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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8회
모든 신경이 왕궁으로 집중해있던 백성들에게 소문은 빠르게 전해졌다. 그러자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기혼에 몰려들었다. 의식은 제사장 사독이 성막에서 가져온 뿔에 든 기름을 솔로몬에게 붓는 순간 절정에 달해 양각 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솔로몬은 요란한 백성들의 만세 소리와 피리 소리에 둘러싸여 왕궁으로 돌아와 다윗에게 인사를 했다. 다윗은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솔로몬에게 양보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영욕의 자리. 그 자리를 무사히 솔로몬에게 넘길 수 있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그는 신하들을 굽어보며 외쳤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이 자리를 솔로몬에게 물려주도록 허락하셨으니 감사할 일이로다. 이스라엘은 반석 위에 영원무궁할 것이로다.” 한편 새로운 왕 아도니야를 축하하는 잔치가 끝날 즈음에 다윗왕궁에서 별안간 피리 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이 끊이질 않고 들려왔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가슴엔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마침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나타나 솔로몬의 즉위 사실을 알리고 들려오는 함성이 바로 백성들이 부르짖는 기쁨의 함성이라고 아도니야에게 알렸다. 민심의 향배.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한두 사람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하더니 언제 아도니야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안달했는가 싶게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에 바빴다. 어이없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단 말인가. 아도니야도 급했다. 그는 뚜렷한 계획이나 비전도 없이 그를 부추기는 세력의 힘만 믿고 우쭐하여 왕이 되고자 했던 경솔한 행동을 후회했다. 그렇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던가. 아, 아비삭! 거의 품안에 들어올 것만 같았던 그녀를 생각하자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성막 안 제단 뿔 곁에 숨었다. 그곳은 여호와가 정해준 죄인들의 도피처였다. 그곳에서 그는 솔로몬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선처를 빌었다. 살려만 주면 충성을 다하겠노라고. 솔로몬은 다윗에게 물었다. 반역자 아도니야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느냐고. 다윗은 말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네 형제들의 피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여호와는 인자하시니 죄인을 용서하실 것이라고. 솔로몬은 다윗의 뜻에 따라 아도니야를 용서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왕위를 노리는 날엔 피를 나눈 형제에 앞서 군신의 예로 다스리겠노라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다윗은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키게 된 연유를 암암리에 조사하곤 두 번 놀랐다.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염두에 뒀다는 데 한번 놀라고 죽을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체질화된 여자에 대한 탐욕을 깨닫고 또 놀란 것이다. 만약에 그 어린 처녀 아비삭만 단호하게 거절했더라면… 아도니야의 반란도 없었을 것이고 앞날이 구만리 같은 아비삭의 인생도 망치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 이 일을 어쩐다냐! 이제 아비삭의 남은 생은 어떻게 될 것이고 미운털이 박힌 아도니야의 운명은 또한 어찌될 것인가. 자신이 살아있을 때야 별일이 없겠지만 본능이 앞서기 마련인 이기의 세상사에서 그들의 불행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그 안타까움을 기억하는 외경(外經)에 ‘다윗의 여자의 서’라 불리는 내용이 남았으니.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아름다운 여자에게 무슨 죄가 있으리오.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한 남자에게 무슨 죄가 있으리오. 그러나 분수에 맞지 않게 사랑하려는 것은 죄이니, 경우에 맞지 않게 사랑하려는 것 또한 죄이니, 불행이 충동질하기 전에 진정 사랑하거든 하늘을 우러러 포기하라.> 다윗은 여력이 빠르게 소진돼가는 걸 느끼며 죽을 날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회한만이 남았다. 그는 솔로몬을 불러 유언을 남겼다. 경(經)은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다윗 사후. 아도니야는 겉으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다행히 다윗과 솔로몬의 선처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나 아리따운 아비삭을 그리는 마음까지 죽일 수는 없었다. 다윗이 살아있을 때는 감히 어쩌질 못했으나 다윗이 죽어 이제는 홀로된 그녀가 꽃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갈 참이었다. 자신이 왕이 되었다면 은밀히 벌써 자기 곁에 두었을 것이다. 설령 선왕의 여자를 가로챘다는 비난이 쏟아질지라도 그 비난까지 무릅쓰고서라도 곁에 두었을 것이다. 왕의 자리도 탐이 났지만 그보다 욕심이 난 건 아비삭이었다. 심지어 왕의 자리와 아비삭을 고르라면 아비삭을 골랐을 그였다.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 세상 사는 재미가 없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결국 밧세바를 찾아갔다. 결코 허물이 없지 않은 그녀가 아닌가. 그녀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왕의 생모가 아닌가. 생모의 부탁을 왕이라도 감히 거절치 못하리란 판단이었다. “이스라엘 왕의 자리가 본래 제 것이었음을 온천하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뜻이 아우에게 있었음을 원망하진 않겠나이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저도 체념하고 살겠습니다. 그렇지만 소원 한 가지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무엇이오?” 밧세바는 반색했다. 체념하며 살겠다는데, 다시는 자신의 아들인 솔로몬의 왕위를 넘보지 않겠다는데 무슨 소원인들 들어주지 못하랴 싶었다. “아비삭입니다. 그녀를 내게 주십시오. 조용히 살겠습니다.” “아비삭을?” “그렇습니다. 그녀는 아바마마의 후궁도 아니었잖습니까. 늙으신 아바마마를 간호한 시녀에 불과했습니다. 꽃봉오리도 활짝 펴지 못한 그녀가 불쌍해서 그렇습니다.” “그게 소원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절대로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알았소. 내가 왕께 말하리다.” 밧세바도 이젠 늙었다. 그 아리땁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주름만 얼굴 가득 퍼져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늙은 건 아니었다. 질투와 시기마저 늙어버린 건 아니었다. 아무리 살을 섞진 못한다 할지라도 젊은 아비삭이 다윗과 알몸으로 부둥켜안고 잠이 드는 것까지 곱게 보아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드러내어 질투를 할 수도 없는 처지. 속으로만 끙끙 앓았었다. 그런 아비삭인데 아도니야가 차지한들 어떠랴. 더군다나 젊으나 젊은 아비삭도 간절히 원할 터인데. 그게 바로 밧세바의 인간적인 한계였다. 어찌됐든 아비삭은 다윗왕의 여자였다. 왕의 여자를 차지하는 건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압살롬이 잠시나마 다윗 성을 차지하고 후궁들을 욕보였던 것처럼. 그러나 그것도 결과적으로는 율법을 어긴, 죽임을 면치 못할 죄였다. 그런데도 아도니야는 아비삭을 원하고 밧세바는 기꺼이 협조할 생각이었으니. 밧세바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들인 솔로몬 왕을 찾아가 말했다. “아도니야가 무슨 낙으로 살겠습니까.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그가 원하는 아비삭을 첩으로 주는 게 어떨지요.” 신실한 솔로몬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뭣이라고요!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그 말을 아도니야가 어머니께 하더이까?” “그렇소.” “어찌하여 어머니는 쓸 데 없는 일에 참견하고 다니십니까. 어찌하여 그 자가 어머니를 모독하고 업신여긴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그가 어머니께 이 자리를 넘겨주라고 청한다면 그때도 제게 와서 이러시겠습니까? 어찌 감히 아바마마의 후궁을 넘보는 아들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렇게 어리석게 보이십니까? 이것은 반역입니다. 아바마마를 욕보이는 반역입니다.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밧세바는 어쩔 줄을 몰랐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 아도니야는 그렇게 동생에 의해 죽었다.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까. 압살롬과 아도니야의 패륜은. 밧세바는 이후 침잠했다. 다윗.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는 그렇게 끝났다. 약관 삼십 세의 나이에 유다 왕이 되었다. 그리고 칠 년 육 개월 만에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주변의 적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때까지 왕으로서 이십 년, 그의 삶은 신실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었다. 교만이 싹트고. 자신의 말 한 마디는 곧 법이 되었다. 두려울 게 없었다. 나태해지고. 시험에 빠져들었다. 아리따운 밧세바. 탐욕이었다. 탐욕에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마음도 멀었다. 그녀와의 관계는 죄악덩어리였다. 결국 시험을 이기지 못했으니. 그 후 이십 년. 다윗은 한 여인을 얻은 대가로 한순간의 참회가 아닌 죽을 때까지 처절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했다. 아들이 딸을 능욕하고, 아들이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비를 부정하고, 아들이 아비를 피해 살고, 아들이 아비를 반역하고, 아비가 아들을 피해 도망 다니고, 아비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비의 여자들을 능욕했으며, 아들이 아비를 죽이려 하여 결국 아비의 부하들이 아들을 죽여야 했다. 또 다른 아들도 반역의 칼을 뽑았다가 실패하여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아비가 죽자마자 채 시신이 식기도 전에 아비의 여자를 욕심내다가 마침내 왕이 된 동생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골육상쟁의 칼부림이 끊임없이 이어진 그의 삶. 양치기에서 왕으로. 하늘은 다윗에게 엄청난 은혜를 베풀었지만 상상도 할 수 없는 응징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다윗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린 게 사십 년. 전반기 이십 년이 은혜의 시간이었다면 나머지 이십 년은 바로 갈마의 시간이었다. 그 분수령이 밧세바와 간음이었으니. -끝-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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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7회
다윗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역전의 용사답게 싸움의 승패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결과는 전쟁의 승패가 아니었다. 아들 압살롬의 생사여부였다. 성의 문루에 있던 다윗의 눈에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오는 단기필마가 보였다. 단기필마는 곧 승리를 의미했다. 그러나 그는 더욱 초조했다. 말 위에 탄 이는 아히마아스였다. “어찌 되었느냐?” 다윗은 성급히 물었다. “전하, 기뻐하소서. 이겼사옵니다.” 아히마아스가 외쳤다. 궁금한 건 승리가 아니었다. “압살롬은 어찌 되었느냐?” 다윗의 목소리가 떨렸다. “영광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여호와, 폐하의 주님께서 은혜를 내리셔서 반역한 무리들을 무찔렀사옵니다.” “압살롬, 압살롬은?” 다윗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아히마아스는 다윗의 뜻이 오직 압살롬의 생사에만 있는 걸 알고 그대로 보고를 할 수가 없었다. “신이 떠날 때에 큰 소동이 일어난 줄은 알지만 자세히는 모르겠사옵니다.” 다윗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건만 입장만 난처해진 아히마아스였다. 그때 헐레벌떡 다윗 앞에 엎드려 절하는 흑인 전령이 있었으니. “폐하, 기뻐하십시오. 여호와의 은혜로 역적들은 모두 소탕되었습니다.” “그래, 압살롬은 어찌 되었느냐?” 다윗은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흑인은 서슴없이 말했다. “칼에 찔려죽었습니다. 앞으로도 역적의 무리는 그와 같이 비참하게 죽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다윗은 그만 땅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기어코 그렇게 되는구나. 혹시나 기대했더니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구나. 그는 절망했다. 땅을 치고 통곡했다. 경(經)은 이렇게 적고 있다. 다윗의 애통한 심정을.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다윗은 다시 한 번 절감했다. 하늘의 무서움을. 자신의 죄에 대한 응징이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 견뎌내기 힘든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렇지만 거기에서도 다윗의 시련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윗도 인간이었다. 반란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반란군 측에 가담한 정도와 진압의 공을 따져 십이 지파 중 유독 유다족에게 많은 주도권을 주게 되었으니. 그러자 다른 지파에서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그 불만을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킨 이가 있었으니 세바라는 자다. 세바는 다윗의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거룩한 땅이자 기업이다. 이 거룩한 땅이 더러운 피로 물들었다. 이 피를 불러온 장본인이 누구인가? 다윗은 더 이상 이스라엘 왕의 자격이 없다. 그 아들들의 행태만 봐도 알 수 있잖은가. 다윗은 사울처럼 여호와의 뜻을 저버렸다. 이제 여호와는 다윗을 버렸다. 다윗은 죄인이다. 죄인이 왕의 자리에 있는 걸 용납할 수 없잖은가!” 그러자 십이 지파 중 십 지파가 다윗을 따르지 않고 세바를 따르는 것이었다. 백성들의 마음은 갈대와 같았다. 세바의 반란은 곧 진압되었으나 민심 이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졌을 때의 고민이 거기에 있었다. 원초적 책임, 간음이었다. 밧세바와의 간음 이후 한시라도 마음 편한 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앞으로도 또 어떤 식으로 자신의 목을 죄어올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간음의 죄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아무리 궁리를 거듭해도 묘안이 나오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여호와에게 묻는 수밖에. 다윗은 여호와의 장막에 틀어박혀 몇날 며칠이고 나오지 않았다. 침식을 거른 채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기도하고 통곡하고 울부짖으며 간구했다. 어렴풋이 마음속으로부터 울림이 있었다.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음성. 그렇게 믿었다. 간음의 죄에서 비로소 해방이라는. 여디디야. 여호와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밧세바와의 사이에 솔로몬을 낳았을 때 나단 선지자는 그 아이를 축복하고 그런 이름을 주었었지. 그건 무슨 뜻인가.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뜻이 아닐까.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것은 밧세바와의 간음을 이미 용서하셨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간음은 죄이고 사망이면서 용서이고 축복이 됐다. 죄와 사망과 용서는 끝났다. 이제 축복만 남았다. 다윗이 기도 중에 내린 결론이었다. 다윗은 장막을 나와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으로 자신의 후계자임을 은연중에 암시했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여호와하나님의 뜻이라는 데엔 솔로몬이 간음의 산물일지라도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밧세바의 위치도 굳건해졌다. 그리고 지난날의 과오를 만회하려는 듯 다윗은 신실하게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또한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입게 되었으므로 왕이 되고나선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거스를 수 없는 사명을 주지시켰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다윗에게도 세월은 비켜가지 않았다. 다윗 말년. 나라 안팎은 안정되었고 이스라엘은 반석 위에 놓이게 되었으며 다윗은 늙었으되 성군으로 모든 백성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백성들은 다윗이 오래도록 이스라엘을 통치하길 원했다. 민심을 간파한 신하들은 늙어서 거동조차 힘든 다윗을 위하여 젊고 아리따운 처녀인 아비삭으로 하여금 시중들게 하고 행여나 체온이 떨어질까 염려하여 알몸으로 잠도 같이 자도록 조처했다. 다윗은 처음에 그러한 과잉 충성을 거절했다. 그러나 아비삭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름다웠다. 젊은 날의 밧세바를 보는 듯했다. 다윗은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못이기는 척 따랐다. 과욕이었다. 아무리 늙고 힘이 없어도 욕심은 끝이 없기 마련. 그러나 다윗은 너무 늙어 마음만 간절하지 몸이 따라주질 못했다. 당연히 남녀 간의 정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괜한 흠집만 남긴 꼴이었다. 신하들의 뜻은 이스라엘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왕에 대해 죽기 전까지 최대한으로 편안하게 살다 가시라는 배려였는데. 그야말로 아비삭은 인간으로서 회춘의 슬픈 묘약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다윗의 넷째 아들로 다섯째 부인인 학깃에게서 낳은 아도니야가 있었다. 아도니야는 살아있는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다. 뛰어난 용모와 야심만만한 기질과 아울러 용의주도한 정치력까지 갖춘 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으로 칭송이 자자했던 압살롬을 쏙 빼닮은 데다 그때까지 다윗의 심사를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보다도 아비를 공경하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본 것이다. 첫눈에 반한 것도 모자라 몸살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그림 속의 떡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후궁이나 마찬가지 신분. 어느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벙어리가 된 아도니야는 그녀를 먼발치에서나 보며 냉가슴만 앓았다. 그녀를 신하들보다 먼저 발견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그녀를 아버지에게 천거한 신하들이 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무슨 수가 없을까. 아버지만 아니라면. 아버지만 없었다면. 아, 한번만 안아볼 수 있다면 죽어도 좋았다. 원이 없을 것 같았다. 마침 그때, 다윗이 연로하여 무기력해진 틈을 타 주위에서 아비삭에 안달하는 아도니야를 부추기는 세력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군사력의 정점에 있던 군대장관 요압과 정신적 정점의 위치에 있는 제사장 아비아달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그녀가 아니었다. 왕권이었다. 그녀는 안중에도 없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엔 아직 어립니다.” “그렇지만 아바마마께서 솔로몬을 후계자로 이미 내정한 상태인데 어찌 아바마마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자고로 우리 이스라엘은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장자 우선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누가 이스라엘의 장자입니까? 솔로몬입니까? 왕자님이십니다. 어찌하여 굴러온 복을 차지하려 하지 않으십니까?” “아바마마께서 살아계시지 않습니까.” “폐하는 돌아가신 거나 진배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상태 아닙니까. 저희들이 있습니다. 이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 말입니다. 뭐가 부족하여 망설이십니까. 저희들은 왕자님께서 폐하의 뒤를 잇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회였다. 아도니야는 흔들렸다. 가만히 듣고 보니 못할 것도 없고 솔로몬에 비해 자신이 나으면 나았지 부족할 것도 없었다. 교만이 겸손을 누르고 고개를 내밀었다. 무엇보다도 왕이 되기만 한다면 아비삭을 안을 수 있었다. 아도니야는 왕권보다 아비삭을 안을 수 있다는 데에 더 혹했다. “그렇다면 모두 힘을 합쳐 봅시다.” 반역이었다. 셋째 아들 압살롬에 이은 넷째 아들의 반역. 아도니야는 어느 날 요압과 아비아달의 협력 하에 전차와 기마병과 호위병을 준비하고 모든 왕자와 문무백관과 백성들을 초대하여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며 스스로 이스라엘 왕이 되었음을 만천하에 선포했다.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그에 호응하여 새로운 이스라엘 왕의 탄생을 축하하고 아도니야 왕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초청받지 못한 인사가 있었으니 그들은 선지자 나단과 다윗의 호위 용사들을 비롯하여 대장 브나야, 제사장 사독, 그리고 솔로몬 등이었다. 나단 선지자는 아도니야의 반란 소식을 듣고 그건 여호와의 뜻이 아니라며 밧세바를 찾아갔다. 나단의 생각에 이스라엘의 왕은 장자권보다 하나님의 선택이 우선이었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라 자처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뭣이라고요?” 밧세바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도니야의 반란? 압살롬에게 놀랐던 가슴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여 간이 콩알만큼 작아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당연히 다윗의 후계자는 자신의 아들 솔로몬이라 믿고 있던 그녀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한시가 급하오. 어서 빨리 폐하를 뵈어야겠습니다. 폐하께선 까마득히 모르고 계실 것입니다.” “당연히 모르시지요. 폐하를 만나서 어쩌시려고요?” “제 말대로만 하십시오. 마마의 안위와 솔로몬 왕자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나단은 밧세바에게 계교를 일러주었다. 밧세바는 다윗의 침실로 들어갔다. 급했다. 다윗은 앉아있을 기력도 없는 듯 누워있는데 아비삭이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밧세바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밧세바는 아비삭을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쳐 다윗 앞에 이르러 허리를 굽혔다. “폐하, 밧세바입니다.” 죽은 듯 누워있던 다윗은 힘겹게 눈을 떴다. “어쩐 일이시오, 부인.” “어쩌면 좋습니까, 폐하.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오!” “폐하께서 지난 날 여호와께 맹세하시며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가 요압과 아비아달 등과 모의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단 말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말이 꿈결처럼 들렸다. 단지 온몸이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분노할 힘도 없었다. 그대로 의식마저 꺼져버렸으면 싶었다. “저와 솔로몬은 이제 죽은 목숨입니다. 아도니야가 이대로 두겠습니까? 통촉하시옵소서.” 그때 선지자 나단이 들어왔음을 아비삭이 알렸다. 다윗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나단은 다윗 앞에 엎드려 절하고 질책하듯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아도니야가 후계자란 언질을 주신 적이 있으십니까?” 다윗은 나단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좌우로 힘없이 흔들었다. “그렇다면 아도니야의 음모입니다. 지금 아도니야가 왕이 된 것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왕자들과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도 그 무리에 끼어있습니다. 벌써 아도니야 왕 만세를 부르고 있다 합니다. 그들은 저와 제사장 사독과 호위대장 브나야와 솔로몬을 쏙 빼놓은 채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어서 입장을 명확히 하십시오.” 골육상쟁의 칼부림. 그 지긋지긋한 고통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다윗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 하나의 아들이 간음의 희생물이 되고자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마저 내 탓이로다.’ 갈마(羯磨)는 아직도 말년의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확신했다.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는 일은 파멸뿐이란 것을. 기도 가운데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자신 다음은 솔로몬 편이었다. 그래야만 간음이 죄에서 해방되고 최후의 축복이 될 수 있었다. 그걸 모르고 덤벼드는 아들이 안타까웠다. “밧세바를 앞으로 오게 하시오.” 긴장이 방안을 짓누르고 있었다. 조용히 밧세바가 다윗 앞에 섰다. “잘 들으시오.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여호와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의 후계자는 솔로몬이오. 오늘 당장 즉위식을 거행토록 할 것이오. 그 누구도 이 일, 즉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감히 반대하지 못할 것이오.”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 다윗의 단호한 어조였다. 꺼질 듯하던 그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밧세바는 감격하여 울었다. 다윗은 곧이어 사독과 브나야를 불러 나단과 함께 자신의 노새에 솔로몬을 태워 기혼으로 가 의식을 거행하도록 명을 내렸다. 왕의 노새는 왕만이 탈 수 있었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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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6회
열락의 나날을 보낸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이 찾아와 다윗과 그 무리들을 칠 계획을 내놓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아히도벨은 다윗을 너무도 잘 알았다. 다윗과 함께 했을 때도 그의 전략은 한 치의 빈틈도 허락지 않았다. “다윗은 지쳐 있습니다. 따르는 무리도 많지 않거니와 사기도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겁니다. 저에게 군사 일만이천 명만 주십시오. 이대로 뒤를 쫓으면 따라잡기 십상입니다. 많은 피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적들은 우리의 엄청난 힘만 보고도 지리멸렬, 감히 무서워 쥐구멍이라도 찾아 도망칠 게 뻔합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는 어쩔 수 없이 저희들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직도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전하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다윗만 잡으면 됩니다.” 자신에 차있는 아히도벨의 말에 압살롬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압살롬은 더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다윗의 또 다른 책사였던 후새를 불렀다. 다윗을 아는 건 아무래도 아히도벨보다 후새가 한수 위라 생각되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아히도벨의 전략이?” “아히도벨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그는 다윗 왕을 이빨 빠진 호랑이라 하였으나 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분명히 이빨도 빠지고 곤경에 처해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그는 용사 중의 용사입니다. 그 추종세력의 용맹함은 수가 적어졌다고는 하지만 명불허전이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곰이 새끼를 뺏긴 것같이 몹시 격분한 상태입니다. 쥐새끼도 도망갈 길을 놔두고 잡으라 했습니다. 막바지에 다다르면 아무리 쥐새끼일망정 고양이에게 달려들어 무는 법입니다. 우리가 수만 믿고 밀어붙인다면 그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같은 이스라엘 백성끼리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을 잡은들 우리의 국력은 형편없이 쪼그라지고,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변방이 안정되었다고는 하나 그건 상대적입니다. 우리의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약해진다면 변방의 대적들이 가만있겠습니까? 또한 다윗의 많지 않은 군사로 우리 군사들의 많은 수가 쓰러진다면 백성들은 분명 동요할 것입니다. 패배를 모르는 다윗이라고. 골리앗을 쓰러트렸던 그 옛날을 회상하면서 여호와의 축복이 다윗 왕을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군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기가 떨어질 것은 물론 감히 나서서 싸울 생각을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엔 전하께서도 끝장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압살롬의 얼굴은 굳어졌다. 이글거리는 다윗의 눈이 떠올랐다. 그 눈빛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후새를 부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강해져야 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곤 친히 전하께서 선두에 나서 정정당당하게 싸우십시오.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해야 합니다. 옴짝달싹 못하게.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이 온 초원을 적시는 것과 같이 저희의 어마어마한 힘을 저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혹시라도 그가 어느 성에 숨어 꼼짝을 않는다 할지라도 동아줄로 그 성을 칭칭 감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아당겨 무너뜨린다는 각오로 나서야 될 줄로 압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합치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설령 이긴다할지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합니다. 섣불리 나섰다간 큰 코 다치게 됩니다. 아무리 늙었다고 다윗을 절대 얕보지 마십시오.” 후새는 다윗에게 시간을 벌어줄 심산이었다. 아히도벨의 전략이라면 십중팔구 다윗이 질 게 뻔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말보다 후새의 신중한 말이 더 완벽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했다. 후새는 눈앞의 이익보다 먼 훗날까지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듯했다. 후새는 압살롬이 그의 말을 좇아 행할 걸 알고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신신당부했다. “다윗 왕께 전하시오. 오늘 밤 안으로 광야 나루터에서 요단강을 건너라고 말이오.” 사독과 아비아달은 자신들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를 불러 다윗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아히도벨은 절망했다. 자신은 충분히 다윗을 잡을 자신이 있었다. 후새의 전략은 말만 그럴 듯하지 어림도 없는 일일뿐 아니라 다윗에게 재무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압살롬이 자신의 계략을 따르지 않고 후새의 전략을 취한 건 하늘이 아직도 다윗을 돕고 있다는 증거였다. 압살롬의 천하는 거기까지라 보았다. 다윗의 명이 다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 다윗은 위대하다. 사소한 실수와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아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으나 언제 어느 때 다윗에게 다시 향할지 알 수 없는 게 변덕스러운 민심의 속성이었다. 앞날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아히도벨은 나귀에 안장을 씌웠다. 자신이 압살롬에게 더 있어야 할 명분이 없었다. 다윗에게 갈 수는 없었다. 갈 길은 딱 하나. 죽음뿐. 허탈했다. 사탄에게 놀림 당한 기분. 고향으로 향했다. 그리곤 가산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을 매어죽었다. 다윗과 함께 유랑의 길에 들어선 밧세바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린 아들들을 챙기는 것도 힘들었지만 자신의 할아버지가 압살롬의 책사라는데 심리적인 고통이 더 컸다. 어째서 할아버지는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에게 기대를 걸었을까. 이방인인 우리아와의 결혼을 반대한 할아버지였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서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었다. 그런데 다윗을 알게 되고 우리아가 죽고 다윗의 처가 되어 살면서 할아버지를 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을 배신하고 간음한 손녀가 왕의 부인이 되었음에도 끝내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런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율법에서도 큰 죄악으로 여기는 자살을. 내가 만약 다윗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약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약 정숙한 요조숙녀로 남았더라면 압살롬의 반란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가 압살롬의 편에 서지도 않았을 것이고 허망하게 목숨을 끊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밧세바도 괴로웠다. 광야 나루터에서 후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다윗은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맞아 상세한 얘기를 듣고는 부리나케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요단강을 건너 보다 안전한 마하나임에 이르니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무리들이 그를 환대하는 것이었다. 지치고 피곤한데다 몹시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에서 뜻밖의 응원군이 가져온 꿀과 버터와 치즈와 양고기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여호와하나님의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삭막한 광야를 헤맬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에서 내렸던 구원의 만나처럼. 그들은 배불리 먹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다윗이 마하나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압살롬은 뒤늦게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땅에 진을 쳤다. 다윗은 휴식을 취하는 중에 전열을 가다듬었다. 부족하나마 그를 따르는 백성들 가운데 백부장과 천부장을 세우고 군대장관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와 블레셋 사람이지만 전에도 충성심이 강하고 지금도 변함없는 잇대에게 각각 삼분의 일씩 군사를 맡겨 지휘케 하고는 자신도 직접 전투에 나가 싸우리라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신하들은 다윗이 친히 나가 싸우는 걸 한사코 말렸다. “폐하는 귀중한 몸입니다. 폐하가 곧 이스라엘입니다. 폐하가 계심으로 저희들이 있습니다. 만약 폐하께 위험한 일이 닥치게 된다면 저희들의 사기는 짚 검불을 태운 재처럼 사그라지고 말 것입니다. 부디 옥체를 안전한 곳에서 보존하고 계시옵소서.” “고마운 일이오. 정 그렇다면 그대들의 말에 따르리라. 그러나 간곡히 부탁할 말이 있소.” “부탁이라니 당치 않으십니다. 분부 내려 주시옵소서.”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윗은 침통한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봐서라도 나의 못난 아들 압살롬을 부디 살려주시오. 그놈이 비록 잠시나마 눈이 뒤집히고 귀가 멀어 역적질을 하였으나 모두가 나의 부덕에 따른 것이오. 아비의 죄가 많아 그런 아들도 있나 봅니다. 그러니 불쌍하게 생각해 주길 바라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게 바로 여호와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소?”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윗의 간절한 바람에도 그들이 숙인 얼굴에서는 어떤 표정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다윗은 무서웠다. 나단 선지자의 경고는 그의 마음속에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그가 두 눈 벌겋게 뜨고 살아있는데도 많은 백성 앞에서 궁에 남겨둔 후궁들이 능욕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러한 압살롬의 패륜행위도 따지고 보면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원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압살롬을 암암리에 조종하는 자, 그 보이지 않는 힘, 자신을 향한 여호와의 징계, 그게 무서웠다. 어찌 보면 압살롬도 희생물이었다. 섭리의 희생물. 업보의 희생물. 갈마의 희생물. 이제 압살롬의 패배와 죽음만 남았다. 다윗은 그걸 알았다. 그래서 괴로웠다. 아비가 아들을 죽여야 하고 아들이 아비를 죽여야만 하는 비극적 현실이 자신의 죄로 인한 잉태물이라니. 하늘. 여호와하나님. 온몸에 털이 곤두서도록 무서웠다. 내가 만약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평범한 양치기로서 살고 있었더라면, 밧세바와 간음만 없었더라면, 우리아만 죽이지 않았더라면, 암논만 제대로 징계했더라면,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떠나는 걸 막았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만시지탄.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골육상쟁의 칼부림, 압살롬이 죽는 것까진 막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드디어 에브라임 숲에서 맞붙어 격전을 치르기에 이르렀다. 다윗의 군사들은 수적으로는 열세였으나 지형을 잘 알고 전투경험이 많은데 비해 압살롬의 군사들은 숫자만 많았지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요단강 동편에 있는 에브라임 숲은 계곡이 불규칙하여 낭떠러지가 많고 늪이 수도 없이 많아 게릴라전을 벌이는 다윗 군사들에게 아주 유리했다. 게다가 다윗의 군대는 후새로 인하여 압살롬의 전략을 빤히 꿰뚫고 있었다. 따라서 압살롬의 군사는 월등하게 수적으로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수풀 이곳저곳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다윗 군사의 귀신같은 전략에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되었다. 칼에 찔려 죽은 수보다 지형에 익숙지 못하여 웅덩이에 빠져죽거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수가 더 많았는데 그 전투에서 죽어나간 수는 거의 이만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 기세등등하여 단번에 다윗 군사를 쳐부수려 선두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압살롬은 당황하고 말았다. 타고 있던 노새도 당연히 허둥댔다. “너무 얕잡아봤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사방에서 다윗 군사들이 승승장구. 그는 서둘러 노새의 엉덩이에 채찍을 휘둘렀다. 우선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놀란 노새는 벼락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투구가 벗겨지고 머리칼이 노새가 일으키는 바람에 휘날렸다. 얼마쯤 내달렸을까. 머리카락이 뽑히는 아픔이 느껴지는 찰나, 몸이 붕 뜨더니 압살롬의 용모를 한층 돋보이게 해주던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상수리나무가지에 걸리고 말았다. 노새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내달리고. 그는 그대로 상수리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그 누가 알았으랴. 그의 그런 어처구니없는 최후를. 요압 수하에 있던 장수가 그걸 보고 요압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그러자 요압은 대노했다. “뭐라고! 그걸 보고 그냥 뒀단 말이야? 먼저 그놈을 죽이고 보고해도 늦지 않을 것을. 참으로 딱하구나. 네가 만약 그를 죽였더라면 내가 많은 상을 내렸을 터인데.” 그러나 그 장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는 아무리 많은 상을 내리신다 할지라도 감히 폐하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폐하께서 장군께 한 압살롬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뭐라? 이 괘씸한 놈. 그놈은 왕자라 할지라도 역적이니라. 어째서 아무런 죄도 없이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가겠느냐. 다 그놈의 역적질 때문 아니냐. 역적의 말로는 바로 죽음뿐이니라. 그놈이 죽어야 많은 사람들이 산다. 아무리 폐하의 부탁이 있어도 그건 사사로운 정에 지나지 않으니.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는 걸 어찌 모르느냐.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 네가 죽고 내가 죽는단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만약 그를 죽였다면 장군께서도 상을 내리기는커녕 어명을 어긴 죄로 저를 처벌하셨을 것입니다.” “오냐, 나는 긍휼보다 공의를 택할 것이니라.” 요압은 고집을 굽히지 않는 장수를 질책하고는 부하들을 이끌고 압살롬이 매달려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압살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요압은 그런 압살롬에게 곧장 다가가 머뭇거리지도 않고 심장을 찌르고 머리카락을 잘라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요압의 부하들이 달려들어 피로 범벅되어 꿈틀거리는 압살롬의 온몸을 난자하여 숨을 끊어놓았다. 그렇게 압살롬은 죽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것으로 반란은 끝나고 말았다. 압살롬의 시체는 구덩이에 처박히고 그 위로는 돌무더기가 쌓아졌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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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8회
- 모든 신경이 왕궁으로 집중해있던 백성들에게 소문은 빠르게 전해졌다. 그러자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기혼에 몰려들었다. 의식은 제사장 사독이 성막에서 가져온 뿔에 든 기름을 솔로몬에게 붓는 순간 절정에 달해 양각 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솔로몬은 요란한 백성들의 만세 소리와 피리 소리에 둘러싸여 왕궁으로 돌아와 다윗에게 인사를 했다. 다윗은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솔로몬에게 양보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영욕의 자리. 그 자리를 무사히 솔로몬에게 넘길 수 있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그는 신하들을 굽어보며 외쳤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이 자리를 솔로몬에게 물려주도록 허락하셨으니 감사할 일이로다. 이스라엘은 반석 위에 영원무궁할 것이로다.” 한편 새로운 왕 아도니야를 축하하는 잔치가 끝날 즈음에 다윗왕궁에서 별안간 피리 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이 끊이질 않고 들려왔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가슴엔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마침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나타나 솔로몬의 즉위 사실을 알리고 들려오는 함성이 바로 백성들이 부르짖는 기쁨의 함성이라고 아도니야에게 알렸다. 민심의 향배.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한두 사람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하더니 언제 아도니야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안달했는가 싶게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에 바빴다. 어이없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단 말인가. 아도니야도 급했다. 그는 뚜렷한 계획이나 비전도 없이 그를 부추기는 세력의 힘만 믿고 우쭐하여 왕이 되고자 했던 경솔한 행동을 후회했다. 그렇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던가. 아, 아비삭! 거의 품안에 들어올 것만 같았던 그녀를 생각하자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성막 안 제단 뿔 곁에 숨었다. 그곳은 여호와가 정해준 죄인들의 도피처였다. 그곳에서 그는 솔로몬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선처를 빌었다. 살려만 주면 충성을 다하겠노라고. 솔로몬은 다윗에게 물었다. 반역자 아도니야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느냐고. 다윗은 말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네 형제들의 피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여호와는 인자하시니 죄인을 용서하실 것이라고. 솔로몬은 다윗의 뜻에 따라 아도니야를 용서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왕위를 노리는 날엔 피를 나눈 형제에 앞서 군신의 예로 다스리겠노라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다윗은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키게 된 연유를 암암리에 조사하곤 두 번 놀랐다.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염두에 뒀다는 데 한번 놀라고 죽을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체질화된 여자에 대한 탐욕을 깨닫고 또 놀란 것이다. 만약에 그 어린 처녀 아비삭만 단호하게 거절했더라면… 아도니야의 반란도 없었을 것이고 앞날이 구만리 같은 아비삭의 인생도 망치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 이 일을 어쩐다냐! 이제 아비삭의 남은 생은 어떻게 될 것이고 미운털이 박힌 아도니야의 운명은 또한 어찌될 것인가. 자신이 살아있을 때야 별일이 없겠지만 본능이 앞서기 마련인 이기의 세상사에서 그들의 불행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그 안타까움을 기억하는 외경(外經)에 ‘다윗의 여자의 서’라 불리는 내용이 남았으니.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아름다운 여자에게 무슨 죄가 있으리오.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한 남자에게 무슨 죄가 있으리오. 그러나 분수에 맞지 않게 사랑하려는 것은 죄이니, 경우에 맞지 않게 사랑하려는 것 또한 죄이니, 불행이 충동질하기 전에 진정 사랑하거든 하늘을 우러러 포기하라.> 다윗은 여력이 빠르게 소진돼가는 걸 느끼며 죽을 날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회한만이 남았다. 그는 솔로몬을 불러 유언을 남겼다. 경(經)은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다윗 사후. 아도니야는 겉으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다행히 다윗과 솔로몬의 선처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나 아리따운 아비삭을 그리는 마음까지 죽일 수는 없었다. 다윗이 살아있을 때는 감히 어쩌질 못했으나 다윗이 죽어 이제는 홀로된 그녀가 꽃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갈 참이었다. 자신이 왕이 되었다면 은밀히 벌써 자기 곁에 두었을 것이다. 설령 선왕의 여자를 가로챘다는 비난이 쏟아질지라도 그 비난까지 무릅쓰고서라도 곁에 두었을 것이다. 왕의 자리도 탐이 났지만 그보다 욕심이 난 건 아비삭이었다. 심지어 왕의 자리와 아비삭을 고르라면 아비삭을 골랐을 그였다.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 세상 사는 재미가 없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결국 밧세바를 찾아갔다. 결코 허물이 없지 않은 그녀가 아닌가. 그녀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왕의 생모가 아닌가. 생모의 부탁을 왕이라도 감히 거절치 못하리란 판단이었다. “이스라엘 왕의 자리가 본래 제 것이었음을 온천하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뜻이 아우에게 있었음을 원망하진 않겠나이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저도 체념하고 살겠습니다. 그렇지만 소원 한 가지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무엇이오?” 밧세바는 반색했다. 체념하며 살겠다는데, 다시는 자신의 아들인 솔로몬의 왕위를 넘보지 않겠다는데 무슨 소원인들 들어주지 못하랴 싶었다. “아비삭입니다. 그녀를 내게 주십시오. 조용히 살겠습니다.” “아비삭을?” “그렇습니다. 그녀는 아바마마의 후궁도 아니었잖습니까. 늙으신 아바마마를 간호한 시녀에 불과했습니다. 꽃봉오리도 활짝 펴지 못한 그녀가 불쌍해서 그렇습니다.” “그게 소원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절대로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알았소. 내가 왕께 말하리다.” 밧세바도 이젠 늙었다. 그 아리땁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주름만 얼굴 가득 퍼져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늙은 건 아니었다. 질투와 시기마저 늙어버린 건 아니었다. 아무리 살을 섞진 못한다 할지라도 젊은 아비삭이 다윗과 알몸으로 부둥켜안고 잠이 드는 것까지 곱게 보아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드러내어 질투를 할 수도 없는 처지. 속으로만 끙끙 앓았었다. 그런 아비삭인데 아도니야가 차지한들 어떠랴. 더군다나 젊으나 젊은 아비삭도 간절히 원할 터인데. 그게 바로 밧세바의 인간적인 한계였다. 어찌됐든 아비삭은 다윗왕의 여자였다. 왕의 여자를 차지하는 건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압살롬이 잠시나마 다윗 성을 차지하고 후궁들을 욕보였던 것처럼. 그러나 그것도 결과적으로는 율법을 어긴, 죽임을 면치 못할 죄였다. 그런데도 아도니야는 아비삭을 원하고 밧세바는 기꺼이 협조할 생각이었으니. 밧세바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들인 솔로몬 왕을 찾아가 말했다. “아도니야가 무슨 낙으로 살겠습니까.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그가 원하는 아비삭을 첩으로 주는 게 어떨지요.” 신실한 솔로몬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뭣이라고요!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그 말을 아도니야가 어머니께 하더이까?” “그렇소.” “어찌하여 어머니는 쓸 데 없는 일에 참견하고 다니십니까. 어찌하여 그 자가 어머니를 모독하고 업신여긴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그가 어머니께 이 자리를 넘겨주라고 청한다면 그때도 제게 와서 이러시겠습니까? 어찌 감히 아바마마의 후궁을 넘보는 아들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렇게 어리석게 보이십니까? 이것은 반역입니다. 아바마마를 욕보이는 반역입니다.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밧세바는 어쩔 줄을 몰랐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 아도니야는 그렇게 동생에 의해 죽었다.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까. 압살롬과 아도니야의 패륜은. 밧세바는 이후 침잠했다. 다윗.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는 그렇게 끝났다. 약관 삼십 세의 나이에 유다 왕이 되었다. 그리고 칠 년 육 개월 만에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주변의 적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때까지 왕으로서 이십 년, 그의 삶은 신실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었다. 교만이 싹트고. 자신의 말 한 마디는 곧 법이 되었다. 두려울 게 없었다. 나태해지고. 시험에 빠져들었다. 아리따운 밧세바. 탐욕이었다. 탐욕에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마음도 멀었다. 그녀와의 관계는 죄악덩어리였다. 결국 시험을 이기지 못했으니. 그 후 이십 년. 다윗은 한 여인을 얻은 대가로 한순간의 참회가 아닌 죽을 때까지 처절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했다. 아들이 딸을 능욕하고, 아들이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비를 부정하고, 아들이 아비를 피해 살고, 아들이 아비를 반역하고, 아비가 아들을 피해 도망 다니고, 아비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비의 여자들을 능욕했으며, 아들이 아비를 죽이려 하여 결국 아비의 부하들이 아들을 죽여야 했다. 또 다른 아들도 반역의 칼을 뽑았다가 실패하여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아비가 죽자마자 채 시신이 식기도 전에 아비의 여자를 욕심내다가 마침내 왕이 된 동생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골육상쟁의 칼부림이 끊임없이 이어진 그의 삶. 양치기에서 왕으로. 하늘은 다윗에게 엄청난 은혜를 베풀었지만 상상도 할 수 없는 응징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다윗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린 게 사십 년. 전반기 이십 년이 은혜의 시간이었다면 나머지 이십 년은 바로 갈마의 시간이었다. 그 분수령이 밧세바와 간음이었으니. -끝-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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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7회
- 다윗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역전의 용사답게 싸움의 승패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결과는 전쟁의 승패가 아니었다. 아들 압살롬의 생사여부였다. 성의 문루에 있던 다윗의 눈에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오는 단기필마가 보였다. 단기필마는 곧 승리를 의미했다. 그러나 그는 더욱 초조했다. 말 위에 탄 이는 아히마아스였다. “어찌 되었느냐?” 다윗은 성급히 물었다. “전하, 기뻐하소서. 이겼사옵니다.” 아히마아스가 외쳤다. 궁금한 건 승리가 아니었다. “압살롬은 어찌 되었느냐?” 다윗의 목소리가 떨렸다. “영광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여호와, 폐하의 주님께서 은혜를 내리셔서 반역한 무리들을 무찔렀사옵니다.” “압살롬, 압살롬은?” 다윗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아히마아스는 다윗의 뜻이 오직 압살롬의 생사에만 있는 걸 알고 그대로 보고를 할 수가 없었다. “신이 떠날 때에 큰 소동이 일어난 줄은 알지만 자세히는 모르겠사옵니다.” 다윗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건만 입장만 난처해진 아히마아스였다. 그때 헐레벌떡 다윗 앞에 엎드려 절하는 흑인 전령이 있었으니. “폐하, 기뻐하십시오. 여호와의 은혜로 역적들은 모두 소탕되었습니다.” “그래, 압살롬은 어찌 되었느냐?” 다윗은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흑인은 서슴없이 말했다. “칼에 찔려죽었습니다. 앞으로도 역적의 무리는 그와 같이 비참하게 죽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다윗은 그만 땅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기어코 그렇게 되는구나. 혹시나 기대했더니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구나. 그는 절망했다. 땅을 치고 통곡했다. 경(經)은 이렇게 적고 있다. 다윗의 애통한 심정을.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다윗은 다시 한 번 절감했다. 하늘의 무서움을. 자신의 죄에 대한 응징이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 견뎌내기 힘든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렇지만 거기에서도 다윗의 시련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윗도 인간이었다. 반란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반란군 측에 가담한 정도와 진압의 공을 따져 십이 지파 중 유독 유다족에게 많은 주도권을 주게 되었으니. 그러자 다른 지파에서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그 불만을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킨 이가 있었으니 세바라는 자다. 세바는 다윗의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거룩한 땅이자 기업이다. 이 거룩한 땅이 더러운 피로 물들었다. 이 피를 불러온 장본인이 누구인가? 다윗은 더 이상 이스라엘 왕의 자격이 없다. 그 아들들의 행태만 봐도 알 수 있잖은가. 다윗은 사울처럼 여호와의 뜻을 저버렸다. 이제 여호와는 다윗을 버렸다. 다윗은 죄인이다. 죄인이 왕의 자리에 있는 걸 용납할 수 없잖은가!” 그러자 십이 지파 중 십 지파가 다윗을 따르지 않고 세바를 따르는 것이었다. 백성들의 마음은 갈대와 같았다. 세바의 반란은 곧 진압되었으나 민심 이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졌을 때의 고민이 거기에 있었다. 원초적 책임, 간음이었다. 밧세바와의 간음 이후 한시라도 마음 편한 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앞으로도 또 어떤 식으로 자신의 목을 죄어올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간음의 죄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아무리 궁리를 거듭해도 묘안이 나오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여호와에게 묻는 수밖에. 다윗은 여호와의 장막에 틀어박혀 몇날 며칠이고 나오지 않았다. 침식을 거른 채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기도하고 통곡하고 울부짖으며 간구했다. 어렴풋이 마음속으로부터 울림이 있었다.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음성. 그렇게 믿었다. 간음의 죄에서 비로소 해방이라는. 여디디야. 여호와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밧세바와의 사이에 솔로몬을 낳았을 때 나단 선지자는 그 아이를 축복하고 그런 이름을 주었었지. 그건 무슨 뜻인가.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뜻이 아닐까.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것은 밧세바와의 간음을 이미 용서하셨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간음은 죄이고 사망이면서 용서이고 축복이 됐다. 죄와 사망과 용서는 끝났다. 이제 축복만 남았다. 다윗이 기도 중에 내린 결론이었다. 다윗은 장막을 나와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으로 자신의 후계자임을 은연중에 암시했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여호와하나님의 뜻이라는 데엔 솔로몬이 간음의 산물일지라도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밧세바의 위치도 굳건해졌다. 그리고 지난날의 과오를 만회하려는 듯 다윗은 신실하게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또한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입게 되었으므로 왕이 되고나선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거스를 수 없는 사명을 주지시켰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다윗에게도 세월은 비켜가지 않았다. 다윗 말년. 나라 안팎은 안정되었고 이스라엘은 반석 위에 놓이게 되었으며 다윗은 늙었으되 성군으로 모든 백성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백성들은 다윗이 오래도록 이스라엘을 통치하길 원했다. 민심을 간파한 신하들은 늙어서 거동조차 힘든 다윗을 위하여 젊고 아리따운 처녀인 아비삭으로 하여금 시중들게 하고 행여나 체온이 떨어질까 염려하여 알몸으로 잠도 같이 자도록 조처했다. 다윗은 처음에 그러한 과잉 충성을 거절했다. 그러나 아비삭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름다웠다. 젊은 날의 밧세바를 보는 듯했다. 다윗은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못이기는 척 따랐다. 과욕이었다. 아무리 늙고 힘이 없어도 욕심은 끝이 없기 마련. 그러나 다윗은 너무 늙어 마음만 간절하지 몸이 따라주질 못했다. 당연히 남녀 간의 정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괜한 흠집만 남긴 꼴이었다. 신하들의 뜻은 이스라엘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왕에 대해 죽기 전까지 최대한으로 편안하게 살다 가시라는 배려였는데. 그야말로 아비삭은 인간으로서 회춘의 슬픈 묘약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다윗의 넷째 아들로 다섯째 부인인 학깃에게서 낳은 아도니야가 있었다. 아도니야는 살아있는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다. 뛰어난 용모와 야심만만한 기질과 아울러 용의주도한 정치력까지 갖춘 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으로 칭송이 자자했던 압살롬을 쏙 빼닮은 데다 그때까지 다윗의 심사를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보다도 아비를 공경하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본 것이다. 첫눈에 반한 것도 모자라 몸살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그림 속의 떡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후궁이나 마찬가지 신분. 어느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벙어리가 된 아도니야는 그녀를 먼발치에서나 보며 냉가슴만 앓았다. 그녀를 신하들보다 먼저 발견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그녀를 아버지에게 천거한 신하들이 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무슨 수가 없을까. 아버지만 아니라면. 아버지만 없었다면. 아, 한번만 안아볼 수 있다면 죽어도 좋았다. 원이 없을 것 같았다. 마침 그때, 다윗이 연로하여 무기력해진 틈을 타 주위에서 아비삭에 안달하는 아도니야를 부추기는 세력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군사력의 정점에 있던 군대장관 요압과 정신적 정점의 위치에 있는 제사장 아비아달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그녀가 아니었다. 왕권이었다. 그녀는 안중에도 없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엔 아직 어립니다.” “그렇지만 아바마마께서 솔로몬을 후계자로 이미 내정한 상태인데 어찌 아바마마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자고로 우리 이스라엘은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장자 우선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누가 이스라엘의 장자입니까? 솔로몬입니까? 왕자님이십니다. 어찌하여 굴러온 복을 차지하려 하지 않으십니까?” “아바마마께서 살아계시지 않습니까.” “폐하는 돌아가신 거나 진배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상태 아닙니까. 저희들이 있습니다. 이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 말입니다. 뭐가 부족하여 망설이십니까. 저희들은 왕자님께서 폐하의 뒤를 잇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회였다. 아도니야는 흔들렸다. 가만히 듣고 보니 못할 것도 없고 솔로몬에 비해 자신이 나으면 나았지 부족할 것도 없었다. 교만이 겸손을 누르고 고개를 내밀었다. 무엇보다도 왕이 되기만 한다면 아비삭을 안을 수 있었다. 아도니야는 왕권보다 아비삭을 안을 수 있다는 데에 더 혹했다. “그렇다면 모두 힘을 합쳐 봅시다.” 반역이었다. 셋째 아들 압살롬에 이은 넷째 아들의 반역. 아도니야는 어느 날 요압과 아비아달의 협력 하에 전차와 기마병과 호위병을 준비하고 모든 왕자와 문무백관과 백성들을 초대하여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며 스스로 이스라엘 왕이 되었음을 만천하에 선포했다.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그에 호응하여 새로운 이스라엘 왕의 탄생을 축하하고 아도니야 왕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초청받지 못한 인사가 있었으니 그들은 선지자 나단과 다윗의 호위 용사들을 비롯하여 대장 브나야, 제사장 사독, 그리고 솔로몬 등이었다. 나단 선지자는 아도니야의 반란 소식을 듣고 그건 여호와의 뜻이 아니라며 밧세바를 찾아갔다. 나단의 생각에 이스라엘의 왕은 장자권보다 하나님의 선택이 우선이었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라 자처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뭣이라고요?” 밧세바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도니야의 반란? 압살롬에게 놀랐던 가슴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여 간이 콩알만큼 작아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당연히 다윗의 후계자는 자신의 아들 솔로몬이라 믿고 있던 그녀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한시가 급하오. 어서 빨리 폐하를 뵈어야겠습니다. 폐하께선 까마득히 모르고 계실 것입니다.” “당연히 모르시지요. 폐하를 만나서 어쩌시려고요?” “제 말대로만 하십시오. 마마의 안위와 솔로몬 왕자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나단은 밧세바에게 계교를 일러주었다. 밧세바는 다윗의 침실로 들어갔다. 급했다. 다윗은 앉아있을 기력도 없는 듯 누워있는데 아비삭이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밧세바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밧세바는 아비삭을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쳐 다윗 앞에 이르러 허리를 굽혔다. “폐하, 밧세바입니다.” 죽은 듯 누워있던 다윗은 힘겹게 눈을 떴다. “어쩐 일이시오, 부인.” “어쩌면 좋습니까, 폐하.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오!” “폐하께서 지난 날 여호와께 맹세하시며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가 요압과 아비아달 등과 모의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단 말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말이 꿈결처럼 들렸다. 단지 온몸이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분노할 힘도 없었다. 그대로 의식마저 꺼져버렸으면 싶었다. “저와 솔로몬은 이제 죽은 목숨입니다. 아도니야가 이대로 두겠습니까? 통촉하시옵소서.” 그때 선지자 나단이 들어왔음을 아비삭이 알렸다. 다윗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나단은 다윗 앞에 엎드려 절하고 질책하듯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아도니야가 후계자란 언질을 주신 적이 있으십니까?” 다윗은 나단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좌우로 힘없이 흔들었다. “그렇다면 아도니야의 음모입니다. 지금 아도니야가 왕이 된 것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왕자들과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도 그 무리에 끼어있습니다. 벌써 아도니야 왕 만세를 부르고 있다 합니다. 그들은 저와 제사장 사독과 호위대장 브나야와 솔로몬을 쏙 빼놓은 채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어서 입장을 명확히 하십시오.” 골육상쟁의 칼부림. 그 지긋지긋한 고통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다윗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 하나의 아들이 간음의 희생물이 되고자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마저 내 탓이로다.’ 갈마(羯磨)는 아직도 말년의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확신했다.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는 일은 파멸뿐이란 것을. 기도 가운데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자신 다음은 솔로몬 편이었다. 그래야만 간음이 죄에서 해방되고 최후의 축복이 될 수 있었다. 그걸 모르고 덤벼드는 아들이 안타까웠다. “밧세바를 앞으로 오게 하시오.” 긴장이 방안을 짓누르고 있었다. 조용히 밧세바가 다윗 앞에 섰다. “잘 들으시오.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여호와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의 후계자는 솔로몬이오. 오늘 당장 즉위식을 거행토록 할 것이오. 그 누구도 이 일, 즉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감히 반대하지 못할 것이오.”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 다윗의 단호한 어조였다. 꺼질 듯하던 그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밧세바는 감격하여 울었다. 다윗은 곧이어 사독과 브나야를 불러 나단과 함께 자신의 노새에 솔로몬을 태워 기혼으로 가 의식을 거행하도록 명을 내렸다. 왕의 노새는 왕만이 탈 수 있었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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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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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6회
- 열락의 나날을 보낸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이 찾아와 다윗과 그 무리들을 칠 계획을 내놓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아히도벨은 다윗을 너무도 잘 알았다. 다윗과 함께 했을 때도 그의 전략은 한 치의 빈틈도 허락지 않았다. “다윗은 지쳐 있습니다. 따르는 무리도 많지 않거니와 사기도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겁니다. 저에게 군사 일만이천 명만 주십시오. 이대로 뒤를 쫓으면 따라잡기 십상입니다. 많은 피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적들은 우리의 엄청난 힘만 보고도 지리멸렬, 감히 무서워 쥐구멍이라도 찾아 도망칠 게 뻔합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는 어쩔 수 없이 저희들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직도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전하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다윗만 잡으면 됩니다.” 자신에 차있는 아히도벨의 말에 압살롬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압살롬은 더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다윗의 또 다른 책사였던 후새를 불렀다. 다윗을 아는 건 아무래도 아히도벨보다 후새가 한수 위라 생각되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아히도벨의 전략이?” “아히도벨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그는 다윗 왕을 이빨 빠진 호랑이라 하였으나 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분명히 이빨도 빠지고 곤경에 처해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그는 용사 중의 용사입니다. 그 추종세력의 용맹함은 수가 적어졌다고는 하지만 명불허전이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곰이 새끼를 뺏긴 것같이 몹시 격분한 상태입니다. 쥐새끼도 도망갈 길을 놔두고 잡으라 했습니다. 막바지에 다다르면 아무리 쥐새끼일망정 고양이에게 달려들어 무는 법입니다. 우리가 수만 믿고 밀어붙인다면 그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같은 이스라엘 백성끼리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을 잡은들 우리의 국력은 형편없이 쪼그라지고,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변방이 안정되었다고는 하나 그건 상대적입니다. 우리의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약해진다면 변방의 대적들이 가만있겠습니까? 또한 다윗의 많지 않은 군사로 우리 군사들의 많은 수가 쓰러진다면 백성들은 분명 동요할 것입니다. 패배를 모르는 다윗이라고. 골리앗을 쓰러트렸던 그 옛날을 회상하면서 여호와의 축복이 다윗 왕을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군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기가 떨어질 것은 물론 감히 나서서 싸울 생각을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엔 전하께서도 끝장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압살롬의 얼굴은 굳어졌다. 이글거리는 다윗의 눈이 떠올랐다. 그 눈빛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후새를 부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강해져야 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곤 친히 전하께서 선두에 나서 정정당당하게 싸우십시오.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해야 합니다. 옴짝달싹 못하게.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이 온 초원을 적시는 것과 같이 저희의 어마어마한 힘을 저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혹시라도 그가 어느 성에 숨어 꼼짝을 않는다 할지라도 동아줄로 그 성을 칭칭 감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아당겨 무너뜨린다는 각오로 나서야 될 줄로 압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합치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설령 이긴다할지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합니다. 섣불리 나섰다간 큰 코 다치게 됩니다. 아무리 늙었다고 다윗을 절대 얕보지 마십시오.” 후새는 다윗에게 시간을 벌어줄 심산이었다. 아히도벨의 전략이라면 십중팔구 다윗이 질 게 뻔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말보다 후새의 신중한 말이 더 완벽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했다. 후새는 눈앞의 이익보다 먼 훗날까지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듯했다. 후새는 압살롬이 그의 말을 좇아 행할 걸 알고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신신당부했다. “다윗 왕께 전하시오. 오늘 밤 안으로 광야 나루터에서 요단강을 건너라고 말이오.” 사독과 아비아달은 자신들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를 불러 다윗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아히도벨은 절망했다. 자신은 충분히 다윗을 잡을 자신이 있었다. 후새의 전략은 말만 그럴 듯하지 어림도 없는 일일뿐 아니라 다윗에게 재무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압살롬이 자신의 계략을 따르지 않고 후새의 전략을 취한 건 하늘이 아직도 다윗을 돕고 있다는 증거였다. 압살롬의 천하는 거기까지라 보았다. 다윗의 명이 다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 다윗은 위대하다. 사소한 실수와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아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으나 언제 어느 때 다윗에게 다시 향할지 알 수 없는 게 변덕스러운 민심의 속성이었다. 앞날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아히도벨은 나귀에 안장을 씌웠다. 자신이 압살롬에게 더 있어야 할 명분이 없었다. 다윗에게 갈 수는 없었다. 갈 길은 딱 하나. 죽음뿐. 허탈했다. 사탄에게 놀림 당한 기분. 고향으로 향했다. 그리곤 가산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을 매어죽었다. 다윗과 함께 유랑의 길에 들어선 밧세바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린 아들들을 챙기는 것도 힘들었지만 자신의 할아버지가 압살롬의 책사라는데 심리적인 고통이 더 컸다. 어째서 할아버지는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에게 기대를 걸었을까. 이방인인 우리아와의 결혼을 반대한 할아버지였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서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었다. 그런데 다윗을 알게 되고 우리아가 죽고 다윗의 처가 되어 살면서 할아버지를 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을 배신하고 간음한 손녀가 왕의 부인이 되었음에도 끝내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런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율법에서도 큰 죄악으로 여기는 자살을. 내가 만약 다윗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약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약 정숙한 요조숙녀로 남았더라면 압살롬의 반란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가 압살롬의 편에 서지도 않았을 것이고 허망하게 목숨을 끊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밧세바도 괴로웠다. 광야 나루터에서 후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다윗은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맞아 상세한 얘기를 듣고는 부리나케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요단강을 건너 보다 안전한 마하나임에 이르니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무리들이 그를 환대하는 것이었다. 지치고 피곤한데다 몹시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에서 뜻밖의 응원군이 가져온 꿀과 버터와 치즈와 양고기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여호와하나님의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삭막한 광야를 헤맬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에서 내렸던 구원의 만나처럼. 그들은 배불리 먹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다윗이 마하나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압살롬은 뒤늦게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땅에 진을 쳤다. 다윗은 휴식을 취하는 중에 전열을 가다듬었다. 부족하나마 그를 따르는 백성들 가운데 백부장과 천부장을 세우고 군대장관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와 블레셋 사람이지만 전에도 충성심이 강하고 지금도 변함없는 잇대에게 각각 삼분의 일씩 군사를 맡겨 지휘케 하고는 자신도 직접 전투에 나가 싸우리라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신하들은 다윗이 친히 나가 싸우는 걸 한사코 말렸다. “폐하는 귀중한 몸입니다. 폐하가 곧 이스라엘입니다. 폐하가 계심으로 저희들이 있습니다. 만약 폐하께 위험한 일이 닥치게 된다면 저희들의 사기는 짚 검불을 태운 재처럼 사그라지고 말 것입니다. 부디 옥체를 안전한 곳에서 보존하고 계시옵소서.” “고마운 일이오. 정 그렇다면 그대들의 말에 따르리라. 그러나 간곡히 부탁할 말이 있소.” “부탁이라니 당치 않으십니다. 분부 내려 주시옵소서.”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윗은 침통한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봐서라도 나의 못난 아들 압살롬을 부디 살려주시오. 그놈이 비록 잠시나마 눈이 뒤집히고 귀가 멀어 역적질을 하였으나 모두가 나의 부덕에 따른 것이오. 아비의 죄가 많아 그런 아들도 있나 봅니다. 그러니 불쌍하게 생각해 주길 바라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게 바로 여호와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소?”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윗의 간절한 바람에도 그들이 숙인 얼굴에서는 어떤 표정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다윗은 무서웠다. 나단 선지자의 경고는 그의 마음속에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그가 두 눈 벌겋게 뜨고 살아있는데도 많은 백성 앞에서 궁에 남겨둔 후궁들이 능욕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러한 압살롬의 패륜행위도 따지고 보면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원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압살롬을 암암리에 조종하는 자, 그 보이지 않는 힘, 자신을 향한 여호와의 징계, 그게 무서웠다. 어찌 보면 압살롬도 희생물이었다. 섭리의 희생물. 업보의 희생물. 갈마의 희생물. 이제 압살롬의 패배와 죽음만 남았다. 다윗은 그걸 알았다. 그래서 괴로웠다. 아비가 아들을 죽여야 하고 아들이 아비를 죽여야만 하는 비극적 현실이 자신의 죄로 인한 잉태물이라니. 하늘. 여호와하나님. 온몸에 털이 곤두서도록 무서웠다. 내가 만약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평범한 양치기로서 살고 있었더라면, 밧세바와 간음만 없었더라면, 우리아만 죽이지 않았더라면, 암논만 제대로 징계했더라면,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떠나는 걸 막았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만시지탄.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골육상쟁의 칼부림, 압살롬이 죽는 것까진 막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드디어 에브라임 숲에서 맞붙어 격전을 치르기에 이르렀다. 다윗의 군사들은 수적으로는 열세였으나 지형을 잘 알고 전투경험이 많은데 비해 압살롬의 군사들은 숫자만 많았지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요단강 동편에 있는 에브라임 숲은 계곡이 불규칙하여 낭떠러지가 많고 늪이 수도 없이 많아 게릴라전을 벌이는 다윗 군사들에게 아주 유리했다. 게다가 다윗의 군대는 후새로 인하여 압살롬의 전략을 빤히 꿰뚫고 있었다. 따라서 압살롬의 군사는 월등하게 수적으로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수풀 이곳저곳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다윗 군사의 귀신같은 전략에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되었다. 칼에 찔려 죽은 수보다 지형에 익숙지 못하여 웅덩이에 빠져죽거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수가 더 많았는데 그 전투에서 죽어나간 수는 거의 이만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 기세등등하여 단번에 다윗 군사를 쳐부수려 선두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압살롬은 당황하고 말았다. 타고 있던 노새도 당연히 허둥댔다. “너무 얕잡아봤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사방에서 다윗 군사들이 승승장구. 그는 서둘러 노새의 엉덩이에 채찍을 휘둘렀다. 우선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놀란 노새는 벼락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투구가 벗겨지고 머리칼이 노새가 일으키는 바람에 휘날렸다. 얼마쯤 내달렸을까. 머리카락이 뽑히는 아픔이 느껴지는 찰나, 몸이 붕 뜨더니 압살롬의 용모를 한층 돋보이게 해주던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상수리나무가지에 걸리고 말았다. 노새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내달리고. 그는 그대로 상수리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그 누가 알았으랴. 그의 그런 어처구니없는 최후를. 요압 수하에 있던 장수가 그걸 보고 요압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그러자 요압은 대노했다. “뭐라고! 그걸 보고 그냥 뒀단 말이야? 먼저 그놈을 죽이고 보고해도 늦지 않을 것을. 참으로 딱하구나. 네가 만약 그를 죽였더라면 내가 많은 상을 내렸을 터인데.” 그러나 그 장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는 아무리 많은 상을 내리신다 할지라도 감히 폐하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폐하께서 장군께 한 압살롬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뭐라? 이 괘씸한 놈. 그놈은 왕자라 할지라도 역적이니라. 어째서 아무런 죄도 없이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가겠느냐. 다 그놈의 역적질 때문 아니냐. 역적의 말로는 바로 죽음뿐이니라. 그놈이 죽어야 많은 사람들이 산다. 아무리 폐하의 부탁이 있어도 그건 사사로운 정에 지나지 않으니.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는 걸 어찌 모르느냐.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 네가 죽고 내가 죽는단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만약 그를 죽였다면 장군께서도 상을 내리기는커녕 어명을 어긴 죄로 저를 처벌하셨을 것입니다.” “오냐, 나는 긍휼보다 공의를 택할 것이니라.” 요압은 고집을 굽히지 않는 장수를 질책하고는 부하들을 이끌고 압살롬이 매달려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압살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요압은 그런 압살롬에게 곧장 다가가 머뭇거리지도 않고 심장을 찌르고 머리카락을 잘라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요압의 부하들이 달려들어 피로 범벅되어 꿈틀거리는 압살롬의 온몸을 난자하여 숨을 끊어놓았다. 그렇게 압살롬은 죽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것으로 반란은 끝나고 말았다. 압살롬의 시체는 구덩이에 처박히고 그 위로는 돌무더기가 쌓아졌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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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5회
- 다윗은 자신을 잃었다. 금방이라도 성 밖에 자신을 해치려는 무리들이 몰려들 것만 같았다. 어찌해야 하나. 아무리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도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도리가 없었다. 우선은 시간을 벌기 위해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었다. 그 수많은 대적들과 싸움에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도 끝내는 승리를 쟁취하여 이스라엘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그였지만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현실 앞에 전의를 상실한 것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신하 하나가 힘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죽을 각오로 싸우든가 그렇지 않으면 다음을 기약하고 이곳을 피하는 수밖에는.” 누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다윗은 주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많던 신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렇다. 이곳에서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다. 무고한 백성들의 피만 부를 뿐. 일단 이곳을 피하고 보자.”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궁에는 험난한 피난길을 예상하고 열 명의 후궁들을 남겨두어 궁을 관리하도록 일렀다. 압살롬이 아무리 반란을 일으켰다 할지라도 어미나 다를 바 없는 그녀들을 어쩌진 못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또한 제사장인 아비아달과 사독에게 성에 남아 여호와하나님의 언약괘를 지키라 명했다. 그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가 자신을 버리지 않으신다면 언젠가는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와 언약괘와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우러나온 소신이었다. 그리고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인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으로 하여금 성과 자신과의 연락을 맡도록 당부했다. 다윗은 기드온 시내를 건너 광야로 향했다. 처량한 유랑 길이었다. 아들에게 쫓겨 달아나는 아비의 신세. 하늘을 볼 엄두도 나지 않고 백성들을 바라볼 면목도 없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과였고 예견된 하늘의 응보였다. 얼굴을 가리고 신도 신지 않은 맨발로 감람산을 오르다보니 따르는 백성들이 슬피 울었다. 다윗도 그만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미어지고 갈가리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같은 무고한 백성끼리 피를 볼 게 너무나 뻔했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누구냐! 압살롬을 돕는 머리는.” “아히도벨입니다.” “아히도벨이?”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밧세바의 조부가 아닌가? 그가 어떻게? 아히도벨은 전략의 귀재이자 지혜 덩어리였다. 전장의 다윗 옆에는 언제나 아히도벨이 있었다. 그 많은 승리 뒤에는 아히도벨의 전략이 있었다. “여호와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이 종을 잊지 않으셨다면 아히도벨의 모략이 아무 쓸모없게 하옵소서.” 자신도 모르게 다윗은 여호와께 울부짖었다. 산마루에 있는 여호와를 경배하는 성소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때 마침 다윗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가 굳게 신뢰하는 후새가 옷을 찢어발기고 얼굴엔 흙을 잔뜩 묻힌 참담한 모습으로 나타나 다윗을 맞이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다윗은 천군만마를 만난 듯 후새가 반가웠다. “얼마나 침통하십니까, 폐하. 이럴 때일수록 옥체보존하소서.” “그대를 만나 더없이 다행이구려.” “제가 무슨 힘이 될 수 있을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무슨 겸손의 말이오.” “폐하가 가시는 곳 어디라도 보필하겠나이다.” 다윗은 그때 머리를 스치는 비상한 생각을 끄집어냈다. “그대는 나와 같이 갈 게 아니라 꼭 해줘야 될 일이 있소. 그대가 아니면 못 할 일이오.” “무슨 일입니까? 목숨을 바쳐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압살롬에게 거짓으로 투항하시오. 압살롬은 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도 필시 그대를 중용할 것이오. 저쪽에선 아히도벨이 전략을 쥐락펴락하니 그 전략에 내가 곤경에 처할 게 틀림없소. 그 전략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게 그대가 할 일이오. 또한 그곳엔 사독과 아비아달이 언약괘와 함께 있으니 내가 알아야할 일이 있으면 그들에게 전하시오. 그들의 아들들이 내게 알려주게 돼 있소. 나는 광야 나루터에서 소식이 오길 기다리겠소.” 다윗답지 않은 계략이었으나 후새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갔다. 천륜을 거스른 압살롬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거라 맹세하며. 반석 위에 서있는 이스라엘을 패륜아의 손에 넘길 수 없다고 다짐하면서. 다윗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다. 일행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힘들고 지친 판에 사울 왕의 친족인 시므이가 무리를 이끌고 나타나 돌멩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어대는 것이 아닌가. “잘 되었도다, 네가 사울 왕께서 키워준 은혜를 저버리고 그 일족을 처단하여 왕위를 차지하더니 영원히 잘 될 것 같았느냐. 칼로 일어서는 자 칼로 망하고, 배신하는 자는 똑같이 배신을 당하는 법. 피 보기를 좋아하는 자여, 천하의 배신자여, 가라, 가라, 사라져가라. 사울 왕의 원한을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셨도다. 네가 잠시 왕이 되었을지언정 끝내 네 자식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는 건 여호와하나님의 뜻이 어떻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니더냐. 바로 너의 업보이고 갈마이니라.” 다윗은 꾹 참았다. 그러한 시므이의 저주도 자신의 부덕의 소치이고 여호와의 뜻이려니 생각했다. 그래서 옆에서 듣고 있던 장수가 그의 목을 베려는 걸 막았다. 시므이는 사울의 친족 중 한 사람으로 다윗에 대해 별다른 이유도 없이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아무 말 없이 나아가자 시므이는 따라가면서 더욱 더 소리 높여 저주를 퍼부으며 돌을 던지고 일행을 못살게 굴었다. 사람들은 간사했다. 다윗은 그 간사한 마음을 어려운 상황에 이르자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기어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겠노라고. 압살롬만 괘씸한 게 아니었다. 압살롬을 부추긴 세력, 그들이 원수였다. 마침내 압살롬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별 어려움 없이 다윗왕성을 접수했다.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는 찾아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왕의 신하였던 자들의 열렬한 환영까지 받았다. 또한 언약괘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과 함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여호와의 축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을 맞아 열광하는 백성들도 보았다. “여호와하나님 만세, 이스라엘 만세, 압살롬 왕 만세!” 그 와중에 후새의 정중한 환대가 특히 감격스러웠다. “귀하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충성스러운 신하였는데 어찌하여 따라가지 아니하였소?” “저는 여호와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의 백성일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전하를 선택하였고 모든 백성들이 원하는데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전하의 아버지를 섬기듯이 저는 이제 전하를 섬길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젠 늙으셨습니다. 그래서 판단도 흐려졌습니다. 옛날과 같은 용맹함과 총기도 사라졌습니다. 이젠 쉬실 때가 되었지요. 이런 방법을 택한 거야 물론 잘못인 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아바마마의 고집을 아시잖습니까. 부디 저를 도와 아바마마를 설득하여 주십시오. 저도 피를 원치 않습니다. 아바마마를 편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자문도 구할 것이고요.” “그래서 제가 남았습니다. 성심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압살롬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윗이 앉았던 의자에 기고만장하여 책사 아히도벨에게 물었다. “짐이 첫째로 해야 될 일이 무엇이오?” 아히도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성에는 선왕을 따라가지 못한 후궁들이 있습니다. 그녀들을 취하십시오.” “뭐라고요! 아바마마의 후궁들을?” “그렇습니다. 예로부터 승리자는 패배자의 아녀자를 갖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부자의 관계가 아닙니다. 피아(彼我)일 뿐입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압살롬은 망설였다. 어떻게 아버지의 여자를 깔아뭉갤 수 있단 말인가.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런 자를 죽이는 자에게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율법이 무서웠다. 그러나 율법도 전쟁 시에는 예외가 아니었던가. “적장의 여자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이제 전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마땅히 그 여인들도 전하의 소유입니다. 뭘 망설이십니까. 궁궐에서부터 선왕의 잔재를 사그리 없애야만 합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의를 그르치지 마시옵소서.” 아히도벨의 간계였다. 그는 다윗이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괘씸했다. 자신의 손녀인 밧세바. 남편인 우리아를 죽이면서까지 뺏어간 행위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너도 치욕을 맛보아라, 앙갚음이었다. 그는 자진해서 다윗을 죽이려는 역적이 되었다. 그렇지만 다윗이 어떤 인물인가. 그 많은 시련에도 굴하지 않은 역전의 용사 중의 용사가 아닌가. 압살롬이 부자간의 정을 내세워 다윗을 살려주지 않을까 아히도벨은 두려웠다. 다윗이 살아있는 한 압살롬을 도운 자신은 다리를 뻗고 잠들지 못할 건 자명한 일이었다. 따라서 압살롬이 다윗과의 관계를 철저히 끊도록 해야만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도록 하는 것이었다. 족쇄를 채우는 것. 부자간이 아니라 철천지원수가 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선왕의 여자였다. 압살롬으로 하여금 후궁들을 취하게 하는 건 부자간의 정 따위는 생각지도 말라는 족쇄였다. 절대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어떻게 해서든 건너도록 하는. 압살롬은 이제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다. 전쟁에 승리한 자가 처첩을 취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권리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저항이 있을 수 없었다. 경(經)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 지붕이 문제였다. 다윗이든 압살롬이든. 이 소식을 접한 다윗은 온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압살롬의 패륜행위도 그렇지만 나단의 경고가 너무 생생했다. 그것은 곧 여호와의 뜻이 아니던가. “내가 너를 저주하여 밧세바를 취한 대가로 네가 두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데도 백주에 네 부인들이 능욕을 당하게 되리라.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서 네가 죽게 될 줄을 정녕 몰랐단 말이야.” 그것도 이방인이 아닌 믿고 사랑했던 아들에게 능욕을 당하다니! 치욕이었다. 살고 싶은 의욕이 싹 가셨다. 그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절벽과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과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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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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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4회
- 어찌해야만 합니까. 어디까지가 무지한 인간의 소치이고 당신의 뜻이며 회개의 끝입니까. 당신의 경고에 의한 희생제물은 무엇입니까. 나 같은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또 다른 인간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정녕 당신의 뜻입니까. 우러르고, 매달리고, 때론 원망도 하며 보낸 세월. 그 세월이 흐르고. 어찌할 수 없는 부정(父情). 아들이 보고 싶었다. 울고만 싶은 마음, 마침 요압이 때려주었다. 실컷 울도록. 그런데 막상 압살롬의 얼굴을 대하려니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용서하는 마음보다 미움이 더 컸고 보고 싶은 마음보다 괘씸함이 더 컸다. 너는 그래도 살아있다. 너를 볼 수 있는 날은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다. 결국 다윗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불러 놓고도 이 년 동안이나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압살롬.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은 압살롬. 그는 당당했다. 그는 전보다 더욱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 압살롬을 경(經)은 이렇게 적고 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러나 압살롬은 초조했다. 다윗이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부른 것은 지은 죄를 용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기대도 컸다. 성심을 다해 아버지를 보필하리라 다짐하며 마음껏 자신의 포부도 펼쳐보리라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다윗으로부터 기별은커녕 얼굴조차 대할 수 없게 되자 용서한 것이 아니라 신하와 백성들의 요구에 마지못해 응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압살롬은 자신을 데려온 요압을 불렀다. 무엇 때문에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냐고 따질 심산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 처박혀 세월만 보내느니 그술에 그대로 있는 편이 나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몇 번의 부름에도 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던 압살롬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완전 다윗과 요압의 술수에 놀아난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하인들에게 명하여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질러버리라고 명했다. 그리하면 요압이 화가 나 자신에게 분명 따지러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압은 은혜를 모르는 압살롬의 행위가 너무 괘씸하여 부리나케 그를 찾아 따지고 들었다. “어찌하여 왕자님의 하인들이 저희 보리밭에 불을 지르는 못된 짓거리를 한 겁니까?” “그걸 정녕 모른단 말이오?” “모르오.” “왜 나를 그술에서 데려왔습니까? 하고 많은 날 침대나 지고 있으라는 거요? 도대체 무엇 때문이오! 어째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는 거요.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십니까? 차라리 날 죽이라고 그러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느니만 못합니다. 나는 아바마마와 이스라엘을 잊고 체념했던 사람입니다. 나마저 체념했었단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왔습니다. 아바마마께서 날 그리워하신다면서 말이오. 그래서 여기로 왔을 때는 아바마마와 이스라엘과 나의 앞날에 대한 기대로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내가 할일이라곤 그술에 있는 것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하도 답답해서 장군을 불렀지만 내 얘기에 콧방귀나 뀌었습니까? 밭에 불을 지른 건 사과드리지요.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아바마마를 뵙게 도와주시오. 아직도 내게 죄를 물으신다면, 암논을 징계치 않고 방치한 결과 제가 대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처단한 죄를 물으신다면 달게 받을 것입니다.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서 뜻 한번 펴지 못하고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백번 낫겠습니다.” 하긴 요압도 다윗의 처사가 못마땅하던 참이었다. 요압은 압살롬에 대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빼어난 용모와 거기에 용맹스러운 데다가 지혜까지 출중함은 분명 이스라엘을 위한 여호와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백성들의 마음은 다분히 다윗 다음은 압살롬이라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서두름은 기다림만 못하다는 판단 아래 다윗의 처분만 바라고 있었는데 압살롬이 그걸 못 참아 엉덩이를 들썩이고 방정을 떠는 것이다. 다윗은 아직까지도 압살롬의 자중을 바라고 있을 텐데. “다시 그술로 돌아가리까?” “알겠습니다.” 요압은 무거운 심정으로 다윗을 만났다. 그리고 간청했다. 조그마한 화로 큰 복을 걷어차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압살롬은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이라고. 지나간 죄에 연연하지 말라고 다윗의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다윗은 압살롬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어차피 늦고 빠름이 다를 뿐 길은 원상회복 쪽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과 압살롬 부자는 그렇게 해서 다시 만났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다. 압살롬을 만난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한 압살롬의 죄가 봄눈 녹듯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여호와의 축복이라 여겨졌다. 땅에 엎드려 절하는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이놈, 압살롬 내 아들아. 어디 보자. 그동안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마음고생이 여간 아니었음을 내가 다 안다. 이제 지나간 일은 잊기로 하자.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고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구나. 더욱 분발하여 네 꿈을 활짝 펴보아라.” “아바마마, 이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 이 아들을 믿어주십시오. 전심을 다하여 아바마마를 위하고 이스라엘을 위하겠습니다.” 압살롬은 고무되었다. 장애는 사라졌다.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예상하긴 했지만 민심을 살펴보니 어느 왕자보다도 자신에게 이스라엘의 미래를 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족쇄가 풀리자 암중모색하고 있던 신하들이 하나 둘 자신에게 줄을 대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다윗은 지는 해고 자신은 떠오르는 해라는 걸 신하들이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이리라. 압살롬은 실력을 쌓고 힘을 비축해갔다. 사병을 조직하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한편으로 자신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기병 오십 명이 항상 호위하게 했다. 또한 그는 다윗에 앞서 백성들의 불만을 탐지하고 해소하려 노력했으며 심지어 다윗의 고유 권한인 재판까지도 노고를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서슴없이 가로채어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에 혈안이 되어갔다. 이러기를 사 년. 백성들은 차츰 압살롬의 민심 사로잡기에 편승하여 그를 지지하기에 이르렀으니, 압살롬과 그의 가신들은 기고만장해지고 오만해져 갔다. 그때에. 통일 왕국 이스라엘이 될 때까지 수도였던 헤브론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수도가 옮겨가자 불만이 쌓여있던 터였다. 헤브론은 압살롬의 탄생지였다. 가신들은 세력이 커지게 되자 다윗이 있는 예루살렘의 한계를 절감하고 헤브론으로 근거지를 옮기자고 압살롬을 부추겼다. 그도 원하던 바였다. 그리하여 그술에 있을 때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헤브론에서 실행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붙여 다윗의 허락을 받아냈다. 다윗도 헤브론의 불만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압살롬이 스스로 간다고 하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줄은 모르고 오히려 더없이 좋은 일이라 여겨 쉽게 허락한 것이다. 헤브론으로 온 압살롬은 거칠 것이 없었다. 비가 내린 땅이 더 굳어지듯이 왕은 자신을 믿고 있었다. 막강한 사병 조직과 백성들의 호응은 의외로 커 그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갔다. 다윗의 신하들도 서서히 압살롬의 수하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의외로 다윗의 가장 뛰어난 책사 중의 하나이자 밧세바의 할아버지인 아히도벨이 끼어 있었다. 압살롬은 자신의 세력이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되자 여호와의 은혜가 다윗으로부터 자신에게 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호와는 곧 하늘이었다. 하늘이 사울 왕을 저버리고 아버지 다윗을 선택한 것처럼 이젠 나를 선택할 차례. 하늘의 뜻을 받들지 않는 것 또한 죄악 아닌가.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한다. 압살롬은 나름대로 자신이 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자기최면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근본인 열두 지파에 사람을 보내 민심잡기에 들어가는 한편 때가 되었을 때 즉각 호응할 수 있도록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윗으로부터 홀대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서슴없이 떠나온 신하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더욱 더 압살롬을 부추겼다. “하루라도 빨리 여호와의 영광을 받으소서. 다윗 왕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민심은 압살롬 전하에게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대세입니다. 천심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주저치 마시고 대업을 받드소서.” 그것은 마약이었다. 끊을 수 없는 유혹은 현혹으로 진화하기 마련.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니 아비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취된 기분은 날이 갈수록 왕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로 바뀌어 결국 자신이 하나뿐인 이스라엘 왕임을 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이제 압살롬 본인입니다. 본인의 아비이자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은 충신의 아내를 짓밟고도 모자라 그 충신을 사지로 몰아 죽게 한 살인자이며 끝내 그 아내를 탈취하여 부인으로 삼은 죄인입니다. 또한 왕자인 암논이 여동생을 강간한 죄를 사사로운 감정으로 묻지도 않고 방관하여 율법을 우롱하고 여호와하나님을 무시하였으며 오히려 그 패륜아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응징한 본인을 변방으로 돌게 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궁은 온통 후궁 천지라 그 치마폭에 휩싸여 국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고, 그가 뿌린 씨앗들의 세상이라 율법이 바로 서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은 그런 다윗에게서 떠났습니다. 이에 본인은 민심을 존중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자 감히 나섰습니다.” 그것은 다윗에 대한 반역이었다. 아들이 아비를 배신한 것이다. “폐하,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뭐라고!” 다윗은 그러한 보고를 신하로부터 듣고는 깜짝 놀랐다. “폐하, 이스라엘 대다수 백성의 마음이 예루살렘을 떠나 헤브론을 향해 있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폐하를 떠나 압살롬 왕자에게로 임했다는 풍문까지 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동안 압살롬 왕자는 암암리에 막강한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고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떻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여호와여, 언제까지입니까? “많은 신하들마저 속속 압살롬 휘하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부덕했단 말인가.”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세우셔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은 하루 이틀 전에 계획을 수립한 것이 아닐진대 지금 당장 어떻게 대책을 수립할 수 있겠느냐.” 눈앞이 캄캄했다. 무력감만 넘실거렸다, 압살롬이 아닌 여호와께. 나단에게서 여호와의 경고를 받을 때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여호와는 그때 이미 나를 버렸구나. 나는 일찍이 이 자리를 떠나야 했었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믿었던 자식이, 그토록 사랑했던 자식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나의 울부짖는 기도도 뼈를 깎는 회개도 소용이 없었구나. 자식에 의한 반란이 일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내게서 여호와는 떠난 것인 걸. 아직도 나단을 통하여 여호와는 대답이 없지 않은가. 내 죄악으로부터 나를 모질게 살려두었던 것, 그것도 응징이 아니고 무엇인가. 두고두고 고통을 받으라는. 여호와의 용서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 그렇지만 내가 의지할 데라곤 오로지 그 분밖에 없지 않은가. 자비를 주시든 안 주시든 그 분의 뜻인 것을. “지금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 중이랍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신하들이 모조리 헤브론에 있다고 합니다. 어서 대책을 세워 주소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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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3회
- 다윗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달랑 시종 하나만 데리고 길르압의 집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정말 아무도 몰라야 했다. 만약 이 사실이 백성들의 입에 회자된다면 길르압은 물론이고 여호와의 기름부음의 은혜를 받은 자신마저 내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여호와를 거역한 사울 왕의 비참한 최후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길르압은 태연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다윗을 보자 황급히 일어나 무릎을 꿇어 그를 맞이했다. 얼굴도 요르답이 말한 것과 달리 그대로였다. 다윗은 적이 안심이 되었다. 분노가 많이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요르답의 말이 거짓말이길 빌면서. “요르답의 말이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다윗에 비해 길르압은 여전히 태연했다. “무엇이 사실이란 말이냐?” “여호와는 없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의 여호와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의 염원일 뿐입니다.” “그만!” 더 들을 말이 없었다. 더 들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정신이 아뜩했다. 다윗은 그대로 눈을 감고 기도했다. “사랑의 여호와하나님, 이 불쌍한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다윗가의 멸망이 눈에 선했다. “너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 이 애비가 미워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라고 어서 말해다오, 내 아들아!” 그러기를 바랐다. 자신이 미워서 길르압이 반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아바마마께서는 눈에 훤히 보이는 모순을 어째서 여호와의 뜻으로 돌리시는 겁니까.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여호와께서 살인을 종용해왔습니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던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이방 침략을 숱하게 묵인해왔습니다. 저는 이런 모순의 여호와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선 모순이 없으시다. 전지전능하실 뿐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말부터 모순입니다. 저에게는 모순의 전지전능함만 보입니다.” 길르압은 울고 있었다. 다윗은 고개를 돌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만시지탄이었다. “너는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언약을 믿지 못하느냐?” “이방인도 사람입니다. 죄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죽었습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이스라엘을 죽일 것이니라.” “그래서 모순입니다.” “이단이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다윗은 다윗가의 멸망을 보았다. 그리곤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다윗이 다녀가고 난 후 길르압의 집은 철저하게 봉쇄되었다. 그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길르압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지내다가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고 몇날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 쓸쓸하게 죽고 말았다. 요나답의 운명도 마찬가지. 백성들은 길르압이 애초부터 병치레를 자주 한 걸로 알고 있어 그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다윗은 길르압을 잊었다. 철저하게 잊었다. 패륜아 암논이 죽고 이단아 길르압도 죽었다. 압살롬은 형을 죽이곤 도망쳐버리고. 첫째와 둘째와 셋째아들까지 잃어버린 다윗의 괴로움 중에도 세월은 흐르기 마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처럼 전쟁이 없는 평화를 즐겼다. 변방이 안정되자 백성들은 생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더욱 강력해지고 다윗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온 정성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아들들에 대한 괴로움을 잊어갔다. 시간은 역시 명약. 슬픔과 분노를 잊게 해주고 새로운 기쁨을 안겨주었다. 여러 부인들을 통해 왕자와 공주가 계속 태어나 다윗에게 웃음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태평성대는 성군을 낳는다던가. 다윗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모든 백성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과 칭송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다말은 그술로 피한 오라버니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거의 모든 시간을 여호와를 향하여 그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로 보냈다. “사랑과 은혜와 용서의 여호와하나님이시여. 이 못난 여종으로 인한 여러 사람의 불행이 주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있사옵니다. 부디 저희를 향한 노여움을 거두시고 우리가 이제는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로 인하여 또 다른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저의 길을 살펴주시며 그술에 가있는 압살롬 오라버니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항상 동행하여 주시고 그를 향한 아바마마의 고통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대신 그 자리에 사랑이 다시 일렁이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또한 그녀는 다윗에게 나아가 눈물로 하소연했다. “아바마마, 압살롬 오라버니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선처하여 주시옵소서. 그가 어찌 죄인이 되었습니까. 모두가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아바마마의 오라버니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을 여셔서 오라버니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소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거절치 마시옵소서.” 기쁨을 잃어버린 딸을 보는 다윗의 가슴은 미어졌다. 다말의 간절한 청이 아니더라도 다윗은 차츰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외모에다가 믿음직스럽고 듬직했던 아들이 아니던가. 사내대장부로서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용맹과 지혜까지 겸비한 압살롬. 자신을 빼닮은. 그래 다말의 말대로 그놈이 무슨 죄가 있는가. 내 탓이고 나의 직무유기이자 방임이었다. 어쩌면 내 죄로 인한 피해자이고 희생제물일 뿐. 그렇게 생각하자 다윗은 압살롬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 들기 시작하자 파도가 되어 요동치더니 거대한 밀물이 되어 다윗의 온 가슴을 적셨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 법. 그러한 다윗의 심중을 꿰뚫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군대장관 요압이었다. 다윗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지가 몇 년이던가. 그는 다윗의 눈짓, 손짓, 발짓만 보고도 그가 무얼 하려는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압살롬이 그술에 거한 지 삼 년. 아무리 그가 이스라엘 왕의 장자이자 이복형인 암논을 죽였을지라도 그 죽임에는 백성이 공감하는 명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누이를 강간한 자를 처단했다는. 다윗의 수많은 왕자들 중에 압살롬만한 인물이 있는가. 다윗의 후계자는 압살롬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윗은 분명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럴 때 내가 나서야 한다. 다윗이 어떻게 스스로 나서서 그를 데려올 수 있으랴. 그렇게 생각한 요압은 장담했다. 다윗은 못이기는 척 자신의 말을 따르리라고. 누가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을 거라고.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금물. 분위기를 띄워야 했다. 그래서 그는 수소문하여 드고아에 사는 슬기 넘치는 여인을 찾아내 계교를 일러주고 왕과의 면담을 성사시켜 주었다. 그녀는 요압이 일러준 대로 상복을 입은 채 다윗 앞에 엎드려 구슬피 울었다. “그대는 무슨 연고가 있어 그리 슬피 우는가?”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우리 백성들의 주인이시여, 이 불쌍한 여인을 도와주시옵소서.” “무슨 일인지 말해 보시오.” “저는 일찍이 전쟁터에서 남편을 여읜 가난한 백성입니다. 이런 제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들에서 일을 하다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말다툼을 벌이다가 감정이 격해져 몸싸움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걸 보고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형이 동생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로고.” “뒤늦게야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동생을 죽인 형을 똑같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아들 하나가 죽은 것도 서러운데 이제 둘 다 죽게 생겼습니다. 그리되면 저의 가문의 대가 끊기는 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니라. 그대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내가 별 일 없도록 조처할 것이니.”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다윗이 모를 리 없었다. “저와 저의 집안의 불행으로 우리의 주인이신 폐하께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걱정 마시오. 이후로 그대를 괴롭히는 자가 있다면 내게 알리시오. 다시는 그대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엄히 다스릴 것이오.” “저의 아들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여호와께 맹세하노니 그대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리라.” “참으로 살아계신 여호와하나님과 같은 주인이십니다. 한 말씀만 더 여쭙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 하시오.” “사람은 나면 필히 죽습니다. 한번 죽게 되면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저의 작은아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 작은아들을 죽인 큰아들의 죄는 심히 막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죄인의 생명을 거두지 않으시고 또한 내버려두시지도 않으며 회개하고 뉘우치게 하십니다.” 다윗은 그제야 눈치를 챘다. 드고아 여인의 일은 바로 자신의 일이자 아들의 일이었던 것이다. “내게 숨기지 말고 고하라. 요압이 시켰느냐?”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그렇습니다.” 다윗은 요압을 불렀다. 요압은 다윗 앞에 엎드렸다. “암논 왕자는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옵니다. 압살롬 왕자는 단 한번 폐하의 심중을 거스르고 스스로 죄인이 되어 그술 땅에 은거하고 있습니다. 이미 삼 년이 지났습니다.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고자 하십니까. 참척의 고통이야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위하여 어떤 것이 현명한 처사인지 헤아려 주시옵소서. 우리 이스라엘은 여호와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또한 폐하의 탁월한 인도로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고 이제 당할 자가 없을 정도의 강국이 되었습니다. 압살롬 왕자의 인격과 됨됨이는 모든 백성들이 우러러보고 있음을 폐하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고 왕자로 하여금 전하 곁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심이 지당할 줄 압니다. 그리하시면 왕자 또한 그 전보다 더 전심전력할 것이라 믿습니다.” 모두가 맞는 말이었다. 구구절절 다윗과 같은 심정의 말이었다. 이제 더 이상 뭘 머뭇거리랴. “알았다. 가서 데려오라.” 다윗은 무겁게 신음하듯 내뱉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는 전하의 현명하신 판단에 기뻐할 것입니다. 여호와하나님이시여. 간절히 빌고 원하옵건대 우리의 주 다윗 대왕의 앞날을 영원토록 축복하시고 언제까지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요압은 그 길로 그술로 떠나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을 보지 않았다. 막상 아들이 돌아오니 사랑했던 만큼 미움이 되살아난 것이다. 압살롬은 나단에 의한 여호와의 저주였던 골육상쟁의 칼부림을 불러온 장본인이 아닌가. 그는 두려웠다. 살얼음을 밟는 기분으로 살아온 나날이었다. 그래서 나단의 경고가 경고로서 그치길 간절히 기원했다. 그런데 압살롬이 그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거기엔 암논의 패륜이 있었다. 찢어죽이고 싶은. 그러나 밧세바와의 간음, 우리아에 대한 살인 교사라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 씻고 또 씻어도 씻지 못할 자신의 원죄가 도사리고 있었다. 밧세바. 사랑하는 밧세바. 이제는 부인이 되었지만 그녀는 부하의 아내였다. 어떻게 씻어낼 수 있단 말인가. 암논과 다말. 자신이 뿌린 씨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자신을 닮아버린 암논의 행태. 그래서 더 미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던, 피를 보고 싶지 않았던 심사, 조마조마하게 버텨온 나날. 압살롬은 그걸 깨뜨려버렸다. 자신을 기만하고 형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들. 그 아들이 나단의 경고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절벽과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과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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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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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2회
- “여호와여. 이것으로 끝내시옵소서. 이것만으로도 이 종은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어떻게 애비로서 자식이 자식을 죽이는 꼴을 볼 수 있겠습니까. 견뎌낼 수가 없사옵니다. 간절히 빌고 원하오니 저를 취하소서.” 다윗은 한꺼번에 두 아들을 잃은 셈이었다. 암논은 자신이 저지른 죗값으로 죽었고 압살롬은 다윗을 기만하고 그술로 도망가 버렸다. 암논은 실질적인 장자였으나 압살롬은 심정적인 장자였다. 다윗의 애통은 그래서 더 컸다. 차남인 길르압은 모든 면에서 너무 소심했다. 사람이 장래의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윗은 그제야 암논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율법을 어긴 자는 어떤 식으로든 하늘이 징벌을 내린다는 걸 간과했다. 암논을 꼭 죽이지 않고도 국외 추방 같은 조치를 취했더라면 신하들도 공감했을 것이고 압살롬 또한 형을 살해하는 무모한 짓을 범하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후회막급이었다. 자신은 결국 법의 정의도 세우지 못하고 백성들의 공감도 얻지 못했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 결과만을 초래한 것이다. 사실 다윗의 마음은 암논에게서 떠나 있었다. 자신의 후계자로서 암논이 아무리 장자라 할지라도 너무나 커다란 허물을 갖게 된 것이다. 아무리 덮으려고 해도 덮을 수 없는,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여동생을 강간했다는 허물. 그가 설사 다윗의 후계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해도 여호와께서 용서치 않을 것이며 백성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리라. 그래서 염두에 둔 아들이 압살롬이었다. 차남 길르압은 매사에 의욕이 너무 없다는 얘길 듣고 있었다. 압살롬을 후계자로 했을 경우 자연스럽게 암논에 대한 처벌로 여기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정쩡하고도 우유부단한 세월. 결과는 형제간의 칼부림이었다. 이런 단초를 제공한 나를 백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유언비어와 뜬소문에 민감한 백성들의 여론은 조석지변일진대. 다윗은 괴로웠다. 자신을 믿고 따르던 백성들이 갑자기 돌아서서 손가락질을 해대는 모습을 그리며 괴로워했다. 그럴수록 의지하고 매달릴 수 있는 영원한 피난처는 하늘에 계신 여호와였다. 경(經)이 전하는 다윗의 심정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다윗의 둘째아들 길르압. 안하무인이자 천하의 구두쇠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로부터 낳은 아들. 왕자의 신분이지만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존재로 모두가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그도 남자였다. 아무리 왜소한 체구에 다른 형제들에 비해 드러나지 않는 품성을 지녔다 할지라도 그도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어 세상의 평판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모친이 다른 남자의 아내였다는 것. 남편을 죽이려 했던 남자를 사모하여 불같은 성질을 이용해 남편으로 하여금 피를 토하여 죽어버리도록 기지를 발휘하고 그걸 기다렸다는 듯 바로 그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자신의 출생. 여호와. 여호와의 뜻. 선택된 기름 부음.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이 하는 아버지. 그의 간음과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아와 핏덩이의 죽음. 하나에서 열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투성이를 직시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알아 여태껏 조용히 살았다. 그런데 다윗가의 장자이던 형 암논이 동생인 압살롬에게 참살을 당했다. 암논과 압살롬은 저 잘난 맛에 자신을 동생이나 형으로서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 철저히 무시했다. 그런 그 둘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윗은 절망하고 있었다. 이제 다윗의 장자는 자신이었다. 자격지심에 움츠러들기만 한 지난날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암논을 패륜의 길로 인도한 요나답이었다. 요나답은 길르압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았다. “왕자마마, 언제까지 관망만 하고 계실 겁니까?” “무슨 말이오?” “야자나무에서 야자가 저절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길르압은 목소리를 죽여 소곤대는 요나답을 쏘아봤다.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 이러는 게요?” “천하를 얻는 일입니다. 온 이스라엘을요. 다음 차례는 왕자마마가 아니겠습니까?” 길르압은 냉소했다. “나는 그대를 만나지 않은 것이오. 당장 나가시오.” 잔뜩 기대를 걸고 왔던 요나답은 머쓱해져서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길르압에겐 측근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따라서 자기만한 위치의 인물이 다가서길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지금까지 평판대로라면 길르압은 자신이 마음 놓고 주무를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랬는데 그의 반응은 너무 뜻밖이었다. 내가 너무 서두른 것인가? 그렇다면 듣던 것보다 의뭉하단 말이로구나. 그래 좀 더 기다려보자. 요나답은 시류를 읽을 줄 아는 타고난 머리를 가졌다. 암논에게 접근하였던 것도 다윗의 장자라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길르압의 관심은 딴 데 있었다. 사람과 죄, 만물을 창조했다는 하나님이었다. 사람을 만든 하나님이었다. 아울러 죄도 만든 하나님이었다.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이 사람과 죄를 같이 만든 것은 장난을 즐기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되었다. 하나님이 장난의 대상으로 사람과 죄를 만들지 않았다면 사람과 죄를 만든 건 하나님의 실수이자 하나님의 죄였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죄. 그렇다면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든지 전지전능한 또 다른 절대자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고서 자신을 믿으라 한다? 믿지 않는 이방민족은 죄인이므로 죽여도 좋다? 그 이방인들도 자신이 만들었으면서? 죄인을 응징하기 위해선 죄도 없는 희생제물을 만들어 죽이기 좋아하는 여호와. 이스라엘의 여호와하나님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죽여도 좋았다. 이런 신을 과연 믿어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일방적인 신을. 뭔가 잘못되고 있다. 이방인을 말살시키기 위한, 이스라엘만을 위한 신 만들기가 아니었을까?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신. 그렇다면…, 단언컨대 여호와는 없다. 길르압의 생각은 끝을 몰랐다. 여호와하나님에 대한 의문은 끝이 없었다. 그는 맹목적인 여호와 섬기기를 거부했다. 기도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여호와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왕자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앞으로 거의 나서질 않았던 것이다. 대신에 그는 끊임없이 인간이 지켜야할 도리에 대해 묵상했다. 요르답은 길르압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길르압은 언제나 조용했다. 길르압의 종에게 근황을 물어보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여호와에게 기도만 하고 있는 길르압이 참으로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다윗에게 길르압이 조금만 잘 보이면 후계자는 따 놓은 당상인데 어쩌자고 시간만 죽이고 있는가. 그는 어떻게 하면 꼼짝을 하지 않는 길르압을 부추겨 다윗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길르압이 후계자가 되어 왕위를 물려받으면 자신의 앞날은 탄탄대로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가 여호와의 장막에 거주하다시피 하는 다윗을 생각하고는 무릎을 탁 치며 길르압에게 갔다. 그는 천재였다. 길르압도 날이면 날마다 기도만 하고 있다 하지 않는가. 그 아비에 그 아들이었던 것이다. “왕자마마, 건강이 염려되오이다. 여호와께서는 왕자님의 신실하심을 이미 아셨을 것입니다. 부디 건강을 잃지 마시옵소서.” “……” 길르압은 아무 말이 없었다. 요나답이 들어오는 것을 잠깐 봤을 뿐 계속해서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요나답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왕 기도하시려거든 여호와께서 계시는 곳에서 하심이 어떨지요.” “내게 여호와는 없소.” 길르압은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요나답은 잘 알아듣질 못했다. “폐하께서도 그곳에 자주 납시는데요.” 다윗에게 신실한 길르압이라는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으라는 것이었는데. “그는 죄인이오.” “예?” “없는 여호와를 향해 무엇을 용서받겠다는 것이오? 죄짓고 용서받고, 또 죄짓고 용서받으면 그게 무슨 신이란 말이오? 우리아, 그 충신에게도 여호와가 있지 않았소? 우리아는 무엇이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게 애들 장난이오? 아무런 죄가 없는 우리아가 죽어 가는데 그의 여호와는 어디에 있었소? 뭣하고 있었냐고요. 애초부터 여호와는 없었소이다. 아니, 설령 있다한들 그런 여호와 따윈 내게 필요 없소.” 요르답은 너무도 놀라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여호와가 없다니? 여호와를 부정하다니? 더군다나 다윗이 죄인이라니? 죄악 중의 가장 큰 죄악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길르압은 그토록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고 있었다. 사탄의 조종에 놀아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어둠 가득한 저 얼굴 좀 봐. 틀림없었다. 요르답은 서둘러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 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실 필요 없소. 당신은 이곳에 왔고 여호와를 부정하는 내 말을 들었습니다.” 요르답은 황급히 길르압의 집을 빠져나왔다. 길르압은 분명 사탄의 괴뢰였다. 괴뢰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여호와가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두문불출하고, 있어도 없는 척한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리라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왕자의 신분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의 아들. 여호와에 대한 부정은 반역보다도 무서운 죄였다. 그는 지체치 않고 다윗에게 나아갔다. 길르압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것만이 공을 세우는 일은 아니었다. 여호와의 적인 사탄의 괴뢰를 없애는 일 또한 무엇보다 시급했다. 그 공을 어디에 비기랴. 역시 다윗은 여호와의 집인 장막에 있었다. 요르답은 왕의 조카이기에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고하고 나서 이 말을 덧붙였다. “얼굴마저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청천벽력이었다. 너무나 놀란 다윗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불경스러운 이야기가 요르답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둘째아들 길르압에 대한. “그 말이 사실인가?” 다윗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겠습니까.” 다윗은 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이 사실을 너 말고 누가 알고 있느냐?” “아무도 모릅니다.” “알았느니라. 이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할 터이니 너는 입을 꼭 다물고 있어야 한다. 내 명을 어길 시 네 목이 온전치 못하리라는 걸 잘 알겠지?” “명심하겠나이다.” 다윗은 망연자실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괘가 눈앞에 그대로 있었다. 여호와를 부정하다니! 그렇다면 저 언약괘를 부정하고 율법을 부정하고 이스라엘을 부정하고 이스라엘의 왕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길르압은 여호와를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저가 왕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여호와의 은혜인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내 피를 받은 자식이 여호와를 부정하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 요나답이 잘못 들었던 게야.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없는 얘기를 지어낼 리도 없지 않은가. 제 목숨이 달린 얘기를. 왕자들이 압살롬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이 났을 때도 요나답만은 암논은 몰라도 다른 왕자들은 무사할 것이라고 장담했잖은가? 그렇다면 이것도 여호와의 징계일까? 아, 나는 어째서 자식들에 대해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더란 말인가.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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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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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1회
- “나는 지난 이 년 간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암논은 나의 형이 아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장자도 아니다. 그는 한낱 율법을 어긴 죄인일 뿐이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요행이었다. 요행은 영원하지 않다. 그는 오늘 죽어야 한다. 그가 죽음으로써 율법이 살아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내 말을 따르라. 그는 여호와를 무시하고 이스라엘의 왕을 욕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짐승과도 같은 패륜을 서슴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너희는 내 명령을 따를 뿐이다. 오늘은 하늘이 준 기회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최대한 그 죄인이 술을 많이 마시도록 내가 유도할 것이다. 죄인의 부하들이 죄인을 보호하지 못하도록 자리 배치에 유념하고 죄인이 술에 취해 몸을 가눌 수 없을 때를 기다려 신호를 보낼 것이니 너희들은 내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기 바란다. 실수가 있을 때는 너희들과 내 목숨은 없다는 걸 명심해라. 단 피는 그 죄인 하나로 족하다.” 넓은 들판에 장막이 지어지고 잔치 준비는 끝났다. 시간이 되자 압살롬의 형제, 왕자들이 속속 도착하여 축하를 보내고 자리를 잡았다. 다윗의 둘째 아들인 길르압과 넷째 아도니야, 다섯째 스바댜, 여섯째 이드르암이 그들이다. 암논은 맨 나중에 그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도착했다. 밧세바로부터 난 왕자들은 아직 어렸다. 압살롬은 암논의 말이 보이자 직접 나아가 그를 맞이했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더욱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암논은 말에서 내려 압살롬의 손을 잡아끌고 포옹했다. “그래, 압살롬. 축하한다. 좋은 날씨구나.” “이렇게 오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당연히 와야지. 그동안 우리 사이가 많이 어색했지? 잊자. 잊어버리자. 내가 철이 없었다. 아바마마를 위해서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자. 내가 너를 도울 일이 있으면 앞장서서 도우마.”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암논은 불안했다. 압살롬 앞에만 서면 자꾸 움츠러드는 느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었다. 그는 압살롬의 어깨 너머로 모든 동생들이 와 있는 걸 보고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양의 수가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조금 늘었을 뿐입니다.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아바마마의 배려 덕분입니다. 그렇지만 어디 형님에 비기겠습니까. 대적들이 사라지고 온 이스라엘이 평안하니 그놈들도 무럭무럭 자라나 봅니다.” 식탁에는 송아지와 양과 염소 고기로 만든 각종 요리와 과일이 푸짐하게 차려지고 포도주가 넘쳐나고 있었다. 양떼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그것들이 내지르는 소리는 자연의 교향곡이었다. 잔치의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 갔다. 압살롬의 동생 왕자들은 형의 번영을 축하해마지 않았고, 다윗의 차남이자 압살롬에게는 바로 위의 형이 되는 길르압은 몸이 약해 술을 마시진 못했으나 진정으로 기뻐하여 흐뭇해했으며, 암논 또한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압살롬에게 무척 사근사근하게 대했다. 술이 여러 순배가 돌자 암논은 배짱이 두둑해져 여러 동생들이 따라주는 술을 거침없이 마셨다. 압살롬은 특히 암논이 잔을 내려놓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잔을 그에게 바쳤다. 암논은 기분이 좋았다. 압살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충직한 동생으로만 보였다. 압살롬에게 느꼈던 자기 혼자만의 불안과 걱정은 괜한 기우처럼 여겨졌다. 어렴풋이 갖고 있던 부도덕한 장형으로서의 자격지심도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동생들은 변함이 없었고 압살롬 또한 깍듯했다. 마음껏 취하고 싶었다. 앞으로는 정말 장형으로서 모범이 되리라 다짐하고 형제간의 우의를 앞장서서 다지리라 결심했다. 형으로서 어지간한 손해쯤은 충분히 감수하리라고도 생각했다. 그리하여 지난날의 잘못된 행동을 충분히 보상하리라, 그러면 부르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는 아바마마께서도 나를 용서하시리라. 그래서 암논은 실추된 장자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고 싶었다. 압살롬은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는 데에 만족했다. 그러나 그는 긴장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주변을 예리하게 살피고 있었다. 주변의 상황도 계획에 빈틈이 없었다. 암논은 저 죽을 줄 모르고 마냥 기분이 좋아 껄껄거리며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압살롬이 거느리는 부하들의 눈은 언제나 그에게 쏠려 있었다. 이윽고 그의 오른손이 하늘을 향하더니 원을 그렸다. 그것이 신호였다. 암논의 부하들과 같이 음식을 먹던 압살롬의 부하들이 순식간에 칼을 빼들어 암논의 부하들을 에워쌈과 동시에 무장해제를 시키고 그때까지 보이지 않고 언덕 아래 수풀 속에 은신해 있던 압살롬의 정예 용사들이 왕자들의 식탁으로 돌진해 온 것은. 술에 취한 왕자들의 몽롱해진 눈들이 갑자기 돌변한 상황에 놀라 휘둥그레지는 찰나 외마디 비명이 들리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 그들은 경악했다. 거짓말처럼 암논의 목에서 피가 솟구치면서 머리가 푹 꺾이어진 것이다. 잔치는 한마디로 난장판이 돼버렸다. 왕자들은 급변한 상황에 소스라치며 허둥지둥 자신의 부하를 찾아 말을 타고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기에 바빴다. 압살롬은 목석처럼 서서 암논의 주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서 붉게 타올랐다. 그는 비명과 주변의 소란스런 상황에도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마땅히 죽어야할 죄인이었노라. 너희들은 내 명령에 따랐을 뿐이니 아무런 죄가 없다. 율법을 유린한 죄인은 처단되었다. 여호와께서도 기뻐하실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정당한 일을 집행했지만 어디까지나 폐하께서 망설이던 일이고 명에 없었던 일이다. 다른 왕자님들도 많이 놀라셨을 터. 차분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먼 훗날을 기약하자. 나는 잠시 이곳을 피해야겠다. 폐하께서는 죽은 자가 죄인일지언정 장자인 아들을 잃었으니 심히 진노하실 것이다. 나는 폐하께만은 죄인이 되었노라.” 압살롬은 그길로 심중에 두었던 그술 땅으로 향했다. 그술의 왕 달매가 압살롬의 어머니인 마아가의 아버지이자 압살롬의 외할아버지였던 것이다. 다윗에게도 마침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모든 왕자들이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다 하옵니다.” 헐레벌떡 달려온 시종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시종은 너무 놀라서인지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다윗은 믿기지가 않아서 숨을 죽이며 다시 물었다.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자신을 청하던 압살롬의 얼굴이 어른거리자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잘 모르지만 분명히 오늘의 잔치에서 왕자님들과 관계되는 칼부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경악했다. 압살롬을 만났을 때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신경과민으로 돌렸는데…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선지자 나단의 경고가 드디어 현실로 나타났단 말인가. 표정 하나 변치 않고 자신을 가리키던 나단의 손가락이 이제는 자신의 눈을 찔러오고 있는 듯했다. 언제나 가슴 졸이며 자신의 형제들을 지켜보고 그들의 아들을 감시하며 왕자들의 동태도 살피는 걸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단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불거졌다. 암논은 자신을 팔아 다말을 능욕했고 그로 인해 압살롬마저 자신을 속였다. 암논의 경우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압살롬은 설마, 했었다. 그런데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단 말인가. 다윗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낭떠러지로 한없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추락.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내가 죽어야 한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 얼마나 더 험한 꼴을 봐야 하나. 다윗은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여호와여, 끝내 저를 버리시나이까. 저의 죄가 그렇게 크더이까. 저를 벌하시옵소서. 차라리 저를 죽여주시옵소서. 이런 고통을 당하고 못 볼 거 다 보며 산들 무슨 의미가 있으리까.” 어전에서 다윗을 따라와 죽 늘어서있던 신하들도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 다윗의 형 시무아의 아들 요나답이 코 막힌 소리로 왕자들의 죽임을 전한 시종을 나무랐다. 그는 암논에게 다말을 범할 수 있는 계책을 가르쳐 준 암논의 친구이자 사촌이었다. “무엄하도다. 어찌하여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뜬소문을 가지고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힌단 말인가.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만약 왕자들께서 압살롬 왕자에게 변을 당하셨다면 아마도 암논 왕자만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예전에 다말 공주를 암논 왕자가 욕을 보였던 일로 압살롬 왕자는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시끄럽도다. 썩 물러가거라.” 다윗은 아무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으면 싶었다. “폐하,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분명히 다른 왕자님들은 무사하실 겁니다.” 요나답은 다윗 가까이 기어와 고개를 숙이며 다윗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때 왕궁을 지키는 병사가 소릴 질렀다. “왕자님들이 오십니다. 왕자님들이 오십니다!” 다윗은 그 소리에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요나답이 더 바싹 다가와 울먹였다. “폐하, 소신의 말이 맞았습니다. 왕자님들이 오신다 하옵니다. 어서 가보시지요.” 다윗은 일어섰다. 요나답의 말이 사실인가? 역시 암논은 보이지 않았다. 다윗은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왕자들은 다윗 앞에 다가와서는 땅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다. 그들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찌된 일이냐?” 다윗은 왕자들을 부둥켜안으며 물었다. “아바마마, 암논 형님이 갑자기 밀어닥친 압살롬의 부하들의 칼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압살롬이 양털 깎는다는 명목으로 우리들을 초청하여 암논 형님을 죽이려 했던 계략임이 분명합니다.” 차남 길르압이 숨을 헐떡이며 겨우 말했다. 다윗은 아들과 함께 통곡했다. 아들들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낫다는 안도감과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에 울었고 다윗은 허탈감과 참척의 고통에 울었다. “내 탓이로다. 모두가 내 탓이로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른 내 탓이로다. 이 일을 어찌할 거나.” 자초지종을 들은 왕도 울고 왕자들도 울고 신하들도 울었다. 다윗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선택된 사람이었음을 뼈저리게 자각했다. 그래서 징계도 남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자비로우신 여호와여. 언제까지입니까. 저에 대한 징벌이 언제나 끝나는 것입니까. 자식들 보기 부끄럽사옵니다. 저를 치소서. 자식들에 대하여 내려지는 저에 대한 분노를 이만 거두소서. 어떻게 하여야 여호와께서 진노를 거두실지요. 가르쳐 주소서. 우매한 저를 일깨워 주옵소서.” 다윗은 무서웠다. 하늘이 무서웠고 여호와가 무서웠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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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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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0회
- 어떻게 친오빠인 압살롬의 집에 왔는지 알지 못했다. 무의식중에 허겁지겁 걸었고 무심결에 압살롬의 집에 도착했으며 엉겁결에 오빠를 보자마자 서러움이 북받쳐 통곡을 했다. 차마 말도 못하고 까무러질 때까지. 압살롬은 다말의 행색을 보고 대번에 알아차렸다. 하나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암논에 의해 몹쓸 짓을 당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과 무언의 경쟁을 벌이는 이복형 암논이 갑자기 아프다는 것이 의심스러웠고 어째서 다말이 그 음흉한 놈의 수발을 들어줘야 하는지 불만이었던 그였다. 결국 불길한 예감은 설마, 설마 하다가 최악의 현실이 되고 말았으니. ‘이 짐승만도 못한 놈, 내가 이 더러운 놈을 결코 가만 두지 않으리라.’ 압살롬은 분에 겨워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용서치 못할 짓이었다. 그러나 먼저 해야 될 일은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한 동생을 위로하는 일이었다. 다말이 입은 상처와 충격은 그녀 스스로 삶을 포기할지도 모를 상황처럼 보였다. 그는 다말을 부둥켜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말, 진정하여라. 힘든 얘기다만 네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버려라. 암논 그 놈은 나의 형도 너의 오라비도 아니다. 미친개다. 차마 아바마마까지 이용해서 네게 음흉한 짓거리를 벌일 줄은 정말 몰랐다. 내게도 책임이 있다. 그 놈의 수작이 비열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하나 밖에 없는 내 여동생을 지켜주지 못했구나. 나를 용서해다오. 내 기어코 가만있지 않을 게다. 너의 수모를 몇 배로 갚아 줄 것이니. 중요한 건 바로 너다. 빨리 잊어버려라. 재수 없이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란 말이다. 심각하게 여길수록 너만 손해야.” 압살롬은 이를 악물었다. 계속해서 흐느끼기만 하는 다말을 보고 그의 눈에서도 분노의 눈물이 솟구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눈은 불꽃을 뿜어내며 이글거렸다. 그 후로 다말은 압살롬의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지내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다윗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근친상간이 자신의 왕궁에서 자신의 아들딸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말을 어떻게 믿으랴. 그것도 믿고 있던 장자, 암논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 다말을 범했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기가 막혔다. 처음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묻고 또 물었다. 사실이었다.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드디어 노발대발했다. ‘나를 속이면서까지?’ 찢어죽이고 싶었다. 당장에 암논을 잡아들여 돌로 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니 자신이 직접 쳐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밧세바와 자신의 지난날이 너무나 또렷하게 떠오르는 게 아닌가. 자신의 간음과 그걸 감추기 위해 충신인 우리아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죄악들. 나단 선지자의 골육상쟁의 칼부림이 끊이지 않을 거라는 경고. 자신이 암논을 처벌한다면 똥 묻은 것이 겨 묻은 걸 탓하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랴. 분노는 하늘을 찔렀지만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죄는 죄를 낳고 그 죄는 또 다른 죄악을 잉태하는 것이라. 다윗은 자신의 망설임이 율법을 어긴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지켜져야 할 징벌이 막상 자신이 뿌린 죄악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게 된 맏아들을 죽여야 한다는 엄청난 현실에 고민이 따른 것이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거의 다 소탕되고 정복되었는데, 외부로부터 오는 우환은 사라졌는데, 어쩌자고 내부에서 이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그는 괴로웠다.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런 시험을 어찌해야 하오리까. 어떻게 해야 합당한 일이 되오리까.” 그러나 하늘은 무심했다. 다윗이 아무리 간구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따라서 다윗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세월만 보내게 되었다. 압살롬은 다말을 볼 때마다 암논에 대하여 이를 갈았다. 다말의 그토록 해맑고 아름다웠던 얼굴이 그 일이 있고부터 항시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고 웃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으며 날이 갈수록 야위어만 가는 것이었다. 치장도 하지 않았다. 말도 거의 없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 누가 아는 체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며 움츠러들곤 했다. 왕궁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살아있다고 하지만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다윗은 그런 딸을 보러 와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꼭 안아주고는 한숨만 푹 내시다갈 뿐, 그것도 잠시였다, 나중엔 딸의 모습을 보기가 괴로웠는지 발걸음조차 하지 않았다. 왕궁에서 벌어지는 공식 행사나 만찬석상에서 암논은 의도적으로 압살롬의 눈길을 피했다. 아무래도 뒤가 구렸던 것이다. 그러나 압살롬은 예전과 다름없이 암논을 대했다. 다윗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영 딴 사람이 돼버린 다말을 보면 울화통이 터져 암논을 처벌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치밀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는 형편에 속병만 늘어갔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다윗은 밧세바를 의지하고 사랑했다.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마다 밧세바는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다시 아들을 낳았고 또 낳고 연이어 낳았다. 다윗과 불륜의 관계로 낳은 아들을 이레 만에 잃은 후 여호와가 언제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모든 일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했으며 자신은 아직도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신실한 삶을 영위해 나갔다. 압살롬의 암논에 대한 증오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해갔다. 그는 언젠가는 암논을 처단하리라 자신과 수없이 다짐하며 힘을 길러갔다. 왕자의 신분에 걸맞게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의 세력을 확대하는 한편 신체 건강한 청년들을 모집하여 부하로 삼고 군사 훈련을 시켰다. 암논을 죽인다는 목표에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다윗은 비록 아버지로서 자식을 죽일 수가 없어 징벌을 내리지 못했으나 자신은 암논과 친형제도 아닐뿐더러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강간한 범법자에게 율법이 정한 대로 처단할 뿐이라는 논리였다. 율법은 그렇게 죽인 행위를 시비하지 못하도록 돼있었다. 다말이 암논에게 당한 지 이 년이 지나고 양털을 깎는 시기가 되었다. 양털을 깎는다는 건 중요한 연중행사의 하나였다. 압살롬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모든 왕자들을 양털 깎는 축제에 초청하곤 다윗에게 나아갔다. 다윗은 언제 보아도 늠름하고 잘생긴 셋째 아들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아바마마, 만군의 여호와께서 아바마마와 항상 함께 하심으로 온 이스라엘에 아바마마의 힘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감히 대적할 자가 없는 듯합니다.” “허허, 그래 어서 오너라. 오늘따라 네 얼굴이 더욱 환히 빛나는구나. 기분도 좋아 보이고.” “그렇사옵니다. 오늘은 소자가 아바마마께 청이 있어 왔사옵니다.” “청이라니?” 다윗은 인자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이 바로 양털 깎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르고 있는 양들을 자랑하고 싶어 잔치를 마련할 예정이옵니다. 아바마마께서 모든 신하들과 함께 참석하셔서 축복해 주신다면 소자로선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습니다.” 다윗은 양털을 깎는다는 아들의 말에 가슴이 다 설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양을 도맡아 풀을 뜯기던 양치기 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양털을 깎는 날은 하늘에도 온통 양떼 모습을 한 구름들이 뭉게뭉게 떠다녔다. 그것은 곧 평화였다. “아, 그렇구나. 벌써 그렇게 좋은 날이 되었구나. 나도 가보고 싶구나.” “오시옵소서.” “그렇지만 나까지 가서 북적거릴 필요가 있겠느냐. 괜히 네게 부담을 끼치고 싶지 않구나. 다말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기운을 많이 회복하였습니다. 다말도 아바마마를 기다릴 것입니다. 부디 소자의 청을 거절치 마시옵소서.” “허허허. 나도 가고 싶다니까 그러는구나. 네가 이 애비 맘을 몰라서 그러느냐. 나도 한때는 양치기였느니라. 그러나 그 많은 신하들까지 가서 너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다.” 다윗의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이 감으로 인하여 모든 신하들이 따라갈 것이고 시위대가 이동해야 하고 후궁들이 따를 것이며 시종과 궁녀들까지 모두 맞이하려면 왕자의 신분에는 버거운 규모가 뻔했다. “소자의 간절한 청이옵니다.” 압살롬은 시종 머리를 조아렸다. 다윗은 그런 아들을 보고 흡족했다. “내가 간 거나 다름없이 너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빌어주마.” 다윗은 압살롬에게 다가가 한손은 압살롬의 머리에 얹고 또 한손은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압살롬은 감격해 하며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아바마마께서 그토록 소자를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소자는 아직도 아바마마를 모시고 싶은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아바마마를 대신하여 암논 형님께서는 필히 참석해 주시길 원하나이다.” “그건 암논이 결정할 일이 아니냐?” 다윗은 불현듯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 형님은 우리 형제들의 장형이 아니십니까. 그동안 불미스러운 일로 관계도 소원하였사오니 모든 형제간의 우의를 더욱 돈독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혹 연락을 받고도 참석치 않을까 염려되어 감히 아바마마께 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형님이 오게 되면 아바마마를 대하듯 모시겠습니다.” 다윗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금방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지난 일을 연관시켜 생각한다고 자성했다. 압살롬은 외모와 마찬가지로 호탕하고 대범했다. 그래 그동안 너희들이 다말의 일로 껄끄럽게 지냈겠지. 암논이 먼저 풀기는 어려울 거다. 역시 압살롬이구나. 이번 기회에 지난 일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압살롬. 너는 역시 내 아들이로구나. 내 모든 왕자들에게 너의 행사에 필히 참석하라고 이르마. 특히 암논에게는 너의 기특한 뜻을 꼭 전하도록 하겠다. 참으로 기쁜 일이로고.” 다윗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곪은 상처가 터져 고름이 시원스럽게 빠져나오는 기분이었다. 잔뜩 찌푸린 먹구름 속에서 마침내 햇살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고름이 빠지면 상처는 금방 아물 것이리라. 우중충하던 날이 곧 화창해지리라. 다윗을 만나고 나온 압살롬은 어금니를 굳게 깨물었다. 이제야 다말의 원수를 갚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왕궁을 나와 말을 달려 그의 집에 오면서도 흥분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당장 다말에게 암논을 죽일 수 있게 되었노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창가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다말을 본 순간 그는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다가 돌아서버렸다. 암논을 죽인들 다말이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것 같지 않았다.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더욱 더 암논에 대한 적개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적개심에는 암논이 사라진 이후 장자권에 대한 야망도 포함됐다. 어쩌면 다말을 위한다는 건 명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압살롬은 그의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 계속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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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창작
- 웹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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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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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9회
- 다말이 보기에 암논은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얼굴도 듣기보다 건강해 보였다. “오라버니, 그토록 건강하시더니 아프다니요?” “오, 다말. 점점 더 예뻐지는구나.” “오라버니도 참,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어서 이거나 드셔보세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고맙구나. 네가 내 생각을 그렇게 해주다니 미처 몰랐구나. 사실은 네가 보고 싶어서 밥맛을 잃었던 것이야. 하하하.” 암논은 상사병을 농반 진반으로 얼버무리며 웃었다. 다말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수단이었다. 다말은 얼굴을 붉혔다. “정말로 아프지 않으신 거예요?” “아프긴 누가 아프단 말이냐. 이렇게 말짱한데.” “아바마마께서는 심각하게 말씀하시던데요?” “아바마마께서 다녀가실 때는 많이 아팠지. 하지만 네가 온다는 기별을 듣고 이렇게 싹 낫지 않았니. 네가 바로 보약인 게야.” “오라버닌 농담도 잘하십니다.” “농담이 아니다. 정말 보고 싶었다.” 암논은 진지했으나 다말은 소름이 쭉 끼치는 기분이었다. 침실은 다윗의 장자 신분에 어울리게 넓고도 화려했다. 그녀는 어색하게 접시를 내밀었다. “제가 만든 거예요. 드세요.” “이걸 꼭 먹어야 하느냐?” 암논은 침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요, 아프셨다면 빨리 기력을 회복하셔야죠.” “그렇다면 네 손으로 과잘 집어서 직접 내 입에 넣어 주거라. 그러면 먹겠다.” 암논은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다말은 할 수 없이 과잘 집어 손을 암논의 입에 가져갔다. 그 순간 암논이 다말의 손을 낚아채더니 몸을 바싹 끌어안아버렸다. 다말은 너무 놀라 들고 있던 접시를 놓쳐버려 결국 깨지고 말았다. 과자는 이리저리 흩어지고. “다말, 오 다말.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너만을 생각했다. 너 때문에 밥맛도 잃고 잠도 오지 않는다. 내 색시가 되어다오. 나는 너를 안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내 말을 들어다오.” “오라버니, 왜 이러십니까. 안 되는 일입니다.” 다말에겐 청천벽력이었다. 그녀는 몸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왜 안 된다는 거냐. 나는 너로 인해 죽을 지경이란 말이다.” “진정하세요, 오라버니. 이런 일은 아바마마를 욕되게 하고 여호와께 죄를 짓는 일입니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단 말이냐? 지금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 나와 너만 있다고.” 암논은 다말을 끌어안은 팔을 흔들며 애원했다. “다른 말은 다 듣겠나이다. 허나 이것만은 안 되는 일인 줄 오라버니도 뻔히 아시잖아요.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율법의 징벌을 모르고 계신 건 아니시죠?” 율법에는 폭행과 협박에 의한 부녀자의 간음 행위 시 남자는 죽이도록 되어 있고, 근친상간은 수간(獸姦)하는 자나 남색(男色)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짐승 같은 범죄로 취급되어 곧 죽임을 당했다. “뭐라고? 네가 내게 감히 율법을 들먹이다니.” 암논은 다말을 침대에 쓰러뜨렸다. 다말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래, 네가 나를 무시하는구나. 그렇다고 내가 순순히 물러설 성 싶냐? 어림도 없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라도 너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어디 나만 간음의 벌을 받을 것 같으냐? 너도 마찬가지다.” 암논은 쓰러진 다말을 덮쳤다. 그리고 버둥거리는 다말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입을 입술로 가져갔다. “그렇다면 오라버니, 부탁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부탁이라니? 빠져나갈 생각은 추호도 마라.” 암논은 더운 입김을 뿜어댔다. 그의 눈은 이미 정상적인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배고픈 하이에나가 함정에 빠진 사슴의 힘이 빠지길 기다려 이빨을 들이대려는 그런 눈빛이었다. “정 그러시다면 아바마마께 말씀을 드리십시오. 저를 오라버니의 색시로 맞게 해달라시면 아바마마께서도 오라버니의 청은 거절치 못하실 겁니다. 아바마마의 승낙이 떨어지면 저도 기꺼이 오라버니 앞에서 옷을 벗겠습니다.” 다말은 우선 암논을 진정시키고 위기를 벗어날 속셈으로 다윗을 들먹였던 것인데. “닥쳐라.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아바마마가 율법이 허락지 않은 걸 승낙하실 것 같으냐. 어림도 없는 소리 마라. 네가 나를 희롱하는구나.” “그러면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 “입 좀 다물고 있어. 너와 나만 아는 일이다. 뒷일은 내게 맡겨라.” 암논은 다시 다말을 덮쳤다. 눈이 뒤집혀 발광하는 그를 다말이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쳐봤지만 옷은 벗겨지고 나신은 여지없이 드러나 끝내 하체가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다말은 모든 걸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자 야수와 같이 허겁지겁 제 욕심을 채운 암논은 그녀 곁에 누워 아직도 숨을 쌕쌕거렸다. 다말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일에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다윗이 시킨 일이어서 아무런 생각 없이 가장 나이 많은 오라버니를 간병한다는 마음뿐이었는데 모든 게 그 오라버니의 음흉한 계획이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어떻게 됐건 자신의 정조를 암논이 빼앗았으니 싫든 좋든 간에 그의 여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말은 옷을 추스르고 물었다. “이젠 어쩌시겠습니까. 오라버니의 욕심을 채우셨으니 저를 어쩌시겠어요?” 암논은 눈을 감고 있다가 다말의 말을 듣고는 눈을 떴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다말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 똑같은 얼굴인데도 더 이상 사랑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 얼굴과 눈빛엔 원망과 증오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또한 앙칼지게 반항하던 조금 전의 모습도 겹쳐 보였다. 비위가 확 상했다. 너는 나를 싫어했었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너를 차지하고야 말았으니. 이젠 아쉬울 게 없어. “어쩌다니?” 암논은 경멸 섞인 웃음을 흘렸다. “나는 오라버니의 여자가 됐어요.” 다말은 애원조로 얼굴이 변했다. “뭐라고? 내 여자? 참 웃기는구나. 한번 그랬다고 내 여자?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버티고 뻐길 때는 언제고 지금에야 내 여자라? 그게 그런다고 어디 흠이 지고 닳는다던? 너와 나밖에 모르는 일이야. 우리에겐 아무 일도 없었어. 너는 내 여자가 될 수가 없어. 단지 동생일 뿐이야.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다른 이복동생이라고. 어떻게 동생이 부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마찬가지며 내일도 너는 동생일 뿐이야. 아니 동생도 이젠 아니다. 차라리 앞으로 서로 보지 않고 지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 아예 남남으로 지내는 게 낫겠지.” “왜 이러십니까, 오라버니. 색시가 돼달라고 하셨잖아요. 왜 저를 놀리십니까. 아까는 당연히 안 되는 일이어서 그랬지만 어쨌거나 오라버니가 저를 차지했잖습니까. 저를 이대로 내쫒는다는 것은 조금 전의 일보다 더 큰 죄악임을 오라버니가 누구보다 더 잘 아실 텐데요?” “오호라, 이젠 협박까지? 그래 네 맘대로 해봐라. 나는 네게 아무 짓도 안 했으니까. 설령 무슨 일이 있었다면 아파 꼼짝을 못하는 내 앞에서 네가 요망을 떨었던 게지.” “참으로 뻔뻔스럽군요.” “이제야 알았니?” “아바마마를 생각하십시오.” “듣기 싫다. 아바마마도 남자니라. 누구보다도 나를 이해하실 것이다.” 암논은 다윗의 간음을, 우리아의 속절없는 죽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여호와는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징계도 서슴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용서치 않으실 겁니다.”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다, 그만 썩 나가거라.” 암논은 꽥 소리를 질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다말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지나쳐 상사병까지 얻었던 그가 단 한 번의 욕심을 채우고 나자 사람이 백팔십도 바뀌어 상사병보다 더 한 미움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암논의 다말에 대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 동물적인 욕정에만 사로잡혀 그 욕망이 충족되자 변태적인 행태를 드러낸 것이다. 수치심과 모멸감, 혐오감과 허탈감이 뒤죽박죽된. “오라버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현실을 인정하세요.” “어서 나가지 못하겠느냐. 네 꼴도 보기 싫으니 빨리 꺼져라.” “오라버니,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제가 죽는 꼴을 기어이 보시려고 이러십니까.” 다말은 무릎을 꿇고 암논에게 사정했다. “안 되겠구나. 억지로라도 끌어내야지. 아랫것들 보기 민망하다.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암논이 큰소리로 하인들을 불렀다. 그러자 곧바로 하인 둘이 대령했다. “이 계집애를 대문 밖으로 어서 끌어내라. 행동거지가 아주 요망하기 그지없구나.” 그들은 거칠게 다말의 양팔을 붙잡아 순식간에 대문 밖까지 끌어내어 문을 닫고 문빗장까지 걸어버렸다. 암논은 그러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토록 보고 싶고 안고 싶고 차지하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었는데 정조를 빼앗자마자 보기 싫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어머니가 다르다지만 아버지가 같은 동생이라서 뒤탈이 겁나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게 되었을까. 그렇게도 열망하던 순간이었건만, 아무리 강제로 몸부림을 치며 합을 치렀다 치더라도,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을까. 그와 함께 급격히 식어버린 다말에 대한 애정은 또 무엇 때문인가. 암논은 그러한 자신의 변화에 화가 치밀고 한편으로 왕의 장자로서 율법에 금기시 되어 있는 짓, 즉 동생을 강간하고 말았다는 부끄러운 현실과 정조가 모든 것인 양 애원하는 다말의 행동도 견딜 수가 없었다. 암논의 집에서 쫓겨난 다말은 절망했다. 이젠 여자로서, 시집가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정조를 잃어버렸으니 자신의 인생은 끝난 거라 생각했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었다. 아예 세상의 종말이 지금 당장 닥쳤으면 싶었다. 어떻게 살아갈거나. 암논은 실력자였다. 다윗이 죽으면 왕위도 그에게 넘어갈 공산이 컸다. 신하들은 벌써 그의 눈치를 보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암논을 향해 감히 누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인가. 없었다. 강력한 암논에 맞서 자신을 변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비로소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주의 신분도 싫었다. 비틀거리며 한참을 거닐다 보니 밭 가운데에 밀짚을 태운 시커먼 재가 보였다. 그걸 보자마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뒤집어썼다. 더러워졌으니 더 더러워지라며 얼굴에도 바르고 옷에도 바르며 서럽게 울었다. 내 낭군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수줍게 얼굴 붉히며 마냥 그리던 꿈이 정말로 꿈이 되어버렸음에 겉옷마저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울부짖었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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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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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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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8회
- “여호와여, 어찌하여 등을 보이시며 응답하지 않사옵니까. 여호와여 돌아보시고 귀를 열어 주시옵소서. 손을 들어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자비로운 손길로써 아이를 어루만져 주시어 울음을 그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이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제 살과 뼈가 떨리나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한 왕을 염려하여 시종들이 아무리 일으켜 세우려 해도 꿈쩍을 안 했다. 기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처절해졌다. “여호와여, 언제까지 저를 모른 체 하시렵니까. 언제까지 주의 얼굴을 보이지 않으시렵니까. 저를 죽여주소서. 아예 저를 거두어 가 주시옵소서. 아이의 생명을 거두지 마시고 이 악인의 영혼을 취하시옵소서. 외면하지 마소서. 주의 얼굴을 이 종에게 보이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아이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아이 생후 이레까지 계속되었다. 얼굴은 수척해지고 기도 소리도 괴로운 신음과 같이 들렸다. 왕궁은 적막하기만 했다. 모두가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하늘은 묵묵부답, 언제나 그대로였다. 마침내 다윗의 귀에 시종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끝내 여호와의 응답을 받지 못한 그는 아이가 죽었음을 직감했다. 일어서려다 풀썩 고꾸라졌다. 시종들이 달려와 부축했다.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시종에게 물었다. “아이가 죽었느냐?” “망극 하옵니다, 폐하.” 다윗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두렵고도 또한 두려운 일이었다. 여호와의 사랑과 징계의 단호함이 예상한 일임에도 머리끝이 솟구쳤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온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그동안 먹지 못한 걸 보상이나 받으려는 듯 배불리 먹었다. 그런 다윗을 보며 시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여쭈올 것이 있사옵니다.” “그래, 무엇인가?” “왕자께서 살아있을 때는 금식하고 통곡하시더니 어찌하여 망극한 일을 당하시고도 이처럼 태연하실 수 있사옵니까?” “그것이 그리도 궁금하더란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아이가 살아있을 때는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살려주시지 않을까 했지만 이제 죽었으니 내가 아무리 슬퍼하고 애통해 한다고 살아오겠는가. 나는 그 아이에게 언젠가는 가겠지만 그 아이는 내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느니라. 어쩌겠느냐, 이 모든 게 여호와의 뜻인 걸.” 다윗은 생기를 되찾은 걸음으로 밧세바에게 갔다. 그녀의 상심은 온 방안에 가득했다.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닥친 여호와의 징계는 이제 끝났소. 아이에겐 정말 안 된 일이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기운을 차리시구려. 여호와께선 이제 당신을 내게 허락하신 것이오. 우리를 인정하신 거란 말이오. 앞으로는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여호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맙시다. 그리하면 분명히 그 아이를 잃은 슬픔보다 더 큰 축복을 우리에게 내리실 것이라 믿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당신을 얻기 위해 율법을 어겼고 그에 따라 이러한 시련이 있었소. 당신은 내게 그 시련 이상이오.” “고맙습니다, 폐하. 그러나 그 아이의 불행이 제 탓인 걸 생각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합니다.” “하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입시다. 여호와는 영원히 우리의 힘과 방패시요 우리의 처음과 끝이시며 우리의 기쁨과 슬픔입니다. 우리가 의지할 자는 오직 그 분밖에는 없소이다.” “폐하께서도 부디 모든 일에 담대하십시오. 또한 강건하시길 빕니다.” “그대도 마찬가지요.” 다윗은 밧세바의 방을 나와 여호와의 전이 있는 장막으로 가 경배하고 엎드렸다. 그는 아직도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옛날 고난의 시기처럼 계속해서 여호와께 매달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경은 그런 다윗의 심정을 기억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다윗의 참회를 땅이 알고 하늘이 알았다고 믿었음일까. 그는 신실함을 되찾았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하였다. 그래서일까. 훗날 다윗과 밧세바는 잃어버린 아들을 대신하고도 남는 여러 명의 아들을 둘 수 있었으니. 그 중 한 사람이 솔로몬이다. 다윗과 밧세바는 여호와하나님의 징계가 끝난 축복이 그들에게 넘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솔로몬을 낳았을 때 선지자 나단은 아이를 축복하고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여디디야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다윗에겐 열 번째가 되는 아들이다. 다윗은 모든 아들들이 서로 화목하라는 의미에서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내렸는데. 다윗의 맏아들은 암논이다. 그는 다윗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에게서 낳은 아들. 그런 암논이 다윗의 넷째 부인 마아가의 딸 다말의 미모에 반해버려 상사병을 얻게 된다. 암논은 딱하게도 이복동생을 사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만 있었다. 입맛도 없었다. 사는 재미도 잃었다. 오로지 그의 머릿속에는 다말만 존재할 뿐. 낮이고 밤이고 그녀만 생각나고,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그녀의 모습만 어른거렸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얼굴이 꺼칠해지고 몸은 갈수록 야위어갔다. 다말은 미모도 빼어날 뿐만 아니라 정숙하기도 한 처자여서 다윗이 특히 귀여워하는 딸. 다말의 오라비가 바로 이스라엘에서 아름다운 청년으로 명성이 자자한 압살롬. 어느 날 다윗의 형 시무아의 아들 요나답이 암논을 찾아와 형편없는 몰골을 보고 연유를 캐묻고는 계책 하나를 알려주고 떠났다. 암논과 요나답은 사촌이었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는데 요나답의 사람됨이 아주 간사했다. 암논은 아예 자리에 누워버렸다. 계책의 실행이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식솔들의 기척이라도 있으면 일부러 끙끙 앓는 소리까지 내었다. 자연스럽게 그가 앓고 있다는 소식이 다윗의 귀에까지 들렸다. 다윗은 요압이 암몬 족속의 수도인 랍바성을 함락시키자 요압의 권유로 직접 가서 성을 접수하고 그 안에 있던 금 면류관을 비롯한 수많은 보화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또한 그 성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이스라엘 땅으로 끌고 와 가장 힘든 일에 종사케 만들었다. 다윗으로서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요압의 공로로 암몬족을 속국으로 삼은 것이다. 요압은 자신의 이름으로 성을 접수할 수 있었지만 다윗이 친히 접수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그 충성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렇게 해서 다윗도 요압도 그 위치가 한결 튼튼해졌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였다. 다윗은 랍바성의 승리로 여호와가 여전히 자신과 동행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밧세바와 저지른 죄악은 아이의 죽음으로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나단이 경고했던 골육상쟁의 칼부림에 대한 경고가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런 때에 암논이 앓아누웠다는 소식을 듣자 가슴이 철렁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었다. 전통적으로 장자의 예우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인 차별화를 차치하고라도 장성한 맏아들 암논에 대한 다윗의 기대는 컸다. 그런데 그 맏아들이 아프단다.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여호외께서 그 애마저? 불길한 의구심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부랴부랴 암논의 집에 도착하여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의 신음이 문밖까지 들려와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다. “아니, 암논. 네가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아들을 본 다윗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렇게도 건강하던 얼굴이 초췌함을 넘어 송장 빛을 띠고 있지 않은가. 요나답의 계책에 따른 암논의 연기에 다윗이 깜빡 속고 있었다. “송구스럽습니다, 아바마마. 안팎으로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납시다니요. 못난 아들이 좀 아프기로서니…….” “무슨 말이냐.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게야. 의원은 불렀느냐?” “괜찮습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닌 것 같구나. 네 신음이 문밖까지 들리더구나.” 다윗은 암논이 못내 안쓰러워 얼굴을 쓰다듬었다. “군사들의 훈련에 제가 좀 지나쳤나 봅니다. 며칠 푹 쉬면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이니 염려 놓으십시오.” 암논은 다윗이 들어 가장 흡족한 말로 거짓말을 했다. “음식을 전혀 먹지도 못한다면서?” “입맛이 없을 뿐입니다.” “안 되겠다. 이러다가 큰 병을 얻게 될 것이야. 어의를 부르도록 해야겠다.” 암논은 깜짝 놀랐다. 어의라니? 그렇다면 꾀병이 탄로 나게 된다. “아닙니다, 아바마마. 제 말씀을 들어 주소서. 정말로 기운이 없을 뿐입니다. 정녕 저를 염려해 주신다면 다말로 하여금 시중이나 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운이 빠지니 마음까지 약해지나 봅니다. 갑자기 누이의 귀여운 모습이 보고 싶군요. 그 애가 와서 저를 위해 음식을 차려준다면 달게 먹을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느냐. 너희는 다 같은 핏줄이거늘. 어려울 때 돕는 것이 피를 나눈 형제 아니더냐. 내 당장 그리하라고 이를 테니 기운을 차려라. 너는 누가 뭐래도 내 장자란 말이다. 앞으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갈 이 다윗의 큰아들이 그까짓 하찮은 병을 얻어 누워있어서야 되겠느냐. 백성들이 뭐라고 수군거릴까 두렵구나.” “송구스럽습니다. 하루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땅히 그래야지.” 다윗은 들어올 때완 달리 혀를 끌끌 차며 암논의 방을 떠났다. 죽을병은 아닌 것 같았다. 과로. 적이 안심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복동생인데도 다말을 아끼는 마음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다윗은 곧바로 다말을 불러 당분간 암논의 수발을 들도록 당부했다. 그런 다윗의 지시를 듣고 암논은 쾌재를 불렀다. 다말이 암논의 집에 도착했을 때 시중드는 하인이 반색을 하여 반기고는 안으로 안내했다. 암논은 누워있었다. 다말은 그런 오라버니를 멀리서 보고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는 팔을 걷어붙이고 곧 주방에서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식사를 제대로 못한다 하니 우선 간식거리라도 만들 생각이었다. 그녀는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밀가루를 반죽하여 불에 구워 먹음직스러운 과자를 만들고 맛있는 음료를 준비했다. 암논은 꼼짝 않고 누워있자니 오금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섣불리 일어날 수도 없어 그대로 누워서도 눈은 줄곧 다말을 좇았다. 오늘따라 다말은 더욱 예뻐 보였다. 아름다운 빛깔의 옷맵시에 감춰진 몸매를 상상하자 저절로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다말은 하인과 함께 과자 접시를 들고 암논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미소를 담뿍 담고 있었다. “오라버니, 일어나셔서 이걸 좀 들어보세요. 솜씨가 없어서 맛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다말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암논은 꼼짝을 안 했다. 하인들의 눈이 다말이 가져온 과자와 자신에게 쏠려있는 걸 본 암논은 당장에 그들을 나가라고 다그쳤다. “부르기 전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마라.” 하인들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침실엔 암논과 다말만 남았다. 암논은 급했다. 벌떡 일어났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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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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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7회
- “한 성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였지만 또 한 사람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부자는 양과 소가 아주 많이 있었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이 단지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암양 새끼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여서 식구들이 먹을 때 같이 먹고 그들이 먹는 그릇에 물을 마시며 그들과 함께 어울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등 딸이 없는 그 집의 귀염둥이 딸 노릇을 톡톡히 하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나그네가 부자의 집에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손님을 접대하긴 해야겠는데 자기의 양과 소를 잡으려니 아무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가난한 자의 양을 강제로 뺏어다가 잡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그 많고 많은 양과 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의 가족처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양을 말입니다.” “뭐라고요? 그런 쳐 죽일 놈이 있나. 그렇게 나쁜 놈이 정말로 우리 이스라엘에 있단 말이오? 그 놈이 어디 사는지 아십니까?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그 놈을 붙잡아다가 당장에 물고를 내리이다. 이 땅에선 마땅히 사라져야 할 참으로 악독하고도 파렴치한 놈이구려. 그런 자와 함께 이 거룩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숨을 쉰다는 게 왕으로서 부끄럽습니다. 여호와께서도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내 당연히 율법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겠소. 율법이 명한 대로 그 자를 죽이기 전에 먼저 억울한 일을 당한 가난한 백성에게 네 배로 변상케 할 것입니다. 그 놈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다윗은 노발대발했다. 자신을 분명히 질책할 걸로 알았던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여호와의 화가 자신이 아님을 알고 자신의 죄악을 변호하기 위해서라도 일벌백계로 다스리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자신이 왕으로 있는 한 약자에게 그토록 억울한 일이 한 가지라도 있어선 안 된다고 새삼 다짐하면서. 자신은 여호와의 사랑과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성군이 되어야만 했다. 선지자 나단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다윗을 그대로 응시했다. “그 자가 우리 성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까?” 다윗은 어서 빨리 그 괘씸한 부자를 처단하고 싶었다. 그는 어느새 기고만장해져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 놈이 어디에 있소?” “바로 폐하, 왕의 보좌에 앉아있는 폐하께서 바로 그 부자이올시다.” 나단은 표정 하나 변치 않고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다윗을 가리켰다. 다윗은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신까지 속이려들었던 최면이 속절없이 풀려버린 순간이었다. ‘내 무덤을 내가 팠구나.’ 다윗은 탄식했다. 나단의 말은 계속되었다. “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오. 하나라도 더하거나 빼지 않는다는 걸 폐하께서 더 잘 알 것이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기 위하여 기름을 부어 축복하였고 너의 주인이었으나 너를 질시하여 죽이려 했던 사울의 손아귀에서 너의 생명을 지켜 주었으며 끝내는 내게 순종치 않았던 사울 왕의 자리마저 빼앗아 너에게 주고 권세 또한 네게 주어 온 십이 지파, 곧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여 네가 무엇이든지 더 달라고 하였다면 나는 또 네가 원하는 것을 다 주었을 것이니라.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나 여호와를 무시하고 업신여겨 악행을 일삼더란 말이냐. 네가 우리아의 처와 간음의 죄를 저지르고도 모자라 백성들을 속여 우리아를 이방인의 칼에 죽게 만들고 마침내 밧세바를 네 처로 삼았으니 앞으로 너희 가문에 골육상쟁의 칼부림이 일어나 그 피가 네 얼굴에 튀고 네 가슴엔 시퍼런 멍이 생길 것이니라. 또한 내가 너를 저주하여 밧세바를 취한 대가로 네가 두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데도 백주에 네 여자들이 능욕을 당하게 되리라.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서 죽게 될 줄을 정녕 몰랐단 말이냐.” 다윗은 숨조차 쉴 수 없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나단이 전하는 여호와의 말을 고스란히 새겨들었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칼이 되어 가슴을 후벼 파고 심장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았으며 그 진노의 음성은 어전을 쾅쾅 울리고 있었다. ‘아, 내가 여호와가 계시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망아지처럼 날뛰며 불의한 일을 저질렀도다. 내가 언제부터 왕이었단 말인가. 내가 누구에 의해 왕이 되었더란 말인가. 양치기 시절을 잊고,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때를 잊고, 또한 고비 때마다 살아난 은혜를 잊어버리고 어느덧 교만이 나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가려 결국 마음까지 시커멓게 변해 어둠 속을 헤매게 되었구나. 여호와께서 주신 율법,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이웃을 탐하지 말라는 계를 모두 어겼구나. 나는 이제 나의 죄로 인해 죽었도다. 이 한 몸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죄로 더럽혀진 욕을 씻을 길이 없고 죄인이란 이름을 지울 길이 없으며 여호와의 은혜와 사랑을 원수로 갚았으니 그것이 한이로다.’ 다윗은 보좌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나단 선지자 앞으로 걸어와 무릎을 꿇고 엎어져 피를 토하듯 여호와를 처절하게 불렀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여호와, 나의 하늘, 나의 하나님! 저의 죄가 너무나도 엄청나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할 수 있으시거든 자비를 베푸시어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죄를 씻어낼 기회를 주시옵소서.” 시종들도 덩달아 무릎을 꿇고 엎드려 울부짖었다. “여호와여,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다윗은 이제 바닥에 머리를 짓찧으며 간구했다. 경(經)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나단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여호와께서 폐하의 참회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사하셨습니다. 폐하께선 이 일로 결코 돌아가시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은 자들에게 조롱할 빌미를 주었으니 폐하의 시험은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 계속될 것이며 이번에 낳게 될 아이는 분명히 죽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나단은 어전을 떠나버렸다.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그 후회는 밧세바를 취한 것에 대한 후회는 아니었다. 비겁한 방법으로 우리아를 죽인 것에 대한 후회였다. 밧세바는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는, 무력한, 하늘의 뜻까지도 거역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이제 와서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되돌릴 수 없는 것. 다윗은 한동안 일어설 줄을 몰랐다. 나단이 서있던 자리는 허망만 남았다. 시종들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얼굴은 피와 눈물이 범벅되어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우리아를 죽이지 않고서 밧세바를 내 사람으로 만들 방법이 정녕 없었단 말인가. 내가 너무 서둘렀도다.’ 다윗은 밧세바에게 갔다. 밧세바는 어전에서의 일을 궁녀들을 통해 알았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침상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만삭의 몸이었다. 아기가 곧 태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분명 죽게 될 것이란다. 세상 빛도 누리지 못한 채. 자신의 죄로 인해. 다윗은 밧세바의 모습을 침통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또 다시 울부짖었다. “여호와시여, 나의 여호와 아버지하나님이시여. 한량없는 은혜를 입었던 제가 감히 당신을 욕보였나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살려 주시니 감사하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시여, 할 수 있으시거든 저 여인과 뱃속의 아이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제가 죄인입니다. 저들은 죄가 없습니다. 저로 인해 저들이 죄를 받는다는 게 너무도 두렵습니다. 이 죄인에게 베푸신 자비를 거두시어 저들에게 베풀어 주소서. 이 목숨을 가져가 주소서. 저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어느새 밧세바도 다윗의 곁에 와서 하늘을 우러러 두 손을 모았다.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 이 죄 많은 여인의 간구를 부디 외면하지 말아 주소서. 아시잖습니까. 제가 바로 죄인입니다. 저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왕을 유혹한 저의 죄가 더 크나이다. 제가 뱀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뱃속의 아이가 무슨 죄가 있으리까. 저의 영혼이 더러웠나이다. 욕심이 끝이 없었습니다. 분수를 몰랐습니다. 이 버러지 같은 영혼의 탄식을 들어주셔서 이 아이로 하여금 여호와의 영광을 온 천하에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다윗과 밧세바는 여호와를 향한 간구를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어쩔 수 없는 정욕으로 인해 가리어졌던 충신과 남편에 대한 회한과 죄스러움이 공범의식으로 번져, 끝내 두 사람 간 불륜의 씨앗이 불행을 맞게 될 것이라는 나단의 경고에 전율하며, 다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다윗은 밧세바에게 죄스러웠고 밧세바는 다윗에게 죄스러웠다. 하늘은 말이 없었다. 그래도 밤이 가고 날이 갔다. 달이 차고 때가 되매 밧세바는 아들을 낳았다. 다윗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축복은커녕 아이가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 초조하기만 했다. 아이의 얼굴조차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죄악의 씨앗으로 어차피 불행하게 될 아이였다. 바꿀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목숨과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은 심정의 나날이 계속되고. 아직도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는 끝나지 않았는데. 여호와의 징계는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열이 펄펄 끓고 아프다는 전갈이 득달같이 온 것이다. 다윗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체념했다. 그는 그 핏덩이의 불행이 자신의 죄에 대한 불가항력의 결과라는 데에 더 괴로웠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어찌해야 하는가. 땅바닥에 엎드렸다.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오로지 여호와께 더욱 더 간절하게 간구하는 수밖에. 빌고 또 빌었다. 여호와가 내린 징벌이니 거둘 수 있는 자도 그 분 밖에 더 있으랴.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리오. 오직 한 가지 그 어린 핏덩이를 사랑하신다면 이 죄인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옵소서. 나의 왕, 나의 여호와시여. 그 아이를 살려 주시옵소서. 저의 죄가 심히 가증스러우나 그래도 저를 살려 주신 것 같이 자비의 끈을 놓지 말아 주시옵소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죄가 없는 그 핏덩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아픔을 느낍니다. 저의 남은 온 생애를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저에 대한 노여움을 거두시고 핏덩이에 불과한 아이에게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않았다. 오직 어린 생명을 살리고자 혼신의 기도만 드렸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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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6회
- ‘요압 장군 친전. 그동안 얼마나 노고가 많았소. 내가 직접 참여하진 않았어도 이토록 마음이 든든한 것은 장군이 있기 때문 아니겠소. 기필코 대적들을 크게 무찌르리라 믿고 있다오. 내가 이렇게 밀지를 보내는 것은 우리아 때문이오. 우리아는 충신이긴 하나 어쨌든 이방인이오. 이유를 묻지 말고 우리아를 죽이시오. 장군의 칼에 피를 묻히지 말고 적의 손에 죽게 만드시오. 전투를 하다가 죽은 것처럼 말이오. 그는 용사 중의 용사요. 최고로 치열한 곳, 최전방으로 보내시오. 그는 살기보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오. 그 이유는 차차 알게 될 것인즉 나의 명을 차질 없이 수행하시오. 이건 오직 장군과 나만 아는 비밀이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아는 이방인일 뿐이오. 그는 죽어야 하오. 나와 장군의 안위를 생각하시오. 부디 건투를 비오.’ 다윗은 이성을 잃었다. 자신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끝내 살인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도 간음의 상대인 밧세바의 남편이자 이스라엘의 충신이며 더할 나위 없는 심복인 우리아를 죽이라는, 또 하나의 죄악을 저지르려는 것이었다. 우리아가 다윗 앞에 나타났다. 다윗은 굳은 표정으로 밀봉된 편지를 우리아에게 넘겼다. “요압 장군에게 전하시오. 작전명령이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아는 허리를 구부려 공손하게 그 편지를 받았다. 자신을 죽이라는 편지. 그 편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자신을 죽여야 하는 요압에게 건네야 했다. 얄궂은 운명이었다. 다윗은 돌아섰고 우리아는 다시 한 번 허리를 구부려 자신을 죽이려는 자에게 예를 다했다. 그는 다윗의 어두운 표정이 자신을 위한 술자리의 후유증이라 생각하여 더욱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는 바로 전장으로 떠났다. 요압은 우리아로부터 받은 다윗의 편지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편지는 분명히 우리아를 죽이라고 되어 있었다. 우리의 손으로 말고 적의 손에 죽게 만들라고. 뭔가가 있다. 우리아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음모가 분명했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이복누이 스루야의 맏아들로 다윗과 함께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용맹을 떨치고 승리를 낚아챈 용사 중의 용사. 밧세바의 조부 아히도벨의 계략을 따라 여부스 족을 멸하고 예루살렘을 탈취한 것도 그였다. 에돔성을 점령하고 성의 모든 남자들을 죽여 버린 것도 그였다. 다윗에게는 무조건 충성하였으며, 과단성 있고 탁월한 군사전략가로서 군대장관의 위치에 있는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2인자였다. 그러나 그는 너무 잔인하고 성격이 불같아서 부하들로부터 진정한 신망을 얻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다윗이 요압을 이용하여 우리아를 죽이려 한 데에는 그의 무조건적 충성과 다윗의 말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따르는 순종지심을 이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요압은 모든 지형지물과 적의 동태와 에워싸고 있는 랍바성과 관계를 면밀히 분석하여 우리아 죽이기 작전을 짰다. 먼저 그는 암몬족을 유인하기 위하여 소수의 군사들을 성에 접근하도록 명했다. 명을 받은 장수는 수하들을 이끌고 성을 향해 진격했으나 상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요압의 군사들이 성의 지척에 이르자 화살이 쏟아지면서 성문이 열리고 수많은 암몬 군사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요압의 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퇴각하여 적들이 성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쫓아오도록 유인작전을 폈다. 암몬 군사들은 요압의 계획에 호응이라도 하듯 줄기차게 쫓아왔다. 드디어 요압은 우리아를 지휘관으로 하여 출전을 명했다. 우리아의 수하에는 요압이 신임하는 장수를 출전시켜 자신의 계획을 차질 없이 수행토록 지시를 내렸다. 우리아는 선봉에 서서 번개처럼 말을 몰아 달려 나갔다. 적과 적이 맞붙었다.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우리아는 순식간에 암몬 군사 여러 명의 목숨을 빼앗으며 성 가까이 접근했다. 그러나 암몬 군사는 수적으로 우세했다. 처음엔 당황하여 밀리는가 싶더니 거세게 대항해왔다. 아군 몇이 쓰러졌다. 우리아는 여호와께 울부짖었다. “만군의 여호와여, 우리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저들을 무찌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나 군사들은 밀리기만 했다. 어찌된 일인지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압이 사태를 충분히 파악했을 터인데도.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었다. 그런데 한참을 정신없이 싸우고 보니 자기 주변에 아군이라곤 단 한 명도 없지 않은가. ‘벌써 다 쓰러지고 말았단 말인가.’ 샅샅이 둘러봐도 자신의 군사들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혼자서 아무리 날뛰어 봐야 소용없었다. 그는 기진맥진, 달려오는 적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할 때 자신도 화살에 당했음을 알았다. 그는 쓰러졌다. 그리고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혼신의 기도를 올렸다. “이스라엘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다윗 왕께 은혜를 베푸시어 대적들을 모조리 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는 다윗의 얼굴을 떠올리며 죽어갔다. 왕은 위대하다. 끝내 암몬을 멸하지 못하고 그렇게 죽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밧세바의 미소 짓는 얼굴도 떠올랐다. 가엾고 안타까웠다. 자신이 죽더라도 다윗이 그녀를 보살펴 주리라, 안도했다. 수많은 창과 칼이 그의 몸에 꽂혔다. 그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속절없이 죽었다. 우리아에게 철썩 같이 믿었던 하늘, 전능하신 여호와의 공의는 없었다. 그러나 그날 요압이 잃은 군사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다윗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한 요압이었다. 사실상 그날의 패배는 다윗의 승리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백성을 사리사욕의 제물로 희생시킨 죄악의 승리. 요압은 다윗에게 보낼 사자를 불렀다. “오늘의 전투는 암몬 군사를 밖으로 유인하여 멸하고자 하였으나 의외로 적이 강력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우리 군사 수 명과 불행하게도 폐하께서 신임하는 장수 우리아가 죽고 말았다. 그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장렬하게 죽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불찰이니라. 다음부터는 오늘의 전투를 교훈삼아 적들을 섬멸하는데 추호도 실수가 없도록 할 것이니 폐하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라고 내 대신 무릎을 꿇어라. 우리아의 죽음을 결코 헛되게 하진 않을 거라고 말일세.” 요압은 능청스러웠다. 그의 얼굴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까지 피어올랐다. 사자는 질풍같이 말을 몰아 순식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다윗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어 그대로를 전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다윗은 담담하게 말했다. “요압 장군에게 전하라. 전투에서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거라고. 우리가 그날은 운이 나빴을 것이다. 또한 이번 전투는 사소한 패배 중 하나일 뿐이니 그리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아의 죽음은 분명히 애석한 일이지만 적의 칼이 누구를 가려서 베려 했겠느냐. 적의 칼에 나도 죽을 수 있고 요압도 죽을 수 있느니라. 이 일로 우리 군사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고 우리에게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적에 대하여 더욱 담대하게 마음을 다져먹고 기필코 랍바성을 함락시켜 우리아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라고 말이다.” 그는 또 시종들에게 지시했다. “우리아의 죽음은 이스라엘에 여호와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그의 용맹함을 기려 우리아가(家)에 상을 내리고 경건하게 장례를 치르는데 궁중에서 최대한 도와주도록 해라. 그 망부(亡婦)를 위로하는 일은 특별히 내가 맡겠다.” 밧세바는 울었다. 우리아의 인생이 불쌍하여 울었다. 우리아가 절대강자의 위치로 올라설 수 없게 타고난 운명을 애도했다. 그의 절대적 한계가 자신이 충성하는 자의 조종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배신에 의한 죽음이어서 울었다. 그 사랑하는 여자가 바로 나, 자신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소스라치며 갈마(karma)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를 떨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바닷가의 수많은 모래알과 같은 범부의 아내로서 만족할 수 없다는, 이름도 뜻도 없이 인생을 살아가긴 싫다는, 그런 욕심의 결과로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우리아의 처참한 죽음이라는 분명한 현실로 나타나자 그것도 여호와의 뜻이고 하늘의 섭리라며 자신을 변명하고 위로하기에 바빴다. 우리아의 죽음은 자신에게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야 했다. 밧세바는 담대하게 장례를 치렀다. 섭리에 의한 오늘의 슬픔은 내일의 성취를 위한 화목제물이라며. 그녀에게 여호와의 공의는 아주 편리한 것이었다. 다윗에게 잉태를 알리고 나서 사실 밧세바는 초조했다. 다윗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아무리 비밀을 유지하려 조심스럽게 움직였어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눈들,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귀들이 있을 것이었다. 그 눈과 귀가 문제였다. 남편이 전쟁터에 있는데 임신이라니? 본 것이, 들은 것이 중차대하고 비밀스러울수록 입들은 안달을 하기 마련일진대. 이제 서서히 불러오는 배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그렇지만 상대는 왕이었다. 그의 뾰족한 수를 기대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아의 소환. 어쩌자고? 어떻게 하려고 그를 불렀는가. 실망이었다. 우리아를 집에 가서 푹 쉬게 하려는 다윗의 조치는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아의 우직한 충심이 밧세바를 안도케 했다. 다윗과 관계만 안 가졌더라면, 아니 다윗의 씨만 잉태하지 않았더라면 그녀 스스로 왕궁수비대 숙소를 찾아갔을 터였다. 가서 수시로 엄습하는 정염을 보상받으려 아낌없이 불태웠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우리아는 오지 않았다. 밧세바도 우리아를 찾지 않았다. 그를 찾아가는 날엔 꿈도 사라지리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우리아는 전쟁터로 떠났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함부로 끄집어낼 수도 없으리만치 무서운 바람이었지만, 하늘이 날벼락을 내려도 싼 바람이었지만, 차라리 뒤끝이 없는 원하던 결과였다. 우리아를 죽인 건 다윗도, 요압도, 암몬군사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 그토록 우리아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부인, 밧세바였다. 장례가 끝나고 율법이 정한 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다윗의 사자가 들이닥쳤다. 부인이 되어달라는 전갈이었다. 밧세바가 충분히 예상한 수순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다면 우리아의 죽음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막상 전갈을 받고 보니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해일처럼 밀려드는 것이 아닌가. 어금니를 악물고서 단단히 각오를 했는데도. 그래서일까. 밧세바는 그러한 전갈을 받자마자 엄청난 구토의 욕을 치러야 했다. 표시도 나지 않는 간음의 씨앗이 뱃속에서 한바탕 소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아비를 찾아 기뻐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징조한 것인가, 밧세바는 애써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결국. 밧세바는 남편의 죽음으로 흘린 눈물(그 눈물이 우리아가 불쌍했든 자신의 배신에 의한 죄의식이든 엄청난 결과에 당황하여 흘렸든)이 마르자마자 다윗 왕의 부인 자격으로 당당하게 궁궐에 들어갔다. 께름칙한 게 없지 않았지만 빼든 칼이고 엎질러진 물이었으며 궁극적으로 소원하던 결과였다. 다윗이 이토록 서둘러 밧세바를 부인으로 맞이한 것은 간음의 씨앗을 합리화하기 위한 술책의 하나였다. 왕의 비가 되기 전의 씨앗이 아니라 된 후에 잉태한 씨앗이라는 술책. 곧 불러올 밧세바의 배, 거기에 따른 신하와 백성들의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또 하나 전쟁미망인이 넘쳐나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녀들을 솔선수범하여 돌본다는 얄팍한 꾀, 권모술수였다. 다윗을 만난 밧세바는 결코 슬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아는 죽었고 자신은 이제 다윗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환호작약하지도 않았으며 다윗의 품에 안겨 희희낙락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헤프게 보이거나 가볍게 보이거나 해서 싸구려로 대접 받고 싶지는 않았다. 오직 다윗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되었다는 걸로 뭇시선에게 보이길 원했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게 타이르고 다독였다. 그녀는 다윗뿐만 아니라 궁인들에게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정숙하고 품위 있는 왕비여야 했다. 다윗은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감에 만족했다. 대적들은 갈수록 힘이 약해졌고 왕의 권위는 갈수록 높아만 갔다. 백성들은 왕을 칭송했으며 신하들은 그를 의지하고 따르며 충성을 다했다.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의심할 수도 없었다. 밧세바의 배는 빠르게 불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대변인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왔다. 찔끔할 수밖에. 예전에 나단 선지자는 여호와의 계시를 이렇게 말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너를 양치기에서 이스라엘의 주인으로 삼고 내가 너와 동행하며 너의 적들을 멸하여 너를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되게 하였느니라. 너의 가정과 네 나라가 너로 인하여 영원히 보전되고 네 보좌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그랬던 나단이 자기를 찾아왔다는 것은 여호와의 계시가 분명히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드러나는 치세와는 다르게 정욕을 위하여 죄악을 범한 행위들이 이미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단을 맞은 다윗은 숨을 죽였다. 나단은 성큼성큼 걸어와 어전의 한 중앙에 서서 다윗을 무섭게 쏘아보며 수염을 파르르 떨면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 세상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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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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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5회
- 그런 반면에 우리아는 왕의 처사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전쟁이다. 그것도 랍바성을 포위하고 있는 급박한 상황. 집에 특별한 일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쩌자고 왕은 나를 부른 것일까. 휴가라니? 전쟁 상황에서 휴가라니?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자신이 지켜본 다윗 같지 않은 소환의 변이고 휴가의 명분이었다. 혹 내가 이방인이라서 시험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시험을 당할 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고 우리아는 자부했다. 자신은 왕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위해 사심 없이 싸워온 자타가 공인하는 용사가 아닌가. 정말로 심신의 피로를 풀라는 왕의 배려인가? 우리아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마침내 왕의 은혜에 감격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동료들과 부하들을 생각했다. 어찌 나 혼자 발 뻗고 편히 잠잘 수 있단 말인가. 어찌 나 혼자 부인의 품속에서 노닥거릴 수 있으랴. 그건 여호와께서도 용납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우리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광야에서 노숙하며 잠을 설치는 동료와 부하를 생각하니 도저히 집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궁 호위대의 숙소에서 잠을 잤다. 그게 오히려 편했다. 사실 아리따운 아내 밧세바를 그리는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벌써 몇 달째인가. 그러나 그것은 사사로운 개인적인 정리였다. 그는 진정한 조국 이스라엘이 보다 더 소중했다. 다윗은 가슴을 짓누르던 일을 처리한 것이 못내 흐뭇하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오랜만에 넷째 부인 마아가의 처소에 들렀다. 우리아가 밧세바와 하룻밤만 보낸다면 그녀가 잉태한 다윗의 아이는 우리아의 아이로 감쪽같이 둔갑해버리는 것이다. 마음에 찔리는 바가 결코 없지 않았지만 우선 위기를 그렇게 넘기기로 작정하고 우리아를 소환했던 것이다. 다음에 다른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었다. 마아가의 처소에는 그녀에게서 난 아들 압살롬과 딸 다말이 함께 있었다. 압살롬은 아들들 가운데 가장 다윗을 빼닮아 아주 기품 있는 청년으로 장성했으며 다말 또한 정숙하고도 아리따운 처녀가 되어 있었다. 마아가는 다윗을 극진하게 받들었다. “어디 편찮은 데라도 있으십니까. 그전보다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편찮다니 당치 않소. 신경 쓰는 일이 많아 그럴 거요. 아무 걱정 마오.” 다윗은 밧세바와 밀회의 밤이 격렬하여 얼굴이 조금 상한 것이려니 당연하다 생각되었다. 그러나 마아가는 왕의 건강이 염려되어 상비해 놓은 피로회복에 좋다는 약을 다윗이 들도록 했다. 압살롬은 곧 다윗에게 인사하고 자신의 관할로 돌아갔다. 다윗은 압살롬의 나무랄 데 없는 용모에 비록 아들일지라도 같은 남자로서 질투마저 느낄 정도였지만 보면 볼수록 자랑스럽고 든든한 마음이 더 컸다. 마아가와 다말 두 모녀는 다윗을 침상에 눕게 해 한쪽씩을 맡아 팔다리를 주무르며 피로를 가시게 했다. 다말은 다윗에게 어리광을 곧잘 부렸고 다윗은 그런 딸이 너무 귀여워 신랑감을 생각하다가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마아가는 결코 투기라곤 모르는, 다윗에게는 편안하기 이를 데 없는 부인이었다. 다음날 다윗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보고를 받았다. 우리아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호위대와 함께 왕궁 막사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혔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버린 것에 대해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내색할 수도 없었다. 단 하룻밤으로도 족한 음모였다. 그는 우리아를 당장에 불러들여 나긋한 미소까지 띠며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많은 날들을 전장에서 보내놓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호위대 숙소에서 잠을 잤더란 말이오?” “송구스럽습니다. 폐하의 명을 어긴 죄 백 번 죽어 마땅한 일이오나,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괘가 장막에 있사옵고, 수많은 이스라엘 군사가 암몬 군대를 멸하기 위해 광야에서 노숙하고 있으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장수들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막사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심전력 하는 판에, 어찌 저 혼자 잘 먹고 잘 마시며 부인의 품안에서 발을 쭉 뻗고 잠들 수 있겠습니까. 저는 폐하의 대적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나타날 때까지 그리할 수 없나이다.” 다윗은 입맛을 다셨다. 밧세바와의 간음만 아니라면 이만한 충신이 또 있을까 탄복하고 후한 상을 내려야겠지만 자신의 코가 석 자였다. 충직하고 우직한 우리아가 오히려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내색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충신이로고. 그대 같은 장수가 있는 한 우리 이스라엘이 가는 길엔 승리만 있을 뿐이오.” “부끄럽습니다. 하루 빨리 전장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지만 그건 아니 될 말이오. 그대는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르는구려. 나는 이제부터 장수와 그 부하들을 돌아가면서 쉬게 한다는 영을 내리겠다고 하지 않았소. 누구에게나 휴식은 필요한 법이오. 적당히 쉬게 하는 게 더 능률적이란 말이오. 바로 그대가 첫 번째 경우인데 그대가 집에 가서 쉬지 않는다면 다음 차례의 장수들이 어떻게 편히 쉴 수 있겠느냐 말이오. 막상 쉬고 싶어도 그대의 선례가 있어 그들도 그대처럼 할 게 아니겠소?” “지금 전장의 상황은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내 말을 마저 들으시오. 또한 부인도 생각해야 할 게 아니오. 만약 그대가 고집을 부린다면 다른 장수의 부인들은 그대를 얼마나 원망하겠소.” “하지만 폐하, 조금만 있으면 랍바성은 분명히 함락될 것입니다. 휴식은 그 후에 취해도 늦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지 않으셔도 저희들은 태평성대를 자연스럽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어허 우리아. 우리의 대적은 암몬만이 아니오. 그대의 충정은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다른 말 말고 오늘은 집에 들어가 푹 쉬었다가 그토록 마음이 놓이지 않거들랑 내일 당장 전장으로 떠나도록 하시오. 선례를 남기지 말란 말이오.” “폐하, 은혜가 망극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폐하와 언제까지나 함께 하시길 앙망하나이다.” 그러나 우리아는 다윗의 희망과 달리 그날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다윗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련한 곰탱이 같은 놈이로구나. 그렇게 내 맘을 몰라준단 말인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냥 할 것이지… 그러면 저 좋고 나 좋은 일 아닌가.’ 다시 우리아를 불렀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왜 집에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힐책하지 않았다. 아직도 갑옷을 입고 있는 우리아의 결연한 얼굴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말을 할 때면 오직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을 위하고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매진할 뿐이라는 거였다. 다윗은 그런 우리아에게 질려버려 오죽하면 꼴도 보기 싫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색할 수는 정말 없었다. 전쟁터로 다시 출발하는 그를 위하여 왕으로서 건투를 빌어주고 위로해야 마땅했다. “그대의 고집은 대단하구려.” “용서하십시오. 집에서 자는 잠자리가 저에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알았소, 알았어. 나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대가 참으로 듬직할 뿐이오. 그러니 오늘 떠나기 전에 그대의 충정을 높이 사 상을 베풀기를 바라는데 그것마저 거절할 터요?” “황공하옵니다. 어찌 폐하의 영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종들에게 명하여 주연을 준비시켜 우리아를 옆에 앉혔다. “자, 언약의 피요. 이스라엘의 피란 말이오.” 다윗은 큼지막한 잔에 포도주를 철철 넘치게 따랐다. 그들 앞에는 산해진미가 넘쳐났다. “폐하, 영광이옵니다.” 우리아는 감격했다. 일개 장수에 불과한 자신에게 왕이 베푸는 친절이 분에 넘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이런 왕을 위하여 지금까지 해왔던 자신의 충성이 너무 미미하지 않았나 생각하고는 앞으로는 더욱 분골쇄신하리라 다짐했다. 따라서 그는 다윗이 따라주는 대로 거침없이 마셨다. 감격, 또 감격이 넘치는 잔을 어찌 마시지 않을 수 있으랴. 포도주도 자신의 신분으로서는 감히 맛보기 힘든 최상급이었다. 다윗도 똑같이 마셨다.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보도 작용했다. 그렇다고 왕의 체통을 잃지는 않았다. 우리아에게 하는 얘기는 전쟁의 상황에 따른 지시였고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일이었으며 자신이 겪어본 암몬 족속의 장점과 단점, 곧 특성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은 장수를 대하는 왕으로서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우리아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는 않았다. 다윗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고 벌써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며 기필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이스라엘의 주인을 기쁘게 해드릴까만 생각했다.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해가 지도록 술을 마셨다. 우리아는 어느 시간까지는 전쟁터로 떠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이제나저제나 술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렸으나 다윗은 좀체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먼저 일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술기가 얼큰하게 오르고 더 이상 마셔선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해가 저문 뒤였다. 그는 오늘은 전쟁터로 떠날 수 없겠다고 체념했다. 다윗은 취했다. 그러나 그러한 술자리는 우리아의 의지를 술로써 무력화시키는 교활한 작전이고 계획이었다. 우리아는 선례를 남기지 마라는 주의를 주었음에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처벌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시게 하여 전쟁터로 떠나는 걸 막고 인사불성인 상태의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해서 기어코 밧세바와 하룻밤을 보내게 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가 밧세바를 품에 안고 자든지 말든지 그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집에 들렀다는 것, 오로지 그게 중요했다. 다윗은 우리아가 무척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걸 보고 만족했다. 조심스럽게 행동한다는 것은 분명 자신 앞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하는 우리아의 술 취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다윗은 자신의 잔을 비우며 우리아가 마시지 않을 수 없도록 강권했다. “우리아.” “예, 폐하.” 다윗이나 우리아나 혀가 꼬였다. 다윗은 의도한 바였지만 우리아는 의지대로만 되지 않는 혀가 원망스러웠다. “오늘은 그대 덕분에 내가 너무 즐거워 포도주가 넘치게 된 것 같소. 그대도 과했을 것이니 집에 들어가 쉬었다가 내일 떠나도록 하시오. 부디 건투를 비오. 요압 장군에게도 승리를 기원한다는 내 뜻을 전하기 바라오.” 제발 집에 들러라. 다윗은 상체를 앞뒤로 흔들거리며 간신히 말했다. 듣는 우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신이 무례를 범한 것 같사옵니다. 암몬 족속보다 술이 더 강한 듯합니다. 용서하시옵소서.” “아니오, 아니오. 오늘 정말 유쾌했소. 술이야 취하려고 마시는 것 아니겠소? 여봐라, 어서 우리아를 댁으로 모셔라.” 다윗은 시종들에게 명했다. 댁을 발음할 때 유달리 악센트가 강했다. “폐하, 부디 강건하시옵소서. 하루 속히 좋은 소식을 올려 보내겠습니다.” 우리아는 일어섰다. 그러나 그는 비틀거렸다. 시종들이 그를 부축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우리아의 모습을 지켜본 다윗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어댔다. 그의 말대로 유쾌한 웃음이었다. “으하하하, 천하의 우리아도 술에는 못 당하는구나. 우리 이스라엘의 보배를 잘 모시어라. 집, 집까지 말이다. 으하하하.” 집도 댁과 마찬가지로 악센트가 강하게 나왔다. 이제야 정말로 두 다리 쭉 뻗고 잘 것 같았다. 참으로 충신이로고. 밧세바와 밀회가 께름칙하긴 했지만 어디 우리아 만한 장수, 믿을 수 있는 심복이 또 있으랴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빠개질 듯한 두통에 시달리다 잠을 깬 다윗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신의 계획이 모두 허사였음을 알게 되었다. 시종은 다윗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죄인처럼 조아렸다. “한사코 집으로 가자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칼까지 빼들고 버티는 데는 저희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지난밤도 궁중 막사에서 잤단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다윗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느라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알았다. 오늘 떠날 채비는 하고 있는가?” “폐하의 하명만 기다리고 있다 하옵니다.” 다윗은 눈을 감았다. 두통이 더 심해졌다. 지독한 고집이다. 아니 우직한 건지 멍청한 건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한다, 어떻게 한다? “우리아를 들라 해라.” 다윗은 시종에게 명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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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창작
- 웹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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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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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4회
- 다윗은 흐뭇했다. 밧세바는 뜻밖의 월척이었고 토실토실한 토끼였으며 매끈한 암사슴이었다. 자신은 행운의 어부고 사냥꾼이며 수많은 암사슴을 거느린 멋진 뿔을 가진 수사슴이었다. 지금까지 첫째 부인 미갈을 비롯하여 여러 부인들을 거느리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아리따운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있었지만 밧세바 만한 여자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미모도 특출하지만 지혜 또한 다른 부인들과 비길 바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피는 속일 수 없다고 그녀는 자신이 여태까지 참여했던 수많은 전투에서 커다란 도움을 받았던 책사 아히도벨의 손녀라는 게 아닌가. 아무리 첫 만남일지라도 밧세바는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짚어내어 긁어주고 원하는 바를 넘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쁨까지 줄 줄을 아는 여자였다. 무엇보다도 합궁의 순간에 느낄 수 있는 희열은 제대로 된 짝을 만났다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행여 그녀가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염려가 될 정도였으니. 그만한 여자는 과거에도 있지 않았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나하나 부인들의 얼굴을 떠올려 봐도 장점과 단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혹 근처라도 올 수 있는 부인을 꼽으라면 지혜로운 아비가일이 아닐까. 아비가일은 원래 갈멜 족속의 갑부, 나발의 아내였다. 나발은 부자였으나 성격이 난폭하고 탐욕스러우며 고집이 센 구두쇠였다. 다윗이 사울 왕의 끊임없는 박해를 피해 소수의 무리를 이끌고 광야를 방랑할 때 우연찮게 나발의 양 삼천 마리와 염소 천 마리를 보호해주는 일을 했는데 어느 축제일이 되어 춥고 배고픈 다윗이 나발에게 부하들을 보내 원조를 요청했다. 사실 축제 때는 어려운 이웃이나 나그네에게 후하게 대접하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나발은 다윗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를 도왔음에도 불구하고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일언지하에 요청을 거절해버리는 게 아니가. 다윗은 발끈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발을 혼내줄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때 총명하면서도 용모까지 빼어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그런 사실을 알고 간청을 하여, 또 다윗이 보기에 흡족할 정도로 나발과는 아주 다른 처신을 해 칼에 피를 묻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난 얼마 후 나발은 급사하고 말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사람이 갑자기 죽을 수도 있는 일은 가끔 일어나니까. 그러나 다윗과 심복 몇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외경은 아비가일이 탐이 난 다윗이 쥐도 새도 모르게 한 짓이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외경은 다윗에게 반한 아비가일의 협조를 언급한다. 나발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오자마자 다윗은 기다렸다는 듯 아비가일에게 사람을 보내 의향을 물은 후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아비가일의 반대가 있을 리 만무. 아니 그렇게 묻고 대답하는 일조차 남의 눈을 의식한 요식행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아비가일은 둘째 아들 길르압을 낳았다. 밧세바의 손길은 다윗의 몸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녀는 빼어난 안마사가 되어 뭉친 곳을 풀어주고 딱딱한 곳은 두들기며 부드러운 곳은 더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미약 탓이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왕성한 다윗의 정력 탓이었을까. 다윗의 성가름은 쓰러질 줄 모르고 밧세바의 손길이, 입김이, 젖무덤이 그곳을 스칠 때마다 벌떡벌떡 씩씩거렸다. 밧세바는 신이 났다. 그물에 가득한 고기들이 펄떡대며 딸려왔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이제 바구니에 담을 일만 남았다. 다윗은 어느새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며 연거푸 숨 가쁘게 탄성을 질러대고. 그녀는 고기를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폐하, 아직도 밤은 멀었습니다.” “아주 새지 말았으면 좋겠구려. 하하하.” 다윗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은 밧세바의 포로라 생각되었다. 절망과 패배의 포로가 아닌 기쁨과 즐거움의 포로, 행복한 포로였다. 욕탕에서도 침실에서도 둘은 밤이 가는 줄 모르고, 지칠 줄도 모르고, 서로를 끊임없이 탐했다. 샘물은 계속 솟아올랐고 마시면 마실수록 달콤하기만 했다. 달은 벌써 지고 없었다. 더 이상 절정을 미루지 못할 상태였다. 이윽고 다윗도 밧세바도 최고의 절정에 이르렀다.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괴성과 자지러짐 끝에 서로가 부르르 떨며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둘은 죽은 듯이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 펄떡이던 고기들을 고스란히 바구니에 담았다고 밧세바는 생각하면서. 이제 요리할 일만 남았을 뿐이라고. 그렇게 밤이 가고 날이 갔다. 그때 암몬 족속의 수도 랍바성을 에워싸고 있던 요압 장군이 이끌고 있는 다윗의 군대는 죽을 각오로 최후 저항을 하는 암몬 군대를 쉽게 멸하지 못하고 싸움은 일시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이기리라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밧세바에 푹 빠져 헤어날 줄을 몰랐다. 오로지 그녀와의 밀회에만 열중했다. 밧세바는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그녀의 타고난 매력의 원천은 마를 줄을 몰랐다. 자연히 다윗의 오수를 즐기는 습관은 시도 때도 없어졌다. 늦잠을 늘어지게 자기도 했지만 오후에도 시간만 나면 잠을 청했다. 그것은 밧세바와 즐기는 밤을 위한 힘의 비축이었다. 다윗은 밧세바에게 완전히 미쳐 있었던 것이다. 봄이 무르익어 여름이 시작되려는 어느 날이었다. 밧세바와의 연락을 도맡아 하는 시종이 다윗이 낮잠을 깨길 기다려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폐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가. 밧세바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겐가?” 시종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없었기에 다윗은 긴장하며 틀림없이 밧세바의 일일 거라 지레짐작을 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답답하구나. 어서 말을 해라.” “오늘부터는 오지 못할 거라 하옵니다.” “뭣이라고? 오지 못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단 말이냐. 어디 아프기라도 하느냐?” 다윗은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런 게 아니오라 잉태한 걸로 아옵니다.” “뭣이, 잉태! 잉태라니?” 다윗은 까무러치도록 놀랐다. “정녕 그게 사실이란 말이냐?” “어찌 감히 거짓을 아뢰오리까.” 시종은 자신이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모양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윗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일을 어찌할꼬.’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이 온몸에 퍼져왔다. 밧세바를 만난 지 두세 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전쟁터에 있는데 그녀가 임신을 했다면 하루도 빠짐없이 놀아난 자신의 아이가 틀림없다는 말인데. ‘이 일을 어쩐다냐.’ 다윗은 고심했다. 밧세바와 놀아난 사실이 밝혀진다면, 더군다나 충신의 아내와 간음한 사실이 탄로 난다면, 언제 어디서의 전투건 앞장서야 할 왕의 위치에서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고 후방의 궁궐에만 안주하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선두에 서서 싸우는 장수의 아내와 간음이나 저지른 추잡한 왕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면, 지금까지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이룩한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마저 장담할 수 없는 처지라 생각되었다. 그 누가 자신과 같은 부도덕한 왕을 섬기며 따를 것인가. 어떻게 간음한 자신이 백성에게는 간음한 자를 처단하라고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제 어디서고 모범이 되어야 하는 여호와 율법의 수호자가 율법을 스스로 내팽개치고선 백성에게 율법 준수를 외칠 수 있단 말인가. 비난은 불을 보듯 뻔하고 신하와 백성들은 등을 돌릴 게 너무도 분명해 보였다.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무리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율법에 대하여 패륜의 죄를 저지른 왕을 폐하자는 명분으로 반역을 꾀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 무리 중의 선두주자가 사울가(家)임은 불을 보듯 빤한 일. 다윗은 다급해졌다. 그는 호위대장을 불렀다. 그리고 요압 장군에게 사자를 보내 우리아의 소환을 명령했다. ‘그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다. 우리아의 아이여야만 한다.’ 결코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밧세바에겐 못할 짓이라 생각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께끄름한 일은 단숨에 처리해야 한다고 다윗은 자신을 재촉했다. 백성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밧세바와의 황홀한 밀회가 이렇게 빨리 끝나다니 아쉽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끝내야 했다. 간음을 저지른 죄악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변명할 여지가 없으며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지만 백성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에 완벽하게 비밀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었다. 충직한 우리아는 다윗의 부름에 단숨에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폐하, 폐하의 종 우리아가 문후 여쭈옵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보는 순간 참으로 괴로웠다. 담담하게 그를 맞으려 했건만 막상 듬직한 우리아의 얼굴을 대하니 죄책감이 목까지 차올랐다. “어서 오시오. 그래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고생이라니 당치 않으십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폐하의 은혜가 넘칠 뿐입니다.” “상황은 어떠하오?” “적의 랍바성이 견고한데다 놈들이 죽고살기로 버티고 있어 쉽지는 않으나 기필코 폐하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지요. 난 우리 군대를 믿소. 내가 그대를 특별히 부른 것은 그동안의 공이 너무 많아 휴가를 내리고 싶었기 때문이오. 전선에 너무 오래 있었으니 모쪼록 아무 생각 말고 며칠 푹 쉬도록 하시오. 부인도 많이 기다렸을 것이오. 노심초사 그대 걱정에 궁중의 문턱이 닳을 지경이란 얘길 들었소. 이제부터는 이렇게 전쟁이 장기전으로 갈 경우 장군들과 군사들이 돌아가면서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영을 내릴 것이오. 그럴 여유쯤 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오. 그럴 여유도 없다면 내가 어찌 궁중에 머무를 수 있겠소.” “참으로 현명한 말씀이시며 은혜가 하늘에 이를 것입니다. 이 몸 부족하지만 폐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랬다. 우리아는 다윗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낌없이 바칠 충신이었다. 이런 우리아를 불러놓고 소환의 변명을 늘어놓은 다윗은 양심의 가책에 그가 한시라도 빨리 시야에서 사라지길 원했다. “그러면 곧장 집으로 가서 쉬도록 하시오. 전쟁은 잠시 잊고서 말이오.” 우리아는 물러갔다. 다윗은 시종들을 시켜 진기한 음식과 향품 등 하사품을 실려 보내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아이는, 밧세바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아의 아이다.’ 참으로 비열한 다윗의 꼼수였다. 그러나 비열하다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다윗이었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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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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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3회
- 밧세바는 행복했다. 몸이 녹아나는 듯했다. 혼자만의 생각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게만 느껴졌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젖가슴이 두드러지고 남성이 수줍게 그리워지던 소녀 시절부터 다윗은 밧세바의 영원한 남성상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너무 멀고도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자신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남자. 꿈은 꿈일 뿐. 단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에 불과할 뿐. 밧세바는 다윗을 알고 있었지만 다윗은 밧세바를 몰랐다. 밧세바가 아무리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길 때 일등공신이었던 자신의 책사, 아히도벨의 손녀였을지라도. 이방인이지만 재산 많고 건장했던 우리아는 다윗의 대타가 되었다. 우리아를 다윗이라 여기며 살리라. 이스라엘의 정치와 군사에 깊숙이 관여하는 고위층인 아히도벨의 손녀라는 신분이 이방인과 결혼하는데 약간의 장애가 되었지만 밧세바는 우리아에 충실했다. 그러자 성실하고 힘이 빼어난 우리아는 차츰차츰 밧세바의 전부가 되어갔다. 이상보다 현실이, 다윗보다 우리아가 중요해지고 나름대로 행복도 느꼈다. 나는 우리아의 아내일 뿐. 밧세바는 그렇게 만족했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고 그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태. 우리아는 역시 우리아일 뿐 다윗은 아니었다. 우리아가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다윗의 명령에 복종하는 용사에 불과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용사.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나 집을 떠나 전쟁터를 누벼야하는 전쟁용사. 하늘과 땅, 호랑이와 고양이의 간극과 같은 다윗과 우리아. 밧세바는 처량했다. 스멀스멀 다윗에 대한 연모의 정이 되살아났다. 심난함을 달래기 위해, 용사의 아내로 왕궁을 출입했다. 다윗은 왕궁에 있었다. 호위호식하며 편안하게 왕궁에 남아있어도 승리의 몫은 언제나 그의 것이었다.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던 다윗. 그런 그는 다시 밧세바의 영혼을 온통 흔들어 놓았고, 그의 수려한 용모며 왕으로서의 권위와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힘은 짜릿한 흥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직한 용사의 아내로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뜻이라 스스로 만족을 찾았던 요조숙녀 밧세바. 그녀는 흔들렸다. 전부인 줄 알았던 우리아가 너무 하찮게 여겨졌다. 많은 재산도, 건장한 육체도, 둘이 나누었던 사랑의 순간도 시시하게 여겨졌다. 그런 하찮은 남자의 아내로서 그녀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우리아의 품이 너무 작게 느껴지고 그 품에 안겨 행복을 느꼈던 자신이 가소로웠다. 듬직하게만 보이던 남편의 우직한 충성이 미련한 곰처럼 느껴졌다. 이제와 생각하니 우리아는 자신보다 이스라엘을, 아니 왕인 다윗을 더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정에 안주하기보다는 전쟁터를 누비는 걸 더 좋아했다. 그렇다고 특별한 야망을 꿈꾸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밧세바는 젊고 아름다웠다. 그녀도 외모만큼은 자신만만했다. 꿈을 꾸었다. 다윗왕의 품에 안기는 꿈. 꿈만으로도 온몸이 저릿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윗에 대한 흠모의 정은 쌓여만 갔다. 우리아는 전쟁터의 거리만큼 멀어져가고 다윗은 손을 뻗치면 닿을 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충만감이 온몸에 퍼졌다. 그 생각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가 이제는 온종일 그만 생각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예전과 달리 더욱 더 빈번하게 왕궁을 드나들었다. 전쟁의 소식을 듣는다는 명분이 있었다. 다윗의 여러 부인들의 말벗이 되기도 하고 궁인들을 통하여 궁중의 법도도 익히며 혼자서 궁중을 산책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그녀의 온 신경은 다윗의 일거수일투족에 모아졌다. 다윗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귀담아 들었고 그의 습관과 하루의 일과를 체크했다. 오후엔 낮잠을 즐긴다는 것도 알았고 왕궁의 높은 지붕에 올라가 예루살렘 시가지를 살펴보길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밧세바의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갔다. 집을 왕궁 곁으로 옮겼다. 운명의 그날, 그녀는 시간을 정확히 계산하고 궁녀에게 포도즙을 부탁하여 실수를 유도했다. 자신의 앞가슴에 가져온 포도즙을 왕창 쏟아버리게 만든 것이다. 그리곤 어쩔 줄 몰라 하는 궁녀를 위로하고 미리 가꾸어 놓은 사가 안뜰 연못가에서 목욕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곳은 다윗 왕이 지붕에서 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침 부정한 달거리도 끝나고 시의적절한 배란의 시점이었다. 밧세바는 포도즙에 얼룩진 옷을 벗었다. 젖가슴 사이에도 포도즙이 흘러 끈적끈적했지만 오히려 향기만 좋았다. 궁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속옷까지 흠뻑 젖어버렸다는 걸. 목욕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는 걸.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볼 수조차 없었다. 여인의 나체를 훔쳐본다는 건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다윗은 꼭 봐야만 했다. 자신의 완벽한 알몸을. 훈훈한 봄바람이 벌거벗은 몸을 핥고 지나가자 밧세바는 황홀한 꿈에 젖어들었다. 서둘 것이 없었다. 연못가에 앉아 먼저 발만을 담그고 따스한 햇볕에 온몸을 맡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성큼성큼 서쪽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언뜻언뜻 추위가 느껴졌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왕궁의 지붕에는 아직 어떤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조금씩 몸에 물을 끼얹었다. 나는 목욕하는 것이다, 라고 밧세바는 생각했다. 천천히, 끈기 있게 시간을 늦춰 가면서. 황혼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서쪽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바람은 온몸에 닭살이 돋을 만큼 서늘해지고 턱이 덜덜거리며 이빨이 서로 부딪쳤다. 밧세바는 조급해졌다. 하녀는 몇 번이나 옷을 가지고 들락거리며 감기에 걸린다고 목욕을 끝내길 종용했지만 밧세바는 이를 악물었다. 기필코 나타나리라. 물속 깊이 몸을 담갔다. 오히려 따뜻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도 기다리던 다윗이 지붕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 순간 밧세바는 전율을 느꼈다. 이제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토록 흠모하던 왕의 눈길을 느끼자 짐짓 모른 체하며 맘껏 자신의 알몸을 요염한 자세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바라던 눈길은 꿈쩍도 않고 자신만을 보고 있었다. 밧세바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결코 서두르지도 않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목욕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여전히 왕의 눈길은 못 박힌 듯 자신의 알몸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밧세바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왕을 쳐다보다 놀라는 몸짓을 해보이곤 수줍은 척 미소를 보냈다. 왕이 손을 들어 보였다. 밧세바는 승리를 자신했다. 다윗 왕은 이제 나의 포로가 되었노라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있어 왕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포로가 된 다윗이 이 밤에 포도주를 같이 마시고자 한다는. 밧세바는 다윗의 품에 안겨 털이 덥수룩한 그의 가슴을 가운데 손가락으로 요리저리 쓸어내렸다. 다윗의 손은 밧세바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주물럭거리고. 그들 사이에 우리아는 까마득히 잊힌 존재였다. “폐하.” 밧세바는 눈을 지긋하게 감고서 자신을 즐기고 있던 다윗을 나긋한 목소리로 불렀다. 다윗은 꿈결처럼 노곤한 충만감에 취해 있었다. “왜 그러시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하기만 했다. “가뿐하게 목욕을 하시고 주무심이 어떠실까요.” “목욕을?” 다윗은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목욕을 하시고 주무시면 피곤이 싹 가실 겁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밧세바의 주문이었다.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더군다나 자신을 위한 주문인 것을. “그것도 좋은 생각이오. 우리 같이 합시다.” 약간의 피곤도, 또한 약간의 귀찮음도 다윗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요. 제가 씻겨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알몸 그대로 침실 안쪽에 있는 기둥과 바닥과 벽, 욕탕 전체가 온통 대리석으로 장식된 욕실로 들어갔다. 알맞게 데워진 욕탕의 물은 언제나 잔잔하게 넘쳐흘렀다. 그래서인지 욕탕에선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며 야릇한 향기마저 내뿜고 있었다. 다윗이 첨벙첨벙 욕탕 안으로 들어가자 밧세바는 다시 침실로 돌아가 미리 준비해 온 합환채로 만든 미약 두 알과 포도주 두 잔을 손에 들고 다윗 곁으로 다가갔다. 다윗은 보고 또 봐도 밧세바의 육감적인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에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동공과 흰자위가 분명하여 생글거리듯 모든 걸 빨아들일 듯한 눈이며 짙은 눈썹, 알맞게 솟은 콧날과 붉은 입술, 잘 생기고 잘 익은 사과 꼭지 같은 볼우물, 탐스럽게 찰랑거리는 머리칼이 감싸고 있는 암사슴을 닮은 목이며 터질 듯 풍만하여 출렁거리는 유방과 톡 솟아오른 젖꼭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허리며 앙증맞은 배꼽, 다시 허리에서부터 어깨 넓이로 굴곡진 엉덩이의 도발적인 모습, 그리고 쏙 빠진 다리, 그 가운데 황홀한 비밀을 간직한 듯한 숲, 그 절정, 신비로움,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다윗은 밧세바가 건네주는 잔을 받았다. 더운 김이 그들을 감싸고돌았다. “당신은 볼수록 나를 미치게 하는구려.” “송구스럽습니다. 그토록 예쁘게 봐주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본 대로 느낀 대로 얘기할 뿐이오. 자, 이 아름다운 밤을 위해, 우리의 만남을 위해 듭시다.” 다윗은 잔을 치켜들고 밧세바가 들고 있는 잔과 건배하려 했다. “폐하, 이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이것부터 드시지요.” 밧세바는 손바닥을 펼쳤다. 미약이었다. “이건 무엇이오?” 다윗은 알고 있었다. 그 사랑의 묘약을. 그러나 짐짓 모른 체했다. “폐하와 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싶은 저의 마음입니다.” “하하하, 당신은 마음까지도 황홀하구려.” 밧세바는 미약 한 알을 입에 물더니 다윗의 입으로 가져갔다. 다윗은 고개를 숙여 입으로 그걸 받아먹었다. 밧세바는 다시 한 알을 자신의 입에 넣었다. 둘은 잔을 부딪치고 포도주의 달콤한 맛을 즐겼다. 밧세바는 고대하던 다윗과의 밤을 단 하루 만으로 끝내고 싶진 않았다. 될 수만 있다면 계속 이어지길 원했고 더 바란다면 다윗의 아이를 갖길 원했다. 오죽하면 그 엄청난 이율배반을 알면서도 이왕 엎질러진 물, 여호와께 간절히 구하기까지 했으랴. 우리아와는 아직 아이가 없었다. 다윗은 왕이다. 자신이 아이를 갖는다면 왕의 권한으로 우리아에겐 새로운 아내가 주어질 수 있고 자신은 다윗의 또 하나의 아내, 가장 총애를 받는 부인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윗 왕의 부인이 수십 명이 될지라도 다윗을 완전히 사로잡을 자신이 있었다. 밧세바는 다윗의 손을 이끌어 따뜻한 물에 온몸을 담갔다. 그들은 곧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녀는 물속에서 온몸으로 다윗의 몸을 애무했다. 다윗은 눈을 감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밧세바가 이끄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구름 위를 붕붕 떠다니는 기분, 무료하고도 갈증 나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첨벙거리며 꿀꺽꿀꺽 물을 마셔대는 기분, 끝없이 이어지는 들장미 숲길을 향기를 음미하며 거니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다윗은 시간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도. 밧세바는 다윗을 욕탕 밖으로 유도하여 바닥에 눕히고 궁녀들이 준비해 놓은 맛사지 기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르고 손바닥으로, 때로는 얼굴로, 때로는 젖가슴으로, 때로는 입술로, 때로는 혀끝으로, 때로는 허벅지로, 마지막엔 온몸으로 정성을 다해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다윗은 바로 자신의 미래였다. 그 미래를 위해 철두철미하게 그물을 만들고 던졌다. 고기는 여지없이 그물에 걸렸다. 이제 그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실수 없이 어떻게 끌어올리느냐가 문제였다. 그리고 안전하게 바구니에 담을 때까지 긴장을 풀어선 안 될 일이었다. 고기가 빠져나가버리면 자신의 미래는 없다 생각했다. 간음, 그것은 곧 죽음까지 각오해야 할 파계였다. 그러기에 밧세바는 최선을 다해 자신이 다윗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되고 목적이 되도록 노력했다. - 계속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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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창작
- 웹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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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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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2회
- 이윽고 밤이 되었다. 그날따라 다윗가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걸쭉한 저녁식사 자리의 맨 위쪽에 다윗이 앉고 그 우편엔 첫째 부인 미갈을 비롯하여 다른 부인들이 순서대로 앉았다. 부인들의 맞은편에는 아들들이 앉았는데 아히노암에게서 낳은 다윗의 장자인 암논과 아비가일이 낳은 길르압과 마아가에게서 낳은 압살롬과 학깃에게서 낳은 아도니야와 아비달에게서 낳은 스바댜와 에글라에게서 낳은 이드르암 등이었고 다윗의 맞은편엔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이 앉아 풍성한 식사를 즐겼다. 그러나 다윗은 씹는 빵이며 고기 맛을 밧세바에 대한 생각으로 뺏기고 있었다. 오직 어서 식사가 끝나 밧세바에게 달려갈 궁리뿐이었다. 부인과 아들딸들은 별 말이 없었다. 유독 맏아들 암논의 눈길만 식사는 건성인 채 아름다운 처녀로 자란 이복동생 다말을 좇아 부지런히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그런 식사 분위기를 깬 건 첫째 부인 미갈이었다. “폐하, 식사 후에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다윗은 뜻밖의 미갈의 말에 번쩍 고개를 들어 눈짓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 자리에선 말씀드리기가 쑥스럽사옵니다.” “그러면 다음에 듣겠소. 오늘밤엔 내게 긴한 일이 있소이다.” 미갈은 금방 샐쭉해졌다. 미갈은 정부인임에도 다른 부인들은 모두 아들을 낳았지만 그녀만 자식이 없었다. 자식이 없다는 건, 특히 아들이 없다는 건 여자의 제일가는 수치였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다윗의 사랑은 식어가기만 해 그녀는 초조했다. 그래서 요로에 수소문해 최고의 합환채를 구해 놓았으나 다윗과 좀처럼 동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해 큰맘 먹고 꺼낸 얘긴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합환채는 남자의 정력을 강하게 하고 여자에게는 임신을 쉽게 하는 약초로 사랑의 묘약이라 불리고 있었다. 다윗은 미갈에게 옛날의 다윗이 아니었다. 그 옛날 미갈이 다윗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안 사울 왕은 설령 다윗이 자신의 사위가 될지라도 백성들에게 자신보다 월등하게 인기가 높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언제라도 왕위를 뺏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그래서 꾀를 낸 게 다윗을 사위로 삼기는 하되 블레셋 군사의 양피 백 개를 바쳐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도 그런 조건을 내걸었으며 양피 백 개를 취하기 위해서는 분명 다윗이 먼저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만큼 블레셋 군사들은 사납고 무서웠다. 다윗이 그 조건을 수락한다면 어쩌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눈엣가시 같은 사자 새끼를 없앨 수 있으리라는 희망 섞인 흉계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다윗은 요구한 것의 두 배인 이백 명의 양피를 바쳐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사울은 백성들의 눈을 의식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다윗을 사위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울은 그 일로 인해 더욱 더 다윗을 미워하고 질투하여 어떻게 해서든 죽이려 들었는데 한번은 부친의 흉계를 미리 알아챈 미갈이 체포하려고 온 군사를 따돌리고 창을 통해 다윗을 도망시켜주기도 했다. 미갈은 다윗에겐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그렇지만 사울은 집요했다. 그는 끈질기게 죽이려 했고 그때마다 다윗은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그 와중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도움이 지대했다. 아버지는 죽이려 하는데 자식들은 살리려 했다. 결국 사울은 다윗 죽이기에 번번이 실패하자 미움도 더욱 극심해져 사위라는 올무마저 내팽개치고 미갈을 족장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 주어버렸다. 그 후, 사울이 죽어 다윗에게 모든 힘이 쏠리자 미갈은 다윗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미 여러 명의 부인을 두었던지라 꼭 미갈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단지 정략적인 차원에서 데려왔을 뿐이었다. 사울은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다윗은 반쪽 유다 왕에 불과했기에 통일 왕국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왕권의 정통성 확립 차원에서 미갈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연유로든지 미갈이 한동안 다른 사내의 아내가 되었다는 흠으로 그녀와 다윗의 사랑은 옛날과 같은 순 없었다. 미갈로서는 오히려 발디엘과의 생활이 그리울 정도였다. 그의 넘치는 정력과 사랑이 미갈의 밤을 괴롭혔다. 어쩔 수 없이 다윗의 막강한 권력에 의해 떠나올 수밖에 없을 때 발디엘은 멀리까지 따라오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만약 미갈이 오지 않으려 했다면, 아니 발디엘이 보내지 않았다면 그는 다윗에게 죽음을 면치 못했을 터. 미갈은 자식도 없이 늙어가는 자신의 신세가 서글프기도 하고 자신이 아니었다면 다윗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신을 무시하고 홀대하는 처사가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잊어버린 것 같아 가소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일도 바쁘시겠지요?” 미갈은 비꼬듯 물었다. 그러나 다윗은 일어섰다. 묵묵부답인 채로. 미갈을 포함하여 여러 부인들의 눈이 한꺼번에 그에게 쏠렸지만 옷 바람을 일으키며 휑하니 식당을 나가버렸다. 다윗은 빠른 걸음으로 왕궁 복도를 지나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상현달이 왕궁 가득 넘쳐흐르고 있었다. 왕궁 초소를 지키는 병사들의 긴 창이 한결 믿음직스러웠다. 다윗의 침실 앞에선 밧세바를 데려오라 지시 받은 시종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데리고 왔느냐?” “그렇사옵니다.” “수고했구나. 각별히 명심할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허락 없이 그 누구도 들여보내서는 안 되느니라.” “여부가 있습니까, 폐하.” 다윗은 발소리를 죽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먼저 반기는 건 물씬 풍기는 향품 냄새였다. 여러 개의 등경은 널찍한 방안을 환하게 밝히고 고대하던 밧세바는 등을 보인 채 창가에 서서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숨이 차오를 지경이었다. 고개를 약간 치켜든 밧세바는 달빛의 정기를 맘껏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어험.” 다윗은 헛기침을 했다. 그 소리에 놀란 밧세바가 고개를 빠르게 돌렸다. “오래 기다리셨소?” “아니옵니다. 폐하, 당신의 종 밧세바가 문안 여쭈옵니다.” 밧세바는 허리를 숙여 다윗에게 예를 표시했다. “이리 가까이 오시오.” 다윗은 그러면서도 자신이 더 빠른 걸음으로 두 팔을 벌리며 밧세바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아름다웠다. 자신을 그토록 설레게 하고 들뜨게 만들었던 시간이 결코 아깝게 여겨지지 않았다. 두 눈이 마주쳤다. 이글거리는 불과 불의 만남. 이 불꽃 튀는 두 개의 불이 만나니 당연히 더 큰불로 활활 타오르기 마련인가. 밧세바는 대담했다.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왕과 아녀자 된 백성의 신분임에도 열정적으로 다윗의 열린 품에 달려들어 안겼다. 다윗은 흡족했다. 왕의 체면도 밧세바는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안기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뭉클하게 느껴지는 밧세바의 젖가슴에 자신의 가슴이 녹아버릴 것만 같은 격정이 일었다. 둘의 포옹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연인들이 다시 만난 것처럼 열정적이었다. 다윗의 머릿속엔 자신을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백성들의 전쟁도 없고 우리아도 없었다. 밧세바의 머릿속에도 남편은 없었다. 둘은 왕도 아니고 아녀자도 아니었다. 오로지 정력적이고 여체에 능숙한 남자와 농익을 대로 익어버린 여인의 만남일 뿐이었다. 둘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여호와도, 그 율법도 없고 왕과 신하의 의리도 없고,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는 형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둘은 서로를 사로잡았고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의 자리는 에덴동산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조상 아담과 하와처럼 어떤 제약도 받지 않았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 그들은 부끄러움을 몰랐고 단지 서로만을 필요로 했다 하지 않았던가. 다윗과 밧세바, 그들의 갈망은 서로에게 전혀 부끄러움이란 걸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로지 언젠가는 만나야 할 상대를 이제야 만나게 된 걸 억울해하며 머리끝이 쭈뼛하도록 거대한 갈증을 풀어내려 안간힘을 다했다. 그토록 신실했던 다윗에게 또한 밧세바에게 여호와가 내린 모세의 계명은 벌써 하얗게 지워졌다. 율법에선 간음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지 죽이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도 가장 잔인하고 모욕적인 방법이었던 돌로 쳐서 죽이는 걸로. 심지어 그들의 선조 유다는 자신의 며느리 다말이 아들이 죽고 없는데도 잉태한 걸 알고 분명히 간음의 죄를 저질렀으리라 믿고 그녀를 불살라 죽이라 했는데, 그들은 그런 끔찍한 형벌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다말의 잉태는 간음은 간음이었을망정 가문을 잇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상대는 술에 취한 유다 자신이었으니. 경(經)에서 간음이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인 교배로 인정된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 베레스는 다윗의 직계 선조가 된다. 침대가 들썩거리고 연달아 괴성이 터졌다. 몰아치는 폭풍이었고 사막의 뜨거운 모래 바람이었으며 그칠 줄 모르고 거세게 떨어지는 폭포수였다. 사자의 포효였고 발정 난 암말의 몸부림이었다.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휘어졌다가 펴지고. 다윗의 단단한 근육질을 밧세바의 부드러운 살결이 어루만져주고 밧세바의 부드러운 여체는 다윗의 단단한 남성이 사로잡았다. 상대의 희열에 상대가 더 들떠 괴성을 질렀으며 그 괴성에 또다시 더 자지러진 괴성이 숨 가쁘게 증폭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언제까지나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던 그들의 정사도 결국엔 극에 달할 수밖에. 그 절정의 순간, 소돔에 뒤질세라 고모라가 지랄을 하고 고모라에 뒤질세라 소돔이 발광을 했다. 그리고 두 눈 뜨고선 도저히 볼 수 없는 지랄발광에 대한 응징이었을까, 소돔과 고모라에는 비처럼 유황불이 내렸다. 그리곤 다 타버렸다. 살아있는 것들 모두가. 옹기점 연기같이 길게 둘은 숨을 몰아쉬었다. 바람은 멎었고 뜨거운 태양이 마지막 핏빛 열정을 남기고 서쪽으로 숨어버리듯이 몸을 부르르 떠는 순간 어쩐 일인지 둘 사이엔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나 둘 사이의 갑작스런 침묵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밧세바는 여한이 없는 순간을 음미하는 침묵이었다. 그녀는 가장 깊은 곳에 다윗의 씨를 받아들였다. 행여 한 톨이라도 흘릴세라 한참이나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었으니. 반면에 다윗은 절정의 폭발이 이루어진 순간부터 막연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밀려드는 것이었다. 아무리 가장 믿을 수 있는 시종과 자신만 알고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왠지 모르게 허탈해지면서 두려워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그 저릿저릿한 쾌감을 쉽사리 잊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능하다면 귀신도 모르게 밧세바와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둘은 얼마동안 숨을 고르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을 깬 건 밧세바였다. “폐하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밧세바는 몸을 일으켜 부드러운 천으로 다윗의 성가름을 닦아주며 다윗이 들어 가장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말에 다윗의 머릿속을 회오리치던 두려움이 싹 가셔버렸다. “오호 밧세바, 우리가 어째서 이제야 만났단 말이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구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죽긴 왜 죽는단 말이오. 나는 이스라엘의 왕이오.” “저는 남편이 있는 몸, 백성들이 알까 두렵습니다.” “…….” 다윗은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어찌 알겠는가. “저를 지켜주시겠습니까?” “이 일이 발설되는 순간 시종은 죽은 목숨이오.” “…….” “나는 왕이란 말이오.” 다윗은 밧세바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녀의 알몸을 힘주어 껴안아주며 위엄 있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폐하는 이스라엘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폐하의 소유물입니다.” 밧세바는 그러며 다윗의 품을 파고들었다. 다윗은 흡족한 웃음을 터뜨리며 파고드는 밧세바를 더욱 힘차게 끌어안았다. 사그라졌던 욕정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 계속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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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회
- 하늘은 보이면서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 떠있는 해와 달과 별도 명백하게 보이긴 하나 확실하게 실체를 다 드러내지 않는 신비의 존재였다. 구름이 그러하고 비와 눈과 바람이 그러했다. 그것들이 인간사를 좌지우지했다. 하여 사람들은 어찌해볼 수 없는 하늘을 선악의 심판자로서, 갈마의 집행자로서 두려워했다. 하물며 그 하늘을 관장하는 절대의 존재라면 새삼 무슨 말이 필요하리. 그래서일까, 인간의 역사에서 하늘을 왜곡하고 임의로 해석하여 제 욕심을 채우려하는 짓이 무수히 등장하는데. 이스라엘의 하늘은 여호와였다. 봄이었다. 지난 가을부터 시작된 우기가 끝난 것이다. 그동안 잘 자라 여문 곡식들의 수확도 우기와 함께 끝났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 꼭 이맘때쯤이면 으레 힘이 발산되는 곳이 있었다. 잠재해 있던 불안요소를 잠재우고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이기의 욕심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부족이 부족을, 민족이 민족을 말살시키려는 전쟁, 그 계절이 다시 온 것이다. 비는 가을까지 내리지 않을 터. 다윗은 달콤한 오수를 즐기다가 눈을 떴다. 주위는 조용했다. 먼저 전장의 상황이 궁금했으나 신복 요압 장군이 떠오르자 적이 안심이 되었다. 요압은 동생 아비새와 더불어 얼마 전에도 암몬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암몬을 돕던 아람 족속의 간담까지 서늘케 만들어 감히 이스라엘을 넘볼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 용장 중의 용장이다. 연일 전장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모두 승전보였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봄이 오면 자신이 직접 출전해야 마땅하지만 이제는 굳이 직접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로워져 마음이 한결 느긋했다. “나와 맞설 자 누가 있으랴.” 뿌듯한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양을 치던 목동 시절이 있었는가 싶었다. 양치기에서 왕으로. 확실히 하늘과 땅이었다. 천명(天命)과 천은(天恩)이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하늘의 주인,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지자 사무엘의 방문과 이스라엘의 통치자를 약속하는 기름부음, 폭포수처럼 쏟아진 은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던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일은 담대함을 주신 여호와의 은혜가 아니고선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로부터 고난도 많았고 목숨을 잃을 뻔했던 위기도 여러 번 찾아왔지만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전쟁에서도 연전연승할 수 있었다. 그 여파로 불같이 일어난 백성들의 기대와 인기. 그로 인한 사울 왕의 질투와 살의, 그리고 끈질긴 추적과 도피, 그 과정에서 있게 된 사울의 딸 미갈과의 결혼,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나눈 우정, 그들 부자의 비참한 죽음, 이스라엘의 반쪽 유다 왕 시절에 벌어진 셀 수 없는 전투, 버거웠던 승리. 결국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어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기까지 언제나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 그 어느 것 하나 그분의 은혜 없이는 이루어지지 못했을 거란 사실을 다윗은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시간만 나면 노래로 찬양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랬다. 다윗은 신실한 양이었고 여호와는 선한 목자였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여호와가 지켜주실 거란 믿음이 있었기에 오늘의 다윗이 가능했는데…. 다윗은 침상에 누워서 계속 옛날 일을 음미했다. “나는 왕이다. 여호와가 선택한 이스라엘의 왕.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침실을 장식한 방향목 냄새가 물씬 코를 자극했다. 아랫도리가 뻐근하여졌다.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이 사타구니를 파고들어 왕만큼이나 기고만장하여 벌떡 일어선 성가름을 움켜쥐었다.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부인인 미갈을 비롯하여 아히노암, 아비가일, 마아가, 학깃, 아비달, 에글라 등 아름다운 여러 부인들의 얼굴과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는 후궁들의 모습이 차례로 스쳐지나갔다. 흐뭇했다. 정녕 부족한 게 없었다. 다윗의 게슴츠레한 눈에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대지에 거칠 것 없이 내리쬐던 햇빛으로 방안은 아직도 더운 기운이 가득했다. 지금 당장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게 아쉬웠다. 잠은 벌써 다 달아나버렸다. 실내는 목 언저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더웠다. 그는 천천히 아쉬운 마음을 떨쳐버리고 침상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방을 몇 바퀴 어슬렁거리다가 평소의 습관대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시원스레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왕궁 옥상에서 자신이 주인인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의 시가지를 쳐다보는 건 커다란 기쁨이자 지난한 삶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 되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기분을 몹시 상쾌하게 해주었다. 그는 노을을 뒤로 한 채 테라스 난간에 양손을 짚고 숨을 한껏 들이마시느라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여인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여인. 담장 너머 그리 멀지 않은 뜰 안 종려나무 밑 연못가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여인이 유유히 목욕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게 꿈인가, 생신가. 나의 남성이 못 견뎌낸 데서 오는 헛것인가. 내가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인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다윗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여인은 아름다웠다. 메마른 사막에 이슬을 머금은 채 피어난 한 송이 백합화처럼 여인은 신비로우면서도 싱싱했으며 잘생긴 노루새끼처럼 토실토실하여 차라리 잘근잘근 깨물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탐스러운 머리칼이 찰랑거릴 때마다 침이 마르고 풍만한 젖가슴이 출렁거릴 때는 마른침을 삼켰으며 눈부신 엉덩이가 수면 위로 언뜻언뜻 비칠 때는 애간장이 다 녹았다. ‘저 여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아니 어찌하여 여태껏 이스라엘의 왕인 내가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볼 수 없었단 말인가.’ 다윗은 눈도 깜박거릴 수 없어 시리도록 여인의 알몸을 한참이나 홀린 듯 쳐다보고는 다급하게 궁인을 불렀다. 쏜살같이 궁녀가 대령했다. “부르셨사옵니까?” “그래. 저 여인이 누군 줄 아느냐?” 궁녀는 다윗이 가리키는 곳을 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잘 모르겠사옵니다.” “너희들도 모르는 여인이 어떻게 하여 궁을 향해 버젓이 알몸으로 목욕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빨리 알아보고 오너라.” 궁녀는 다윗의 나긋한 호통에 쪼르르 달려 나갔다. 다윗은 궁녀와 얘길 하면서도 여인에게서 눈을 한시도 떼지 못했었다. 연못의 물 빛깔도 황혼을 품어 황홀한 분위기였다. 어느 순간 여인이 다윗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윗은 느닷없는 그녀의 도발에 얼굴이 화끈거리며 숨이 탁 막히는 듯했다. 어쩌랴! 여인은 대담하게도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까지 보내는 게 아닌가. 다윗은 일시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흥분을 느끼며 온몸이 후끈 달아올라 어쩔 줄을 모르고 멍청한 표정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여인은 더욱 농염한 몸짓으로 화답했다. ‘궁녀는 아직도 저 여인이 누구인 줄 알아내지 못했단 말인가.’ 왕의 체통만 아니라면 그대로 여인에게 달려가고만 싶었다. 여인이 옷을 입고 있었다. 다윗은 더욱 더 몸이 달았다. 드디어 궁녀가 숨을 몰아쉬며 다윗 앞에 이르러 고개를 조아렸다. “알아봤느냐?” “예, 폐하.” “누구라더냐?” 다윗은 조급했다. “지금 전장에 나가있는 장수,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라 하옵니다.” “우리아?” 다윗은 끙, 하고 신음을 토했다. 우리아는 헷 족속의 이방인이지만 여호와를 극진히 섬기며 다윗을 따르는 30인 시위대의 용사였으니. 다윗이 전쟁의 후방에서 편안히 발 뻗고 잠잘 수 있도록 요압 장군과 함께 이스라엘의 대적과 싸우고 있는 충성스러운 장수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진정으로 저 여인이 우리아와 결혼을 한 사이란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전쟁터의 소식이 궁금하여 궁궐에 들렀다가 접대한 포도즙이 엎질러져 목욕하게 된 줄로 아옵니다.” 다윗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호와를 우러르며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충직하고 부하들에게도 신망이 두터운 용사. 구릿빛으로 그을린 우람한 근육질의 체구. 그런 그에게 저토록 아름다운 아내라니.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러나 밧세바의 모습이 계속해서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도발적이고도 정신을 혼미케 하는 뇌쇄적인 모습이. 그러자 슬그머니 질투심이 일렁거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스라엘의 왕인 것을. 모든 백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음에랴. 내게 거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욕심이었다. 다윗은 밧세바를 품고 싶었다. 단 하룻밤만이라도……. 아무도 모르게.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면……. 밧세바의 요염한 미소는 분명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표시가 아닌가. 충성을 다하는 우리아가 걸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밧세바의 아름다운 육체를 안아보고 싶다는 욕심은 다윗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멀게 했으며,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는 여호와의 율법마저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아의 존재 따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명의 부인들도 시시하게 느껴졌다. 오직 밧세바를 품고 싶다는 욕망만이 다윗을 온통 사로잡았다. 다윗은 가장 신임하는 시종을 불렀다. “너는 지금 당장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 가서 내가 오늘밤 최상의 포도주를 대접하겠다고 일러라. 그리고 나의 침실엔 몰약향을 뿌리고 갖가지 향기로운 꽃들로 단장해 놓도록. 너와 나만 아는 일. 추호도 이 일을 발설해선 안 되느니라.” “걱정하지 마옵소서. 명령이 어긋날 시엔 저의 목숨을 취하셔도 원망치 않겠나이다.” “알았으니 어서 차질 없도록 하여라.” 시종이 물러나고 나서도 다윗은 설레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어서 빨리 밤이 오기만 기다렸다. 밧세바는 이미 연못가에 없었다. 그래도 알몸의 환영이 다윗의 머릿속엔 계속 어른거렸다. - 계속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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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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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매듭 /6회(마지막회)
- 당신은 울며 나갔습니다. 대체 울어야 할 사람이 누군가요. 나 아닌가요. 난 당신에게 맞은 뺨을 쓰다듬으며 히죽이 웃었지요. 그러면서 중얼거렸어요. "고거 쌤통이다." 휠체어를 밀어 베란다로 나가 10층에서 당신이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낮 교대라 오후 1시의 약해진 초겨울 볕 사이로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이 우쭐거렸습니다. 당신은 저녁 6시경 내게 전화를 했지요. "네 머리 핀 새로 샀다. 똑 같은 나비는 아니지만 노랑색 나비야. 큐빅이 더 많이 박혀 있다. 너 아니. 머리숱이 많고 머리 결이 빛나고 까마면 남편한테 사랑 받는다는 거. 그리고....전동 휠체어 계약했다. 오늘은 늦어서 내일 배달 받기로 했다. J하고 가을에 파리에 갈려고 적금 붓던 것 깼다. 전동 휠체어가 있으면 누가 밀어 주지 않아도 되고...휠체어 미느라 손도 안 아플 테고. 차를 빼야 해서 끓어야겠다." 당신의 목소린 울 듯 했어요. 난 전화를 끊고 가슴이 뛰는 것을 진정시키느라 주문 받은 십자수를 심호흡을 하며 놓기 시작했지요. 그리곤 계속 중얼거렸어요. "나비 핀과 전동 휠체어라니. 나비 핀과 전동 휠체어라니. 나비 핀과 전동 휠체어라니....." 나는 금 간 CD처럼 그 소릴 반복하고 있다는 걸 몰랐어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병풍 뒤에 누워 있습니다. 나는 J에게 연락을 했지요. J는 내가 만들어 준 혁대를 하고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우리 아파트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온 것은 처음입니다. 집이 너무 좁아 사람들은 대부분 되돌아가고 신일 교통의 김 기사와 몇 명만이 고스톱을 치고 있습니다. 화투와 화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짝짝 경쾌하게 좁은 싱크대 앞의 공간을 울리고 그들은 언성을 높여 고 고 투 고 쓰리 고를 외칩니다. 인생도 저렇게 고 고 투 고 쓰리 고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당신은 피 박 입니다. 나도 피 박 이지만 요. J는 내게 고개를 약간 숙여 보이고 당신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온전히 당신은 내가 쥐고 있는 에이스 카드입니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안 된다고 했지요. 그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어요. J는 눈가가 빨개지더니 눈물이 거짓말처럼 그의 눈동자를 가득 채웠고 그는 눈을 꾸욱 감으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J에게 김 기사가 묻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경호 친군가 봅니다. 아주 좋은 사람이었는데...그런데 어째서 가로수를 그렇게 들입다 받았을까.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여간 꼼꼼한 사람이 아닌디." J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렇게 돈황곡자 보살만의 마지막 자를 수놓고 있습니다. 이걸 당신 가슴에 놓고 싶습니다. 이제 또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난 우리의 결혼식을 통해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이 어떻게 윤색되어지고 포장되어지는지를 알았습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은 십자수로 놓여져 당신의 가슴에 얹혀진 시구를 보며 이번엔 나를 포장할 것입니다. 당신을 향한 그럴싸한 글이라도 남겨야 할까요. 난 당신의 참 모습을 영원히 찾아 주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제 영원히 당신을 잃어버린 채로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자를 다 수 놓았습니다. 휠체어를 밀어 병풍 앞으로 다가가 당신을 덮고 있는 흰 천을 들추었습니다. 날이 밝으면 염하는 이가 올 것입니다. 당신의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고, 입에는 쌀을 가득 넣을 것이며, 누런 삼베로 된 옷을 입히고, 손과 발은 둥근 모양으로 된 삼베로 감쌀 것입니다. 그러기 전 당신을 한번 더 보고 싶습니다. 얼굴은 병원에서 보다 더 차가워졌고 검어졌네요. 십자수 놓은 천을 당신의 가슴에 얹다가 문득 당신의 그것이 궁금해졌습니다. 휠체어에서 내려 다리를 이끌고 다가가 당신의 바지를 벗기려 하니 벗겨지지도 않고 당신의 허리와 엉덩이의 오목한 경계선도 없어져 방바닥에 장작처럼 딱 붙어 있습니다. 할 수 없이 지퍼만 내려 바지 앞섶을 벌렸어요. 힘이 들어 이마에 땀이 솟네요. 당신의 그것은 검은 음모에 휩싸여 잘 보이지 않더군요. 음모를 들추자 내가 쓰는 골무 마냥 그것은 주름을 잔뜩 잡은 채 오그라져 있고 차가웠습니다. "히잇! " 나는 짧은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때서야 갑자기 눈물이 솟구치기 시작했어요. 난 사실 그게 그렇게 만져 보고 싶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J에게만 허락했을 뿐 나에겐 접근을 허용하지 조차 않았지요. 당신은 그런 면에서 정절 굳은 아낙 같았습니다. 난 골무 같은 찬 성기를 바라보다 거기 가만히 입을 맞추었지요. 내 눈물이 당신의 검은 음모 위로 쏟아지고, 내 눈물이 맺힌 당신의 검은 음모는 이슬을 잔뜩 매달은 밤의 풀잎 같습니다. "이 썩어 문드러질 년이 왜 문은 잠그고 염병이야. 염병이. 육시할 년. 이년아. 이 문 안 열어 이 썩을 년아." 대체 당신 어머니는 저 많은 욕을 어디서 배운 것일까요. 나도 따라서 해봅니다. '이 썩어 문드러질 년. 염병 할 년. 사지가 오그라질 년.' "어무이. 고마 냅두소. 조용히 망자하고 하고 싶은 이바구가 있나 보니더." "이바구는 무슨 이바구. 생떼 같은 내 아들 잡아먹은 년이." 다시 욕설과 함께 문을 두드립니다. 그런데 당신 어머니의 저 욕설이 왜 이렇게 푸근하고 다정히 들리는 것일까요. 나는 당신의 바지 지퍼를 올리고 휠체어에 올라앉아 문가로 갑니다. 문가로 가기 전 오디오에 마리아 칼라스를 집어넣고 리모콘을 손에 잡습니다. 문 바로 옆에는 내가 붙잡고 휠체어를 타기 좋게 내가 촘촘히 짠 매듭으로 된 긴 줄이 튼튼한 못에 매달려 있습니다. 나는 그 매듭을 당겨 내 목에 겁니다. 휠체어를 미느라 굳세어진 나의 팔뚝이 이제 제대로 그 힘을 보여 줄 때입니다. 아, 당신에게 고백할게 있어요. 사실 좀 쑥스럽긴 하네요. 어느 날, 당신과 J가 몹시 고통스럽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서로에게 침몰해 가고 있었는데, 그걸 보던 나는 몸이 뜨거워지면서 머리가 휭 해 오더니, 당신들이 막 침몰하는 그 순간, 나의 비쩍 마른 가랑이 사이에서 무언가 뜨겁고 물컹한 액체가 분출하더니 쏟아졌어요. 아마 용암의 분출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어요. 아니 위로 솟구치는 분수 같았다고 할까요. 당신과 J는 그것 때문에 그렇게 안타깝게 애처로운 몸짓을 한다는 걸 그 순간 알았지요. 이제 J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요?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당신과 나에 대해 또 무어라고 윤색을 할까요? 하지만 난 당신의 아내. 세상 사람들의 기대를 저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야 이 썩을 년아. 안에서 뭘 하느라꼬 문을 잠그고 지랄이냐. 이년아 빨리 문 안 여노, 문 뿌수키 전에." 당신 어머니는 이제 술이 깬 모양입니다. 아까 소주를 안주도 없이 마셨거든요. 그런데 당신 어머니와 동생들은 당신에 대해 정말 몰랐을까요. 당신 시동생은 왜 이유 없이 당신을 그리 혐오 했나요. 당신이 장자로서의 재산도 다 포기했는데 말이죠. 당신 어머니는 필경 문을 부술 것입니다. 내가 열쇠 꾸러미를 안에다 두었거든요. 문을 부수기 전 서둘러야 되겠어요, 난 정말이지 J와 당신 어머니와 세상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하지만, 그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게 유감이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곧 잊혀질 수다꺼리를 제공한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줄을 당김과 동시에 리모콘의 버튼을 누릅니다. 내 몸이 덜렁 들리면서 마리아 칼라스의 바람에 날리는 봄 눈 같은 음성이 방안 가득 넘쳐 홍수를 이룹니다. 그 너머로 이 미친년아, 문 안 여노. 하는 다급한 소리와 문을 부술 듯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당신에게 전해 줄 말은 여기 까지 입니다. "보셔요. 병풍 뒤의 당신. 나는 어쨌거나 당신의 아내이고 당신은 나의 남편이랍니다. 맞지요? 그렇지요?" ---- 끝 ---- 아름다운 지구에 여행 온 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지구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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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매듭 /6회(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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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매듭 /5회
- J는 수치심도 없이 벌거벗은 채로 자신의 성기를 내 눈앞으로 향한 채 침대에 앉더니 담배를 피워 물더군요. 그는 연기를 깊이 빨아 당겨 삼키며 당신을 향하여 말했지요. "관객이 있으니 더 짜릿한데. 어때. 언젠간 쟤도 알 거 아니야. 쟤 그런데 생리는 하냐. 여자 구실은 할 수 있나." 그의 말에 당신은 뭐라 말하지 않고 덤덤했습니다. 사실 결혼 한지 반년이 다 되어 가도록 당신이나 나나 그 문제에 대해 별로 심각히 생각해 보지 않았지요. 난 고양이나 개보다는 말을 나눌 수 있는 당신이 낫다고 생각했을 뿐 더 이상은 생각지 않았으니까요. "왜 온 거야 .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게, 주문 받은 소삼작 노리개를 가져가지 않아서." "그럼 전화를 하지. 그럼 내가 가져다주었잖아." 당신은 그제 서야 화가 난 듯 했습니다. 난처한 표정을 짓기도 했고요. "됐어. 어차피 언젠 간 알게 될텐데. 오히려 잘 됐지. 잘 된 거야. 오히려 짜릿한데. 이리 와봐." J는 당신을 향하여 팔을 벌렸습니다. "아이, 자기는....또?" 당신은 J에게 교태까지 부리며 다가갔습니다. 나는 그때서야 놀랐습니다. 아이, 자기라니. "가서 쟤 들여놓고 문 닫아." 그러자 당신은 나를 방안에 들이고 문을 닫았습니다. "잘 봐. 니 주제에 언제 이런걸 보겠나." J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더니 당신의 몸 위를 뱀처럼 기어 다녔습니다. 당신은 여자와 같은 몸짓과 표정을 지으며 J에게 감기더군요. 나는 구태여 눈을 감거나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놀라지도 않았고 혐오스럽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당신과 J가 파정을 할 때 뭐랄까 약간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그런 나날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는 때로는 당신과 J를 지켜보기도 하였고 간혹 라면을 끓여 주기도 하였지요. 어떨 땐 주방에서 매듭을 맺고 있기도 했어요. 내가 놀란 것은 J와 당신의 서로를 탐하는 행위보다도 당신이 여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J보다 체구도 크고 훨씬 남자답게 생겼는데 어째서 당신이 여자 역할을 하는지 의아했어요. 게다가 당신이 J를 더 사랑하여서 J가 없으면 당신은 아마 살지 못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남편이면서 또 J의 여자였던 거지요. 우리는 삼각 관계 였나요? "나 사랑하지. 나 버리지 않을 거지. 나 버리면 그땐 자기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 버릴 거야." 당신은 가끔 J의 빈약한 가슴에 안겨 이렇듯 애처로운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난 주방에서 매듭을 맺다가 싱크대 밑에서 기어 나와 어디로 갈까를 망설이는 바퀴벌레를 향해 재빨리 휠체어 바퀴를 굴렸습니다. 휠체어 바퀴 아래서 바퀴벌레는 으깨어져 버렸습니다. 바퀴벌레를 휠체어 바퀴로 깔아뭉개 죽이는 이 솜씨는 하루 이틀에 길러진 게 아닙니다. 바퀴벌레만 보면 나는 사냥꾼 마냥 맹렬한 투지가 끓어오릅니다. 난 바퀴벌레를 향하여 돌진하며 당신이 J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 봤습니다. "나 사랑하지. 나 버리지 않을 거지. 나 버리면 그땐 자기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 버릴 거야." J가 일이 있어 오지 못하거나 연락이 되지 않거나 하면 당신은 몹시 신경이 날카로워 지고 화가 나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이유 없이 내 뺨을 갈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나를 끌어안고 울기도 했습니다. 당신 말에 의하면 J는 인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 말에 의하면 J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생활 신문에 조그맣게 난 남자 누드 모델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고 거기서 만난 게 J였다고 했지요. 당신과 J는 벌써 오 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J는 수입이 없어서 당신은 택시 운전을 하여 J의 물감과 붓을 사줬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면 삥땅을 많이 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지요. 햇볕이 잘 들던 가을 어느 날, 나는 소삼작 노리개를 만들며 당신에게 물었지요. "그럼 당신도 하리수 같은 사람인가요?" 당신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아니다. 하리수는 여성이 되고 싶어 여성이 된 것이고 나는 단지 동성애자일 뿐이다. 하리수 같은 경우는 육체는 남자이지만 정신은 여자이다. 그래서 여자가 되고 싶고 여자가 된 것이다. 트렌스젠더라고 하지. 동성애자는 육체도 정신도 남자이다. 오히려 남자인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그래서 여자가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랑의 대상이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 할 뿐이지. 나 같은 사람을 게이라고 하는 거야." "트렌스젠더와 게이가 같은 줄 알았는데 다르군요." "트렌스젠더는 자신의 생식기나 신체에 거부감이 있는 반면 나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식기나 신체에 대한 불만은 없지."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의 미술 선생이 내 첫 사랑이었지. 그 후로 나는 그림 그리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지. 아마 첫 사랑을 못 잊기 때문인가 봐." 난 문득 노리개를 만들던 손을 멈추고 말했지요, "당신도 장애자예요. 당신은 나 보다 더한 장애자예요." 당신은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햇볕을 바라만 보았지요.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건 장애자가 아니고 단지 다를 뿐이야." 그래서 나도 말했지요. "그렇담 나도 장애자가 아니고 다를 뿐이에요." 줄창 그것만 꽂아서 큐빅이 세 개나 빠진 핀을 다시 꽂아 주며 당신은 느릿하니 말했지요. "핀을 다시 하나 사 주어야겠네. 그래. 난 너를 장애자라고 생각해 보진 않았어. 내가 다르듯 너도 다를 뿐이야." 난 톰행크스가 나왔던 필라델피아라는 영화를 당신 때문에 당신이 일을 나가고 나면 몰래 다섯 번이나 보았지요. 톰행크스의 그 절박한 표정. 톰 행크스의 절규하는 표정 위로 화면 가득 넘치던 음악.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으로 퍼지던 마드레느의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의 그 소름 돋던 음원. 난 매듭을 판 돈으로 마리아 칼라스의 CD를 샀지요. 그 영화를 보고 당신을 좀 더 알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은 정말 장애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뭐 꼭 남자는 여자만을 사랑하란 법은 없으니까요. 그건 그냥 사회의 상식이며 통념일 뿐이니까요. 그러면 당신은 J의 아내인가요? 그렇담 나도 남자가 아닌 여자를 사랑하는 건가요? 당신은 J의 아내이면서 나의 남편인가요? 오늘 당신이 나가던 날, J에게서 전화가 왔지요. 다른 사랑하는 상대가 생겼으니 그만 정리하자는 것이었어요. 당신은 가만히 있다가 묻더군요. "젊어?" 저쪽에서 아마 스므 살이라고 대답한 모양이에요. "스물?" 당신은 되묻더니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전화기를 놓고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부들부들 떨었지요. 그러더니 나의 따귀를 때리며 소리쳤습니다. "개자식. 죽여 버릴 거야. 나를 버려. 스물이라고?" - 일주일 후에 계속 - 이준옥 :소설가. 제1회 전태일 문학상 소설 당선. 한국작가회의회원. 복사골문학회 주부토 소설동인. 아름다운 지구에 여행 온 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지구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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