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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회 펄벅문학학교
     펄벅문학학교 제 5 회 문학토크 “펄벅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2부-사회사업가로서의 펄벅”  ~‘펄벅의 숨결 그대로’함께하는 돌봄마을, 공유하는 행복마을 ~ 이렇게 심곡본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의 옛 이름은 ‘깊은구지’. 성주산 자락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해 있죠. 마을의 끝 숲속에는 펄벅 기념관이 있습니다. 한국 전쟁의 아픈 기억이며 혼혈아들의 요람이었던 곳이고, 펄벅 여사의 박애정신과 문학을 기리는 숭고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역의 자산을 활용한 경쟁력을 기르고자 펄벅 마을의 문화와 역사와 문학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행사는 심곡본동의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의 일환입니다. 사회: 신혜주 / 인사: 박희주  소설가 / 오카리나연주: 이현주 / 시낭송: 김은혜 / 초대토크: 노윤건 심곡본동도시재생뉴딜사업 주무관 / 문학강연: 이종헌 작가 / 영상촬영,편집:김용진 기자 / 장소: 스펙트럼 학원 (부천시 성주로 238/2층) / 날짜: 2020년 10월 31일 토요일 11시 / 주최: 깊은골문화사업단 / 지원: 심곡본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 문의: 032) 664-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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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펄벅문학학교
    2020-12-15
  • 제4회 펄벅문학학교
    펼벅문학학교 제 4 회 문학토크 “펄벅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펄벅의 숨결 그대로’함께하는 돌봄마을, 공유하는 행복마을 ~ 이렇게 심곡본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의 옛 이름은 ‘깊은구지’. 성주산 자락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해 있죠. 마을의 끝 숲속에는 펄벅 기념관이 있습니다. 한국 전쟁의 아픈 기억이며 혼혈아들의 요람이었던 곳이고, 펄벅 여사의 박애정신과 문학을 기리는 숭고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역의 자산을 활용한 경쟁력을 기르고자 펄벅 마을의 문화와 역사와 문학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행사는 심곡본동의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의 일환입니다. 사회 : 신혜주 / 문학강연: 이종헌 작가 / 초대토크: 이세규 부모와함께 문화봉사단 대표 / 영상촬영,편집:김용진 기자 / 장소: 스펙트럼 학원 (부천시 성주로 238/2층) / 날짜: 2020년 9월 19일 토요일 11시 / 주최: 깊은골문화사업단 / 지원: 심곡본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 문의: 032) 664-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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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펄벅문학학교
    2020-12-15
  • 펄 벅의 『대지』, 그 광활한 파노라마가 주는 메시지/박희주 (소설가)
      펄 벅의 대지는 제1부 대지, 제2부 아들들, 제3부 분열된 일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고자 한 의도는 바로 1부에 있을 것입니다. 2부와 3부는 제가 보기엔 사설입니다. 즉 1부 대지만으로도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왕룽이라는 농부입니다. 이 작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왕룽의 결혼식 날 아침이었다. 침대에 둘러친 휘장의 어둠속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왜 이날 새벽이 다른 날과 별다르게 느껴지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집안은 늙은 아버지가 맥없이 콜록거리는 기침소리뿐 아주 고요했다.   왕룽은 늙은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그 지역의 대지주인 황 대인의 종노릇을 하는 여자와 결혼을 합니다. 아버지의 며느리에 대한 주문은 ‘너무 젊어서도 안 되고, 무엇보다 예뻐서도 안 되는’ 여자입니다. 그녀가 바로 오란입니다. 작품 속에서 오란에 대한 인물묘사는 ‘얼굴이 넓적하고 키가 훤칠한’이란 말이 전부입니다. 거기에 그녀의 목소리는 ‘과히 크지도 작지도 않고, 그렇다고 성깔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듣기에 아주 좋은 목소리의 소유자라고 돼있습니다. 왕룽은 그러한 오란에 만족합니다. 그들은 부부가 함께 열심히 일합니다. 연이은 풍년 덕에 해가 갈수록 왕룽의 자식은 늘어가고, 땅도 늘어가지요. 그 땅은 바로 황 대인의 것으로 아주 기름진 논이었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선 땅만 한 게 없고 모든 생명이 대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진 왕룽입니다. 이런 왕룽의 행복을 시기한 탓인지 하늘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남은 곡식을 다 먹고 밭을 가는 황소까지 잡아먹어도 비는 오지 않습니다. 어느덧 아이는 셋이 되었습니다. 그 중 딸아이는 정신지체인 백치이고. 그 와중에도 오란은 혼자서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왕룽은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는 뜻밖에도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이 장면이 대지의 가장 압권일 수도 있습니다.   왕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은 아이를 다른 방으로 안고 가서 그것을 방바닥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방안을 뒤져 다 해진 포대기를 찾아 죽은 아이를 쌌다. 죽은 아이의 머리는 이리저리 달랑거렸고, 죽은 아이의 목 근처에서 두 개의 거무스름한 멍을 발견했다.   오란이 죽인 겁니다. 이제 막 낳은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모정, 먹을 게 하나도 없고 젖도 나오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 오란은 그 같은 일을 저질렀던 겁니다. 남은 아이들도 뼈만 남은 상태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바람에 먼지만 일렁이는 땅뿐. 그 땅을 팔라고 성안에서 사람이 옵니다. 왕룽의 비참한 상태를 알아챈 그들은 거저먹으려 합니다. 왕룽은 말합니다.   절대로 땅을 팔지 않겠소. 한 줌 한 줌 밭의 흙을 파다가 우리 자식들에게 먹이겠소. 그러다가 애들이 굶어죽으면 그 땅에 아이들을 묻겠소. 나도 내 아내도 우리 아버지도 우리에게 생명을 준 그 땅에 묻히겠소.   땅은 왕룽에게 그러한 존재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왕룽의 가족은 굶주림을 피해 남쪽 지방으로 피난하게 됩니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남쪽 지방에서 왕룽의 가족은 빈민굴에서 그 도시의 최하층민으로서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인력거꾼으로 돈을 버는 왕룽과 동냥으로 살림을 꾸리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늙은 아버지의 삶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만 간절합니다. 거기에는 자신의 대지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땅이 그곳에 있는 한 기필코 돌아가리라는 게 왕룽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런 기가 막힌 처지에서 왕룽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전쟁이 나면서 비밀스럽게 닫혀있던 부잣집의 빗장이 풀리고 성난 빈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부잣집에 쳐들어가서 돈 될 만한 것들을 이것저것 다 가져오게 되는데 여기서 소 한 마리 제 손으로 죽이지 못했던 왕룽은 부잣집 뚱보 주인을 협박하여 금화를 얻게 되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자금을 마련하고, 특별히 오란은 황대인의 하녀로 있으면서 부자들의 돈 숨기는 습성을 알았기에 값비싼 보석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갖은 고생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왕룽은 금화와 오란의 보석으로 황 대인의 땅을 사고, 크게 농사를 지어 점점 더 대지주가 되어갑니다. 여기까지 보여준 것은  왕룽의 땅을 향한 집착입니다. 그 이후 대지주가 된 왕룽의 정신적 피폐와 고뇌를 펄 벅은 가감 없이 보여주게 됩니다. 왕룽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백치인 딸도 편안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하지만 자신과 힘든 나날을 함께한 조강지처 오란을 두고 부자 행세의 하나로 리엔잉이라는 둘째 아내를 들여오게 됩니다. 그런 데 반해 오란은 남편의 구박과 무관심 속에서 살림만 할 뿐입니다. 세월은 빠르게 흐릅니다. 오로지 일과 아이를 낳는 것과 왕룽이 대지주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오란은 병이 깊어가다가 큰아들의 결혼식을 지켜본 후 고단했던 생을 마감합니다. 그녀는 죽기 전 난생 처음으로 속마음을 내비칩니다.   난 못났다. 하지만 아들을 낳았어. 난 종이었지만 내겐 어엿한 자식들이 여럿 있어. 저 계집(리앤잉)이 어떻게 나만큼 남편의 식사를 돌봐주고 시중을 들 수 있단 말이야? 어림없지. 예쁘기만 해가지고선 아들을 못 낳아!   오란이 죽은 후 늙은 아버지도 죽습니다. 왕룽은 묏자리로서 대추나무가 서있는 둔덕 아래 양지 바른 곳을 택합니다. 지대가 높아서 밀밭으로 썩 좋은 곳이었지만 왕룽은 그 땅을 아낌없이 묏자리로 쓰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가문이 자기네 소유의 땅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생에서 유일하게 골치를 썩이게 했던 삼촌도 죽어 그곳에 묻혔습니다. 아버지나 자신이 묻힐 곳과는 달랐고 좋은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살았거나 죽었거나 그들은 자기네 땅에서 안식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세월이 또 흐릅니다. 신은 왕룽의 말년을 편하기 해 주기 위해 친절을 베푸는 것만 같습니다. 그 예날 그토록 어렵기만 했던 성안 황 대인의 집을 사 모든 가족이 이사를 하게 된 겁니다. 농사꾼 왕 서방이라 부르던 사람들이 이젠 왕 대인이나 왕 부자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안에 살면서도 날만 새면 성문을 걸어 나와 농토로 돌아갑니다. 매캐한 흙냄새를 맡으며 자신의 밭에 와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왕룽은 아쉬울 것 없는 생활을 즐깁니다. 첩인 리앤잉의 수발을 들던 예쁜 리화마저 품게 되었지요. 리화는 백치 딸에게도 친절하기만 합니다. 왕룽은 그가 죽고 나면 백치 딸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그 백치가 살거나 굶어죽거나 하는 것에 관심을 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약방에서 하얀 독약 한 봉지를 사다가 보관해 두었을까요. 자신이 죽음을 맞게 되면  그 독약을 백치 딸에게 주리라 생각했는데 이제 그러한 걱정을 리화 때문에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왕룽에겐 해가 갈수록 새봄이 더욱더 몽롱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었습니다. 그는 농토를 떠나 성안의 큰 집을 쓰는 부자가 되었건만 그의 뿌리는 역시 대지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여러 달 동안 대지에 대해 잊고 지내다가도 봄이 오면 저절로 발길은 밭으로 옮겨 가곤 했습니다. 급기야 남은여생을 보내기 위해 리화와 백치 딸과 몇 명의 종을 거느리고 옛집인 토막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먹을 것, 마실 것 그리고 땅에 대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땅에 대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추수가 얼마나 될 것이며 무슨 씨를 뿌려야 할 것인가 하는 것들은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땅 자체만을 생각합니다. 그는 이따금 허리를 굽혀 흙을 긁어모아 쥐어 봅니다. 그렇게 한 줌의 흙을 쥐고 있으면 손가락 사이에 생명이 꿈틀거리는 것만 같습니다. 흙은 묵묵히 그가 흙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지의 마지막입니다. 펄벅 기념관과 펄벅 여사의 동상  그의 아들들은 정성을 다해 아버지를 섬겼다. 그들은 매일 아니면 하루걸러 찾아왔고, 노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장만해 왔다. 그러나 왕룽은 그 옛날 아버지가 옥수수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 먹는 것을 좋아했듯 그 역시 그것을 좋아했다. 아들들이 매일 오지 않으면 그는 다소 불평을 하곤 했다. 그는 항상 곁에 있는 리화에게 물었다. “그 아이들은 뭐가 그리 바쁠까?” “다들 한창 일하실 나이잖아요. 큰 서방님은 성안의 부자 양반들한테 뽑혀 벼슬 한 자리 한다나 봐요. 그리고 첩을 들이셨대요. 작은 서방님은 혼자서 큰 곡물상회를 냈대요.” 왕룽은 리화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나 그 말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땅을 내다보는 순간 모든 걸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어느 날 비록 잠시 동안이었으나 그는 의식을 되찾았다. 그날 두 아들이 찾아와서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뒤 나가서 집 주위의 밭을 거닐었다. 왕룽은 아들들 모르게 뒤를 밟았다. 그들이 걸음을 멈추자 그는 천천히 다가섰다. 형제는 부드러운 땅을 밟는 아버지의 발소리를 듣지 못했고, 지팡이 소리마저 듣지 못했다. 왕룽은 둘째아들이 점잔을 빼며 말하는 것을 들었다. “형님, 이 밭과 저 밭을 팝시다. 그리고 그 돈을 둘로 나눕시다. 그리고 형님의 몫은 제가 비싼 이자로 쓰겠습니다. 철도가 개통되었으니까요. 이제 해안지방으로 쌀을 보낼 수 있다고요. 그리고 제가…….” 왕룽의 귀를 울린 것은 “땅을 팝시다”란 말뿐이었다. 그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로 부르르 떨며 억양이 고르지 못한 목소리로 두서없이 소리를 질렀다. “뭐가 어째? 이 게으른 놈아, 밭을 판다고!” 왕룽은 목이 메어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지려 했으므로 아들 형제가 양쪽에서 그를 부축했다. 왕룽이 통곡하기 시작하자 형제는 아버지를 위로했다. 서로 번갈아 가며 위로의 말을 늘어놓았다. “아닙니다. 우린 절대로 땅을 팔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고말고요.” “집안이 망하는 거야……. 땅을 팔기 시작하면 말이다…….” 왕룽의 말은 중간마다 끊어졌다. “우리는 땅에서 나왔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너희들도 땅만 가지고 있으면 살 수 있어. 아무도 땅을 떼어가지는 못하니까.” 왕룽은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이 마르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 희뿌연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한 줌의 흙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만약 땅을 팔게 된다면 그 길로 끝장이야.” 아들형제는 양쪽에서 팔을 하나씩 잡아 부축하고 있었고, 왕룽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흙을 그대로 움켜쥐고 있었다. 형제는 몇 번이고 번갈아가며 위로의 말을 되풀이했다.    “마음 놓으세요, 아버지. 땅은 절대로 팔지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1부 대지는 막을 내리고 2부 '아들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왕룽은 죽음을 기다리며 그의 땅 한가운데에 있는 허름하고 낡은 토막집 방에 누워있었다. 그가 누워 있는 침대는 젊은 시절부터 사용한 침대이자 결혼 첫날밤을 지냈던 침대이기도 했다. 그 방은 지금 아들과 손자들이 살고 있는 성안의 큰집에 얼마든지 있는 부엌 중의 하나만도 못할 만큼 작은 방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땅 한가운데에서, 조상 때부터 물려 내려와 살아온 이 오래된 집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었다.   1부의 시작도 토막집 침대였고 2부의 시작도 그곳입니다. 왕룽은 마침내 리화의 위로를 받으며 죽습니다. 이 거대하고도 광활한 대지의 메시지는 한가지로 집약됩니다. 그것은 왕룽의 입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땅에서 나왔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대지는 영어로 큰 땅이 아닌 좋은 땅, the Good Earth인 것입니다.         박희주: 시인, 소설가.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 버린다」「네페르타리」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천문인협회 회장 역임.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편집위원, 한국문인협회 ‘문협70년사’편찬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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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펄벅문학학교
    2020-12-14
  • 제3회 펄벅문학학교
      펼벅문학학교 제3회 문학토크 “대지, 그 광활한 파노라마가 주는 메세지”  ~‘펄벅의 숨결 그대로’함께하는 돌봄마을, 공유하는 행복마을 ~ 이렇게 심곡본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의 옛 이름은 ‘깊은구지’. 성주산 자락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해 있죠. 마을의 끝 숲속에는 펄벅 기념관이 있습니다. 한국 전쟁의 아픈 기억이며 혼혈아들의 요람이었던 곳이고, 펄벅 여사의 박애정신과 문학을 기리는 숭고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역의 자산을 활용한 경쟁력을 기르고자 펄벅 마을의 문화와 역사와 문학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행사는 심곡본동의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의 일환입니다. 문학 강연: 박희주  소설가 / 초대토크: 조길원 남부천 신협 이사장, 최의열 부천문화원 사무국장 / 영상촬영,편집:김용진 기자 / 장소: 스펙트럼 학원 (부천시 성주로 238/2층)/날짜: 2020년 월 22일 토요일 12시 /주최: 깊은골문화사업단/지원: 심곡본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 문의: 032) 664-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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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펄벅문학학교
    2020-12-03
  • 제2회 펄벅문학학교
         펼벅문학학교 제2회 문학토크 “대지, 그 광활한 파노라마가 주는 메세지”  ~‘펄벅의 숨결 그대로’함께하는 돌봄마을, 공유하는 행복마을 ~ 이렇게 심곡본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의 옛 이름은 ‘깊은구지’. 성주산 자락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해 있죠. 마을의 끝 숲속에는 펄벅 기념관이 있습니다. 한국 전쟁의 아픈 기억이며 혼혈아들의 요람이었던 곳이고, 펄벅 여사의 박애정신과 문학을 기리는 숭고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역의 자산을 활용한 경쟁력을 기르고자 펄벅 마을의 문화와 역사와 문학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행사는 심곡본동의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의 일환입니다. 문학 강연: 박희주 소설가 / 영상촬영, 편집: 김용진 기자 / 장소: 스펙트럼 학원 (부천시 성주로 238 2층) / 날짜: 2020년 9월 22일 토요일 10시 / 주최: 깊은골문화사업단 / 지원: 심곡본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 문의: 032) 664-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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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펄벅문학학교
    2020-12-03
  • 제1회 펄벅문학학교
       펼벅문학학교 제1회 문학토크“펄벅이 꿈꾸던 세상은 어떤 것 인가” ~‘펄벅의 숨결 그대로’함께하는 돌봄마을, 공유하는 행복마을 ~ 이렇게 심곡본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의 옛 이름은 ‘깊은구지’. 성주산 자락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해 있죠. 마을의 끝 숲속에는 펄벅 기념관이 있습니다. 한국 전쟁의 아픈 기억이며 혼혈아들의 요람이었던 곳이고, 펄벅 여사의 박애정신과 문학을 기리는 숭고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역의 자산을 활용한 경쟁력을 기르고자 펄벅 마을의 문화와 역사와 문학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행사는 심곡본동의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의 일환입니다. 사회: 김종일기자/ 포크송 공연: 윤명렬 사진작가 / 영상촬영,편집:김용진 기자 / 문학강연: 박희주 소설가/ 장소: 스펙트럼 학원 (부천시 성주로 238/2층)/날짜: 2020년 7월 24일 금요일 6시 30분/주최: 깊은골문화사업단/지원: 심곡본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문의: 032) 664-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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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펄벅문학학교
    2020-12-01
  • 펄 벅의 도시 부천, 향후 50년의 과제는?
     부천시 심곡동에 위치한 《깊은골문화사업단》의 <2020 펄벅문학학교>가 지난 10월 31일(토) 5회 강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소설가 박희주(전 부천문인협회장), 화가 최의열(부천문화원 사무국장), 성주로상가협의회 대표 조길원(남부천 신협이사장), 언론인 신성복(부천 시티저널 대표기자), 펄벅마을 문화지킴이 이세규(부모와 함께 학생문화 봉사단 대표), 시인 이종헌(콩나물신문 편집위원장), 등이 강사로 참여한 이번 <2020 펄벅 문학학교>는 지난 50년 동안 박애주의의 상징으로서 그녀의 유산을 정리해보고, 앞으로 50년의 과제를 탐색해 보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펄 벅이 부천시 심곡동에 세운 <소사희망원>은 1976년 문을 닫을 때까지 약 9년 8개월 동안 1,500여 명의 혼혈 아동들에게 보금자리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어머니에게도 직업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미군 주둔으로 인해 발생한 아메라시안 문제 해결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이에 부천시는 지난 2006년, <소사희망원>이 있던 자리에 <펄벅기념관>을 세워 세계적인 작가로서, 또 박애주의자로서 그녀의 삶과 문학을 기려오고 있다.  이번 <2020 펄벅문학학교> 마지막 강연을 맡은 이종헌 시인은 “펄 벅이 박애주의를 몸소 실천한 사회운동가인 것은 맞지만, 그녀를 지나치게 자애로운 어머니의 상징으로만 바라보려는 일부의 시각은 위험하다.”라고 경고했다. 펄 벅은 무엇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한 페미니스트였고, 또한 유색인, 혼혈아, 장애인, 소수민족 등의 인권을 위해 싸운 인권운동가였다.  부천시가 동아시아 여러 도시 중 최초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에 선정된 것도, 또 최근에 추진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문학상도 모두 직간접적으로 펄 벅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펄 벅은 단순한 부천의 과거가 아니라 부천의 현재이면서 미래이기도 하다. 지난 50년 펄 벅과의 인연이 <소사희망원>을 매개로 이루어졌다면, 앞으로 50년은 펄 벅이 남긴 정신적 유산이 매개가 되어야 한다.   이종헌 시인     “펄 벅이 우리에게 남긴 정신적 유산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펄 벅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2020 펄벅문학학교>는 의미 있는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함께하는 축제와 펄벅 기념관을 중심으로 펄 벅을 기리는 것은 외적인 행사로서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사와 더불어 우리 생활 속에서 펄 벅이 남긴 정신, 즉 인권운동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그녀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치인들은 여성, 노약자, 장애인 등의 사회적 지위와 평등을 실현할 법률과 제도를 만들고, 또 행정가들은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학교에서 그런 펄 벅의 정신이 교육되도록 교육과정을 바꾸어 나간다면, 앞으로 50년, 우리 부천시가 세계적인 인권 도시, 성평등 도시, 또 박애 도시로 성장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날 마지막 강연에서 이종헌 시인은 펄 벅이 남긴 정신적 유산으로 ‘여성’, ‘인권’, ‘박애’를 들고, 부천시가 진정한 펄 벅의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정신적 유산을 적극적으로 실천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강연에는 김은혜 시인과 홍명근 시인이 각각 자작시 「펄 벅과 농부」, 「갈대」를 낭송하고, 시 낭송가이자 오카리나 연주가인 이현주 시인이 멋진 오카리나 연주를 선보여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더했다.  
    • 예술/창작
    • 공연/전시/이벤트
    2020-11-02
  • 문학으로 꿈꾸는 부천/ 부천에는 펄벅기념관이 있다. - 최숙미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부천시티저널>에서는 부천의 문학적 비전을 찾아서 연재해온 기획시리즈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와 함께 시민들의 문학활동과 독서활동을 취재하는  ‘문학으로 꿈꾸는 부천’을 추가하여 연재하고자 합니다.                                                                      부천시는 2017년 10월 동아시아 최초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되는 쾌거가 있었다. 여기에는 단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 작가의 업적이 한몫 했다고 본다. 펄벅 여사의 인생여정에는 부천의 ‘소사희망원’을 거론치 않을 수 없다. 펄벅 여사는 세기에 이름을 떨친 작가이면서 휴머니스트로서의 삶을 부천 소사읍 심곡리(현 심곡본동)에서 펼쳤다. 부천 펄벅기념관을 통해 그녀의 작품 세계와 펄벅 재단과 휴머니스트로서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1. 펄벅의 생애   펄벅은 1892년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 힐스버러에서 태어나 5개월 되던 때 선교사인 부모와 중국 진강에서 15년을 살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글쓰기 교육을 받아 상하이 주간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15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컨 대학에 다닐 때도 학교신문에 글을 발표한다. 대학 졸업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상하이의 농학교수였던 존 로싱 벅과 결혼하고 난징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데뷔 소설은 <동풍 서풍>으로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중국의 작은 고을에서의 체험은 세계적인 소설 ‘대지’의 자양분이 된다. 존 로싱과 이혼 후 리처드 첼시와 재혼하여 문학 활동과 휴머니스트로서의 일을 병행한다. 그녀는 1949년 전쟁 혼혈아동을 위한 입양기관인 웰컴하우스를 창설하면서 본격적인 사회사업에 뛰어든다. 1964년 해외아동들을 돕기 위한 펄벅 재단(현 펄벅 인터내셔널)을 설립한다. 1965년에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하고 일본 필리핀 타이완 태국 베트남 지부를 설립하는데, 한국에서는 부천시 소사읍 심곡리에 <소사희망원>을 설립하여 전쟁 혼혈아동들과 그의 어머니들에게 교육과 직업 훈련을 시켜 재활과 사회 복귀에 도움을 주는 복지활동을 펼쳤다. 1973년 폐암으로 사망하여 그린힐스 농장에 안장되었다. 현재 그녀를 안치한 그린힐스 농장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펄벅 인터내셔널(펄벅재단) 본부가 있는 곳이다. 2. 작가와 휴머니스트로서의 펄벅    그녀의 소설은 주로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쓰였다. 그의 첫 소설 <동풍. 서풍>(1930)은 중국에 살면서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루었고 퓰리처상(1932)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지’(1931)는 중국 빈농 ‘왕룽’일가의 역사를 그린 장편소설로서 단연 세계인의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또 다른 주요 저서로는 <어머니의 초상>(1936)과 자신의 아픈 아이를 소재로 한 <자라지 않는 아이>(1950)>, <북경에서 온 편지>(1957), <살아있는 갈대>(1963)는 대한제국의 위태로운 상황과 일제에 목숨 걸고 항거하는 이들의 저항정신을 소름 돋게 그리고 있다. <새해>는 그녀가 추진하고 있는 전쟁 혼혈아들을 위한 양육과 그들을 향한 편견에 대한 인식변화를 추구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수필 평론 아동서적에 이르기까지 80여권을 책을 집필하였다.   한국에서는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와의 인연으로 부천에서 전쟁 혼혈아동들을 거둘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수백 명의 혼혈아동들이 안식을 얻고 자질을 개발하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의 사망과 유일한 박사의 사망으로 펄벅 재단이 소유했던 소사희망원의 소유지는 차츰차츰 줄어들어 이제는 소사희망원 한 동만이 남아 기념사업회로 활용되고 있다.    펄벅기념관에는 1960년대 소사희망원의 모형을 전시하고, 그녀의 일생을 담은 사진과 집필한 서적과 개인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야외 공원에는 그녀의 흉상이 있고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누구나 펄벅 여사의 문학성과 휴머니스트로서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3. 펄벅기념사업회   해마다 펄벅 초중고 일반 문학상 공모전이 시행되고 있으며 다문화 아동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부천시가 동아시아에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된 후 다양한 문학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펄벅기념회로는 2018년에 이어 2019년 6월경에 펄벅학술심포지엄이 시행 되었다. 2018년 10월에는 부천펄벅국제학술대회가 부천 시청 어울마당에서 개최되었다. 더불어 2018년도 가을 2회에 걸쳐 부천소재 서울신학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생들과 부천 문학인들과의 교류로 펄벅소설을 주제로 한 ‘소설과 음악이 만난 문화유산콘서트’ 가 열렸다.  펄벅의 소설 <살아있는 갈대>와 <새해>를 중심으로 창작된 음악에 평론가의 소설 해설이 더해져 그녀의 소설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의 문학과 박애정신을 예술로 풀어내는 젊은이들에게 격려와 찬사가 쏟아진 값진 행사였다. 심곡본동에서는 매년 가을에 펄벅 축제가 성대하게 열려 펄벅의 박애정신과 문학을 기념하고 있다. 앞으로의 펄벅기념사업회는 세계 문학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이 집중 될 사업을 확장 전개하리라 본다.     펄벅의 작가정신은 박애라 한다. 그녀의 소설 속 배경과 인물이 보여 주듯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인류를 위한 박애이고 희생이고 사랑이라 하겠다. 개인의 안일함에 젖어 있지 않은 그녀의 삶은 물질만능주의와 자기중심적인 세계에 젖어 사는 현대인들을 향한 경종이 아닐 수 없다. 부천 펄벅기념관을 찾는 이들의 가슴에 그녀의 삶에 흐르는 박애정신이 살아나기를 기대해마지 않으며 문학가로서의 열망 또한 원대하게 펼쳐지기를 기원해본다.   최숙미 2010년 계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2019년<한국소설>로 소설 등단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회원수필집<칼 가는 남자><까치울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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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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