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2-04(금)

테마기획
Home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실시간뉴스

실시간 구유현의 명상노트 기사

  • 아이를 잘 키워야 할 텐데
     이 세상에 자기 자식을 잘못 키울 부모가 있겠는가. 이야기를 들어 보면 교육자가 아닌 사람은 없다. 모두가 교육자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자식 키울 줄 아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부모도 아이를 키워봐야 잘 키웠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있다. 누구나 말로는 쉬운데 교육의 방법에 대해서는 동의를 못 한다.  세계 3대 천재 중의 한 명인 스티브 잡스는 정말 소중한 말을 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30번째 자신의 생일에 사람들을 초대한 글에서 ‘인생의 처음 30년은 자신이 습관을 만들고, 인생의 나머지 30년은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였다. 지금은 백 세 시대이니 30년을 50년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말을 길라잡이로 하여 아이를 교육한다면 별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나는 이 말을 교훈으로 하여 다시 한번 교육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내가 19세였을 때 내 아버지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35세가 되니까 나는 노인들이 그토록 많은 걸 깨우치고 있다는 걸 알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삶의 체험을 통해 뭐가 중요하고, 중요치 않은지 체득해 나간다. 정직, 우정, 사랑, 관용, 용기, 증오. 희망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키워짐이 바람직한지, 논리가 아닌 그 ‘진리’를 몸과 마음으로 깨우친다.  이러한 개개인의 내면적 세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신, 선호도, 기억, 사랑, 증오가 만들어진다. 인간 역시 어릴 때부터 진행된 끝없는 조작적 조건화 과정 등을 통해 사회가 원하는 성인으로 만들어진다는 게 행동주의자들의 주장이다. 내면적인 정신이 눈으로 보고, 말로, 행동으로 나타난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랄 수 있도록 부모는 이끌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좋아하는지, 나타나는 행동을 지속해서 관찰하고 이를 수용하고 허용하면서 제때 가르쳐주어야 바르게 자랄 수 있다.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서 꾸준하게 행동이 습관화 될 수 있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할 텐데 걱정만 하다가 그대로 습성이 되어 가면 아이가 자랄수록 개선하기가 어렵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듯 그만큼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뜻이 되겠다. 역설적으로는 미운 자식 회초리로 더 맞게 된다는 뜻도 되겠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11-30
  • 낙관적으로 보여야 긍정적인가
     장래를 밝고 희망 있게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상대가 자신과 의사가 다르다고 하여 부정적이라거나 비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부정적이라거나 비관적이라는 말은 상대를 자극하고 불쾌하게 한다. 일의 경중에 따라야 할 것을 낙관적으로 생각한다고 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 막연하고 적절하지 않게 강요된다면 무모한 일이다. 언행이 습관화되어 나침반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미군 장교다. 8년간이나 수용소에 갇혀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는 가능한 한 많은 포로가 살아서 수용소를 나갈 수 있도록 해 전쟁 영웅이 되었다. ‘낙관주의자들은 살아남지 못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나가게 될 거야.’라고 대책 없이 낙관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희망에 찬 모습을 보이다가 자신이 낙관했던 시간이 지나면 급격히 비관적으로 되었다가 끝내 쓰러졌다고 한다.  위기 속에서는 내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위기 극복 사례로 전해지는 이야기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임진강 DMZ 구역의 평화의 등대    세종시, 천안함, 4대강을 볼모로 눈만 뜨면 좌파니, 극우니 하는 키워드가 난무하는데 어느 누가 시대를 낙관하겠는가. 문제는 무관심이다. 아니 어쩌면 무관심해 보이는 많은 이들은 살기 위해 스톡데일이 말한 가장 냉혹한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이 ‘버거운 생업’이라는 현실을 말이다. 감성이란 이성의 겉옷이다. 21세기 문맹자는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다. 스톡데일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냉혹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라고 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낙관적으로 보는 자체가 긍정적인 시각이라며 현실을 무사안일하게 받아들인다. 문제 자체를 무시하며 ‘잘 될 거야.’, ‘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과도기야!’,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아!’, ‘크면 다 알아!’ 하면서 현재의 상태를 온건하게 보지만 현실주의자는 현실을 그대로 보고 ‘문제가 있다’와 ‘괜찮다’는 입장으로 진단한다.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과 같은 일을 두고도 찬반으로 엇갈려서 눈을 가리게 한다. 6·25전쟁을 예상하고도 안일하게 ‘괜찮다’ 하다가 위기를 맞는 것과 같다. 아이 교육도 똑똑하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다가 자식 교육을 낭패한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여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  낙관주의자는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듣기 좋은 편한 말로 긍정적인 척하며 아무 일이 아니라며 동조하거나 거든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없다고 하여 무분별하게 책임성 없이 본질을 흐리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11-12
  • 당신의 스승은 어느 분입니까
        “선생님은 많지만, 스승은 없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선생님이 기대만큼 존경할 분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 아닐까. 성장기에 있는 아이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관심과 도움이 절대적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를 얼마만큼 사랑과 열정으로 이끄느냐에 따라서 아이의 성장이 좌우된다. 대기만성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안일하게 성장기를 보낸다면 인생을 의도했던 대로 살아갈 수 없다. 누구나 일단 학교를 떠나면 자신의 의지대로 내가 맡겨진다고 봐야 한다.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듯 그 중 성장기에 선생님을 잘 만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고문진보(古文眞寶) ‘사설(師說)’에 나오는 문구다. “사람에겐 반드시 스승이 있으니 스승은 도(道)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 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복중에서 가장 큰 복은 사람 잘 만나는 것이며 그중에서도 스승 잘 만나는 복이 제일 크다. 스승은 인생 항해의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스승이 필요한 걸 알고 스승 두기를 실천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필자는 승진한 직원을 처음 만날 때마다  “승진한 후에 가장 먼저 한 행동이 무엇인가?”  라고 물은 뒤 두 가지를 말해준다.  “첫째, 서점으로 가 해당 직무에 관한 책 십여 권을 사서 읽고 둘째, 선임자 중 최고 성과를 낸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그를 스승으로 삼아라.”  일찍 와야 하는데 일찍 오지 않으면 스승은 가르칠 수가 없다. 힘들게 경험했던 것을 제자에게 가감 없이 전해주고 싶은 것이 스승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선하게 써서 적선(積善)하는 것이고 소중한 사람은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공자는 삼인행필유아사언(三人行必有我師焉;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 모두가 스승이 되어야 한다. 만나서 기분 나쁜 사람을 보면 속이 불편하다. 그런 사람은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오래 간다. 우리가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오만방자하고 폼 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출세한 후 겸손한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출세하려는 데는 출세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경시나 모멸감을 아랫사람에게 주지 않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성취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성취감은 잠깐이고 그가 당했던 모멸감을 금세 잊어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폼을 잡게 되고 더욱 악랄한 수법으로 아랫사람을 괄시하면서 출세의 맛을 만끽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는 스승으로 모실 사람이 하나도 없다.  스승, 진정한 스승을 찾는 인격의 눈이 더없이 필요한 때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11-02
  • 인성교육을 말로만 하면 될까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인성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람의 성질과 됨됨이가 잘 갖추어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고받으며 갈등이 생긴다. 아름답지 못하고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성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다.   가끔 오고 가다가 본의 아니게 욕하는 것을 듣는다. 욕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불만이 있고 화를 해결하는 수단이다. 욕을 하고 싶어서 공연히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욕을 하는데 일반화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만큼 욕이 많은 나라도 없다고 한다. 욕을 하면 품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다. 모두가 품성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아이가 욕을 한다면 왜 이런 욕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는 내 자식을 어떻게 키우고 있을까? 내 아이가 음식점, 도서관, 박물관 등의 공공장소에서 장난하고 웃고 뛰어다니는 것을 기특하게 바라보고 대견하다며 빙그레 웃는 부모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애가 많이 컸다며 그윽하게 바라만 본다. 이로 인하여 남에게 불편하게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의 장난을 자라는 과정에서 흔히 있을 수 있다며, 아예 말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면 되레 아이가 기죽는다며 감싸고돈다. 이쯤 되면 아무런 대안이 없다. 그래서 거들어주는 것이 능수능란한 게 아닐까. 아이들이 친구와 놀며 싸웠을 경우, ‘맞고 들어오는 것보다 때리고 들어오는 것이 낫다.’라고 하며 아이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커녕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싸우면서 자라지. 싸우지 않고 자라는 아이가 어디 있느냐?’라며 역정을 내며 되레 ‘애 기죽인다.’라고 말도 꺼내지 못한다. 얻어터지는 애가 이해해야 하고 때린 애는 의기양양하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아이의 인성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아이가 싸우면 잘못됐다고 알게 하여 다시는 친구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아이를 감싸고돌다 보니 바르게 교육할 수 없다. 누구나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인성교육을 해야 할 대상은 없는 게 문제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일관성 없이 땜질식으로 하는 인성교육은 하나 마나다. 아이의 인성교육에 부모와 선생님이 누구보다도 더 인성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아이를 티 없이 맑은 품성으로 키워낼 사랑과 관심과 실천이 없으면 우리 아이가 방치될 수밖에 없고 영혼은 혼탁해지는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과 실천은 아이들의 영혼을 아침이슬처럼 만드는 명약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일급수로 만드는 인성교육이 공허한 구호나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절대로 안 됨을 거듭 강조한다. 더불어 지나친 칭찬이 교만한 아이를 만든다는 것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10-21
  • 구유현의 명상노트/행복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사소한 일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소홀하게 취급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한 만큼 주변인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나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시간이 낭비되고 쓸데없는데 에너지가 낭비될 수 있는 문제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경중을 헤아려 선별적으로 소신껏 처리할 수 있다. 공적인 일은 경중에 따라 선별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환경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충실해야 양질의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언행이 일치되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 잘잘못이 언행대로 결부된다.    단적인 것을 예로 든다면 휴지를 떨어트리고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고 줍지 않으면 환경이 지저분하고 불결한 환경이 형성된다. 이런 유형의 일들이 생활 중에 아무렇지 않게 하면 청결한 환경을 유지할 수 없다. 얼마 전 교복이 다르고 못 보던 학생이 학교에 와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어보았다.  “버스 타고 왔어요.”라고 하는 데 아무 말도 덧붙일 수 없었다. 우리 학교 학생 중에도 늦게 오는 학생에게 늦게 온 이유를 물으면 ‘늦게 일어났어요.’ 라는 대답으로 돌아온다. 부모나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고 교육은 안 했을 것이다. 이런 아이 걱정을 나눌 때 대뜸 요즈음 아이들 다 그런데  “골치 아프게 뭘 생각하느냐?” 라고 요즈음 아이들이 다 그렇고 그렇다며 일축해버린다. 이런 학생에게 관심을 두고 진정성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하는 이야기가 부정적으로 들리는지 잘못하는 아이보다 잘하는 아이가 더 많다며 무안을 당하기 일쑤다. 대안이 아닌 이런 이야기를 막연하게 나누면서 심한 모욕감마저 든다. 이렇게 아이가 잘못을 모르고 태연하게 말을 하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마냥 잘못한 아이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아이에게 잘못을 알려줘서 돌아갈 때는 선생님“죄송합니다.”,  “늦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늘 부실한 교육을 운운하면서 개선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잘잘못을 모르고, 어른은 아이를 칭찬만 하고 관용으로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아이가 잘못을 모르는데 바뀌지 않는다. 아이의 거울은 어른이다. 어른이 역할을 잘해야 본보기가 된다. 어른이 본보기가 되지 못하면서 아이의 잘못을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이는 어른이 하는 대로 따라 한다. 이를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모나 선생님이 잘 가르치려고 해도 힘든데 사회 환경이 거울이 되지 않으면 교육은 백년하청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고충에서 벗어나야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칠 수 있다.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잘살고 있다.”  “ 잘못하는 학생보다 착한 학생이 더 많다.”  “요즈음 아이들 똑똑하다.” 며 교육의 본질을 흐리고 교육해야 할 것을 희석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불가능한 가능성을 막연하게 기대하지 말자.  잘못된 것이 있으면 못 본 척하지 말자. 사소한 것을 그냥 보지 말고 짚고 가자.  미국 작가이자 언론인인 ‘스테트슨 케네디’는 1940년대에 ‘지푸라기 힘 Frown Power’라는 운동을 전개했다. 어디서든 인종차별적 행동이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 얼굴을 찌푸림으로써 불쾌함을 표현하자는 것이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공공연한 인종차별이 그나마 줄어든 데는 지푸라기 힘 운동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한다.  잘못된 것을 보고 묵인, 두둔, 무관심한 것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깨진 유리창 법칙’처럼 방치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소한 문제라고 간단하게 보지 말고 분명히 아이가 알게 하여 아이의 잘못이 왜곡되지 않고 바르게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모르면서 바르게 생각할 수는 없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10-01
  • 과잉보호
     칭찬이 좋다고 하여 분별없이 하기보다는 내용을 고려하여 선별적으로 하여야 한다. 듣기 좋은 말만 들어본 사람은 거북한 말을 소화해 내기 어렵다. 누구나 할 말만 하면서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꼭 맞는 말보다 듣기 싫고, 불필요한 말을 더 많이 한다. 이를 잘 알면서도 매번 언어적 갈등을 느끼면서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고민을 한다. 원인은 상대에게 있다고 해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당사자는 자기 자신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없이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무모한 칭찬은 상대를 착각하게 만든다. 부질없는 태도를 잘한 행동으로 칭찬했을 때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 행동을 허용하게 된다. 운동경기에서는 결과에 따라 칭찬을 하는 데 무리가 없다. 일상생활에서는 막연한 내용이어서 칭찬으로 부추길 수도 있고 오류를 범할 수 있어 마냥 칭찬이 능사는 아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과잉보호로 이어질 수 있고 결코 성장의 장애 요인이 되지 않을까. 성장과정에서 과잉보호나 무모한 칭찬은 아이들을 병약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고난과 시련은 훌륭한 청소년을 만드는 최고의 학교다. 청소년은 자연스럽게 힘든 것을 다양하게 체험하고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자라면서 실패의 경험이 없다면 성장한 후에 무기력한 사람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적절한 좌절은 아이들의 바른 성장에 필수 요건이지만, 분별없는 무모한 칭찬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일정한 숙제를 주고 통과해야 먹이를 주고, 하나는 편안히 먹게 해주었다. 행복하게 편안히 먹이를 받아먹던 쥐들은 무기력과 비만으로 죽었고, 숙제를 풀던 쥐는 체중도 늘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죽었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순탄하고 편안한 삶을 바라지만 잘 성장하고 강해지기를 바란다면 적당한 고통과 좌절을 겪으면서 성장해야 한다. 부모와 선생님의 과잉보호는 성장이 아니라 독약이다.”  조류가 알을 낳아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며 키워 떠나보내고, 하이에나, 물소, 호랑이 등과 같은 동물이 새끼를 낳아 어미 떠날 때까지 제 새끼 키우는 것을 보면서 왜 사람은 저렇게 할 수 없을까 하고 나 스스로 자책을 하고 반성을 하였다. 운동을 하다 보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써 붙인 곳이 종종 보인다. 여객선에서 여행객이 주는 새우깡을 받아먹기만 하는 갈매기는 야성을 잃게 되면 손님들이 떠나고 난 후에 어떻게 먹이를 구해 먹을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이를 반면교사로 할 수 있으리라.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9-21
  • 친절해야 손님이 끈다
     한비자(韓非子)에 ‘맹구지환(猛狗之患)이라는 고사가 나온다. 사나운 개가 있는 가게에는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말이 아닐까. 친절해야 마음이 끌리고 공감대가 형성된다. 상대가 예가 없고 무모한 행동을 보이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어느 사람이나 배려하고 존중할 줄 모르며 사악하고 양심 없는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은연중에 잘못된 생활방식을 고집하고 주장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앙금이 쌓인다.  구맹주산(狗猛酒酸)이란 말이 있다.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라는 뜻이다. 까닭은 이렇다. 춘추시대 송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었다. 술 맛이 일품이었고 양을 속이지도 않았으며 늘 밝은 얼굴로 친절했다. 그런데도 영 장사가 되지 않았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던 그는 마을 노인에게 지혜를 구했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 집 개가 너무 사납기 때문이라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에게 노인이 설명했다. “사나운 개가 손님들에게 짖어대고 술심부름 하는 아이들을 물어 달아나게 하는데 누가 올 수 있겠소. 그러니 술이 팔리지 않고 쉬어버릴 수밖에.” 한비자 외저설(外儲說) 편에 나오는 얘기다.    음식점에서 주인이 손님에게 친절하게 해도 점원이 서비스가 부족하고 불친절하게 보여서는 손님이 많아질 수 없으며 오던 손님도 떨어진다. 음식점에 가서 손님에게 하는 것을 보면 누가 주인이고 점원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주인은 성심성의껏 손님을 모시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고 점원은 일이 힘들다거나 짜증을 부리고,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면들이 속속 드러난다. 이런 점원을 두고는 음식장사가 잘 될 수 없다. 점원을 빨리 내 보내고 좋은 점원을 고용해야 음식장사를 잘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주전자를 들고 어른들의 술심부름 할 때가 있었는데 개가 으르렁 거리고 사납게 짖어대면 무서워서 주점에 얼씬거리기도 싫었다. 옛날 개들은 무섭게 달려들며 잘 짖었다.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혐오감이 들면 그만큼 기피하게 된다. 왜 저렇게 사나운 개를 키울까. 나는 어른들이 술심부름을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했지만 개만 생각하면 불안해서 정말로 심부름하기가 싫었다.  전통이 있고 훌륭한 학교에는 학생들이 서로 가고 싶어 한다. 반면에 학생들이 말썽을 부리고 품행이 좋지 못한 학생들이 다닌다는 평판이 나면 기피하게 된다. 잘잘못은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준다. 좋은 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로 학생을 보내려는 학교가 되어야 좋은 학생을 받아서 학생교육을 잘 할 수 있다. 모두가 합심하여 문제성을 극복해서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훌륭한 인재를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서로 각자의 아집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계발하여 다 함께 잘 살 수 있어야 한다. 상처가 되는 헛된 소모가 없어야하지 않을까.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9-07
  • 활기 있는 삶이란
       사회공동체가 개인 중시적인 사고 때문에 점점 도외시되고 있다. 백짓장도 맞들어야 하는데 혼자 시간을 갖고 즐기면서 편안하게 살고자 하기 때문에 공동체 문화가 점점 무기력하게 되고 쇠퇴하여 간다. 여름날 불꽃놀이를 방불케 했던 반딧불이 자취를 감춘 것처럼 공동체 문화도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사회제도나 조직의 배경 없이 자기 인생을 스스로 사는 자기 관리 사회가 도래되었다. 지시나 명령에 따르는 사회적 구조에서 자유스러워지기를 원한다.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의사소통에서 쇼핑에 이르기까지 많이 움직이지 않고 편안하게 모든 것을 다양하게 해결할 수 있어 사회공동체를 멀리 하게 된다. 자기 외에는 다른 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고립화에 따른 자살, 우울증, 조울증, 게임중독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사회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속담에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편하고 좋다며 아무 데나 침을 뱉고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방뇨를 하고 큰소리로 떠들고 욕하고 야유하고 예의가 없는 무책임한 일들을 겪으면서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잘못된 것을 반성하고 고쳐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바보취급을 당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여 빚어진 잘못된 사회 환경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개인이 중심이 되어서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문화를 만들어 낼 뿐 기본적인 생활 습관은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있어서 갈등이 유발된다.  개인의 자유만 무제한 요구하다 보니 자기주장과 권리만 말할 뿐,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영악스럽고 성난 개인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은 마치 사회적 금기처럼 되어 폭발 지경이다. 염치·정직·성실·도덕·책임·배려 같은 인간관계적 미덕이 우리사회를 유지하고 배양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이자 보루다. 우리가 살아갈 사회 환경이 개인의 인권만을 절대시하지 말고 건전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존중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  사람은 익히고 경험한 대로 습관화되어 그에 따른 언행을 일삼는데 사람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품성이 잘못되어 있으면 백약이 무효다. 사람으로 구실을 할 수 없는데 제 아무리 지식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학업성적의 노예로 만들어 앞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삶에 필요한 인성교육을 소홀히 하여 재앙에 가까운 혼란이 될 수 있다. 학교에서도 공부에 앞서 사람 만들기 교육부터 해야 한다. 사람 만들기에 앞서 지식성취교육을 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삶의 문화가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건전하고 건강하게 행복스럽고 잘살기 위해서 학교 교육이 필요로 한 것이다. 나 혼자만 잘한다고 하여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혼자 건강하고 잘살기 위하여 노력한다 하더라도 사회가 병들어 있으면 나 자신도 잘 될 수 없다. 우리 모두 건전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사회 환경을 이룰 미덕이 성숙되어야 살기 좋고 활기찬 세상이 되는 것이다. 무기력 무책임 무관심으로 3무로 자라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밥을 먹듯 사회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인성에 관련된 덕목이 자양분이 될 수 있게 가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 예술/창작
    2020-08-24
  • 정직해야 신뢰관계가 형성된다
       우리 사회는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불신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정직한 사람은 바보처럼 순박해 보이고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2014년 3월 3일, 개학 첫날이라 저녁시간에 추어탕 집에 갔다. 소주 두 병을 시켜서 한 병만 먹고 한 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계산을 하고 나왔는데 주인이 주차장까지 달려 나와 안 먹은 소주 한 병 값을 돌려주어 생각지도 않게 받았다. 금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이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감사하고 감사한 경험이다.  우리 일행은 추어탕 집의 따뜻한 마음에 녹아 모두가 기분이 좋았다. 서로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 정직한 사람은 꾸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미국의 링컨을 보는 것 같았다. 링컨은 ‘정직과 지식은 나의 보배요, 재산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일리노이주 뉴살렘에서 잡화상 점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링컨은 저녁 늦게 장사를 마치고 수입을 결산하는데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셈이 맞지를 않아 그날 가게를 다녀간 손님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렸다. 한 사람씩 주고받은 금액을 따져보다가 단골손님인 앤디 할머니에게 거스름돈을 덜 준 것을 알게 됐다. 링컨은 가게 문을 닫고 늦은 밤에 수 마일이나 떨어진 앤디 할머니 댁을 찾아가 거스름돈을 돌려드렸다는 일화가 있다.  우리 주변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도 있어 이런 사람을 만나면 사기를 당할지 모른다는 경계감을 늦추지 못할 때도 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이사를 한 날 이삿짐을 내려놓고 들여 놓으면서 중국집에 자장면을 시켜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자장을 먹고 빈 그릇을 밖에 내놓았는데 누군가 그릇을 찾으러 와서 자장면 값을 아무 생각 없이 주었는데 잠시 후 또 자장 값을 받으러 와서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돈만 받고 그대로 그릇을 놓고 갔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잊히지 않고 지금도 속상하다. 이런 일들은 빨리 잊어야 하는데, 잊어야 할 쓸데없는 일이 잊히지 않고 자국으로 남아있다.  한순간도 한눈을 팔 수 없는 세상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있듯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그렇게 연극을 잘 할 수가 없다. 목적이 끝남과 동시에 뒤돌아 볼 것도 없는 고약한 사람들로 변신을 한다. 문제해결 하는 데는 물불 안 가리고 덤빈다. 성직자를 무슨 큰 덕목이 있는 성인군자처럼 앞세우고 나타나서 비굴할 대로 비굴하게 보이다가 야비하게 돌변하여 저주스러울 만큼 값비싼 대가를 치른 적이 있었다. 속아 넘어 가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고 바보라 할 말이 없다. 하루하루 날품 팔아 산다며 통사정하던 사람이라 더 이상 생각할 겨를 없이 오죽하면 하면 그럴까 싶어 교통사고 합의를 해주었는데 돌아서는 순간 끝이라는 인간의 속물근성을 겪었다.  후회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가해자 입장을 들어 보면 측은지심이 발동하기도 해서 착한 마음으로 속아 넘어 갔다. 이런 일은 평생에 매번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미숙하여 당하기 십상이다. 금방이라도 죽어 갈 것처럼 호들갑 떠는 가해자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입장이 힘들다 하여 임기응변으로 모면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해서는 신뢰받을 수 없다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8-09
  • 인간성을 회복하자 / 구유현의 명상 노트
     사회 곳곳에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어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삶의 환경이 개별적으로 존중되기 때문에 공동체적 미덕이 존중되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사회생활에 요구되는 덕목의 구현에 대하여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IT기기를 통해 사람과의 소통보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피할 수 있고 타인으로부터 배신, 간섭을 배제할 수 있어 특별히 인간관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인은 스마트폰이나 IT기기에 길들여져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는 저절로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 사람 됨됨이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게 되어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덕목이 점차 퇴행되어 가기에 이르렀다. 인간관계를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제심을 잃어가며 폭력, 자살, 협박, 우울증, 인터넷 중독 등의 현상이 증가되어 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소통을 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사회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관용, 배려, 나눔, 존중, 예의, 협동과 같은 덕목이 신장될 수 있는데 스마트폰이나 IT기기에 생활의 전부를 의존하다 보니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더없이 필요한 시대다. 현대인들은 물질문명의 의존도가 높고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상대를 부정하기만 한다. 스마트폰이나 IT기기에 의존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데 관심이 있어 공동체가 무기력하고 사회생활이 무시당하면서 예의가 실종된 불신사회가 되어 간다. 관용과 배려할 줄 모르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은 날로 증가하나 치유할 방법은 막연하다. 불편한 삶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회성을 신장시켜야 하는데 이기적인 개인화로 이에 필요한 덕목이 신장되지 못하고 있다. ‘화가 나는 세상 만들지 마.’가 정답이다.  마미클 그린은 ‘도피하는 현대인’에서 현대인에게는 두 개의 병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자아상실이요,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일이라고 했다. 스마트폰이나 IT기기 같은 문명의 이기로 인간의 삶은 편리해졌으나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는데 가속도가 붙고 있다. 상대적으로 인간은 기기에 묻혀 살게 되어 인간관계가 왜소해지고 있다. 불편부당한데 대해서는 많은 목소리를 내며 이의 해소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하지만 문명의 이기에 묻혀서 상대적인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추려하기 때문에 소통과 이해가 아쉽다. 개인적으로 변화하는 데는 관심이 있어 다양화해 가는데 아집으로 남아 자기주장만 하게 되어 소통이 불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과 같이 인간으로 돌아가야 인간성이 회복될 수 있다. 기기에 의존한 나머지 인간관계를 거부해서는 인간성이 회복될 수 없다. 사회생활의 가치가 존중되려면 공동체 덕목 신장에 대한 인성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더 이상 인성교육을 미룬다면 재앙이 될 수 있다. 아는 것만큼 할 수 있다. 사람 됨됨이 교육을 하는데 소홀히 하지 말자.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7-10
  • 듣기 좋은 말 / 구유현의 명상 노트
    교직을 처음 시작한 초임교사 시절에는 아이들에게서 문제가 발생하면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선배교사들께 조언을 구하면 당신들이 교육 현장에서 겪으며 쌓아온 전가의 보도 같은 노하우를 가르쳐 주기보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는 말을 흘리며 신참교사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화가 되니 내버려 두는 것도 보신(保身)의 한 방법이라며 교권 추락을 자조적으로 한탄했던 기억이 난다.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의견들은 많다. ‘병은 하나여도 약은 만 가지’라고, 체질과 환경에 따라 다른 처방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떤 대책이든 옳은 말이다. 원인 분석과 대책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다.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생활지도상의 개선점을 간과하지 말고 그 때 그 때 지적해주며 지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학생 지도다. 의견은 많지만 실천 없이 모두가 못 본 척하고 싫어하고 기피하면서 학생들의 교육이 될 리 없다.     교육은 무엇인가?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교육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원시인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은 교육을 통하여 보다 성숙한 사람 노릇을 하게 된다. 미성숙한 학생에게 사회의 가치와 문화를 전달하는 ‘사회화’ 과정이 교육이다. 학교만 다닌다고 모든 학생들이 성숙한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면 나이든 어른도 잘못을 모른다. 건전한 사회인으로 만들려면 마냥 ‘오냐오냐’ ‘잘 될 거야.’ ‘사람은 살게 돼 있어.’ ‘군대 갔다 오면 달라져.’와 같이 면피성 말로 어물쩍 넘겨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사소한 일이라도 짚어주어 달라지게 해야 한다. ‘요즈음 아이들 똑똑하다’는 말로 입술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면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다. 긍정적인 말, 칭찬이라는 듣기 좋은 말을 무분별하게 의미 없이 하면 학생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립스틱 입술에 바르듯 한 말로는 교육이 위축되기만 하지 교육 에너지가 집중되지 못한다.    ‘학생들이 잘 한다’는데 그 이상의 말이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싸워서 물어보면 ‘장난했어요.’ 선생님도 ‘장난이래요.’ 하면 그냥 넘어가야 하는지 착잡하다. 학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진정으로 잘못된 언행과 생각을 타일러서 깨닫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근본은 잘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용을 써봐야 볼 수 있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움직인다. 용렬(庸劣)한 사람이 제아무리 희생한다고 떠들어도, 제 가족을 위해 몸을 던질 수만 있어도 대단하다.’는 말과 같이 이런 사람이 교사를 한다면 학생은 불행하다. 교육은 학생의 근본을 잘 갖추게 하기 위하여 교육의 중요성이 있다. 학생 지도는 선생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열정으로 해야 학생 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7-08
  • 아이와 어른은 어떻게 다를까 / 구유현의 명상노트
     아이는 배우고 자라야 할 입장이고 어른은 지혜, 성품, 예절, 책임감, 성실성, 자주성 등의 덕목을 고루 갖추어 독립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어른이라면 덕이 있어 보이고 아이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고 무엇인가 잘 챙겨줄 것 같은 사람쯤으로 간주한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믿고 따른다. 어른은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이 있고 집의 주인을 칭하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다른 집을 방문하여 주인을 찾을 때 “주인장 어른 계십니까?”라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찾았다. 아무개 댁 아이들이 잘못됐을 때는 부모가 누군가부터 물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도 주인이 살고 있는 집과 비워 둔 집은 차이가 난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못을 박고 손질하여 돌보기 때문에 허름하고 낡은 집이라도 무너지지 않지만 빈집은 풀이 나고 지저분하여 집 구실을 못한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도 세 들어 살고 있는 집과 주인이 살고 있는 집은 차이가 있다. 세 들어 사는 사람은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나그네와 같다고 할 수 있고 주인이 살고 있는 집은 잘 손보고 고쳐서 살기 때문에 보존이 잘된다.  주인으로 키울 것인가 나그네로 키울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부모와 교사의 몫이다. 아이들이란 주인의식을 가진 어른이 되기 위하여 노력을 해야 한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나그네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주인의식을 갖는 어른이 되기 위하여 그걸 배우고 준비하기 위하여 학교에 다닌다. 주인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떤 일이 주어지든 자신이 주인이라고 인식하여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주인정신이 없는 사람은 피동적이며 남의 눈치나 보면서 불평불만이 많다.    식당에서도 주인은 최선을 다하여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지만 주인이 아닌 점원은 손님을 불친절하고 소홀히 대할 수도 있다. 주인정신이 없는 사람은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하기보다 막연한 내일에 대한 기대감만 간직한 채 살아간다. 전통이 있는 학교나 회사를 보면 구성원 스스로가 매사를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처리한다. 주인정신은 타인의 명령이나 지시에 의존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준비하고 실천하는 정신을 말한다. 따라서 주인정신이 있는 사람은 책임감과 참여도가 높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주인의식이 뚜렷해서 본받을 만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정신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매사에 눈치를 보며 시키는 일만 요령껏 하는 것이 재주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책임감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조직의 발전을 위하여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주인의식을 가진 인재를 키우고 발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 않다. 거름을 주어 농사를 짓듯 미래를 책임질 후손들을 반듯한 주인정신을 지닌 어른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번 삐뚤어진 사람을 바로 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동식물을 다 키워놓고 잘해보자고 하여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사람이라고 다를 바 없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6-07
  • 인성은 지식과 같지 않다 / 구유현의 명상노트
    인성은 더불어 살면서 적응해 나가는데 필요한 행동덕목이다. 인성은 지식을 전달하듯이 길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길러진다. 인간성은 주어진 환경이나 가정환경, 성장과정, 교육배경, 세대 차 등에 따라서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살아가려면 성장과정에서 좋은 습관을 많이 만들어 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파스칼이 말한 대로 좋은 습관이 잘 길러지지 않으면 다양한 여건에서 중심이 없고 허약하게 되어 의도하던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것들을 수용하려면 올바른 생활습관이 형성되어야 한다.  인성은 성장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길러져야 한다. 자라면서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서 바람직한 생활방식과 인간의 도리를 알게 된다.     예전에는 동네 어른들이 ‘아무개 집 자식들 참 잘 됐어.’ 하면 부모님에게 욕되지 않기 위하여 자식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행동의 신중성도 있었고, ‘인사 잘 한다.’, ‘심부름 잘 한다.’, ‘똑똑하다.’ 하면 여기에 어긋나지 않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다.  지금은 만나는 사람들이 제한적이고 정해져 있어 칭찬의 의미를 모를 뿐더러 사회생활에 필요로 하는 품성과 덕목이 무엇인지 자기 입장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인성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생활을 하는데 자기 입장과 생활방식대로 이루어진다면 만남의 소중함과 공동체의 필요성도 느낄 수 없다. 사회생활에 요구되는 생활습관이 형성되지 않아 인간관계가 짜증나고, 소통이 안 되고 자기 본위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툼과 시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렇게 나타나는 현상이 잘못 되었다 하여 쉽게 이해하고 해결할 수 없다. 잘못되면 잘못된 대로 받아들이고 나타난 현상대로 참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성적인 판단의 중요성을 으로  주장하지만 사사로운 일로 여과 없이 허용한다면 서로가 상처를 입는다 해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지 않겠는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행동 습관을 길러야 하고 습관화하여야 한다. 이를 기르지 못하면 성숙한 사회 환경을 조성할 수 없다. 언행에 신중하지 못하고 잘못됐다면 그만큼 상대에게 피해를 준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주변인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품성이 바르지 못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란 힘이든다. 학교에 다녀서 배운다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익혀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다.      체험이 없는 지식은 맹목적인 것에 불과하고 자기 자신에 국한할 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든가, 기분이 나쁘다든가 하는 것은 의사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짜증내고, 퉁명스럽게 하는 아이를 보고 기분 좋은 선생님이나 부모가 있을 수 없다. 잘못되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서 아이를 키운 대가가 아닐까.  언행이 바르지 못한 사람과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 없다. 바로 이런 것을 치유하기 위하여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 아이를 바르게 키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5-07
  •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 / 구유현의 명상노트
    미 공군 60주년 행사에 참석하여 기념사를 하던 도중 미공군사령관 스티븐우드 장군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를 소개한 내용이다. 심금을 울리게 하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병사가 있었기에 세계 10위권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7일 맥아더 장군이 수원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그를 맞이했다. 맥아더 장군은 적의 포화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울 흑석동 언덕에 올라가 한강 이북의 일촉즉발의 전황을 목격하였다. 그때 후퇴하지 않고 참호 속에 남아 있던 어느 한국군 이등병에게 맥아더 장군이 물었다. “자네는 왜 후퇴하지 않나?”  이등병이 대답했다. “상관의 후퇴 명령이 없었습니다. 명령이 있기 전에는 이 참호를 지켜야 합니다.”  맥아더 장군이 물었다. “훌륭하다. 자네, 무슨 소원이 없는가?”  한국군 이등병 대답하길 “저한테 총과 총탄을 지급하여 주십시오.”  맥아더 장군이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급 하고말고. 그런데 다른 소원은 없는가?”  한국군 이등병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너무 감격하여 전속부관에게 말했다. “우리의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그날 이후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의 전투력이 한국으로 집중 배치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상륙작전이 수행되고 서울 수복이 이루어졌다.  워싱턴에 소재한 한국전 기념탑의 비문 밑에 쓰인 문구의 내용이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의 젊은 군인들은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였다. 듣도 보도 못했던 나라였고, 만나 보지도 않았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한다.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 하늘이 무엇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 염원하는 것을 위하여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뜻일 게다. ‘지성이면 감천이다’고 지극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것이 하나도 없다. 누구라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아끼지 않고, 칭찬을 하고, 즐거워한다. 억장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듯한데 박수를 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이등병을 보고 맥아더 장군이 감동을 하여 도와줘야겠다고 다짐을 한 것이야말로 서로가 감동할 수 있는 신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등병은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신념이 간절했고 맥아더 장군은 이런 이등병의 태도에 감동되어 도와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보더라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 자명하다. 위기에 처했을 때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신념이 있어야 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 배려하고 나눔이 있어야 서로 다가설 수 있다. 아픔을 보듬어 주면서 격려해 줘야 용기 있게 살 수 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기부를 하여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되어야 한다. 밥 한 끼라도 베풀 수 있는 감사함이 감동을 준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4-12
  •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구유현의 명상노트
    훌륭한 인품을 지닌 친구를 둔 사람은 훌륭한 인품을 가질 확률이 높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인간관계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설정해야 하고 또 이를 실천해야 한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도 있다. 이 말도 친구의 중요성을 비유한 말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과 같이 성장과정에서 친구의 영향이 크다. 스포츠, 음악, 게임, 일탈행위 등을 보면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만난다. 굳이 잘잘못을 떠나서 같은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정보를 함께 공유한다. 부자가 되려거든 부자 친구를 두는 것이 좋다는 말대로 부자 친구로 가깝게 지내게 되면 부자의 습관, 생각하는 방식을 은연중에 배우게 된다고 한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든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친구와 함께 있으면 습관, 생각하는 방식을 아무리 조심해도 은연중에 배우게 된다.     문제 행동을 보고 흔히 가정교육 운운하고, 가정교육이 잘 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가정결손이 없고 가정교육이 잘 되었다고 해서 일탈행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물이 들게 마련이고 따라하게 된다. 그렇듯 사회적 규범, 규칙, 관습을 존중하고 준수할 줄 아는 친구들 속에 있어야 인간관계가 원만하다.  예의가 없는 친구들 속에 있으면 생활습관이 나아질 수 없다. 공중도덕을 안 지키고,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고, 배려심이 없이 무례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게 된다.  잘못해도 관대하기만 하는 사회구조에서 가정교육으로 아이를 됨됨이 있게 기르기 힘들다.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을 반영하는 사회의 일관성 없는 기대로 우리 사회가 존중될 수 없다. 가까운 일본은 사회교육자체가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선진국에서는 하나같이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질서위반에 대하여 엄격하게 적용될 때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될 수 있다 하겠다.  어떤 것은 다른 나라의 사례나 제도를 절대적이라 인용을 하면서 불리한 것은 선진국에서나 할 일이라고 무시해 버리는 일들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서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쌓이면서 무기력하게 될 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철저히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아닐까.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3-18
  • 주는 대로 받는다./구유현의 명상노트
     “한국인 사업가 두 사람이 필리핀 마닐라 공항의 트랩을 내려서는 순간 같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필리핀 청년 여섯 명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았다. 즉시 공항 경찰대에 신고를 했고 이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연행된 청년들이 한국에서 취업기간 중에 당한 학대와 모욕을 이야기 하니 이에 흥분한 경찰들까지 합세하여 재차 폭행을 하고 강제 출국까지 당했다”는 부끄러운 내용이 있었다.    “네팔을 여행하던 대학교수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필리핀에서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라는 이유로 불을 질러 전소 되었다고 한다. 네팔에서는 한국에서 산업재해를 당하고 보상을 받지 못한 이들이 잘라진 팔뚝 사진을 넣어 달력을 만들었는데 달력을 볼 때마다 한국을 원망하고 저주하지는 않을까?”    한국을 찾은 중국동포들 중 비인간적인 대우와 산업재해, 임금체불, 폭력,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어떤 경우라도 내, 외국인을 막론하고 수치심을 자극하고 모욕을 주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일을 하고도 잘못을 모르기 때문에 반한 감정이 생기고 분노와 원한이 쌓이는 것이다. 나쁜 짓, 못된 짓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 다 안다.    우리는 항상 나만 중시하고 상대를 경시하기 때문에 별의별 짓을 다 하고도 반성할 줄 모른다. 상대의 어려운 입장에 무관심하거나 무시하면 당하는 사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증오심이 남게 된다. 이를 겪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을 때 한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로 기억되면서 한국 사람을 보면 분노가 폭발할 것이다.    존중할 줄 모르면 존경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상대의 약점은 사정없이 파고들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변명일색이다. 막말을 예사롭게 하고 추태를 부려 인상을 찌푸리게 하고 신경질 나게 하는 행동이 비일비재하다. 잘못된 사람을 말하면 좋은 사람이 더 많다며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모를 말을 하여 기분을 상하게 한다.    조금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살아가면 모두 극복할 수 있는데 상대를 조금도 배려할 줄 모르고 쉽게만 대하려 하기 때문에 불쾌한 면들이 나타나 신뢰받지 못하는 것이다. 신중하지 못한 행동으로 상대의 관용을 바라지 말고 정중하게 사과를 해야 한다. 남에게 폐가 되어도 별 문제 아니라고 그냥 넘어 가면 안 된다. 그렇게 할 때 서로 존중할 수 있고 신뢰가 쌓인다.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서로가 노력하고 실천해야 친근감이 생긴다. 서로 아껴주고 챙겨주면서 따뜻한 삶을 누려야 한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3-09
  • 우리가 알아야 할 것 / 구유현의 명상노트
    어느 대학의 학장님이 한국의 교육과 젊은이들의 태도 등에 대한 특강을 하였다고 한다. 그분은 당신이 재직하던 학교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을 많이 하신 분으로 유명하시기도 하였다. 이 학장님이 학교를 위해 기부를 부탁하기 위해 모 기업을 찾아 가셨을 때 그 회사 회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기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대신에 댁의 학교 학생들에게 제대로 기본예절을 좀 가르쳐달라.”고 하더란다.  보통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뽑으면 회사에서는 기초교육을 시키는데, 그 교육의 내용은 정말로 별 게 아니라는 것이다. 길에 침 뱉지 말기, 휴지 버리지 말기, 인사 잘하기, 고운 말 쓰기 등이라고 한다.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들에게 이러한 기본 소양을 가르치는데 엄청난 금액을 쓴다는 것이다. 그 교육만이라도 잘 시켜서 사회로 내보내 주면 예산절감 차원에서라도 너무나 고마울 것이라는 것이다. 이 얘기에 학장님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요즈음은 아이들에게서 영악하고 버릇이 없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자신만 알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며 양보 ․ 협동 ․ 봉사 ․ 희생 ․ 정직 ․ 성실 ․ 감사 등의 덕목 실천에는 소홀하고 소극적이다. 이런 현상은 잘못된 교육이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부모와 교사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데 자녀와 학생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없다. 부모와 교사가 예의범절이 없고 양보와 희생 ․ 봉사정신이 없는데 어떻게 자녀와 학생을 훌륭하게 교육하겠는가. 아이에게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 방법보다 부모와 교사가 올바른 가치관과 태도를 가져야 아이들을 올바르게 교육을 할 수 있다.     기본생활 습관교육을 우선적으로 하고 중시하면서 그 바탕 위에 지식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는 늘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중시해야 할 기본생활교육을 소홀히 하여 자녀와 학생들의 교육에 실패하게 된다. 기본생활교육도 일회적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일관성 있게 꾸준히 하게하고 반드시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잘하게 되고, 칭찬을 받게 되면 무엇이든지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좋아하게 되고, 드디어 즐기게 된다. 느리게 가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멈추고 포기하는 것을 염려해야 한다. 성공한 모든 사람은 열 번, 스무 번 넘어졌다 다시 일어섰다. 이렇게 해야만 인성교육의 바탕 위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기본예절은 사회가 변하고 발전해도 별다르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개인 중심적 사고로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것만큼 게을러지고 이타적인 생활방식이 무너진다는 데 있다.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사회성은 오랜 기간 동안 체험을 통하여 다듬어지고 얻어질 수 있는데 이런 노력들이 소원해지고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면 첨예하게 갈등이 유발된다. 자기 하기 싫은 일은 남도하기 싫은 것이다. 아이가 변화되려면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하여 잘잘못을 생각하여 보고 반성하고 고치려 하면서 성숙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반성할 줄 모르면 행동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2-17
  • 선택과 집중에 따라 성과가 나타난다/구유현의 명상노트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슨 일이든지 선택여하에 따라서 결과가 나타난다.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은 틀림없이 일어난다.”  미국의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 ‘스타트랙’에서 부지휘관 데이터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나쁜 결과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은 틀림없이 일어난다.” 는 파이나글의 법칙도 있다. “잘못 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언젠가 잘못되고야 만다.” 는 치숌의 법칙도 있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머피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1949년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있었던 충격완화장치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 한 기술자의 사소한 배선실수가 원인이었다. 이때 현장에 있던 머피 대위가 이렇게 한탄했다는 것이다. “뭔가 잘못 될 수 있는 일이라면 틀림없이 누군가 그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라고 했다. “잘 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항상 잘 된다는 것을 샐리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어떤 경향을 일반화시킨 명제로서 80대20법칙이라는 용어가 적용되고 있다.  산업재해연구가인 하인리히가 알려준 법칙에 이런 게 있다. “한 건의 사고가 일어나기까지에는 29건의 소사고가 있고, 또 그러기까지에는 300건의 이상상태가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숙명적으로 그것을 반복하게 되어 있다.” 산타나야의 법칙이다. (조선일보 1999년 8월 10일 화요일 홍사중 문화마당)     긍정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나 열심히 하여 감동을 준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은 80대20의 법칙과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의 사람들은 남에게 폐를 주는 일이 드물고 협조적이어서 동료로부터 신뢰를 받는다. 80이 잘하는 사람으로 일반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쉽고 자유로운 것만 받아들이고 그 외는 부정적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그 자체를 의무감으로 생각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열정과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무슨 일이든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사람이 드물고, 헌신과 희생정신으로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사람들은 점차 찾아보기 힘들게 되고 있다. 헌신과 희생의 정신은 날로 감소하고 있으며 끝없는 불만과 욕심이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다. 자기 자신만을 알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풍조가 만연되어 가고 있다. 나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들과의 신뢰 체계가 무너져 가족 공동체, 직장 공동체가 허약하게 되어 결국에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권위마저 부정하는 습성이 남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노력 없이 해결되고 개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생활환경이 긍정적으로 되어야 하고 습관화되어야 한다. 개인의 인권만을 중시하면 남들을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하게 되고 이런 일이 지속되다 보면 인성교육이 무시되기 쉽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남에게 폐가 되는 언행을 하지 않을 때 더불어 살 수 있는 넉넉하고 훈훈한 사회 환경이 조성되어 행복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무분별한 자유를 일방적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 공중도덕, 예의범절, 의사소통, 배려와 양보, 겸손한 덕목 등의 실천을 통해서 감동을 주는 미래지향적인 습관을 길러서 잘 될 가능성이 있도록 더욱 높여 나가야 한다.  이러한 덕목들이 습관화되지 못하면 우리의 불행은 그만큼 높아진다. 인성교육을 학생만이 하는 교육으로 생각하지 말고 평생교육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  현재 인성교육은 학생들이 하고 어른들은 인성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생각하든지 어른이 되면 인성교육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어른들이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데 어른들은 어떠하든 학생이 하는 것으로 인식하가 때문에 인성교육이 성공하기 어렵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2-11
  • 프랑스 부모/구유현의 명상노트
    프랑스인들은 야외에 나가면 ‘네댓 살 되는 아이들이라도 혼자 뛰고 뒹굴며 논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엄마는 책에 푹 빠져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이가 다치지 않을까 염려되어 아이 뒤를 엄마아빠가 졸졸 따라다닐 것이다. 그런데 많은 프랑스 부모는 아이와 상관없이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와인을 마시며 자신들의 시간을 만끽한다.    식사 자리에서 어느 프랑스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부모는 쉬려고 공원에 갔는데, 아이와 계속 놀아주면 오히려 더 피곤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다음에는 아이와 함께 공원에 안 가게 될 겁니다. 그냥 어린애들은 자기들끼리 놀면서 크는 거예요.”  공원뿐 아니라 레스토랑이나 대형마트에서도 한국과는 사뭇 다른 프랑스 부모와 자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선 레스토랑에서 징징대는 아이를 찾기 어렵다. 포크 사용이 가능한 나이의 아이에게 엄마가 음식을 떠 넣어 주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얌전히 앉아 음식을 먹고, 부모는 자신들의 식사를 즐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뭘 사달라고 떼쓰는 어린애도 드물다. 그렇게 했다가는 곧장 아이의 등짝에 엄마의 손바닥이 매섭게 떨어진다.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그저 한국보다 아이들이 얌전하고 울지 않았다고 생각되었다.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를 풀어놓을 때와 휘어잡을 때를 확실히 구분하는 것 같다. 식사예절이나 간식시간, 잠자는 시간 등에선 아주 엄격하다. 떼를 써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아이에게도 단호하다. 아이로부터 부모 자신의 자유와 여유를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다. 반면 야외활동이나 옷을 고르는 일 등은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 또 아주 어릴 때부터 보육원이나 유치원에 보내 사회생활을 익히도록 한다. 그렇게 키우는 것이 자녀의 행복을 위해 더 나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기회를 주는 반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을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 키우는 것이 사랑인 줄 알고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자발적으로 어렵고 힘든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들을 조종하는 리모컨이 되어서는 안 된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20-01-28
  • 엄부자모/구유현의 명상노트
    부모는 누구나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사랑을 한다. 부모 자식 간에는 아주 가까이에 산 탓인지 생각의 차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온갖 것을 다 보여줘도 똑 같은 말이 되풀이 될 뿐 달라지기는커녕 오해만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오해를 풀려다 보면 더 꼬이기만 하여 안타깝게 한다. 아마도 자기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끔 이런 생각들을 해본다. 판단은 각자의 몫일 테지만 부모는 문제의 원인을 밝혀 소중하게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모든 부모가 어려서부터 아이를 떠받들고 키우다 보니 아이만 보여 온통 아이한테 관심이 있지 그 외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아이가 태어나서 백일이 되고 돌이 되어 백일잔치 돌잔치를 해주지만 아버지 생일 챙겨주는 일은 인사치례 정도이고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뒷전이다. 아이가 옹알이를 하고 엎어지고 기고 일어서고 걷고 말하는데 관심이 있지 아버지는 언제나 뒷전에 밀려 아버지는 존재감이 없이 아이는 자라고 떠받들어 키우는 것만큼 상대적으로 아버지는 설자리를 잃고 뒷전에 밀려 떠돌기만 한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아이의 공부, 학원, 학교생활에 온통 신경을 쓰지 아버지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된다. 아버지가 말하는 것조차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참견하는 일이 되며 아이가 하는 대로 두고 봐야 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눈에 거슬리는 일이 별로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심각한지 모르고 유야무야 된다. 아이가 자랄수록 아버지는 가정이란 잠만 자는 숙소 정도로 아버지의 존재감이 줄어든다. 아버지가 아침 일찍 출근을 하든 늦게 퇴근을 하든 아이는 관심이 없고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언제 한 번 아버지를 생각하여 볼 겨를이 있었는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어도 아이를 챙겨주는데 온통 관심이 쏠리고 사회분위기에서도 어버이날은 뒷전이다. “오죽하면 집안 내 서열 1위가 아이들, 2위가 아내, 3위가 강아지, 4위가 파출부, 5위가 아버지라는 우스갯말이 나왔을까.” 아이가 질투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아이를 새싹이라며 무조건 관용으로 부추기지 말고 정상적으로 아이가 자랄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온통 사회분위기나 가정에서 아이만 있지 그 외의 사람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홀대를 한다. 작자 미상 ‘아버지는 누구인가’를 읽어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아이가 생각하는 대로 아버지는 아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모든 것을 삭이며 아이가 잘 자라기를 기원을 한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아이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산에도 큰 나무 작은 나무가 있듯 가정에도 어른과 아이의 역할이 위계적으로 되어 서로가 노력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부모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주장을 하는 아이가 어떻게 잘 자랄 수 있을까. 아이를 떠받들면서 자신만을 아는 아이로 키울 때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 아이는 이 다음에 알고 경험한 것만큼 살아가게 된다. 인터넷 떠도는 아버지에 대한 글이 예사롭게 생각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 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 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 우리 아버지요? 세대차이가 나요. 25세때,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 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이런 현상이 왜 나타났을까  모두가 아이를 잘 키우자는데 동의를 하지만 가정이나 사회에서 아버지의 존재감에 대해서는 생각하여 보지 않았다. 아버지의 권위를 무너트리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권위가 설 수 없다. 집을 짓는데 기둥 없이 집을 지을 수 없듯 아이를 키우는데 다를바 없지 않은가. 아이 수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키워야 하는데 그 이상으로 키웠기 때문에 아버지를 알 수도 이해할 수 없이 된다. 아이의 생활습관이 익숙하고 굳어지기 전에 배려, 협동성, 책임성, 성실성, 정직성 등의 좋은 심성과 준법성, 자기주도성, 리더십, 의사소통, 문제해결능력 등의 긍정적인 사고력을 길러줘야 하지 않을까.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9-12-10
  • 금연 / 구유현의 명상노트
    금연을 하는 것은 소중한 생명을 끊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는 우스운 말을 많이 듣는다. 길거리에 지나가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다. 예전에는 담배를 피우라고 재떨이를 비워주고 별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예전과 달라 금연구역에서만 가능하다. 한 번 습성이 들게 되면 절제하기도 어렵고 흡연은 마약과 같아서 웬만한 인내심이 없으면 끊기 어렵다는 것을 흡연을 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내용이다.   방법은 처음부터 아예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나쁜 습관은 들이지 말아야 한다. 한번 입에 대면 자신도 모르게 피게 되고 좀처럼 담배를 끊지 못한다. 하루 담배 량을 줄인다든가, 금연침 맞기, 담배 휴대 않기 등과 같은 방법으로 끊고자 하지만 흡연의 유보는 될지언정 효과를 보지 못한다. 흡연은 식욕이나 맛으로 피는 것이 아니고 단지, 습관성인 경우가 많다.     금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담배의 맛을 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담배를 피우기 전에 담배 맛이 어쨌는지, 느낌이 어떠했는지를 되돌아보면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복기를 해서 담배를 싫어지게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이 보기 싫듯이 담배가 싫어지는 노력을 해야 하리라. 이런 마음이 들지 않으면 금연을 하는데 백약이 무효다. 정말 담배는 백해무익이다. 이런데 담배를 왜 끊지 못할까. 금연을 한다고 한 두 달 참아 보고, 반년을 참다 또 피게 되고, 기분 나쁘다고 태운다면 금연은 하나마나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금연하는 것은 자신의 인내심에 달려있다. 자신과의 게임이다. 담배가 좋은 친구가 아닌 나쁜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 나쁜 친구에게 끌려 다녀서는 절대 생활습관이 개선될 리 없다. 금연을 하려면 담배를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정을 떼야 한다. 담배가 싫어지는 싸움에서 이겼을 때 금연을 할 수 있다. 결국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참은 것이라고 한다. 금연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속적 인내의 과정이라 생각 된다. 금연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내 욕구를 효과적으로 억누를 수 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나쁜 습관은 노력을 안해도 저절로 된다. 좋지 못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가능하다. 좋은 습관은 노력을 해서 길러야 하기 때문에 미루게 되고 힘이 들어가게 된다. 내 인생을 이끌어 가는 힘은 무언의 습관의 힘이다. 습관을 들이기 위하여 운동이든, 전문성이든, 인간관계든 부단히 노력하고 게을리 하면 안 된다 하겠다. 금연을 원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9-03-03
  • 스스로 할 수 있게 / 구유현의 명상노트
    스스로 할 수 있게   “영국의 과학자 알프레드 윌리스가 참나무산누에나방이 고치를 뚫고 나오는 과정을 관찰하게 되었다. 나방이는 누에고치 안에서 작은 구멍 하나를 뚫고 그 틈을 빠져 나오기 위한 고통을 한나절이나 참아내야 했다. 작은 구멍을 빠져 나오는 나방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과학자 알프레드는 예리한 가위로 누에고치의 구멍을 넓혀 주었다. 그런데 스스로의 힘으로 고치를 빠져나온 나방의 경우는 예쁜 색깔로 변해 훨훨 날아가는 것과는 달리, 도움을 받아 편하게 구멍을 빠져나온 그 나방은 몇 번의 날개를 퍼덕이다 날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고 한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요즈음에는 실천력이 없는 학생들이 많다. 학교 급식에서 생선이 나오는 날이면 가시를 발라내기가 귀찮아서 먹던 밥을 남기고 식탁을 떠난다고 한다. 집에서 어머니가 생선 가시를 발라주는 것을 먹다 보니 가시를 발라내고 먹을 줄을 모르는 것이다. 조금만 날씨가 덥고 추워도 참아내질 못하고 아이들 더운데 왜 하복을 못 입게 하느냐, 날씨가 추운데 동복을 무슨 이유로 못 입게 하느냐고 어머니의 항의가 대단히 거칠게 하신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부모님이상으로 아이들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대학교에서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엄마들이 자녀 수강 신청을 대신하여 주기까지 한다고 한다. 이렇게 타성에 맛이 들어 있다 보니 할 줄 아는 일이 없고, 실천력이 없는 무기력한 학생들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을 의타적으로 기르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스스로 일어서고 해결할 수 있는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사람을 기를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노려해야 한다. 어른들의 욕심이 지나치다 보니 아이들의 교육을 그르치는 경향이 있어 매번 안타깝다 하겠다.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격언이 있듯 문제 해결력이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9-03-02
  • 삶의 기도
       내 인생의 삶은 어떤 그림이었을까요   허욕에 눈멀어 가식의 삶 살지 않았을까요 재물에 군침 흘리지 않았을까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범사에 겸허하게 하소서   오케스트라의 뒷전에 서서 제 목소리는 감추고 전체를 빛나게 하는 콘트라베이스가 되게 하소서      
    • 예술/창작
    • 명시산책
    2018-11-27
  • 세월의 고개를 넘으며 / 구유현의 명상노트
    세월의 고개만큼 어려운 것이 없더라.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앞을 막더라. 돌아보니 첩첩산중이었고 나는 아직도 그 산속에 있더라. 하지만 인생의 고개 중에 어릴적 보릿고개만큼 무서웠던 것은 없더라.    
    • 예술/창작
    • 명시산책
    2018-10-14
  • 세월
    내 자식 방에서 뛰면 재롱이고 남의 새끼 위층에서 뛰면 폭동이다.  
    • 예술/창작
    • 창작활동
    2018-09-10
  • 경종 / 구유현의 명상노트
                                                           경조사는 누구나 일생일대의 큰 개인사로 축하와 위로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혼례를 올리는 날은 일가친척을 비롯하여 평소 알고 지내는 하객이 들려서 축하하고 슬픈 일에는 서로 위로해 주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일처럼 아름다운 시간이 없다. 우리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당연지사로 안다. 당사자는 이럴 때 얼마나 좋고 다급하면 안면밖에 없는 사람까지 연락하겠는가.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내 일머리 모두 끝났다고 눈을 감고 모른 체 할 일인가.    가는 정속에 오는 정이 싹튼다고 하는데 어느 경우가 더 불쾌하고 기분 나쁜 이야기가 될까. 자기의 일머리만 중요하다고 챙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애경사에 오고 가는 마음은 불문율로 직접적인 이야기 자체를 꺼린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이 많이 나가는 고운정은 영웅담 하듯 긍정적으로 바쁘다고 이야기 한다. 가고 오지 않는 미운 정을 말하면 부정적이고 잘못된 사람으로 금기시한다. 가는 정은 일반화되어있지만 오지 않는 정을 말하면 시선이 곱지 않게 인식한다. 언제나 가는 정만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게 하며 속내를 불편하게 만든다. 속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 언급 자체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이를 말하면 왕따를 당한다. 애경사는 개별적으로 당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대소사에 축하와 위로는 당연하다면서 자기 일이 모두 끝났다고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하여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인가. 이렇게 얄팍하고 천박한 생각이었다면 자신의 애경사를 타인에게 알려서 우를 범하게 하는 일처럼 치사한 게 없으리라. 혼례에 하객이 찾아서 축하를 해주면 더 없이 감사한 일이다. 애사가 있을 때는 슬픔을 서로 나누어 갖고 힘을 보탠다. 애경사에 다녀오면 하나같이 ‘귀댁에 대소사가 있으시면 꼭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러한 중차대한 일에 삼십 수 년 봉사를 해서 정작 돌아오는 것은 낯 뜨겁게 하는 실망일때 유구무언이다. 어떤 사람보다도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하며 존중했는데 미온적이고 언제 봤냐는 식이라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좋게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런 사람은 상실감을 넘어 배신감이 든다. 시장에서 사 온 과일이 집에 와서 보고 썩었다면 속상한데 하물며 내가 정성을 들인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면 두고두고 기분이 상할 일이다. 부조한 만큼 돌려받는다는 마음으로 부조하는 사람은 없다. ‘썩어도 준치’라는 데 정성을 들여서 나 몰라라 물리게 한다면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리라. 남이 하는 것은 당연지사로 알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방관하는 사람과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해야 할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말인가. 그런 사람과 ‘콩 한쪽도 반으로 나누어 먹는다’라고 생각했으니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는 싫어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청구서 같은 청첩장을 내밀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 마지막 남아 있는 미풍양속이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아가듯’ 허접스럽게 되어간다니 무슨 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4차 산업의 문명을 목전에 두고 고작 이렇게밖에는 할 수 없다니 안타까운 일이리라. 어느 연세가 지긋하신 수필 작가님이 축하를 해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가장 감사를 느끼는 부분이 저의 아들딸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주신 분들이 가장 고마웠어요. 그래서 저는 저와 안면이 있는 분들의 자제 혼사 때는 꼭 참석하려고합니다’라는 말씀이 감명 깊었다. 감사란 내가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진정성을 알 수가 없는가 보다. 막상 우리 아들 결혼을 시켜 보니 그 말씀이 새삼스럽게 들렸다. 그래서 달걀로 바위 치기 하듯 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은 돌에다 새겨야 한다고 했던가. 내 일머리 모두 끝났으니 앞으로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일이 있을 때 대문짝만하게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있었는지 염치도 없다. 고작 자신이 필요할 때만 들러리 서게 하겠다는 뜻이었나. 손 한번 잡아 보고 문고리 한번 잡아 봤다고 연락을 할 정도로 자기 일은 중시하면서 다른 사람 들러리 서게 할 수는 없다. 서로 돕고 살자고 앞장섰던 사람치고는 너무나 비겁하고 고약하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늘 오해의 진실 게임은 상대적이어서 생각하기에 따라 화가 나게 한다. 자기 대소사는 빠짐없이 보내면서 ‘누가 오라고 했나. 하기 싫으면 말지’ ‘그러려면 왜 하고 말해’ ‘나는 부조를 하면서 받을 생각은 안 한다’라고 하며 할 말 없게 만들고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든다. 누구는 돌려받을 생각을 하고 경조사를 가나. 아무렇지 않다는 불필요한 말이 오고 가며 물리게 한다. 돌려받는 다는 생각으로 애경사에 다니지는 않는다. 미래에 우리 모두 겪을 일이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닥치는 일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으리라. 사회생활하면서 선배분의 애경사에 수없이 다니며 축하를 해준 일들이 마냥 흐뭇하기만 하였다. 오가다 만났다고 알릴 정도로 자기의 일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남의 일에 무관심한 이 시대의 구경꾼에게 아쉬운 대목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틀리다’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리라. 이런 사람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가 신뢰 없고 불편하게 되어간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 일은 금과옥조처럼 중시하면서 다른 사람 일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일인가. 애경사가 있을 때 가까운 지인에서부터 문고리 잡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대소사가 있다고 연락이 오면 어떤 일보다도 더 챙겨 다녀왔다. 안다고 친하다며 기별을 했는데 하등의 망설일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다녀와서 봉투의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 놓는다.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시쳇말이 되리라.    자기 일만큼 다른 사람 일도 소중하다. 남에게 베풀 줄 모르면서 자기 일은 꼬박꼬박 챙기면 얄미울 정도다. 쩨쩨하다고 하기 전에 얌체 짓부터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을 만큼 비겁하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비난을 받기보다 돈이 많고 갑질을 하며 부자로 더 잘 산다. 얄미울 정도로 야비하고 치사하게 하면서 성인군자 같은 말은 다하고 다닌다. 이런 사람에게는 편들어주고 두둔하는 사람이 많고 비서 역할까지 자임한다. 그러니 이런 사람에게 놀아 날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자기 일이나 잘해야 할 사람이 사돈 남말 하 듯 놀아나게 부채질한다. 갚는 정이 없는 사람보다 고운 정을 보여준 사람이 억울하고 낯 뜨거워지게 만들며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서로가 위로해야 할 일을 흐지부지하며 수수방관하면 되겠는가. 자기 일은 계약을 하듯 하는데 남의 일은 계약해지가 된다. 자기 애경사는 연락을 했으면서 자기의 일머리가 끝났다고 어떻게 상대의 일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아무 나무랄 데 없는 말로 망신을 준다. 뭐 주고 뺨 맞는 것도 억울한데 망신까지 당하다니 고개를 들 수 없다.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의 짓거리는 덮어주고 다리를 뻗고 자게 하면서 어떻게 살기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편견과 아집이 공동체가 되어 물레방아 돌고 돌 듯 한다. 싹수가 노란 사람은 한두 번 겪어보면 대충 안다. 잘 될 수 있다고 고운정이 미운정 따라하게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기막히게 들린다. 헌신짝 버려지듯 하는데도 긍정적으로 보라며 부정적이라고 한다. 누구 좋아하라고 하는 말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사악한 무리에게 기분이나 비위를 맞추어 주면서 더는 들러리 서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귀댁에 대소사가 있을 때 꼭 연락하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꼭 헌신짝 버리듯 하면서 진짜 낯 뜨거워질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진짜 나쁜 놈이라고 불리어지리라.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6-16
  • 버팀목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일이 내 마음 같은 줄로 알았다. 내 마음인 줄로 알았지만 나를 떠나면 절벽이었다. 그 벼랑 끝에서 손을 내밀고 잡아달라고 아우성치게  될 줄  미처 몰랐다. 안 사람도 나와 같았으리라.     누구나 물어보면 다 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당당하게 말하는 순간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라는 의미가 된다. 모두가 매번 잘한다고 하면서 왜 못하는 걸까. 정말로 진정성을 모르고 자기 마음만으로 살아가려고 하니 파열음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철없이 부모가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각기 다른 두 바퀴로 굴러가고 사랑을 말하고 행복을 말한다. 우리 아이는 꼭 나를 닮아서 고지식하다.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면서 잘 아는 줄 알고 마음의 상처를 받기 때문에 부모로서 걱정이 많다.   누구든 아이를 낳아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을 진작 알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고민은 안 하리라.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를 보지 말고 애의 눈높이로 봐야 하는 건데 그렇게 보지를 못 했다. 부모의 생각으로 길흉화복이 점쳐지지 않을까. 나 역시 그렇다. 잘 먹여주고 입혀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이 끝났다고 한다. 그렇지 않은 줄로 알지만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 터널의 끝은 있게 마련이다. 그길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이렇게 키워서 아이를 장가보낸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출가하는 청춘 쌍을 흐뭇하게만 바라다보았다. 나조차도 결혼할 때 부모님이 다 해준다고 생각했으니 무슨 생각이 들었겠는가. 자식 키우면서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부모의 푸념을 위로로 삼았다. 지금까지 그저 그런 것 같았다. 결혼은 나이가 차면 당연히 하는 일쯤으로 여겼다. 느지막하게 우리 아들 결혼시키면서 그걸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니 여태까지 무슨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나 자신조차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내 자식을 장가보내면서 그걸 알았다니 무슨 말인들 못하랴.     우리 애 장가보낸다고 청첩장을 보내 드릴 때 만감이 교차하였다. 좋은 일이나 궂은 일로 대소사가 있을 때 찾아가서 위로와 축하를 당연한 일로 여겼으나 막상 내 자식이 장가든다고 하여 알리려니 선뜻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이런 경우를 두고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했던가. 하늘에서 내린 절호의 기회로 알고 일가친척과 평소에 우리를 알고 있는 존경하는 분들을 모시고 오월 이십일 한 시에 남산골 한옥마을 민씨 가옥에서 아들이 사모관대를 하고 전통혼례를 올리게 되었다니 보시는 분에게 뜻밖의 일처럼 보였으리라.   남산골 한옥마을 민씨 가옥은 남산 위에 서 있는 소나무가 내려다보는 우리의 전통 민속한옥이다. 우리 조상의 예스러움이 묻어나고 소나무로 정원이 되어 있는 자연 친화적인 곳이다. 우리 조상의 얼이 담겨있는 곳에서 죽마고우와 같은 친구들, 한때 교육을 함께 했던 동료 선생님, 탁구를 사랑하는 에스에스피 선생님, 시인정신, 서대반수필작가님, 일가친척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제 내 아들은 명실공히 군에서 ‘씨’로 신부는 ‘양’에서 여사로 어른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존경하는 모든 분의 성원과 사랑으로 더욱 빛났으리라 믿는다.   먼 곳에서 들르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 아이 혼례에 기꺼이 들려주신 분을 뵈니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반갑고 형언할 수 없이 감개무량하다. 소금으로 음식 맛을 내듯 사람 살아가는 맛은 무엇으로 낼 수 있을까.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 말이 있듯이 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어야 제대로 사는 게 아니겠는가. 서로 찾아보고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 기화로 한마당 한자리에 모이게 되니 새삼 잘 살아왔다는 데 대해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결혼은 새로운 출발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하였다. 결혼은 남녀가 서로 다르게 살다 하나로 되어 한평생 함께 산다. 결혼 전에는 더 없이 애지중지하고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이는데 결혼 후에는 점점 관심이 없어지고 소홀해지는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부부가 잘살고 행복하려면 처음과 끝이 항상 같아야 하지 않을까.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혼례를 올린 신랑 신부가 어른이 되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잘 살았으면 하는 게 이 애비의 마음이다. 남산 기슭 늘 푸른 저 소나무처럼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그 아이는 내 아들임으로.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6-02
  • 파수꾼
      파수꾼의 역할은 사람을 지켜주는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역할을 능가한다고 한다. 의사의 손이 미처 닿기 어려운 사람의 인체를 로봇이 대신 수술까지 해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지킴이의 역할은 홀대를 받는다. 부모와 자식, 경비, 안내자, 산불지킴이, 횡단보도지킴이를 파수꾼이라고 불러야 되하지 않을까. 안내견, 진돗개 등의 동물과 담, 문, 신호등, 무인카메라, 과속 카메라, 위험표시판, 차단기, 위험경보기, 알람, 등대 등의 무생물을 지킴이의 역할로 봐야 하지 않을까.   안전하게 지켜주는 지킴이를 귀찮게 여기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킴이의 역할에 따라 나누고 구별하면서 불편부당한 부분을 허용해야 할 경우도 있다. 사람 관계는 가족호칭, 직급, 계급, 학년, 직능별로 서열이나 순서를 정하고 끈끈하게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삶의 가치를 창출한다. 부조화로 반응을 하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쉽게 허용을 하지 않는다. 지킴이가 되어 차례를 기다리고 차를 타면 감동이 되고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무언의 지킴이가 행복하게 해준다는 걸 항상 감사하게 경험하다가 생각이 뒤바뀐다. 지킴이를 봉사라는 이름으로 무한 희생을 강요하거나 할 일 없는 사람의 소일거리 정도로 폄훼하기 때문에 불편하고 달갑지 않다. 벚꽃길처럼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보일 수는 없을까.     공원을 깨끗하게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깔고 앉았던 종이, 음료수병, 우유팩이 널브러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렇게 버린 과자봉지나 쓰레기는 누가 주워야 할까. 버리면 미안한 줄은 아는지 버려야 일자리가 창출된다면서 양심까지 쓰레기가 된다. 당연히 청소도우미나 환경미화원이 치워야 할 일이리라. 우리도 모두 공원을 깨끗이 하는 지킴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킴이가 자꾸 허수아비쯤으로 보인다니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까. 봉사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보인다면 하는 일들이 만족할 수 있으리라. 서로 존중해주지 않기 때문에 반목이 생기고 떳떳하지 못하다. 봉사하는데 자신감이 떨어지고 마지못해 때우는 봉사활동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킴이가 할 수 있을까.   끼어들기는 왜 그토록 집요하게 집착할까. 삶이 여유가 없고 매사 짜증이 나기 때문이 아닐까. 차선을 지키면서 가야 하는데 성질이 급하다. 차선을 지켜운전하다 뒤차가 빠져나와 앞으로 살짝 끼어들면 매우 불쾌하다. 미안하다는 신호를 하면 화가 나다가 가라앉기라도 하는데 어떤 얌체는 혓바닥을 내밀며 약을 올리기까지 하는 인간도 있다. 양보가 미덕이라고 하는데 지키는 사람만 손해를 보고 건강까지 해가 된다. 비열하고 얌체 짓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서로 불신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하는 것이다. 안 보이는 데서는 누구나 무한 질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한다. 다른 사람 다하는데 못하는 사람이 뒤에쳐졌다고 인식을 한다.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재주껏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러니 과속촬영기가 있으나 마나다.     인터넷상 축약어를 일상생활에서 버젓이 쓰고 있다. 조금 불편하면 귀찮다는 생각부터 하는 것인가. 반가워 요를 ‘방가’ 어서 오세 요를 ‘어솨요’ 선생님을 ‘샘’으로 편하게 부르는 게 멋스러워 보이기까지 하고 따라 한다. 우리말조차 지킴이가 되지 못한다. 이렇게 편하게 선택적으로 골라 하다 보니 서로가 불편하면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시류에 영합하여 묻어가며 몇 달 차이밖에 안되면서 세대차이가 난다고 한다. 서로서로를 불신하고 세대 차이가 난다 하고 만족할 수 없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농경사회를 살아온 세대와 지금 세대와는 물과 기름이다. 변하면 변할수록 갈등이 많고 불평불만이 많은 것이다. 갈등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가 힘들고 못 살겠다고 불평불만이 일상화되어있다. 나 힘들고 안 되는 것 있으면 탓을 한다. 부족하다 싶으면 외국의 문화나 제도를 말하면서 서로 불신하고 탓을 하는 게 정도를 넘었다. 서로가 지킴이가 되어 줄 수는 없을까.   지킴이가 있어도 안 되는데 없는 데서는 오죽할까. 탁구 하러 갔는데 잘 치는 사람한테 배우려는데 순서가 없다. 늦게 온 사람이 자기가 친다며 다른 사람까지 순서를 정해준다. 먼저 와서 치려고 순서를 기다리는데 순서가 아니라고 거들 사람조차 없다니 난감하다. 자기 차례다 싶으면 본인이나 칠일이지 오지랖 넓게 다른 사람까지 챙겨주다니 말이 안 된다. 이럴 때 ‘아니야, 저분이 칠 차례야’라고 하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이런 경우는 편들고 두둔하는 게 아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알려주니 고마운 일이 아닌가. 억지가 능사로 자기 밥도 못 찾아 먹는다며 어쭙잖은 말을 듣기까지 한다. 여럿이 함께 운동하면서 사실 여부를 이야기해 줄 수 있으면서 침묵이 양심이라 생각하는지 묵묵부답이다. ‘자기 밥도 못 찾아 먹는 게 바보’라는 말을 듣고 억지가 정당화된다. 남의 말 하면 안 된다고 하나 이런 경우는 아니리라. 애초에 배려와 존중하려는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다. 그러잖아도 꼴불견이 끝이 없는데 그러려니 하라며 개선될 일이 없게 한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유명한 배우, 저명한 인사가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혼을 쉽게 한다. 우리나라가 자살률과 이혼율이 세계 1위라고 한다. 왜 우리나라가 자살률과 이혼율이 셰계에서 가장 높을까. 불의 불식 간에 적절치 못한 언행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서 죄책감이 없고 상처를 받은 사람이 소심하다는 등 더 고통을 받고 치유할 방법이 없다. 마음이 아파서 힘든데 이해하고 참으라하며 소심하다고까지 한다. 사람이 행복할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상처투성이인데 우리는 이들을 얼마나 위로해주려고 노력을 했는지 용서를 구해야 하리라. 우리 주변에서 지켜줘야 할 자들이 만들어낸 불행이다. 자살율과 이혼율이 세계 1위라 하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배려하고 존중할 줄 모르는 데서 기인한 결과라고 생각되지 않은가.   인간 이외의 지킴이는 나를 종일 1년 365일 지켜준다. 언행이 필요 없으면서 나를 양심에 따라 행동하게 한다. 절대 배신하는 법이 없다. 서로 감싸주고 인정해주며 존중하는 지킴이가 되어야 하리라. 순수의 눈, 관용의 마음으로 지킴이가 될 때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고 배려와 존중으로 행복한 파수꾼이 될 수 있으리라.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고,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고, 기다려 주는 파수꾼이 있기에 살맛 나고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5-11
  •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즐거움은 재미있는 사람, 잘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놀며, 운동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직장에서 근무하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즐겁고 행복하다. 만나는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 욕설, 폄하, 비하, 억지, 무시, 반말, 막말, 예의 없는 태도, 거짓말 등을 예사롭게 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주변에 있다면 곤욕스러움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편치 못한 사람들로 천지를 이룬다면 즐겁게 생각하려 해도 쓸데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힘들고 편한 마음으로 이원화 되어있어 힘든 일은 피하고 좋은 것과 편한 것만 찾으려 한다면 상대에게 즐거움을 줄 수 없다. 언제 보아도 밝고 상냥하게 환한 웃음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아름다움을 나누어 갖는 모습이고 상대에게 호감을 준다. 만나면 너무나 좋아 헤어지고 싶지 않는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밝고 환한 미소로 긍정적으로 되려면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배려, 존중, 신뢰, 책임, 봉사, 희생, 열정, 적극성과 같은 덕목을 길러줘야 한다. “미국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봉사를 많이 하라고 가르치고, 영국의 엄마는 항상 양보하라고 가르치고, 일본 엄마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엄마들은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공부 잘하라고? 절대 져서는 안 된다고? 맞고 다니지 말라고?” 사람은 대개 끼리 끼리 어울린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사이좋게 지내라라고 가르치고 싶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 그중 첫 번째는 꽃과 같은 친구, 둘째는 저울과 같은 친구, 셋째는 산과 같은 친구, 넷째는 흙과 같은 친구가 있단다. 꽃과 같은 친구는 한창 꽃이 만개하여 예쁠 땐 다가오지만 시들어 꽃잎이 질 때는 외면하고 마는 친구란다. 저울과 같은 친구는 항상 이것저것을 견주어 보아 이해관계에 따라 사귀는 친구들을 말하고, 산과 같은 친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보아 주는 친구를 말한단다. 흙과 같은 친구는 친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도움을 주는 친구를 말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네 자신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할 것 같구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잖은가. 은연중에 친구를 닮아 간다는 말이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3-22
  • 인간관계?
    사람은 만남을 통하여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간다. 이해관계에 따라 마지못해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오래 갈 수 없고 진정성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사람과 십 수 년을 함께 생활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며 모든 사람들이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 관계론의 바이블’이라고 할 만한 저서를 남긴 카네기는 ‘수천 명의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지만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관계일 뿐 진정한 친구로 만난 것이 아님을 밝혔다.’ 유명한 인간관계론의 저자인 카네기조차도 수천 명의 사람들과 우호 관계를 맺었지만 진정한 친구로 만난 사람이 없었다며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고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사회생활에서 사람의 만남은 필수적이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진정한 친구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만나서 부딪히는 장애물들이 있으면 원만한 인간관계형성이 어렵고 불편하다. 무례한 언행을 보여서 기분을 상하게 하고 상대에게 ‘예의’ ‘매너’를 다하지 못해 상실감을 줄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무례한 언행을 보이는 것은 금물이다. 타인에게 결례가 있을시 일회적 현상으로 단순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불쾌감이 남는다. 본의 아니게 상대에게 결례가 될 수 있는 경우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상대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고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게 여기며 상대에게 불쾌감을 준다. 서로가 절제를 하고 ‘예’를 다하여 존중할 때 감동이 있고 유쾌한 인간관계가 된다.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오늘 하루는 누구든지 똑같이 주어진 것이다. 일을 하는데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 쉬운 일이냐, 어려운 일이냐, 편한 일이냐 아니냐를 따져 묻는 사람과 생활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 주어진 하루 최선을 다하고 잘 하겠다는 마음이 즐겁게 살아 갈 수 있는 보험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왜 하는지 모르고 짜증을 내고 게으름을 피우며 부정적으로 접근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부담을 준다. 쌩텍쥐페리의 저서 ‘어린왕자’에는 소외와 고독에 찬 현대인들에게 관계의 진정성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똑 같은 장미꽃 수천송이가 있지만 그 중 하나의 꽃이 중요한 이유는 그 꽃에 정성과 애정을 기울이고 함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라는 내용이 있다.   직장인은 회사에서 근무한 대가로 봉급을 받는다. 책임 있게 일한 사람은 인정을 잘 받을 수 있다. 승진이나 개인적인 일로 책임감이 훼손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마냥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서로 불신을 하고 상실감으로 인간관계가 불편하게 형성된다. 이거 내 일 아니야 귀찮게 매일 같이 이것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생각으로 한다면 기분 좋은 만남이 되지 못하고 신뢰를 쌓을 수 없다. 어떤 상황이든지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 인간관계도 잘 형성된다. 예전에 이웃 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단 한 번의 만남일 수 있는데 관계하는 사람들이 빈틈없이 최선을 다하여 배려하고 안내하여 주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나는 지금도 그 분들에게 감사함을 잊지 못한다. 흔히 사람들이 하루 이틀 잠깐 만나는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나라 사람은 어디에서 봐도 차이 없이 친절하게 똑 같이 대해 주었다. 이와 같이 잘하는 모습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져야 인간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귀찮게 생각하거나 억지로 하듯이 하면 인간관계가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2-25
  • 일을 하면 건강하다
       중국 철학자 펑여우란은 젊은 시절 서양학자로부터 “중국에도 철학이 있느냐”는 놀림을 받았다. 분발한 그는 7권짜리 ‘중국철학사 신편’을 쓰는데 평생을 바쳤다. 1990년 95세에 세상을 뜰 때도 원고가 손에 들려 있었다. 그 마지막 모습은 그가 생전에 자주 읊조렸다는 이상은(李商隱)의 당시(唐詩) 구절 그대로다.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뽑기 그치고 (春蠶到死絲方盡)촛불은 재 돼야 비로소 눈물이 마른다(蠟燭成(恢淚始乾).’   100세 생일에 맞춰 버스회사 수리공을 그만뒀던 미국 LA의 아서 윈스턴이 은퇴 20일 만에 숨을 거뒀다. 이 버스회사에서만 76년을 근무했고, 모두 81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내가 죽었을 때 딱 하루 결근했다는 윈스턴이다. 이미 10년 전에 클린턴 대통령은 그를 ‘세기의 직장인’으로 표창했다. 윈스턴의 사인(死因)은 심장이 점차 기능을 잃으면서 생기는 울혈성 심부전이라고 한다.  윈스턴은 최근까지도 건강을 뽐냈다. 섹시한 20대 흑인 여가수 비욘세의 사진을 옷장 안쪽에 붙여 놓았던 것이다. 은퇴하던 날도 그는 “아직 건강하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도 한구석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무얼 해야 할지 초조하기도 하다.” 그가 두려워 한 것은 ‘일’이라는 평생 동력이 멈추는 것이었다.  미국 장수(長壽)학자 토머스 펄스가 100세 넘은 노인 169명을 조사했더니 평균 78세까지 생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오래 일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이른 은퇴를 꿈꾸지만 막상 은퇴하고 나면 일을 몹시 그리워한다. 독일 철학자 훔볼트는 “일은 먹는 것이나 자는 것보다 인간에게 필수적”이라고 했다. 일하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증거다. 100세 윈스턴이 남겼던 말을 이제 음미해 보니 마치 자기 죽음에 대한 예고처럼 들린다. “너무 오래 멈춰 있으면 얼어붙는다. 계속 일하라. 일하는 것이 오래 사는 길이다.” 인생의 초반전에는 일하는 것이 지옥이었다. 젊었을 때는 일이 몸에 배지 않아서인지 화가 나고 상사가 고달프게 하는 존재로만 생각되었다.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최선을 다해 일해도 잔소리는 여전했다. 지금은 자신이 일을 못하는 것도 일이 많아서 못하는 것이고 놀고 있어도 바쁘다 하며 이현령비현령으로 참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유가 어디에 있던 지나고 보니 헛살아 왔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이왕 할 일이면 즐겁게 할 것을 바보처럼 생각하며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다. 학생은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하여 노력을 해야 성장할 수 있고, 직장인은 주어진 역할을 흔쾌히 받아들일 때 건강해질 수 있고 행복한 일터가 된다. 어차피 이왕에 할 공부나 일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고 평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런 역할을 못한다면 게으름, 태만, 소극성, 무능, 피동성, 수동성, 의타적으로 매사를 부정적으로 그르칠 수밖에 없으며 타인에게 폐가되기도 한다. 자기 역할을 잘하는 것은 자신이 성공적일 수도 있고 남에게 폐가 되지 않아 건강하고 행복하게 될 수 있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2-05
  • 부부별곡
        사람은 속병이 없으면 오래 산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구순의 할머니가 손자한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었나 보다. 자율적으로 오는 병은 병원에 가면 되지만 심리적 병은 치료할 방법이 묘연하다. 시도 때도 없이 마음에 쌓이는 시름은 타율적이어서 한 번 마음 집에 들어오면 나갈 줄 모른다. 사람들은 쉬 잊으라고 남 말하듯 상처를 내면서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라 하지만 한번 마음 속에 박힌 상처는 들어 올 때는 쉬워도 지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골치 아픈 일 빨리 잊을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안 된다. 몸이 아플 때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나 마음이 아플 때는 갈 데가 없는 게 문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플 일도 아닌데 배 아파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기적인 속성을 가진 인간은 내일 변할 것도 없는 그네를 타며 헛수고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니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덫에 걸려 남들이 내는 상처를 마다하고 희망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몸과 마음 따로 병이 났을 때 어느 경우가 힘들까.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지만 마음의 아픔은 유통기한이 없다. 우리는 매일 사람을 만나며 본의 아닌 스트레스와 갈등을 겪는다. 병은 마음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산다는 게 다 그렇고 그렇다며 모두가 무관심하게 병 주고 약 준다. 마음이 불편하면 행복할 수 없지 않은가. 인간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마음 속 아픔은 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부부는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즐거움과 괴로움, 걱정과 분노, 절망과 고통을 함께 나눌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체다. 잘잘못을 그대로 함께 느낀다. 우리나라는 세계 열두 번째로 잘 살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데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운동을 해서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는 있으나 타인과의 갈등이나 스트레스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치유하고 극복하는 데 힘이 부친다. 건강하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을 아끼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당연한 일이지만 인간관계에 나타나는 문제는 공동체적으로 노력해야 할 일이라면 잘못된 소견일지 모르겠다. 인간관계가 잘못되면 정신 건강을 해치는데 직접적인 문제가 아니어서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 게 문제다. 육체적 건강 못지않게 정신적 건강이 중요하다. 정신이 건강하려면 무엇보다 관계가 중요하고 주변인들 역시 함께 노력해야 하리라. 여건에 따라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습관적인 생활화로 이어지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덩달아 할 때가 있다. 분위기에 편승하여 대화가 오고가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일이 전개되기도 한다. 대화를 하든 음식을 먹든 자기 의지대로 반영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이런 저런 말에 놀아나게 될 때가 있다. 남 보기는 쉽게 보이고 말은 쉽지만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지 걱정이 팔자라며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모임이 있으면 으레 술자리로 이어지는데 개인사정에 따라 먹고 싶을 때도 있고 내키지 않을 경우가 있는데 먹기 싫다 하면 ‘죽을 때가 다 됐다’다며 억지로 먹이려 한다. 술잔을 돌릴 때는 먹기 싫어도 막무가내기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따라 맡겨 둘 수 있어야 하는데 굳이 강요하다시피 하는 저의는 뭘까. 나 혼자 마시고 망하지 않겠다는 심산이 아니고서야 강제로 술을 요구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오래간만에 특별히 시간을 내어 만난 자리인데 기분이 상하는 대화가 일방적으로 오고 간다면 안 만나느니 못한 만남이 된다. 만남은 더 따뜻하고 돈독하기 위해서 마련되는 자리인데 그렇지 않다면 모임을 가져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는가. 모임이 불쾌하게 끝나고 만족스럽지 못해도 모임에 나가는 이유는 앞으로 잘 되겠지 낳아지겠지 하는 마음인데 언제나 불쾌한 감정이 쌓이기만 한다.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잘못이 쌓이고 기대할 수 없는 아쉬운 날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억울하게 소모적인 일로 배려받지 못하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불행을 경작하는 선수가 되기 싶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문턱에 있으면서 삶의 질은 팍팍하기만 하다. 왜 그동안 나는 남들처럼 영악하게 살지 못했을까. 대책 없이 노년을 맞게 된 나를 질책하곤 한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와 같은 나눔과 따뜻한 삶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뒤 늦게 나름대로의 희망을 갖는다. 땅거미가 지는 어스름한 저녁 어느날 노부부로 보이는 내외를 보았다. 영감이 꾸부정한 부인의 손을 꼭 잡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황혼의 나이에 꾸부정한 부인의 손을 잡고 가는 영감이 내 모습이고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들면 자식이 출가하여 분가를 하고 남은 건 부부다. 나이가 들어 병이 들고 거동이 불편하면 본인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자신조차 모르고 가족들이 모르는 세월을 보내면서 모두가 힘들다. 가족이 수발을 들어준다 해도 한계가 있다. 건강하게 사는 방법밖에는 없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건강하지 못하면 집안 식구에게 짐이 된다. 집안 식구 들에게 짐이 되고 싶어서 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 병들고 거동하기가 힘들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말도 어눌하고 움직이는 데 부자연스럽고 어쩔 수 없다. 사는 날까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말고 건강하게 사는 노력이 절실하다. 고령이 되어 자신을 자각할 때는 이미 속수무책이다. 운동을 하는 것은 아이가 눈을 떠야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여태까지 일회적으로 일관성 없이 핑계를 대면서 운동을 미뤄왔는데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닌 것 같다. 젊었을 때 건강이 나빠지기 전에는 움직이는 것이 귀찮고 움직이는 것조차 일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은 젊을 때부터 꾸준히 해오면 병원에 가지 않고 즐겁고 건강을 지키며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건강을 잃고 노년을 힘들게 보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찾아든다.잘못된 생활습관이 쌓여 건강을 잃고 노년을 힘들게 보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찾아든다. 내가 좋아 하는 운동 하나만이라도 해 올 걸 하는 후회가 된다. 운동이 행복한 삶을 만든다는 걸 건강을 잃어봐야 안다고 하는데 나에게 던져 주는 말 같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나는 내 건강관리 못지않게 집사람 건강을 잘 챙긴다. 밀레의 이삭 줍는 저녁노을 만종처럼 건강한 부부로 낭만적으로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년에는 부부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복된 삶이다. 부부 중 건강을 잃어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우리 부부의 꿈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요양원 신세가 안 되게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기도를 하며 매일 아침을 열곤 한다.
    • 테마기획
    • 구유현의 명상노트
    2018-01-20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