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0-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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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펄 벅 부천에 오다 - 3회
     7 펄벅 할머니는 ‘웰컴하우스’라는 단체를 만들어 처음에는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에게 집을 마련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웰컴하우스는 사업을 확대하여 혼혈 아이와 소수민족 아이로 시작해서 장애아까지 수용하였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아시아에서 많은 혼혈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미국군인과 아시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혼혈 아이들은 마치 펄벅 할머니가 중국에도 미국에도 속하지 못했던 것처럼 백인도 동양인도 아니었기에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차별을 받았습니다. 펄벅 할머니는 사회에 소속되지 못하고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교육할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꾸준히 사회사업을 해왔던 펄벅 할머니는 1964년 자신의 거의 전 재산인 700만 달러를 내놓아 미국에서 ‘펄벅재단’을 설립했습니다. 펄벅 재단에서 하는 일은 혼혈아, 전쟁, 기아 등으로 소외되고 고통 받는 세계 도처의 아이들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펄벅 재단에서는 미국계 아시아 혼혈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한민국에는 1965년 부천 심곡본동(깊은구지)에 펄벅 재단 한국지부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네 옆에 펄 벅 동상이 보인다.   8 정아가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펄벅 할머니는 어떻게 대한민국에 오셨나요?” “펄벅 할머니는 조선일보사와 여원사의 초청으로 1960년 11월 1일 대한민국에 오셨단다.” “선생님 펄벅 할머니가 대한민국에 와서 한 일들을 이야기해주세요?” “펄벅 할머니가 대한민국에 오셔서 많은 곳을 방문하고, 많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선생님이 한 가지만 이야기해 줄게.” [펄벅 할머니가 늦가을 한창 추수가 바쁜 저녁 무렵 경주 들판을 지날 때 한 농부가 지게에 볏단을 진 채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볏단도 달구지에 실으면 될 텐데 농부는 왜 고생을 사서하는 것일까?’ 펄벅 할머니는 의아한 생각이 들어 농부에게 다가갔다. “소달구지에 볏단을 실으면 되지 왜 직접 볏단을 지고 가는 겁니까?” 농부는 오히려 질문이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 “오늘 우리 소는 종일 밭을 갈았소. 그러니 집에 갈 때만이라도 좀 가볍게 해 줘야 하지 않겠소?” 농부의 말을 들은 펄벅 할머니는 가축의 고단함까지 헤아리는 대한민국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미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크게 감탄했다.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집필하고 싶게 만든 직접적인 동기였다고 했다.](펄벅과 부천을 말 한다 p39인용) “펄벅 할머니는 대한민국을 소재로 1951년 <한국에서 온 두 처녀>, 1963년 <살아있는 갈대>, 1968년 <새해>로 세 편의 소설을 썼습니다. 특히 <살아있는 갈대>는 1881년부터 일본의 패망하는 1945년 세계 제2차 대전 말까지로 4대 걸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치밀한 고증작업과 극적인 구성으로 형상화한 대작으로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뉴욕타임지를 비롯한 언론에서 <대지> 이후 최대의 걸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펄벅이 한국에 보내는 애정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펄벅과 부천을 말 한다 P56인용) “그래서 펄벅 할머니가 대한민국을 좋아하게 되셨군요.” “그렇지 펄벅 할머니가 대한민국 사람들의 인간미에 흠뻑 빠지신 거지. 1960년 방문 이후 자주 방문을 하셨으니까. 더군다나 1965년에는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했지.” “혼혈 아이들을 위한 재단 말인가요.” “그렇지 혼혈 아이들을 위한 재단이지. 대한민국의 펄벅재단을 필두로 일본 필리핀 대만 태국 베트남에도 펄벅재단이 세워졌지.”   펄 벅 기념관 앞 펄 벅 공원    9 1965년 세워진 펄벅재단은 1967년 부천 심곡본동(깊은구지)에 소사희망원을 세웠습니다. 깊은구지에서 뱀내장(신천리)으로 넘어가는 성주산 하우고개 근처에 위치한 소사희망원은 성주산 밑의 아담한 곳에 자리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펄벅 할머니가 소사희망원을 서울에 세우지 않고 왜 우리 동네에 세울 생각을 하셨을까요?” 정아의 어른스러운 질문에 놀란 듯 딸을 바라보던 아빠도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습니다. “저도 우리 정아와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이야 이곳이 주변에 건물도 많고 해서 별로 외진 곳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실 이곳은 산 밑이고, 부천역에서 성주산 쪽으로 한참을 올라오는 곳으로 당시에는 외진 곳이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성주산 밑 구석진 곳에 소사희망원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요?” “맞아요. 사실 이곳은 성주산 밑이고 부천역에서도 한참을 와야 하는 외진 곳인데 다들 어떻게 이런 곳에 소사희망원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의아해들 하시죠.” 정아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빠의 말씀처럼 외진 곳이죠?” “외진 곳이지. 그런데 정아야 펄벅 할머니가 이곳에 소사희망원을 세운 것은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란다.” “네, 특별한 인연이요.” 아빠도 선생님의 특별한 인연이란 말에 선생님의 얼굴을 보며 물었습니다. “그 특별한 인연이 뭔데요?” “유한양행 아시죠?” “알다마다요. 대한민국 사람치고 유한양행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정아야, 너도 유한양행이 뭔지 아니?” 선생님이 정아의 얼굴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네, 알아요.” “유한양행이 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정직한 회사요.” 유한양행이 정직한 회사가 된 것은 유한양행을 만든 유일한 할아버지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유일한 할아버지가 중국으로 녹두를 사러 갔을 때 녹두를 파는 가게가 아주 작고 초라해보였습니다. 유일한 할아버지는 그 작은 가게가 도저히 많은 양의 녹두를 팔 수 있는 곳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녹두를 팔아서 의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일한 할아버지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하여 낮에 약속한 녹두 가게의 사장님 집에 가서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사장님 집이 너무 크고 호화스러웠습니다. 사장님도 가게에서 본 초라한 사람이 아닌 멋쟁이 신사로 명품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놀라워하는 유일한 할아버지에게 사장님은 나라에 세금 다 내고 정직하게 사업을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일한 할아버지는 사장님과는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 정직하게 세금을 내야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들이 모두 잘 살 수 있다. 이 생각을 유일한 할아버지는 평생 사업을 하면서 지켰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정직한 회사라고?” “네, 우리 아빠가 그랬어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정직한 회사라고.” “그래 맞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정직한 회사. 그럼 우리나라에서 제일 정직한 회사를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겠네.” “네, 알아요. 유일한 할아버지요.” “그런데 유한양행의 유일한 할아버지하고 소사희망원하고 무슨 관련이 있죠?” “소사희망원이 있던 이곳이 유일한 할아버지의 유한양행 자리지요.” ----------계속     이재학 마라토너/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협회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부천 소새울에 산다(1,2,3,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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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02
  • 펄벅 부천에 오다 -2회
     4 아빠는 선생님에게 ‘소사희망원’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펄벅 기념관이 소사희망원이었다니 무슨 말이죠?” “펄벅 할머니가 혼혈 아이들을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돌보아주었죠. ‘펄벅 기념관’은 바로 그 소사희망원 자리에 세워진 것입니다.”   소사 희망원의 펄 벅 여사와 아이들   정아는 아빠와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습니다. 정아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정아가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럼 소사희망원은 고아원인가요?” “아니지. 펄벅 할머니의 소사희망원에 있는 혼혈 아이들은 대개 엄마가 혼자 키우고 있었으니 고아는 아니지.” “혼혈 아이들은 엄마가 있는데 왜 소사희망원에 왔어요?” “지금은 우리나라에 외국 사람도 많고 다문화 가정도 있고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지만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 외국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단다. 펄벅 할머니도 중국에 살았을 때 중국 사람들에게 서양 귀신이란 뜻으로 ‘양키체’라고 놀림을 당했단다. 펄벅 할머니가 어렸을 때 집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동네 아이들이 따라다니면서 ‘양키체’라고 놀리고, 어른들은 서양 귀신을 보면 재수가 없다고 피해 다녔지. 펄벅 할머니가 어려서 중국에 살았을 때 보다 심하진 않았지만 우리나라 사람도 피부색이 다른 외국 사람에 대한 반감이 있었거든. 그런데 반쪽만 우리나라 사람인 혼혈 아이들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은 생각을 가졌을까?” 정아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빠도 선생님도 정아가 생각하는 동안 기다려주었습니다. 정아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습니다. “아니요. 좋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아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중국 사람들이 펄벅 할머니에 대하여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을 우리나라 사람들도 했을 것 같아요. 거기다 진짜 외국 사람도 아니고 혼혈 아이들이니까요.” “그래. 정아 말처럼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고, 또 외국 사람에 대하여 좋은 기억도 별로 없었으니까. 외국 사람이라면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 부모 중에 한 쪽만 우리나라 사람인 혼혈 아이들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도 외국 사람도 아니라면서 더 차별을 했고.” “그런데 선생님, 어떻게 우리나라에 혼혈 아이들이 많이 생겼어요?”   소사 희망원은 펄벅 재단이라고 했었다. 당시 사용하던 간판.   5 미국의 하와이를 기습공격하면서 일본은 독일에 이어 세계 제2차 대전에 참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1945년 8월 15일 항복했습니다. 일본 천황의 항복 연설을 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얼싸안고 춤을 추었습니다. 모두가 일본의 항복에 기뻐 어쩔 줄을 모를 때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님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조금만 더 늦게 일본이 항복을 했다면 우리 광복군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우리나라에 상륙하여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을 기회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이미 우리나라의 독립에 우리의 힘을 보태지 못하고 외국 세력의 도움으로 독립한 것이 새 나라를 건국하는데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예상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맞았습니다. 광복이 되자 38선 이북에는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의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38선 이남에는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으려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설움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국토가 두 동강나고 남과 북이 대립하였습니다. 독립을 했으니 좋았지만 독립을 위하여 민족이 단결하여 싸울 때보단 못했습니다. 국토가 갈라지고 결국에는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하여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련의 지원을 받아 전쟁 준비를 마친 북한은 기습적으로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이 철수하고 확실한 무장도 갖추지 못한 채 북한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대한민국은 탱크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북한군을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전투다운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낙동강까지 밀린 대한민국 국군은 부산을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을 낙동강에 치고 북한군을 막기에 급급했습니다. 공산주의 북한에 의해 자유 대한민국이 사라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바람 앞 등불의 처량한 신세가 바로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이때 유엔 16개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냉전의 시대에 공산주의 팽창을 막고 자유민주주의 세계를 지켜내기 위하여 유엔은 대한민국에 병력과 물자를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16개국이 동참했습니다. 급히 대한민국에 파견된 유엔군은 국군과 함께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을 막았습니다. 삼 년이라는 긴 6.25전쟁이 끝나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유엔군이 주둔하면서 대한민국 사람과 외국군인 사이에서 많은 혼혈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혼혈 아이들은 양 부모가 있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대한민국 엄마들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혼혈 아이들은 대한민국 사람들과는 다른 외모와 피부색 때문에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았습니다. 정치적으로 극심하게 혼란하고 경제적으로 몹시 가난한 대한민국에서 혼혈 아이들은 외국 군인들이 버리고 간 아이들이라는 홀대를 받으며 사회적으로 방치되다시피 하였습니다.   펄벅 기념관 내부   6 아빠가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펄벅은 어떻게 혼혈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죠?” 이때 정아가 끼어들었습니다. “아빠도 펄벅 할머니라고 하세요.” “(아빠가 장난스런 얼굴로)알았어요. 그럼 선생님에게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펄벅 할머니는 어떻게 혼혈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아빠의 찡그린 얼굴이 너무 우스워서 선생님도 정아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중국의 남아선호사상으로 여자아이를 차별하는 것도 그렇고, 의화단운동 때 오로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을 뻔 했던 인종차별의 경험도 그렇고, 펄벅이 장애인 딸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도 그렇고, 펄벅이 중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방인과 같은 취급을 당한 것도 그렇고, 이런 경험들이 펄벅에게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요?” “의화단운동이라니요?” “그 일은 펄벅 할머니가 어려서 경험한 것입니다. 의화단운동 때 중국에 계속 있으면 죽을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펄벅 가족도 잠시 미국으로 피신했습니다. 의화단운동은 부청멸양(扶淸滅洋) 청을 도와 서양세력을 멸하자는 것으로 반외세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중국에서 서양세력과 서양인들, 즉 백인들을 몰아내자는 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잔혹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서양세력이 중국을 공격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아빠도 정아도 선생님의 설명에 빠져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잠시 하던 말을 멈추고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세계 제2차 대전을 치르면서 아시아에 미국군인과 아시아여성 사이의 혼혈 아이가 많이 출생한 것도 펄벅 할머니가 혼혈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만든 이유가 될 수 있겠죠. 펄벅 할머니는 이런 혼혈 아이를 ‘아메라시안’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아메라시안들은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 나라에서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럼 펄벅 할머니가 대한민국을 방문했을 때 대한민국에서도 혼혈 아이들을 본 것이군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혼혈 아이들과 엄마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대한민국에도 유엔군이 있으니까요.”   ---------계속     이재학 마라토너/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협회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부천 소새울에 산다(1,2,3,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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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30
  • 펄벅 부천에 오다 - 1회
      1 깊은구지로 이사 온 정아는 아빠와 동네를 돌았습니다. 동네 돌기는 정아가 아빠에게 먼저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정아는 새롭게 이사 온 깊은구지가 어떤 동네인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정아는 하나씩 동네를 알아가는 게 무척 즐거웠습니다. 오늘 정아는 아빠와 성주산에 갔습니다. 성주산을 오르니 부천 시내가 다 보였습니다. 멀리 계양산도 보이고, 원미산도 보이고, 소래산도 보였습니다. 정아는 하우고개로 해서 깊은구지 집으로 가는 길에 ‘펄벅 기념관’ 간판을 보았습니다. “아빠, ‘펄벅 기념관’이 뭐예요?” 아빠는 갑작스런 정아의 질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정아야, ‘펄벅 기념관’이라고 어디?” 아빠는 정아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정아가 가리키는 곳에는 ‘펄벅 기념관’이라고 쓴 간판이 보였습니다. 아빠도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보게 된 ‘펄벅 기념관’ 간판이 신기했습니다. 아빠는 정아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정아야, 무슨 기념관이 있는 것 같으니 우리 한 번 가볼까?”   대산동 펄벅 기념관 입구 정아는 ‘펄벅 기념관’ 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면 보물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골목 안에는 무슨 보물이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던 정아가 갑자기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그런데 펄벅이 누구야?” 정아의 질문에 아빠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펄벅이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디선가 듣던 이름이라 어렴풋이 생각이 났지만 입안에서 맴돌 뿐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아빠는 산 밑 구석진 곳에 외국 사람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다는 게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펄벅 기념관’이 더욱 궁금했습니다. “정아야, 솔직히 아빠도 잘 모르겠다.” 정아와 아빠는 ‘펄벅 기념관’ 간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손을 잡고 걸어갔습니다. 그다지 넓지 않은 길을 따라 걸었지만 빌라들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 사이에도 호기심 많은 정아는 아빠에게 쉬지 않고 말을 했습니다. “아빠, 이름이 펄벅이니까 외국 사람이겠죠?” “아마 그렇겠지.” “아빠, 그럼 펄벅은 여자일까요. 남자일까요. 제 생각에는 여자일 것 같은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냥요. 그냥 여자 이름 같아서요. 그런데 아빠, 서울도 아닌데 우리 동네에 외국 사람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다는 게 신기해요?” “아빠도 신기해.” 빨리 ‘펄벅 기념관’에 가고 싶은 마음에 정아가 마주 오는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아줌마, ‘펄벅 기념관’이 여기서 먼가요?” 정아가 갑작스럽게 물었지만 아주머니는 발걸음을 멈춘 채 돌아서서는 손으로 앞쪽을 가리켰습니다. 아주머니가 가리키는 곳에는 정원에 집이 한 채 있는 게 보였습니다. “저게 ‘펄벅 기념관’이란다. 우리 동네의 보물이지. 우리 꼬마 아가씨도 아빠하고 보물을 찾아 왔구나. 우리 동네 보물 천천히 많이 보고 가세요.” “아줌마, 저도 깊은구지 살아요. 최근에 이사 왔거든요.” “그래서 우리 동네 보물을 아직 몰랐구나. 깊은구지 살면 당연히 ‘펄벅 기념관’에 대해서 알아야지. 암 그래야지.” “네, 이제 많이 배울게요.”   2 정아는 ‘펄벅 기념관’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정아는 ‘펄벅 기념관’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숨이 넘어갈 듯 뛰어간 정아가 아빠를 향해 외쳤습니다. “아빠, 펄벅은 여자고요. 미국 사람이에요.” “그래, 알았다. 정아야 알았으니 천천히 말해 숨넘어가겠다.” “아빠, 그리고 소설가래요.” 아빠는 펄벅이 여성 소설가라는 정아의 말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대지’였습니다. ‘대지’는 바로 펄벅의 유명한 소설이었습니다. 아빠는 펄벅이 누구인지 아는 순간 더 궁금해졌습니다. 어째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 펄벅의 기념관이 부천에 있는지, 그것도 성주산 밑 외진 곳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빠도 정아와 마찬가지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도 궁금해서 뛰어오셨죠?” “그래 정아의 말을 들으니까 아빠도 궁금해서. 어디보자.” 아빠는 정아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습니다. “정아야, 이곳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펄벅이 운영한 ‘소사희망원’이 있던 곳이야.” “아빠, 소사희망원은 뭐하는 곳이었어요.” “그것은 우리 ‘펄벅 기념관’에 계신 선생님에게 물어볼까? 그곳에 가면 담당선생님이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을까? 빨리 기념관으로 가보자.” “빨리 가요?” 정아는 아빠의 손을 잡고 끌었습니다.   3   기념관안의 펄 벅(가운데) 전신상  정아는 ‘펄벅 기념관’의 선생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정아예요. 이 분은 우리 아빠세요.” “정아 안녕, 자, 우리 기념관에 왔으니 정아가 가장 궁금한 것은 무엇일까? 선생님이 뭘 도와주면 될까?” “선생님 여기 ‘펄벅 기념관’이 뭐하는 곳인가요? 그리고 소사희망원은 뭐하는 곳인가요?” 정아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하나씩 질문해야지 선생님이 대답하지. 그럼 먼저 ‘펄벅 기념관’에 대해서 알아볼까? 정아야 들어오다 할머니 조각상을 보았지.” “네, 할머니 얼굴을 보았어요.” “그 할머니 이름이 뭔지 아니?” 잠시 생각을 한 정아는 아빠에게 귓속말을 한 뒤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펄벅이요.” “펄벅 할머니는 뭐하는 사람이지?” “소설가요. 아까 아빠가 펄벅 할머니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라고 하셨어요.” “그래 펄벅 할머니는 소설가야. 정아는 소설가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니?” “알아요. 재미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요.” “정아가 잘 알고 있네. 정아의 말처럼 소설가는 재미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지. 펄벅 할머니는 ‘대지’라는 소설에서 중국의 농부인 왕릉 일가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단다. 그런데 펄벅 할머니는 어떻게 중국 농부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쓸 수 있었을까?” 정아는 눈을 반짝이면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빠도 정아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사실 펄벅 할머니는 미국 사람이거든. 그런데 중국사람 보다 더 중국사람 같았지. 펄벅 할머니는 미국에서 태어난지 3개월 만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가서는 미국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중국을 떠날 때까지 거의 중국을 떠난 적이 없었어. 정아야 생각해봐라. 펄벅 할머니가 어려서부터 줄곧 중국에 있었으니 얼마나 중국에 대하여 잘 알았겠니.” “그럼 펄벅 할머니는 중국 사람이 아닌가요?” “펄벅 할머니는 중국 사람이 아니라 미국 사람이지. 하지만 아기 때부터 중국에서 산 하얀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중국 사람이었지. 그러니 너무 기쁘거나 하면 영어가 아닌 중국말이 먼저 나왔지.” 그때 아빠가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중국에 살았고, 또 교육을 받았으니 중국문화와 유교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깊었겠네요.” “아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펄벅은 중국사회와 문화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애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에 대한 애정이 펄벅으로 하여금 중국을 무대로 소설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소설이 펄벅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대지’죠.” 정아가 멀뚱멀뚱 아빠와 선생님의 대화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 정아의 모습을 본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정아야, 펄벅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이제 알겠니?” “네. 중국을 잘 아는 소설가요.”   ---계속   이재학 마라토너/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협회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부천 소새울에 산다(1,2,3,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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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4
  • 나비의 외출 - 마지막 회
    얼마 전, 꿈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앞에 놓인 장애물을 넘는데 그만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말았어. 살짝 뛰어넘는다는 것이 하늘을 나는 새처럼 날아오를 줄 누가 알았겠어.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은 상상도 못 할 일이야. 사람이 새가 된다? 꿈이 현실로 이어질 수는 없지만 오랜 여운이 남아 주위를 맴돌았어. 자유를 찾아 절벽에서 뛰어내린 빠삐용처럼 나는 이 네모난 공간에서 벗어날 거라고. 그것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나갈 거야. 혼자서 바깥출입이 가능한 일인지는 몰라도 성공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나의 독립을 선언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더 넓은 무대에서 내 존재감을 과시하게 될지도 몰라.  그동안 연마한 날갯짓을 펼치는 순간 더 이상의 주저함이나 두려움 따위는 없어. 곤충들은 화산폭발이나 지진 또는 해일이 일어날 징조를 미리 안다고 들었어. 그래서 안전한 지대로 이동한다고 들었어. 창문 밖에서 오래도록 날개를 퍼덕거린 박쥐들의 움직임은 무언가 전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 움직임은 분명 용기를 내라는 신호일지도 몰라. 그 뜻이 맞다면 나는 어쩌면 그들과 첫 교감이 이루어지게 되는 셈이야. 휠체어는 나비의 날개처럼 가볍지 않아도 나의 유일한 날개야. 날개를 장착한 첫 목표는 혼자서 상자를 벗어나는 일이야.  작은 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묘책 수단과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해. 자기 몸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에너지,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다 순간적으로 멈추는 에너지, 작은 요철쯤은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범함이지. 나는 박쥐와 나비에게 이 작은 공간에서 벗어날 것이고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나를 찾아보라는 메시지를 날렸어.  평소보다 30분 일찍 퇴근한 언니. 볶음밥은 언니가 만든 것이 아니라 진공 팩에 든 완제품이야. 그래서 언니는 내용물에 당근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등한시한 거지. 언니가 사이보그라 여겼던 내 생각을 수정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워. 강아지는 진한 버터 향으로 길들었는지 계속 달라고 꼬리를 열심히 흔들어. 매번 방에 들어오자마자 짖어대기만 했었는데 어느새 얌전한 고양이로 변했어. 이젠 내 말귀를 알아듣는 것일까? 나는 쟁반에 떨어진 밥알까지 던져주었고 강아지는 바닥 청소하듯 열심히 핥아먹었어. 강아지가 길을 인도하기란 어렵지만, 최소한 앙앙거리며 방해하지는 않을 거야. 화장실은 한 시간 전에 언니가 데려다주었어. 그동안 작은 공간 안에서 수많은 연습을 했지. 실전 돌입에는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해.     서서히 거실로 나와 현관문 앞에 다가섰어. 신발은 신을 필요가 없지만 신어야겠지. 현관문이 여전히 어려워. 문고리에 손이 닿기까지 거리가 멀거든. 그래도 문고리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휠체어를 옆으로 갖다 댔어. 문을 열었지만, 휠체어가 옆으로 서 있는 바람에 나갈 수가 없어. 위치를 여러 차례 바꿔 봐도 휠체어 방향과 문고리 둘 다 해결하기 쉽지 않아.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그건 신발이야. 정확히 동생의 운동화이지. 현관문을 열고 문틈으로 신발 한 짝을 끼워두는 거야. 그럼 현관문이 닫히다 말겠지. 그다음은 휠체어 방향을 바로 세운 뒤 힘으로 밀고 나가면 돼. 똑똑한 강아지도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왔어. 이제 엘리베이터 앞이야.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면 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휠체어를 들이밀고는 1층 버튼을 가볍게 눌러. 휠체어 방향을 돌리는 동안 곰곰이 생각했어. 정말 계획대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문이 열리자 전방 십여 미터 앞에 밝은 빛이 너울거리며 나를 반기고 있었어. 휠체어를 아주 조심스럽게 밀고 나갔어.  경비실 앞이야. 경비실 앞에는 계단이 있고 그 옆에 유모차나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 나 있어. 그 길은 비탈진 커브 길로 세심한 운전이 필요하지. 브레이크를 수시로 잡아주어야 하고 아주 천천히 내려가야 해. 예상은 이랬지만 브레이크 사용이 적절하지 않아 바퀴에 붙은 원형 금속 테만 느슨하게 잡아주면서 내려갔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려갔지. 짧은 구간인데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 강아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내 주위를 맴돌았어. 가끔은 내가 위태로운지 휠체어가 설 때마다 불안해했어.  이제 아파트 단지 한 바퀴 도는 것이 첫 번째 목표야. 그다음은 누가 먼저일지 몰라도 가족들을 마중하기 위해 아파트 단지 입구에 진을 치는 것이 두 번째 목표이지. 아마도 엄마가 가장 먼저 나타날 거야. 엄마와 딸이 달려가다가 끌어안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도 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연출하고 싶어. 머릿속에 저장해둔 항공사진이 눈앞에 펼쳐졌어. 인터넷이라는 세상보다, 때론 영화와 같은 가상의 일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 더 이상 꽉 막힌 상자 안의 인형이 아니야.  동네 한 바퀴 도는 나의 행보에 걸림돌이 있을까? 어쩌면 나의 탈출기를 듣기 위해 박쥐들이 창문 틈으로 몰려들지도 모르겠다. 아니 좀 더 어두워지면 나타날지도 몰라. 빠삐용은 자바섬 절벽 위에서 야자 열매를 채운 자루를 바다에 던졌어. 자루가 절벽으로 돌아와 부딪히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도 바다에 뛰어들었지. 그리고는 자루에 몸을 매단 채 먼 바다로 나아갔어. 자유를 찾아 떠난 나비의 탈출기는 이렇게 시작됐지. 예상한 것과 달리 동네가 좁다는 생각이 드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휠체어의 속도를 좀 더 높여야겠다.   -끝-   박주호 소설가 2007년 부천신인문학상 수상<단편소설 부문>.  2012년 아시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소설 부문>. 2017년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동화 부문>. 현재 :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부천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저서 : 단편소설집 <하늘로 날아오른 종이학> 동화장편 <바둑이와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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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7
  • 나비의 외출 - 5회
    나는 초음파를 감지할 능력을 갖추길 바랐어. 지난밤 창문 밖에서 박쥐들이 춤을 추는 것인지 오래도록 날개를 퍼덕거렸지. 그 날갯짓은 무언가 전하고 있는 듯했어. 만약 박쥐와 같은 초음파를 낼 수 있다면 대꾸해주었을 것이고 박쥐의 세상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을 텐데. 또 눈을 감고도 다가오는 생명체를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강아지와의 교감은 수없이 시도해보았지만, 워낙 어려서 그런지 잘 통하지 않아. 강아지가 크면 내 길잡이가 될 거야. 재롱만 부리는 것으로 제 소임을 다한다고 하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하거든.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언니 말고 남동생도 있어. 하지만 동생이 고등학생이 되자 도움 청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제대하고 3학년에 복학한 오빠는 자기밖에 몰라. 동생이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해보았어. 목욕탕에서 함께 물장난치며 때도 밀어줄 텐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여행을 떠날 수도 있는데. 동생은 내년에 고3이 되는데 그때가 되면 얼굴조차 못 볼 거야. 언니가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그 역할을 엄마가 대신해. 쇼핑센터에서 옷가게를 하는 엄마는 저녁 7시경에 귀가해. 집에 와서는 간식을 챙겨주거나 잠자리를 봐주지. 늘어나는 내 몸무게 때문에 언니나 엄마가 점점 더 힘들어해. 그래서 엄마는 가끔 화장실에 데려다줄 때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곤 하지.    나는 팬티를 입지 않는 대신 두툼한 솜이불을 착용할 때가 더러 있어. 솜이불은 기저귀를 애칭 하는 말이야. 솜이불은 쇼핑하거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때 그리고 멀리 여행을 떠날 때 비상용으로 착용하지. 나는 애초부터 착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바깥에서 장시간 있어야 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어. 엄마는 성인용 기저귀가 시판된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 만약 성인용 기저귀가 아니었다면 유아용 기저귀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이즈를 입혔을지도 몰라. 성인용 기저귀가 없었던 시절, 도움받아야 할 위급한 상황에서 그만 침대에 방뇨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었지. 그 이후로 부모님은 대비책을 찾고자 노력했어. 하지만 도움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해결될 일이 아니라며 화장실에 다녀온 시간과 횟수를 메모하기까지 했었어.    물 좀 가져다주세요!  인쇄용지를 넣어주세요!  생리대 좀 처리해주세요!    언니는 건강보험공단에서 파견된 요양보호사야. 오로지 나와 관련된 일만 하고 있어. 그런데 맞벌이하는 엄마나 아빠는 더 많은 일이 필요한 거야. 그래서 언니에게 별도의 비용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집안일을 맡긴 거야. 그러니깐 언니는 적잖은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는 거지. 그래도 매번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시키고 나면 나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특별한 일로 인해 학교에 가는 날에는 항상 곁에 붙어 있어야 하고 노트에 일일이 받아 적기까지 해야 하지.      최의열 그림    내가 나비를 찾아낸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휠체어 역시 마찬가지야. 휠체어를 움직이는 데에는 적잖은 에너지가 필요해. 나는 바다를 건너는 나비에게서 용기를 얻었어. 아버지는 휠체어가 넓은 세상으로 인도할 것이고 꿈이 현실로 이어질 거라고 하셨어.  나에게는 꿈이 있어. 꿈을 갖는 사람 자체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인내를 갖고 노력함으로써 이루는 것이라고 들었어.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생각이 작거나 꿈이 없는 게 아니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바닷가에서 어떻게 거센 파도를 구경하고 갈매기의 공중곡예를 지켜볼 수 있으며 끝도 보이지 않는 해변을 어떻게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었을까. 인터넷이 아니라면 어림없는 일이야. 책상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는 무려 29인치로 벽걸이 TV나 다름없어. 이것 또한 아버지의 특별한 배려 가운데 하나지.  세상은 넓고 인터넷은 이 넓은 세상을 담았어. 나는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이 뛰어내렸다는 절벽을 인터넷으로 실감 나게 느낀 적이 있어. 바다의 끝은 보일 듯 말 듯했지. 바닷물은 출렁이고 거센 파도는 끊임없이 검은 바위를 때렸어. 파도가 하얗게 부서질 때마다 검은 바위는 으르렁거렸어. 가파른 절벽 위로는 괭이갈매기들이 먹잇감을 찾기 위해 또는 먹잇감을 물고 둥지로 날아다녔어. 모니터로 봐도 아찔한 절벽을 어떻게 뛰어내릴 수 있었을까?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 어떤 각오였는지 생각해 보았어. 뛰어내릴 용기를 어디서 찾았을까? 사람이 새가 되어 날게 된 이유 말이야. 그곳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강렬했기 때문이 아닐까. 살고자 하는 필사적인 의지가 없다면 새가 되지 못했을 거야. 빠삐용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했지만 유일한 동료인 드가는 남은 인생을 그곳에서 조용히 보내겠다고 선언했어. 빠삐용처럼 목숨을 걸면서까지 무모한 행동을 벌이느니 차라리 돼지를 기르며 평생토록 안일하게 살겠다고 했어. 결국 빠삐용은 자바섬에서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드가는 돼지를 기르며 자바섬에서 살았지.  새장 같은 나의 작은 상자도 사방이 가로막혀 있어. 빠삐용이 그랬던 것처럼 이 공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빠삐용은 아무리 구속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고립된 섬에서 살 수 없다며 바다에 뛰어들었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기다리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야. 기다리는 가족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이라 여겼던 거지.    ------계속 ------   박주호 소설가   2007년 부천신인문학상 수상<단편소설 부문>.  2012년 아시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소설 부문>. 2017년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동화 부문>. 현재 :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부천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저서 : 단편소설집 <하늘로 날아오른 종이학> 동화장편 <바둑이와 달리기>        
    • 예술/창작
    • 웹소설
    2019-03-30
  • 나비의 외출 - 4회
     때가 왔다는 듯 언니가 쟁반을 들고 온 시간은 여섯 시 이십 분이야. 평소보다 십여 분 이른 시간이지. 아무렴 어때. 언니가 내 계획을 알 리가 없는데. 나는 아침을 빼고는 대부분 이 작은 상자 안에서 밥을 먹어. 저녁 메뉴로는 야채볶음밥이 나왔어. 식기는 학교 구내식당에서 쓰이는 식판을 쓰기도 하고 큰 접시에 담아오기도 해. 다양한 종류의 볶음밥은 마치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듯해. 야채, 자장, 송이, 새우, 김치, 해물볶음밥에 오징어 덮밥, 불고기덮밥 등 그 가짓수는 만들기 나름이지. 아마 야채볶음밥을 먹은 뒤 다시 같은 음식을 먹기까지 보름은 걸린다고 봐야 할 거야. 그래도 지겨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아무 투정 없이 먹어.      조금 빨리 나온 볶음밥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어. 마치 활짝 핀 꽃송이들과 춤추는 나비들의 무대와 같아. 피망, 옥수수, 양송이, 햄, 그런데 네모난 주황색? 설마? 설마가 아니라 진짜였어. 당근이 들어 있었어. 언니는 내가 당근을 안 먹는 것을 모를 리 없는데. 당근만 빼고 먹으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볶음밥을 앞에 두고 한참을 망설였어. 언니에게 말을 해야 좋을지 아니면 꾹 참고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거야. 콩알만한 당근 조각을 일일이 골라내기란 쉽지 않지만, 나에게는 중대한 임무가 코앞에 놓여 있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해.        데이트라도 있는 것처럼 마음이 급한 나머지 언니가 당근을 간과했나 보다. 그나저나 이를 어쩌지? 나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볶음밥을 뚫어지도록 바라보았지. 당근을 먹을 수는 없는 일이고 일일이 빼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야. 동생이나 오빠라도 있다면 도움을 청할 수 있으련만. 눈 딱 감고 한번쯤 먹어볼 수 있지만 나의 고집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 그런 식으로 당근을 먹었다면 오래전부터 먹었을 것이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음식을 가리지도 않았을 거야.    “언니 먼저 퇴근해도 돼.”  “그래도 괜찮겠어?”  “하던 일이 있어서 밥 천천히 먹으려고.”  “그래 나도 일이 갑자기 생겨서.”  “엄마한테는 잘 얘기해 줄게 걱정하지 마.”     ‘앙! 앙! 앙!’    곰곰이 생각하던 중 강아지가 냄새를 맡고 들어왔지 뭐야. 나는 강아지를 보자마자 눈이 번쩍 띄었던 거야. 사진/ 홍종선  그래 강아지에게 당근을 주는 거야. 그렇게 되면 볶음밥에 당근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거야. 엄마에게도 언니에게도 골라낸 당근을 보여주는 것은 미안한 일이야. 강아지가 나의 난처함을 알아차리고 도우러 온 것이 틀림없어. 똑똑한 강아지, 이걸 보고 이심전심이라고 하는 건가? 아무튼 고마운 강아지야. 아무리 어린 강아지라도 후각 하나는 뛰어나.      별들의 고향이라는 우주는 신비로운 탐구의 대상이지. 인터넷을 통해 별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글을 접하고는 소름이 돋았어. 떠도는 이야기로는 사람이 죽어서 별이 된다는 거야. 설마 하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궁금증은 가라앉지 않았지. 밤하늘의 별이 그렇게 많은 이유, 계속해서 늘어나는 이유가 새롭게 태어나고 또 이승을 떠난 사람들 때문이라고 해.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한 이유는 무얼까? 천문학자들은 초신성 폭발로 인해 수많은 별을 낳거나 진화해서 늘어나는 것이라고 하지. 나는 과학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면서도 사람이 별이 된다는 이야기에 한 표를 던져주고 싶어.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다만, 내가 만약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별에서 살게 될지 궁금해. 그곳에서는 지구와 같이 아름다운 별은 아니어도 지금처럼 불구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계속 ---  박주호 2007년 부천신인문학상 수상<단편소설 부문>.  2012년 아시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소설 부문>. 2017년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동화 부문>. 현재 :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부천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저서 : 단편소설집 <하늘로 날아오른 종이학> 동화장편 <바둑이와 달리기>    
    • 예술/창작
    • 웹소설
    2019-03-21
  • 나비의 외출 - 3회
    내 방에는 유난히 상자가 많아. 모두 나처럼 고립에 빠진 것들이야. 엄마는 무슨 상자를 저렇게 많이 사 놓았을까. 옷장 위에는 엇비슷한 크기의 상자들이 즐비하고 침대 밑에도 있어. 침대 밑이나 옷장 위나 들춰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야. 그래서 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증이 일다가도 금세 사라져. 상자를 쌓아둔 엄마에게는 그 이유를 묻지 않기로 했어. 상자들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차이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 엄마에게 묻는 것은 공연한 짓이야. 나만 참고 지내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내 방의 단골손님으로는 강아지 말고 거미도 있어. 어느 틈으로 들어왔는지 몰라도 고공비행에 외줄 타기를 멈추지 않고 있어. 나는 거미가 숨어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한테 잡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어. 모기나 파리 하나 잡을 수 없는 나에게 거미는 적이 아니라 아군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거미가 암벽을 기어오르는 탑클라이머처럼 고난도 묘기를 펼칠 때면 숨죽이며 지켜보았고 응원의 메시지도 날렸어.  나는 언니의 도움으로 엄마와 오빠 방에 가본 적이 있어. 그 방에는 거미가 천장에 집을 지을 수 없고 강아지가 맘대로 들락거리며 앙! 앙! 앙! 짖어댈 수 없을뿐더러 박쥐들이 창문 밖에서 훌라춤을 출 수 없어. 그 방은 엄격해서 잘못했다가는 엄중한 응징을 받기 때문이지.    박쥐와 나비는 내 방에 들어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게다가 나는 설 수가 없어서 창문을 열지 못해. 조금 안타깝지. 그래서 가끔은 내 자신을 돌아봐. 나를 되돌아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아. 사람들은 오래 전 사진을 펼쳐보고 그리워하거나 깔깔대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 앨범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 어린 시절을 생각하다 보면 가엾다 못해 비참하다는 느낌마저 들어. 그래서 과거의 사진들을 보다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지.  나는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2학년으로 매일 여섯 시간씩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공부하지. 집중력이나 인내가 돋보이기도 하지만 의자나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그것이 나의 장기라고 여기지 않아. 나에게 가장 유쾌한 시간이 있다면 인터넷을 할 때와 침대에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이지. 꿈나라는 현실로 이어질 수 없지만, 가상의 무대를 만들어주었고 컴퓨터는 인터넷을 통해 대리만족을 주었어. 몸소 체험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세상 끝까지 가고자 하는 모든 곳에 데려다주었지. 그래서 충동적인 생각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질까 봐 겁이 나기도 해.  ----- 계속-----   박주호 작가 2007년 부천신인문학상 수상<단편소설 부문>.  2012년 아시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소설 부문>. 2017년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동화 부문>. 현재 :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부천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저서 : 단편소설집 <하늘로 날아오른 종이학> 동화장편 <바둑이와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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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소설
    2019-03-16
  • 나비의 외출 - 2회
    언니는 화장실을 데려다준 뒤로 기척이 없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때가 되면 나타나 밥숟가락을 손에 쥐여줄 것이 뻔해. 그 일과 그 시각은 늘 한결같지. 가끔 언니의 빈틈없는 행동과 무표정한 얼굴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아. 물론 속으로는 신경이 쓰이지만 내가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아. 이 일에 지칠 때가 되었는데도 언니는 포기하거나 싫증 내지 않아. 인내는 언니만이 갖는 고유명사가 아니었어. 나에게도 그만큼은 있다고 봐야지. 참다 보니 어느새 무뎌졌고 길들었지 뭐야. 그런 내가 언니 앞에서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은 무례한 일이야. 사람이 화가 날 때나 심각할 때는 표정의 변화가 없다고 들었어. 표정 없는 언니를 대할 때는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반응해.       혹시 언니가 나를 두고 문밖을 나설까 봐. 아주 포기하고 돌아설까봐. 처음 대하는 언니들에게 한동안은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찼었어. 이런 생각은 언니가 자꾸 바뀔 때마다 그들을 대하는 내 경계심에서 비롯됐어. 나를 돌보았던 언니 또는 아줌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지금의 언니를 만난 지는 10개월이 됐지. 지금까지 일주일 만에 그만둔 아줌마도 있었고 한 달 만에 그만둔 언니도 있었어. 그렇게 수도 없이 바뀌다 보니 아버지 입에서 버틴다는 말이 나왔던 거야.    ‘이번에는 얼마나 버틸지.’    아버지는 이렇게 돌보미가 바뀔 때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숨만 내쉬었지. 아버지는 할 말을 잃은 것이 아니라 말할 가치가 없었던 거야. 그때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는 내 심정을 알까? 누군가 대신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이후로 나는 내 현실에 대해 고민해 왔어.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에 대해서 말이야.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거야. 투정이나 앙탈을 부리지는 않지만 뭔가 반란의 음모를 꾀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거지. 그 음모를 누가 알까? 강아지라면 몰라도.    ‘앙! 앙! 앙!’    까랑까랑하고 톤이 높은 세 음절은 강아지가 나름대로 투덜대는 소리야. 어린아이들도 이런 소리를 내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어. 아주 어릴 때부터, 누군가 해주길 기다렸고 그때까지 참는 것에 길들었었지. 기다릴 필요 없이 먼저 요구하면 된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알게 됐어. 부모님은 나를 위해 많은 것을 바꿔놓았어. 방이며 현관이며 화장실까지 휠체어가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도록 모든 문턱을 없앴지만, 문제는 나 스스로 휠체어를 몰기가 너무 힘이 든다는 거야.    ‘앙앙앙’    나는 여덟 살 때부터 이렇게 속으로 울어댔지. 그건 하반신 장애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서는 어디든 다닐 수 없고 화장실 볼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었어. 성장하면서 그것이 나의 속박이라고 여기면서부터는 투덜대기 시작했어. 투덜대다 지치면 잠이 들고 꿈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지. 꿈속에서는 바다를 건너온 나비가 나타나고 박쥐도 달려들어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곤 해.  꿈속 세계는 선명하지 않아. 늘 안개에 휩싸여 있고 흑백사진과도 같아. 꿈속에서는 달리기도 하고 박쥐 등에 업혀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하지. 위험한 순간에도 무서워하지 않아. 달리다가 넘어지고 다쳐도 잠깐 오싹할 뿐 다시 일어나 달리거나 날아다니는데 그 환상의 시간은 아침이면 사라지고 말지.  방에 고립됐다고 느꼈을 때부터는 내 방을 작은 상자라 불렀어. 고립은 외로움이 알려주었지. 시작은 엄마 품에서 벗어나 혼자 공부하고 혼자 잠을 자면서부터였어. 혼자 생활할 때까지만 해도 고립이라 여기지 않았어. 바다를 건너온 나비가 창문을 두드릴 때, 밤마다 박쥐들이 창문 밖에서 산발적으로 퍼덕거릴 때, 그리고 강아지가 앙! 앙! 앙! 투덜댈 때 비로소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환자가 특별한 일 때문에 바깥출입을 할 때처럼 나도 화장실에 가거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 빼고는 이 작은 상자 안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지.  --- 계속   박주호 작가   2007년 부천신인문학상 수상<단편소설 부문>.   2012년 아시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소설 부문>.  2017년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동화 부문>. 현재 :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부천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저서 : 단편소설집 <하늘로 날아오른 종이학>  동화장편 <바둑이와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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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09
  • 나비의 외출 - 1회
       날개의 무게를 재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저울의 바늘이 움직일까 말까 하겠지 뭐. 재더라도 미세저울이어야 할 거야. 그만큼 가벼우니까 현란한 거 아니겠어. 그 현란함은 빛의 스펙트럼이 춤추는 형상을 하고 있어. 실감 난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상태인지는 몰라도 지금 나는 모니터 화면에 푹 빠져있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많은 비늘이 기왓장처럼 촘촘하게 배열되어 있네? 무심결에 손을 뻗어보지만 어림없는 짓이야. 화면에 비친 영상인데도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이런 날개로 바다를 건넜기 때문이지. 약해 보이는 날개로 어떻게 세찬 풍랑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혹시 따뜻한 상승기류라도 만난 것일까. 아니면 바다에 떠도는 유실물에 몸을 의지한 것일까. 바다를 건넌 나비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꽃밭이야. 나비는 날개 윗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파장으로 동족을 구별하고 짝을 찾아. 꽃밭에는 여러 종류의 꽃과 나비들이 있어 사랑을 나누며 꿀을 따지. 비록 해풍에 찢어지고 짠 바닷물이 배었지만, 날개의 비늘은 새롭게 돋아날 거야. 아마 나비가 바다를 건널 때 풍랑의 두려움만큼 외로움도 컸을 거야.     문짝의 흠집은 한 달 전부터 그랬어. 발판이 여러 차례 때려댔기 때문이지. 반복되는 실수는 휠체어가 너무 크기 때문이야. 롤링은 부드럽지만 나에게는 무겁고 버겁기만 해. 실수를 반복할 때마다 나비를 생각해. 바다를 건너겠다는 용기는 어디에서 났을까? 내가 이 휠체어를 몰고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어쩌면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비도 바다를 건너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가 있을까?    이상한 일이야. 문짝에 흠집이 났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관심이 있더라도 오빠는 ‘흠집이 났네!’ 할 것이고, 동생은 ‘내가 스티커 붙여줄 게 누나’ 하며 적극적으로 나설 거야. 아무래도 엄마나 아빠는 조금 안타깝게 생각하겠지. 아니야, 그냥 모르는 게 좋아. 왜냐면 내 은밀한 계획에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되거든. 문짝의 흠집은 언젠가 내가 보상할 거야.    다시 모니터에 집중한다. 날갯짓은 멈췄고 나비는 잠을 자는 듯해. 잠자는 나비를 깨우려는 듯 시끄럽네. 열린 문틈으로 강아지가 들어왔구나. 내가 처량하고 한심한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다시 짖기 시작하네. 뭔가 전하고자 열심히 짖어대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나는 마지못해 두 눈으로 내려다본다. 뚫어지도록 쏘아대는 내 눈초리에 강아지는 줄행랑치고 말았어. 내 뜻을 알아차린 것인지 아니면 일찌감치 포기한 것인지는 몰라도 내 기에 눌린 것이 틀림없어. 나비에 빠진 나로부터 환심을 사려 해도 나는 너의 말귀를 알아들을 수 없고 함께 놀아주거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줄 수 없단다. 다른 건 몰라도 소통이 이루어지면 좋겠는데. 나는 나의 이야기를 강아지에게 전하고 싶어. 방법이 있다면.    혼자 지내다 보면 별별 생각들이 다 떠올라. 이 방의 주인이 누구이며 언제쯤 문짝에 구멍이 날 것인지 또 강아지가 내 말귀를 알아들을 날이 올 것인지, 참으로 생뚱맞은 생각으로 코웃음까지 치곤 해. 이 방의 주인이야 뻔하지만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 시립도서관 단골 이용객처럼 널린 책들을 펼쳐보거나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 세상 속으로 떠나는 일밖에는 할 수 없어. TV 드라마는 생동감이 떨어지고 그다지 흥밋거리를 가져다주지 못해. 미소를 잃어버린 뉴스 진행자는 늘 심각한 어투로 보도만 늘어놓지. 나도 사건 현장의 피해자처럼 울부짖거나 고함 한번 질러보고 싶을 때가 더러 있지만 인내심에 길든 세월을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아. 내가 이 방 주인이 아니어도 좋고 달랑 방 한 칸 얻고 사는 세입자라도 좋아. 조금만 더 벗어날 수 있다면. --  계속     박주호 작가  2007년 부천신인문학상 수상<단편소설 부문>.  2012년 아시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소설 부문>.  2017년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동화 부문>. 현재 :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부천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저서 : 단편소설집 <하늘로 날아오른 종이학>  동화장편 <바둑이와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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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01
  • 한계령을 위한 연가 - 11회
    삼 일째 되는 아침, 까닭 없이 몸이 굼실거리는 느낌이었다. 몸을 씻지 못한 탓이거니. 젊은 날 못지않았던 그의 욕정도 시들어가는 듯했다. 나를 다시는 뺏기지 않겠다는 듯이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꼭 안고서 손을 움직이던 첫날과는 달리 이내 바르게 누워 자다간 어쩔 땐 등까지 보였다. 나도 그게 오히려 편했다. 그렇게 맛있던 라면도 처음만 못하고 데워먹는 햇반도 금방 한 압력밥솥의 맛보다 못했다. 웬일일까, 이제 겨우 이틀 밤을 보냈을 뿐인데 내 손길에 빛이 나던 우리 집 주방이 눈에 선했다. 좁은 텐트 안이 갑갑하다 못해 숨이 막히는 듯했다. 아늑이 의심스러웠다. 침낭을 빠져나와 옷을 입고 텐트 지퍼를 내리는데 조금 열리다 얼었는지 잘 열리지 않았다. 그를 깨웠다. “오빠, 지퍼가 안 열리네?” “어디 가려고?” 그가 눈도 뜨지 않고 꾸물거렸다. 그런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화장실.” “큰 거야, 작은 거야?” 어이가 없어 짜증이 다 일었다. 그게 물어볼 일인가? 큰 거면 어떻고 작은 거면 어쩔 것인가. 그에게 어이가 없다는 걸 느끼는 내가 또한 어이가 없었다.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지퍼를 올렸다가 힘을 주어 세게 내렸다. 그대로 열렸다. 바람이 그리 불지 않고 해가 떴어도 산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온몸이 찌뿌드드했다. 텐트와 떨어져 눈 위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오줌을 누웠다. 노란 오줌이 눈을 녹여 구멍을 냈다. 다 싸고 나니 오싹한 한기가 몰려와 진저리가 쳐졌다. 오줌발의 흔적이 보기 싫어 발로 눈을 쓸어 덮었다. 그런 내가 우습게 느껴져 실소가 터졌다. 이 무슨 청승이란 말인가?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게 고작 이런 것이었나? 문득 설악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백의 산에 불손한 짓을 저지른 것만 같은. 이건 뭔가 잘못 되었다! 환상이 아름다운 건 환상에 머물 때뿐인가.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서둘러 텐트 안으로 들어가 말했다. “오빠, 어서 일어나요. 이제 가요.” 이제 가요. 엉겁결에 그렇게 말을 하고 보니 꼭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아니 어디를?” 그가 그제야 몸을 일으키고는 침낭 속에 웅크렸다. 어제는 아무렇지도 않던 그의 부스스한 머리와 눈가에 낀 눈곱이 거슬렸다. 톡 쏘듯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어디는 어디에요, 서울로 가야지요.” “서울로?” “네.” 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상스럽게도 집이 몹시 그리웠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이 느닷없는 변덕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거란 말인가. 뭐가 그르고 옳은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이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왜?”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도 나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이내 감지하고는 아무 소리도 않고 빠르게 옷을 입고 짐을 챙겼다. 기대로 부풀었던 텐트가 한순간에 쓰러졌다. 환상으로만 보이던 동화의 나라가, 모든 풍경들이 유치하고 어설프게만 느껴졌다. 얼굴도, 손도, 발도 다 시렸다. 나는 더 이상 천년백설이 아니었다. 나는 무책임했다. 또 다른 나에게도, 그에게도, 남편이나 아이들에게도,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도, 내 존재의 세계에도. 그토록 존귀하게 여겨지던 내 사랑마저 너무나 시시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는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별 얘기를 않다가 이따금씩 물었다. 내게 실망했니? 내가 네게 부담을 준 거니? 이렇게 헤어지면 우리가 만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지는 않니? 나는 대답을 못했다. 확실한 것은 지난 사흘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기분이었다. 그것과 함께 답답하게 얹혀 있던 묵은 체증이 싹 가시고 보는 내내 부담스러웠던 무대의 막이 비로소 끝났다는, 이제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눈에 익숙한 아파트 풍경이 보였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워 차에서 내리기 전에 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떠날 때 했던 말을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요, 오빠. 우리는 그냥 우리가 만났던 시간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무조건 빨리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쳐다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서늘한 기분이 들며 남편의 차가 그 많은 차들 중에서 쳐다봐 주기를 바라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사로잡았다. 그 시간에, 해도 넘어가지 않은 그 시간에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검은 제네시스. 같은 차종일지라도 나는 남편 차만큼은 귀신같이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너무 이상하여 번호를 확인했다. 틀림없었다. 더군다나 시동이 걸린 채로 조수석에 여자가 있었다. 나보다 한창 젊은. 가슴이 철렁이더니 피가 머리끝으로 몰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가려던 방향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차에서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가까스로 화단 귀퉁이에 몸을 숨기고 동태를 살폈다. 가슴은 아직도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경비실을 지나쳐 나오는 단정한 양복이 아닌 캐주얼 차림의 남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이 환하게 느껴질 만큼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에게서만 나는 향기가 순간적으로 확 느껴졌다. 그의 손에는 출장 때나 들고 다니는 가방이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출장을 위해 항상 내가 미리 챙겨놓곤 하는 가방이었다. 남편이 차에 다가가자 뒤 트렁크가 기다렸다는 듯이 열리고 가벼운 동작으로 가방이 감춰지더니 차는 이내 날렵하게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버렸다. 내가 무엇을 본 건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에게 어디 가느냐고, 그 여자가 누구냐고 물어볼 수 없는 내가, 배신이라는 말도 쓸 수 없는 내가 고소했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갈 곳이 없었다. 내 집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런 나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바람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걷잡을 수 없이 몸이 떨려왔다. 아, 이런 날이 있었다. 분명히 이런 감정에 휩싸여 나를 될 대로 되라며 내팽개쳐버린 적이 있었다. 그게 결혼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안심이 되는가. 빌어먹을 경험조차 약이 된다는 말인가. 마른 콩깍지에 물기가 스며드는 것만 같은 기분은 왜 드는가. 물고 물리는, 그래서 빚 질 게 없다는 얄팍한 심사로,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으랴, 하는 자포자기로? 넓게 생각하자. 무슨 짓을 했든 누구나 돌아가잖은가.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고. 그래, 일단은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나는 일어섰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가 엄청나게 느껴졌다.     -- 끝 --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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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02
  • 한계령을 위한 연가 - 10회
    우리의 기대는 낭만적이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먼저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뜨거운 한계령약차를 마시고 통감자와 왕호떡과 와플과 반건오징어 등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샀다. 갇힘에 대한 대비였다. 사전에 말이 없었어도 우리의 마음이 일치했다는 걸 그의 준비를 보고 알았다. 그는 차 트렁크에서 커다란 가방 세 개를 꺼내 가장 작은 가방을 내게 메게 하고 두 개를 자신이 하나는 메고 하나는 들었다. 자동차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눈에는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었다. 우리는 한계령의 한계에 기꺼이 묶이는 편을 택하고 설악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랐다. 계단은 108개란다. 그 시간에 내려오는 이는 있어도 올라가는 이는 없었다. 설악루. 감회가 새로웠다. 누각의 현판을 김재규가 썼단다. 오늘날의 한계령이라는 지명이나 군사작전식의 도로개통도 그와 무관하진 않았으리. 그는 독재와 산업화라는 극단의 평가를 받는 박정희를 죽였고 박정희의 딸은 선거에서 이겨 얼마 안 있으면 새로운 지존에 오른다. 박정희의 유령이 당선을 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이제 독재는 너그러이 유예되고 서서히 망각의 늪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내가 만약 내 인생에서 새로운 문제를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와 오빠의 어이없는 독재는 끝내 성공작으로 포장되리라. 서북능선으로 눈 속에 푹푹 빠지며 향했다. 매서운 바람에 사람이나 짐승의 발자국도 다 사라졌으리. 설악은 언제나 이름에 걸맞게 눈과 어울리어 그리움과 설렘의 상징과 같은 곳. 어둠이 깃들기 시작할 무렵 저 멀리 대승령과 귀때기청봉과 가리산과 주걱봉이 아슴푸레 드러났다. 우리만, 오직 우리만 아무도 오지 않는 그 자리에 벅찬 기분으로 갇혔다. 오오, 눈부신 고립! 행복한 고립! 눈물 나는 고립! 며칠 전에 엄청나게 내린 첫눈도 거의 녹지 않았는데 오늘 다시 눈이 쌓여,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은 자유로웠지만 우리의 운명이 묶였다. 우린 이십육 년 동안 미완성인 채 이 ‘묶임’을 위하여 먼 길을 돌아왔다.     그가 고립의 장소를 발견했다. 삭풍을 막아주는 가파른 절벽이 북쪽에 서있고 잡목도 별로 없는 계곡의, 눈처럼 하얀 살을 내보이는 사스래나무 아래, 옴팡지면서도 평평한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그는 폴짝폴짝 뛰며 눈을 밟아 서둘러 텐트를 쳐서 어둠의 공포로부터, 살을 에는 두려운 바람으로부터 나를 안심시켰다. 텐트와 비닐과 단열재와 침낭과 오리털 이불과 부탄가스난로와 랜턴은 바깥과는 딴판으로 나를 아늑한 세계로 몰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늑’, 아늑을 발음해보라. 그 얼마나 따뜻하고 평안을 느끼게 하는 말인가. 거기에 그토록 그리던 그가 있었다. 내가 무얼 더 바랄 것인가. 오오, 행복이 넘치는 고립! 나의 바람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이루어졌다. “축하주를 해야겠지?” 그의 세심함이 그 상황에 더욱 빛났다. 종이팩에 담긴 그가 좋아하던 소주와 내가 좋아하는 캔맥주가 나왔다. 나는 휴게소에서 산 반건오징어를 꺼냈다. “무엇을 축하할까요?” “무엇이라니? 우리의 재회를 축하해야지.” 아니다. 우리에게 재회라니? 헤어짐을 전제하는 재회는 내가 바라는 상황에 당치 않았다. “우린 다시 만난 게 아니에요. 못 잊을 사람을 그리워하다 또 만난 거예요.” “그렇지. 우린 묶였어. 철저하게 고립됐고.” “이제야말로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우리만의 세상이 됐어요.” 내 말에 그가 이를 하얗게 드러내며 웃었다. 그 웃음이 아주 보기 좋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움츠리게 하던, 나무를 떨게 하고 백두대간을 할퀴며 무섭게 넘나들던 바람소리가 우리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굉장한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여기에 범상치 않은 곡, 그가 그 순간을 위하여 고르고 골랐을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제14번, <월광>이 더해졌다. 사랑하는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줄리에타가 아버지의 강압으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분노한 베토벤이 격정을 이기지 못해 작곡했다는. 형용할 길 없는 불안과 그리움과 사랑이 호수에 쏟아지는 달빛처럼, 그리하여 일렁이는 물결처럼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영국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 배우 게리 올드만이 피아노 위에 얼굴을 대고 격정을 숨겨가며 연주하던 바로 그 곡이 우리를 위하여 그 고립의 장소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난 시간은 우리 사랑의 과정에 불과했어. 이게 바로 결정적인 순간이야. 여한을 남기지 말자, 우리.”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포만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직 여백만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여백은 사랑이라는 다른 이름, 욕망으로 채워질 것이었다. 우리는 자석처럼 붙어버렸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도록, 서로를 느끼는데 실오라기 하나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서두르지 않고, 알몸이 되어 침낭으로 들어가 여한이 없는 사랑을 오래도록 나눴다. 짝들의 신성하면서도 당연한 제의(祭儀)인 아이를 만드는 일, 그래서 아이가 생기면 그 알량한 자존심도 꺾일 것이라 믿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이었다. 그건 바로 내가 목적한 당연한 환향(還鄕)이고 귀가(歸家)였다. 우린 서로에게 그리운 고향이고 따스한 집이었다. 우리가 바로 불멸의 연인이었다. 우린 다시 헤어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언제 만날까, 주말과 휴일을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내가 부르면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거기에 그는 있었다. 그는 바로 누구 것도 아닌 내 것이었다. 나는 절정의 나락에 떨어진 후 울었다. 다시는 들을 수 없으리라 믿었던 내 영혼의 울림에 감격하여 울고 그의 품속에서 다시 잠들 수 있음에 감사하며 울었다. 마야달력으로 지구가 끝날 거라는 날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아우성이었고,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주기의 시작이라며 자신만의 사과나무를 심었다. 나는 두 가지를 다 믿었다. 왜곡되어진 인생의 종말이자 진실된 사랑의 시작이라고. 우리는 다음날도 텐트를 떠나지 않았다. 먹을 건 충분했다. 우리가 서로의 곁을 떠나는 건 생리적인 배설을 할 때뿐이었다. 우리는 지난 시간의 공백을 보상받으려는 심사였는지 수시로 서로를 애무하고 몸을 합쳐 하나가 되었다. 절대로 질리지 않으리라 믿으며. 바람은 쉬지도 않고 불어대면서 계곡과 비탈의 눈을 텐트가 있는 곳으로 몰고 와 지퍼를 열고 나가보면 무릎까지 빠졌다. 우리에겐 시간의 개념도 없었다. 입산을 통제하는지 사람의 낌새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작은 공간에 눈물 같은 거, 갈등 같은 거, 망설임이나 우려 같은 것은 까맣게 잊힌 추상에 불과했다. 오후 늦게 아주 멀리서 사이렌이 길게 울리고 확성기 소리가 뒤따랐다. “지금 혹시라도 산속에 계신 분들은 한파주의보가 발령되었으니 속히 하산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아무리 춥다한들 우리는 따뜻하고 여유로웠다. 우리의 축복을 스스로 깨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앞날에 대한 계획은 치밀하고 현실성 있게 논의되었다. 나는 더 이상 남편을 기만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건 바로 이혼이었다. 아이들이 클 만큼 컸다는 건 커다란 위안이었다. 상처는 금방 치유될 것이다. 무책임? 나는 나에게 무책임했을 뿐이었다. 난 그렇게 믿었다.  
    • 예술/창작
    • 웹소설
    2019-01-12
  • 한계령을 위한 연가 - 9회
    12월 19일 이 나라 대통령선거가 있던 날, 드디어 상현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낯선 번호였다. “정은이니?” 그 한마디에도 그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래 오빠. 나야, 정은이.” 금방 내 목이 메고. “보고 싶다. 많이, 아주 많이.” “나도야, 오빠. 많이, 아주 많이.” 사랑을 느끼는 데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어감만으로도, 숨결만 들어도 족했다. 일본 출장 중이란다. 이제야 메일을 보고 전화한다며 감격해했다. 바로 돌아올 거란다. 내가 너무 긴장하고 있었던가. 전화를 끊자 일시에 피로감이 밀려왔다. 나는 이번에도 보수의 편을 들지 않았다. 출신지에 대한 심정적인 끌림이 아니었다. 내 생애 최초로 선거에서 의지를 드러냈다고 봐야 했다. 출구조사는 보수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고 개표 결과는 단 한 번도 진보가 앞서는 걸 허락하지 않다가 끝내 보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세상인심은 기득의 보호막을 슬그머니 감춘 채 허울 좋은 애국이라 포장하여 변화가 위험을 동반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진보에게 패배를 안겼다. 한 시민의 말이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망각의 유령에 싸여 헤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친일을 망각했고 독재를 망각했다. 우리의 현대사는 망각의 역사라는. 나는 내 사랑을 망각하지 않았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리라. 설령 진실을 안다 한들 세상의 눈은 이런 나를 위험하다고 하겠지. 꿈에서 깨라고, 어리석다고,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사랑타령이고 십대의 유치한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세상을 헛살았다고 매도하겠지. 그래 헛살았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맘껏 비웃을 테면 비웃으라지. 이제부터라도 나는 나를 위해 살 것이니. 텔레비전에서 하루 종일 보수의 승리를 떠들어대던 20일이 지루하게 지나가고 마야달력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21일, 드디어 우린 만났다. 어제까지 맑았던 날씨가 우리의 연가를 위함인지 오전부터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요, 오빠. 우리는 그냥 우리가 헤어졌던 시간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모든 인사를 생략한 채 아파트 입구까지 찾아온 그의 차속으로 빨려 들어가자마자 내가 한 말이다. 나는 완전무장을 했다. 털모자와 장갑과 두꺼운 파커, 지팡이까지. “그대로구나.” “오빠도 그대로야.” 우린 눈도 껌벅거리지 않고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옛날일 수 없는 모습을 애써 그대로라고, 달라진 게 없다고 이심전심으로 말했다. 싸라기눈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했다. “가자.” 그가 입을 달싹였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휴대전화의 전원도 껐다. 내 행동을 설명하기가 싫었고 어떤 간섭도 받고 싶지 않았다. 주방의 식탁엔 메모를 남겼다. 나를 되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는. 진부하나 사실이잖은가. 내일은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지만 두렵지도 않았다. 그는 두꺼운 파커는 뒷자리에 두고 체크무늬 남방에 카키색 조끼를 걸치고 골이 진 바지를 입은 채 운전했다. 무엇이 그리 힘들었을까, 얼굴은 팽팽했으나 머리가 반백을 넘어 올백에 가까웠다. 그것은 눈가의 잔주름과 함께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계속 흘렀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흰머리가 신기하게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 북한강을 따라 경춘가도를 지나는 내내 눈이 내렸다. 강은 눈을 온몸으로 받아 속으로 흔적도 없이 빨아들였다. 내가 그랬었다. 그의 사랑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온몸과 온정신으로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었었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강이고 또한 눈이었다. “같이 살아야겠어요.” 오랜 침묵을 깨고 내가 한 말이다. 침묵도 우리의 오랜 공백의 산물이었다. 예전엔 침묵이 어색하다는 걸 느낄 새가 없었다. 나는 지금 그에게 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던, 동거하자는 말을 하기 위해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십 수년을 거슬러 올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수에 반발하여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결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그러기 위해선 아이를 빨리 만들어야 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리. 격정을 참기 힘들었는지 그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나야 좋지만 괜찮겠어?”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오빠만 좋다면 나야 상관없어요.” “정은이가 곤란해지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다 감수할래요.” “이런 날이 오게 되리라는 걸 간절히 희망했지만 현실로 다가오다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조차. 내 인생은 결정적인 순간에 내 바람과는 다르게 꼭 틀어지기 일쑤였어. 영화에서 본 것이지만 그 격정이 지금의 내 심정과 너무 생생하게 닮았구나.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나의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온다고 믿어. 몇 번을 다시 산다 해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정은이를 사랑해. 깊이, 완벽하게, 그리고 영원히.” 아, 불륜의 전설이 된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로버트 킨케이드의 명대사를 그가 읊조리고 있었다. 첫눈에 빠져든 두 사람. 이미 중년에 이른 그들은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같이 나누지는 못했어도 앞으로 살아갈 시간만은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세상사의 잣대로 엄연한 불륜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그 무엇도 갈라놓을 수 없을 것같이 여겨지던 격정적인 그 사랑은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함께 떠나리라 철썩 같이 믿었기에, 프란체스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쏟아지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에 비를 흠뻑 맞은 채 기다리고 기다리다 끝내 돌아서야만 하는 로버트의 처절하고도 망연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죄책감이 없을 리는 없다. 아내의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 남편도 희생자일 수 있으니까. 나의 진실을 안다면 남편은 그 얼마나 억울할까. 속아 살아온 내게 그 얼마나 치가 떨릴까. 아이들이 받아들일 혼란도 부산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사기꾼이고 파렴치한이다. 이런 게 우주의 애매함일까. 빛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이 있기 마련인. 로버트의 사랑이 빛이라면 로버트의 아내(있었던가, 없었던가?)가 느껴야 할 절망은 어둠이다. 프란체스카의 사랑이 진실이라면 그녀의 남편이 갖고 있는 사랑은? 나도 나의 확실한 감정을 프란체스카의 대사로 실토하고 있었다. “숨 쉬는 간격이 길다고 느껴질 만큼 오빠가 보고 싶었어요.” 이러한 프란체스카에 비해 그녀의 남편이 느껴야할 배신감은?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보상 받을까? 정답이 없는 이 애매함. 이 지독한 이기심. 아, 생각지 말자. 나는 나만이 알 수 있는 도리질을 해댔다. 이윽고 아련했던 숨결이 느껴지고 그의 입술이 내 얼굴 전체를 누볐다. 감동이었다.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 나도 숱하게 입술도장을 찍고 또 찍었다. 지나가는 차의 경적이 짓궂게 울렸다. 그제야 우리는 떨어졌다. 눈은 필사적으로 앞 유리에 몰아쳤다. 윈도브러시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차량들의 속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춘천을 지나 추곡휴게소에서 우리는 바퀴에 체인을 감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보금자리는 어디로 하면 좋을까?” 내 어깨를 안고서 차로 돌아와 그가 한 말이다. 아까와는 달리 많은 여유가 느껴졌다. 우린 이십육 년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는 들어보지 못했던. 같이 살려면 당연히 그게 순서겠지. “오빠가 좋을 대로,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면 아무 데도 상관없어요.” “정말?” “그럼요.” 차가 다시 출발했다. 우리의 의지는 확고했다. “우리의 내일을 방해하는 에고의 세력들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꺾이지 말아요.” “나는 정은이가 아니고는 내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이 말을 기다렸다. 도덕과 윤리와 사람의 도리를 앞세운 표피만 그럴 듯한 엄숙주의자들이 우리 길을 막아설지라도 멈추지 않을 거라는. “내 안의 윤리와 패배주의에도 초심을 잃지 말아요.” “제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한계령은 우리의 신혼여행지예요.” 여기는 해발 900M입니다. 인제를 지나 44번 국도를 따라가자 오르막 끝에 드디어 팻말이 나타났다. 한계령. 도착했을 때는 다섯시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날이 어둑해지고 눈발은 가늘어졌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거세게 눈을 흩날리게 해 얼굴을 차갑게 때렸다. 눈은 제법 쌓였으나 그렇다고 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상황이어야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바드라재라 기록돼 있고 국도가 생기기 전에는 오색령이라 불리던 고개. 그 한계령휴게소 광장에서 우리는 문정희의 시가 주는 우리만의 간절함을 한동안 음미했다. 저녁어스름에 드러난 설악의 기암괴석들, 멋들어진 나무들, 눈이 만들어낸 장관, 거기에 딱 어울리게 자리 잡은 휴게소 건물은 신비하고도 황홀한 풍경이었다. 우린 어느새 이심전심으로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다음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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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26
  • 한계령을 위한 연가 - 8회
    가슴이 설레고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며칠 이내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는 없었다. 만약 가게 된다면 남편에겐 뭐라 할까. 결혼 이후 학교의 수학여행이나 친정과 시댁의 애경사와 같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의 외박은 없었다. 나는 누가 보기에도 표면적으로는 충실한 아내이고 아이들의 자상한 엄마였다. 남편의 외박은 잦았다. 며칠씩 걸리는 출장도 잦았다. 물론 회사 일 때문이었다. 그 모두가 회사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외박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직도 뭘 기다리나. 내가 뭘 두려워하나. 우리에게 한계령의 한계가 무엇인가. 눈이 오지 않으면 눈이 온다 생각하면 될 것을. 허울뿐인 명분이 굳이 필요하단 말인가. 스물여섯 해, 구천사백구십 일, 이십이만 칠천칠백육십 시간을 새장에 갇혀 살았는데 아직도 먹이가 오기만 기다리나. 문은 열려 있거늘. 나가서 먹이를 찾으면 될 게 아닌가. 경숙에게 전화를 했다. “상현 오빠 전화가 몇 번이니?” “갈쳐 준다고 헐 때는 내비두람서 갑자기 왜?” “빨리 가르쳐 주기나 해.” “별일이네, 가시내.” “그런데 너 상현 오빠 부인이 죽은 거 아니?” “뭐라고? 상현이 오빠 부인이 죽다니?” “너도 모르고 있었어?” “오매, 어째쓰까. 전화 한 번 해봐야겠네. 그 오빠 카페에도 안 들어오잖아. 시골에 산만 샀다 뿐이지 발 끊은 지도 아주 옛날이고. 사실 오빠가 그러니까 나도 전화하기도 조심스럽당게. 너는 그 소식 어떻게 들었간디?” “그럼 그 오빠가 글을 쓰는 줄도 모르겠구나?” “네가 어떻게 나보다 상현 오빠에 대해 훤히 아냐?” “우연히 그 오빠 책을 보게 됐어.” 전화번호를 알게 된 순간 기쁘다기보다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억울했다. 타의에 의해 왜곡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뭘 망설이겠는가. 경숙과 통화를 끝낸 후, 머뭇거리지 않고, 서성대지도 않고 전화했다.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콩콩거리며 뛰던 가슴이 슬그머니 까무러졌다. 무슨 일일까. 초조해졌다. 남편이 들어왔어도 그가 보지 않는 데서 나는 수시로 전화기를 만지작거렸으며 컴퓨터를 내내 켜둔 채 틈만 나면 메일을 살폈다. 침대에 누웠어도, 남편이 오랜만에 배 위에 올라와 용을 쓰는 동안에도, 내 생각은 온통 그에게만 가있었다. 이윽고 욕심을 채운 남편이 잠에 빠져들었을 때 나는 슬그머니 침대를 빠져나와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보낸 메일도 그는 아직 열어보지 않은 상태였다. 전화기는 여전히 꺼져있고. 소리샘에 안달이 난 내 목소리를 남겼다. “오빠, 나 정은이. 왜 전화기가 꺼져있어? 나 오빠의 진실을 오늘에야 알게 됐어. 책을 봤어. 버마재비의 사랑. 나 한계령에 오빠와 함께 갇히고 싶어.” 나의 이런 행위와 생각들이 다른 사람이 보기엔 불륜이라 하겠지. 나는 나에게 위선적이고 싶지 않았다. 그게 중요했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여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박빙이 되어갔다. 남편은 대상은 다르지만 나만큼 초조해 하고 있었다. 벌써 남편이 참여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살리기’는 죽어가는 것을 살린다거나 살아있는 것을 더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건설사들의 담합과 보의 부실공사가 드러나고, 녹조가 심화되고, 걸핏하면 침수가 일어나는 판이고, 철새는 찾아오지 않고, 물고기는 죽어가고, 멀쩡했던 습지에 인공의 구조물들이 들어서 매끄럽게만 보이니 강에 깃든 생명들에게 혼란은 빤한 일. 국민의 혈세 22조원이 들어간 대역사가 결과적으로는 강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기’가 되고 말았다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국민들이 동조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자연은 인간이 간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그 대안으로 밀어붙인 게 4대강 살리기였다. 건설업체에서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생존방식으로 경영주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성공가도를 달려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에 오르고 모든 샐러리맨들의 신화가 되더니, 그 여세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마침내 서울시장과 일국의 지존의 자리를 거머쥔 이.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부릴까마는 여론은 그의 사심마저 의심하기에 이르렀으니. 야당이 집권한다면 4대강 살리기는 도마 위에 오를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초조해진 남편은, 아니 남편의 회사는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만약을 위해 반대편에 미래의 생존을 담보하는 보험 들기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했으리라. 이런 행태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재벌들의 생존 방식이었음에랴. “나 감쪽같이 사라질지도 몰라.” “이 가시나가 미쳤구나!” 경숙인 내 말에 실소를 터뜨리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도 짓지 않고 실없는 소리 마라는 듯 내뱉었다. 상현 오빠의 전화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 못해 경숙이라도 만나 초조감을 달래려한 자리였다. 책을 읽었다면 그 못 잊을 여인이 나라는 걸 알 수도 있으련만 경숙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긴 읽지 않았으니 잠잠하지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전화로 난리를 쳤으리라. 경숙인 원래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젠 행복에 겨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왜 금방이라도 옆에 없으면 죽고 못 살 연하라도 생겼간? 요즘 신간 편한 여편네들 연하 하나씩 키우는 게 대세라등만 너까지 그런 거시여?” “왜 안 믿기니?” “세상 여자들이 다 그런다 하더라도 너는 그런 짓 못 혀.” 이렇다. 나를 보는 세상의 눈은 여지없이 현모양처다. 윤리에 반하는 나를 상상하기 힘들다는. 나는 세상을 감쪽같이 속인 셈이다. 상현 오빠에 대한 아직도 변함없는 내 사랑과 앞으로 어떻게 하리라는 심사를 털어놓으려던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아직 이르지. 철썩 같이 믿었던 결혼이 헝클어졌던 것처럼. 내 보험은 의뭉한 침묵이었다. 내 소갈머리에도 화사 몇 마리는 똬리를 틀고 있는가보다. “참, 상현 오빠에겐 전화해봤어?” 경숙이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내게 물었다. 그것까지 감출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그래, 그런데 전활 받지 않더라. 아니 전화기가 계속 꺼져 있던데?” “그렇지? 나도 해보니까 꺼져 있더라. 집전화도 받지 않고. 워낙 고향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이라 알 만한 사람도 없고.” 그가 고향이나 고향사람들과 담을 쌓고 산 건 설움 받은 기억도 있겠지만 더 큰 원인은 나와 무관치 않으리라. 그보다 더 한 상처가 어디 있었으랴. “암이었다더라, 부인이.” 난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암? 부인의 성격이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요즘엔 암도 초기에만 발견하면 병도 아니라는디, 자세한 내막을 알아야 중매라도 서지.” 경숙의 중매라는 말에 어이가 다 없었다. 일편단심인 내가 있는데 중매라니? “넌 자세한 거 알지도 못하면서 벌써 짝 지워 줄 생각부터 하니?” 아차,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짜증이 묻어나왔다. “옴마야, 네가 왜 성질을 부려? 네가 갈 것도 아니면서. 참 별 꼴이네 얘.” “얘는 내가 무슨 성질을 부렸다고.” 나는 금방 오그라들었다. “한 번으로 족하다. 너 그 오빠 아프게 한 거.” 경숙으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면서 내 몸이 아득한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알고 있었다. 경숙인 우리의 사랑과 파국을. 아니, 요즘의 내 심사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의 파국이 나라고? 내가 원인이라고? 내가 아프게 했단다. 아니야, 경숙아. 그게 아니야. 내가 아팠어.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뎌냈는데? 나는 변명하지 못했다. 그 잘난 보수를, 보수의 딸임을. 나는 한없이 무력했다. 그 무력감에 화가 솟구쳐도 아무 말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오빠한테 전화하지 마. 그 오빠 언니가 살아있다면 몰라도 죽었다면서…… 그런께로 더욱이 전화하지 마라는거시여.” 나는 경숙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나는 내가 피해자였다. 그렇게 믿고 나를 가엾어 하며 살았다. 그런데 가해자가 되어 있다니. 나의 진실은 어떤 것인가. 영혼을 빨려버렸다 생각해온 내 진공의 세월은? 나도 혼란스러웠다. 상현 오빠에게 전화하는 나는 파렴치한 여자가 분명했다. 오빠의 처지를 이용해 화냥기를 채우려는, 다시 한 번 농락이 될 게 빤한 파렴치한 나. 오기가 생겼다. 그래? 그렇다면 파렴치한 년이 되리라. 경숙과는 서먹해진 상태에서 헤어졌다.   -다음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예술/창작
    • 웹소설
    2018-12-13
  • 한계령을 위한 연가 - 7회
      그로부터 이십육 년이 흘러 그가 내게 다가왔다. 버마재비의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저자의 말을 마저 읽었다. ‘내게 못 잊을 사람 하나 있다. 죽어도 잊지 못할 여인이. 나는 그녀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겼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주지 않으면 안 될 상처였다. 그녀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는 버마재비의 사랑을 왜곡했다. 버마재비는 온몸을 바쳐 사랑을 완성한다. 나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통은 고통대로 안기고 쓸데없이 죽었다. 그러고도 버마재비의 사랑이라 우겨댔으니.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 여인이 다른 이의 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사랑에 무슨 변명이 필요할까. 사랑은 양보가 아니었다. 나는 이제야 나를 위로할 필요를 느꼈다.’ 나는 행복한 게 아니야. 아름다운 옷을 입혀 놓은 마네킹에 불과하고 새장에 갇힌 새일 뿐이었어. 재빠르게 인터넷으로 버마재비를 검색했다. 버마재비의 본질을 알아야 했다. 수컷사마귀는 암컷과 교미 후 서슴없이 자신의 육신을 암컷과 후손의 번식을 위하여 상대에게 잡아먹힌단다. 그런데? 목차로 넘어갔다. 더 정확한 진실을 알 필요가 있었다. 본문의 버마재비의 사랑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음울한 음모가 적나라했다. 내가 동거하자는 말을 하려 했던 만남 이전에 우리 오빠가 그를 만났고 거기에 협박과 호소와 거짓말까지 등장했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미 내가 선을 봤다는 지금의 남편도 등장한다. 내가 그를 맘에 들어 한다는. 우리 오빠는 남편과 그를 비교하며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포기하라고 했단다. 누가 과연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그의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인 눈으로 판단하라고 강요했단다. 또 보고도 보지 않은 척,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마을사람들의 눈을 생각하라고 하더란다. 이제까지 우리 집안에서 입에조차 올리기 싫어했던, 당숙과의 관계에서 그의 엄마가 우리의 숙모뻘이 되잖으냐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그가 가장 치욕스럽게 여길 치부까지 들먹이며. 다 이해할 수 있었단다. 어떤 모욕도 달게 받을 수 있었단다. 남편과 자신이 비교되는 게 제일 가슴 아팠단다. 우리 오빠가 내세운 남자의 이력은 그가 애당초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태생적인 한계, 그의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이미 피투성(被投性)이로 결정지어진 이력들. 그가 어떻게 집안을 골라 태어날 수 있겠는가. 그가 어떻게 부모를 결정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그게 나를 체념하고 연극을 하게 한 결정타였다. 그는 내가 가족과 척을 지는 걸 원치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의 발목을 잡아버리는 사슬의 DNA. 육사의 좌절이 그랬고 그 좌절마저 충분히 위로 받은 나와의 사랑이라 여겼었는데 그것마저 태생적인 한계로 위기에 처했다. 그는 인간의 노력을 의심한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넘을 수 없는 피의 한계. 불행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연민이 교차했다. 어린 시절부터 숙명처럼 따라다닌 자격지심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손가락질과 눈총과 이웃의 위선에 지쳤다. 그래, 져 주리라. 마침내 그는 연극을 결심하고 같이 근무하는 여인에게 부탁하여 내 앞에서 실연했다. 그리고 그날 밤 약을 먹었다. 흔해 빠진 드라마가 내가 모르는 사이 벌어졌었던 것이다. 그는 바보였다. 죽으려고 했던 바보가 아니라 나를 그렇게 쉽사리 포기했다는 게 바보스러웠다. 어째서 죽을 용기로 나를 뺏기지 않기 위해 버텨낼 용기는 없었을까. 그는 내가 그가 없어도 정말로 행복할 거라 믿었을까. 내 사랑이 그토록 가볍다고 여겨버린 그가 바보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를 구한 건 그때의 그 아가씨. 내가 떠난 후 절망하여 엉망진창으로 취한 그에게서 위태로운 자포자기를 보았단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고 불길한 예감에 집으로 달려가 보니 약을 먹어 사경을 헤매고 있더라고. 위 청소를 하고 가까스로 살아난 그는 그때까지 살아온 김상현은 그때 죽었다고 서술했다. 결과적으로는 쇼가 되고 말았지만 그런 쇼라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을 설득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후의 김상현은 새로 태어났단다. 따라서 그에게 나는 없었다. 그 후의 그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그 아가씨의 것이 되었다. 그녀와 결혼했던 것이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거기에 진정성을 따져 뭣하리. 나는 다른 여자를 잊지 못해 죽으려고 했던 사내를 사랑한 여자의 용기가 가상하게 느껴졌다. 그는 나로 인해 단 한 번도 아내를 속상하게 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했던 죽음 이전마저 그녀에겐 아픔일 것이기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리움 따위도 전혀 내색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고 적었다. 믿음이 가는 대목이었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암으로 죽었다. 내게 연극을 해보일 수밖에 없었던 때 이상으로 가슴에 커다란 공동이 생겼노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죽어가면서 그를 사랑할 수 있어 행복했노라고 말했단다. 진부한 신파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다음 생에 만나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되자고 말해주었다고. 나를 의식한 표현이었다. 그는 짝 잃은 기러기가 되었다. 누가 알아줄지 모를 그 내밀한 얘기를 이제 와서 고백했다. 그녀가 살아있다면 이러한 고백마저 하지 못했을 거란다. 도대체 무얼 바라고? 나는 아리면서도 은근하게 기쁨이 용솟음쳤다. 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니! 내 윤리가 불순한 것인가. 그는 배신하지 않았다. 바보스러웠을 뿐. 버마재비의 사랑을 잘못 해석했을 뿐. 그게 중요했다. 그가 바란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오직 나 하나만을 바라고, 내가 읽어주길 바라고 책을 냈던 게 아니었을까. 죽어도 잊지 못할 여인. 전율이 일었다. 소름이 끼칠 만큼 기분 좋은 전율. 극치의 오르가즘과도 같은. 그는 다시 나의 우상이 되었다. 초판 발행일이 삼 개월 전이었다. 나는 그에게 결국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이라는 불행을 선물한 치명적인 여인, 팜므파탈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한 사람을 죽음의 지경까지 몰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우리 오빠는 그를 자격지심의 늪으로 몰아넣었던, 이미 만나 내가 맘에 들어 했다는 남자, 현재의 남편을 그 후 내게 소개했다. 객관적인 눈으로 남편은 그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다. 나는 그때 마네킹에 불과했다. 옷을 입혀주면 입고 벗기면 알몸뚱이가 되어야 하는. 내 영혼은 언제 잠이 깰지 모르는 휴면기에 들어간 상태였다. 의식의 실종상태에서 남편이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내 의지가 있을 수 없었다. 상현 오빠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에 대한 소식이나 이야기라면 철저하게 귀를 닫았다. 그게 바로 그의 배신에 대한 나의 복수라면 복수였다. 그리고 결혼했다. 그것도 복수의 일환이었음을 어찌 숨기랴. 남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사랑의 감정도 없이 결혼했으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나는 나를 방치했다. 내 사랑이 간절했던 만큼 원망도 간절했다. 남편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결혼 초기에 남편과 섹스 할 때는 그라고 착각할 때가 많았고 절정의 순간에 내가 매달리면서 외쳐 부른 오빠라는 비명은 남편이 아닌 그였다. 내 사랑과 미움은 그렇게 불가항력이었다. 아버지와 오빠는 남편과 아이들 낳고 별 탈 없이 사는 나를 보며 그와 헤어지게 만든 음모를 두고 다행이라고, 아주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의 물기 없는 마른 콩깍지 같은 내면은 들여다 볼 생각도 안 하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서 말이다. 무엇을 바라고 그런 짓을 했을까. 아직 거친 세상의 맛을 보지 못한 내 판단의 미성숙을 고려해서? 아닐 것이다. 오로지 우리를 알고 있는 눈들이 두렵고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럴 듯한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아, 인간의 어처구니없는 에고여. 만약 내게 지금도 남편과 그를 선택하라 한다면 설령 내가 그와 불행하게 될지라도 서슴없이 그를 선택할 것이며 그 선택을 추호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그에게 나는 전부였지만 남편에게 나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 그도 불행했고 나도 불행했다. 나는 분노했다. 남편도 불행한 남자다. 이 모두를 불행으로 몰고 온 위선투성이의 보수, 저주를 받을지어다. 나는 메일을 열었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다시 읽기 위해서. 그로부터 장난삼아 보낸 메일에 대한 답장이 와있었다. '그래 가자. 우리 가서 한계령의 한계에 부딪쳐 보자. 일기예보를 보고 전화할게.’ 난 내가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버마재비가 그라는 걸 알았다면 난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함을 열어봤으리라. 그 얼마나 다행인가. 설령 장난이었을지라도 내 심중의 일단이었으니. 참된 내 영혼이 긴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버마재비는 분명히 그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어볼 법도 하건만 이 말뿐이었다. 그동안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었으니 알고 싶지도 않았으리. 그런데 ‘일기예보를 보고’라니? 그는 아직도 보수를 두려워하는가. 우리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갇히게 되길 바라고 있으니. 답장을 보냈다. 내 마음이 고스란히 표현된 문정희의 <겨울 사랑>으로.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하얀 네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 년 백설이 되고 싶다  -다음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예술/창작
    • 웹소설
    2018-11-21
  • 한계령을 위한 연가 - 6회
    소문은 무성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주로 이사를 간 상현 오빠네에 대한 소문이었다. 그 소문은 유령처럼 실체가 없었지만 내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그 유령이 오빠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오빠네 엄마와 당숙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이슥한 밤에 당숙이 오빠네 집에서 나오는 걸 봤다는. 오빠가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당숙이 뒤를 봐주기 때문이라는. 떡집도 그래서 차릴 수 있었다는. 오빠네 아버지가 조상의 무덤가 소나무에 목을 매 죽은 것은 노름으로 전답을 다 없앤 일 때문에 조상 볼 면목이 없어 그러기도 하지만 실제 이유는 아내의 화냥질 때문이라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걸 알았을 때 오빠는 버마재비처럼 울더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나는 그때 버마재비가 허수아비인 줄만 알았다. ‘비’자 때문이었을 거다. 그래서 ‘버마재비처럼’이라고 사람들이 얘기했을 때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울고 있는 허수아비를 상상했다. 수확이 다 끝난 들판에 홀로 버려진 듯 서있는 허수아비. 그의 모습 앞에는 항상 ‘초라한’이라는 형용사가 떠올랐다. 그만큼 마을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형편없었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은 버마재비가 사마귀라는 걸 알고 그를 그렇게 불렀을까. 별명이라 함은 무시하고, 깔보고, 얕보고, 놀려먹기 좋은, 부르는 주둥아리가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짓는다. 내가 아는 한 사마귀는 울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버마재비처럼 울었다고 말했다. 그때의 버마재비는 허수아비보다 못한 상거지 쯤 되었을 것이다. 나에게 버마재비는 연민이었다. 나는 오빠네가 이사 갔을 때 어린 마음에도 형용할 수 없는 심정이 되어 뒤란의 쭉나무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 마침내 유령이 오빠를 잡아가버린 것이다. 학교에 들어가고부터 나와 경숙은 오빠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같은 학년인 친오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현오빠는 내가 기댈 언덕이고 버팀목이었다. 그는 오 리 정도 되는 등하교 길에 종종 연한 칡순과 찔레를 꺾어다 주었고 머루와 다래를 따다 주었으며 홍시와 밤을 숨겨 줄 때도 있었다. 특히 옴폭자리 사건 이후로는 더욱 더 나를 살갑게 챙겨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게 아쉬운 게 아니었다. 오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거, 그거였다. 비록 입성은 허술하지만 오빠의 얼굴은 항상 빛이 난다고 생각했다. 엉골 모퉁이에 풀을 뜯기기 위해 당숙네 소를 끌고 나타날 때나, 작은 지게를 짊어지고 비탈길을 오를 때나, 못줄을 잡고 모내기를 도울 때나, 책보를 매고 당산나무 앞을 씩씩하게 지날 때도 오빠의 얼굴은 빛났다. 전체급장으로서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를 할 때 구령하는 오빠의 목소리도 빛이 났다. 그 모든 걸 볼 수가 없다는 게 마냥 서러워 나는 울었다. 그런 오빠를 볼 수 있었던 건 추석 때였다. 성묘를 온 것이다. 모자에 금빛 나는 모표를 달고 검은 교복 차림의 오빠는 너무 멋있었다. 나는 다가가지도 못한 채 정자나무가 있는 모정의 한 귀퉁이에서 수줍었다. 오빠가 내게 다가왔다. “정은이 많이 컸네? 공부 열심히 하지?”   나는 대답도 못하고 오빠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그때부터 빨리 크기만 바라고 중학교에 들어가기만 고대했다. 전주에 가서 그를 만날 수 있는 길은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늘도 무정하지. 면소재지에 덜컥 중학교가 생겨버린 것이다. 3년이 또 유보되었다. 그리고 그토록 고대하던 전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을 때 그는 정작 전주에 없었다. 서울로 은행원이 되어 떠나버린 것이다. 육군사관학교에 2차까지 합격을 했으나 끝내 입학하지 못한 차선의 선택이었다고. 연좌제, 그의 아버지 대에서 어느 형제가 육이오 때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그의 사관학교 합격 소식은 온 동네를 흔들었었다. 개천에서 용이 진짜로 났다는 거였다. 결국 3차인 신원조회에서 떨어지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피가 어데 가겠느냐고. 송충이는 솔잎이 제격이라고. 그가 사관학교에 가길 원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은행원이 된 이유는 고아 아닌 고아가 돼버렸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동안 엄마가 병을 얻어 떡집이 문을 닫아 생활이 어려워지고, 결국 그 엄마는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세상을 떠났는데 차에 싣고 온 상여를 동네사람들이 메고 산으로 갈 때, 상복도 입지 못한 교복 차림의 오빠는 상여 뒤를 버마재비처럼 꺼이꺼이 울며 따랐다. 그 모습을 나는 먼발치에서 아린 가슴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몸체에 비해 교복의 소매 깃은 짧았고 바짓단은 복숭아뼈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의 버마재비는 더 이상 허수아비가 연상되지 않았다. 슬픈, 내 연모의 대상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해갔다. 우리의 연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내가 전주의 사범대학에 들어가고 한참이 흐른 3학년 때부터였다. 그는 은행 근무를 계속했고 야간대학을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이나 그가 군대에 가있던 대학 일이학년 시절에는 이삼 일이 멀다하고 편지로 내 연모를 전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한없이 행복했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러운 연인이 되었다. 나는 그 외에 다른 남성을 단 한 번도 이성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대학 3학년 때 전주에 내려온 그와 첫 키스를 했고 그의 휴가와 내 여름방학 때 떠난 속리산에서 같이 밤을 보냈다. 내가 자는 줄 안 그는 내 가슴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놓았고 바지의 지퍼를 내리려다 깜짝 놀란 내가 “엄마야!”를 부르짖는 통에 그의 손길은 멈추었다. 나는 그의 품을 파고들었고 우린 그 자세를 유지한 채 키스로 욕심을 달래며 하얗게 밤을 새웠다. 그가 만약 욕심을 부려 나를 달라고 했더라면 나는 마지못한 듯 주었으리라. 대학 4학년 때 서울 돈암동 그의 자취방에서 그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굶주린 듯 젖을 빨 수 있었다. 조금 과감한 스킨십은 있었지만 더 이상은 나아가지 않았다. 그때도 그가 욕심을 부렸더라면 나는 서슴없이 나를 다 주었으리라. 나의 처녀가 그가 원하면 아무것도 아닐 만큼 그는 나의 전부였다. 우린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한 달이면 두세 번씩 꼭 만났다. 마침내 내가 졸업을 하고 희망하던 서울의 중학교에 발령을 받았던 날, 우린 중간쯤인 대전에서 만나 드디어 완벽한 한 쌍이 되었다. 나도 그를 가지고 그도 나를 가졌다. 서로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우린 꿈에 부풀었다. 결혼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우린 그 설계로 밤을 하얗게 밝혔다. 우리보다 행복한 연인은 없다 생각했다. 우리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내가 그로부터 그가 나에게서 떠난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시골에 와 아버지와 오빠가 있는 자리에서 그와의 결혼을 발표했을 때 나도 모르게 존재하고 있었던, 나와 그의 욕심을 자제케 하던 엄숙한 유교주의의 벽을 실감해야 했다. 아버지의 절대반대였다. 그가 상놈에 빨갱이 집안이라는 것이었고, 그의 어머니가 당숙의 씨앗받이 노릇을 했다는 거였고, 나는 어엿한 정규대학을 다녔지만 그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였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사자인 나는 그보다 한참 부족하여 처진다고 생각하는데 아버지는 자신의 희생을 부풀려 나에 대한 값을 한껏 올려놓고는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으려 했다. 아버지의 논리대로 내가 그와 어울리려면 대학을 다니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 집안도 그의 집안에 비해 별로 내세울 게 없는데, 더군다나 믿었던 오빠마저 내 기대를 묵살했다. 오빠는 그와 동창이었다. 그런데도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가 싫다는 거였으니. 오빠의 자격지심이 아주 못되게 작용한 셈이었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거라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의 집안과 현재의 그가 무슨 관계이며, 지금이 어떤 시댄데 쓰레기통에나 들어가야 할 연좌제와 남녀 불평등의 최악인 씨앗을 운운하고, 자기가 벌어 야간대학을 다니는 게 얼마나 장한 일이냐는 말도 통하지 않고, 오직 그 사람 됨됨이만 봐 달라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선언했다. 아무리 반대해도 그와 결혼하고 말 거라고. 그의 고귀한 영혼이 개도 먹지 않을 보수에 의해 모욕을 받고 있다 생각했다. 결연하게 마음을 다지고 다진 얼마 후 서울로 올라와 학교에 출근했다. 그리고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근무하는 은행이 있는 을지로에 나갔다. 눈발까지 날리며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나는 그에게 먼저 동거를 하자고 제의할 참이었다. 아이가 생기게 되면 집안의 반대도 수그러지고 어쩔 수 없이 동의할 거라 봤기 때문에. 처녀로서 그런 대담하고도 무모한 결심을 했던 것도 그만큼 그가 없는 내 인생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의 곁에 여자가 있었다. 나와 만나기로 해놓은 다방에 그와 결혼을 약속했다는 여자가 함께 있었다. 그녀는 예뻤다. 같은 은행에 근무한다는. 나는 처음에 장난인가 했다. 웃음까지 터져 나왔다. 그런 이면에는 먹구름이 요동치고 있었다. 장난이라 믿고 싶은데 절대로 장난이 아니라고, 그가 장난 칠 사람이냐고, 그게 장난 칠 일이냐고 그녀를 본 순간부터 불길한 예감이 나를 압박해왔다. “너를 감쪽같이 속여서 미안하다. 네가 믿지 않을 것 같아 같이 나왔어. 나를 잊고 부디 새 출발 하기 바래.” 청천벽력이었다. ‘감쪽같이’라는 말은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우리의 사랑이 감쪽같았기 때문이었다. 해를 향하는 해바라기처럼 일편단심 나는 그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그래, 감쪽같이 속았다. 언제부터 나를 속이기 시작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든 얼마 전부터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이렇게 나오는데 나와 그는 헤어져야 하는 것을. 결혼은 우리 사랑의 완성이지만 그의 배신은 내가 살아온 세월마저 부정하게 만들었다. 나는 무엇으로 살았는가. 어떻게 그를 빼놓고 내가 살아온 세월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갔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그걸 감지하지도 못할 만큼 얼이 빠져 있는데도 심하게 몸이 떨려왔다. 어떻게 그곳을 나오고 어떻게 차를 타 내 하숙으로 돌아왔는지 모른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나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 뒤로 알맹이마저 오그라질 대로 오그라진 마른 콩깍지처럼 살았다. 나를 건드리면 바삭바삭 부서질 것만 같은. 죽고 싶은 열망마저 일지 않는. 허깨비처럼 여기까지. -다음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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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05
  • 한계령을 위한 연가 -5회
    밤새 무섭게 바람이 불고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태풍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추석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을 때, 불어난 강물이 둑을 넘어 곡식이 익어가던 논밭을 휩쓸어 어른들의 억장이 무너졌을망정 삼학년이었던 우리는 학교에 가야만 했다. 경숙과 난 단짝이 되어 사람들이 옴폭자리라 불리는 곳에 이르러서야 세차게 흐르는 도랑물이 신작로를 가로막고 있다는 걸 알았다. 평소에는 신발도 넘지 않은 물이 겨우 흐를 정도였는데 깊이를 알 수 없는 누런 북정물로 변해 흐르고 있었다. 우린 건널 수도, 그렇다고 안 건널 수도 없어 잠시 머뭇거렸으나 앞서 간 아이들이 없는 걸로 봐 그리 깊지는 않으리라 보고 한손은 책보를 감싸 안고 또 한손은 치마를 움켜쥔 채 조심조심 물속으로 들어갔다. 별로 겁이 없는 경숙이 먼저고 내가 뒤였다. 가운데 깊은 곳이 경숙이의 무릎을 겨우 넘고 있었다. 그 정도면 겁먹을 일도 아니었다. 경숙이 얼추 다 건너가고 물이 내 무릎을 넘을 찰라 미끈거리던 고무신이 벗겨지고 말았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광택이 나는 새로운 소재의 빨간 고무신이었다. 엄마가 시장에서 사온 그 신발을 보던 날은 잠까지 설쳤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책보를 물 건너 경숙이 쪽으로 던지고 신발을 잡기 위해 엎드렸다. 물속에서 신발을 잃어버리는 일처럼 우리에게 큰일이 있었던가. “정은아!” 경숙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잡기는커녕 나는 도리 없이 엎어졌고 곧바로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다. 나는 나를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신작로를 가로지른 물은 폭포가 되어 냇가로 떨어지고 있었다. 일어서려다 엎어지고 안 떠내려가려다 뒤집어졌다. 그 사이 물은 입으로도, 코로도 들어왔다. 그 짧은 순간에 떠오른 생각이 작년에 물에 빠져 죽은 여정이라니!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수영하던 미루나무 강변에서 여정인 죽었다. 그 뒤로 우린 더 이상 그곳에서 물놀이를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정이가 물귀신에 홀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째서 그 어린 것이 혼자 수영을 하려 했겠느냐면서. 나는 물살에 속수무책이었다. 그 속수무책의 시간이 억겁인 양 느껴졌다.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내가 물 위로 들려지고 있었다. 상현 오빠! 바로 폭포 앞이었다. 물 가장자리로 끌려나온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엄청난 공포로 울었고 다음엔 마냥 서러워져 울었고 나중엔 창피하여 울었다. 경숙도 건넌 물이었다. 우리보다 어린 아이들도 건넜을 곳이었다. 원피스로 된 옷은 홀딱 젖은 데다 신발은 나머지 한 짝마저 온데간데없어졌다. “아니 신발이 없어졌잖아!” 오빠는 맨발의 나를 보고 허둥거리며 신작로 옆의 둑을 따라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 누런 황톳물 속 강물에서 신발을 찾을 순 없었다. 그전 고무신보다 훨씬 부드럽고 예뻤는데, 그런 순간이 다시 와도, 설령 더 위험한 지경에 빠진다 해도, 나는 신발을 찾으려 물속을 뒤졌을 것이었다. “경숙아, 너 먼저 학교 갈래?” 상현 오빠는 저쪽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경숙을 향해 말하곤 물을 건너 내 책보를 들고 왔다. 주뼛거리던 경숙이 돌아서서 학교로 향했을 때도 내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만 울어. 이만하기 천만다행이야. 어른들도 물살에 휩쓸리면 정신 못 차려.” 나는 훌쩍거리면서 원망스럽게 도랑물을 쳐다봤다. 비로소 폭포의 위세가 느껴졌다. 저기서 떨어졌다면 어찌 됐을까.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그 밑은 더 큰 강물이 무섭게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흐르고 있었다. “집으로 가자.” 오빠가 내 손목을 끌었다. 신발도 없고 옷도 다 젖은 채 학교에 갈 수는 없었다. 마지못해 일어나 동네 어귀에 이르렀을 때 오빠는 내 손을 놓고 책보를 건네며 말했다. “많이 놀랐을 거시여. 그렁게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쉬어. 내가 너희 선생님한테 얘기할텅게 아무 걱정 말고.” 오빠가 가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으나 어떻게 그런 심사를 내비치겠는가. 잠시 멈춰졌던 울음이 오빠가 멀어지자 다시 터졌다. 오빠는 지각할 게 뻔했다. 논 여기저기 벼가 한꺼번에 쓰러져 있고 안산 벼랑에선 작은 물줄기가 수도 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오빠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찌 됐을까. 냇물에 떠내려가다 빠져 죽었을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맥이 풀렸다. 나는 내처 잤다. 그리고 3일을 앓아누웠다. 그 앓아누운 동안 상현 오빠는 내 어린 가슴속에 운명처럼 더 깊숙이 자릴 잡아갔다. 우리 엄마와 아버지가 경숙을 통해 그날의 실상을 자세히 들었을 법도 하건만 상현오빠를 고마워했다는 기억은 없다. +  + -다음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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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0
  • 한계령을 위한 연가 -4회
    세상은 대통령 선거전으로 시끄러웠다. 새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뛰어들었던 젊은이들의 우상, 안철수 씨가 후보를 사퇴하고 민주통합당 후보인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면서부터 선거양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아직 여론조사에 나타난 흐름은 보수를 대표하는 새누리당의 후보, 박근혜 씨가 약간 우세였다. 외출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 텔레비전에서는 진보통합당 후보인 이정희 씨의 사퇴기자회견이 방송되고 있었다. 박근혜의 당선이 재앙이란다. 1차와 2차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보여준 박근혜 저격수라는 말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박근혜의 텃밭이라 여겨지는 지역이 고향인 남편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었다. 남편은 박정희의 신봉자이고 박근혜의 추종자다. 재벌에 속하는 건설회사의 이사인 남편에게 현 대통령인 이명박 씨는 우상이기도 하고. 군사정권 시절인 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남편은 열렬 데모꾼에서(들은 얘기로) 남보다는 안정적인 사회생활에 접어들고부터 현실을 수긍하고 차츰 보수화 되어갔다. 그는 그 뒤로 언제나 집권의 편에 섰다. 나는 태생적으로 모험적이지 못한 보수에 속하면서도, 남편의 말에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이긴 하지만, 단 한 번도 보수에 표를 던지지 않았다. 고향인 전라도를 배신할 수가 없었다. 보수든 진보든 따지지 않고 심정적으로 기우는 편을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남편과 나 사이는 별다른 마찰 없이 무난하게 가정을 꾸려왔다. 하긴 결혼 생활 동안 딱히 내 주장이라는 게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처음에 남편은 낙담했지만 곧 현실을 받아들이고 집권의 편이 되었다. 그의 처세술은 그만큼 능란했다. 그 처세의 연장선상에서 일요일도 없는 그는 오늘도 골프장에 나갔다. 우리 아이들은 어느 편인지 속내가 궁금했다. 외투를 걸치고 백을 든 채 거울에 전신을 비쳐봤다. 남들은 살 때문에 고민이라지만 난 이날 생전 그걸 두고 고민한 적이 없을 정도로 살이 찌지 않은 체질이다. 그렇다고 마른 편도 아니고. 평생 별 탈 없이 다소곳하게 살아온, 대한민국의 상류층이라면 다소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중산층의 꼭대기쯤의 위치에 있는 여성의 편안한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누가 쉰이라고 믿겠어요, 사모님. 마흔 중반도 안보겠는데요, 뭐.” 아파트 상가에 달린 미용실에서 파마를 할 때 미용사의 아첨 섞인 말이 분명하더라도 듣기에 싫지 않았다. 대형 평수의 아파트촌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녀들의 손님에 대한 호칭은 으레 사모님이었다. 하긴 젊은 여자들을 동네 미장원에서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머리를 매만지는 것조차 도심에서 해야만 직성이 풀릴 테니까. 거울 옆에 있는 가로와 세로가 일 미터가 족히 넘는 가족사진을 흘낏 보고 현관문을 열었다. 나와 네 살 차이인 남편의 오십이 되는 생일을 기념하여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나는 의자에 앉고 딸과 아들이 좌우로, 남편이 뒤에 서있다. 성악을 전공한 딸은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뮤지컬 배우로 일하며 오늘은 교회에서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아들은 2학년을 마치고 군에 가있다. 둘 다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공부도 저희들 스스로 알아서 잘 해준 아이들이다. 내게 문제라면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그 문제를 만들기 위하여 나가게 된 게 백화점문화센터 수필교실이고 그곳에서 사귀게 된 수연을 통해 3개월 전부터 그녀가 하는 카페 겸 작업실에서 기타를 배우게 되었다. 교직을 그만 두면서부터 잡은 게 책이다. 소설이고 수필이고 시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자 언젠가부터 나도 무엇인가를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문화센터에 나가게 됐다. 수요일은 수필이고 일요일은 기타다. 오늘은 일요일인 것이다. 수연인 화가다. 그림을 그리는 일 말고도 첫사랑이었다는 카이스트를 나온 박사인 남편을 두고 여행 작가로서 글을 쓰고 심리상담사, 그림치료사 등 자격증만도 여러 개일 정도로 삶에 억척이다. 카페야 돈을 번다기보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의 사교 공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늑하게 꾸며져 있다. 칸막이를 대신하는 화분과 책꽂이엔 가지각색의 꽃이, 다양한 분야의 책이 향기와 열정을 뿜어낸다. 그러한 꽃과 책은 수연이 대부분 마련한 것이지만 드나드는 사람들이 갖다놓은 경우도 상당했다. 벽엔 수연과 걸리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그린 누드가 다양한 매력으로 절묘했다. 나는 그런 수연이 부러웠다. 나도 그녀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생활을 찾고 싶었다. 이제 내가 간섭하지 않아도, 아니 설령 지금 당장 사라진다 해도 우리 집은 물 흐르듯 잘 흘러갈 것이다. 교직을 그만 둔 후 내 생활은 주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교직을 그만 둔 게 후회될 때도 있었다. 남편이 부장으로 승진했을 때 기회다 싶어 그만 두었지만 진짜 이유는 학부형과의 마찰로 인하여 생긴 징계가 분명한 시골로의 전출이었다. 도로가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첫눈치곤 엄청나게 많은 데다 바로 강추위가 몰아쳐 빙판인 곳이 많아 택시를 탔다. 내 차는 남편이 이 년 전에 차를 바꾸면서 물려준 소나타. 전철역 부근 카페에 도착하니 멤버들이 벌써 와있었다. 일곱 명. 여자 넷에 남자 셋. 남자는 소방관과 고교 국어 선생과 공기업 간부 등이고 여자는 나와 수연이, 그리고 어린이집 원장과 초등학교 선생이다. 먹고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이들로 나를 빼고는 모두 문학판의 시와 수필에 선을 대고 있었다. 우린 시끌벅적한 인사를 나누고 카페 귀퉁이로 가 한참을 시답잖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잡은 다음 기타 줄을 튕겼다. 난 대학시절에 조금 기타를 만지고는 완벽하게 손을 놓았다.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가요쯤은 칠 줄 알았다. 그러다 다시 만지니 잘 될 리 만무. 코드마저도 생소했고 설사 코드를 알더라도 손가락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줄을 짚는 손가락 끝은 왜 그리도 아픈 지. 내 생활을 찾는다는 게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로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픽 웃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야 손가락의 아픔은 가셨다. 껍질이 몇 번 벗겨지고 굳은살이 자릴 잡은 것이다. 아직 혼자선 서툴지만 여럿이 함께 할 때는 서툰 게 표시나지 않을 정도는 됐다. 기타를 치면서 부르기 좋은 등대지기, 긴 머리 소녀, 두 개의 작은 별, 아름다운 것들, 연가, 기다리는 마음, 새색시 시집가네, 아름다운 사람 등을 부르고 잠시 휴식 시간이었다. 셀프로 한 잔에 삼천 원 하는 커피를 가지고 습관처럼 꽃들을 흠탄하고 책꽂이에 가지런히 놓인 책등을 읽어가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버마재비의 사랑>. 왜 하필 버마재비인가. 그런데 그게 눈에 들어온 순간 운명처럼 전율이 다 느껴졌으니. 며칠 전 메일로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보내온 이의 아이디가 버마재비고, 그가 상현 오빠를 떠올리게 하더니 또 버마재비? 이게 우연일 뿐인가. 지은이의 이름은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다가가 책을 빼들 때 보았다. 김상현, 그의 이름을. 그라는 확신이 들면서도 동명이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겉장을 부리나케 넘겨 저자의 사진을 봤다. 틀림없이 그였다. 이럴 수가! 그렇다면 메일을 보내온 이가 정말 그 오빠?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한들, 검은 머리가 반백으로 변했을지라도, 그의 포근한 모습까지 변하진 않았다. 그 책은 산문집이었다. 그가 글을 쓴다는 얘긴 경숙에게서도 듣지 못했다. 책장을 넘겨 저자의 말을 보니 서두가 이랬다. ‘내게 못 잊을 사람 하나 있다. 죽어도 잊지 못할 여인이.’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윤 선생님, 다시 시작할까요?” “네? 아, 네 선생님.” 난 화들짝 놀라 얼굴을 들고 겨우 대답했다. 시인이기도 한 국어 선생이었다.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문학지 출신의, 하는 일에 어울리도록 자신을 치장하려 한다는 인상이 강한 사람. 만나자마자 자랑처럼 서명을 해서 준 시집에 들어있던 작품들이라야 유행가 가사보다도 감동이 없는데 날 대하는 건 어떻게 한번 해볼 수 없을까를 금방 눈치 챌 만큼 치졸했다. 모두가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선생님이다. 사랑해, 목로주점, 밤배, 토요일 밤에, 딩동댕 지난여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어떻게 불렀는지 모르겠다. 입으로 노래를 부르고 손은 기타를 치고 있었지만 생각은 온통 그에게 가있었다. 내게 못 잊을 사람 하나 있다. 죽어도 잊지 못할 여인이. 그 여인을 나는 ‘나’로 단정했다. 아니 나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사랑이 너무 슬프지 않은가. 가슴에 꼭 묻어두고 튀어나오려고 하면 나오지 못하게 꾹꾹 눌러놓기만 했던 나의 가여운 사랑이. 연습이 끝나고 으레 있기 마련인 저녁식사와 뒤풀이를 약속을 핑계로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거절하고, 그 책을 빼들어 쥔 채 카페를 나왔다. 물론 수연에게 책을 들어 잠시 빌려간다는 사인을 하고. 나는 그 책을 빨리 봐야만 했다. 국어 선생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식의 표정이 우스웠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책을 폈다.  - 다음 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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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29
  • 한계령을 위한 연가-3회
    야, 너희들 이리 와봐라.” 우리는 그가 보이지 않는데 그는 아직 집엘 가지 않은 우릴 보았던가보다. 경숙과 난 의아한 눈길로 서로를 쳐다보다가 동시에 일어나 바구니를 그대로 놓고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비탈을 부리나케 올라갔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찔레나무가 무더기로 덤불숲을 이루는 있는 그곳은 완만한 평지였다. 거기에 상현 오빠가 해놓은 나무 다발이 칡넝쿨에 감겨 있었다. 그 칡넝쿨은 메고 가기 좋게 어깨 넓이로 두 줄이었고. “왜 오빠?” 경숙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오빠는 부를 때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르게 머뭇거렸다. “으응, 그거 말이다.” “뭔데 그래?” 경숙이 다그쳤으나 그는 쉽게 말을 하지 못하고 낫을 휘둘러 애꿎은 가시덤불만 자꾸 내려치다가 돌멩이를 걷어찼는데 덩달아 검정고무신까지 날아갔다. 그의 양말이 닳고 닳아 발뒤꿈치가 말갛게 드러났다. 그는 왼발만으로 껑충껑충 뛰어가 신발을 신더니 우릴 쳐다보지도 않고 겨우 말을 꺼냈다. “너희들 말이야, 그거 좀 보여줄래?” “뭘?” 경숙이 즉각 물었다.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그가 정색을 하며 우리에게 다짐을 받았다. “알았지?” “알았어. 뭘 보여 달라고?” 경숙이 재차 묻자 그가 아랫도리를 가리키며 입을 달싹였다. “잠지.” 그 순간에 숲속 어디에선가 작고 귀여운 생김새를 닮지 않은 동고비의 금속성 울음이 날카롭게 들렸다. 잠지를? 나와 경숙인 동시에 입을 딱 벌리고 서로를 쳐다봤다.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단어였다. 그가 서둘러 말했다. “십 원 줄게 응? 한 번만 보자.”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우리의 얼굴도 금세 달아올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 나중엔 바구니를 들고 냅다 뛰었다. 그가 당황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전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말이 나왔다는 데 놀라고, 더군다나 그걸 보여 달라는 데 놀라고, 우리가 해야 할 몸짓이 그려져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잠지, 그 말은, 그 말과 관련된 행위는 금기였다. “십 원 준대.” 그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달려서 숨을 고르다가 우리는 ‘십 원 준대’를 몇 번이나 말하며 킥킥거리고 웃었다. 그에게 과연 십 원이나 있었을까. 그는 오래도록 마을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우리가 바구니를 들고 쉽게 집으로 가지 못하고 엉골과 제일 가까운 찬돌네 집 근처를 얼쩡거리며 키득거리다가 나뭇짐을 지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구부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그를 본 것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그 일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요즘도 십 원짜리를 보면 그때 일이 생각 나 웃음이 터질 정도이니. 무엇이었을까. 모든 게 모범적이기만 했던 그에게서 수줍어하면서도 끝내 그 말을 꺼내도록 만든 것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호기심? 그 한마디 말로 어찌 다 그 상황을 표현할 수 있으랴.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거기를 도망쳤을 때 그는 얼마나 난감해 했을까. 우리는 물론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어렸어도 그런 정도의 분별력은 가지고 있었다. 처지가 처지였던 만큼 그 일이 알려질까 봐 그는 얼마나 전전긍긍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그때 경숙이가 같이 있지 않았다면 슬며시 보여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조금, 아니 시늉만이라도, 그가 난감해하지 않도록. 나는 그만큼 그때의 오빠가 애처롭게 느껴졌으니까. “나는 그 뒤로 오빠한테 한 번 보여줬당게.” 술기가 발갛게 오른 경숙의 실토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보여줬다고?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 아무도 모르게 혼자 그곳에 갔다가 역시 나무를 하고 있던 그를 만나 바지를 내려 보여줬다는 거였다. 배신을 당한 듯,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이럴까. 무슨 열망이 겁도 없이 어린 경숙을 그곳으로 이끌었을까. 나도 얼굴에 술기운이 확 올랐다. 슬며시 질투가 솟구치고 약이 오른 기분은 왜일까. 그걸 본 그의 다음 행동이 궁금했다. “십 원 주던?” “그땐 그런 말 안하더라니까. 이미 오빠가 나 혼자 왔을 때 내가 보여주려는 걸 알았을 거 아냐.” “보여주기만 했어?” 그녀의 순수를 왜곡하고 싶어졌다. “그럼 그 어린 것들이 뭘 하겠냐, 이 가시내야. 나 사실 너만 없었다면 처음 오빠가 말했을 때 보여줬을지도 몰라.” 경숙도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첨에 그 간절하던 표정과 달리 막상 보여주고 나니께 시큰둥하더라.”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일이었건만 시큰둥이라는 말이 어째서 그리 반갑게 들리고 경숙의 실망한 표정이 통쾌하게 느껴졌을까. 아무리 떨쳐내고 부정하려 해도 그는 내 의식의 한 귀퉁이에 없는 듯 똬리를 틀고 있다가 기회다 싶으면 모지락스럽게 뛰쳐나오곤 했다. 그는 과연 경숙의 잠지를 보기만 했을까. 그녀의 실토를 들은 후 그런 의문이 쉽사리 떠나지 않았으니. 나는 의뭉했다.     - 다음 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예술/창작
    • 웹소설
    2018-09-21
  • 한계령을 위한 연가 -2회
    경숙은 여고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난 지 30년이 다 돼 가는데도 사투리를 버리지 못했다. 아니 되살렸다는 게 옳은 말일 것이다.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된 뒤로 다시 쓰기 시작했으니까. 그녀에게서 상현 오빠가 고향 땅을 샀다는 얘기를 들은 게 삼 년도 넘었다. 그의 소식을 다시 들었을 때 먹먹하기만 했었다. 이제 와서 내 전화번호는 왜 물어봤을까. “안 왔는데?” “그래? 난 금방 할 줄 알았는데. 네가 해볼래? 전화번호 가르쳐줄게. 오랜만에 우리 밥이나 먹자. 그 오빠 돈 많잖아.” “아냐, 됐어.” 알고 싶었다. 그러나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경숙에게 그 속마음을 들킨다는 게 싫었다.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학교동창들과 왕래가 거의 없다. 대학은 물론이고 중 고등학교, 심지어 어릴 때 같이 자란 초등학교 동창들까지도.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 경숙이 카페지기인 초등학교 카페마저 얼씬거리지 않는다. 경숙은 직업이 그런지 몰라도 모르는 게 없었다. 아니 부동산 사무실을 하기 전에도 동창이나 고향에 대해 그녀는 이미 소상히 알고 있었다. 나와 달리 그녀는 마당발이다. 내 유일한 소식통이 바로 그녀다. 그녀의 얘기로 상현오빠는 지점장을 끝으로 은행을 그만 두고 어느 투자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정말로 그가 내 삶을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린 그 여자와 결혼을 했는지, 아이는 몇이나 두었는지, 나를 그렇게 만들어놓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안다 하더라도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언젠가 교직을 그만 두고 처음엔 한가해진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여 경숙의 사무실까지 찾아가 점심을 함께 먹고 낮술까지 마시면서 수다를 떨게 되었을 때, 상현 오빠 얘기가 나오자 아릿한 아픔이 배어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우린 배꼽을 잡고 웃을 수 있었다. “그 오빠도 참 엉큼 안 했냐잉. 어떻게 그걸 보여 달라고 허냔 말이여.” “누가 아니래니.” “그 쪼깐헌 것이 뭘 알고 그랬을까?” “우리보다는 컸잖아.” “커도 그렇지. 우리가 학교도 들어가기 전잉께로 우리가 일곱 살이고 그 오빠가 겨우 열 살이나 먹었을 땐디.” “어렸어도 이성에 대한 관심이 아주 없는 게 아니잖아.” “우리가 보여줬다면 정말로 십 원을 줬을랑가?” “그 오빠가 무슨 돈이 있었겠어.” “허기는 우리 동네에서 그 오빠네가 가장 못 살았응게로. 도대체가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 하도 궁금혀서 허는 말이었겠제잉.” 우리는 술을 홀짝이며 까마득한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봄날이었다. 경숙과 나는 고무줄을 가지고 놀다가 갑자기 마음이 동해 언니들을 따라 곧잘 가곤 하던 엉골로 나물을 캐기 위하여 대바구니를 들고 마을모퉁이를 돌아갔다. 언덕배기마다 이제 막 피어나는 푸르스름한 새싹들로 옷을 바꿔 입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나물이라야 고작 쑥이나 달래뿐, 냉이는 아직도 황새냉이와 참냉이조차 구별해내지 못했다. 그것들의 생김새가 너무 비슷했으므로. 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차가운 기운이 가시고 저 멀리 대봉련 꼭대기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던 눈도 녹은 지 한참 되었다. 계곡은 거의 물이 없이 말라붙어버리고, 가장 꽃을 빨리 피우는 진달래가 막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하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씨앗이 눈처럼 풀풀 날리던 마른 억새이삭은 거의 맨 줄기였다. 우리는 비탈진 정자네 고구마 밭으로 올라갔다. 양지 바른 밭둑의 색깔이 다른 곳보다 유난히 푸르렀기 때문. 언니들과는 더 멀리도 가보았으나 경숙과 난 더 깊숙한 골짜기까지 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돌나물이 여기저기 줄기를 뻗고 그 사이에 쑥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우리가 막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칼을 놀릴 때였다. “나물 캐려고?” 느닷없이 산 쪽에서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쳐다보니 낫을 들고 있는 상현 오빠가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나무를 하고 있었나보다. 오빠네 땔나무는 거의 그가 하고 있었다. 그 오빠네 아버진 뭘 하는지 거의 집에 있지 않았다. 어른들 얘기로는 전답 다 거덜 내고 선산까지 팔아먹어 객지를 떠도는 노름꾼이 되었다고.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마을에서 제일 부자인 당숙네 집안일을 거들어 먹고 산다고 했다. “정은아, 내가 캐줄까?” 그가 내 옆으로 와 칼을 뺏어들었다. 어린 내 마음이 붉게 물들어갔다. 앞뒷집 사는 경숙보다 나를 먼저 챙겼다는 데에 기분이 더 설레었을 게다. 상현 오빠는 어른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영리하다고. 공부를 또래들 중 제일 잘한다고. 하는 짓이 애비를 닮지 않았다고. 얼굴이 하얀 게 산골 놈 같지 않다고. 어린 것이 벌써 속이 깊다고. 개천에 용이 난다면 바로 그놈아일 것이라고. “나도 캐줘.” 경숙이 하던 짓을 멈추고 우리 곁으로 왔다. “알았어.” 그의 손은 빨랐다.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웃음이 싱그러웠다. 내 바구니에 조금씩 쑥이 쌓여갔다. 가만히 있기가 뭐해 나는 경숙의 칼을 들고 쑥을 캤다. 경숙인 상현이 오빠 곁에 딱 붙어 물었다. “학교는 갔다 왔어?” “그러니까 나무하러 왔지.” “우리 오빠는 아직 안 왔는데.” “다른 데 놀러갔을 거야.” “나무는 다 했어?” “응. 다 묶어놨어.” 경숙의 몫까지 어지간히 캐준 그는 우릴 보고 이젠 집으로 돌아가라 하곤 나뭇짐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우린 그만 돌아갈까 망설이다가 조금 더 캐기로 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나물을 더 캘 욕심이 아니라 상현 오빠가 그 부근에 있다는 게 우리가 더 머문 이유였을 것이다. 마른 덤불숲을 참새 떼가 부르르 옮겨 다녔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푸짐하게 떠있고 해는 넘어가려면 아직 한참이 남았다.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졌다. 얼마 후, 그의 목소리가 숲속에서 들려왔다. - 다음 회에 계속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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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13
  • 한계령을 위한 연가 -1회
    한계령을 위한 연가 -1회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눈을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수많은 광고 메일을 읽지도 않고 삭제하다가 ‘한계령을 위한 연가’라는 감성적인 제목이 맘에 들어 열어보니 눈에 띤 건 오직 이 시뿐. 보낸 이는 버마재비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었다. 당연히 그가 누군지 나는 모른다. 버마재비라는 말도 듣기는 들은 것 같은데 정확한 뜻을 몰라 국어사전을 들춰보니 사마귀. 새삼 알았다. 사랑을 열정적이면서도 직설적으로 읊어대는 시인, 문정희의 시다. 무심코 내용을 읽다가 언젠가 읽어봤으면서도 새삼스레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요즘 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아날로그가 아직도 편하게 느껴지는 내가 그만큼 시대에 뒤떨어지고 젊은이들의 감성에 멀어졌으리라 자괴하며 움츠러들곤 하는데, 이 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너무나 간절하여 가슴까지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랑, 계산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이 개입된,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은 이제 내 생전엔 기대할 수 없는 걸까. 하긴 열망도 그 어느 때부터 사라지고 말았지만. 이 버마재비는 누굴까. 왜 이런 시를 내게 보낸 걸까. 불특정다수에게 보낸 계절에 민감한 이 시의 애독자일 뿐일까. 아닌 게 아니라 바깥 날씨는 우중충했다. 영동지방은 대설주의보까지 내렸다. 일본 홋가이도엔 세찬 바람과 함께 폭설이 내려 전기가 끊기고 수만 명이 이 시의 화자가 바라는 것처럼 고립되었단다. 가만 버마재비라고? 버마재비! 설마, 그가? 아니야, 그가 무슨 염치로. 그일 리가 없어. 나는 고개를 흔들며 쓴웃음을 지었다. 버마재비라는 아이디를 보고서도 이제야 그가 생각나다니. 아무리 생각하는 데에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를 이성으로 받아들인 이후 단 하루라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심지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르곤 하던, 더군다나 어릴 적 별명이 버마재비인 그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버마재비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는 기분은 그 어릴 적 추억을 뇌가 되살렸기 때문이리라. 그런데도 그 말이 사마귀라는 걸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오다니. 그를 연모했던 마음은 한낱 관념일 뿐이었나, 증오가 기억마저 희미하게 만들었을까. 그럼에도 실체가 불분명했던 버마재비와 그는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실체가 분명한 징그럽고 흉측하게 생긴 사마귀와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 도리질을 하며 의식적으로 거부하던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때의 모습과 교복을 입은 중 고등학교, 은행원이면서 야간 대학을 다닐 때의 모습이 차례로 지나다가 살얼음이 끼듯 딱 멈췄다. 그를 보지 못한 지 이십 하고도 수년이 더 흘렀다. 지독하게도 사랑했었다. 그런데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는 우리 사랑의 완성이 되어야할 마지막 순간에 날 배신했다. 이후의 세월은 그를 사랑했던 만큼 배신에 치를 떨어야 했다. 배신이 미움을 낳고, 미움이 증오를 낳고, 증오가 마침내 체념이 되더니 망각으로 진화했다. 그를 아주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배신이 꼭 억지만 같았으니,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럴 수 있나,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를 잊으려 하면 할수록 생각났다. 그러나 시간이 약은 약이었다. 그가 아니면 죽을 것만 같았던 마음도 세월이 흐르면서 희석되고 희미해졌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머물다간 스르르 소멸되어 그 대신 미움을 키우며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어색함으로 현재 남편의 아내로 살았다. 나는 나를 포기했었다. 죄라면 죄였다. 파렴치는 내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못 잊을 사람을 꼽으라면 그게 미움이든 사랑이든 그밖에 더 있겠나. 설령 그의 배신이 진심이었다 할지라도 그와 함께라면 폭설에 갇힐 용의가 있지. 왜 그랬느냐고 갇혀서 맘껏 두들겨 패주기라도 해야지. 아무렴 있고말고. 나의 사랑은 진실이었으니까. 너무 기가 막혀 믿을 수 없었으니까. 언제까지나 가슴에만 묻어두고서, 억울하다는 말조차 부족하여 모욕적으로 느껴질 만큼, 내 사랑은 어떤 계산도 없이 순수했으니까. 눈을 떴다. 책상 위 컴퓨터 옆에 세워놓은 동해의 바닷가 낙산에서 나와 사이좋게 찍은 사진 속 남편이 미소 짓고 있었다. 엄연한 현실이 눈앞에 보였다. 후후 웃고 말았다. 기적은 바라지 않는 게 좋았다. 어림 턱도 없는 일이지. 아무렴 그럴 수 있나. 그러나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다. 그와 함께 한다는 게. 문득 장난기가 발동하여 답장을 썼다. 세월이 나를 의연하게 만들긴 만들었나보다. 사랑이나 미움, 원망, 증오까지 동격으로 아련하게 느껴지니.   못 잊을, 그러면서도 죽여 버리고 싶은 사람과 함께라면 한계령의 폭설에 마냥 갇히고 싶다   그일 리가 없다는 확신의 이면에 도사린 그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이상스럽게 가슴이 계속해서 설레었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베란다에 널 때나 화분에 물을 줄 때도, 가스레인지에 커피 물을 올려놓을 때도 그의 얼굴이 떠나지 않고 어른거렸다. 어차피 미움이나 증오도 사랑의 부산물일 수밖에 없는 한계령의 한계 같은 거였다. 커피를 타 거실 소파에 앉아 전화기를 들었다. 메일의 여파였다. “경숙이니? 나, 정은이.” “하이고, 네가 웬 일이야, 잘 있었어?” “나야 항상 그렇지. 손님 있어?” “개미새끼 한 마리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 부동산 경기가 영 그렇잖아. 계약서 쓰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랑게.” 경숙은 남편과 함께 부동산 사무실을 한다. 때를 잘 만나 예전에 땅과 집을 사고팔아 많은 돈을 벌게 되자 직접 자격증까지 따 회사에 잘 다니던 남편까지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그 길에 뛰어들었다. “버마재비 오빠 요즘도 너네 사무실에 오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속으로만 뇌까리던 그 말을 입에 올렸다. “버마재비가 누군디 그려?” “너도 잊고 있었어? 상현 오빠 말이야.” “상현이 오빠가 버마재비라고?” 정말 까맣게 잊어버렸나? 경숙도 그 오빠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나만 기억하고 있었나? 괜히 속을 들킨 것 같아 멋쩍었다. “가시내야, 어릴 때 그 오빠 별명이었잖니.” “아, 인제 생각났다. 넌 별 걸 다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구나. 상현이 오빠가 너를 솔찬히 좋아한 줄은 알지만 너도 그랬던 거시여?” 경숙은 나의 지독했던 사랑도, 그의 배신도 알지 못하리라, 나는 그렇게 믿었다. “가시내도 참, 그런 거 누구나 기억하는 거 아냐?” 나는 정색을 했다. “그건 그렇고 왜?” “아니 그냥 생각나서 물어본 거야. 요즘은 뭐한대?” “무슨 투자회사 사무실에 나간다는디 자세한 건 몰라. 언제는 그 오빠가 우리 사무실에 들랑거렸가니? 전화도 없고. 너 다 늙어빠져갖고 그 오빠한테 관심 생긴 거냐?” “얘 말하는 것 좀 봐.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고향 땅을 그 오빠가 거의 다 샀다기에 궁금해서 그런다.” “그게 언제 적 얘긴데…… 거기 땅 다 산 게 아니랑게 그러네. 그 오빠네 부모 무덤이 남의 산에 있었잖여. 그래서 그 산을 다 산 것뿐이야. 왜 너도 사려고?” “나야 살려면 왜 거기에 사니? 출가외인이 당연히 시집 마을에 사야지.” “너 혹시 그 오빠한테서 전화 안 왔었어?” “아니, 왜?” “내가 진작에 물어본다는 것이 인제사 물어보네. 그때 네 전화번호를 그 오빠가 물어보더란 말이다. 그래서 갈쳐줬당게.” - 다음회에 계속        * * *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예술/창작
    • 웹소설
    2018-09-05
  •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최종회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 * 아무래도 아재가 뭘 잘못해도 크게 잘못한 것 같았다. 우리가 미안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우리에게 얘기해 봐요. 나도 형씨와 이리저리 인연은 맺어졌잖아요. 앞으로 거래를 영 안할 것도 아니고.” 성조가 한사코 일어나 아재에게 가려는 그의 손을 잡아 달랜다. 나도 그를 진정시키고 싶었다. 화를 삭이는 덴 술이 최고 아닌가. 술을 가득 따르고 물고기 중 가장 큰놈을 골라 상추에 싸서 먼저 술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서슴없이 받아 속이 타는지 쭉 들이켠다. 나는 준비한 안주를 그의 입에 직접 넣어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정하세요. 아재가 형씨께 뭘 크게 잘못한 모양인데 말로 하십시다. 하루 이틀 안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럽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인복이 없어서 저 미친놈을 알게 되고 믿었던 게 잘못입니다. 나 여기 와서 무척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감방에서 나와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달랑 몸뚱이만 왔습니다. 송이만 알았지 어떤 것이 먹는 버섯이고 독버섯인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나물도 모르고 약초도 몰랐어요. 으름이 뭔지 다래넝쿨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저 화상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따라다니다시피 했지요. 몇 달 악착같이 따라다니니까 뭘 좀 알겠습디다. 그런데 약초나 버섯이나 줍고 다니다보니 더 좋은 돈벌이가 보이대요. 산짐승 말입니다.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들은 돈이 많고 적고를 따지지 않대요. 오직 몸에 좋고 정력에 좋다면 환장하고 달려들어요. 아무리 불법이라지만 내가 잡은 몇 마리가 표시나 나겠어요? 수입이 쏠쏠 합디다. 솔직히 짜가(가짜) 주어도 몰라요.” 충분히 그럴 인물이 되고도 남았다. 약삭바리는 이제 손수 술을 따라 마셨다. “돈 좀 벌었어요. 짧은 기간에 수십 년 약초꾼보다 제가 훨씬 낫습니다. 집도 짓고 제법 땅도 사놨지요. 그런데 저 머저리는 여전히 약초나 캐고 버섯이나 따고 조금 돈 생기면 술이나 퍼마시고, 그러니 살림이 늘겠어요? 맨 날 그 모양 그 꼴이죠. 너무 안 돼 보여서 이제는 내가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더라고요. 술만 처먹으니 내 말이 저놈 귀때기에 제대로 들리겠어요? 진즉에 나도 포기했습니다, 저놈의 인간을. 너는 너대로 살아라. 그렇게 가난뱅이로 평생 살다 뒈져버려라. 그런데 아이가 있잖아요, 만동이. 걔가 불쌍해서 다시 사정하다시피 했어요. 짐승을 잡아라. 하다못해 뱀이라도 잡아라. 내가 사겠다, 그랬습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어요.” 약삭바리는 거기까지 얘기하곤 나와 성조의 잔에 술을 쳤다. 저 혼자 마시기가 미안했던 걸까. 성조도 그의 잔에 술을 쳤다. 그러나 그는 잔 차기가 무섭게 마시곤 손가락으로 고추장만을 찍어 쪽 빨곤 이야기를 계속 하려는데. “잠깐만요. 아무리 죽을죄를 졌어도 아재도 한 잔 듭시다. 이리 오세요.” 성조는 아재가 안타까워서 권하는데 그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산만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아재가 술김에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단단히 저지른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김 사장님이 이곳에 가끔씩 드나들데요. 이웃집에 살았다고 저런 인간을 끔찍이 위하고. 김 사장님, 충고 하나 할까요?” “무슨 충고요.” “거렁뱅이는 딴 일을 못합니다. 노력 않고도 먹을 게 생기니까.” 성조가 눈을 부라리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계속 해보시오.” “도와줄 놈을 도와주세요. 까마득한 옛날에 우정 좀 나눴다고 도와주다가 나중엔 먼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요, 나처럼.” 성조의 잔을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계속 해봐!” 성조의 반말. 목소리는 크지 않으나 노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나는 안다. 성조가 이럴 때는 물불 안 가리고 폭발 직전이란 것을. 약삭바리는 제 말에 자신이 도취해 있었다. “지난겨울입니다. 내가 멧돼지를 잡으려고 올무를 수도 없이 놨어요. 그런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다음에 가보면 올무도 없고 분명 잡힌 흔적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없어요. 몇 번을 그랬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 도둑놈을 의심 안했어요. 술이나 처먹을지 알지 설마 멧돼지 길목마다 찾아다니랴 싶었죠. 그런데 며칠 전에도 울울창창 숲 속마다 토끼부터 시작해서 오소리 고라니 너구리 멧돼지 심지어 곰까지 잡을 수 있는 올무나 덫을 발에 땀이 나도록 치고 다녔습니다. 멧돼지는 그렇다 치고 곰 한 마리 잡으면 여기선 집이 한 채예요. 아무리 밀엽을 금지한다지만 암암리에 다 잡거든요. 그래 엊그제부터 다 돌아다녀 봐도 짐승은커녕 올무도 덫도 다 사라지고 없어요. 어떤 곳은 곰이 잡힌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는데도 말입니다. 그 때 내 심정 알겠어요?” 나는 안도했다. 성조도 얼굴에 여유가 가득했다. “참 안 됐습니다. 팔자를 고칠 수가 있었는데. 속 다스리시고 술이나 더 드세요.” “그렇죠? 그럴 때 열불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설마 하고 저 새끼네 집을 가봤죠. 그랬더니 개집에 내 올무하고 덫이 가득한 거요. 완전히 어수룩한 놈한테 당했습니다. 분명히 저 주제에 내가 돈 버는 게 샘이 난 거죠. 나 영원히 여기서 살 생각 없는 사람입니다. 몇 년 더하고는 내 거래처 저 화상한테 고스란히 넘겨줄 생각까지 한 사람이에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조는 아예 이기죽거리고. 그 때 아재가 우리 자리로 왔다. “나도 이제 술 한 잔 할까예?” “아먼, 드리고말고요.” 성조는 드러내놓고 키득거렸다. 나도 고기 두 마리를 얹어 상추와 깻잎에 싸서 안주를 준비하고. 아잰 그걸 여유 있게 다 먹고 얘길 시작했다. “지난겨울에 멧돼지가 세 마리나 걸렸더라. 가서 보니 다리가 곧 끊어질 지경인 기라. 너무 불쌍해서 풀어줬다.” “뭐라고!” 약삭바리는 아재의 뺨을 후려갈길 태세로 나왔으나. “어허!” 성조가 잽싸게 그의 팔뚝을 후려쳤다. 그러자 약삭바리의 눈이 계란만 해졌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그를 보는 성조의 표정에 으름장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동안에 오소리 너구리 고라니 다 풀어줬다. 심한 상처엔 약까지 발라서.” “이, 개 상놈의 새끼!” 약삭바리는 술기운보다 약이 올라선지 얼굴이 더 벌게졌다. 이젠 성조의 표정과 완력이 두려웠던지 입만 살았다. “형씨, 한번만 더 욕을 하면 자갈을 입에 처넣어버릴 거야. 이빨 부러지지 않으려면 조용히 들어.” 성조의 말에 약삭바리는 치켜 뜬 눈 꼬리를 내렸다. 표정 하나 변치 않고 아재는 술을 달게 따라 마시고. “어젠 곰까지 잡혔더라. 이 지리산에 몇 마리 없는 반달곰 말이다. 걸린 지 얼마 안 되어서 얼매나 천만다행이던지 넌 그 심정 모를 기다.” 코끝이 다 찡했다. 약삭바리는 너무 기가 차는지 입을 떡 벌리고. 그런 그를 성조는 괘씸한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사정없이 뺨을 갈겨버렸다. “잡놈의 새끼. 완전히 짐승만도 못한 놈이구먼.” “왜 이러십니까!” 약삭바리는 벌떡 일어나 성조를 노려봤다. 아재는 계속했다. “너는 모를 끼다. 내가 명예밀렵감시원인 줄. 내가 아무리 술 처먹고 주정뱅이 짓을 할망정 디카는 찍을 줄 안다 아이가. 니 소행은 모두 찍어갖고 학교 선생님께 부탁해 컴퓨터에 저장해 놨다. 보여주까? 내가 맘만 독하게 먹었다면 니 같은 놈 수십 번도 넘게 쇠고랑 채울 수 있었는기라. 니 인생이 불쌍해서 참았다. 또 쇠고랑 차면 니 인생 완전히 끝장나는 거 아니가?” “가만있어 봐요, 아재. 우리 술 한 잔 더 마시고 얘기합시다. 역시 우리 아재여.” 명색이 작가인 나.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감동적인 소설을 쓸 수가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다. 술이나 따르고 상추에 물고기 배나 따서 싸는 수밖에. 그렇게도 침울하고 긴장됐던 분위기가 원래보다 더욱 신이 났다. “지리산을 위하여!” “멧돼지를 위하여!” “반달곰을 위하여!” 지리산의 반달곰은 멸종 위기라 했다. 그래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몇몇 단체에서는 복원계획까지 수립 한다 들었는데. 살기등등했던 약삭바리는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땅에 박은 지 오래. 다시 물소리, 새소리, 물고기 씨받는 소리, 곰이 나무에 올라가는 소리, 멧돼지가 땅을 뒤적이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나보고 게으르다고? 시류를 모른다고? 술만 처먹는다고? 그래 좋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나는 약초 캐고 버섯 따는 일보다 올무와 덫을 제거하는데 더 신경을 쓴 기라. 짐승이 살지 않는 산은 죽은 산인 기야. 동물과 식물이 어울려 사는 산이야말로 살아있는 산이란 말이다. 너는 지리산을 죽이려고 한 기야.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 줄 너 같은 놈이 알 턱이 없지. 니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올가미를 치는 동안 나는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도록 그걸 제거하러 다녔다. 나는 지리산에서 태어났고 지리산의 젖을 먹고 컸으며 지리산이 주는 양식으로 하루 세끼를 해결하고 있는 기라. 얼마나 이 산이 감사헌지 모른다. 너는 돈이 최고겠지만 나는 지리산이 최고다. 니 돈이 얼마나 가겠냐. 니가 쓰고 나면 기껏 자식새끼한테 물려주겠지. 그러다 없어지고. 뻔하지. 그러나 지리산은 영원한 기라. 너는 하루라도 빨리 이 지리산을 떠나라. 지리산은 니가 한없이 미웠을 테지만 그래도 여지껏 아량을 베푼 기라. 너 생각해서 그런다. 어서 떠나! 지리산이 성질부리기 전에 말이다. 만약 이 산이 성질을 부리게 되는 날엔 니 목숨까지도 뺏을지 몰라. 나는 그런 걸 어렸을 때부터 여럿 봤다. 떠난 후에라도 수백, 수천 배(拜)를 올리는 걸 잊지 말거래이. 맘으로라도 말이다. 지리산은 살아있기 때문에 계속 너를 지켜볼 것이구먼.” 다시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성조도 숙연한 모습이다. “너 같은 놈들은 당초부터 지리산에 어울리지 않았던 기라. 너 같이 돈에 미친놈이 또 나타나겄제. 내가 막을란다. 내가 못 막으면 내 새끼가 막을 끼다.” 만동이를 산에 데리고 다니는 그 깊은 뜻을 알겠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할까? 밤중이면 난 메기 낚싯줄 걷기 바빴다. 먹을 만큼만 잡아야 허는데 행락객들이 그런 걸 생각이나 하노? 어제 이렇게 귀한 손님이 왔는데도 난 열 마리만 잡은 기라. 물고기가 없는 강이 어디 산 강이냐, 죽은 강이지. 어디로 가든지 욕심 부리지 말고 살거래이.” 바뀌었다. 당당하던 약삭바리와 한없이 초라하기만 하던 아재가 바뀌었다. 그리고 알았다. 약삭바리의 탐욕이 가득한 육안(肉眼)과 아재의 맑은 심안(心眼)의 차이를. 약삭바리는 흐느꼈다. 바위에 무릎을 꿇고서. “미안, 미안합니다. 떠나겠습니다.” “개골산장에도 더 죄짓지 말고 간다온다 말없이 사라지거래이.”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그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슬그머니 엉금엉금 기어서 허겁지겁 우리의 눈에서 사라졌다. 아재는 약삭바리와 혜순 씨의 관계까지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아재, 나도 사과할게요. 나도 말은 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재에 대해 실망했었어요. 살림살이를 보고 얼마나 밉던지.” 성조는 아재의 손을 잡았다. “에이, 별 말씀을. 아무리 그래도 나는 술주정뱅이라요. 아니 그런데 술이 다 떨어져 버렸잖습니꺼?” “이제 그만 마십시다. 멱 감고 라면 삶아 먹은 다음에 내려가지요. 술 깨게.” “에이 그럴 수 있나. 무슨 맛으로 라면을 먹습니꺼. 그라고 저놈아 하산주 한 잔 해야 되지 않겄습니꺼?. 우선 멱 감고 있으이소. 이 한선기가 술 가져 올랍니더.” 그러더니 그는 집터로 올라갔다. 말릴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성조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알몸이었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소주에 뜨거워진 몸뚱어리가 차가운 계곡물에 질겁했다. 약삭바리는 결코 지리산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리산이 성질부리기 전에. 그는 떠난다고 했다. 아니 너 생각해서 그런다며 아재는 그를 쫓아냈다. 그는 그가 살던 도시로 돌아갈 것인가. 그는 혜순 씨를 다신 만나지 않을까? 혜순 씨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를 찾지 않을까? 이후는 그들의 문제다. 아재는 이제 관심도 두지 않을 것이다. 산 밖의 일이기 때문에. 작가인 나는 그럴 수 없다. 욕심에 눈 먼 그들은 다시 만나야 한다. 소설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 금세 내려온 아재의 손에는 소주 세 병이 들려있었다. “아니, 어디서 가져온 거요?” 하도 귀신같아서 내가 물었다. “묻지 마시이소. 여기 지리산 전체가 내 집 아닙니꺼.” “그럼 딱 한 잔씩만 더합시다.” 성조가 손가락 하나를 추켜세웠다. “하이고 마, 술맛 떨어집니더. 술 놓고 나는 장담 모합니더.” 그러나 몇 잔을 연거푸 쭉 마신 아재는 안주도 먹지 않고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지 벌러덩 누워 버렸다. “그런데 아재, 진짜로 명예밀렵감시원이오?” 성조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어디가예. 그런 게 어딨습니꺼. 자칭이라는 말을 뺀 기라예.” 자칭 명예밀렵감시원. 우린 배꼽을 잡았다. 입이 찢어지고 코가 벌름거리도록 통쾌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렇게 멋있던 아재는 금방 술주정뱅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비틀거리고 몽롱해진 눈동자에 비실비실 웃는 것까지 그대로. 이빨까지 빠졌던가? 성조와 나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야 도후, 저 돌배나무 열매가 우리의 식량이었다. 저걸 어머니가 어떻게 요리를 해주더라고. 니가 봐도 여기서 뭘 먹고 살았겄냐. 지금은 여기가 우리의 피서지지만 그 옛날 40년 전에는 어머니의 한숨과 절망, 비탄만 가득했어. 그런 와중에도 어디서 돈이 나는지 아버진 술만 마시고. 우리 밥 먹일 돈은 없고 술 마실 돈은 어떻게라도 만들었겠지. 얼마나 야속하던지. 그래도 원망 같은 거 생각도 못했다. 세월이 약은 약이야. 그것도 명약. 그 지옥도 천국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이곳이 증명하잖아. 이 천국은 아재 같은 사람이 있는 한 영원할 것이다.” 그래, 나는 너의 심사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너만 이곳을 성지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이제 나도 아내와 마지막 여행을 즐겼던 이곳을 성지로 여기니까. 챙이소며 비아그라폭포며 움직이기 힘들어하던 아내가 내내 앉아만 있던 저 그늘진 모래밭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내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 밤, 남편인 나는 부재였다. 모든 게 내 탓 마냥 여겨졌다. 아내의 병도, 죽음도. 아이들은 서럽게 우는데 나는 맘 놓고 울지도 못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먼저 간 아내는 어디에 묻을 것인가. 술 탓인가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아내가 못 견디게 그리웠다. 잊어지는 사랑도 슬픔이지만 잊어지지 않는 사랑도 슬픔이다. 울었다. 그러나 눈물을 감추기 위해 수시로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곤 했다. 아내여, 우리 내년에도 또 오자구려. 당신이 그토록 안타까워하던 우리의 아들이 얼마나 씩씩하게 자라는지 봅시다. 성조와 나는 계곡을 헤집고 다녔다. 땀이 나면 물속으로 들어갔고 팔뚝에 소름이 돋으면 달구어진 바위에 누웠다.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었다. 아재를 깨우고 우린 라면을 끓였다. 아재는 라면에 산추 열매와 취나물을 뜯어다 넣었다. 맛이 독특했다. 우린 남은 술을 다 마셨다. 어제부터 마신 술이다. 뱅글뱅글 돌았다. 너무들 취하여 옷을 입기도 힘들었다. 아재는 바지에 발을 꿰지 못해 몇 번을 넘어져 나와 성조가 옷을 입혀줬고 도저히 걸을 수조차 없어 성조가 들쳐 없었다. 그런데 비탈을 오를 즈음 아재가 비몽사몽의 그 정신에도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고 하여 다시 내려왔다가 말끔히 챙이소 주변을 정리하고 그들이 걸었다는 폭이 30센티도 안 되는 산길을 성조와 내가 교대로 아재를 업고서 가까스로 선유슈퍼에 도착했다. 나와 성조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그런데 우리 등에 업혀왔던 아재는 오자마자 다시 동동주를 찾았다. 성조는 코까지 곯았다. 참으로 편안한 얼굴로. 이 잠이 깨면 우린 다시 서울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등바등, 내 것 네 것 따지면서. 그런 중에도 우린 아재를 기억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고. 내 정신의 공황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아내는 잊으려 한다고 잊어지는 존재가 아니리라. 부부라는 인연이 어디 그렇게 간단한 것인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차츰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시간은 명약이기에. 내 몸도 천근만근. 그러나 머리는 맑아지고 있었다. 이 여행이 다른 날보다 더 먹고 더 마시며 옛날을 곱씹은 어리석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내게 준 의미는 각별하다. 서운 씨는 만나지 않고 그냥 갈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서로의 인연이 운명이라면 아무리 천 리 먼 길일지라도 어떻게든 만나질 것이다. 당당하면서도 단정한 그런 여자는 이제 바라보지도 말아야겠다. 아니지. 그녀도 인연이 닿는다면 어떻게든 만나지겠지.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홀아비로 청승맞지 않게 사는 것도 결코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 어떤 이는 네온의 불빛 같이 화려하게 빛나 보이지만 알고 보면 허황된 반면에, 희미하지만 희망의 호롱불빛을 내는 이가 있다. 거인이든 소인이든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나름의 빛이 있나니, 빛나던 빛나지 않던 간에. 나는 어떤 빛을 내고 있는가.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나도 희망의 빛을 내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하다. 아, 내 안에 꿈틀거리는, 이것은 무엇인가. 할일이 태산이잖은가? 올라가는 즉시 원고지와 컴퓨터와 씨름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인간의 빛에 대해서. 그건 작가로서의 의무가 아닐까. 제목은 벌써 정했다.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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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소설
    2018-05-27
  •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8회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 * “저 새 소리 들리세요?” “안 들리는데예.” “차를 잠깐 세워 보실래요?” 그녀는 말없이 차를 멈추었다. 다시 소쩍- 하자 메아리가 소쩍 했다. “들리잖아요?” “아뇨. 제겐 안 들립니더.” 그녀는 웃었다. 억지웃음이었다. 가속 페달을 서둘러 밟는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언제 가십니꺼?” “내일은 선유동계곡에 갈 것이고 모레나 안 가겠습니까.” 그녀는 침묵했다. 무슨 말을 할 것 같았는데 입을 다물었다. 선유슈퍼에는 금방 도착했다. 그녀가 떠나가고도 소쩍새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내여, 미안하다. 더 살아서 미안하다. 사는 게 당신에겐 죄를 짓는 일이구나. 소쩍새 울음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건, 속설처럼 짝을 찾는 피울음이라 믿게 되는 건,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이 그만큼 깊었다는 것일까. 우린 씻지도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죽음보다 깊은 잠이란 게 이럴까. 떠메고 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든 우리를 새벽같이 깨운 건 아재. “퍼뜩 일어나이소. 세수하러 어서 가입시더.” 세 시가 다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자영 씨 민박집으로 온 건.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그러나 나보다 술이 약한 성조가 벌떡 일어나 아재를 따라 계곡으로 가잔다. 계곡물에 심신을 담그자고. 무엇이 그리 기분 좋은지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밖으로 나왔다. 지리산은 한국인의 축복이다. 미명에 봉우리마다 하얀 안개를 품은 지리산. 웅장하면서도 신비한. 참으로 장관이었다. 시멘트 벽 속에 갇혀 잠에 더 빠져들고 싶었던 나의 소심함을 비웃고 싶은, 이 거룩한 성자의 모습은 얼마나 인간의 모습이 하잘 것 없는지 깨우쳐주는 듯했다. 그 품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힌두교도들이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는 것처럼, 세속에 찌든 육신과 정신의 때를 벗겨낼 심산으로. 그런데 지랄 같은 어젯밤의 일들이 어지러운 꿈처럼 스쳤다. “성조야, 너 그 약삭바리 어떻게 생각허냐?” “약삭바리라니?” 아, 그렇구나. 약삭바리란 이름은 내 마음 속의, 나만 부르는 호칭이었구나. 네가 알 리가 없지. “어제 혜순 씨 짝 말이다.” “으응. 약삭바리라고? 너 정말 이름 한번 잘 지었다. 나도 그 자식 맘에 안 들어. 그 자식이 여기 오고 나서 순진한 약초꾼들 들쑤셔서 다 베려놨다고 하잖아. 약초꾼들이 돈맛을 알아버린 거야. 물론 그 사람들도 돈은 벌어야지. 그렇지만 적당한 선이라는 게 있잖아. 지켜야할 선 말이다. 그게 없대, 요즘. 어제 법대 나왔다니까 더 얄밉더라. 배웠다는 놈이 왜 그래? 그렇다고 내가 어쩔 수도 없고. 혜순이는 벌써 넘어간 것 같더라. 그 새끼한테.” 바람이 불자 소름이 돋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연못을 헤집고 다니며 물을 흐리는 걸 보았다. 아무도 제지할 수 없는. 안타까웠다. 아재는 물 몇 번 얼굴에 찍어 바르더니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원래 그런지, 아니면 술기운이 없어서인지 통 말이 없었다. 물은 차가웠다. 머리까지 푹 담갔다. 숨을 멈출 수 없을 때까지 몇 번을 들어갔다 나왔다. 안개가 산허리부터 서서히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드러난 산의 표정은 장엄했다. 나는 얼마만큼 작으냐. 사람의 짓이란 게 얼마나 하찮은 것이더냐. 내 벗은 몸뚱어리는 참으로 보잘것없이 초라하고 피부는 탄력을 잃은 지 오래. 욕망의 근원, 아랫도리는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쪼그라들어 부끄럽고 부끄러워서 물속에 재빨리 숨겨야 했다. 내 평생 이같이 이른 새벽에 내 몸이 쏙 들어가는 자연석 욕조에서 발가벗고 몸을 담글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었다. 흐르는 물은 강했다. 움직이지 않는 바위는 약했다. 나는 지금까지 강한 바위, 단단한 돌이라는 이미지를 씻겨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젠 아니다. 물의 끈기. 물은 돌보다 강하다. 그리고 물은 예술가였다. 흐름이 작업이고 흐름이 세월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나의 집 욕조보다 부드럽게 바위를 파낼 수 있었을까. 얼마만큼 세월이 흘러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 될까. 아, 이 경건함을 동반한 상쾌함. 지리산 영봉들의 정기를 흠뻑 받으며 자라나는 칙칙한 수목들, 넝쿨들, 풀잎들. 그것들이 뿜어내는 산소를 한껏 마시며 그 뿌리들이 머금었던 물기에 몸과 마음을 씻을 수 있다니, 성조야 진심으로 감사한다. 자영 씨는 우리들의 밥을 벌써 챙겨 놨다. 그리고 선유동계곡에서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보따리, 보따리 가득 싸 놨다. 세세세 친구에 대한 성의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조와 그녀의 사랑(?)은 순수하고 실로 아름다웠다. 선유동계곡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 입산금지구역이었다. 그러나 아재와 성조는 그곳에 살았었다는 이유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니 믿을 밖에. 계곡은 밑에서부터 더듬어 올라갈 수도 있지만 절경을 쉽게 보려고 다리 건너 매표소를 지나 200여 미터 쯤에서 오른쪽 산비탈로 올라갔다. 산을 오르다보니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게 생긴 곳에 축대나 주춧돌 같은 주거지 흔적들이 보였다. 뭘 바라고 이런 곳에서 살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능선에 올라 곧장 우측으로 난 산길을 쭉 가게 되니 바로 아재와 성조네가 살았던 집터가 나온다. 그 부근이 또한 절경이었다. 어릴 땐 몰랐단다. 여기가 저토록 빼어난 줄을. 오직 배고프고 고달픈 곳으로만 알았단다. 지금은 무수한 수풀로 덮여있는 집터에는 참으로 멋들어진 배롱나무가 있고 토종 밤나무가 있고 늙은 돌배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오면서 본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어지럽게 설치한 무수란 파이프라인. 어떤 자는 건강을 챙기고자, 어떤 자는 돈을 챙기고자 환장해버린, 여기저기, 인간이 저지른 추악한 모습들. 지리산을 진정으로 봤다면 이런 짓거리는 하지 못할 것인데, 눈앞의 이익에 산은 멍들고 상처만 남아 마냥 안타까울 뿐. 나만의 감상일까. 우리는 집터 밑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아내도 와봤던 곳. 내 아들 꼬맹이가 즐거워하던 곳. 그 흔적, 흔적들은 고스란히 그대로였다. 가슴이 미어지고 눈이 시리게, 똑, 똑, 똑,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오는, 도저히 멈춤이 안 되는 죽음의 그림자에 어떻게 초연할 수 있었으랴. 그 쓸쓸한 미소, 그 안타까운 표정. 얼마나 저렸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왜 하필 아내였을까. 손바닥 뒤집어엎듯이 쉽게 일어나는 삶과 죽음. 이제 나는 울지 않으련다. 과거에 연연하지도 않으련다. 모두가 부질없음에. 그러나 아름다웠던 추억은 잊을 수가 없으니. 그러기에 나도 나약한 인간인지라 흔들릴 때마다 술에 의지했었고 침잠의 늪에 한없이 빠져들었다. 위안이 되었을까? 천만의 말씀. 고통은 배가되고 아이들을 생각하면 멀고 먼 내일에 대한 자신만 사라졌다. 선유동(仙遊洞). 계곡은 이름만큼이나 내려가도 절경이고 올라가도 절경이다.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경치에 도취되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심정을 가눌 수 없어 결국엔 정상까지 오르게 된다고. 수만, 수억의 세월 동안 물에 씻기고 부딪혀서 만들어진 기기묘묘한 형상들, 그것이 크든지 작든지. 어디 하늘에 빛나지 않는 별이 있으랴. 그게 밝든지 희미하든지 나름의 의미는 있을 것이니. 선유동 계곡의 바위들은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린 챙이소(沼) 곁에 짐을 풀었다. 챙이소란 이름은 챙이(키)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게 분명할 테고. 나와 성조가 이름을 붙여준 곳도 있다. 비아그라 폭포. 전에 왔을 때 챙이소 아래 2미터 높이에서 물이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있는데 옷을 홀라당 벗고 물줄기를 맞으며 서있으니 서서히 내 남성이 부풀어 오르는 게 아닌가. 하도 신기하여 성조에게 얘길 했더니 내가 너무 굶어서 그렇다나. 웃기지 말라고, 정말이라고 서로 우기다가 내가 내길 하자 하여 성조도 서본지라, 얼마 안 있어 하는 말. “어허! 진짜네?” 그래서 내가 만 원을 따먹었다. 우린 바위 그늘에 자영 씨가 싸준 것들을 풀었다. 과연! 넉넉한 술이며 상추와 깻잎, 초고추장, 라면 등등. “야 도후야, 얼마나 정성이 갸륵허냐.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또 자랑이다. “그래, 눈물 난다. 아예 여기서 눌러 살아라. 죽을 때까지 세세세나 하면서.”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순 없지. 샘 나냐?” “에라 미친놈. 홀아비 생각한다는 건 다 핑계고 너 자영 씨 보고 싶어 왔지?” 성조는 웃었다. 속마음을 들켰는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서. “아녀, 절대로 그것이 아녀.” “아니긴 개똥이 아녀?” “그나저나 서운이랑 잘 될 것 같으냐?” “나랑 결혼하자니까 택도 없단다.” “뭐? 진짜 미친놈이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처음 만나자마자 결혼하자는 놈이 세상에 어딨냐? 농담하지 말고 제대로 얘기해봐.” “친구하기로 했다. 그래야 너 모르게 나도 여기 올 수 있는 것 아녀?” “이게 벌써부터 똥구멍으로 호박씨 깔 생각만 하고 있네.” “화개 장서운이 말하는 깁니꺼?” 밥에 된장을 버무리던 아재가 끼어들자 성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국입니더. 참 참하지예. 혼자 산다꼬 덤볐다가 큰 코 다칩니대이.” “그래요? 야, 니 코는 아직 멀쩡하니까 됐다. 아무래도 너 만나려고 여직 독수공방했던가보다.” “쉽지 않을 깁니다. 재혼할라캤으면 진작 했을 깁니더. 진수란 놈이 망신 안 당했습니꺼.” “진수가 누군데요?” “거 안 있습니꺼. 전에 송이 사먹었다던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아.” “아, 그 친구가 진수요?” 약삭바리는 안 끼는 데가 없었다. 내가 이름 하난 잘 지었다. “과부란 걸 알고 지가 돈 좀 벌었으니까 혹 하고 달려들 줄 안 모양이지예. 매일같이 가게 와서 수작 거는 걸 서운이가 못 보겠는 기라. 그래 사람들 많을 때 당신 같은 사람 트럭으로 와도 안 반가우니까 얼씬도 말라꼬요.” 성조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아이고, 시원해라.” “그거 아주 잡놈입니더.” 그랬다. 어젯밤에 서운 씨는 약삭바리에게 눈길 한번을 안 줬다. 내 어깨에 고개를 묻었던 것도 그치를 보기 싫어서였을까? “서울에선 한 가락 했다 하대요?” “하이고 말도 마이소. 징그럽스니더.” 아재는 무슨 말을 더 할까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부근에 숨겨 놓았던 고기 병을 찾아와 버무린 된장을 넣어 물속에 던져 놓고는 산으로 올라갔다. “고맙다고 해라 도후야, 내가 제대로 된 여자 소개했지? 여자가 그런 맛이 좀 있어야지.” “그래, 고맙다. 눈물이 날 정도로.” 그러나 나는 여자에 대한 간절함이 없다. 아내에 대한 간절함밖에는. 아내는 아직도 내 심중에 뚜렷이 남아 나를 간섭하고 있잖은가. 성조와 나는 옛일을 되새기며 비아그라 폭포의 흥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한참 동안 배꼽을 잡았는데 고기 병을 보니 벌써 하나 가득 들었다. 얼른 꺼내어 작은 웅덩이에 쏟아 부으니 너무 많았다. 더 던질 필요가 없을 만큼. 강의 피라미와는 빛깔부터 다른 선유동의 물고기. 우린 군침이 돌아 고기 배를 따서 초고추장에 푹 담가 입에 넣었다. 아, 이 고소한, 쫄깃한, 어떤 강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칠 맛! 다시 이번엔 깻잎에 싸서 소주 한잔에 입에 쏙, 기가 막히다. 실상 우린 이 맛을 못 잊어 지리산에 왔는지도 모른다. 아재가 내려온다. 멀리서도 그의 몸에서 풀풀 배어나는 향기는, 아 그 향기는 도시에선 감히 맡아볼 수 없는 진향의 더덕.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리 많이 캐었을까. 지리산 귀신은 귀신이었다. 우린 계곡을 만끽했다. 계곡을 이루는 식구들, 소나무, 밤나무, 층층나무, 때죽나무, 피나무, 단풍나무, 생강나무, 옻나무, 싸리나무, 개암나무, 조팝나무, 화살나무, 두릅, 진달래, 철쭉 같은 큰키나무에서 작은키나무, 떨기나무와 원추리, 더덕, 잔대, 도라지, 쑥, 머위, 고사리, 다래, 칡넝쿨, 취나물까지 제각각의 이름을 달고 새롭게 다가왔다. 무조건 참나무라 불렀던 것들도 떡갈, 갈참, 신갈, 상수리, 굴참, 졸참나무로 지평을 넓혔다. 식물도감에서 아리송했던 것들이 내가 누구라고 소리를 질러 내 눈을 깨웠다. 계곡은 이렇게 다양한 소리로 깊이를 더해왔을 것이다. 성조는 그 옛날의 고달픔까지 안주를 더해 세월의 더께를 곁들여 술맛을 즐겼고 아재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오랜 친구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 기뻐하며 마셨다. 아내여, 당신도 지금 나와 함께 하겠지. 당신과 내가 보았던 저 돌배나무와 동글동글한 바위들이 펼치는 이 여름을 보는가. 바닥이 훤히 드러나는 소에서 우리 꼬맹이가 미역을 즐기며 즐거워하던 모습을 기억하는가. 나는 알 수 있다. 지금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하늘이 저렇게 맑은 건 당신이 나를 보며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뭇잎을 살랑거리게 하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당신을 느낀다. 온몸으로. 온 가슴으로. 우린 아재가 캐온 더덕을 손톱으로 껍질을 까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아재가 캐왔던 더덕 중에서,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속에 물이 차있었어. 산삼에 버금간다는 물 찬 더덕. 그걸 당신은 씹었지. 암세포가 사라져가는 기분이 들더라고? 아! 그때까지도 희망이 있었다. 산새가 알을 낳는 신비. 매미가 처절하도록 짝을 부르는 노래. 숨어서 우릴 보고 있을 온갖 짐승들.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를 위하여 자라는 약초들. 천대 받으나 결코 의미를 잃지 않는 고염나무, 돌배나무. 소에서 노니는 물고기. 심지어 크고 작은 돌멩이까지. 술과 함께하는 지리산의 선유동계곡은 우리에게 모든 걸 보여주었다. 우린 모두 옷을 벗었다. 아랫도리는 물에 잠기게 하고 스스로 신선이 되고자 했다. 세상시름은 모두 잊은 채, 아니 잊은 척 하며. 그런데, 우리가 세속에 있음을 일깨우는 광포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기 이 개새끼야!” 약삭바리였다. 살기등등하여 한손에 약초 캐는 호미, 또 한손엔 날이 하얘서 더 섬뜩한 낫을 들고, 얼굴이 시뻘게져서, 헐레벌떡, 헐레벌떡, 뛰어오다 칡넝쿨에 발목이 걸려 비탈에서 앞으로 고꾸라지더니 그의 잘 굴러가는 산타페처럼 돌진해 왔다. “야! 너 이 개새끼! 죽을라고 환장했지!” 무슨 일인가? 나와 성조는 그가 가소로운데, 아재도 가소로웠을까. 고기를 고추장에 찍어 한손에 들고 다른 손엔 술잔을 들어 못 본 척, 못 들은 척 태연하게 먼 산만 바라보다가 그 자가 막 우리 자리에 도착할 즈음 술을 입에 털어 넣고 안주를 씹는다. 정말 맛있게. 그러나 약삭바리는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아랑곳없이 아재에게 발길질을 하고 미처 말릴 틈도 없이 호미와 낫을 팽개치더니 아재를 챙이소에 처박아버렸다. 그때서야 나와 성조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쏜살같이 일어나 팔을 꺾고 정강이를 타격하여 약삭바리를 꼼짝 못하게 주저앉히고 낫과 호미를 멀리멀리 던져버렸다. “야 이 양반아,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다짜고짜 폭력을 써! 우리는 허수아빈 줄 알어? 당신도 나한테 당해볼 거야?” 성조는 체구는 작아도 합기도가 4단이다. 그러나 그는 성조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조용한 선유동이 들썩이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저 쌍놈의 새끼는 죽어야 돼. 야 거러지 새끼야, 남 잘되는 게 그렇게도 배 아프더냐? 왜 남의 일을 망치고 지랄이야!” 그때 아재는 물속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이 자가 이 정도로 화를 낼 때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성조는 금방 태도를 바꿨다. “자자, 그러지 말고 술 한 잔 하면서 자초지종을 말해 봐요.” 성조는 종이컵에 술을 가득 따랐다. “당신들이 참견할 일이 아니오. 사돈 논 사는 것 배 아파하는 저 개새끼하고 해결할 일이오.” 그래도 약삭바리는 성조가 주는 술을 받아 단숨에 마신다. 아재는 바위에 걸터앉아 이산 저산 지리산의 영봉들만 바라보는데, 어차피 벗은 몸인지라 시원한 미역을 즐기다 햇빛에 물기를 말리며 피부를 태우는 것처럼 우리가 봐왔던 아재를 넘어 부처처럼 태연자약할 뿐. “야, 호로상놈의 새끼야!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런 짓을 한 거여. 뚫어진 입으로 말을 해봐, 이 촌놈의 새꺄. 나는 그래도 너한테 한다고 했어. 너 먹고 살으라고 니 물건 팔아줄라고 했어.”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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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5
  •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7회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 * 추석이었단다. 심난한 마음을 다스리려 지리산에 왔었다고. 그때가 마침 송이를 따는 철이었다나? 눈에 뭐가 쓰였는지 송이가 보이더란다. 여기도 저기도. 처음엔 귀한 걸 먹을 수 있다는 호기심에 따고 보니까 솔밭에만 들어가면 자꾸 보이더란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송이 채취에 들어가 열흘 만에 기백만 원을 벌었다고. 눈이 번쩍 뜨여 살길이 보이더란다. 지리산에서 돈이 되는 게 송이만이 아니란 걸 알게 되고, 그래서 그대로 눌러앉았단다. 자신이 감방에 들어가고 나오는 동안에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몸에 좋다니까 환장하고 달려들어 단골이 되었다고. 법을 아는 놈들이 불법을 더 좋아한다나? 그는 약초꾼이 아니었다. 제 잇속 다 챙기는 철저한 장사꾼이자 순수한 약초꾼과 도시의 입맛에 식상한 자들을 오가며 폭리를 취하는 거간꾼이었다. 지리산이 좋아서 여기에 있다기보다는 지리산을 이용하기 위해 온 브로커였다.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오직 혜순 씨뿐이었다. 그녀는 약삭바리의 잔에 술이 떨어지면 술을 따랐고 부침개를 찢어 그 앞에 놓아주기도 하였다. 세 사람의 여자 가운데 가장 충실한 짝이었다. 그는 언젠가는 지리산을 떠나 도시의 진흙탕 속으로 다시 들어가길 열망했다. 시간이 문제일 뿐. 그나 나나 성조도 매한가지, 도시의 인생이었다. “이제 노래방으로 갑시다.” 이야기도 시들해지고 하품이 나올 때쯤 혜순 씨가 생기를 되찾으려 일어섰다. “그럼 가야지. 오늘 좀 늦어도 되지요?” 성조가 게슴츠레한 눈을 끔벅이며 걱정스러운 듯 자영 씨에게 묻자 그녀는 괘안습니더, 가십시더, 하며 일어났다. “오늘 좀 늦어도 되지요?” 나도 서운 씨에게 성조를 따라 똑같이 물었다.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별 말도 없이 관심도 주지 않고 남의 얘기만 듣고 있었기에. “괘안습니더, 가십시더.” 반응은 그녀도 똑같았다. 수줍게 웃는 것까지. 노래방은 의외로 컸다. 방이 열 개는 되는 것 같고, 아직까지 몇 개의 방에선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노래라기보다는 악을 쓰는 것이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도시에서도 잘 가지 않는 노래방엘 지리산에서 오게 된 것이. 노래방 사내가 맥주와 안주를 들고 들어와 먼저 마이크를 잡아 분위기를 띄우고. 성조도 혜순 씨도 약삭바리도 자신의 십팔 번을 불렀다. 나도 부르고 자영 씨도 부르고 서운 씨도 불렀다. 동동주를 마신 속에다 맥주를 부어 이성을 내쫓고. 침침하면서도 번쩍이는 조명에, 군침을 아무리 흘려도 먹을 수 없는 화면의 떡에, 이것저것에 반응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맹렬하게 치솟는 본능에, 도덕도 윤리도 체면도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우린 신나게 노래 부르고 흘러간 고고를 추고 배꼽을 맞추며 블루스로 돌았다. 블루스는 서로 안고서 율동만 주면 되었다. 나의 짝꿍은 여전히 서운 씨. 처음엔 몸을 빼다가 서울에서 많이 놀아본 솜씨의 혜순 씨 강권에 못 이겨 노래를 부르고는 나와 곧잘 어울렸다. 약삭바리는 프로였다. 노래도 춤도, 혜순 씨와 아주 딱 어울렸다. 나쁜 놈 성조. 그는 자영 씨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행여나 자영 씨의 손을 잡고 돌려고 하면 절대로, 절대로 못하게 하니. 만약에 파트너를 바꾸면 스와핑이라나? 인간의 탈을 쓰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범죄, 스와핑. 에라 이 못된 놈! 계속해서 맥주는 들어오고. 노래방 사내의 조작으로 화면엔 매끈한 이국 여성들의 관능적인 자태가 배경과 함께 황홀했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노래방 사내의 블루스 메들리에 내 어깨엔 서운 씨의 얼굴이 얹어지고, 성조와 자영 씨의 가슴과 가슴이 밀착되었으며, 혜순 씨의 손이 약삭바리의 등짝을, 약삭바리의 두 손이 혜순 씨의 엉덩이를 부지런히 쓰다듬었다. 아! 나도 모르게 서운 씨를 안은 팔에 힘이 가해지자 그녀도 팔에 힘을 주었다. 이것은 무얼 말하는가. 뭉클한 그녀의 젖가슴이 느껴지며 호흡이 가빠지고 재빠르게 아랫도리가 부풀어 올랐다. 얼마만인가. 이런 식으로라도 여자를 안아봤던 것이. 자꾸만 스치는 여인의 불두덩과 내 성의 가름. 여인의 입에서 한숨이 터지고 내 정신이 아뜩해졌다. 이대로 자지러질 수 있다면, 내일이 없어도 좋을 것만 같은, 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손가락 하나 들어갈 수 없이 붙어있던 약삭바리와 혜순 씨가 몽롱한 내 눈에 다시 들어왔다. 거긴 더했다. 혜순 씬 약삭바리의 목을 정신없이 핥고 있었다. 약삭바리의 한 손은 젖가슴을 주무르고 한 손은 엉덩이를 더듬고. 아! 이게 무슨 짓인가? 우리가 뭣하고 있는가. 불륜이었다. 내 상상으로 만들어낸 불륜을 소재로 한 장면이 여기에서 펼쳐지다니. 팔에 힘이 빠졌다. 아랫도리가 급격하게 오므라들었다. 자영 씨와 손을 마주 잡은 성조는 눈을 감고 마냥 꿈길을 거닐 듯 행복에 겨워 보였다. 내 눈은 다시 혜순 씨에게 못 박혔다. 약삭바리는 혜순 씨의 어깨를 휘감아 고개를 목에 파묻었으며 혜순 씬 약삭바리의 허리를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있었다. 환락의 절정이었다. 노련한 노래방 사내의 간드러진 블루스 메들리는 잘도 넘어가고,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의 몸이 떨어졌다. 눈이 똑같이 이글거리던 남자와 여자는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방을 빠져나갔다. 어디 가는가. 갈증이 일었다. 팔을 풀어 서운 씨를 의자에 앉힌 다음 맥주를 따라 건네고 내 잔에도 따라 잔을 서로 부딪친 뒤 쭉 들이켰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노래방은 자주 갑니까?” 엉뚱한, 참 싱거운 질문을 다정하게 웃으며 던졌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며 나만큼이나 다정하게 웃었다. “아뇨. 몇 년 만인지도 모르겠어예.” 그럴 것이다. 짐작할 만했다. “갈 기회도 없고 갈 사람도 없습니더.” 그것도 그럴 것이다. “어째서 재혼을 안 하십니까?”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재혼하실랍니꺼?” “아뇨.” “지도 안합니더. 무서버서 어떻게 합니꺼. 혼자 살아도 걱정 없어예.” “뭐가 무서워요?” “시상이 다 안 그렇습니꺼? 선생님이사 안 그래 뵈지만서도.” “그럼 나랑 하면 되겠네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갑자기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뭐라고예?”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농담 마이소. 어림 택도 없습니더.” 펄쩍 뛰는 그녀가 우스웠다. 더했다가는 자신을 놀리는 걸로 알까 두려웠다. 그녀는 닳고 닳은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참 순수해 보였다. “그럼 우리도 친구 합시다. 가끔 전화도 하고 저 친구 없이도 오면 만나고.” 이 생각도 괜찮았다. “그래도 될까예. 지가 너무 부족한 게 많아서. 친구라 해도 격이 맞아야 되는데예.”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는 서운 씨가 참 좋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느껴졌다. “동정이 아니고예?” “참말입니다.” “고맙습니대이.” 그때 성조와 자영 씨도 자리에 앉았다. “야, 도후야! 너 우리 방해할래? 너희들이 앉아 있으니까 자영 씨가 자꾸만 앉자고 그러잖아.” “너 우리 신경 쓰지 마라. 우리도 할 얘기가 있을 거 아냐?” “아이고, 그랬어? 그래도 꼭 붙어서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혼자서 감정을 잡아 노래하던 노래방 사내가 멈춤 단추를 누르고. “그럼 조금 쉬었다 하세요.” 하며 나갔다. 얼굴엔 땀이 흥건했다. “그런데 혜순 씨랑 어디 간 거야?” 성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궁금한 차였다. “둘이 혹시 붙어버린 것 아냐? 아까 보니까 우리가 있어도 물불 안 가리던데? 하긴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자영 씨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성조를 밀쳤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꺼. 혜순이 그렇게 헤픈 애 아닙니더.” “어떻게 알아요? 서울에서 바람만 잔뜩 들었는지. 남편은 이제 힘도 못 쓸 텐데. 아직 혜순 씬 팔팔하잖습니까.” “그런 얘기 하지 마십시더. 지가 노래 하나 할까예?” “아, 좋죠.” 그녀는 동백아가씨를 불렀다. 그녀를 닮은 노래였다. 오줌이 마려웠다. 문을 열고 나갔다. 다른 방들은 모두 불이 꺼지고 조용했다. 복도를 가로질러 화장실 표지를 향해 곧장 갔다. 화장실은 제일 안쪽에 있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니 두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운 씨는 그렇다 하지만 자영 씨는 너무 늦었다. 아무리 어릴 적 소꿉친구라지만 남자와 어울린다는 게 남편 입장에선 기분 나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만 가야겠다. 그나저나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분명 혜순 씨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성조의 말같이 정말 붙어버리려고 갔는가? 붙어버렸다면 오늘이 처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술자리에서도 너무 다정했고 노래방에서도 너무 노골적이지 않았는가. 바지 자크를 올리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다음엔 성조 몰래 나 혼자 와볼까? 서운 씨의 얼굴이 떠오르자 엉뚱한 생각이 꿈틀거렸다. 화장실 문을 밀었다. 그리고 커브를 도는 순간, 우리가 노는 방 바로 옆에서 혜순 씨가 나와 고개를 숙인 채 옷매무새를 만지작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 방에선 다시 약삭바리가 나오고. 아! 틀림없었다. 그들은 붙어버렸다. 그 방은 분명히 불이 꺼져있었다. 급히 돌아서서 화장실로 들어와 두 개의 칸막이 중 안쪽으로 들어가 좌변기에 앉았다.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발자국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리는데. 성조의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하는 노래가 까마득하게 들려왔다. 아, 여기는 여자들이 소변을 보는 곳인데? 바깥쪽 칸막이로 들어가면 다행이지만 여기 문을 열려고 하면 기침을 하자. 아무것도 모르는 척. 드디어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 옆 칸막이로 들어가는 소리, 휴-. 여자의 오줌이 거침없이 쏟아지는 소리, 다시 화장실 문 열리는 소리. 남자의 오줌 내갈기는 소리. “자기, 오늘은 같이 있자.” 여자의 소리.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내일 올게.” 남자의 소리. “같이 있고 싶은데.” 여자의 코맹맹이 소리. “어허. 저 새끼들 알아서 좋을 것 없잖아. 선유도 그렇고.” 남자의 여유가 넘치는 소리. 나와 성조는 새끼였고 자영 씬 선유였다. “쟤네들이 어떻게 알아?” 여자의 애가 타는 소리. “그러지 말고 어서 들어가. 우리 나온 지 한참 됐어. 벌써 눈치 챘는지도 몰라.” 남자가 달래는 소리. “자긴 바로 갈 거야?” 여자의 체념 소리. “둘이 나란히 들어가면 이상하게 볼 것 아냐. 내일 일 때문에 분위기 깰까봐 먼저 갔다고 그래. 자긴 술 깨려고 바람 좀 쐬었다고 하면 되잖아.” 남자의 볼 장 다 본 소리. 여자가 칸막이에서 나왔다. “알았어. 내일 전화할게, 응?” “그래, 간다. 자기가 여기 계산할 거지?” “걱정 마. 빨리 가. 나 손 씻고 나갈게.” 입 맞추는 소리. 내 짐작이 들어맞았다. 그들은 벌써부터 서로 통하고 있었다. 남자보다도 여자가 더 적극적이고. 처음엔 남자가 더 적극적이었겠지. 남의 것이 더 커 보이고 더 맛있어 보이는 법이니까. 또한 은밀하게 남의 것 훔쳐 먹는 그 기막힌 맛을 저 약삭바리는 달통했겠지. 있는 힘껏, 있는 재주 다 바쳐서, 흠뻑 빠져들도록. 남자가 나가고 조금 있다 여자도 나갔다. 그들의 대화를 안 들은 것만 못했다. 그러나 내 소설 속 불륜은 더했었다. 너무나 다급하여 화장실 변기 위에서 그 짓을 하도록 그렸으니까. 그래도 그들은 감쪽같이 잘만 살았다. 공의를 믿었던 나는 아내가 무참한 모습으로 떠나가자 더 이상 공의를 믿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노는 방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다 그만 두었다. 노래방 사내가 계산대에 엎드려 자고 있었기에 알리바이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으로 들어갔다. 혜순 씨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야 인마, 너는 서운 씨 혼자 두고 어딜 갔다 오냐? 우리가 춤을 못 추잖아.” “술이 취한다. 화장실 갔다가 바람 좀 쏘였다. 그만 가자. 두 시가 넘었다.” “엉!” 성조는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더니 벌떡 일어났다. “아이고 큰일 나버렸네. 자영 씨, 어쩔까. 신랑한테 혼나게 생겼으니.” “벌써 곯아떨어졌을 낍니더. 그래도 가야지예. 혜순이 노래 끝나면 가입시더.” 우리는 혜순 씨의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섹시한 여가수가 부른 사랑의 미로라는 노래를 그녀는 구성지게도 불렀다. ~그대 이 작은 가슴에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노래여~ 참으로 천연덕스러웠다, 혜순 씨는. 이런 게 인생인가? 성조는 자영 씨를 태우자마자 날아가 버리고. 나는 서운 씨의 차를 탔다. 성조가 그러지 않았어도 그녀의 차를 탈 생각이었는데. 혜순 씨는 내일 또 오라는 속없는 말을 하고 손을 흔들었다. 차가 어둠을 뚫고 내려갔다. 몸은 한없이 피곤한데도 정신은 말똥말똥. 그때 나는 소쩍새 소리를 들었다. 환청이 아니었다. 분명히 바람을 가르고 날아온 소쩍새 울음이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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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02
  •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6회
    박희주 시인. 소설가. 신인.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 * “어서 오십시오!” 두 남자가 모기장을 들추며 나왔다. 아하, 자영 씨가 말하던 황가, 혜순 씨가 부르던 황 사장은 바로 약삭바리였다. 돈을 잘 벌면 약초꾼도 사장 소리를 듣는구나. 하긴 상대가 들어 기분 좋을 수 있다면 미덕일 수 있겠지. 성조는 벌써 그라는 걸 알고 있었고 조금 전 자영 씨의 반응은 분명 달갑지 않은 인간을 대하는 것이었으니. “안녕하셨습니까?” 성조는 구면인 노래방 사장이라는 사내의 손을 잡아 흔들며 약삭바리를 보았다. “여기 오셨었군요.” “아, 예. 피곤하시다면서 올라 오셨네요?” “친구니까 안 보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렇습니까? 여기도 친구였구먼요. 나는 심심하기도 해서 대포 한 잔 하고 들어가려고 왔습니다.” 약삭바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성조도 객쩍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지만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서로간의 인사가 끝나자 노래방 사내는 잠깐 나온 거라며 놀러오라는 말을 남기고 지하에 있는 노래방으로 사라졌다. 약삭바리와 노래방 사내는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다. 상에는 산나물과 버섯을 넣은 부침개가 동동주와 함께 놓여 있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으니 혜순 씨가 부침개를 더한다며 식당으로 나가자, 자영 씨도 따라 나가 술자리는 어색한 침묵이 흘러 계곡의 물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왔다. “이런 데서 노래방이 잘 되나?” 내가 혼잣말 비슷하게 중얼거리자 약삭바리가 재빠르게 말을 받는다. “요즘이 대목 아닙니까. 사람들이 겨울에만 뜸하지 워낙 많이 오니까요. 우선 이거라도 안주 삼아 한잔씩 하시죠?” “그럽시다.” 성조가 상으로 다가앉자 약삭바리는 비어있는 세 개의 잔에 술을 부었다. 배가 부르니 술 마실 생각도 없었다. “여기 오실 줄 알았으면 좋은 거 있는데 가져올 걸 그랬습니다.” “뭔데요?” 성조는 술잔을 들고 고개를 쳐들었다. “살쾡이 한 마리 얼려 놓은 게 있거든요. 고추장만 넣고 볶아도 맛이 죽입니다.” “그래요?” 그런데 별 관심이 없다는 투다. 그때 자영 씨가 잔과 주전자를 들고 들어와 성조 옆에 앉았다. 성조의 표정이 금방 환해졌다. 얼마 후엔 혜순 씨가 각종 나물을 담은 접시가 가득한 쟁반을 들고 들어오는데 불 밝힌 차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혜순 씬 마루에 쟁반을 놓고 돌아서서 후다닥 뛰쳐나가더니 개선장군처럼 떠들썩한 수다와 함께 서운 씨의 손을 잡고 돌아왔다. 서운 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온 것이다. 성조가 일어나 서운 씨를 반기며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내 옆자리에 앉힌다. 참으로 친절하기도 했다. “싱글끼리 잘 해봐.” 성조의 말에 모두가 웃으며 박수를 쳤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자동적으로 혜순 씬 약삭바리 옆에 앉게 되어 사각의 상엔 여자 남자, 둘, 둘, 둘, 짝이 되었다. 술잔이 돌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남자가 마시니 여자들도 마셨다. 끊임없이 잔을 부딪치고. 곧 일어설 것 같던 약삭바리도 함께 어울렸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앙금도 사라졌다. 순간순간 성조는 끔찍이도 자영 씨를 챙겼다. 자영 씬 쑥스러워 하면서도 결코 싫지 않은 표정. 가끔씩 혜순 씨와 약삭바리도 속삭거리다가 서로 잔을 채워주며 다정했다. 나와 서운 씨만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서로 할 말이 없었다. 지극히 의례적인 말 외에는. 그러다보니 성조가 낄낄거리면 같이 낄낄거렸고 혜순 씨가 깔깔거리면 따라서 깔깔거렸다. 서운 씨와 자영 씨는 자신들의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몹시 즐거워했다. 성조와 혜순 씨가 서로 뒤질세라 그 옛날과 현재를 오르내리며 갖은 얘기를 쏟아 붓는데……. 고달프기만 했던 옛날도 다 아름다웠다. 배고픔도, 헐벗음도, 지긋지긋하게 산을 오르고 내려 다리가 아팠던 기억도 그들에겐 아름다웠다. 머리가 커져 고향을 떠나자마자 맛보게 된 낯선 도시의 설움도 아름다웠다. 아픔도 아픔인 줄 몰랐단다. 가난도 가난인 줄 몰랐단다. 사는 게 다 그런 줄 알았단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그게 아니었다. 배우지 못한 자격지심이 일찌감치 세상살이의 이치를 깨닫게 했다. 그때그때 충실했다. 그러다보니…….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사는 게 거기서 거기고……. 세상은 공평하더라. 이제 나름의 한 세상을 이룬 지금 자신이 대견해 보이고……. 여유가 생겼다. 아무도 모르게 비밀을 간직하고픈 모험, 싫지 않더라. 그 짜릿함을 나만 알고 즐기는데 까짓 거, 조금 흥청거린들 어떠랴. 하늘도 땅도 보상 차원에서 눈감아 줄 것이라 믿는단다. 나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잖은가. 그렇게 자신들을 위로하는 사이 서서히 눈이 풀리고 입이 풀렸다. 급기야 배꼽 밑을 간질이는 자극적인 얘기도 서슴없이 나오고. 우린 낄낄, 깔깔거렸다. 그 얘긴 질리지도 않고 언제 들어도 재미난 화제였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약삭바리는 대화에 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관객이 되었다. 성조는 신명이 났고 혜순 씬 처음부터 끝까지 우쭐해 있었다. “지리산이 나를 부르더라.” 신파조였다. 혜순 씬 열여덟까지 산골짜기를 맴돌다가 서울로 갔단다. 지리산을 닮아 튼실한 몸이었고. 사업을 한다는 딸만 셋인 부잣집의 식모살이. 허구 헌 날 비탈진 밭을 매고 산을 헤집으며 돈 될 것을 찾는 일보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서울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나. 차츰 수돗물에 얼굴이 하얘지고 손이 보들보들해져 옷만 잘 차려 입으면 여대생이 부럽지 않았단다. 비실비실하여 언제나 창백한 몰골의 안주인이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집안은 깔끔하고, 아이들을 잘 챙겨 주었더니 그녀를 친언니처럼 따랐다고. 그런데 사십대였던 바깥주인은 그 집의 제왕. 그의 사업에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고 그가 무슨 짓을 하던 시비하지 않았으며 그의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안주인은 죽어지내고 아이들은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그의 속옷을 빨고 와이셔츠를 다리는 혜순이는 틀렸다. 당연한 것처럼 옷을 벗으라 했고 목 좀 깨끗이 씻으라 했단다. 오 년이 지났을 때 시름시름 앓던 안주인이 죽었다. 화장실에서 웃었을 바깥주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연한 것처럼 혜순에게 옷을 벗으라 했고 그녀도 서슴없이 그 품에 안겼다.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단다. 튼실한 그녀는 금방 아들을 낳았고 안주인의 자리는 자동으로 그녀의 것이 되었다. 바깥주인은 더 이상 제왕이 아니었다. 그녀의 포로일 뿐. 부러울 게 없는 생활, 그게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행복이라는 말에 의심이 가고……. “그래서 이 산장을 사버린 거야.” 신파조의 신데렐라는 이런 건가? 고희를 넘겼을 그녀의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다. 술을 마셔 섹시함이 넘쳐흐르는 그녀의 몸에 달라붙어 쪼그라진 몸뚱어리로 아등바등 헉헉대는 모습이. 그러자 그녀의 모습이 어째서 우쭐함을 넘어 요란한 빈 깡통으로 쓸쓸해 보이는 것일까. 그 순간 옆에 앉아있는 약삭바리의 눈이 번뜩이는 걸 보았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런 눈이었다. 이미 1차를 했던 터라 술기운이 얼큰하게 올랐다. 서먹함이 사라지고 우울도 사라졌다. 술잔이 이리 가고 저리 가고. 아, 옛날이여! 세세세. 주거니 받거니 세세세. 정자와 계곡과 어둠의 산도 세세세. 성조의 입이 다물 줄을 몰라 세세세. 서로서로 술이 취해 세세세. 그렇게, 세세세 잔치는 질펀해져 가는데. 성조의 낯 뜨거운 친구 자랑. 그리고 또 책과 서명. 오늘만 세 번째로 고민을 해야 했다. 장소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분위기에 따라서. 하긴 처음부터 멋 부리느라 이름만 써서 주지 못한 내 불찰이었으니. 술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생각했다. 그리고 썼다. <산장의 여인이 부르는 계곡의 노래, 지리산이 흘리는 눈물입니다.> 책 두 권에 똑같이 썼다. 이들이 내 감상을 알까, 곳곳이 얼룩져가는 내 나름의 언짢음을. 빈 깡통의 슬픔을. 그런데도 영광이라며 약삭바리는 노래방에 스페셜로 모시겠다고 하고, 혜순 씨도 빠득빠득 우겼다. 자기 집에 온 손님은 자기가 모셔야 한다고. 우스웠다. 나 같은 무명작가를, 문단에 간신히 이름만 올려놓은 말석에게 무조건 작가라니까 황송해하는 이들이 우스웠다. 하지만 어쩌랴. 그들은 작가로부터 직접 책을 받고 사인까지 받았다는 게 무한한 영광이라는데. 그것이 거짓이든 참이든. 그때부터 약삭바리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내게 깍듯했다. “법대를 졸업했지요.” 이렇게 되는 것인가. 화개장터를 들어설 때부터 서운 씨의 안타까운 이별을 듣게 되더니 아재 부부의 희한한 인연을 들었다. 40년 전 지리산 꼬맹이들의 아름다운(?) 노래를 합창으로 들었고 조금은 억지스러운 혜순 씨의 지난날과 현실을 얼핏 보았다. 이제 약삭바리까지 지리산으로 흘러들어온 사연을 얘기하려 한다. 전력이 궁금하긴 했었다. 뭘 하다 굴러들어온 작잔가 하고. 법대를 졸업한 인텔리였다는 건 정말 뜻밖이었다. 내가 작가라는 걸 의식한 것인가? 이 상황이 말이다. 그는 애당초 도시에서 태어나 산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부친은 옛날에 사법서사, 지금은 법무사. 부친의 소망은 그가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단다. 어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온 그 말에 자연스럽게 법대로 진학하게 되고. 한 번, 두 번, 사법고시에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일곱 번을 계속해서 떨어졌다. 나이는 들어가고 자신이 없어지니 삶의 의욕마저 사라지더라나. 구청 공무원이었던 부인이 열 번까진 도전해보라 했지만 스스로 지겨워 때려치웠다고. 그러나 10년 공부가 너무 아까워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을 했는데 거기에서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에게 잠재해 있던 로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단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이 세상, 죽을 사람도 살리고 산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자신이 되지 못한 변호사조차 돈이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더란다. 마침내 자신이 모시는 변호사보다도 입김이 강해지자 스스로 독립하여 풋내기 변호사를 고용하기에 이르렀단다. 수임은 날로 늘어 돈을 갈퀴로 긁게 되고, 자신은 로비의 귀재 소리를 듣게 되었다는데, 욕심이었을까. 빌딩을 건립하여 수십 명의 변호사를 거느리고 싶어졌다. 은행 융자를 받아 건축을 시작하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그런데 그렇게도 잘 돌아가던 머리가 욕심이 지나쳐 너무 돌아가 버린 걸까. 어느 사건에 휘말려갔다.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자신은 어느새 깃털이 되어 있었으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던가. 왜 그걸 미처 몰랐을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몸통은 쏙 빠지고 깃털만 비리에 걸려들었다. 때마침 IMF사태가 터지고. 이자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건축은 중단되고. 아내와는 위장이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런 머리라도 돌아간 걸 다행으로 여기며. 그러나 그는 감방에서 자신의 옷이 사그리 벗겨지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형기를 채우고 나와 보니 자신은 이미 로비의 귀재가 아니었다. 형편없는 악질브로커로 전락해 있었다. 만나지 못해 안달이던 놈들이 그를 피했다. 아직은 이르구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 때를 기다리자. 그러나 거들먹거리는 데에 익숙해진 몸이라 살길이 막막했다. “아무리 부정부패 척결 운운해도 뇌물 좋아하지 않는 놈 없습디다. 여기 송이 많이 나죠? 그때 송이도 한몫 했습니다. 억 단위로 송이를 샀으니까요. 그래서 송이를 알았습니다. 그때가 좋았지요. 내 생의 봄날이었습니다. 조용히 엎드려 있다가 언젠가는 돌아갈 것입니다.” 그도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움의 대상은 정반대였다. 성조네는 배고프고 고달프지만 순수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반면에 그는 배부르고 편안하지만 불순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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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5
  •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5회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 * “아직은 없습니다. 필요하면 연락드리지요.” 만동과 그 엄마는 이제 닭죽에 매달리고 우린 매운탕을 안주로 삼았다. 얼큰하고 내 입맛에 딱 맞아 자영 씨의 솜씨를 알겠다. “선기는 만나셨지요?” “아, 예. 조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습니다. 술이 취해 먼저 들어갔어요.” “그 자식 그러다 곧 뒈질 거예요. 웬 놈의 술을 그렇게 처먹는지. 뭐 좀 있답니까?” 그는 자리에 없는 아재를 씹고 또 씹었다. 선기가 아재의 이름인 건 처음 알았다. 성조가 입을 떡 벌리고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비위가 상한 거다. 자영 씨는 성조의 눈치를 살피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안 물어 봤어요.” “참 한심한 인간입니다, 자식새끼도 있는 몸이. 그렇게 사느니 우리 같으면 진작 혀 깨물고 죽었을 겁니다.” 성조의 얼굴이 굳어졌다. 성질이 났다는 거다. “아마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있어도 걔 물건이라 봐야 젤 핫바리지요. 부지런을 떨어도 좋은 걸 얻을 수 있을까말까 한데 그러고 다니니 아마 남들이 다 훑고 난 찌끄러기나 겨우 건질 겁니다. 하는 꼬라지가 그러니 집안 꼴 좀 보십시오. 돼지굴인지 소굴인지. 실력은 인정해요. 지리산 구석구석 뭐가 나고 뭐가 있는지 귀신이지요. 그런데 그러면 뭐합니까. 술에 뭔 웬수졌다고 그렇게도 마셔대고 처먹기만 하면 개차반이니. 난 그만큼 알지 못해도 이제 선기와 내 차이는 자전거와 자동차라고나 할까요.” 참으로 안하무인이다. 아재 부인이 아무리 어리뜩할지라도 이게 할 소린가? “혹 멧돼지나 노루 고기 맛보시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심지어 곰을 구해달라면 구해놓겠습니다. 살쾡이, 너구리, 오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남자 양기 돋구는 능사도요. 삼도 구할 수 있어요. 선기한텐 아예 기대도 마세요. 어림도 없습니다.” 기가 막혔다. 그러나 성조와 난 듣고만 있었다. 그가 말하는 삼은 장뇌 아니면 산삼이리라. “재미 좀 보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벨이 꼬여서. “제 단골이 기백이에요. 전화가 불이 납니다. 벼라 별 것을 다 구해달라고 허는 데는 미치겠어요. 그래도 단골 안 놓치려고 무척 애쓰지요. 그래도 어지간한 건 다 들어 줬어요. 어떤 건 시간이 좀 걸려 그렇지. 선기는 벌써 틀렸어요. 여기서도 잘만 머리 굴리면 도시의 어지간한 월급쟁이 부럽지 않아요.” 그래서 그럴까. 그가 작업 나갈 때는 1t트럭을 몰지만 그가 강조하는 비즈니스엔 최신형 산타페를 굴린단다. “그렇겠네요.” “무슨 일이나 마찬가지로 머리 쓰기에 달렸어요. 좆 빠져라 다녀봐야 힘만 들지 아무 소용없어요. 우선 돈이 돼야지요.” “…….” “그리고 저 어린앨 뭐 하러 산에 데리고 다니느냐 말입니다. 돈이나 많이 벌어 잘 가르칠 생각을 해야지요. 요즘이 어떤 시댄데 대대로 산 탈 일 있어요?” “?” “뭐니뭐니해도 돈이 최고인 세상 아닙니까?” 할 말을 잃었다. 과연 돈이 최곤가? 자영 씬 나간 지 오래고 만동과 그 엄마도 그릇을 다 비웠음인지 그만 나갈 태세다. 성조는 한시라도 빨리 세세세를 하고 싶은 눈치고. “오늘은 피곤하니까 다음에 얘기합시다.” 드디어 성조가 참지 못했는가, 그만 가달라는 말이다. 나도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럴까요. 그럼 연락 주십쇼. 내일 당장이라도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만 하시고.” 그는 일어서면서 트림을 걸쭉하게 하곤 밖으로 나갔다. 약삭빠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잘 살고 그걸 본받으라, 부추기는 세태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약삭바리라 부르기로 했다. 우리도 일어섰다. 성조는 세세세를 위해 이곳에서 4킬로나 더 깊숙한 계곡에 있는 산장으로 가야만 한다. 혜순 씨가 있는. 아재 부인과 만동이도 일어서 나갔다. 잘 먹었다는 인사도 할 줄 모르고 성조를 향해 멀뚱멀뚱 몇 차례 눈만 끔벅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아재를 생각하니 그들 모자가 한없이 가엾게 느껴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문소리가 연이어 들리자 자영 씨가 가게에서 나온다. “신랑이 뭐라 안 해요?” 성조는 자영 씨가 자기로 인해 화를 입을까 걱정인 모양. “세세세 친구는 예외랍니더.” 성조의 입이 다시 찢어졌다. “봤지, 도후야. 니 첫사랑은 신랑 무서워 나오지도 못한다며?” 나의 첫사랑? 그녀는 왜 들먹이는가.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신 이루어질 가망 없는 그 인연을. “너 모르는구나. 첫사랑은 가슴에 묻어놓는 거야. 자꾸 만나면 그게 첫사랑이냐?” 자영 씨가 깜짝 놀란다. “아니라예. 지까진 게 무슨 첫사랑이겄습니꺼. 괜히 웃을라고 이럽니더.” “알고 있습니다. 첫사랑인 거.” 나도 능청을 떨었다. 성조가 자영 씨의 손을 잡는다. “보고도 모르냐. 이렇게 좋은 걸?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다고 내가 했잖냐.” “그래, 엄청 좋겠다. 아니 부럽다, 부러워.” “걱정 마. 서운이 짝꿍 시켜줄게. 서운 씨 온다고 하지요?” “아, 예. 그리로 오라 했습니더.” “봐라. 온다고 하잖아. 너 오늘 임자 만난 거야.” 느물느물한 성조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 성조를 위해 조수석을 수줍어하는 자영 씨에게 억지로 양보하고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성조 왈. “너 눈치 없이 옆에 앉았으면 계곡에 처박아 버릴라고 했다.” “그래, 나도 죽기 싫었어.” 성조는 낄낄거리고 나는 그의 비위를 맞췄다. 지리산은 깊다.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도깨비소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난 구불구불한 도로를 어둠을 헤치며 차는 천천히 달렸다. 고달팠던 옛날이 생각났을까. 성조가 들떴던 입을 다물고 의외로 조용하다. 차창으로 들어온 바람은 향기롭고 감미로웠다. 산은 시끌벅적했다. 계곡의 물소리에, 온갖 산새소리에, 짐승이 짝을 부르는 소리에, 갖가지 벌레소리에,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싱싱한 숨소리에. 그러나 그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지리산이 원래 가지고 있는 소리, 욕심도 티도 없는 맑은 소리,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자연의 교향곡이기 때문이리라. 우린 얼마 후 혜순이 주인인 개골산장에 도착했다. 여긴 또 다른 분위기로 우릴 반긴다. 더 휘황하고 더 널찍하고 더 깊숙하게. 계곡 비탈을 깎아 만든 3층 건물에 민박은 기본이고 식당과 노래방이 있고 그 옆으로 정자가 있었다. 옥상에는 하얀 바탕에 청색 글씨로 개골산장이란 간판이 매달려 불을 환하게 밝혔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노래방을 표시하는 레온의 불빛은 도시에 사는 내가 매일 보는 것이지만 왠지 낯설게 느껴지고. 주차장엔 피서객들의 차가 가득했다. 밤이 늦어서인지 식당은 텅 비었다. 산채비빔밥, 산채백반, 토종닭백숙, 닭도리탕, 버섯전골, 더덕동동주, 은어회, 은어튀김이 식당 앞 유리에 가지런히 쓰여 있다. 우리는 식당을 지나쳐 정자 쪽으로 향했다. 정자에 앉아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모기장을 통해 보인다. 성조가 자영 씨에게 물었다. “전화 안했어요?” “일부러 안했습니더. 놀래킬려고예.” 그때 정자에서 차 소리를 듣고 우리가 다가가는 걸 보았는지 나시 셔츠에 체크무늬치마를 입은 여자가 일어나 모기장을 제치고 우리에게로 왔다. 풍만한 가슴에 비해 허리는 가늘어 펄럭이는 치마 속 엉덩이가 궁금할 정도였다. “어머! 이게 누구야? 자영이 네가 웬 일이야!” 그녀는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나 말고 여기 보거래이.” 여자가 성조를 보았다. 수수한 자영 씨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세련된 파마머리, 옷차림, 짙은 화장이 도시의 냄새를 확 풍기고 있었다. 혜순 씨라 했던가. 오뚝한 콧날에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쌍까풀진 눈, 벌어진 입이 유난히 커보였다. “어머머머, 김 사장 아냐!” “잘 있었어? 늙지도 않는가봐?” “전화 좀 주지 않고? 이렇게 쳐들어오는 법이 어딨니?” 여자는 성조와 자영 씨를 번갈아보며 입을 다물 줄을 모른다. 여기 같이 살면서도 이게 얼마만이니? 서로 바쁘니까. 놀러왔어? 혜순 씨 보러 왔지. 입에 침이나 바르시지. 진짜야. 둘이 애인 같네? 김 사장이 자영이 좋아하는 줄은 알지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노? 아님 말고. 잘 본 거야. 그렇지? 그런데 이 분은? 혜순 씨가 끝내 나를 쳐다봤다. “아 참, 친군데 작가야.” “맞아. 자영이 니가 얘기했던?” “그래, 맞다 아이가.” “언젠가 같이 오셨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성조 친구, 김도후라고 합니다.” 고개를 꾸벅였다. 뒤늦게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청승맞게 떠있을 달이. “중요한 건 홀애비라는 사실이야.” 성조가 그 말을 왜 안하나 했었다. 이젠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 말을. “그래요? 그럼 서운이 오라 그러자!” “기발한 아이디어네!” 혜순 씨가 큰 발견이나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자 성조는 시치미를 떼고 맞장구를 쳤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이들이 평소엔 드러내지 않는 관음증의 대상이 된 것만 같은. “온다 했다.” “그래?” “그런데 아직 손님 있노?” “아냐, 황 사장하고 노래방 신 사장이야.” “황가? 그 인간이 어찌 여깄노?” 자영 씨가 정색을 하고 십여 미터 떨어진 정자를 보며 물었다. “자주 들른다. 손님도 많이 데리고 오고. 온지 얼마 안 됐어. 올라가자. 김 사장도 소개 시켜 주게.” “벌써 안다 아이가.” “그래? 그럼 잘 됐네, 뭐.” 혜순 씨가 앞장을 서자 성조와 자영 씨는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발걸음을 옮겼다. 성조는 어리둥절한 나를 끌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서늘해진 이유를 난 알지 못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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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15
  •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4회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 * “아재, 만동이하고 아지매 불러와요.” 성조의 깊은 소갈머리를 알겠다. “놔 두이소.” 그는 신세지기 싫은 모양이다. “많이 있잖아요. 남으면 뭐합니까?” “밥 먹었을 깁니다.” “그럼 내가 다녀올게요.” “에이, 그냥 놔 두이소.” 아재는 술부터 쭉 들이킨다. 보다 못한 성조가 일어서 나가며 오토바이까지 갖다 놓겠단다. 아재는 자작으로 거듭 술잔을 비우고 나는 자영 씨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사모님 돌아가셨지예?” 자영 씬 술잔을 부딪치고 나서 조용히 물었다. “아셨습니까?” “책 보고 알았습니더.” “많이 고생하다 갔습니다.” 자영 씨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자 묵묵히 술을 마시던 아재가 더 놀란다. “돌아가셨다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기울였다. 아재는 내내 혀를 끌끌 찼다. “어쩐대요, 너무너무 예쁘시던데.” “제 복이 거기까진가 봐요.” “사모님한테는 안 될 말이지만 어떡합니꺼. 산 사람은 살아야지예.” 숱하게 듣고 또 당연한 말이지만 자영 씨의 말은 남다르게 들렸다. “그래야지요.” “재혼하셔야지예?” “생각도 안하고 있습니다.” “와요? 주변에 좋은 여자 많으실 텐데예. 인상이 좋으셔서” “빛 좋은 개살굽니다.” 그때 성조가 만동과 거대한 체구의 부인을 데리고 들어섰다. “만동아, 많이 먹어라. 아지매도 어서 드세요.” 자리가 꽉 찼다. 만동은 닭고길 보자마자 다리를 하나 들고, 부인도 뒤지지 않고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한 잔 하이소, 김 사장.” “마셔야지요. 그런데 아재 잔보다는 자영 씨 잔부터 받으면 안 될까? 세세세 친군데.” “허허허, 그럼 그렇게 하이소.” 성조의 말에 자영 씬 웃으며 잔을 가득 채웠다. 그걸 반쯤 마신 성조가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아재를 부른다. “아재, 오토바이 뒤에 실은 자루 속에 있는 게 도대체 뭐요? 덫과 올무 같던데?” “몰라도 됩니다.” “아재 덫 놔요? 그거 불법인데?” “몰라도 됩니다. 나는 절대로 덫이나 올무 질은 안합니더.” “그럼 그게 뭐냐고요?” “몰라도 된다니까요.” 성조는 심각한데 아재는 술만 맛있게 홀짝였다. “만동 아빠 덫 같은 거 진짜 안합니더.” “정말입니까?” “하먼요.” 자영 씨가 나선다. 그때서야 성조는 안심이 되는지 술을 쭉 들이켰다. 첫사랑의 말이라서 믿음이 가는 걸까. 술자리는 무르익어 갔다. 아재는 안주보다는 술을 탐했고 그 식구들은 눈치라곤 모른다는 듯 안주를 탐했다. 성조는 하고 또 했던 옛날 얘기의 되새김질에 흠뻑 빠져 헤어날 줄 모르다가 간간이 미안한지 나를 끌어들였으나 그건 제 입맛을 돋우자는 양념에 불과했다. 밤이 깊어갔다. 계곡물은 잠도 자지 않고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히는 소릴 계속해서 내질렀다. 그 소린 밤에나 느낄 수 있는 넉넉한 지리산의 여백이었다. 잔을 채우기가 무섭게 마셔대던 아재는 벌써 취했다. 앉아서도 몸을 가누지 못해 흐느적거리며 가물가물 졸고, 그걸 보는 성조는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아재, 그만 들어가 주무세요. 내일 선유동계곡이나 갑시다.” “아, 가야지요. 거기가 진짜 우리 동네 아닙니꺼.”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진 소리. 그래도 성조의 말에 아재는 비틀거리면서도 간신히 일어나 눈이 거의 감긴 채 문을 열고 나갔다. 걸음걸이가 위태로워 곧 쓰러질 것만 같은데, 아들과 부인은 그러든 말든 열심히 고기만을 탐한다. 성조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따라 나가 부축하고, 한참 만에 돌아와 자영 씨에게 묻는다. “요즘도 매일 술이지요?” “그게 낙이지예.” “식구들 끼니는 어떡하고요.” “그래도 굶기진 않습니더. 할 도리는 안합니꺼.” 성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웃음을 띠며 묻는다. “혜순 씨 내려왔습니까?” 혜순 씨라면 성조의 또 다른 세세세 친구다. 서울에서 사는데 민박과 음식점을 겸하는 산장을 인수하여 바쁠 때마다 내려온다고. “하먼요. 요즘이 피크 아닙니꺼. 있어예. 부를까예?” “올 수 있을까요?” “하긴 거기도 손님 치르고 있을지 모르니 이따 우리가 그리 가십시더.” 참 손뼉도 잘 맞는다. 세세세를 할 때처럼. “서운 씨도 부릅시다.” “장터 장서운예?” “예. 여기 들어오다 들렀었거든요. 이 친구한테 관심 있는 모양입디다. 서로 처지가 비슷해서 그런가?”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무안하여 끼어들었다. “에라, 이 썩을 놈.” 성조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내숭이었을까. 나도 남자다. 싫진 않았다. 아니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술 탓만은 아니었다. 자영 씬 그러는 나를 보고 입을 가리며 웃는다. 장서운. 그녀의 이름이 서운이라. 아마도 그녀에겐 언니가 둘은 넘으리라. “늦게 문 닫을 건데예?” “늦으면 어때요. 그렇지 않아도 전화한다고 그랬어요. 택시 불러서 오라 그래요. 분명히 올 거요. 안 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집니다.” “그 정도라예? ” “틀림없어요.” “차 있으니까 오는 건 금방 올 겁니더.” 성조는 야릇한 미소를 내게 지으며 눈까지 찔끔거렸다. 고개를 흔들었다. 너에게 질렸다는 표정으로. “매운탕 끓였는데 가져올까예? 닭죽도 있고.” “둘 다 가져오세요. 만동이도 있으니까” 자영 씨가 길 건너 주방으로 나가자 성조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묻는다. “야, 도후. 어떠냐, 우리 세세세 친구. 다정하지 않냐?” “그래, 오늘밤 구경 좀 하자. 얼마나 잘 맞는지.” “야, 그럼 이따 노래방도 갈 텐데 너 서운이 오면 잘해봐라. 자영인 내 영원한 짝이니까. 그나저나 혜순이가 큰일 났다. 짝이 없으니.” “걱정도 팔자다.” “원래는 너를 혜순이 짝해줄려고 했는데……. 서운이는 사실 생각도 안했다가 엉뚱하게 너하고 된 거야.” “야 인마! 너 너무 오버 한다?” 성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했다. 내 말엔 대꾸도 안하더니 더 가관이다. “아재가 술이 안 취했어야 짝이 맞는데.”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성조는 아재 부인을 힐끔거리며 웃지도 않고 속삭였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마라. 어느 여자가 그 주정뱅이와 짝을 할까? 아무리 희극이라 할지라도. 더군다나 서울에서 산다는 여자가. 나는 벌써 아재를 무시하고 있었다. 만동이와 그 엄마는 이제 뼈까지 다 발라먹었다. 참으로 맛있게. 만동 엄마는 130킬로도 더 나갈 것만 같았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김 사장님 오셨습니까. 조금 전에야 소식 들었습니다.” 키가 호리호리하고 눈웃음 살랑살랑 치는 또 다른 약초꾼이 나타났다. 나이는 우리와 비슷하단다. 성조에게서 그 사람 됨됨이를 들어 알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말끔하고 차림새는 말쑥했다. 조금 벗겨진 이마는 번들거리고. 똑같은 약초꾼인데도 햇빛에 그슬리고 기미가 잔뜩 낀 아재의 얼굴과는 딴판이었다. 그에게선 약초꾼보다는 장사꾼 냄새가 더 풍겼다. 성조에게서 이미 들은 말에 의한 선입견일지 몰라도. “아 예, 어서 오세요. 오랜만입니다. 연락을 드려야 하는데 우리끼리만 먹어 어떡하지요?” “아, 뭘요. 괜찮습니다. 얼굴이나 뵈려고 왔습니다.” 그는 웃음을 거두지 않으며 아재가 앉았던 자리를 차지한다. “곧 닭죽이 나오니 한 그릇 하고 가세요.” 성조가 그와 나를 인사시키고 나자 자영 씨가 닭죽과 얼큰해 보이는 매운탕을 가져왔다. 자영 씬 약초꾼을 보고도 본체만체했다. “사업은 잘 되시지요?” “예, 덕분에. 요즘 벌이는 어떠세요?” “다 자기 하기 나름이죠. 맨 날 술이나 처먹으면 별 수 없고 저같이 부지런 떨면 괜찮다고 봐야지요.” 대번에 아재를 씹더니 은근히 제 자랑이다. 아재 부인과 아들이 아무리 못나고 어리다고 할지언정 버젓이 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그들의 존재를 무시해버리는 오만. 교활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금세 풍겼다. 그게 바로 타관 사람임에도 단기간에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을까. 성조는 그의 장삿술에 혀를 내둘렀었다. 송이가 나는 철에 직원 몇을 데리고 이곳에 잠시 들렀다가 산지가격이라 해서 사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백화점 가격이나 마찬가지였고, 여동생 부탁으로 장뇌를 몇 뿌리 믿고 샀다가 낭패를 당했다나. 무슨 이유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당시 아재는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개울에 처박혀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었단다. “뭐 필요하신 것 없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내게 없으면 구해서라도 김 사장님께는 드릴 테니까요.”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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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05
  •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 /3회
    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 * *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가?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듯이 집 꼬락서니를 보면 가장의 능력과 생활태도를 알 수가 있잖은가. 매일같이 술집에서 노닥거리는,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야 일어나는, 이곳저곳에서 술 얻어먹고 계곡 어디나, 길거리 어디에서나 퍼질러 누워있는, 그러다 끼니꺼리가 떨어져 마지못해 일을 나가는, 사람은 좋아 돈 좀 생기면 아무에게나 인심 푹푹 쓰는, 그런 아재의 모습이 집을 보면서 그려졌다. “만동아.” 성조가 조용히 부르자 쏜살같이 문이 열리며 얼굴이 까만 사내아이가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와선 과일과 과자가 잔뜩 든 봉지부터 챙긴다. 많이 컸다. “잘 놀았어?” “……” 눈만 끔벅거릴 뿐 어쩔 줄을 모른다. 반가운 표정이 역력하다. “아빠는?” 말도 없이 산을 가리키는데 그때서야 기척도 없던 거구의 여자가 미닫이문을 활짝 열고서 어눌하게 말한다. “산에.” “알아요. 전화통화 했어요. 곧 내려 올 거예요. 그동안 별고 없으셨죠?” 그녀는 헤헤 웃으며 고개만 끄덕끄덕. 어미나 아들이나 목욕은커녕 세수도 안한 듯 얼굴엔 땟자국이 가득하고 옷도 역시 꾀죄죄하다. 아이는 그렇다 쳐도 어쩌면 저럴 수가! 참 심난하게도 생겼다. “그럼 저기 가 있을게요.” 그래도 헤헤거리며 고개만 끄덕거리는데 성조는 90도로 허리까지 굽혀 인사한다. 그녀도, 만동이도 저기라고 했을 때 어딘 줄 뻔히 아는 모양. 나도 성조처럼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 저렇게 깍듯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나는 정말 자신이 없다. 천성일까, 나는 사람을 가려서 대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고치려하지만 쉽지 않다. 나는 아재를 잘 모른다. 성조를 통해 아는 게 전부다. 아재가 엄청 술에 취했었단다. 아재 꼴에 여자가 따를 리 없고 산처럼 물처럼 세월만 보내다 사십이 되어 바보처럼, 아니 바보여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여자를 보았단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데 그 바보가 아재를 보고 자꾸 헤헤거리더란다. 아재 꼴에도 행여나 마주치면 재수 없다 생각하던 이웃마을 여자였는데…… 덩치가 산만 하여 술 취한 눈에 아주 든든해 보이더란다. 그래 꼭 안기어 잠이 들었더니만…… 임신이었다고.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이왕 엎질러진 물, 내가 뿌린 씨앗 내가 거두리라고, 그렇게 만난 부인이란다.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성조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 집에서도 저 집에서도, 무엇이 그토록 성조의 기분을 들뜨게 하는가. 성조는 입만 벙긋하면 지리산의 어린 시절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강냉이 한 통을 물에 불리고 불려서 커다란 솥에 펄펄 끓여 온 식구가 먹었단다. 허구 헌 날 굶다보니 굶는다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였고, 봄이나 여름엔 새싹과 새순을 뜯어다가 끓는 물에 데쳐 소금을 찍어 먹었으며, 가을엔 산에서 나는 열매로 배를 채울 수 있었지만 겨울나기가 제일 힘들었단다. 오죽했으랴, 그 단단하고 씨만 많은 돌배가 먹을거리였으니, 그것마저 없어서 못 먹었다는데. 쌀은 아예 생각도 못해보고 보리쌀은커녕 잡곡도 구경하기 힘들었단다. 굶는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 밥만 먹다가 어쩌다 껍질 벗겨 당원을 넣어 찐 감자를 점심으로 먹었던, 옥수수를 너무 뜯어먹어 밥맛을 잃었던, 국수를 먹으면 머리가 아팠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성조가 오자마자 찾는 아재, 그 아재하곤 위아래 살았는데,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와 보니 아재는 선유동에선 나왔지만 여전히 지리산 기슭에 살고 있더라고. 약초를 캐고 버섯을 채취하며 지리산 봉우리, 봉우리마다 딸린 계곡, 비탈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었단다. 간판의 선유슈퍼라는 빛바랜 글씨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었다. 선명한 담배 마크 때문에 가게인 줄 알겠는데 식당과 민박까지 겸한다는 걸 알 수 있는 건 입간판 때문이 아니라 후덕한 주인의 인심이 소문나서 그렇다고. 성조가 애틋한 정을 나타내는 세세세 친구의 이름은 자영. 그녀는 우릴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에 상을 놓아주었다. 그런 사소한 배려에도 성조는 감격하여 감탄사를 연발하고.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련한 첫사랑,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사랑이랄 수 있는, 생각만 해도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 단 하루도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죽어서나 잊어질 그 몹쓸 인연을. 그런데 세세세 친구도 그런가보다. “자영 씨, 우리 토종닭 두 마리만 해주세요.” “웬 두 마리씩이나예? 한 마리만 해도 두 분이서 실컷 잡숫고 남을 건데예. 만동 아빠가 와도 충분합니더.” “잘 알아요. 그렇지만 내 말대로 해줄랍니까, 자영 씨?” 묻는 것도 참 나긋나긋하다. 소꿉친구 중 자영 씨에게만 반말을 하지 않는 성조 심보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지. “지 생각해서 그런다면…….” “아니에요. 참 내가 책 한 권 드릴게요. 이 친구 작가인 줄 알죠?” “하먼예. 그전에도 받았습니더.” 그랬었다. 아마 소설집이었을 거다. 성조는 부리나케 차에서 책을 가져왔다. 난 성조에게 단 두 권을 줬을 뿐인데 아무래도 서점에서 넉넉히 산 모양이다. “야 인마, 빨리 사인해드려. 내 세세세 친구란 말야.” 그놈의 세세세 친구. 그야말로 귀가 닳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뭐라 쓴다? 자영 씬 지리산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으니. 이름만 써서 줄 것 같으면 성조는 애당초 내게 서명하라고도 않았을 테고. <도시엔 별이 없습니다. 도시의 달밤엔 음악도 없습니다. 선유동에선 선녀가 별과 달을 데리고 놉니다.> 너무 아부했나? 그걸 본 성조는 입이 찢어질 지경. 지리산의 계곡을 비치는 해는 여름인데도 훌쩍 넘어가 버렸다. 땅거미가 깊고 낮은 곳으로부터 기어들자 계곡을 가득 메웠던 인파도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만 계곡 양쪽에 텐트를 치고 아직까지 열기를 식히고 있는데. 깊은 계곡 쪽 다리 쯤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가게 앞에서 이내 멈췄다. 그리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 사나이가 오고 있었다. 비쩍 마른 몸매, 크지 않은 키, 검은 얼굴에 쑥 들어간 눈, 초라한 옷차림,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 가혹한 세상살이에 지쳐 겨우 살아있는 듯한, 웃어도 웃는 것 같지 않은, 아, 소쩍새처럼 피를 토하며 울어댈 것 같은, 입을 벌리면 시뻘건 한이 소름 돋을 것 같은 사내. 그를 본 순간 어째서 또 소쩍새가 그려졌는지 모른다. 지리산에 소쩍새가 많이 사는가? 나는 아직 그 새의 울음을 여기서 들은 적이 없다. 아재였다. 지리산 아재. 그를 본 성조가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가 손을 잡고. 나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그가 우리 자리에 왔을 때 손을 잡았다. “연락이나 좀 하고 오제 그랬소. 그럼 준비 좀 할 낀데.” “준비는 무슨. 산에 가서 뭐 하셨어요?” 성조는 그를 자신 옆에 앉힌다. “뭐 좀 있을까 하고 갔는데 별로 없습디다. 김 사장 전화 받고 내려오다가 매운탕꺼리 좀 잡았습니더.” “뭐 할라고 그래요. 여기서 시켜 먹으면 되는데. 나 아재한테 대접받으려고 여기 오는 것 아니에요. 산 보고, 물 보고, 좋은 공기 마시고, 또 옛날 생각나서 오지요.” “누가 모릅니까? 다 압니더. 하여튼 이거 끓입시대이.” 그는 봉지를 풀었다. 산 메기란다. 열 마리나 될까. 산 메긴 일반 메기보다 훨씬 작다. “닭 시켰어요.” 성조는 자영 씨의 일이 느는 게 달갑지 않은 모양. “닭은 닭이고 메긴 메기 아닙니꺼.” “그래요. 그럼 끓입시다. 근데 아재, 오늘도 술 자셨어요?” “목마르니까 산에 가지고 갑니더. 내려오다 또 동동주도 한잔 걸쳤지예.” “그러면서 오토바이 몰아요?” “걱정 마이소.” “만동이 생각해서 조금만 잡숴요.” “하이고 마, 많이 안 먹습니더.” 그러면서도 속은 있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비닐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아재. 성조가 같은 연배인 그를 아재라 부르는 건 성(姓)이 같고 본(本)이 같아 남 같지 않은데다 고달픈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다는 연대의식을 느끼고 싶은데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어 가장 친숙한 말을 찾은 결과라고. 우리가 예사로 부르는 김 형이나 박 형 같이 부르기는 싫었단다. 아재를 대하는 성조의 마음씀씀이는 참으로 각별했다. 성조가 수십 년 만에 지리산을 찾았을 때 생각지도 않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를 만났으니. 그때의 반가움이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고. 그런데다, 아무리 약초를 캐고 산들 남들은 떵떵거리며 잘만 사는데 그만은 가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면서도 하나라도 못 줘서 안달. 각종 약초, 버섯은 물론 진기한 나물 등속을 철따라 보내주고……. 성조가 그냥 받을 사람도 아니라 후하게 사례했을 테지만 그래도 그 성의가 너무 고마웠단다. 같이 굶어가며 악산을 돌고 돌아 배우고 싶은 마음에 학교도 같이 다녔다. 계곡에서 멱을 감고 조금은 형편이 나았던 아재네 도장방에서 훔쳐온 감자를 어른들 모르게 구워먹으며 허기를 달랬던 기억도 있었다. 그 당시 지리산 골짜기 어느 집인들 어렵지 않았으랴. 산골짜기가 지겨워서 객지로, 무작정 도회지로 다들 떠나버리고……. 누군들 짐작이나 했을까. 세월이 흘러 상전벽해(桑田碧海), 남은 사람들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거의 한 터전씩 잡았지만 아재만은, 이 아재만은 그렇지 못했다. 동정이 아니었다. 그런 아재, 세상 때를 전혀 타지 않은 아재를 만나고 나니 옛날이 그리워서, 배고픔이 사무쳐서 한번 본 아재가 보고 또 보고 싶더란다. 그리고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단다. 그랬다, 아재는. 아내랑 왔을 때, 아내가 암 투병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재는 그 귀한 자연산 상황버섯을 무조건 내게 주었다. 자연산 영지를 듬뿍 얹어서. 그것뿐인가. 자기 집 냉장고에 보관해두었던 장뇌를 그 자리에서 씹어 먹도록 권했던 그다. 그러면서 절대 부담 갖지 마이소, 하며 고맙고 미안해하는 나와 성조에게 술이나 한잔 사이소, 그랬다. 나도 그에게 빚이 있다. 혹 모르겠다. 성조가 나 모르게 보답을 했을지는. 분명히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산속에 놓아기른 토종닭 두 마리가 직접 담은 동동주와 함께 푸짐하게 나왔다. 자영 씨도 다른 손님들 뒤치다꺼리가 얼추 끝났다며 자연스럽게 같이 앉았다. 밤이 되니 시원한 바람이 계곡에서 불어왔다. 별은 쏟아질 듯이 하늘 가득 반짝이고, 날벌레들은 불빛에 모여들고, 절집에서 들려오는 범종소리가 그윽하니, 오늘 떠나온 서울이 까마득하게 멀어져 갔다.       - 다음 편에 계속    
    • 예술/창작
    • 웹소설
    2018-03-25
  •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 /2회
    박희주 시인. 소설가.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화개장터에는 울음을 모르는 소쩍새가 삽니다> 구슬프고 처량하게 피를 토하며 운다는 소쩍새. 그런 소쩍새가 울지 않는다? 홀로 된 여자의 몸으로 어찌 울 일이 없으랴. 울다, 울다 지쳐서 더 이상 울음이 나오지 않을 것을. 울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터득했을 것을. 그래서일까, 그녀의 씩씩한 모습이 가상해 보였다. 소쩍새를 떠올린 건 나만의 감상일지 모른다. 어쨌든 지금의 그녀 모습과 미래까지 생각해본 것이다. 책을 그녀에게 주려는데 성조가 빼앗아 읽곤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음, 역시 글쟁이는 틀리다?” 그러며 여자에게 건넨다. “좋은 친구야. 잘들 해봐.” 성조의 말에 나는 마냥 쑥스러운데 여자는 책표지와 내 사진과 약력과 금방 쓴 글을 읽고는 갑자기 수줍은 학생처럼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데이. 잘 읽고 잘 간직하겠습니더.” 웃음으로 그녀의 인사를 대신 받았다. 그동안 성조는 음료수며 과일이랑 과자랑 가장 비싼 담배까지 잔뜩 챙겨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올 때마다 인사 안하면 어때서?” “그냥 가긴 미안하잖아.” 나는 안다. 성조가 누굴 위해 이렇게 푸짐하게 준비하는지를. 우리는 슈퍼마켓을 나왔다. “저녁에 내려 오이소. 내가 한 잔 살게예.” 그렇게 말하는 여자의 표정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것도 좋지. 안 그러냐?” 성조는 나를 쳐다봤다. 웃고 말았다. “상황 봐서 전화 할게.” 성조는 다정스럽게 여자에게 말하고 차에 올랐다. 여자는 당황스럽게도 나를 보고 있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차가 출발하자 물었다. 어째서 저 여자는 혼자가 됐느냐고. “나도 들은 거지만 가슴 아픈 애기다. 어쩌면 너보다도 더.” 나보다도 더 가슴 아픈 얘기는 이랬다. 여자는 성조가 다니던 학교 근처에 살았단다. 못살기는 그네집도 마찬가지. 딸이 많았던 집에 입 하나 덜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소망으로 열일곱에 화개장터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는데. 남자는 열두 살이나 많았지만 건강하고 착실한데다 머리가 깨어있는 사람이었단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온 그녀가 안쓰러워 아무리 여자라도 배워야 한다며 제일 가까운 중학교에 진학시켜 자전거로 등하교를 도왔다고. 졸업 후엔 농사보다는 아내에게 힘이 덜 들까싶어 식당을 차려 철따라 섬진강에서 나는 물고기와 재첩을 잡고 지리산줄기에서 버섯과 나물을 뜯어다 손님상에 내었단다. 골짝에서만 살아온 인심이 어찌나 후하고 음식 맛까지 좋았던지 손님이 손님을 불러 식당은 번창하고 아이들도 잘 자라 부러울 게 없었다는데. 거기까지가 여자에겐 호사의 전부였을까. 강가에 피서객들의 텐트가 드문드문한 어느 여름날밤, 그물을 걷으려고 강으로 나간 남자가 강변 갈대밭에서 여러 명이 한 여자를 윤간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고춧대 말뚝을 뽑아 달려들었다가 도시에서 온 그 불한당들에게 돌멩이로 머리를 맞아 즉사해버렸다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청천벽력.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아무것도 모르고 두려운 눈을 끔벅이는 토끼 같은 아이들을 두고 따라 죽을 수도 없고. 어미로서, 이런 것도 사람이기에 감내해야할 인생이라면, 살아야겠지. 그 뒤로 혼자였단다. 아이들은 다 컸다고 어미 품을 떠나고. 그동안 시커멓게 타버린 가슴 붙들고 고교과정을 검정고시를 통해 취득하고 방송통신대를 다닌다던가, 졸업했다던가. “너는 치료라도 해보고 갖은 수를 다해봤지만 쟤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던 거야. 나만 같아도 여기를 떴겠지만 자기가 가긴 어딜 가느냐고 저렇게 산단다.” 그녀는 전설이 아닌 현실의 소쩍새였다.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짝을 찾아 울어댄다는 새. 그 심사를 어떻게 다스렸을까. 어떻게 견뎌냈을까. 쌍계사 십 리 벚꽃 길. 이 길을 아내의 건강이 좋았을 때, 벚꽃이 최고로 만발했을 때 함께 걸었다. 아직도 눈에 선한 그 환상적 장면을 잊지 못한다. 특히 달밤의 그 신비로움을, 달빛과 어우러진 벚꽃의 그 자지러짐을. 벚꽃은 그때 망울망울 터지도록 울었을까, 웃었을까. 울었든 웃었든 벚꽃은 그 자체로 우리마냥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짙은 녹음마저 더위에 축 늘어지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꼼짝도 안하는 게 분명 지쳐보였다. 뿜어대는 햇빛과 아스팔트 열기와 자동차 매연과 사람들의 희멀건 눈길로. 길을 따라 갖가지 모양으로 모습을 바꾸는 계곡엔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그런데 산기슭마다 잘 정돈된 녹차 밭을 보노라니 어째서 삼십대 전문여성의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당당하면서도 아주 단정한. 농사도 전문적이 되면 저런가. 그런 여자가 있다. 그러나 내 처지를 생각하여 바라보는 걸로 만족하고 있으니. “저 가시나가 너한테 맘이 있나보다.” “미친놈.” “아냐. 벌써 너를 보는 눈이 틀리더라.” “내가 무슨 소리를 하길 원하냐?” “그렇게 의뭉 떨지만 말고 이따가 불러줄게 잘 한 번 해봐라.” 의뭉? 그럴지도 모른다. 여자가 떠나는 차를 향해 손 흔들며 미소 짓던 모습이 눈에 삼삼했다. 지난한 세월과 비교하면 차마 얻기 힘든 다소곳하고도 편안한 표정, 그러면서도 안타깝고 아쉬운 듯한, 우수에 젖은 눈. 그냥 눈물을 왈칵 쏟아버릴 것 같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알아서 해라. 어차피 놀러 왔잖아.” “너 말 잘했다. 모든 거 잊어버리고 푹 젖었다 가는 거야. 너 언제까지 일편단심 민들레만 찾을래. 어떠냐, 저 정도면 괜찮잖아? 너그 마누라에 비하면 어림도 없겠지만.” 그런 마누라는 떠나갔다. 자신의 참담한 고통을 내게 물려주고, 풀기가 쉽지 않은 홀아비의 삶이란 숙제를 안겨주고, 끝내 미덥지 못한 듯 눈을 감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버텼는지 내 머릿속은 캄캄하기만 하다. 쌍계사 입구를 지나면서는 아내와 먹었던 은어 회 맛이 쫀쫀하게 되살아나 가슴이 미어졌다. 조금 더 가니 아자방으로 유명한 칠불사로 가는 삼거리, 거기에서 우측으로 꺾어 성조가 1년 다녔다는 아담한 학교를 옆으로 끼고 돌아가니 선유슈퍼. 우리는 그곳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으로는 가게 및 주방, 계곡 쪽엔 사방이 유리창으로 된 건물. 여름엔 알루미늄사시로 된 창을 모두 열어놓고 겨울엔 닫는. 그 밑에는 민박손님을 위한 방이 다섯. 건물 앞이 바로 계곡인데 다시 봐도 참 절경이다. 우리가 목적한 곳이었다. 성조는 이곳에서 그 옛날의 추억을 되새길 것이고, 푸짐한 선물을 건네주며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며, 3년을 살았다는 선유동계곡에도 갈 것이다. 계곡엔 가지각색의 옷을 입은 수많은 남녀노소들의 물놀이가 한창이었다. 어찌나 많은지 인파만 넘실거릴 뿐 물은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이 숨이 막히고 기가 막혀 오히려 피인(避人)한다고 설쳐대지 않을까 싶었다. 성조는 먼저 가게부터 찾았다. 가겟집과 성조는 특별한 관계다. 문을 열자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깜짝 놀라 반긴다. “어이고, 이게 누꼬?” “예, 접니다. 그동안 무고하셨어요?” “하먼, 새끼들은 잘 크고?” "그러믄요.“ 곧이어 주방에서 며느리가 나와 활짝 웃는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인데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산중 여자 같지 않게 가냘프고 오밀조밀한 얼굴에 키가 작아 마냥 순종적으로만 보이는 그녀. 그전에 봤을 때와 똑같았다, 그녀의 수줍은 인상은. 남편은 개인택시를 몬다고. “오셨어예?” 성조의 눈이 빛난다. “자꾸 젊어지시는 것 같아요?” “농담 마이소.” 서로서로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모른다. 성조는 가져온 담배를 할머니께 안긴다. “담배 사드리면 욕먹는다는데 괜찮죠, 할머니.” “나야 좋지만 번번이 이러면 어떡하노.” “그냥 오시면 어쩌간디예. 우리도 담배 안 있습니꺼?” 나도 인사했다. 아내랑 왔을 때 안면이 있기에. 할머니는 잘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지만 주름 많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며느린 아는 척을 하며 어서 오이소, 그랬다. 성조가 지리산에 올 때마다 이 집을 숙소로 삼는 건 성조네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지리산을 떠날 때 할머니가 고향 가선 배곯지 마라며 마지막으로 잡곡밥을 배불리 먹여준 정을 잊지 못해서란다.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고마웠던지 언젠가는 은혜를 갚으리라 별렀다고. 그런데다 성조가 그렇게 자랑하는 어린 날의 세세세 친구가 바로 그 할머니의 며느리가 되어 있었고. 아마도 후자와의 인연이 성조를 더 이 집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아재 어디 갔어요?” “산에 갔을 걸예? 전화 해보이소.” “알았습니다.” 성조가 할머니께 깍듯한 건 당연한 일이지만 소꿉친구였다는 며느리에게까지 유별날 정도로 경어를 사용하며 깍듯이 대했다. 그런데다 할머니가 있어 반가운 표현을 삼가긴 하지만 며느릴 보는 눈은 애틋하기까지 했다.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다던가? 세세세. 아침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성조가 그녀와 함께 일제의 식민지 잔재인 줄도 모르고 우리에게 익숙해져버린 일본 동요를 부르며 놀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모진 세파를 이겨내다 보니 어릴 적 희미해져버린 추억을 되살려 세세세로 대표되는 그 순수의 세계를 유난히 동경하게 된 건 아닐까. 성조에게선 그리운 세세세 친구를 다시 만난 반가움이 온몸에서 뭉클뭉클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리움의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살만해져서 지리산을 다시 찾았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를 만나자 아련한 기억의 한 자락과 함께 잊고 있었던 동심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름도 희미해지고 얼굴도 까마득해서 서로가 누가 누군지도 몰랐단다. 아슴아슴한 기억을 찾아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고 무슨 일이 있었으며 누가 누군데 혹시? 아, 맞다 맞아! 그렇게 알게 되었단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당시엔 어쨌든 간에 모두 아름다운 법. 그런데다 아직도 순둥이처럼 때 묻지 않은 그녀를 보자 옛날이 사무쳐짐과 동시에 가슴 저릿한 순정으로 활활 불타올랐을 것이다. 아련한 첫사랑의 감정도 지니지 못하고 살아온 벅찬 세상살이에 대한 반동으로, 세월을 거슬러 기어코 첫사랑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을 만큼. 성조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공부하면서 연애질할 때 나는 세상과 싸웠다. 감히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꿨어. 어차피 하지 못할 거 생각해봤자 더 속만 상할 테니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내가 감히 누구를 사랑할 수 있으랴. “아재 집에 가볼게요. 만동이도 보고 싶고.” “그렇게 하셔예.” 만동이는 아재의 외동아들. 재작년에 왔을 때 여섯 살. 그런데도 세 살이나 많은 내 아들보다 산을 더 잘 타고 물속에서도 잘 놀았다. 성조는 과자와 과일봉지 등을 차에서 꺼내들고 아재 집으로 가는 도중 휴대전화로 아재를 찾았다. 산에서 내려오고 있단다. 아재 집은 가게에서 멀지 않았다. 지리산 아재. 그의 집은 너무 초라했다. 낡은 컨테이너 같은, 숨 막힐 듯한, 단칸방의 좁은 공간. 아재는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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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5
  • 지리산에는 아재가 산다
      박희주 시인. 소설가.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현 부천문협 회장 galbeolheejoo@hanmail.net     내가 지리산에 가게 된 건 순전히 고향친구 성조 때문이다. 작년에 아내를 암으로 잃은 후 암담한 내일에 대한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었다. 힘든 건 경제적으로 쪼들리기도 하지만 정신이 공황상태에 있다는 것. 오 년의 투병기간 동안 그렇잖아도 넉넉지 못했던 살림살이가 거덜이 난데다 만만치 않은 은행 빚까지 남아있어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나의 경제는 한창 돈이 들어갈 나이의 아이들 뒷바라지하기도 벅찼다. 출근 전후에 반복되는 밥하고, 빨래하고, 반찬준비, 설거지, 집안청소 등 숱한 일거리도 하루 이틀이 아니어서 지겹게 느껴지기 시작한 터였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실상 충분히 예상한 일이라 아무것도 아니랄 수도 있다. 정말 힘든 것은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매사에 대한 의욕상실이 문제였다. 하루가 피곤하여 곯아떨어졌다가도 한번 깼다 하면 도저히 잠을 다시 이루지 못하니. 그럴 때면 몸서리쳐지게 아내가 그리웠다. 살아생전에 잘한 일보다 잘못한 게 너무 많아 그럴까. 잘한 것은 생각나지 않고 못한 거만 자꾸자꾸 떠올라 두고두고 가슴을 후벼 파더라는 짝을 잃은 사람들의 말이 요즘엔 더욱 생생하게 실감나는 나날이었다. 암의 발병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스트레스라는데 나는 아내의 못된 남편이었고 못난 남편이었으며, 무능하기만 한 남편이었으니. 아내의 모든 스트레스는 나로 인해 쌓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가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 나 때문이라는 자책감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압박했다. 어째서 그렇게 살았을까. 아! 또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뚝불뚝 일어나는 본능의 솟구침이야 말해 무엇 하리. 내 젊은 날의 위선에 대한 갈마(褐磨)가 분명한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 물은 썩어버린다는 소리가 맘에 걸리긴 걸렸던 걸까. 얼마나 좋은 날을 보겠다고……. 현실을 외면한 외설을 그리는 용두질. 열락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허망하고 허무한 시간은 길었다. 내가 가소로웠고 눈부신 햇살엔 참담하기만 했다. 내 나이에 홀로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분명 욕이었다. 이런 내게 위안이라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티 없이 자라준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로만 알았던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녀석이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미리 아비의 맘을 헤아릴 정도로 속이 깊다는 것과 대입을 코앞에 둔 딸내미가 저희 엄마를 닮아 피아노를 아주 잘 친다는 것. 한여름. 모두 더위를 피해 휴가를 가는데, 출판사 비상근인 나도 맘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떠날 맘도 없거니와 딸의 레슨비에 대한 부담으로 경제적 여유마저 없었다. 그런데 가끔 전화로 안부나 주고받던 성조가 갑자기 찾아와 무조건 차에 타란다. 영문도 모르고 차에 올라 서울톨게이트를 벗어나자 지리산엘 간다니 기가 찰 수밖에. 그 상황에서 안 가겠다고 버틸 수도 없었다.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성조는 산골짝 출신의 친구 중 그래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편. 그의 차는 최신형 그랜저다. 재작년. 아내가 겨우 움직일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을 때, 성조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지리산 선유동을 자랑하며 거의 강제다 싶게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내를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는 거라면 아주 사소한 데까지 신경을 쓰고 또 써줬다. 아무리 둘도 없는 친구라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남편인 나는 그야말로 개털이었다. 그렇지만 마음은 편치 못했다. 아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우게 된 셈이었으므로. “도대체 우리 둘이 뭐 하러 가냐?” 솔직히 지리산이 아니라 내 주제에 피서랍시고 어디를 간다는 게 가당치 않은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굳이 간다면 아이들이나 데리고 아내의 유골이 있는 청아공원에 들렀다가 강화도나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야 인마, 홀아비 맘 달래주러 간다.” “홀아비 맘 달래주려면 서울에서도 천지다.” “알아. 근데 너 암암리에 다 하고 있잖아.” “미친놈, 까불지 마라. 다 옛날 얘기다.” “그럼 너 옛날에는 바람 많이 피웠다는 얘기네?” “말꼬투리 잡지 마라.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너 좋아하는 여자 많잖아. 끼 많은 여류들도 있을 거고.” “많으면 뭐하냐? 맘이 끌려야지.” “끌리는 여자 없어?” “눈을 씻고 봐도 없다. 하긴 돌아다니지도 않지만.” “애들 엄마 생각하면 안 돼. 그런 사람은 없어. 니가 눈높이를 낮춰야 해.” “그게 맘대로 되냐?” “야, 그러지 말고 돈 많은 과부 한 사람 소개시켜 줄까? 사람 보지 말고 돈 보고 말야.” 성조는 나의 경제적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니가 나를 모르는구나. 수억을 가진 여자가 치근거려도 눈 하나 깜짝 안했다.” “아니, 왜?” “돈 많다면 누가 껌뻑할 줄 알았나, 자격지심인진 몰라도 치근대니까 더 정나미가 떨어지더라. 원래는 그냥 친구로나 사귈 마음이었는데.” “진짜 미친놈이네. 엔조이 상대도 없어?” “그것도 맘이 끌려야지. 야, 그런 소리 마라. 애들이나 잘 키우고 좋은 글이나 쓰면서 살란다.” 그랬다. 비록 무명이고 문단의 말석이지만 시인과 소설가라는 타이틀로 인해 여자들을 만날 기회는 많았다. 그러나 나는 아내에게 길들여져 있었다. 짚신도 짝이 있다고 아내보다 예쁜 여자를 만날 수 없었고 아내보다 마음이 고운 여자를 보지 못했다. 느낌이 없는 가식적 만남이나 끌리는 게 없는데도 불순한 목적을 위하여 시간과 정력을 소진할 정도로 나의 윤리가 형편없진 않았다. “무슨 재미로 사냐.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있어야 한다. 너 늙어서 어쩔래?” “별 걱정 다하네. 내가 불쌍하게 되면 애 엄마가 하늘에서 내려오겠지.” 성조와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가면서도 그에겐 쉴 새 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그만큼 그의 사업이 바쁘다는 증거일 게다. 그런 와중에 나를 향한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그는 쌩쌩 달렸다. 어쩔 땐 시속 160킬로를 오르내려 내 가슴이 오그라들다 못해 쓸데없이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 브레이크를 밟는 시늉을 해야 했는데, 그럴 때면. “성조야, 너 죽으면 애기 엄마도 있고 애들도 다 컸지만 난 우리 애들 고아 되는 줄만 알아라.” 그래도 막무가내. 요즘 거의 모든 차량에 부착한 내비게이션 때문에 감시카메라에 걸릴 염려가 없어 그럴까. 1차선과 2차선을 넘나들며 추월하고 또 추월하고. 단 한 번도 추월당한 적이 없이 성조는 달렸다. 나는 애들에게 전화했다. 아빠 없는 동안 밥 잘 챙겨먹으라고. 안심하시란다. 하긴 방학이라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지리산은 하도 범위가 넓어 전북과 전남과 경남, 어느 지역으로도 접근이 가능하지만 우리가 가는 쌍계사 넘어 선유동계곡으로 들어가려면 초입이 하동군에 속하는 화개장터다. 그곳까지 성조는 무려(?) 세 시간 만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내가 만약 운전했다면 전주에나 왔을까. 성조는 나와 같은 전라도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선유동도 고향으로 여길 만큼 애착을 갖는다. 그 이유는 어릴 적에 오륙 년의 세월을 보낸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선유동계곡, 그 험한 산비탈을 아무리 일구어도 입에 풀칠도 못했다고. 그땐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긋지긋했단다. 그래서 자신의 키가 작다나? 어째서 성조의 부친이 고향을 떠나 가솔을 이끌고 선유동계곡으로 들어갔는지 그도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 세대에 땅 한 뙈기 갖지 못한 부모들이 숱했었기에 화전이라도 일구어 내 땅 마냥 의지하며 살고 싶었을 거라고 막연히 짐작만 할 뿐. 그렇게 힘들게 지냈기 때문에 어엿한 건설업체의 사장이 된 성조는 사업이 어려울 때나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그 옛날을 되새기려 수시로 찾는다고. 화개장터.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곳. 위정자들의 권력 욕심에 의해 불거진 두 지방의 갈등을 치유하고자 하는 조영남의 노래로 마을 규모에 비해 더 유명해진 곳.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북적거리는 장터 분위기로 쌍계사 계곡, 계곡마다 인파가 얼마나 많이 몰려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성조의 표정은 이 화개장터부터 달라졌다. 여기에 겨우 1년을 학교에 같이 다녔다는 여자동창이 슈퍼마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 나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성조네는 2학년 때 고향으로 돌아왔다. “야, 내리자. 동창 보고 가야지. 과부야.” 과부라는 말을 능글맞게 강조하면서 성조는 키득거렸다. “에라, 이 나쁜 놈아.” “괜히 좋으면서.” 나는 어이가 없어도 그는 계속 싱글벙글. 그러나 어쩌랴, 여기까지 왔는데. 덩달아 따라 내린 나는 홀아비와 상대적인 과부라는 말에 웃을 수밖에 없고. 동창이라 보이는 여자는 과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이, 나 왔어.” 참으로 당당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여자. 파란 블라우스에 반바지. 챙이 넓은 모자 뒤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의외로 얼굴이 하얗고 곱상한데. 과부라고 얼굴에 써 붙이고 다니지 않는데도 과부라니까 팔자가 센 여자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면서 봤다면 곱게 나이 먹은 40대 중반의 얼굴인데도. 그러고 보면 나도 어느 누구든지 내가 홀아비라는 걸 알고 본다면 어딘가 모르게 다르게 보일 거라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약도 오른다. 난 고상한 얼굴이라 자부하는데. 성조는 제 집 드나들 듯 성큼성큼 걸어가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아선 복숭아를 휴지로 문질러 덥석 베어 먹는다. 엉겁결에 따라 들어간 나는 어정쩡하기만. “역시 사장님이라 자주 내려 오시네예?” “무슨 말씀을. 잘 지냈어?” “맨 날 그렇지 뭐. 콧구멍만한 가게에서 무슨 재미를 볼까.” 그러나 시골 가게치곤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그녀는 성조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나는 멋쩍게 서있는데. “친구야. 고명한 작가 선생님이고. 근데 홀아비 됐어. 어쩐다냐, 서로 가슴 아픈 사람끼리 만나버렸으니 무슨 일 나는 것 아녀?” 그러자 그녀는 나를 빤히 보더니 얼굴을 붉힌다. 성조는 그녀가 그러든 말든, 내가 멋쩍어하든 말든, 싱글벙글하다가 무슨 일인지 잽싸게 밖으로 뛰쳐나간다. 나도 성조가 이러는 데는 어지간히 이력이 붙었는데. “아이고, 안 되셨네예. 아직 젊으신데. 하긴 인력으로 어쩝니까, 운명으로 돌려야지예. 이왕 오셨으니 재밌게 놀다 가이소.” 재밌게? 재밌게. 그녀는 무심코 한 말이겠지만 기분이 묘했다. 이런 골짜기에서 무슨 재미를 볼까? “이거라도 드이소.” 안타까운 표정을 짓던 그녀는 냉장고에서 홍삼 드링크제를 꺼내 뚜껑을 따서 내미는데 성조가 막 들어와 차 트렁크에 있었는지 얼마 전에 나온 내 시집을 안긴다. 아내에 대한 추모의 성격이 짙은 책이다. “야, 빨리 사인해드려. 그런데 누군 입이고 누군 조동아린가? 아님 벌써 통해버렸나?” “복숭아 먹고 있으니까 안 줬지.” “그럼 이거 다 먹으면 저거 줄 거여?” “줘야제. 얼마만인데.” “그렇지? 40년 친구가 그래도 홀아비보단 나을 거야. 나는 벌써 통해버렸는지 알고 무척 서운했구먼.” “어휴, 장난끼는 아직도 여전하구만. 어릴 때나 지금이나.” 언제 봐도 동창이란 이래서 좋은가보다. 나이가 40이 되었건 50이 되었건 남녀 간에도 허물이 없으니. 그들의 얘기를 듣고 웃으며 잠시 생각하다 한 줄 적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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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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