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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학의 독백14 - 부천도시재생과에 묻는다
    도시재생사업은 계획된 사업이 완료되면 끝나는 것인가? 도시재생사업은 사업이 완료된 순간 진정한 도시재생이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부천도시재생과에 도시재생사업에 끝이 있는지 묻고 싶다.     현재 부천도시재생과는 심곡지역도시재생사업, 원미지역도시재생사업, 고강지역도시재생사업, 원종2동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부천도시재생사업의 표본은 소사본동이다. 소사본동은 이미 2016년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여 2020년 5년 동안의 소사도시재생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하였다. 소사도시재생사업은 경기도도시재생사업에서 계획한 대로 사업을 완료한 첫 번째 도시재생사업이다. 그만큼 소사본동은 경기도도시재생사업의 상징적인 곳이다. 소사도시재생사업의 소사본동은 도시재생사업의 모범사례로 도시재생사업벤치마킹을 하려는 관계자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지난 5년간 소사본동에서 진행된 소사도시재생사업은 소사삼거리에 거주했던 ‘향수’의 작사가 정지용 시인의 문학을 생각하는 ‘정지용 향수길’을 조성했고, 소사우시장이 있었던 소사종합시장 삼거리에는 ‘황소동상’을 설치하여 문화적인 스토리텔링을 복원했으며, 주민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활동장소로 ‘소사공간’을 새롭게 만들었고, 한신먹거리가로의 정비사업, 마을미디어사업, 이외에도 다양한 교육으로 주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 등을 하였다. 그러나 소사도시재생사업이 종료되면서 도시재생에서 진행했던 다양한 사업들은 주민이 만들어가는 자치사업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 그나마 마을미디어사업과 마을해설사사업 등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소사본동에서 현재 진행형이어야 할 도시재생은 사업이 종료된 순간 잊어진 과거가 되었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부천도시재생과도 소사도시재생사업은 완료된 것으로 간주하고 사무국장을 남겨 소사도시재생사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부천도시재생과의 이러한 조치는 단견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진정한 도시재생사업은 계획된 사업이 완료되면 끝나는 게 아니라 계획된 사업이 완료된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한 예로 부천도시재생과가 소사본동에 정지용 향수길만 덩그러니 조성해놓고 떠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정지용 향수길을 이용한 문화적인 사업이 뒤따라줘야 되는 게 아닌가? 도시재생사업으로 축적된 모든 물적 인적 역량을 활용해야 할 시기에 도시재생사업이 완료되었다고 철수하면 도시재생의 새싹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자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전국의 도시재생사업이 활짝 꽃을 피우지 못하고 중간에 사그라지거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도시재생사업이 완료된 곳에서는 어떻게 하면 도시재생을 문화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도시재생사업을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2단계 도시재생, 또는 진정한 도시재생이라 말하고 싶다. 부천도시재생과에 요구하고 싶은 곳도 바로 이 부분이다. 도시재생사업으로 형성된 지역의 탄탄한 기반 위에 ‘어떤 문화의 집을 지울 것인가’를 아직 모든 부분에서 역량이 부족한 주민에게만 맡기지 말고 주민과 함께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부천도시재생과가 소사도시재생사업의 소사본동에서 떠나면 안 되는 이유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현재 부천에서 진행되는 모든 도시재생사업에 적용되어야 한다.      이재학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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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학의 독백
    2022-07-12
  • 이재학의 독백13 - 아! 이건희 '어느 수집가의 초대 2'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에서 특히 관객들이 모이는 곳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앞이다. 나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앞에 놓여있는 긴 의자에 앉아 인왕제색도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며 인왕제색도를 보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정선-인왕제색도  사람은 갔어도 산은 변화지 않는다. 300년 세월은 인간의 시간으로 보면 매우 긴 시간이지만 자연의 시간으로 보면 단지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니 300년 전 겸재 정선이 보았던 인왕산이나 지금 내가 바라보는 인왕산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300년 전 구름이 살짝 낀 인왕산을 바라보던 겸재 정선의 눈으로 인왕산을 보니 인왕제색도를 보는 느낌이 색다르다.   어떤 마음으로 겸재 정선은 인왕산을 상상속의 인왕산이 아닌 눈으로 본 인왕산을 그릴 생각을 했을까? 그때까지 그림이라면 현실과 맞지 않는 상상속의 세상을 그리는 게 일반적인 시기에 눈으로 본 인왕산을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왕제색도를 보면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본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 도록 p101인용 1 범바위-인왕산 호랑이가 엎드린 모습의 바위 2 수성동 계곡-인왕산 빗물이 모여드는 곳 3 코끼리바위-코끼를 닮은 바위 4 치마바위-인왕산 정상의 거대한 암벽 5 한양성곽-한양 도성을 지키는 성곽 6 청풍계-푸른 단풍나무가 있던 골짜기 7 기차바위-기차처럼 이어진 바위 능선 8 부침바위-기차바위에 얹힌 둥근 바위   내가 본 자연을 그림으로 그린 겸재 정선을 자의식이 충만한 근대인의 선구로 본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겸재 정선은 어떤 생각에 이끌려 현실을 본 대로 느낀 대로 표현했을까?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새로운 시대를 여는 힘이 된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며 나는 생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재학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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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학의 독백
    2022-06-19
  • 이재학의 독백12 - 새로운 리더여 주민을 춤추게 하라
    6·1지방선거가 끝나고 대한민국의 지방을 4년 동안 책임질 새로운 리더들이 확정되었다. 주민들이 직접 뽑은 새로운 일꾼들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주민들은 새롭게 선택받은 리더들이 새로운 기운으로 지역을 일신(日新)해주기를 기대한다. 6·1지방선거기간 주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하여 입후보한 후보자들은 자신의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키거나 혁신하기 위하여 다양한 공약을 발표하였다. 후보자 신분으로 발표한 공약들은 지역에 꼭 필요한 것도 있고,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실천해야 할 것도 있고, 말 그대로 당선되기 위하여 떠벌린 공약(空約)도 있을 것이다. 이제 당선이 확정되어 4년 동안 지역의 행정을 책임진 리더가 되었으니 입후보자 신분으로 했던 말과 행동과는 달리 그 말에는 책임감이 따르고, 그 행동에는 묵직함이 있어야 한다. 그만큼 주민들이 새 리더를 바라보는 시선도 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동네의 발전과 퇴보가 우리가 선택한 리더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리더가 선거 운동 중 발표한 공약만으로는 리더의 생각을 제대로 알기 힘들다. 부천의 경우를 보더라도 새롭게 당선된 시장이 부천을 어떤 도시로 만들고 싶어 하는지 공약만 보아서는 잘 알 수 없다. 공약에 리더의 생각이 반영된 것은 맞지만 공약이 단지 나열되어 있을 뿐이고, 공약간의 연계성이 부족하여 미래의 부천을 어떤 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것인지 공약만 보고는 정확한 생각을 읽어낼 수 없어서다. 그러므로 리더로 확정된 다음에는 4년 임기동안 어떤 동네로 만들겠다는 자신이 그리는 비전(vision)을 지역주민들에게 확실하게 밝히고 주민들이 리더와 함께 할 목표를 갖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민들이 우리 동네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겠구나 하고 상상할 수 있고,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새롭게 선출된 리더는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민생문제를 물 흐르듯이 처리하는 게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주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리더라면 주민들에게 자신과 함께 동네를 더 발전되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자는 꿈과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주민을 춤추게 만드는 것도 리더의 중요한 역할중 하나이다. 주민이 6·1지방선거로 선출된 새로운 리더에게 바라는 것도 다른 게 아니다.      이재학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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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학의 독백
    2022-06-04
  • 이재학의 독백11 -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만남을 건너뛰었던 노교수님을 뵈었다. 교수님의 연세가 88세이시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 년에 한두 번 어느 해는 서 너 번 만남을 이어온 게 어느덧 삼십년이 넘었다. 이번 만남의 화제는 단연 건강이었다. 노교수님도 구순을 바라보니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안 좋아지신다 하고, 자리에 함께 한 제자들의 나이도 육십 전후니 공감하는 주제였다. 여기에 코로나를 겪으며 알게 된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우수성과 우리나라의 발전상으로 대화가 이어지니 노교수님은 당신의 노후에 우리나라가 경제 문화적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과거 어느 시점 오늘과 같은 만남 때 노교수님이 당신의 유학시절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1960년대 초반에 독일로 유학을 떠난 교수님은 몇 명 되지 않는 한국유학생들이 독일의 대학에서 가장 부러워했던 건 필리핀유학생이었다고 했다. 당시에도 같은 아시아국가 출신의 유학생이지만 일본유학생들은 한국유학생들이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잘 사는 나라의 유학생이었기에 부러워할 대상조차 되지 않았고, 그나마 만만한 게 필리핀유학생인데 그들도 우리나라보다 몇 배는 더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이었다고 했다. 한국유학생들이 모여 맥주라도 마시는 날이면 주변의 필리핀유학생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한 없이 부러워했다고 했다. 그때 한국유학생들은 “우리 살아생전에 우리나라가 필리핀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유학생들은 대한민국을 필리핀만큼 잘 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정말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하시며 노교수님은 우리나라가 지금 필리핀 보다 몇 배가 아니라 몇 십 배는 잘사는 나라가 된 게 놀라울 뿐이라며 감격해했다. 오늘 노교수님의 표정이 몇 년 전 보았던 표정과 똑 같았다. 노교수님과의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노교수님과의 대화 중에 했던 ‘감사합니다’ 란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지금 대한민국의 국민이 누리는 경제 문화적인 번영과 행복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수렁에서 벗어나려 이를 악물고 노력한 선배님들의 땀방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해방 전에 태어나 대한민국을 오늘의 반석위에 올려놓으려 고생하신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재학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 테마기획
    • 이재학의 독백
    2022-05-29
  • 이재학의 독백10 -아! 이건희 '어느 수집가의 초대1'
      나는 이건희 회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건희 회장의 이 말은 절실함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절실한 마음으로 삼성이라는 거대기업을 평생 경영했을 것이다. 세계 초일류가 되어야 한다는 기업가정신과 대한민국의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봉사정신이 이건희 회장의 평생을 억누른 가슴 속 기둥이고, 또한 자신을 스스로 옭아맨 억압이고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기업가정신은 세상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거대기업 삼성을 일군 것이고, 봉사정신은 여러 가지로 사회에 기여한 게 있을 수 있겠지만 이건희 회장 사후 대한민국에 기증하여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엄청난 양의 고품질 예술품의 수집이 아닌가 싶다. 예술품의 수집과 소장은 결국 사회의 격을 높이는 봉사의 길이다.     일요일 이외에는 여유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보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관람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느 수집가의 초대’는 티켓 현장판매를 하여 관람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관람시간이 10시부터지만 부천에서 전철을 타고 출발하여 9시 전 현장티켓 판매대에 도착했고 30번째로 줄을 서서 기다려 11시에 입장하는 티켓을 구매 관람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티켓 구매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쓰는 이유는 한마디로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려주고 싶어서다.   장욱진 - 가족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에서 이건희 회장은 문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우리 문화의 색깔이 있느냐, 우리 나름의 문화정체성이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민족을 문화민족이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만의 문화적인 정체성과 색깔이 뚜렷하기 때문에 갖는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역사의 어떤 고난 속에서도 굴복한 적이 없다. 우리나라가 반만년의 역사를 유지하고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도 결국 문화의 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문화에 대한 이런 자신감 속에서도 이건희 회장은 문화의 우열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고 있다. “문화는 좋고 나쁨으로 우열을 논할 수 없습니다. 문화란 단지 다를 뿐입니다.”   이중섭 - 판잣집 화실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의 눈빛이 빛나고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들이 진지하다. 미술의 문외한이라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화가의 작품이 있으니 관람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시간이 되면 전시장을 찾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부가서비스로 국립중앙박물관도 함께 둘러보면 좋겠다.    이재학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 예술/창작
    • 공연/전시/이벤트
    2022-05-17
  • 이재학의 독백9 - 사유(思惟)의 방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사유의 방’이 있다. 소극장규모의 공간에 덩 그라니 부처님 두 분만이 계시는 곳이다. 두 분 부처님은 누가 오는지도 가는지도 모른 채 깊은 생각에 빠져서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나 있다. 나는 오늘 한참을 두 분 부처님 주위를 맴돌다 왔다. 먼 옛날 우리가 유인원과 마찬가지였을 때 인간이라는 특이한 유인원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원인 중 하나가 생각하는,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고, 그 능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기에 오늘의 인간이 되었다고 믿는다. 사유(思惟)하는 인간의 그 특별한 능력은 인간사회를 복잡다단하게 만드는 힘이었고, 그 힘으로 인하여 인간의 정신은 한편으로 보호받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 안타까움을 보완하기 위하여 인간은 신(神)을 만들었고 끝내는 종교를 만들어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생각하는 힘을 극단으로 밀고 가기를 요구하고, 그 생각하는 힘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휴식과 위로를 위하여 사유의 방이 존재하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은 부처님이 계신다고 종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곳은 아니다. 단지 고단한 현대인, 고통 받는 현대인이 잠시 머물러 휴식을 취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곳이다. 사유의 방에 계시는 두 분 부처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중생인 우리는 가슴 속에 있는 고통, 슬픔, 위로받고 싶은 마음 등을 내려놓고 부처님처럼 편안해지면 된다. 그렇게 사유의 방에서 치유를 받고 각자 자신만의 사유의 방을 만들어 하나씩 가슴에 품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은 사유의 방에 계시는 두 분 부처님이 바라는 바이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사유의 방을 만든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런 뜻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은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소극적인 곳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품게 하는 곳이다. 나는 부처님의 사유는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를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쯤 사유의 방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재학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 테마기획
    • 이재학의 독백
    2022-05-02
  • 이재학의 독백8- 소사본동에는 ‘정지용 향수길’이 있다
      지금은 ‘부천’이 부천시를 상징하는 지명이지만, 2000년 전만 해도 부천이라는 지명보다는 ‘소사’라는 지명으로 부르는 게 더 편하던 시절이 있었다. 부천시사를 보면 1973년 부천군이 부천시로 승격될 때 새롭게 생겨나는 시(市)의 이름을 ‘소사시’로 할지 ‘부천시’로 할지 의견이 팽팽히 대립해 진통을 겪었다고 한다. 소사는 조선시대부터 사용된 지명이고, 부천은 1914년 일제에 의하여 급조된 지명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내 생각에는 ‘소사시’로 정하는 게 맞다. 하지만 당시의 분들이 심사숙고하여 부천시로 정하였으니 우리는 부천을 자랑스럽게 만들면 된다.   소사삼거리   이렇듯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부천의 본질인 소사본동에는 부천시가 동북아시아 최초의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명된 것을 기념하여 만든 ‘정지용 향수길’이 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소사본동에 조성된 정지용 향수길이 만들어진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일각에서는 소사본동에 정지용 향수길이 있는 것을 두고 정지용 시인이 소사본동에 얼마나 살았느냐, 정지용 시인이 소사본동에 대하여 쓴 시(詩)가 있느냐, 또는 소사본동에서 창작활동을 하면서 발표한 작품이 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지용 향수길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기준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정지용 시인이 과거 소사본동에 살았다는 것이고, 지금 소사본동에 정지용 시인을 생각하는, 정지용 시인을 생각하게 하는, 주민들이나 시민들의 고단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정지용 향수길이 소사본동에 있다는 것이다.     정지용 향수길은 소사삼거리 복사골문학회에서 설치한 표석과 정지용 향수길을 조성하면서 만든 정지용 시인 동상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소사본동 쪽 성주산 주변을 따라 서울신학대학교, 부원초등학교, 산새공원, 진영고등학교 입구까지 약1.5km에 걸쳐있다. 정지용 향수길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 24편이 있고, 부원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소사동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든 벽화가 있고, 부천배드민턴장 앞에는 포토 존으로 ‘얼룩배기 황소’가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외에도 정지용 향수길에는 부천배드민턴장 앞에서 시작하는 은성로의 은성(隱星)이 범박동의 목일신 동시작가를 추억하게 하고, 정지용 향수길의 성주산을 넘어 심곡본동에는 펄벅 소설가와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의 인연을 기억하게 하고, 심장병 수술로 유명한 세종병원과 서울신학대학교가 있고, 산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만든 부천에서 제일 아름다운 산새공원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들이 공부하는 진영고등학교 인성관이 있다. 정지용 향수길에는 한마디로 정지용 시인만 있는 게 아니다.     소사본동의 자랑 정지용 향수길이 소사본동을 벗어나 부천의 자랑으로, 경기도의 자랑으로, 끝내는 대한민국의 자랑으로 거듭나면 좋겠다. 그러자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소사본동 주민들의 정지용 향수길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 동네에 시인의 공원이 있다는 게 엄청난 특혜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재학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 테마기획
    • 이재학의 독백
    2022-04-23
  • 이재학의 독백7 '기다림 - 봄의 의미'
    봄은 소식을 전해주는 우편함이다.   봄에 산과 들에 피는 꽃은 엽서다. 장문의 편지다.   그러나 봄은 오랜 기다림 끝에 온다.   봄은 오랜 망설임 끝에 온다.   겨울을 이겨낸 된장 같은 봄은 희망을 노래한다.   기다림의 시간에 비해 봄은 生이 화려하지만 짧다. 봄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유이다.       이재학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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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학의 독백
    2022-04-18
  • 이재학의 독백 6 -개발제한구역16번 말뚝
    소사본동에는 개발제한구역말뚝이 네 개 있다. 마을 신문인 ‘부천 소새울에 산다’를 만들면서 동네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던 어느 날 개발제한구역말뚝이 시야에 들어왔다. 전에는 동네에서 흔히 보던 것이라는 생각에 소사본동에는 개발제한구역말뚝이 몇 개나 있는지 찾아보았다.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소사본동에서 개발제한구역말뚝을 찾았지만 네 개의 말뚝 이외에는 볼 수 없었다. 동네 주변에서 흔히 보던 개발제한구역말뚝도 귀한 것이 되었고 근대문화유산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개발제한구역말뚝을 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그린벨트란 단어다. 그린벨트는 무한히 확장되는 도시로 인하여 파괴되는 녹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설정한 녹지대이다.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되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린벨트의 지정은 도시에 푸른 녹지대를 갖게 해주었고, 도시에서 녹지대의 중요성을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순기능을 하였다. 당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린벨트를 설정한 박정희 대통령의 공이다.     소사본동 개발제한구역말뚝에는 차이가 있다. 두 개의 말뚝은 예전의 것이고, 나머지 두 개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예전의 말뚝은 시멘트로 만들어졌고 번호가 새겨져 있다.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 나는 예전의 말뚝에 관심이 많다. 예전의 말뚝 두 개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다. 하나는 16번이고, 다른 하나는 17번이다. 개발제한구역말뚝에 새겨진 16번과 17번 번호를 보고 15번 말뚝과 18번 말뚝을 찾으려 애를 써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전에는 15번 16번 17번 18번 번호순서대로 개발제한구역말뚝이 있었을 것이다. 너무 빨리 변하니 과거의 흔적조차 만나기가 쉽지 않다.     호현로 여우고개가 시작되는 지점에 가면 개발제한구역말뚝이 언제나 반긴다.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또 보태는 말이 있다. 15번 말뚝과 18번 말뚝이 살아있는지 계속 관심을 가져달라고. 나는 개발제한구역 16번 말뚝과 17번 말뚝을 소사본동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작은 시멘트말뚝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미래세대에게 전해주어야 할 우리의 과거와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재학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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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학의 독백
    2022-04-09
  • 이재학의 독백5 - 권진규, 흙으로 빚은 생명
    자소상    권진규라는 조각가의 이름은 흙으로 빚은 빨간 얼굴의 소녀로 기억된다. 전시회에서 가끔 소녀의 얼굴을 보면 권진규라는 이름이 있었다. 나에게 빨간 얼굴의 소녀는 권진규였고, 권진규는 곧 빨간 얼굴의 소녀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전시회를 한다기에 빨간 얼굴의 소녀가 보고 싶어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권진규 조각가를 만나러가는 길이었다.   지원의 얼굴 ‘노실의 천사’는 1972년 조선일보에 실린 권진규의 시 ‘예술적 산보-노실의 천사를 작업하며 읊는 봄 봄’의 한 구절이다. “진흙을 씌워서 나의 노실爐室에 화장火葬하면 그 어느 것은 회개승화悔改昇華하여 천사天使처럼 나타나는 실존實存을 나는 어루만진다.” 권진규는 작품을 통하여 존재 자체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권진규는 하루를 아침(6-8시), 오전(10-13시), 오후(15-18시), 밤(20-22시)으로 나누고 아침과 밤에는 주로 구상과 드로잉을 하고, 오전과 오후에는 작품 제작을 하는 등 수행자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권진규는 여성의 두상과 자소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말, 황소, 고양이 등의 동물상과 부조, 불상 등을 제작하였다. 나는 권진규의 부조를 볼 때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부조를 보는 듯하였다. 그것은 권진규가 고대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권진규의 여인 두상은 낯설지 않다. 흔히 주변에서 자주 본 듯한 자연스러운 한국 여인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권진규의 여인상의 모델들은 권진규의 강의를 들었던 여학생이거나 가까운 사이의 인물들이다. 여인상의 제목이 지원, 영희, 선자 등 모델의 이름인 이유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친숙한 것은 권진규의 여인상이다. 동네 누나 같고 여동생 같은 소박한 얼굴의 여인은 무언의 대화를 시도한다. 권진규의 여인은 무표정한 듯 하지만 표정이 있다.   자소상   권진규는 영원한 생명력을 작품에 부여하기 위하여 테라코타(terracotta)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나는 전시회를 보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가도 변치 않는 흙의 생명력을 통하여 작품의 영원성을 확보하려 했던 조각가 권진규의 마음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덕수궁 정동 길도 걷고 서울시립미술관도 찾아 천재 조각가의 작품들도 만나보면 좋을 듯싶다. 전시는 5월 22일까지 한다. 입장료는 없다.     이재학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엄마가 치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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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학의 독백
    2022-04-03
  • 이재학의 독백 4- 종묘宗廟
      봄이라 하기에는 좀 이르지만 이미 산에 진달래가 피고, 매화가 피니 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중에 문득 종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일요일이 되기를 기다려 종묘를 찾았다. 가만히 내가 언제 종묘에 왔었나를 손을 꼽아가며 생각해보니 오년도 더 된 것 같다.   나와 종묘의 인연이 좀 있다. 내가 처음 종묘를 찾은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종묘를 찾곤 했다. 인사동과 종로 근처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던 시절에는 심심하면 종묘를 찾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가 있어서 종묘를 찾았다. 나름 종묘를 꽤나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신문에서 보니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하나 같이 종묘정전의 건축미를 칭찬한다는 것이었다.  종묘정전의 무엇이 건축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날 이후 가끔 종묘정전의 박석에 앉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처마 밑에 앉아서 종묘정전을 바라보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신문에서 종묘를 관리하는 분이 종묘정전은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비 오는 날 박석薄石으로 빗물이 흐를 때가 종묘정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기사를 보고는 비 오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린 적도 있다. 물론 방문객이라곤 없고 빗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정전의 처마 밑에서 하염없이 박석에 빗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종묘제례악을 토끼 눈을 하고 구경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찾은 종묘를 걸으며 나와 종묘의 인연을 떠올려보았다. 종묘를 찾지 않았다면 잊고 말았을 종묘에서의 나의 행적을 하나씩 추적해보니 웃음이 난다. 다시 종묘정전에 서서 내가 있던 자리에 서보았다. 박석이 깔린 정전 안으로는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어 아쉽기도 하지만 지금 있는 자리에서 정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정전 관리인에게 “보수공사를 하네요” 하고 물으니 150여 년 만에 하는 보수공사라면서 이번 공사가 끝나며 150여 년 후에나 다시 보수공사를 할 테니 잘해야 되지 않겠냐고 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림막으로 일부는 가려지고, 일부는 기와 공사를 끝냈고, 정전의 박석은 일부가 드러내어져 쌓여있다. 박석은 왜 들어냈는지 궁금하여 물으니 작업 중 박석이 깨질까 염려되어 안전하게 들어내 놓은 것이라 한다. 전에 내가 보았던, 내가 기억하고 있던 정전은 아니고 보수공사중이라 조금은 산란하게 여겨졌지만 정전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한참을 정전을 바라보았다. 종묘정전에는 정전의 안과 밖이 구분되는 어떤 묵직함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엄숙하다, 경건하다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무게감이 정전이라는 공간 속에 있다. 그 무게감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힘이다. 자연스럽지만 힘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종묘정전은 분명 무거움으로 침묵을 강요하지만 왠지 싫지 않다. 자연스럽게 공간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면 된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재학 프로필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엄마가 치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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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캠핑
    2022-03-30
  • 이재학의 독백3- 2021부천만화대상을 받은 ‘나빌레라’를 보고-“스스로가 초라하다 생각하고 믿는 순간 진짜 초라한 사람이 되는 걸거야”
      오랜만에 부천만화박물관을 찾았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과 어울려 만화박물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2021부천만화대상을 받은 ‘나빌레라’의 기획전시실에서 발걸음이 멈추어졌다. 전에 ‘나빌레라’ 만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았지만 한 문장 때문이었다.   “채록아, 사람이 언제 초라해지는 걸까?” 나 스스로 한 없이 작아졌던 한 시절이 떠올랐다. 덕출은 그것을 ‘초라해진다’는 말로 표현했지만 나는 ‘자신감 없음’, 또는 ‘자신감 결여’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초라하다 생각하고 믿는 순간 진짜 초라한 사람이 되는 걸거야” 덕출이 채록에게 한 말이다. 나도 덕출의 말처럼 진짜 초라한 사람이 된 적이 있었다. 그 순간을 나는 마라톤을 하면서 극복했다.   ‘나빌레라’는 늙고 치매가 진행 중인 사내가 가족을 부양하느라 미루고 못했던 평생자신의 꿈인 발레를 배우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만화다. ‘나빌레라’의 HUN작가는 ‘나빌레라’에서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첫째는 꿈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둘째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셋째는 가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꿈, 삶, 가족. 사람의 일생에서 세 가지를 빼놓고 그 사람의 일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꿈, 삶, 가족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뼈대이다. ‘나빌레라’가 우리에게 진한 감동과 깊은 여운을 주는 이유이다.     덕출은 열심히 인생을 사느냐고 뒤로 미루었던 꿈을 이루고 싶어 한다. 덕출의 꿈은 발레를 하는 것이다. 덕출은 채록에게 말한다. “나 취미(발레)로 하는 거 아냐. 나는 나 나름대로 목표가 있다고 내 마음이 급해 너 조른 건 미안해. 그런데 말이야 못한다고 그거 밖에 못하냐고 무시해도 내 마음까지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말은 채록에게 한 말이 아니라 덕출이 ‘꿈을 갖고 도전하라’고 자신과 같은 세상의 동년배에게 한 말이다.   부천만화박물관을 찾아 ‘나빌레라’ 기획전도 보고 박물관도 돌아보기를 권한다. 아이들 없이 어른들끼리 와서 돌아보아도 심심하지 않다. 어른들에게 만화박물관은 이제는 까맣게 잊어 석화된 추억들이 있는 곳이다. 그 추억을 한번쯤 불러내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빌레라’기획전은 4월 24일 일요일까지 한다.    이재학 프로필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엄마가 치매야
    • 예술/창작
    • 영화/만화
    2022-03-23
  • 이재학의 독백2 -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전을 보고/이재학
      서울역사박물관의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2021/11/16-2022/3/27)’전을 보고 광화문 바로 옆에 있는 서울정부종합청사를 찾았다. 육조거리 전을 보기 전까지 나라를 운영하는 기관들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옛날에는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궁궐에서 나라 살림을 도맡아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광화문 앞의 육조거리는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정부종합청사, 과천종합청사, 세종종합청사이다.   육조거리 전을 보기 전에는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만 생각했지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나라를 운영했는가? 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전은 옛날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준다. 육조거리의 의정부는 지금의 총리실이고, 한성부는 서울시청이 아닌가? 사람이 세상을 사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나라를 어떻게 잘 운영하여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 밤낮없이 생각했을 관료(공무원)들을 생각해보았다. 마침 새로운 대통령을 뽑고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려고 한다. 육조거리(정부종합청사)에 새로운 기운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신이 나서 일해야 국민이 행복해진다. 행복한 국민이 있어야 육조거리(정부종합청사)도 있다.        이재학 프로필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황소도 말처럼 뛰나/엄마가 치매야    
    • 예술/창작
    • 공연/전시/이벤트
    2022-03-18
  • 이재학의 독백1-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전을 보고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전시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을 보았다. 예술인 패스를 활용하여 할인을 받고 들어가니 나도 예술인이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전시장에서 만난 그림들이 날씨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해설을 보니 1910년대 러시아 미술계는 상징주의, 후기인상주의, 표현주의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어설픈 초보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전시된 그림에서 특히 세잔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피카소가 자신의 그림 스승은 세잔이라고 한 말도 떠올랐다. 러시아 예술가들의 아방가르드 전시회에서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방가르드 전위예술이라 해서 특별한 게 아니고 예술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것이다. 바실리 칸디스키의 작품을 보면서는 학창시절 ‘점 선 면’이라는 칸딘스키의 책을 읽던 기억을 떠올렸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억지로 읽지 않았나 싶다. 책장 어딘가에 그 책이 있으면 다시 꺼내 읽어보고 싶다    이재학 프로필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부천작가회의회원/부천수필가협회회원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마을 신문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엄마가 치매야  
    • 예술/창작
    • 미술/음악
    2022-03-14
  • 호현로 행운의 황소동상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황소가 있다.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황소동상을 찾는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황소가 근면 성실하고 아름다워서 뉴욕의 황소동상을 찾는 것일까? 아니다. 그럼 세상 사람들이 뉴욕의 황소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증권거래소를 상징하는 황소를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 때문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망이 뉴욕의 황소를 스타로 만들었다.     호현로의 황소동상-사진/이재학   부천 소사본동 소사종합시장 호현로에도 황소가 있다. 소년이 황소를 끌고 가는 ‘소년과 황소’ 동상이다. 소사본동에 있었던 옛 기억속의 우시장(牛市場)을 추억하고 기념하는 황소동상이다. 소사삼거리 부근에 우시장이 있었다는 것은 이곳이 경제활동의 중심지이고, 돈이 모이는 곳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아마도 이곳은 활력이 넘치는 곳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활력을 추억하는 것은 단지 추억으로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원과 욕망을 이루어내고 표현하고 싶어 한다. 소사본동에 소년과 황소동상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는다. 단순히 사진만을 찍는 것이 아니다. 황소의 특정 부위를 은근히 만지고 가는 사람이 보인다고 한다. 부자가 되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황소의 기운을 받으려는 행동이다. 자연스럽게 소사본동 황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시간이 가면서 소사본동 황소의 이야기는 증폭되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소사본동에 ‘소년과 황소’의 동상이 세워졌을 때 기자는 주민들과 대화를 하면서 황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섣부른 생각이었다. 황소는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큰 눈(目)을 굴리면서 움~메 하는 우시장 황소들의 고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소사본동 황소동상이 갖고 있는 자생력이다. 소사본동 주민들의 힘이기도 하다. 소사본동의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 테마기획
    • 이재학의 독백
    2021-01-21
  •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과 부천 소새울에 산다 3년 - 이재학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이하 소통단)이 만들어진지 어느새 3년이 되었다. ‘부천 소새울에 산다(이하 소식지)’를 발행한지도 3년이 된 것이다. 일 년에 3회 발행하기로 소사도시재생과 약속하고 출발했으니 이번에 나오는 게 소식지 9호가 된다. 소통단이 소사도시재생과 마을신문을 만들기로 했을 때 난생 처음으로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밤잠을 설치며 고민을 거듭했던 게 엊그제 같다.  소새울 소식지-부천 소새울에 산다 1호-8호 처음 소식지를 기획할 때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소사도시재생에서는 마을신문을 만드는 세부적인 것은 전적으로 소통단에게 위임했다. 마을신문의 제호(題號)도, 마을신문을 신문형식으로 할지 잡지형식으로 할지 결정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마을신문에 소사도시재생 이외에 어떤 내용을 실어야 할지도 막연한 상태였다. 한마디로 소식지는 백지에서 시작했다. 소식지를 만들기 위하여 마을신문을 만드는 분을 만나 정보도 얻고, 소사도시재생에 전국에서 들어오는 도시재생신문과 소식지 등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윤곽을 잡아나갔다. 소식지의 제호도 소통단의 논의를 통해 정한 것으로 ‘부천시에 있는 oo동(洞)의 신문’이라는 의미로 부천 소새울에 산다라 했다. 이렇듯 소식지는 하나에서 열까지 소통단의 노력과 결정에 의하여 오늘의 형식과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발행된 소식지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소식지 1호는 소사본동 소재들을 소토리텔링으로 다루었고, 2호는 부천시의 통계를 인용하여 부천이 어떤 도시인지 알아보았고, 3호는 소사본동의 공원을 다루었고, 4호 정지용 시인을 다루었고, 5호는 진영고등학교의 어머니 학생을 다루었고, 6호는 소향 이상로 시인을 다루었고, 7호는 소사마을 산책으로 소사본동의 가볼만한 곳을 다루었고, 8호는 소사어울마당을 다루었다. 이밖에 이재욱 소설가의 ‘부천 지명 알아보기’를 7회에 걸쳐 연재했고, 한줄 논어, 생생병원의 칼럼과 수필, 한신시장, 소사종합시장 등을 다양하게 다루려고 노력했다. 소통단은 소식지를 발행하는 것과 동시에 마을 주민을 상대로 특강과 교육을 진행했고, 시낭송회와 소사본3동 주민센타를 통째로 빌려서 눈덩이 프로젝트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단절의 한 해가 된 2020년에도 소통단은 차질 없이 소식지를 발행하고 ‘카톡 찰지게 쓰기’ 특강과 사진교육 및 동영상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재학 대표  소통단은 소식지가 훗날 소새울의 중요한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기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누군가 소식지를 보면서 소사본동의 생생한 현장을 떠올려주기를 바란다.  소통단은 소식지를 만들면서 소사본동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고 정이 넘치는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소식지에 글을 기고해주신 분들이 모두 소사본동에 사시는 분이고,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위한 일이니 기꺼이 재능기부를 하겠다며 동참해주셨다. 소통단은 이런 마음이 바로 정(情)이고 애향심이라 믿는다. 이 자리를 빌어서 소식지에 도움을 주신 필진 여러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소사도시재생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소식지는 5년의 소사도시재생과 함께 소명을 다하였다. 그동안 소통단을 지원해주신 도시재생과와 소사도시재생센터, 소식지를 한 부도 빠짐없이 모으고 애독자가 되었다며 격려와 응원을 해주신 소사본동 주민 여러분 모두가 고마울 뿐이다. 특히 3년 동안 소통단과 소식지를 담당한 정다운 주무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새해(2021년)에도 부천 소새울에 산다는 주민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이다.            
    • 테마기획
    • 이재학의 독백
    2020-12-13
  • 정지용은 소사삼거리에서 무엇을 했나-
    부천이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가 되면서 부천의 작가들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부천이 고향이거나, 부천에 잠시 머물렀거나 부천과 인연이 있는 작가들을 찾아내는 일이 우선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이렇게 알아낸 작가들의 삶과 문학을 부천시민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은 행정구역개편으로 없어졌지만 소사구에는 범박동에는 목일신 동요작가가 있고, 심곡본동에는 펄벅 소설가가 있고, 소사본동에는 소사삼거리에서 생활했던 정지용 시인이 있다. 이들 작가는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으로 범박동의 목일신은 동요 ‘자전거’등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무수한 동요로 국민동요작가로 기억되고 있으며, 심곡본동의 펄벅은 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대가일 뿐 아니라 심곡본동에 1960년대 ‘소사희망원’을 설립하여 혼혈아동을 돌보아주는 사회사업을 하였다.    성주산 가족 산책로 - 정지용 향수 길    소사삼거리의 정지용 시인은 소사본동의 대표적인 문학적 자산으로 2019년 가을에는 서울신학대학에서 시작하여 산새공원, 진영고등학교 입구까지의 길에 ‘정지용 향수 길’이라는 정지용 문학공원이 만들어진다. 정지용 문학공원이 만들어지는 것을 계기로 부천 소새울에 산다는 정지용의 부천에서의 삶, 즉 부천 소사본동 소사삼거리에서의 정지용의 행적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정지용의 소사삼거리에서의 삶을 알아보는 것은 단지 이름뿐인 소사본동의 정지용이 아닌 소사본동의 주민들이 정지용의 삶을 알고 주민들의 삶속에 녹아든 정지용으로 새롭게 기억하게 만드는 일이다. 소사리 소사삼거리로 이사 온 정지용은 아마도 소사천의 둑 방 길을 시나브로 많이 걷지 않았을까. 소사본동 한 가운데를 흐르는 소사천을 따라 걸으며 정지용은 고향도 생각하고, 나라 걱정도 하고, 자신의 미래도 염려하며 사색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지금은 정지용이 걸었던, 소사본동의 한 가운데를 흘러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소사천이 복개되어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정지용은 천주교 신자라 소사삼거리로 이사 온 다음에는 아들과 함께 소사역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 답동성당으로 미사를 보러 다녔다. 그때까지 부천에는 성당이 없었다.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인천 답동성당으로 미사를 보러 다니던 정지용은 우연히 소사삼거리 집 근처에 소사공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근처에 소사공소를 두고 멀리 인천으로 미사를 보러 다니던 정지용은 소사공소를 알게 되고는 소사공소의 가장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소사공소는 소사삼거리에 살고 있는 전마리아 할머니의 집 단칸방에 차린 것이었다. 전마리아 할머니는 매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여우고개 넘어 소래면 대야리의 대골공소를 오랫동안 다녔다. 대골공소는 천주교의 박해를 피해 부천의 함박리와 소래의 대야리로 숨어든 신자들이 만든 것으로 이미 1880년대부터 운영되고 있었다. 부천에는 성당은 물론 공소마저 없어 여우고개 넘어 대야리의 대골공소로 미사를 드리려 다니던 전마리아 할머니는 소사삼거리에서 대야리까지 십여리 길을 걸어 다니는 게 힘에 부쳐 지인의 협조를 얻어 자신의 집에 공소를 마련했다. 이것이 부천 천주교의 씨앗이 되는 소사공소의 시작이다.  정지용을 비롯한 소사공소 사람들의 신앙에 대해 열의는 대단했다. 소사공소가 잘 운영되자 신자들은 소사공소에 신부님을 모셨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소사공소의 신도들이 모여 공소에 신부님을 모시는 방안을 의논하는데 신부님이 오시면 식사가 제일 문제라고 하자 정지용이 신부님의 식사는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신부님은 공소에 기거하고 식사는 정지용의 집에서 하기로 하고 신부님을 모시기로 한 그날로 정지용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노기남 주교를 찾아가 소사공소에 신부님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노기남 주교는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정지용이 계속 찾아와 간청을 하자 임세빈 신부를 소사공소에 파견하였다. 임세빈 신부가 소사공소에서 첫 미사를 드린 게 1945년 12월 24일 성탄전야였다.   정지용 시와 사진 - 소새울 마을 벽화   소사공소에 신부님이 오시자 소사공소의 신자들은 더 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성당을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조금한 단칸방의 공소에 신부님이 계신 것도 과분한 일인데 성당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 허무맹랑한 일처럼 보였으나 소사공소 신자들은 성당을 마련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성당을 마련하는 일에도 역시 정지용이 발 벗고 나섰다. 정지용은 노기남 주교를 찾아가 성당을 마련하고 싶다는 소사공소의 뜻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임세빈 신부와 정지용은 인천 답동성당 임종국 신부와 함께 적산관리소를 거의 매일 방문하다시피 했다. 소사삼거리 원미산 밑에 성당 자리로 보아둔 일본인이 소유했던 소림별장이 적산가옥이라 사용허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적산가옥 소림별장의 사용허가를 받은 소사공소 신자들은 1946년 4월 5일 소림별장에서 첫 미사를 드렸다. 소림별장에서 시작한 소사성당은 부천의 첫 번째 성당이고, 부천 성당역사의 시작이다. 소사성당의 초대 신부는 임세빈 신부였다. 소사성당이 첫 미사를 드린 그 해(1946년) 정지용은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이 되어 소사삼거리를 떠났다. 정지용은 소사삼거리에 사는 3년 동안 작품 활동은 하지 않아 절필을 한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신앙생활에 더욱 매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사공소에 신부님을 모셔오고, 소사성당을 세우는데 있어서 정지용의 역할이 지대했다. 부천의 천주교를 이야기할 때 정지용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으면 섭섭한 이유이다. 현재 소명사거리에 있는 소사성당(1960년 10월 20일)은 소림별장 자리에서 옮겨온 것으로 지금까지 부천 천주교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다음은 정지용의 간절한 신앙심을 보여주는 시(詩)다.   또 하나 다른 태양   온 고을이 받들 만한장미 한 가지가 솟아난다 하기로그래도 나는 고하 아니하련다. 나는 나의 나이와 별과 바람에도 피로웁다. 이제 태양을 금시 잃어버린다 하기로그래도 그리 놀라울 리 없다. 실상 나는 또 하나 다른 태양으로 살았다. 사랑을 위하여 입맛도 잃는다. 외로운 사슴처럼 벙어리 되어 산길에 설지라도 - 정지용 시중  
    • 테마기획
    • 이재학의 독백
    2019-03-28
  • 천년은행나무-너무 오래 살았나 - 소사본동 서울신학대학으로 올라가는 길에 천 년이 되었다는 늙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소사본동 서울신학대학으로 올라가는 길에 천 년이 되었다는 늙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늙은 은행나무에 잎이 파랗게 달려있을 때 보면 그나마 아쉬움이 덜하지만 가을 지나 잎을 모두 떨군 겨울에 보면 가슴 한 쪽을 도려낸 듯 마음이 짠해진다. 사람들의 욕심에 천 년의 세월동안 길게 뻗어나갔을 은행나무 가지들이 모두 잘린 채 겨우 몸통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년은행나무는 사람들에게 팔 다리가 잘린 늙은 몸통으로 자신이 살아온 천 년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이 은행나무는 천 년의 세월을 인정받아 1982년 경기도의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마을에서는 고사를 지내며 은행나무가 갖고 있는 천년의 경험과 지혜를 우리 주민들에게 베풀어주기를 바란다. 천 년의 풍파 세월을 견딘 은행나무에게 이야기가 있으니 은행나무 뿌리가 심하게 노출되어 마을 사람들이 흙으로 덮어주자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은행나무 뿌리가 지상으로 노출되면 생육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주민들이 흙으로 덮어주었는데 왜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까? 은행나무가 주민들의 정성어린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까? 아니라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뿌리가 지상으로 노출되는 것도 자연의 순리이니 그 이치를 따라 사는 게 행복이라는 무언의 암시는 아닐까? 은행나무가 견디어 온 천 년의 세월은 우리가 고려, 조선에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변신을 거듭해온 무궁한 시간이었다. 은행나무는 2억 년 전 지구상에 나타난 식물로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은행나무는 싹이 트고 20년 이상 지나야 열매를 맺으므로 손주를 볼 나이에 열매를 얻을 수 있다 하여 공손수(公孫樹)라 한다. 은행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벌레가 없는데 방충작용을 하는 부틸산이 있기 때문이다. 잎에서 추출하는 플라보노이드게는 혈액순환을 돕는다.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인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가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같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전국적으로 19그루가 있고 옛날 중국에서 씨를 가지고 와 절 근처에 심으면서 우리나라에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나무는 과학의 발전으로 사랑도 못하게 되었다. 아니다. 과학을 탓할 게 아니다. 사람들의 편의주의를 탓할 일이다. 가을이면 구린내를 풍기는 은행이 열리는 암나무가 적폐(?)의 대상이 된 지 오래되었다. 유전자를 이용해 암수를 구별할 수 있게 되면서 암나무가 벼락을 맞았다. 계속 가로수로 심데 앞으로 암나무는 빼고 심겠다는 게 사람들의 생각이다. 기존의 암나무도 순차적으로 뽑겠다고 하니 사람들의 인권은 은행나무의 사랑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천년은행나무에게 앞으로의 천 년은 어떨까?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서 앞으로의 천년은행나무의 삶이 지금보다 좀 더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자연은 대립과 갈등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장자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석이라는 목수가 사당의 커다란 상수리나무를 보고 그냥 지나치자 제자가 보고는 물었다.“선생님, 제가 보기에 재목감으로 최고인데요.”“됐네, 하찮고 쓸모없는 나무야.” 목수가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낮에 보았던 사당의 상수리나무가 꿈에 나타났다. “그대는 나를 무엇에다 비교하는가, 저 좋다는 과일나무들에 비기는가? 그런 나무들은 하늘이 준 나이를 다 못 살고 도중에 죽는 법이지.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쓸모없기를 바랐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완전히 그리 되었으니, 그것이 나의 큰 쓸모일세. 내가 쓸모가 있었더라면, 이처럼 클 수 있었겠는가? 또 그대나 나나 한낱 하찮은 사물에 지나지 않은데 어찌 그대는 상대방만을 하찮다고 한단 말인가? 그대처럼 죽을 날이 가까운 쓸모없는 인간이 어찌 쓸모없는 나무 운운한단 말인가?”     천년은행나무는 어떤 마음으로 긴 천 년의 세월을 살아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천년은행나무 주변을 둘러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두 개 있다. 하나는 세종병원이고, 또 하나는 서울신학대학교이다. 세종병원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심장 전문병원으로 부천의 자랑이다. 심장병 하면 세종병원이라고 국민들에게 인식되어 있을 정도로 특화된 병원이다.1911년 성서학원으로 개교한 서울신학대학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학교이다. 성결교는 중생하게 하는 그리스도, 성결하게 하는 그리스도, 치료하게 하는 그리스도, 재림하게 하는 그리스도로 복음주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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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학의 독백
    2019-02-13
  • 전문가가 필요한 도시재생, (부천시)도시재생과-전문가를 만들고 싶다면 어느 것은 된장처럼 오래 푹 묵혀야 할 필요가 있다.
    도시재생 전문가를 단시일 내에 양성하는 최선의 방법은 하나의 사업을 계획단계에서부터 사업 완료까지, 그리고 이후의 관리까지 경험하게 하여 도시재생사업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도시재생사업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오래도록 한 자리를 지키고 업무를 보아야 한다.
    • 테마기획
    • 이재학의 독백
    2018-12-30
  • 정지용-부천에서의 3년은 너무 짧았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히리야' 대한민국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노래 ‘향수’(鄕愁)의 첫 구절이다. 향수는 월북 작가 정지용(1902-1950)을 작사가이자 시인 정지용으로 세상에 알린 노래이다. 그리고 향수는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함께 불러 대중가요 가수와 도도한 성악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킨 노래이다.    소사 삼거리 정지용 시인이 살턴 곳 그런 정지용이 부천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정지용 시인의 작가 연보를 보면 “1944년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로 이사했다”라고 적혀있다. 그는 일제말기, 2차 세계대전말기 소개(疏開)령을 받고 소사리로 이사했다. 그는 소사리에 3년을 사는 동안 적산가옥인 소림별장(현 성가요양원 성당 자리)를 불하받아 소사성당을 개설하는 등 부천 기독교 발전에 기여하였다.    정지용 시인의 소사리 활동이 알려진 것은 부천‘복사골문학회’의 구자룡이 ‘소사성당 반세기’를 발간하기 위하여 자료를 정리하던 중 시인의 활동기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구자룡은 정지용 시인의 장남을 찾아 기록에 나온 주소지가 시인이 살던 곳이 맞는지 확인하였고 그 자리에 1993년 ‘복사골문학회’ 이름으로 정지용 시인이 살던 집터라는 표지석을 설치하였다. 구자룡의 노력으로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에서 정지용 시인이 활동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정지용 시인은 충북 옥천에서 출생하였고 휘문고등학교와 일본 동지사 대학을 졸업하였다. 1922년 첫 시 ‘풍랑몽’을 썼고, 1926 [학조]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를 비롯한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1939년 [문장]지의 추천위원이 되어 유명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을 등단시켰다. 부천시에서는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변영로, 정지용, 목일신 등 부천이 고향이거나 부천에서 활동한 작가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특히 정지용시인은 소사본동에 정지용의 거리가 조성되어 소사본동 주민들과의 깊은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 테마기획
    • 이재학의 독백
    201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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