된다. 심드렁하게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만이 긍정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지혜를 받아들이는 지혜’가 진짜 긍정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로 임해야 소통을 잘할 수 있고 논쟁거리가 안된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7-10-20
  • 갑 질은 삶을 피폐하게 한다
    삶이 즐거워야 인생이 희망이 있고 행복하다. 우리 문화가 말에서부터 수직적이고 갑 질의 문화로 솔직하지 못하고 기고만장하여 불편부당하고 가식의 문화로 행복의 질이 낮다. 행복지수가 높다는 건 직장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어디든 불문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고 보람이 있고 즐거운 생각이 들 때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우리 사회의 문화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혀있고 그 중심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갑질의 문화가 위계적으로 되어 적절하지 못한 행태를 일방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최근 갑질의 문화가 없었던 일이 있듯 경악스럽게 지면에 보도되었으나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갑질의 문화가 일반화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리 사회 어디든 갑을을 막론하고 질을 하여 불편부당하고 마음이 상해 있다. 서로 서로 자신의 역할이 부족하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주장을 한다. 더불어 사는 삶을 감사하기보다 잘못에 대하여 관대하고 실례를 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더 당당하고 대들고 치켜보고 우기고 억지를 써 황당하게 만들고 위축되어 되레 미안하게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 모두가 이런 질의 문화에 익숙해 있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대접받으려면 영악하고 계급이 있어야 하고 부를 많이 가져야 사람취급을 받는다. 갑 질을 하는 사람들의 막말, 욕설, 무시, 비하, 모멸, 비위를 거스르는 말을 일삼아도 인내하고, 믿고 따르며, 미덕으로 알고 인지상정으로 허용을 해야 한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이런 비위생적인 언행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됨됨이가 된 사람으로 한통속이 될 수 있다. 이를 드러내면 괘씸죄에 걸려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상사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니 모두가 죽기 살기 식으로 갑의 대열에 올라서려고 물불을 안 가린다. 이런 마당에 행복은커녕 밀려나고 잘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막말, 고성,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밥 먹듯이 들어야 하는 문화가 멋있고 예스럽게 보이며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진정성이 있고 더 설득력이 있다.   아래에 있는 힘 쓸 수 없는 사람들은 그런 적절하지 못한 수모를 당하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억울해도 말한 마디 건 낼 수 없이 비참하게 당한다. 말로는 민주국가라지만 갑 질이 잘못되었다고 누구 하나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이런 문화를 잘못되었다 하면 그게 좋으면 너도 ‘해봐’ ‘못하는 게 바보지’, ‘누가 출세하지 말라냐’며 능력 부족이라고 비아냥대며 더 할 수 없이 망신을 준다. 그래서 모두가 조금이라도 대우가 좋은 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취업을 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월급차이는 배 이상인데 당사자는 물론 부모도 자식이 대우 좋은 기업의 취업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갑 질의 구조는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구분하여 놓은 것이지 막말, 욕질, 모멸감, 비하, 아래에 있는 사람을 경멸하고 노예 부리듯 못살게 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갑 질의 논란은 막말 고성 욕설 비하 등 적절하지 못한 행태로 모멸감을 주고 하인이나 종 부리듯 하는데서 비롯되고 갈등이 있는 것이다.   결혼과 저 출산만 해도 갑 질의 문화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결혼 상대도 요즈음은 남녀 구분 없이 능력에 따라 취업을 하고 오히려 여성의 사회진출이 남성을 능가한다. 서로가 보장될 수 있는 상대를 결혼 상대자로 한다. 변변한 직장이 아니면 결혼하기도 쉽지 않다. 장래가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결혼과 저 출산 문제가 해결되려면 어떤 위치에 있던 존중받고 사람대접 받는 입장이 되어야 결혼도 하고 결혼해서 출산율도 높일 수 있다. 서로 갑 질을 할 수 있는 결혼 상대를 선택하려 하가 때문에 만만한 결혼 상대자를 찾지 못하고 미혼이 증가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 이런 저질 적인 문화가 사라져야 사람답게 다리를 쭉 펴고 살 수 있다. 잘못된 구태의연한 악질적인 갑 질에서 벗어나야 사람다운 사람으로 대접 받을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풍토가 되어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사람답게 살 아 갈 수 있다. 갑 질의 문화가 일반화 되고 당연하다 보니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이 갑 질을 해도 오히려 대접고 아랫사람이 하는 말은 헛소리 아니면 떠드는 소리에 불과하다.   오늘 이 시각에도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갑 질로 속앓이를 하고 질식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박수를 쳐야 할 처지가 안타깝다. 갑 질이 부적절하다 하면 출세 할 수 없는 약자에게 억울하면 ‘출세해라’, ‘그게 좋으면 당신도 그렇게 해봐’라는 식의 말로 비아냥거리고 비참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든다.   계급이 낮은 하위직이라 하여 돈이 없으면 고성, 쌍욕, 왕따, 막말을 당연하게 듣는 것처럼 억울한 일이 없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모욕하고 겁을 주고 갖은 수모를 당하고 살아가도 어디에 대고 하소연 할 곳이 없다. 이에 대한 성문화 된 법도 없고 능력불문 상처를 받아도 당연한 도리로 받아들이면서 분개를 하면 할수록 세상이 그렇다 하면서 아래에 있는 사람이 질타를 당하는 꼴이 되고 본전도 못 찾고 의미가 없다.   별다른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은 쓰레기 같은 갑 질로 아래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 상하게 하면서 ‘억울하면 출세하라’ 것은 막말과 같고 비아냥대는 대리 갑 질은 더욱 더 지겨운 듣기 싫은 말이다. 갑 질을 하는 사람이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 하여 당연히 들어야 할 의무는 없으며 이거야 말로 일방적이고 억울한 말임에 틀림없다.   우리 사회에서 우선적으로 개선되고 다뤄야 할 문화가 있다면 일반화 된 갑 질의 횡포라 하겠다. 정말 없어져야 할 저질문화다. 또한 특정 계층을 만들어내는 불평등도 시정되어야 한다. 없어져야 할 갑 질의 문화를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 내는 측면도 있다. 이들이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교육을 잘 받았으면 교육 받은 만큼 충실하고 갑 질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갑 질의 문화가 구조화 되어서 불평등한 계약을 맺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이런 일방적인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장의 경험이 있어야 전문성도 생긴다. 특별히 교육을 통할 전문성도 아니고 직장에서 그게 그거지 굳이 국민의 세금으로 갑 질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저질 문화는 그만둬야 한다. 국가에서부터 갑 질의 문화를 만들어 내면서 갑 질을 한다고 누구를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까   계급이 낮다고 무시하고 사람 취급을 안 하는데 기분 좋을 사람 없다. 매일 상처를 받고 억울해도 그러려니 하고 비참하게 짓밟힌다. 적폐란 바로 이런 문화를 청산하는 것이 적폐청산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최소한도 이런 낡아 빠진 저질 문화에서 벗어나야 상처받지 않고 아래 사람들이 충실하게 마음에 병 없이 살아 갈 수 있다.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며, 듣고 허용을 하게 하면서 편견에 의해서 좌지우지 사회문화가 형성된다면 불행하다. 우리는 늘 ‘잘하자’ ‘배려하자’ 말로만 하면서 묵인하고 방조하면서 갑 질의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중성 때문에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바보 취급하면서 어떻게 달라 질 수 있을까.   스트레스만 생산하고 갈등만 키우게 된다. 마땅히 하소연 할 곳이 없어 전전긍긍 살아 갈 뿐이다. 법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눌려서 찍소리도 못하고, 불행스럽고 운명적으로 마지못해 살아가는 것이다. 매사 개선되고 좋아질 것처럼 하는 후천적 갑 질의 문화 보다 사회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바뀌어져야 한다. 폭언, 막말, 폄하, 깔아뭉개기, 협박을 해도 불이익을 무기로 하는 갑 질의 문화가 일상화 되어서는 안 된다.   계급의 문화가 저질적인 갑 질의 문화로 둔갑되어서는 안 된다. ‘암행어사 출도요’하면 무서워 벌벌 떠는 갑 질의 문화는 근절되어야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무시하지 말고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살 수 있는 문화라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 갑 질의 계급문화를 허용하면서 불평등이 심화 되고 적절하지 못한 문화가 사회 곳곳에 형성되는 것은 불행스럽다.      너는 네일 잘하고 나는 내일 잘하는 역할을 다 하면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 되어야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 갑 질의 문화로는 일을 잘할 수 없고 생산성이 높아질 수 없고 단지 갑의 잘못된 행태를 인정하는 셈이 될 뿐 공동사회를 저해하는 잘못된 질로 사회 환경적으로 불필요한 낭비요인이다. 상명하복의 계급사회라 해도 아래 사람을 못살게 종 부리듯 하지 말고 부적절한 악습을 개선하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상명하복이라 하여 부적절하게 하수인 다루고 종 취급 하듯 하지 말고 사람답게 대하라는 것이다. 직장에서 구성원들이 능력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고, 동생 같은 후배도 있고, 형 부모 같은 연배 분도 있다. 갑 질은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어느 한 쪽을 위축시킨다.   이러한 불필요한 질의 문화가 시정될 때 따뜻한 사회와 직장에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충실하게 살아 갈 수 있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7-10-14
  • 배려는 인간 최대의 덕목이다
       인간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공동체 구성원이다. 타인이 해주는 일이나 국가차원의 복지에도 한계가 있다. 타인이나 국가에서 완벽하게 해준다하여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개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법률이나 제도에 의해서 상호간에 나타나는 문제를 풀 수 있지만 개개인의 사사롭게 나타나는 문제까지 법으로 제도화 할 수 없다. 기본적인 생활 규범에 대해서는 제도나 법률로 가능하나 개개인 상호간에 나타는 감정이나 불만족 이해의 부족은 소통의 한계로 나타날 수 있으며 각자의 양심에 따라 도덕적으로 맡겨진다. 사회환경의 기본 문제해결의 방법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법률이나 제도에 의해서 해결할 수 있다 하여도 그 외는 도덕이나 양심에 따르는 문제까지는 불가능하다. 내가 힘들고 하기 싫고 미루고 게으르고 능력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 까지 타인이나 국가에서 해결 하여 줄 수 없으며 사회 환경적으로 도덕이나 양심에 따라야 할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개별적인 성향에 따라 남모르게 할 수 있는 언행이 많다. 가령 거짓말만 하더라도 내용이나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는 거짓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위선은 사실 보다 솔깃하고 화술에 따라 바뀌어 지고 그럴듯한 거짓말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옥석을 가리기 쉽지 않다. 개별적인 편견이나 주장이 주관적인 화법으로 타인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언행들이 많다. 언행은 개개인의 양심이나 도덕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학교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나만을 생각하고 편리성에 따라 개별적인 성향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기대만큼 교육의 효과가 미흡하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나만 왜 해’, ‘내가 미쳤어’ 라며 손해라는 선입견이 있다. 법과 제도가 잘 구비되어있고 복지 환경도 잘 되어있다 해도 인간 감정과 양심까지 제도화 할 수는 없다. 겉으로는 번지레 하고 잘하듯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삶은 항상 불편하고 스트레스 받고 뭔가 불만족스러우며 피동적이고 의타적으로 나타날 있다. 개개인이 나타는 불만족을 과연 어떻게 하면 회복 할 수 있을까. 도덕과 양심이 실종된 환경에서는 개별적인 사사로운 문제들을 해결 하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하기 싫은 것이다. 사람들이 ‘재미없다’, ‘잘못됐다’, ‘사회가 잘못됐다’, ‘국가가 잘못됐다’고 하며 내 잘못이라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잘못됐다고 할 수 있다. 개별적인 삶의 질만을 요구하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손해 본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이익만 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지만 불편한 사회 환경은 지속되어지고 갈등이 양산된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타인에게만 높은 도덕성과 양심을 요구한다. 그러면 이러한 이기적인 사회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산업화되기 이전에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하여 달려오면서 서구의 선진국에서 야기되는 우리와 다른 문화에 대해서 일부 생소하고 부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부모와 자식이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 각자 밥값을 따로 지불한다며 인정머리 없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라며 부정적이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환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개개인의 이익만 극대화하기 위한 말의 성찬과 기만이나 이기적인 환경으로 변화 되었다고 하면 뭇매를 당할 일이다. 뭇매도 이기적인 집단의 성격으로 인권무시 변질이 되어 상대적으로 주장한다면 부정적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스트레스를 주고받으면서도 오만불손한 생활의 연속이라 하면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장면은 당연하고 그렇지 못한 부정적인 면이 정당화 되고 공동체가 되어가는 환경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사회에 영향을 미칠 잘못된 언행이나 편견에 대해서 미화 하면 할수록 정보가 왜곡되고 거칠어지고 불편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아름답고 행복한 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능력에 따라 충실하며 타인에게 배려하는 생활태도로 임해야 역동적이고 확산적인 사회 환경의 모델이 되고 살기 좋은 사회 환경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매사 기분이 상하고 잘못되고 잘못이 사실로 관행화 되어 가면서 이를 묵인하면 폐쇄적인 환경이 되어 간다. 개선할 것을 개선하지 않으면 관습이 된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바꾸어야 배려가 있는 삶이 되는 것이다. 요즈음 환경은 아무런 까닭 없이 개개인의 부주의로 타인을 불쾌하게 하고 기분 상한 일이 부지불식간에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다. 기분 나쁘고 불쾌하다고 하면서 이런 잘못된 언행이 홍수처럼 쏟아내면서 배려할 줄 모르는 잘못된 문화가 쌓이기만 하고 걷어내지 못한다면 암담한 현실로 받아들이며 불행해진다. 배려야 말로 인간 최대 행복의 창출이고 아름답게 살아 갈 수 있는 도구다. 배려란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자신의 기분으로 하기 보다 상대를 한번 쯤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앉아서 일처리 보다 일어나 한발 다가가서 소통하고, 매사 솔선수범을 보이고, 공동의 일을 내일 같이 하고, 어려운 동료를 도와주고, 상호간 예로 대하고, 두둔하거나 편들지 말고, 아이들이 싸우면서 자란다는 폭력을 불러오는 말인 줄 모르고 하는 말 삼가고, 부주의로 친구의 이가 부러 졌거나 다치게 했으면서도 장난으로 했다하고 장난으로 그럴 수 있다고 당연하다는 말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를 다치게 해놓고 장난으로 했다는 말을 어떻게 장난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부주의로 상대가 해가 되었다면 당연히 잘못되었다고 가르쳐야 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반성하고 평가해 볼 일이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주의한 언행을 장난이라고 하면서 그럴 수 있다고 두둔하고 편들어 주면 또 다른 잘못이나 폭력을 야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관련된 폭력을 장난이라 하고 아이들이니 할 수 있다 하면 아이들의 잘못된 행위자체를 인정하는 셈이다. 나와 다른 타인을 역지사지로 분명히 구분해야 하며 자신의 부주의로 생긴 문제로 상대가 상처받지 않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대수롭게 하면서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주는데 인식이 없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타인에게 감정상하게 되지 않는다. 배려 없는 언행으로 우리가 잘 살아 갈 수 없고 황량한 환경이 된다. 배려는 주인 정신, 이타적인 삶, 겸손, 희생, 봉사, 예의, 기부, 존중,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할 수 없는 덕목이다. 배려의 문화가 성숙하고 가꾸어질 때 감동적이고 행복한 환경이 정립될 수 있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7-10-12
  • 바른 습관은 좋은 성품을 만든다-구유현의 명상노트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품이 바뀌고 성품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백 번 천 번을 들어도 맞는 말이다. 예전에 많이 듣던 흔한 말로 고리타분하고 잘 알고 있을 것 같으면서 알지 못하는 쉬운 말이다. 알지 못하는 쉬운 말을 아는 척 하면 가관이다. 잘 알고 있으면서 하지 못한다면 모르는 것과 같다. 그걸 누가 모르냐, 안되니까 그렇지 입버릇처럼 달고 살지만 잘못됐는지 모르고 막연하게 주고받으며 어쩔 수 없는 습관으로 세월이 되고 습관화 되고 굳어지고 내팽개친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일갈 했다, 이 말을 아느냐고 물어 보면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웃음거리가 된다. 왜 이 말을 하느냐 하면 안다고 하지만 정작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전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나 자신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매일 기계적으로 잠을 자고 깨고, 외출을 하고, 집안청소, 정리정돈 등 일련 일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깨서 잠자리에 들기 까지 매일 반복적이고 기계적으로 이루어져 의미를 두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일련의 일이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에 의해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상생활이 중요한데도 막연하게 생각될 뿐이지 무엇보다도 대단히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는데 사소한 일로 생각하여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가면서 일상생활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습관이 되어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하는 일이 시간 낭비라고 소홀히 한다. 일상생활이 시간 낭비이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의미가 없는 일로 생각한다면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없다. 의미가 없는 일로 생각하면 생각이 부실하고 부실한 행동이 된다. 치워야 할 것을 나중에 하고 오늘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행동도 그 만큼 미루어지게 되고 못하게 된다. 귀찮은 일, 하기 싫은 일로 타성이 되어가고 나태한 습관이 형성되는 것이다. 나태하고 잘못된 습관을 개선해야 보다 나은 생활을 기약 할 수 있다.   잘잘못의 생각에 따라서 행동이 이루어지고 성공의 여부가 된다. 잘못된 사고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면 생각을 바꾸기 전에는 올바른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 습관은 내일 부터는 하지 말아야지 미루면서 고치지 못하고 계속 되풀이 될 수 있고 평생 되풀이 될 수 있다. 행동습관은 운동을 해서 체중을 줄여야지 하면서 운동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잘못된 행동 습관은 병과 같다. 병이 나면 병원에 가서 진료 받고 처방을 받아 약을 먹고 병을 치료 한다. 병과 같은 잘못된 행동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하고 싶다, 하기 싫다, 힘들다, 재미없다와 같은 개별적인 행동이 편리성에 따라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기에 개인의 판단에 맡겨지기 때문에 잘잘못을 판단하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 잘못된 행동 습관도 아파서 병원 가서 의사선생님한테 치료를 받듯 주변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거나 성장기에는 부모님, 선생님,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좋은 행동습관으로 만들어야 자신 있고 적극적이고 희망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 질 수 있다. 잘못된 행동 습관은 미루지 말고 당장 지금부터 바꾸어야 하며 미루면 미룰수록 습관이 굳어져 바꾸기 힘들다. 하기 싫고 하고 싶어도 참고 이겨내야 좋은 성품으로 만들어 질 수 있다. 잘못된 행동 습관은 노소와 관계없이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 우리 모두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바르고 아름답게 살아 갈 수 있다. 이런 말을 참고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면서도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고 인간관계를 하면서 느끼고 경험 한 소견을 용기를 내어 제안 하고 싶다. 이 글을 읽고 생각이 같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추석 한가위와 같은 좋은 날들 이었으면 한다. 좋은 생각은 행동이 바르고 행동이 바르면 바른 습관이 되고 바른 습관은 좋은 성품을 만들고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은 운명조차도 바꿀 수 있고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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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7-09-26
  • 어떻게 살아야 할까-구유현의 명상노트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사는 것인가 하고 끝임 없이 고민하고 갈등을 한다 삶에 대하여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 공연한 걱정을 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매일을 살게 된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알게 모르게 서로 돕고  생활을 하는 환경으로 되어있다.  첫 번째는 가족이다. 가족은 자신을 있게 하고 자신을 만들어 나가야 할 제 일차적으로 소중한 사람들이 가족이다. 가족은 필연이고 당연한 원심적인 사람들인 줄만 안다. 이렇게 단정하면 자신의 성장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행복하게 살 수 없다. 일방적인 것은 없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따뜻하고 소중한 마음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가족이니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무엇이든 이해하고 허용하기를 바라면서 온통 나를 위해서 있는 당연한 사람들로 인식되면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면 불행한 일이다. 가족이니까 당연하고 그렇지, 부모님이니까 무조건 이해 해주시고 허용해 주시겠지 와 같은 막연하고 일방적인 생각으로는 자신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가족이나까 하고 싶은 대로 해주고 허용해주는 대상이고 필연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일탈행위가 있어도 잘잘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나와 가까이에 있으면 대수롭고 시시하게 보이고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하는 허용과 무관심에 기인해서 나타난 현상이 만연화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모를 알아보고 형제를 알아보게 하는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데는 이구동성으로 공감을 하면서도 일회적고 기회비용으로 취급되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만 할 뿐 가정교육이 본질적으로 접근 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학교 교육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사회생활에 적응하려면 일시적이고 일회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장기간 성장을 한다. 남자는 25세, 여자는 20세가 되어야 성장점이 멈춘다. 최소한 이 기간 동안 사회생활에 요구되는 정보를 배우고 경험을 해야 한다. 어차피 사람의 배움은 끝이 없고 평생을 배우면서 살아간다. 특별히 학교 교육은 초등학교 6년, 중등학교 6년, 대학교 4년을 포함 16년 이상 사회에 적응해 나갈 능력을 배운다. 학교생활 장기간에 무기력하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자기가 의도했던 대로 살아 갈 수 없다. 안일하고 무기력하고 소홀하게 보낸 것만큼 허송세월을 보내게 되고 이게 쌓이게 되어 나쁜 습관이 들면 생애 병적으로 살아 갈 수밖에 없다. 학교 기간 동안 건강하고 인간관계를 잘하고 능력이 있으려면 시간을 헛되게 낭비 하면 할수록 늦고 뒤처지고 능력을 갖출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학교교육은 자신이 잘 살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이 이상 긴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학교 교육을 받는 데는 자기 자신이 의도한 삶도 있겠지만 역할도 잘하고 함께 생활해 가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잘하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학교 교육이 강조 되는 것이다. 매스컴을 통해서 친구를 폭행하고 스트레스를 주면서 잘못된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학교교육을 충실히 받고 좋은 습관을 들이는데 노력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학교교육을 받는 기간만이라도 인간관계를 잘 배워야 서로 존중하며 더불어 살 수 있다. 또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학교교육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배워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건강하고, 인간관계를 배우고, 능력을 기르는데 학교 교육의 중요성이 있다 하겠다. 셋째로 사회생활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사회생활이 시작되어야 하나 바로 역할이 기대 될 수 없기 때문에 성장 기간 동안 사회에 적응할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은 각기 자기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간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빈틈없이 주어진 역할을 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역할을 할 줄 모르면서 잘 살 수는 없다. 나만을 생각하면 이기적이고 안일하게 되어 회사 동료나 함께 생활하는 사람한테 피해가 돌아간다. 여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잘못하는 데는 말도 많고 탈이 많이 발생하지만 잘하면 행복하고 즐겁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우리 모두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렸다. 각기 요구되는 문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한다.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 입장에 따라 개척을 하고 만들고 제공을 한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돈을 벌고 이기적이라고 달리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나누어야할 물질이고 자연환경이다. 개인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백화점이나 시장, 점포, 상점, 음식점에 가서 쉽게 구입하고 이용할 수 있다. 컴퓨터와 통신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정보전달을 빠르고 쉽게 하고 입출금을 공유하는 편리한 사회가 되었다. 예전의 방안퉁수에서 세계 어디든 비행기나 크루즈를 타고 관광할 수 있게 되었다. 길도 뻥뻥 뚫려 전국이 1일 생활권에 들어 하루에 웬만한 일은 다 볼 수 있다. 이렇게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 못지않게 갈등과 스트레스를 피할 없다는 사실이다. 갈등과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해도 외면해서는 안된다. 우리 스스로의 역할이 부족해서 나타난 결과다. 똑 같은 일 같은 시간 속에서 내가 살아가면서 나의 불찰로 인하여 상처가 되고 스트레스가 되지 말아야 한다. 타인에게 불쾌함을 주고 스트레스를 주는 직접원인은 나 자신의 역할을 못해서 나타나는 원인 제공자다. 무사안일, 게으름, 이기심, 도덕성, 경험부족, 이해타산, 몰염치, 방종, 무시, 비하, 비굴, 야비, 욕설, 왕따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당하기 때문에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살아갈 풍토를 조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악하고 얌체 같은 부끄러운 짓을 하고 부끄러운줄 모르면 백약인들 소용이 없다. 맹목적인 추한 모습보다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동력이 되어야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부적절한 문제들을 개선 할 수 있다. 한 번 만들지고 형성된 문화는 바꾸기 어렵다. 심고 올곧게 가꾸어야 성숙할 수 있고 시금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역할이 기대되고 제대로 했을 때 희망이 있고 행복한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7-09-24
  • 부천지행 -구유현의 명상 노트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라는 노랫말 동요가 새삼스럽다. 다정하게 함께 우산을 쓰고 가는 풍경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비오는 날 혼자 우산을 쓰고 가도 불편하고 싫은데 함께 우산을 쓰고 등교를 하고 회사에 간다고 생각을 하면 선 듯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함께 우산을 쓰고 가는 것 보다 혼자 우산을 쓰고 가는 편이 거추장스럽지 않고 편하다 한다. 사람들의 감정이 기계화 되어가고 자동화 되어 가면서 인간관계에서 요구되는 것조차 불필요 하다고 하는 마당에 나 외의 사람은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다양한 칼라로 보여 지지만 오아시스 없는 막막한 사막을 보는 것 같으면서 별다른 해결 방법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사막과 같은 도회지에 살면서 더 고독하고 외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금년에는 날씨가 무척 가물었다. 6월 어느 날 성주산을 다녀와야겠다고 나섰는데 소나기를 맞게 되었다. 비바람이 몰아쳐 별다른 방법이 없어 상가에 들어가 비를 피하고 있었다. 젊은 아빠가 대여섯 쯤 보이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추워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고 날씨가 쉽게 개일 것 같지 않았다.   사는 곳을 물어 보니 시흥에서 왔다고 한다. 차는 부근에 주차해 놓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침 배낭에 넣어 두고 온 우산이 있어 우산을 꺼내 주면서 아이는 내가 잘 데리고 있을 테니 빨리 차를 가져 와서 아이를 데려 가라고 우산을 건네주었다. 모르는 사람한테 아이를 맡기고 간다는 게 마음이 내키지 않은지 머뭇머뭇하기에 신분을 밝혀 아이는 내가 잘 데리고 있을 테니 안심하고 다녀오라고 해서 아이를 데리고 간 일이 있었다.   아이와 아빠가 함께 편안하게 가는 뒷모습이 행복하게 보인다. 말 한 마디라도 상대의 말을 잘 들어 주고 어려운 처지를 역지사지로 한다면 스트레스와 갈등이 줄어 들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필요로 하면서 욕심을 부리고 필요한 것은 정작 내 생각만으로 상실감에 빠져서 상대방의 처지를 아랑곳 하지 않고 불펼요 하다는데 이구동성 공감을 하면서 앞으로 나가자고 한다.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하는데 오늘의 무대가 그대로 내일 무대로 이어져서 쌓이기만 하면 진정 원하는 삶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고 경청하면서 격려를 하고 공감을 해준다면 지금 보다는 더 살갗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타인에게 배려하고 존중할 줄 모르면서 희생과 봉사를 할 수 없다. 이타적인 삶이 습관화 되고 체질화 되어야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문화의 고장 부천시는 더불어 선행을 미덕으로 할 때 부천지행으로 87만 부천시민이 살기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 갈 수 있다.   키케로는 가장 어려운 일이 세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비밀을 지키는 것이고, 둘째는 타인에게서 받은 해를 잊어버리는 것이고, 셋째는 한가한 시간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정말 심금을 자극하는 말임에 트림이 없다. 그중 두 번째 타인에게서 받은 해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 좋은 일은 빨리 잊을 수 있고 생각도 없는데 상처를 받은 나쁜 일은 잊으려 해도 잊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빨리 잊으라 하고 잊을 수 있듯 충고를 하지만 잊으려 생각하면 할수록 더 깊게 패이고 속상하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절대 절대 하지 말고 좋은 인상을 남기고 선행을 남겨야 살기 좋은 공동체 모습으로 돌아 갈 수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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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7-09-04
  • 선행은 자신을 충실히 하는데 있다.-구유현의 명상노트
    선행은 자신을 충실히 하는데 있다. 좋은 일을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선행을 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 무책임 하게 살아가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용서를 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발소리가 들리고 오는 사람을 보면서 승강기를 혼자만 타고 올라 간다. 개별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라서 말할 수 없지만 옆에 사람이 지나가고 있는데 답배를 피우며 담배 냄새를 풍긴다. 타인에게 무관하다면 당연히 인정을 해줘야 하고 당연지사라 할 수 있다. 담배피라고 담배 사준 것도 아닌 심산인데 네가 무슨 상관을 하느냐고 한다. 차를 가로 막아 세워 두고 미안한 줄을 모른다.  길을 막고 가면서 비켜 설 줄 모른다.  먹고 난 과자 봉지 캔 등을 공원의자에 그대로 둔다. 부모님 심부름을 하고 집안 청소를 하는 것도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부지 불식간에 이루어지는 하찮은 일들이 선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간단한 일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선행이라고 할 수 없는 극히 개인적인 일이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불편 부당한 일을 개인적으로 이해를 바랄 수 있는 일이지만 하루 동안 쌓인다면 마음의 병이 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하는 일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일은 없다. 우리는 남과 더불어서 살아 간다. 하등 타인과 불편하게 살아갈 이유가 하나도 없다. 만약에 있다면 게으르고 자신의 욕심과 편한 마음만 작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역동적인 삶이라 할 수 없다. 너나 없이 분별없이 이루어지는 행위을 자제 할 수 있으면 그만큼 조용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 남의 힘든 부분을 나의 처지와 같이 받아들여야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를 맞고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억지로 부담스럽고 부자연스럽게 살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나 아이 불문하고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하자는 것이다. 자기 역할을 잘하는 것처럼 더 잘 사는 방법이 없다. 자신의 일을 못해서 나타나는 문제로 결코 우리는 아름답게 살 수 없다.  이를 있는대로 좋은게 좋다고 허용하기만 해서는 불편한 진실이 해결 될 수 없다. 잘못된 생활 방식을 언제까지 우리는 유예하기만 할 것인가. 선진국에서나 할일, 수준이 낮아서, 앞으로 나아지겠지와 같이 자꾸 유예하기만 해서는 세월이 흐른다 하여 개선될 수 없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고쳐야 할 것을 고치지 못하면서  잘 살아 갈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해야 할 일반적인 것을 못한다면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 갈 수 없다. 오늘 하루 당연하게 잘 보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십인십색으로 다양해지는 날 부천을 넘어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선행은 우리가 하고 있는 아름다운 모든 일이 선행이라 생각하며 우리 모두가 이심전심으로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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