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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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학칼럼 36. 소사성당 80년
    소사삼거리에서 부천역으로 가다보면 소명사거리 쪽으로 성당이 보인다. 소사성당이다. 소사성당은 근래에 지어진 성당이 아닌가 싶지만 부천의 오래된 성당으로 소사역 북부의 멀뫼사거리에서 소명사거리 사이를 재개발하기 위하여 건물들을 철거하면서 홀로 남게 된 것이다. 소사성당은 부천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천주교가 박해를 받던 시절 경성(서울)과 인천 사이에 위치한 부천 시흥 일대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살던 곳이었다. 1897년 인천 답동성당이 건축되던 시절 시흥의 대야리 도창리에서는 공소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부천의 함박리 등에도 천주교인들이 있었다. 부천천주교인들의 모습은 소사성당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소사성당 반세기’에 실려 있다.  ‘소사성당 반세기’에 의하면 소사성당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정지용 시인이다. 소사성당의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인물인 시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시인이 누구인지는 소사성당 초기 신자의 구술과 정지용 시인의 아들을 통한 확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화여대의 교수로 있던 정지용 시인은 일제의 소개령(전쟁공습에 대비하여 이사함)으로 부득이하게 서울(경성)을 떠나 1944년 부천군 소사리 소사삼거리로 이사하게 되었다. 천주교 신자인 정지용 시인은 부천에서도 아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인천 답동성당으로 미사를 보러 다녔다. 그렇게 지내던 중 정지용 시인은 집 주변에 소사공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사공소에서 활동하던 정지용 시인은 공소에 신부님을 모시기로 하고 명동성당에서 임세빈 신부를 모셔와 1945년 12월 24일 소사공소에서 첫 미사를 드렸다. 신부님을 모시게 되자 정지용 시인과 소사공소의 신자들은 명동성당의 노기남 주교에게 성당을 건립해줄 것을 건의하였고, 노기남 주교는 소사공소에 머물고 있는 임세빈 신부를 담임신부로 하여 소사성당 설립을 허가해주었다. 그 후 현재의 소명여고 자리에 있던 적산가옥 소림별장을 미군정청으로부터 불하받아 미사를 드리니 1946년 4월 5일이었다. 소사성당에서의 첫 미사였다. 소사공소는 부천소사성당의 모태가 되었고, 소사성당은 부천천주교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렇게 날개를 단 소사성당은 초대 임세빈 신부에 이어 제2대 신성우 신부에 이르러 부천의 지역사회와 더욱 밀착하게 되었다. 신성우 신부는 성당 건축을 추진하여 1960년 10월 20일 낙성식을 한 현재의 소사성당으로 이전하였다.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신성우 신부는 소명가정기술학교를 세웠고, 부천의 유서 깊은 전통사학인 소명여중고로 발전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신성우 신부의 노력으로 서울의 성가소비녀회에서 운영하는 성가병원을 부천으로 이전시켜 오늘의 부천성모병원으로 성장시켰다. 교육과 의료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요소로서 소사성당이 부천의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26년은 소사성당이 부천의 신자들과 소림별장에 모여 첫 미사를 올린 지 80년이 되는 해이다. 80년 동안 소사성당에서 분가해나간 부천의 성당이 21개다. 소사성당에서 발아한 부천의 천주교는 종교의 벽을 넘어 80년 동안 지역사회와 하나가 되었다. 천주교인이거나 부천의 시민이거나 소사성당에서 시작된 부천천주교의 현재까지의 역할은 어땠는지, 미래소임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비록 종교마저 위축되는 시대이긴 하지만 인간이 기계화되어가고 소외되어가는 사회에서 분명 종교가 담당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소사성당 설립 80년을 축하한다.         (2026.01.28이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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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8
  • 제30회 BIFAN, ‘NAFF 프로젝트 마켓’ 공모 시작!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집행위원장 신철)가 운영하는 ‘BIFAN+ 아시아 판타스틱영화 제작네트워크(NAFF)’가 2026년 프로젝트 마켓 공모를 시작한다. 이번 공모는 전 세계 유망 장르 영화 프로젝트를 발굴하여 투자 및 제작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올해 프로젝트 마켓은 프로젝트의 진행 단계에 따라 ▲잇 프로젝트 ▲워크 인 프로그레스 ▲칸 판타스틱 7 등 총 세 가지 부문으로 운영된다. 선정된 프로젝트의 감독 및 제작자에게는 BIFAN+ 기간 중 숙박과 참가 배지가 제공되며, 전 세계 영화 산업 관계자들과의 1:1 비즈니스 미팅을 통해 투자와 배급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칸 판타스틱 7’ 선정작은 오는 5월 열리는 프랑스 칸 필름마켓(Marché du Film) 현장에서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프로젝트를 직접 선보이게 된다. BIFAN+ NAFF 프로젝트 마켓은 2008년 출범 이후 현재까지 498편의 프로젝트를 선정, 그중 112편이 영화로 완성되는 성과를 거두며 아시아 장르 영화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김민하 감독의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후 스페인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 초청됐으며, 후속작 <교생실습>은 2025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작품상과 배우상을 수상했다.  또한 2023년 ‘칸 판타스틱 7’ 선정작인 박세영 감독의 <지느러미>는 2025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선정되며 국제 무대에서 주목을 받았다. 제30회 BIFAN은 2026년 7월 2일부터 12일까지 개최되며, 프로젝트 마켓은 7월 4일부터 7일까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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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6
  • 이재학칼럼 34 우거지로 보는 세상
    가을이 가고 겨울이 시작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사람들은 김장을 한다. 물가가 올랐다고 거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겨울이 되면 주부들이 김장을 하듯이 뼈다귀해장국을 운영하는 필자도 2026년 봄여름에 사용할 우거지를 준비한다.  김장철에 우거지를 대량으로 준비하는 것은 일 년 중 가장 좋은 양질의 배추 잎을 대량으로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 시작될 때면 야채가게마다 배추가 산처럼 쌓이고 집집마다 김장을 한다. 그만큼 우거지로 만들 수 있는 배추 잎이 넘쳐나는 시기이다. 김장철을 잘 활용하면 꽤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우거지를 거의 무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우거지는 주로 배추 잎으로 만든다. 우거지를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서는 배추 잎을 살짝 삶아 물기를 빼고 일정분량씩 소분하여 냉동 보관한다. 그러면 일 년 내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면 된다. 김장철이면 배추 농사를 짓는 농부들도 바쁘고, 야채가게의 상인들도 바쁘고, 주부들도 바쁘지만 우거지를 많이 사용하는 식당들도 바쁘다. 우거지를 삶기 때문이다. 필자는 뼈다귀해장국(마라톤뼈다귀해장국)을 23년 째 운영하고 있다. 23년 째 매년 김장철이면 주부들이 김장을 하듯이 우거지 삶기를 했다는 뜻이다. 우선 배추 잎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주변의 지인들이 배추 잎을 갖다 주지만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절임배추를 판매하는 야채가게에서 대량으로 공급받는 것이다. 김장철이 시작되어 절임배추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야채가게는 순식간에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바뀐다. 짧은 기간에 밤낮없이 집중적으로 배추절임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배추를 다듬을 때 우거지가 되는 배추 잎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버려지는 배추 잎을 우거지로 만들 배추 잎과 쓰레기로 버려질 것을 구분하고, 우거지로 만들어질 배추 잎은 다발로 묶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식당으로 이동한 배추 잎이 삶아져서 우거지로 변신한다. 23년 동안 야채가게의 배추 잎을 공급받으면서 김장의 풍속(風俗)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23년 전에는 우거지로 만들어야 할 배추 잎이 차고 넘쳐서 냉동고를 금방 우거지로 채울 수 있었고, 야채가게는 배추 잎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도 남아서 김장쓰레기로 배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냉동고를 빛과 같이 빠른 속도로 우거지를 채우는 것은 단지 몇 년에 불과했다. 김치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해가 갈수록 냉동고를 채우는 시간도 늘어만 갔다. 근래에 와서는 냉동고를 다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지만 묵묵히 기다리고 있으면 끝내 냉동고가 우거지로 채워졌다. 필자는 올해도 기다리고 있으면 작년과 마찬가지로 냉동고를 우거지로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칼럼을 쓰는(12월 23일 화요일) 순간까지 냉동고를 반밖에 채우지 못했다. 23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냉동고를 채우기 위하여 필자는 야채가게에 우거지단(배추 잎 묶음)을 주문했다. 올 한 해 한 번의 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김장철이면 김장쓰레기 대책을 세우곤 했는데 동네에서 김장쓰레기를 본적도 별로 없다. 김장철이지만 김장을 했다는 말을 주변에서 별로 듣지 못했다. 김장철이 되었지만 사실 김장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언론에서도 김장을 전처럼 크게 다루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도 전과 같지 않다. 결국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한 탓이다. 이러다 김장이란 단어마저 사어(死語)가 될까 두렵다.  (20251223화 이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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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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