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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8회
    모든 신경이 왕궁으로 집중해있던 백성들에게 소문은 빠르게 전해졌다. 그러자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기혼에 몰려들었다. 의식은 제사장 사독이 성막에서 가져온 뿔에 든 기름을 솔로몬에게 붓는 순간 절정에 달해 양각 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솔로몬은 요란한 백성들의 만세 소리와 피리 소리에 둘러싸여 왕궁으로 돌아와 다윗에게 인사를 했다. 다윗은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솔로몬에게 양보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영욕의 자리. 그 자리를 무사히 솔로몬에게 넘길 수 있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그는 신하들을 굽어보며 외쳤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이 자리를 솔로몬에게 물려주도록 허락하셨으니 감사할 일이로다. 이스라엘은 반석 위에 영원무궁할 것이로다.” 한편 새로운 왕 아도니야를 축하하는 잔치가 끝날 즈음에 다윗왕궁에서 별안간 피리 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이 끊이질 않고 들려왔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가슴엔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마침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나타나 솔로몬의 즉위 사실을 알리고 들려오는 함성이 바로 백성들이 부르짖는 기쁨의 함성이라고 아도니야에게 알렸다. 민심의 향배.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한두 사람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하더니 언제 아도니야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안달했는가 싶게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에 바빴다. 어이없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단 말인가. 아도니야도 급했다. 그는 뚜렷한 계획이나 비전도 없이 그를 부추기는 세력의 힘만 믿고 우쭐하여 왕이 되고자 했던 경솔한 행동을 후회했다. 그렇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던가. 아, 아비삭! 거의 품안에 들어올 것만 같았던 그녀를 생각하자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성막 안 제단 뿔 곁에 숨었다. 그곳은 여호와가 정해준 죄인들의 도피처였다. 그곳에서 그는 솔로몬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선처를 빌었다. 살려만 주면 충성을 다하겠노라고. 솔로몬은 다윗에게 물었다. 반역자 아도니야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느냐고. 다윗은 말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네 형제들의 피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여호와는 인자하시니 죄인을 용서하실 것이라고. 솔로몬은 다윗의 뜻에 따라 아도니야를 용서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왕위를 노리는 날엔 피를 나눈 형제에 앞서 군신의 예로 다스리겠노라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다윗은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키게 된 연유를 암암리에 조사하곤 두 번 놀랐다.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염두에 뒀다는 데 한번 놀라고 죽을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체질화된 여자에 대한 탐욕을 깨닫고 또 놀란 것이다. 만약에 그 어린 처녀 아비삭만 단호하게 거절했더라면… 아도니야의 반란도 없었을 것이고 앞날이 구만리 같은 아비삭의 인생도 망치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 이 일을 어쩐다냐! 이제 아비삭의 남은 생은 어떻게 될 것이고 미운털이 박힌 아도니야의 운명은 또한 어찌될 것인가. 자신이 살아있을 때야 별일이 없겠지만 본능이 앞서기 마련인 이기의 세상사에서 그들의 불행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그 안타까움을 기억하는 외경(外經)에 ‘다윗의 여자의 서’라 불리는 내용이 남았으니.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아름다운 여자에게 무슨 죄가 있으리오.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한 남자에게 무슨 죄가 있으리오. 그러나 분수에 맞지 않게 사랑하려는 것은 죄이니, 경우에 맞지 않게 사랑하려는 것 또한 죄이니, 불행이 충동질하기 전에 진정 사랑하거든 하늘을 우러러 포기하라.> 다윗은 여력이 빠르게 소진돼가는 걸 느끼며 죽을 날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회한만이 남았다. 그는 솔로몬을 불러 유언을 남겼다. 경(經)은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다윗 사후. 아도니야는 겉으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다행히 다윗과 솔로몬의 선처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나 아리따운 아비삭을 그리는 마음까지 죽일 수는 없었다. 다윗이 살아있을 때는 감히 어쩌질 못했으나 다윗이 죽어 이제는 홀로된 그녀가 꽃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갈 참이었다. 자신이 왕이 되었다면 은밀히 벌써 자기 곁에 두었을 것이다. 설령 선왕의 여자를 가로챘다는 비난이 쏟아질지라도 그 비난까지 무릅쓰고서라도 곁에 두었을 것이다. 왕의 자리도 탐이 났지만 그보다 욕심이 난 건 아비삭이었다. 심지어 왕의 자리와 아비삭을 고르라면 아비삭을 골랐을 그였다.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 세상 사는 재미가 없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결국 밧세바를 찾아갔다. 결코 허물이 없지 않은 그녀가 아닌가. 그녀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왕의 생모가 아닌가. 생모의 부탁을 왕이라도 감히 거절치 못하리란 판단이었다. “이스라엘 왕의 자리가 본래 제 것이었음을 온천하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뜻이 아우에게 있었음을 원망하진 않겠나이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저도 체념하고 살겠습니다. 그렇지만 소원 한 가지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무엇이오?” 밧세바는 반색했다. 체념하며 살겠다는데, 다시는 자신의 아들인 솔로몬의 왕위를 넘보지 않겠다는데 무슨 소원인들 들어주지 못하랴 싶었다. “아비삭입니다. 그녀를 내게 주십시오. 조용히 살겠습니다.” “아비삭을?” “그렇습니다. 그녀는 아바마마의 후궁도 아니었잖습니까. 늙으신 아바마마를 간호한 시녀에 불과했습니다. 꽃봉오리도 활짝 펴지 못한 그녀가 불쌍해서 그렇습니다.” “그게 소원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절대로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알았소. 내가 왕께 말하리다.” 밧세바도 이젠 늙었다. 그 아리땁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주름만 얼굴 가득 퍼져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늙은 건 아니었다. 질투와 시기마저 늙어버린 건 아니었다. 아무리 살을 섞진 못한다 할지라도 젊은 아비삭이 다윗과 알몸으로 부둥켜안고 잠이 드는 것까지 곱게 보아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드러내어 질투를 할 수도 없는 처지. 속으로만 끙끙 앓았었다. 그런 아비삭인데 아도니야가 차지한들 어떠랴. 더군다나 젊으나 젊은 아비삭도 간절히 원할 터인데. 그게 바로 밧세바의 인간적인 한계였다. 어찌됐든 아비삭은 다윗왕의 여자였다. 왕의 여자를 차지하는 건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압살롬이 잠시나마 다윗 성을 차지하고 후궁들을 욕보였던 것처럼. 그러나 그것도 결과적으로는 율법을 어긴, 죽임을 면치 못할 죄였다. 그런데도 아도니야는 아비삭을 원하고 밧세바는 기꺼이 협조할 생각이었으니. 밧세바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들인 솔로몬 왕을 찾아가 말했다. “아도니야가 무슨 낙으로 살겠습니까.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그가 원하는 아비삭을 첩으로 주는 게 어떨지요.” 신실한 솔로몬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뭣이라고요!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그 말을 아도니야가 어머니께 하더이까?” “그렇소.” “어찌하여 어머니는 쓸 데 없는 일에 참견하고 다니십니까. 어찌하여 그 자가 어머니를 모독하고 업신여긴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그가 어머니께 이 자리를 넘겨주라고 청한다면 그때도 제게 와서 이러시겠습니까? 어찌 감히 아바마마의 후궁을 넘보는 아들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렇게 어리석게 보이십니까? 이것은 반역입니다. 아바마마를 욕보이는 반역입니다.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밧세바는 어쩔 줄을 몰랐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 아도니야는 그렇게 동생에 의해 죽었다.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까. 압살롬과 아도니야의 패륜은. 밧세바는 이후 침잠했다. 다윗.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는 그렇게 끝났다. 약관 삼십 세의 나이에 유다 왕이 되었다. 그리고 칠 년 육 개월 만에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주변의 적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때까지 왕으로서 이십 년, 그의 삶은 신실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었다. 교만이 싹트고. 자신의 말 한 마디는 곧 법이 되었다. 두려울 게 없었다. 나태해지고. 시험에 빠져들었다. 아리따운 밧세바. 탐욕이었다. 탐욕에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마음도 멀었다. 그녀와의 관계는 죄악덩어리였다. 결국 시험을 이기지 못했으니. 그 후 이십 년. 다윗은 한 여인을 얻은 대가로 한순간의 참회가 아닌 죽을 때까지 처절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했다. 아들이 딸을 능욕하고, 아들이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비를 부정하고, 아들이 아비를 피해 살고, 아들이 아비를 반역하고, 아비가 아들을 피해 도망 다니고, 아비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비의 여자들을 능욕했으며, 아들이 아비를 죽이려 하여 결국 아비의 부하들이 아들을 죽여야 했다. 또 다른 아들도 반역의 칼을 뽑았다가 실패하여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아비가 죽자마자 채 시신이 식기도 전에 아비의 여자를 욕심내다가 마침내 왕이 된 동생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골육상쟁의 칼부림이 끊임없이 이어진 그의 삶. 양치기에서 왕으로. 하늘은 다윗에게 엄청난 은혜를 베풀었지만 상상도 할 수 없는 응징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다윗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린 게 사십 년. 전반기 이십 년이 은혜의 시간이었다면 나머지 이십 년은 바로 갈마의 시간이었다. 그 분수령이 밧세바와 간음이었으니. -끝-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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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3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7회
    다윗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역전의 용사답게 싸움의 승패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결과는 전쟁의 승패가 아니었다. 아들 압살롬의 생사여부였다. 성의 문루에 있던 다윗의 눈에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오는 단기필마가 보였다. 단기필마는 곧 승리를 의미했다. 그러나 그는 더욱 초조했다. 말 위에 탄 이는 아히마아스였다. “어찌 되었느냐?” 다윗은 성급히 물었다. “전하, 기뻐하소서. 이겼사옵니다.” 아히마아스가 외쳤다. 궁금한 건 승리가 아니었다. “압살롬은 어찌 되었느냐?” 다윗의 목소리가 떨렸다. “영광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여호와, 폐하의 주님께서 은혜를 내리셔서 반역한 무리들을 무찔렀사옵니다.” “압살롬, 압살롬은?” 다윗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아히마아스는 다윗의 뜻이 오직 압살롬의 생사에만 있는 걸 알고 그대로 보고를 할 수가 없었다. “신이 떠날 때에 큰 소동이 일어난 줄은 알지만 자세히는 모르겠사옵니다.” 다윗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건만 입장만 난처해진 아히마아스였다. 그때 헐레벌떡 다윗 앞에 엎드려 절하는 흑인 전령이 있었으니. “폐하, 기뻐하십시오. 여호와의 은혜로 역적들은 모두 소탕되었습니다.” “그래, 압살롬은 어찌 되었느냐?” 다윗은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흑인은 서슴없이 말했다. “칼에 찔려죽었습니다. 앞으로도 역적의 무리는 그와 같이 비참하게 죽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다윗은 그만 땅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기어코 그렇게 되는구나. 혹시나 기대했더니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구나. 그는 절망했다. 땅을 치고 통곡했다. 경(經)은 이렇게 적고 있다. 다윗의 애통한 심정을.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다윗은 다시 한 번 절감했다. 하늘의 무서움을. 자신의 죄에 대한 응징이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 견뎌내기 힘든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렇지만 거기에서도 다윗의 시련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윗도 인간이었다. 반란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반란군 측에 가담한 정도와 진압의 공을 따져 십이 지파 중 유독 유다족에게 많은 주도권을 주게 되었으니. 그러자 다른 지파에서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그 불만을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킨 이가 있었으니 세바라는 자다. 세바는 다윗의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거룩한 땅이자 기업이다. 이 거룩한 땅이 더러운 피로 물들었다. 이 피를 불러온 장본인이 누구인가? 다윗은 더 이상 이스라엘 왕의 자격이 없다. 그 아들들의 행태만 봐도 알 수 있잖은가. 다윗은 사울처럼 여호와의 뜻을 저버렸다. 이제 여호와는 다윗을 버렸다. 다윗은 죄인이다. 죄인이 왕의 자리에 있는 걸 용납할 수 없잖은가!” 그러자 십이 지파 중 십 지파가 다윗을 따르지 않고 세바를 따르는 것이었다. 백성들의 마음은 갈대와 같았다. 세바의 반란은 곧 진압되었으나 민심 이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졌을 때의 고민이 거기에 있었다. 원초적 책임, 간음이었다. 밧세바와의 간음 이후 한시라도 마음 편한 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앞으로도 또 어떤 식으로 자신의 목을 죄어올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간음의 죄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아무리 궁리를 거듭해도 묘안이 나오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여호와에게 묻는 수밖에. 다윗은 여호와의 장막에 틀어박혀 몇날 며칠이고 나오지 않았다. 침식을 거른 채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기도하고 통곡하고 울부짖으며 간구했다. 어렴풋이 마음속으로부터 울림이 있었다.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음성. 그렇게 믿었다. 간음의 죄에서 비로소 해방이라는. 여디디야. 여호와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밧세바와의 사이에 솔로몬을 낳았을 때 나단 선지자는 그 아이를 축복하고 그런 이름을 주었었지. 그건 무슨 뜻인가.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뜻이 아닐까.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것은 밧세바와의 간음을 이미 용서하셨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간음은 죄이고 사망이면서 용서이고 축복이 됐다. 죄와 사망과 용서는 끝났다. 이제 축복만 남았다. 다윗이 기도 중에 내린 결론이었다. 다윗은 장막을 나와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으로 자신의 후계자임을 은연중에 암시했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여호와하나님의 뜻이라는 데엔 솔로몬이 간음의 산물일지라도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밧세바의 위치도 굳건해졌다. 그리고 지난날의 과오를 만회하려는 듯 다윗은 신실하게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또한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입게 되었으므로 왕이 되고나선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거스를 수 없는 사명을 주지시켰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다윗에게도 세월은 비켜가지 않았다.   다윗 말년. 나라 안팎은 안정되었고 이스라엘은 반석 위에 놓이게 되었으며 다윗은 늙었으되 성군으로 모든 백성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백성들은 다윗이 오래도록 이스라엘을 통치하길 원했다. 민심을 간파한 신하들은 늙어서 거동조차 힘든 다윗을 위하여 젊고 아리따운 처녀인 아비삭으로 하여금 시중들게 하고 행여나 체온이 떨어질까 염려하여 알몸으로 잠도 같이 자도록 조처했다. 다윗은 처음에 그러한 과잉 충성을 거절했다. 그러나 아비삭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름다웠다. 젊은 날의 밧세바를 보는 듯했다. 다윗은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못이기는 척 따랐다. 과욕이었다. 아무리 늙고 힘이 없어도 욕심은 끝이 없기 마련. 그러나 다윗은 너무 늙어 마음만 간절하지 몸이 따라주질 못했다. 당연히 남녀 간의 정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괜한 흠집만 남긴 꼴이었다. 신하들의 뜻은 이스라엘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왕에 대해 죽기 전까지 최대한으로 편안하게 살다 가시라는 배려였는데. 그야말로 아비삭은 인간으로서 회춘의 슬픈 묘약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다윗의 넷째 아들로 다섯째 부인인 학깃에게서 낳은 아도니야가 있었다. 아도니야는 살아있는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다. 뛰어난 용모와 야심만만한 기질과 아울러 용의주도한 정치력까지 갖춘 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으로 칭송이 자자했던 압살롬을 쏙 빼닮은 데다 그때까지 다윗의 심사를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보다도 아비를 공경하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본 것이다. 첫눈에 반한 것도 모자라 몸살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그림 속의 떡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후궁이나 마찬가지 신분. 어느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벙어리가 된 아도니야는 그녀를 먼발치에서나 보며 냉가슴만 앓았다. 그녀를 신하들보다 먼저 발견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그녀를 아버지에게 천거한 신하들이 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무슨 수가 없을까. 아버지만 아니라면. 아버지만 없었다면. 아, 한번만 안아볼 수 있다면 죽어도 좋았다. 원이 없을 것 같았다. 마침 그때, 다윗이 연로하여 무기력해진 틈을 타 주위에서 아비삭에 안달하는 아도니야를 부추기는 세력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군사력의 정점에 있던 군대장관 요압과 정신적 정점의 위치에 있는 제사장 아비아달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그녀가 아니었다. 왕권이었다. 그녀는 안중에도 없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엔 아직 어립니다.” “그렇지만 아바마마께서 솔로몬을 후계자로 이미 내정한 상태인데 어찌 아바마마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자고로 우리 이스라엘은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장자 우선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누가 이스라엘의 장자입니까? 솔로몬입니까? 왕자님이십니다. 어찌하여 굴러온 복을 차지하려 하지 않으십니까?” “아바마마께서 살아계시지 않습니까.” “폐하는 돌아가신 거나 진배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상태 아닙니까. 저희들이 있습니다. 이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 말입니다. 뭐가 부족하여 망설이십니까. 저희들은 왕자님께서 폐하의 뒤를 잇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회였다. 아도니야는 흔들렸다. 가만히 듣고 보니 못할 것도 없고 솔로몬에 비해 자신이 나으면 나았지 부족할 것도 없었다. 교만이 겸손을 누르고 고개를 내밀었다. 무엇보다도 왕이 되기만 한다면 아비삭을 안을 수 있었다. 아도니야는 왕권보다 아비삭을 안을 수 있다는 데에 더 혹했다. “그렇다면 모두 힘을 합쳐 봅시다.” 반역이었다. 셋째 아들 압살롬에 이은 넷째 아들의 반역. 아도니야는 어느 날 요압과 아비아달의 협력 하에 전차와 기마병과 호위병을 준비하고 모든 왕자와 문무백관과 백성들을 초대하여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며 스스로 이스라엘 왕이 되었음을 만천하에 선포했다.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그에 호응하여 새로운 이스라엘 왕의 탄생을 축하하고 아도니야 왕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초청받지 못한 인사가 있었으니 그들은 선지자 나단과 다윗의 호위 용사들을 비롯하여 대장 브나야, 제사장 사독, 그리고 솔로몬 등이었다. 나단 선지자는 아도니야의 반란 소식을 듣고 그건 여호와의 뜻이 아니라며 밧세바를 찾아갔다. 나단의 생각에 이스라엘의 왕은 장자권보다 하나님의 선택이 우선이었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라 자처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뭣이라고요?” 밧세바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도니야의 반란? 압살롬에게 놀랐던 가슴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여 간이 콩알만큼 작아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당연히 다윗의 후계자는 자신의 아들 솔로몬이라 믿고 있던 그녀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한시가 급하오. 어서 빨리 폐하를 뵈어야겠습니다. 폐하께선 까마득히 모르고 계실 것입니다.” “당연히 모르시지요. 폐하를 만나서 어쩌시려고요?” “제 말대로만 하십시오. 마마의 안위와 솔로몬 왕자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나단은 밧세바에게 계교를 일러주었다. 밧세바는 다윗의 침실로 들어갔다. 급했다. 다윗은 앉아있을 기력도 없는 듯 누워있는데 아비삭이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밧세바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밧세바는 아비삭을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쳐 다윗 앞에 이르러 허리를 굽혔다. “폐하, 밧세바입니다.” 죽은 듯 누워있던 다윗은 힘겹게 눈을 떴다. “어쩐 일이시오, 부인.” “어쩌면 좋습니까, 폐하.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오!” “폐하께서 지난 날 여호와께 맹세하시며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가 요압과 아비아달 등과 모의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단 말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말이 꿈결처럼 들렸다. 단지 온몸이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분노할 힘도 없었다. 그대로 의식마저 꺼져버렸으면 싶었다. “저와 솔로몬은 이제 죽은 목숨입니다. 아도니야가 이대로 두겠습니까? 통촉하시옵소서.” 그때 선지자 나단이 들어왔음을 아비삭이 알렸다. 다윗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나단은 다윗 앞에 엎드려 절하고 질책하듯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아도니야가 후계자란 언질을 주신 적이 있으십니까?” 다윗은 나단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좌우로 힘없이 흔들었다. “그렇다면 아도니야의 음모입니다. 지금 아도니야가 왕이 된 것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왕자들과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도 그 무리에 끼어있습니다. 벌써 아도니야 왕 만세를 부르고 있다 합니다. 그들은 저와 제사장 사독과 호위대장 브나야와 솔로몬을 쏙 빼놓은 채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어서 입장을 명확히 하십시오.” 골육상쟁의 칼부림. 그 지긋지긋한 고통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다윗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 하나의 아들이 간음의 희생물이 되고자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마저 내 탓이로다.’ 갈마(羯磨)는 아직도 말년의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확신했다.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는 일은 파멸뿐이란 것을. 기도 가운데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자신 다음은 솔로몬 편이었다. 그래야만 간음이 죄에서 해방되고 최후의 축복이 될 수 있었다. 그걸 모르고 덤벼드는 아들이 안타까웠다. “밧세바를 앞으로 오게 하시오.” 긴장이 방안을 짓누르고 있었다. 조용히 밧세바가 다윗 앞에 섰다. “잘 들으시오.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여호와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의 후계자는 솔로몬이오. 오늘 당장 즉위식을 거행토록 할 것이오. 그 누구도 이 일, 즉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감히 반대하지 못할 것이오.”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 다윗의 단호한 어조였다. 꺼질 듯하던 그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밧세바는 감격하여 울었다. 다윗은 곧이어 사독과 브나야를 불러 나단과 함께 자신의 노새에 솔로몬을 태워 기혼으로 가 의식을 거행하도록 명을 내렸다. 왕의 노새는 왕만이 탈 수 있었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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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6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6회
    열락의 나날을 보낸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이 찾아와 다윗과 그 무리들을 칠 계획을 내놓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아히도벨은 다윗을 너무도 잘 알았다. 다윗과 함께 했을 때도 그의 전략은 한 치의 빈틈도 허락지 않았다. “다윗은 지쳐 있습니다. 따르는 무리도 많지 않거니와 사기도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겁니다. 저에게 군사 일만이천 명만 주십시오. 이대로 뒤를 쫓으면 따라잡기 십상입니다. 많은 피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적들은 우리의 엄청난 힘만 보고도 지리멸렬, 감히 무서워 쥐구멍이라도 찾아 도망칠 게 뻔합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는 어쩔 수 없이 저희들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직도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전하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다윗만 잡으면 됩니다.” 자신에 차있는 아히도벨의 말에 압살롬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압살롬은 더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다윗의 또 다른 책사였던 후새를 불렀다. 다윗을 아는 건 아무래도 아히도벨보다 후새가 한수 위라 생각되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아히도벨의 전략이?” “아히도벨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그는 다윗 왕을 이빨 빠진 호랑이라 하였으나 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분명히 이빨도 빠지고 곤경에 처해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그는 용사 중의 용사입니다. 그 추종세력의 용맹함은 수가 적어졌다고는 하지만 명불허전이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곰이 새끼를 뺏긴 것같이 몹시 격분한 상태입니다. 쥐새끼도 도망갈 길을 놔두고 잡으라 했습니다. 막바지에 다다르면 아무리 쥐새끼일망정 고양이에게 달려들어 무는 법입니다. 우리가 수만 믿고 밀어붙인다면 그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같은 이스라엘 백성끼리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을 잡은들 우리의 국력은 형편없이 쪼그라지고,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변방이 안정되었다고는 하나 그건 상대적입니다. 우리의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약해진다면 변방의 대적들이 가만있겠습니까? 또한 다윗의 많지 않은 군사로 우리 군사들의 많은 수가 쓰러진다면 백성들은 분명 동요할 것입니다. 패배를 모르는 다윗이라고. 골리앗을 쓰러트렸던 그 옛날을 회상하면서 여호와의 축복이 다윗 왕을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군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기가 떨어질 것은 물론 감히 나서서 싸울 생각을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엔 전하께서도 끝장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압살롬의 얼굴은 굳어졌다. 이글거리는 다윗의 눈이 떠올랐다. 그 눈빛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후새를 부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강해져야 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곤 친히 전하께서 선두에 나서 정정당당하게 싸우십시오.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해야 합니다. 옴짝달싹 못하게.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이 온 초원을 적시는 것과 같이 저희의 어마어마한 힘을 저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혹시라도 그가 어느 성에 숨어 꼼짝을 않는다 할지라도 동아줄로 그 성을 칭칭 감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아당겨 무너뜨린다는 각오로 나서야 될 줄로 압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합치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설령 이긴다할지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합니다. 섣불리 나섰다간 큰 코 다치게 됩니다. 아무리 늙었다고 다윗을 절대 얕보지 마십시오.” 후새는 다윗에게 시간을 벌어줄 심산이었다. 아히도벨의 전략이라면 십중팔구 다윗이 질 게 뻔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말보다 후새의 신중한 말이 더 완벽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했다. 후새는 눈앞의 이익보다 먼 훗날까지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듯했다. 후새는 압살롬이 그의 말을 좇아 행할 걸 알고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신신당부했다. “다윗 왕께 전하시오. 오늘 밤 안으로 광야 나루터에서 요단강을 건너라고 말이오.” 사독과 아비아달은 자신들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를 불러 다윗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아히도벨은 절망했다. 자신은 충분히 다윗을 잡을 자신이 있었다. 후새의 전략은 말만 그럴 듯하지 어림도 없는 일일뿐 아니라 다윗에게 재무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압살롬이 자신의 계략을 따르지 않고 후새의 전략을 취한 건 하늘이 아직도 다윗을 돕고 있다는 증거였다. 압살롬의 천하는 거기까지라 보았다. 다윗의 명이 다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 다윗은 위대하다. 사소한 실수와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아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으나 언제 어느 때 다윗에게 다시 향할지 알 수 없는 게 변덕스러운 민심의 속성이었다. 앞날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아히도벨은 나귀에 안장을 씌웠다. 자신이 압살롬에게 더 있어야 할 명분이 없었다. 다윗에게 갈 수는 없었다. 갈 길은 딱 하나. 죽음뿐. 허탈했다. 사탄에게 놀림 당한 기분. 고향으로 향했다. 그리곤 가산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을 매어죽었다. 다윗과 함께 유랑의 길에 들어선 밧세바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린 아들들을 챙기는 것도 힘들었지만 자신의 할아버지가 압살롬의 책사라는데 심리적인 고통이 더 컸다. 어째서 할아버지는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에게 기대를 걸었을까. 이방인인 우리아와의 결혼을 반대한 할아버지였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서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었다. 그런데 다윗을 알게 되고 우리아가 죽고 다윗의 처가 되어 살면서 할아버지를 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을 배신하고 간음한 손녀가 왕의 부인이 되었음에도 끝내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런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율법에서도 큰 죄악으로 여기는 자살을. 내가 만약 다윗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약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약 정숙한 요조숙녀로 남았더라면 압살롬의 반란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가 압살롬의 편에 서지도 않았을 것이고 허망하게 목숨을 끊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밧세바도 괴로웠다. 광야 나루터에서 후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다윗은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맞아 상세한 얘기를 듣고는 부리나케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요단강을 건너 보다 안전한 마하나임에 이르니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무리들이 그를 환대하는 것이었다. 지치고 피곤한데다 몹시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에서 뜻밖의 응원군이 가져온 꿀과 버터와 치즈와 양고기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여호와하나님의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삭막한 광야를 헤맬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에서 내렸던 구원의 만나처럼. 그들은 배불리 먹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다윗이 마하나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압살롬은 뒤늦게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땅에 진을 쳤다. 다윗은 휴식을 취하는 중에 전열을 가다듬었다. 부족하나마 그를 따르는 백성들 가운데 백부장과 천부장을 세우고 군대장관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와 블레셋 사람이지만 전에도 충성심이 강하고 지금도 변함없는 잇대에게 각각 삼분의 일씩 군사를 맡겨 지휘케 하고는 자신도 직접 전투에 나가 싸우리라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신하들은 다윗이 친히 나가 싸우는 걸 한사코 말렸다. “폐하는 귀중한 몸입니다. 폐하가 곧 이스라엘입니다. 폐하가 계심으로 저희들이 있습니다. 만약 폐하께 위험한 일이 닥치게 된다면 저희들의 사기는 짚 검불을 태운 재처럼 사그라지고 말 것입니다. 부디 옥체를 안전한 곳에서 보존하고 계시옵소서.” “고마운 일이오. 정 그렇다면 그대들의 말에 따르리라. 그러나 간곡히 부탁할 말이 있소.” “부탁이라니 당치 않으십니다. 분부 내려 주시옵소서.”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윗은 침통한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봐서라도 나의 못난 아들 압살롬을 부디 살려주시오. 그놈이 비록 잠시나마 눈이 뒤집히고 귀가 멀어 역적질을 하였으나 모두가 나의 부덕에 따른 것이오. 아비의 죄가 많아 그런 아들도 있나 봅니다. 그러니 불쌍하게 생각해 주길 바라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게 바로 여호와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소?”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윗의 간절한 바람에도 그들이 숙인 얼굴에서는 어떤 표정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다윗은 무서웠다. 나단 선지자의 경고는 그의 마음속에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그가 두 눈 벌겋게 뜨고 살아있는데도 많은 백성 앞에서 궁에 남겨둔 후궁들이 능욕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러한 압살롬의 패륜행위도 따지고 보면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원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압살롬을 암암리에 조종하는 자, 그 보이지 않는 힘, 자신을 향한 여호와의 징계, 그게 무서웠다. 어찌 보면 압살롬도 희생물이었다. 섭리의 희생물. 업보의 희생물. 갈마의 희생물. 이제 압살롬의 패배와 죽음만 남았다. 다윗은 그걸 알았다. 그래서 괴로웠다. 아비가 아들을 죽여야 하고 아들이 아비를 죽여야만 하는 비극적 현실이 자신의 죄로 인한 잉태물이라니. 하늘. 여호와하나님. 온몸에 털이 곤두서도록 무서웠다. 내가 만약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평범한 양치기로서 살고 있었더라면, 밧세바와 간음만 없었더라면, 우리아만 죽이지 않았더라면, 암논만 제대로 징계했더라면,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떠나는 걸 막았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만시지탄.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골육상쟁의 칼부림, 압살롬이 죽는 것까진 막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드디어 에브라임 숲에서 맞붙어 격전을 치르기에 이르렀다. 다윗의 군사들은 수적으로는 열세였으나 지형을 잘 알고 전투경험이 많은데 비해 압살롬의 군사들은 숫자만 많았지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요단강 동편에 있는 에브라임 숲은 계곡이 불규칙하여 낭떠러지가 많고 늪이 수도 없이 많아 게릴라전을 벌이는 다윗 군사들에게 아주 유리했다. 게다가 다윗의 군대는 후새로 인하여 압살롬의 전략을 빤히 꿰뚫고 있었다. 따라서 압살롬의 군사는 월등하게 수적으로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수풀 이곳저곳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다윗 군사의 귀신같은 전략에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되었다. 칼에 찔려 죽은 수보다 지형에 익숙지 못하여 웅덩이에 빠져죽거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수가 더 많았는데 그 전투에서 죽어나간 수는 거의 이만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 기세등등하여 단번에 다윗 군사를 쳐부수려 선두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압살롬은 당황하고 말았다. 타고 있던 노새도 당연히 허둥댔다. “너무 얕잡아봤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사방에서 다윗 군사들이 승승장구. 그는 서둘러 노새의 엉덩이에 채찍을 휘둘렀다. 우선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놀란 노새는 벼락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투구가 벗겨지고 머리칼이 노새가 일으키는 바람에 휘날렸다. 얼마쯤 내달렸을까. 머리카락이 뽑히는 아픔이 느껴지는 찰나, 몸이 붕 뜨더니 압살롬의 용모를 한층 돋보이게 해주던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상수리나무가지에 걸리고 말았다. 노새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내달리고. 그는 그대로 상수리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그 누가 알았으랴. 그의 그런 어처구니없는 최후를. 요압 수하에 있던 장수가 그걸 보고 요압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그러자 요압은 대노했다. “뭐라고! 그걸 보고 그냥 뒀단 말이야? 먼저 그놈을 죽이고 보고해도 늦지 않을 것을. 참으로 딱하구나. 네가 만약 그를 죽였더라면 내가 많은 상을 내렸을 터인데.” 그러나 그 장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는 아무리 많은 상을 내리신다 할지라도 감히 폐하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폐하께서 장군께 한 압살롬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뭐라? 이 괘씸한 놈. 그놈은 왕자라 할지라도 역적이니라. 어째서 아무런 죄도 없이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가겠느냐. 다 그놈의 역적질 때문 아니냐. 역적의 말로는 바로 죽음뿐이니라. 그놈이 죽어야 많은 사람들이 산다. 아무리 폐하의 부탁이 있어도 그건 사사로운 정에 지나지 않으니.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는 걸 어찌 모르느냐.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 네가 죽고 내가 죽는단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만약 그를 죽였다면 장군께서도 상을 내리기는커녕 어명을 어긴 죄로 저를 처벌하셨을 것입니다.” “오냐, 나는 긍휼보다 공의를 택할 것이니라.” 요압은 고집을 굽히지 않는 장수를 질책하고는 부하들을 이끌고 압살롬이 매달려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압살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요압은 그런 압살롬에게 곧장 다가가 머뭇거리지도 않고 심장을 찌르고 머리카락을 잘라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요압의 부하들이 달려들어 피로 범벅되어 꿈틀거리는 압살롬의 온몸을 난자하여 숨을 끊어놓았다. 그렇게 압살롬은 죽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것으로 반란은 끝나고 말았다. 압살롬의 시체는 구덩이에 처박히고 그 위로는 돌무더기가 쌓아졌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 예술/창작
    • 웹소설
    2022-04-09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5회
    다윗은 자신을 잃었다. 금방이라도 성 밖에 자신을 해치려는 무리들이 몰려들 것만 같았다. 어찌해야 하나. 아무리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도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도리가 없었다. 우선은 시간을 벌기 위해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었다. 그 수많은 대적들과 싸움에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도 끝내는 승리를 쟁취하여 이스라엘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그였지만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현실 앞에 전의를 상실한 것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신하 하나가 힘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죽을 각오로 싸우든가 그렇지 않으면 다음을 기약하고 이곳을 피하는 수밖에는.” 누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다윗은 주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많던 신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렇다. 이곳에서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다. 무고한 백성들의 피만 부를 뿐. 일단 이곳을 피하고 보자.”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궁에는 험난한 피난길을 예상하고 열 명의 후궁들을 남겨두어 궁을 관리하도록 일렀다. 압살롬이 아무리 반란을 일으켰다 할지라도 어미나 다를 바 없는 그녀들을 어쩌진 못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또한 제사장인 아비아달과 사독에게 성에 남아 여호와하나님의 언약괘를 지키라 명했다. 그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가 자신을 버리지 않으신다면 언젠가는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와 언약괘와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우러나온 소신이었다. 그리고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인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으로 하여금 성과 자신과의 연락을 맡도록 당부했다. 다윗은 기드온 시내를 건너 광야로 향했다. 처량한 유랑 길이었다. 아들에게 쫓겨 달아나는 아비의 신세. 하늘을 볼 엄두도 나지 않고 백성들을 바라볼 면목도 없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과였고 예견된 하늘의 응보였다. 얼굴을 가리고 신도 신지 않은 맨발로 감람산을 오르다보니 따르는 백성들이 슬피 울었다. 다윗도 그만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미어지고 갈가리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같은 무고한 백성끼리 피를 볼 게 너무나 뻔했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누구냐! 압살롬을 돕는 머리는.” “아히도벨입니다.” “아히도벨이?”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밧세바의 조부가 아닌가? 그가 어떻게? 아히도벨은 전략의 귀재이자 지혜 덩어리였다. 전장의 다윗 옆에는 언제나 아히도벨이 있었다. 그 많은 승리 뒤에는 아히도벨의 전략이 있었다. “여호와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이 종을 잊지 않으셨다면 아히도벨의 모략이 아무 쓸모없게 하옵소서.” 자신도 모르게 다윗은 여호와께 울부짖었다. 산마루에 있는 여호와를 경배하는 성소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때 마침 다윗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가 굳게 신뢰하는 후새가 옷을 찢어발기고 얼굴엔 흙을 잔뜩 묻힌 참담한 모습으로 나타나 다윗을 맞이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다윗은 천군만마를 만난 듯 후새가 반가웠다. “얼마나 침통하십니까, 폐하. 이럴 때일수록 옥체보존하소서.” “그대를 만나 더없이 다행이구려.” “제가 무슨 힘이 될 수 있을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무슨 겸손의 말이오.” “폐하가 가시는 곳 어디라도 보필하겠나이다.” 다윗은 그때 머리를 스치는 비상한 생각을 끄집어냈다. “그대는 나와 같이 갈 게 아니라 꼭 해줘야 될 일이 있소. 그대가 아니면 못 할 일이오.” “무슨 일입니까? 목숨을 바쳐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압살롬에게 거짓으로 투항하시오. 압살롬은 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도 필시 그대를 중용할 것이오. 저쪽에선 아히도벨이 전략을 쥐락펴락하니 그 전략에 내가 곤경에 처할 게 틀림없소. 그 전략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게 그대가 할 일이오. 또한 그곳엔 사독과 아비아달이 언약괘와 함께 있으니 내가 알아야할 일이 있으면 그들에게 전하시오. 그들의 아들들이 내게 알려주게 돼 있소. 나는 광야 나루터에서 소식이 오길 기다리겠소.” 다윗답지 않은 계략이었으나 후새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갔다. 천륜을 거스른 압살롬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거라 맹세하며. 반석 위에 서있는 이스라엘을 패륜아의 손에 넘길 수 없다고 다짐하면서. 다윗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다. 일행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힘들고 지친 판에 사울 왕의 친족인 시므이가 무리를 이끌고 나타나 돌멩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어대는 것이 아닌가. “잘 되었도다, 네가 사울 왕께서 키워준 은혜를 저버리고 그 일족을 처단하여 왕위를 차지하더니 영원히 잘 될 것 같았느냐. 칼로 일어서는 자 칼로 망하고, 배신하는 자는 똑같이 배신을 당하는 법. 피 보기를 좋아하는 자여, 천하의 배신자여, 가라, 가라, 사라져가라. 사울 왕의 원한을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셨도다. 네가 잠시 왕이 되었을지언정 끝내 네 자식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는 건 여호와하나님의 뜻이 어떻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니더냐. 바로 너의 업보이고 갈마이니라.” 다윗은 꾹 참았다. 그러한 시므이의 저주도 자신의 부덕의 소치이고 여호와의 뜻이려니 생각했다. 그래서 옆에서 듣고 있던 장수가 그의 목을 베려는 걸 막았다. 시므이는 사울의 친족 중 한 사람으로 다윗에 대해 별다른 이유도 없이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아무 말 없이 나아가자 시므이는 따라가면서 더욱 더 소리 높여 저주를 퍼부으며 돌을 던지고 일행을 못살게 굴었다. 사람들은 간사했다. 다윗은 그 간사한 마음을 어려운 상황에 이르자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기어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겠노라고. 압살롬만 괘씸한 게 아니었다. 압살롬을 부추긴 세력, 그들이 원수였다. 마침내 압살롬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별 어려움 없이 다윗왕성을 접수했다.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는 찾아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왕의 신하였던 자들의 열렬한 환영까지 받았다. 또한 언약괘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과 함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여호와의 축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을 맞아 열광하는 백성들도 보았다. “여호와하나님 만세, 이스라엘 만세, 압살롬 왕 만세!” 그 와중에 후새의 정중한 환대가 특히 감격스러웠다. “귀하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충성스러운 신하였는데 어찌하여 따라가지 아니하였소?” “저는 여호와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의 백성일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전하를 선택하였고 모든 백성들이 원하는데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전하의 아버지를 섬기듯이 저는 이제 전하를 섬길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젠 늙으셨습니다. 그래서 판단도 흐려졌습니다. 옛날과 같은 용맹함과 총기도 사라졌습니다. 이젠 쉬실 때가 되었지요. 이런 방법을 택한 거야 물론 잘못인 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아바마마의 고집을 아시잖습니까. 부디 저를 도와 아바마마를 설득하여 주십시오. 저도 피를 원치 않습니다. 아바마마를 편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자문도 구할 것이고요.” “그래서 제가 남았습니다. 성심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압살롬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윗이 앉았던 의자에 기고만장하여 책사 아히도벨에게 물었다. “짐이 첫째로 해야 될 일이 무엇이오?” 아히도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성에는 선왕을 따라가지 못한 후궁들이 있습니다. 그녀들을 취하십시오.” “뭐라고요! 아바마마의 후궁들을?” “그렇습니다. 예로부터 승리자는 패배자의 아녀자를 갖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부자의 관계가 아닙니다. 피아(彼我)일 뿐입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압살롬은 망설였다. 어떻게 아버지의 여자를 깔아뭉갤 수 있단 말인가.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런 자를 죽이는 자에게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율법이 무서웠다. 그러나 율법도 전쟁 시에는 예외가 아니었던가. “적장의 여자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이제 전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마땅히 그 여인들도 전하의 소유입니다. 뭘 망설이십니까. 궁궐에서부터 선왕의 잔재를 사그리 없애야만 합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의를 그르치지 마시옵소서.” 아히도벨의 간계였다. 그는 다윗이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괘씸했다. 자신의 손녀인 밧세바. 남편인 우리아를 죽이면서까지 뺏어간 행위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너도 치욕을 맛보아라, 앙갚음이었다. 그는 자진해서 다윗을 죽이려는 역적이 되었다. 그렇지만 다윗이 어떤 인물인가. 그 많은 시련에도 굴하지 않은 역전의 용사 중의 용사가 아닌가. 압살롬이 부자간의 정을 내세워 다윗을 살려주지 않을까 아히도벨은 두려웠다. 다윗이 살아있는 한 압살롬을 도운 자신은 다리를 뻗고 잠들지 못할 건 자명한 일이었다. 따라서 압살롬이 다윗과의 관계를 철저히 끊도록 해야만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도록 하는 것이었다. 족쇄를 채우는 것. 부자간이 아니라 철천지원수가 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선왕의 여자였다. 압살롬으로 하여금 후궁들을 취하게 하는 건 부자간의 정 따위는 생각지도 말라는 족쇄였다. 절대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어떻게 해서든 건너도록 하는. 압살롬은 이제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다. 전쟁에 승리한 자가 처첩을 취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권리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저항이 있을 수 없었다. 경(經)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 지붕이 문제였다. 다윗이든 압살롬이든. 이 소식을 접한 다윗은 온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압살롬의 패륜행위도 그렇지만 나단의 경고가 너무 생생했다. 그것은 곧 여호와의 뜻이 아니던가. “내가 너를 저주하여 밧세바를 취한 대가로 네가 두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데도 백주에 네 부인들이 능욕을 당하게 되리라.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서 네가 죽게 될 줄을 정녕 몰랐단 말이야.” 그것도 이방인이 아닌 믿고 사랑했던 아들에게 능욕을 당하다니! 치욕이었다. 살고 싶은 의욕이 싹 가셨다. 그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절벽과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과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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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03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4회
    어찌해야만 합니까. 어디까지가 무지한 인간의 소치이고 당신의 뜻이며 회개의 끝입니까. 당신의 경고에 의한 희생제물은 무엇입니까. 나 같은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또 다른 인간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정녕 당신의 뜻입니까. 우러르고, 매달리고, 때론 원망도 하며 보낸 세월. 그 세월이 흐르고. 어찌할 수 없는 부정(父情). 아들이 보고 싶었다. 울고만 싶은 마음, 마침 요압이 때려주었다. 실컷 울도록. 그런데 막상 압살롬의 얼굴을 대하려니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용서하는 마음보다 미움이 더 컸고 보고 싶은 마음보다 괘씸함이 더 컸다. 너는 그래도 살아있다. 너를 볼 수 있는 날은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다. 결국 다윗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불러 놓고도 이 년 동안이나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압살롬.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은 압살롬. 그는 당당했다. 그는 전보다 더욱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 압살롬을 경(經)은 이렇게 적고 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러나 압살롬은 초조했다. 다윗이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부른 것은 지은 죄를 용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기대도 컸다. 성심을 다해 아버지를 보필하리라 다짐하며 마음껏 자신의 포부도 펼쳐보리라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다윗으로부터 기별은커녕 얼굴조차 대할 수 없게 되자 용서한 것이 아니라 신하와 백성들의 요구에 마지못해 응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압살롬은 자신을 데려온 요압을 불렀다. 무엇 때문에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냐고 따질 심산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 처박혀 세월만 보내느니 그술에 그대로 있는 편이 나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몇 번의 부름에도 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던 압살롬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완전 다윗과 요압의 술수에 놀아난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하인들에게 명하여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질러버리라고 명했다. 그리하면 요압이 화가 나 자신에게 분명 따지러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압은 은혜를 모르는 압살롬의 행위가 너무 괘씸하여 부리나케 그를 찾아 따지고 들었다. “어찌하여 왕자님의 하인들이 저희 보리밭에 불을 지르는 못된 짓거리를 한 겁니까?” “그걸 정녕 모른단 말이오?” “모르오.” “왜 나를 그술에서 데려왔습니까? 하고 많은 날 침대나 지고 있으라는 거요? 도대체 무엇 때문이오! 어째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는 거요.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십니까? 차라리 날 죽이라고 그러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느니만 못합니다. 나는 아바마마와 이스라엘을 잊고 체념했던 사람입니다. 나마저 체념했었단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왔습니다. 아바마마께서 날 그리워하신다면서 말이오. 그래서 여기로 왔을 때는 아바마마와 이스라엘과 나의 앞날에 대한 기대로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내가 할일이라곤 그술에 있는 것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하도 답답해서 장군을 불렀지만 내 얘기에 콧방귀나 뀌었습니까? 밭에 불을 지른 건 사과드리지요.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아바마마를 뵙게 도와주시오. 아직도 내게 죄를 물으신다면, 암논을 징계치 않고 방치한 결과 제가 대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처단한 죄를 물으신다면 달게 받을 것입니다.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서 뜻 한번 펴지 못하고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백번 낫겠습니다.” 하긴 요압도 다윗의 처사가 못마땅하던 참이었다. 요압은 압살롬에 대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빼어난 용모와 거기에 용맹스러운 데다가 지혜까지 출중함은 분명 이스라엘을 위한 여호와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백성들의 마음은 다분히 다윗 다음은 압살롬이라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서두름은 기다림만 못하다는 판단 아래 다윗의 처분만 바라고 있었는데 압살롬이 그걸 못 참아 엉덩이를 들썩이고 방정을 떠는 것이다. 다윗은 아직까지도 압살롬의 자중을 바라고 있을 텐데. “다시 그술로 돌아가리까?” “알겠습니다.” 요압은 무거운 심정으로 다윗을 만났다. 그리고 간청했다. 조그마한 화로 큰 복을 걷어차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압살롬은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이라고. 지나간 죄에 연연하지 말라고 다윗의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다윗은 압살롬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어차피 늦고 빠름이 다를 뿐 길은 원상회복 쪽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과 압살롬 부자는 그렇게 해서 다시 만났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다. 압살롬을 만난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한 압살롬의 죄가 봄눈 녹듯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여호와의 축복이라 여겨졌다. 땅에 엎드려 절하는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이놈, 압살롬 내 아들아. 어디 보자. 그동안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마음고생이 여간 아니었음을 내가 다 안다. 이제 지나간 일은 잊기로 하자.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고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구나. 더욱 분발하여 네 꿈을 활짝 펴보아라.” “아바마마, 이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 이 아들을 믿어주십시오. 전심을 다하여 아바마마를 위하고 이스라엘을 위하겠습니다.” 압살롬은 고무되었다. 장애는 사라졌다.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예상하긴 했지만 민심을 살펴보니 어느 왕자보다도 자신에게 이스라엘의 미래를 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족쇄가 풀리자 암중모색하고 있던 신하들이 하나 둘 자신에게 줄을 대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다윗은 지는 해고 자신은 떠오르는 해라는 걸 신하들이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이리라. 압살롬은 실력을 쌓고 힘을 비축해갔다. 사병을 조직하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한편으로 자신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기병 오십 명이 항상 호위하게 했다. 또한 그는 다윗에 앞서 백성들의 불만을 탐지하고 해소하려 노력했으며 심지어 다윗의 고유 권한인 재판까지도 노고를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서슴없이 가로채어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에 혈안이 되어갔다. 이러기를 사 년. 백성들은 차츰 압살롬의 민심 사로잡기에 편승하여 그를 지지하기에 이르렀으니, 압살롬과 그의 가신들은 기고만장해지고 오만해져 갔다. 그때에. 통일 왕국 이스라엘이 될 때까지 수도였던 헤브론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수도가 옮겨가자 불만이 쌓여있던 터였다. 헤브론은 압살롬의 탄생지였다. 가신들은 세력이 커지게 되자 다윗이 있는 예루살렘의 한계를 절감하고 헤브론으로 근거지를 옮기자고 압살롬을 부추겼다. 그도 원하던 바였다. 그리하여 그술에 있을 때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헤브론에서 실행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붙여 다윗의 허락을 받아냈다. 다윗도 헤브론의 불만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압살롬이 스스로 간다고 하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줄은 모르고 오히려 더없이 좋은 일이라 여겨 쉽게 허락한 것이다. 헤브론으로 온 압살롬은 거칠 것이 없었다. 비가 내린 땅이 더 굳어지듯이 왕은 자신을 믿고 있었다. 막강한 사병 조직과 백성들의 호응은 의외로 커 그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갔다. 다윗의 신하들도 서서히 압살롬의 수하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의외로 다윗의 가장 뛰어난 책사 중의 하나이자 밧세바의 할아버지인 아히도벨이 끼어 있었다. 압살롬은 자신의 세력이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되자 여호와의 은혜가 다윗으로부터 자신에게 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호와는 곧 하늘이었다. 하늘이 사울 왕을 저버리고 아버지 다윗을 선택한 것처럼 이젠 나를 선택할 차례. 하늘의 뜻을 받들지 않는 것 또한 죄악 아닌가.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한다. 압살롬은 나름대로 자신이 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자기최면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근본인 열두 지파에 사람을 보내 민심잡기에 들어가는 한편 때가 되었을 때 즉각 호응할 수 있도록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윗으로부터 홀대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서슴없이 떠나온 신하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더욱 더 압살롬을 부추겼다. “하루라도 빨리 여호와의 영광을 받으소서. 다윗 왕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민심은 압살롬 전하에게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대세입니다. 천심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주저치 마시고 대업을 받드소서.” 그것은 마약이었다. 끊을 수 없는 유혹은 현혹으로 진화하기 마련.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니 아비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취된 기분은 날이 갈수록 왕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로 바뀌어 결국 자신이 하나뿐인 이스라엘 왕임을 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이제 압살롬 본인입니다. 본인의 아비이자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은 충신의 아내를 짓밟고도 모자라 그 충신을 사지로 몰아 죽게 한 살인자이며 끝내 그 아내를 탈취하여 부인으로 삼은 죄인입니다. 또한 왕자인 암논이 여동생을 강간한 죄를 사사로운 감정으로 묻지도 않고 방관하여 율법을 우롱하고 여호와하나님을 무시하였으며 오히려 그 패륜아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응징한 본인을 변방으로 돌게 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궁은 온통 후궁 천지라 그 치마폭에 휩싸여 국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고, 그가 뿌린 씨앗들의 세상이라 율법이 바로 서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은 그런 다윗에게서 떠났습니다. 이에 본인은 민심을 존중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자 감히 나섰습니다.” 그것은 다윗에 대한 반역이었다. 아들이 아비를 배신한 것이다. “폐하,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뭐라고!” 다윗은 그러한 보고를 신하로부터 듣고는 깜짝 놀랐다. “폐하, 이스라엘 대다수 백성의 마음이 예루살렘을 떠나 헤브론을 향해 있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폐하를 떠나 압살롬 왕자에게로 임했다는 풍문까지 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동안 압살롬 왕자는 암암리에 막강한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고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떻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여호와여, 언제까지입니까? “많은 신하들마저 속속 압살롬 휘하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부덕했단 말인가.”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세우셔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은 하루 이틀 전에 계획을 수립한 것이 아닐진대 지금 당장 어떻게 대책을 수립할 수 있겠느냐.” 눈앞이 캄캄했다. 무력감만 넘실거렸다, 압살롬이 아닌 여호와께. 나단에게서 여호와의 경고를 받을 때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여호와는 그때 이미 나를 버렸구나. 나는 일찍이 이 자리를 떠나야 했었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믿었던 자식이, 그토록 사랑했던 자식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나의 울부짖는 기도도 뼈를 깎는 회개도 소용이 없었구나. 자식에 의한 반란이 일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내게서 여호와는 떠난 것인 걸. 아직도 나단을 통하여 여호와는 대답이 없지 않은가. 내 죄악으로부터 나를 모질게 살려두었던 것, 그것도 응징이 아니고 무엇인가. 두고두고 고통을 받으라는. 여호와의 용서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 그렇지만 내가 의지할 데라곤 오로지 그 분밖에 없지 않은가. 자비를 주시든 안 주시든 그 분의 뜻인 것을. “지금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 중이랍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신하들이 모조리 헤브론에 있다고 합니다. 어서 대책을 세워 주소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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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5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3회
    다윗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달랑 시종 하나만 데리고 길르압의 집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정말 아무도 몰라야 했다. 만약 이 사실이 백성들의 입에 회자된다면 길르압은 물론이고 여호와의 기름부음의 은혜를 받은 자신마저 내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여호와를 거역한 사울 왕의 비참한 최후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길르압은 태연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다윗을 보자 황급히 일어나 무릎을 꿇어 그를 맞이했다. 얼굴도 요르답이 말한 것과 달리 그대로였다. 다윗은 적이 안심이 되었다. 분노가 많이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요르답의 말이 거짓말이길 빌면서. “요르답의 말이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다윗에 비해 길르압은 여전히 태연했다. “무엇이 사실이란 말이냐?” “여호와는 없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의 여호와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의 염원일 뿐입니다.” “그만!” 더 들을 말이 없었다. 더 들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정신이 아뜩했다. 다윗은 그대로 눈을 감고 기도했다. “사랑의 여호와하나님, 이 불쌍한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다윗가의 멸망이 눈에 선했다. “너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 이 애비가 미워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라고 어서 말해다오, 내 아들아!” 그러기를 바랐다. 자신이 미워서 길르압이 반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아바마마께서는 눈에 훤히 보이는 모순을 어째서 여호와의 뜻으로 돌리시는 겁니까.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여호와께서 살인을 종용해왔습니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던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이방 침략을 숱하게 묵인해왔습니다. 저는 이런 모순의 여호와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선 모순이 없으시다. 전지전능하실 뿐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말부터 모순입니다. 저에게는 모순의 전지전능함만 보입니다.” 길르압은 울고 있었다. 다윗은 고개를 돌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만시지탄이었다. “너는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언약을 믿지 못하느냐?” “이방인도 사람입니다. 죄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죽었습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이스라엘을 죽일 것이니라.” “그래서 모순입니다.” “이단이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다윗은 다윗가의 멸망을 보았다. 그리곤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다윗이 다녀가고 난 후 길르압의 집은 철저하게 봉쇄되었다. 그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길르압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지내다가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고 몇날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 쓸쓸하게 죽고 말았다. 요나답의 운명도 마찬가지. 백성들은 길르압이 애초부터 병치레를 자주 한 걸로 알고 있어 그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다윗은 길르압을 잊었다. 철저하게 잊었다. 패륜아 암논이 죽고 이단아 길르압도 죽었다. 압살롬은 형을 죽이곤 도망쳐버리고. 첫째와 둘째와 셋째아들까지 잃어버린 다윗의 괴로움 중에도 세월은 흐르기 마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처럼 전쟁이 없는 평화를 즐겼다. 변방이 안정되자 백성들은 생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더욱 강력해지고 다윗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온 정성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아들들에 대한 괴로움을 잊어갔다. 시간은 역시 명약. 슬픔과 분노를 잊게 해주고 새로운 기쁨을 안겨주었다. 여러 부인들을 통해 왕자와 공주가 계속 태어나 다윗에게 웃음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태평성대는 성군을 낳는다던가. 다윗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모든 백성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과 칭송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다말은 그술로 피한 오라버니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거의 모든 시간을 여호와를 향하여 그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로 보냈다. “사랑과 은혜와 용서의 여호와하나님이시여. 이 못난 여종으로 인한 여러 사람의 불행이 주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있사옵니다. 부디 저희를 향한 노여움을 거두시고 우리가 이제는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로 인하여 또 다른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저의 길을 살펴주시며 그술에 가있는 압살롬 오라버니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항상 동행하여 주시고 그를 향한 아바마마의 고통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대신 그 자리에 사랑이 다시 일렁이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또한 그녀는 다윗에게 나아가 눈물로 하소연했다. “아바마마, 압살롬 오라버니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선처하여 주시옵소서. 그가 어찌 죄인이 되었습니까. 모두가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아바마마의 오라버니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을 여셔서 오라버니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소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거절치 마시옵소서.” 기쁨을 잃어버린 딸을 보는 다윗의 가슴은 미어졌다. 다말의 간절한 청이 아니더라도 다윗은 차츰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외모에다가 믿음직스럽고 듬직했던 아들이 아니던가. 사내대장부로서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용맹과 지혜까지 겸비한 압살롬. 자신을 빼닮은. 그래 다말의 말대로 그놈이 무슨 죄가 있는가. 내 탓이고 나의 직무유기이자 방임이었다. 어쩌면 내 죄로 인한 피해자이고 희생제물일 뿐. 그렇게 생각하자 다윗은 압살롬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 들기 시작하자 파도가 되어 요동치더니 거대한 밀물이 되어 다윗의 온 가슴을 적셨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 법. 그러한 다윗의 심중을 꿰뚫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군대장관 요압이었다. 다윗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지가 몇 년이던가. 그는 다윗의 눈짓, 손짓, 발짓만 보고도 그가 무얼 하려는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압살롬이 그술에 거한 지 삼 년. 아무리 그가 이스라엘 왕의 장자이자 이복형인 암논을 죽였을지라도 그 죽임에는 백성이 공감하는 명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누이를 강간한 자를 처단했다는. 다윗의 수많은 왕자들 중에 압살롬만한 인물이 있는가. 다윗의 후계자는 압살롬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윗은 분명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럴 때 내가 나서야 한다. 다윗이 어떻게 스스로 나서서 그를 데려올 수 있으랴. 그렇게 생각한 요압은 장담했다. 다윗은 못이기는 척 자신의 말을 따르리라고. 누가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을 거라고.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금물. 분위기를 띄워야 했다. 그래서 그는 수소문하여 드고아에 사는 슬기 넘치는 여인을 찾아내 계교를 일러주고 왕과의 면담을 성사시켜 주었다. 그녀는 요압이 일러준 대로 상복을 입은 채 다윗 앞에 엎드려 구슬피 울었다. “그대는 무슨 연고가 있어 그리 슬피 우는가?”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우리 백성들의 주인이시여, 이 불쌍한 여인을 도와주시옵소서.” “무슨 일인지 말해 보시오.” “저는 일찍이 전쟁터에서 남편을 여읜 가난한 백성입니다. 이런 제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들에서 일을 하다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말다툼을 벌이다가 감정이 격해져 몸싸움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걸 보고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형이 동생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로고.” “뒤늦게야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동생을 죽인 형을 똑같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아들 하나가 죽은 것도 서러운데 이제 둘 다 죽게 생겼습니다. 그리되면 저의 가문의 대가 끊기는 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니라. 그대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내가 별 일 없도록 조처할 것이니.”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다윗이 모를 리 없었다. “저와 저의 집안의 불행으로 우리의 주인이신 폐하께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걱정 마시오. 이후로 그대를 괴롭히는 자가 있다면 내게 알리시오. 다시는 그대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엄히 다스릴 것이오.” “저의 아들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여호와께 맹세하노니 그대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리라.” “참으로 살아계신 여호와하나님과 같은 주인이십니다. 한 말씀만 더 여쭙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 하시오.” “사람은 나면 필히 죽습니다. 한번 죽게 되면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저의 작은아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 작은아들을 죽인 큰아들의 죄는 심히 막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죄인의 생명을 거두지 않으시고 또한 내버려두시지도 않으며 회개하고 뉘우치게 하십니다.” 다윗은 그제야 눈치를 챘다. 드고아 여인의 일은 바로 자신의 일이자 아들의 일이었던 것이다. “내게 숨기지 말고 고하라. 요압이 시켰느냐?”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그렇습니다.” 다윗은 요압을 불렀다. 요압은 다윗 앞에 엎드렸다. “암논 왕자는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옵니다. 압살롬 왕자는 단 한번 폐하의 심중을 거스르고 스스로 죄인이 되어 그술 땅에 은거하고 있습니다. 이미 삼 년이 지났습니다.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고자 하십니까. 참척의 고통이야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위하여 어떤 것이 현명한 처사인지 헤아려 주시옵소서. 우리 이스라엘은 여호와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또한 폐하의 탁월한 인도로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고 이제 당할 자가 없을 정도의 강국이 되었습니다. 압살롬 왕자의 인격과 됨됨이는 모든 백성들이 우러러보고 있음을 폐하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고 왕자로 하여금 전하 곁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심이 지당할 줄 압니다. 그리하시면 왕자 또한 그 전보다 더 전심전력할 것이라 믿습니다.” 모두가 맞는 말이었다. 구구절절 다윗과 같은 심정의 말이었다. 이제 더 이상 뭘 머뭇거리랴. “알았다. 가서 데려오라.” 다윗은 무겁게 신음하듯 내뱉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는 전하의 현명하신 판단에 기뻐할 것입니다. 여호와하나님이시여. 간절히 빌고 원하옵건대 우리의 주 다윗 대왕의 앞날을 영원토록 축복하시고 언제까지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요압은 그 길로 그술로 떠나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을 보지 않았다. 막상 아들이 돌아오니 사랑했던 만큼 미움이 되살아난 것이다. 압살롬은 나단에 의한 여호와의 저주였던 골육상쟁의 칼부림을 불러온 장본인이 아닌가. 그는 두려웠다. 살얼음을 밟는 기분으로 살아온 나날이었다. 그래서 나단의 경고가 경고로서 그치길 간절히 기원했다. 그런데 압살롬이 그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거기엔 암논의 패륜이 있었다. 찢어죽이고 싶은. 그러나 밧세바와의 간음, 우리아에 대한 살인 교사라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 씻고 또 씻어도 씻지 못할 자신의 원죄가 도사리고 있었다. 밧세바. 사랑하는 밧세바. 이제는 부인이 되었지만 그녀는 부하의 아내였다. 어떻게 씻어낼 수 있단 말인가. 암논과 다말. 자신이 뿌린 씨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자신을 닮아버린 암논의 행태. 그래서 더 미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던, 피를 보고 싶지 않았던 심사, 조마조마하게 버텨온 나날. 압살롬은 그걸 깨뜨려버렸다. 자신을 기만하고 형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들. 그 아들이 나단의 경고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절벽과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과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 예술/창작
    • 웹소설
    2022-03-12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2회
    “여호와여. 이것으로 끝내시옵소서. 이것만으로도 이 종은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어떻게 애비로서 자식이 자식을 죽이는 꼴을 볼 수 있겠습니까. 견뎌낼 수가 없사옵니다. 간절히 빌고 원하오니 저를 취하소서.” 다윗은 한꺼번에 두 아들을 잃은 셈이었다. 암논은 자신이 저지른 죗값으로 죽었고 압살롬은 다윗을 기만하고 그술로 도망가 버렸다. 암논은 실질적인 장자였으나 압살롬은 심정적인 장자였다. 다윗의 애통은 그래서 더 컸다. 차남인 길르압은 모든 면에서 너무 소심했다. 사람이 장래의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윗은 그제야 암논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율법을 어긴 자는 어떤 식으로든 하늘이 징벌을 내린다는 걸 간과했다. 암논을 꼭 죽이지 않고도 국외 추방 같은 조치를 취했더라면 신하들도 공감했을 것이고 압살롬 또한 형을 살해하는 무모한 짓을 범하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후회막급이었다. 자신은 결국 법의 정의도 세우지 못하고 백성들의 공감도 얻지 못했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 결과만을 초래한 것이다. 사실 다윗의 마음은 암논에게서 떠나 있었다. 자신의 후계자로서 암논이 아무리 장자라 할지라도 너무나 커다란 허물을 갖게 된 것이다. 아무리 덮으려고 해도 덮을 수 없는,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여동생을 강간했다는 허물. 그가 설사 다윗의 후계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해도 여호와께서 용서치 않을 것이며 백성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리라. 그래서 염두에 둔 아들이 압살롬이었다. 차남 길르압은 매사에 의욕이 너무 없다는 얘길 듣고 있었다. 압살롬을 후계자로 했을 경우 자연스럽게 암논에 대한 처벌로 여기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정쩡하고도 우유부단한 세월. 결과는 형제간의 칼부림이었다. 이런 단초를 제공한 나를 백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유언비어와 뜬소문에 민감한 백성들의 여론은 조석지변일진대. 다윗은 괴로웠다. 자신을 믿고 따르던 백성들이 갑자기 돌아서서 손가락질을 해대는 모습을 그리며 괴로워했다. 그럴수록 의지하고 매달릴 수 있는 영원한 피난처는 하늘에 계신 여호와였다. 경(經)이 전하는 다윗의 심정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다윗의 둘째아들 길르압. 안하무인이자 천하의 구두쇠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로부터 낳은 아들. 왕자의 신분이지만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존재로 모두가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그도 남자였다. 아무리 왜소한 체구에 다른 형제들에 비해 드러나지 않는 품성을 지녔다 할지라도 그도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어 세상의 평판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모친이 다른 남자의 아내였다는 것. 남편을 죽이려 했던 남자를 사모하여 불같은 성질을 이용해 남편으로 하여금 피를 토하여 죽어버리도록 기지를 발휘하고 그걸 기다렸다는 듯 바로 그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자신의 출생. 여호와. 여호와의 뜻. 선택된 기름 부음.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이 하는 아버지. 그의 간음과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아와 핏덩이의 죽음. 하나에서 열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투성이를 직시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알아 여태껏 조용히 살았다. 그런데 다윗가의 장자이던 형 암논이 동생인 압살롬에게 참살을 당했다. 암논과 압살롬은 저 잘난 맛에 자신을 동생이나 형으로서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 철저히 무시했다. 그런 그 둘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윗은 절망하고 있었다. 이제 다윗의 장자는 자신이었다. 자격지심에 움츠러들기만 한 지난날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암논을 패륜의 길로 인도한 요나답이었다. 요나답은 길르압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았다. “왕자마마, 언제까지 관망만 하고 계실 겁니까?” “무슨 말이오?” “야자나무에서 야자가 저절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길르압은 목소리를 죽여 소곤대는 요나답을 쏘아봤다.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 이러는 게요?” “천하를 얻는 일입니다. 온 이스라엘을요. 다음 차례는 왕자마마가 아니겠습니까?” 길르압은 냉소했다. “나는 그대를 만나지 않은 것이오. 당장 나가시오.” 잔뜩 기대를 걸고 왔던 요나답은 머쓱해져서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길르압에겐 측근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따라서 자기만한 위치의 인물이 다가서길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지금까지 평판대로라면 길르압은 자신이 마음 놓고 주무를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랬는데 그의 반응은 너무 뜻밖이었다. 내가 너무 서두른 것인가? 그렇다면 듣던 것보다 의뭉하단 말이로구나. 그래 좀 더 기다려보자. 요나답은 시류를 읽을 줄 아는 타고난 머리를 가졌다. 암논에게 접근하였던 것도 다윗의 장자라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길르압의 관심은 딴 데 있었다. 사람과 죄, 만물을 창조했다는 하나님이었다. 사람을 만든 하나님이었다. 아울러 죄도 만든 하나님이었다.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이 사람과 죄를 같이 만든 것은 장난을 즐기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되었다. 하나님이 장난의 대상으로 사람과 죄를 만들지 않았다면 사람과 죄를 만든 건 하나님의 실수이자 하나님의 죄였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죄. 그렇다면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든지 전지전능한 또 다른 절대자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고서 자신을 믿으라 한다? 믿지 않는 이방민족은 죄인이므로 죽여도 좋다? 그 이방인들도 자신이 만들었으면서? 죄인을 응징하기 위해선 죄도 없는 희생제물을 만들어 죽이기 좋아하는 여호와. 이스라엘의 여호와하나님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죽여도 좋았다. 이런 신을 과연 믿어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일방적인 신을. 뭔가 잘못되고 있다. 이방인을 말살시키기 위한, 이스라엘만을 위한 신 만들기가 아니었을까?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신. 그렇다면…, 단언컨대 여호와는 없다. 길르압의 생각은 끝을 몰랐다. 여호와하나님에 대한 의문은 끝이 없었다. 그는 맹목적인 여호와 섬기기를 거부했다. 기도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여호와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왕자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앞으로 거의 나서질 않았던 것이다. 대신에 그는 끊임없이 인간이 지켜야할 도리에 대해 묵상했다. 요르답은 길르압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길르압은 언제나 조용했다. 길르압의 종에게 근황을 물어보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여호와에게 기도만 하고 있는 길르압이 참으로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다윗에게 길르압이 조금만 잘 보이면 후계자는 따 놓은 당상인데 어쩌자고 시간만 죽이고 있는가. 그는 어떻게 하면 꼼짝을 하지 않는 길르압을 부추겨 다윗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길르압이 후계자가 되어 왕위를 물려받으면 자신의 앞날은 탄탄대로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가 여호와의 장막에 거주하다시피 하는 다윗을 생각하고는 무릎을 탁 치며 길르압에게 갔다. 그는 천재였다. 길르압도 날이면 날마다 기도만 하고 있다 하지 않는가. 그 아비에 그 아들이었던 것이다. “왕자마마, 건강이 염려되오이다. 여호와께서는 왕자님의 신실하심을 이미 아셨을 것입니다. 부디 건강을 잃지 마시옵소서.” “……” 길르압은 아무 말이 없었다. 요나답이 들어오는 것을 잠깐 봤을 뿐 계속해서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요나답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왕 기도하시려거든 여호와께서 계시는 곳에서 하심이 어떨지요.” “내게 여호와는 없소.” 길르압은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요나답은 잘 알아듣질 못했다. “폐하께서도 그곳에 자주 납시는데요.” 다윗에게 신실한 길르압이라는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으라는 것이었는데. “그는 죄인이오.” “예?” “없는 여호와를 향해 무엇을 용서받겠다는 것이오? 죄짓고 용서받고, 또 죄짓고 용서받으면 그게 무슨 신이란 말이오? 우리아, 그 충신에게도 여호와가 있지 않았소? 우리아는 무엇이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게 애들 장난이오? 아무런 죄가 없는 우리아가 죽어 가는데 그의 여호와는 어디에 있었소? 뭣하고 있었냐고요. 애초부터 여호와는 없었소이다. 아니, 설령 있다한들 그런 여호와 따윈 내게 필요 없소.” 요르답은 너무도 놀라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여호와가 없다니? 여호와를 부정하다니? 더군다나 다윗이 죄인이라니? 죄악 중의 가장 큰 죄악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길르압은 그토록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고 있었다. 사탄의 조종에 놀아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어둠 가득한 저 얼굴 좀 봐. 틀림없었다. 요르답은 서둘러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 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실 필요 없소. 당신은 이곳에 왔고 여호와를 부정하는 내 말을 들었습니다.” 요르답은 황급히 길르압의 집을 빠져나왔다. 길르압은 분명 사탄의 괴뢰였다. 괴뢰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여호와가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두문불출하고, 있어도 없는 척한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리라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왕자의 신분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의 아들. 여호와에 대한 부정은 반역보다도 무서운 죄였다. 그는 지체치 않고 다윗에게 나아갔다. 길르압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것만이 공을 세우는 일은 아니었다. 여호와의 적인 사탄의 괴뢰를 없애는 일 또한 무엇보다 시급했다. 그 공을 어디에 비기랴. 역시 다윗은 여호와의 집인 장막에 있었다. 요르답은 왕의 조카이기에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고하고 나서 이 말을 덧붙였다. “얼굴마저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청천벽력이었다. 너무나 놀란 다윗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불경스러운 이야기가 요르답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둘째아들 길르압에 대한. “그 말이 사실인가?” 다윗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겠습니까.” 다윗은 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이 사실을 너 말고 누가 알고 있느냐?” “아무도 모릅니다.” “알았느니라. 이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할 터이니 너는 입을 꼭 다물고 있어야 한다. 내 명을 어길 시 네 목이 온전치 못하리라는 걸 잘 알겠지?” “명심하겠나이다.” 다윗은 망연자실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괘가 눈앞에 그대로 있었다. 여호와를 부정하다니! 그렇다면 저 언약괘를 부정하고 율법을 부정하고 이스라엘을 부정하고 이스라엘의 왕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길르압은 여호와를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저가 왕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여호와의 은혜인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내 피를 받은 자식이 여호와를 부정하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 요나답이 잘못 들었던 게야.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없는 얘기를 지어낼 리도 없지 않은가. 제 목숨이 달린 얘기를. 왕자들이 압살롬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이 났을 때도 요나답만은 암논은 몰라도 다른 왕자들은 무사할 것이라고 장담했잖은가? 그렇다면 이것도 여호와의 징계일까? 아, 나는 어째서 자식들에 대해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더란 말인가.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 예술/창작
    • 웹소설
    2022-03-06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1회
    “나는 지난 이 년 간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암논은 나의 형이 아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장자도 아니다. 그는 한낱 율법을 어긴 죄인일 뿐이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요행이었다. 요행은 영원하지 않다. 그는 오늘 죽어야 한다. 그가 죽음으로써 율법이 살아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내 말을 따르라. 그는 여호와를 무시하고 이스라엘의 왕을 욕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짐승과도 같은 패륜을 서슴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너희는 내 명령을 따를 뿐이다. 오늘은 하늘이 준 기회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최대한 그 죄인이 술을 많이 마시도록 내가 유도할 것이다. 죄인의 부하들이 죄인을 보호하지 못하도록 자리 배치에 유념하고 죄인이 술에 취해 몸을 가눌 수 없을 때를 기다려 신호를 보낼 것이니 너희들은 내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기 바란다. 실수가 있을 때는 너희들과 내 목숨은 없다는 걸 명심해라. 단 피는 그 죄인 하나로 족하다.” 넓은 들판에 장막이 지어지고 잔치 준비는 끝났다. 시간이 되자 압살롬의 형제, 왕자들이 속속 도착하여 축하를 보내고 자리를 잡았다. 다윗의 둘째 아들인 길르압과 넷째 아도니야, 다섯째 스바댜, 여섯째 이드르암이 그들이다. 암논은 맨 나중에 그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도착했다. 밧세바로부터 난 왕자들은 아직 어렸다. 압살롬은 암논의 말이 보이자 직접 나아가 그를 맞이했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더욱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암논은 말에서 내려 압살롬의 손을 잡아끌고 포옹했다. “그래, 압살롬. 축하한다. 좋은 날씨구나.” “이렇게 오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당연히 와야지. 그동안 우리 사이가 많이 어색했지? 잊자. 잊어버리자. 내가 철이 없었다. 아바마마를 위해서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자. 내가 너를 도울 일이 있으면 앞장서서 도우마.”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암논은 불안했다. 압살롬 앞에만 서면 자꾸 움츠러드는 느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었다. 그는 압살롬의 어깨 너머로 모든 동생들이 와 있는 걸 보고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양의 수가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조금 늘었을 뿐입니다.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아바마마의 배려 덕분입니다. 그렇지만 어디 형님에 비기겠습니까. 대적들이 사라지고 온 이스라엘이 평안하니 그놈들도 무럭무럭 자라나 봅니다.” 식탁에는 송아지와 양과 염소 고기로 만든 각종 요리와 과일이 푸짐하게 차려지고 포도주가 넘쳐나고 있었다. 양떼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그것들이 내지르는 소리는 자연의 교향곡이었다. 잔치의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 갔다. 압살롬의 동생 왕자들은 형의 번영을 축하해마지 않았고, 다윗의 차남이자 압살롬에게는 바로 위의 형이 되는 길르압은 몸이 약해 술을 마시진 못했으나 진정으로 기뻐하여 흐뭇해했으며, 암논 또한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압살롬에게 무척 사근사근하게 대했다. 술이 여러 순배가 돌자 암논은 배짱이 두둑해져 여러 동생들이 따라주는 술을 거침없이 마셨다. 압살롬은 특히 암논이 잔을 내려놓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잔을 그에게 바쳤다. 암논은 기분이 좋았다. 압살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충직한 동생으로만 보였다. 압살롬에게 느꼈던 자기 혼자만의 불안과 걱정은 괜한 기우처럼 여겨졌다. 어렴풋이 갖고 있던 부도덕한 장형으로서의 자격지심도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동생들은 변함이 없었고 압살롬 또한 깍듯했다. 마음껏 취하고 싶었다. 앞으로는 정말 장형으로서 모범이 되리라 다짐하고 형제간의 우의를 앞장서서 다지리라 결심했다. 형으로서 어지간한 손해쯤은 충분히 감수하리라고도 생각했다. 그리하여 지난날의 잘못된 행동을 충분히 보상하리라, 그러면 부르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는 아바마마께서도 나를 용서하시리라. 그래서 암논은 실추된 장자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고 싶었다. 압살롬은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는 데에 만족했다. 그러나 그는 긴장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주변을 예리하게 살피고 있었다. 주변의 상황도 계획에 빈틈이 없었다. 암논은 저 죽을 줄 모르고 마냥 기분이 좋아 껄껄거리며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압살롬이 거느리는 부하들의 눈은 언제나 그에게 쏠려 있었다. 이윽고 그의 오른손이 하늘을 향하더니 원을 그렸다. 그것이 신호였다. 암논의 부하들과 같이 음식을 먹던 압살롬의 부하들이 순식간에 칼을 빼들어 암논의 부하들을 에워쌈과 동시에 무장해제를 시키고 그때까지 보이지 않고 언덕 아래 수풀 속에 은신해 있던 압살롬의 정예 용사들이 왕자들의 식탁으로 돌진해 온 것은. 술에 취한 왕자들의 몽롱해진 눈들이 갑자기 돌변한 상황에 놀라 휘둥그레지는 찰나 외마디 비명이 들리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 그들은 경악했다. 거짓말처럼 암논의 목에서 피가 솟구치면서 머리가 푹 꺾이어진 것이다. 잔치는 한마디로 난장판이 돼버렸다. 왕자들은 급변한 상황에 소스라치며 허둥지둥 자신의 부하를 찾아 말을 타고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기에 바빴다. 압살롬은 목석처럼 서서 암논의 주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서 붉게 타올랐다. 그는 비명과 주변의 소란스런 상황에도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마땅히 죽어야할 죄인이었노라. 너희들은 내 명령에 따랐을 뿐이니 아무런 죄가 없다. 율법을 유린한 죄인은 처단되었다. 여호와께서도 기뻐하실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정당한 일을 집행했지만 어디까지나 폐하께서 망설이던 일이고 명에 없었던 일이다. 다른 왕자님들도 많이 놀라셨을 터. 차분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먼 훗날을 기약하자. 나는 잠시 이곳을 피해야겠다. 폐하께서는 죽은 자가 죄인일지언정 장자인 아들을 잃었으니 심히 진노하실 것이다. 나는 폐하께만은 죄인이 되었노라.” 압살롬은 그길로 심중에 두었던 그술 땅으로 향했다. 그술의 왕 달매가 압살롬의 어머니인 마아가의 아버지이자 압살롬의 외할아버지였던 것이다.   다윗에게도 마침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모든 왕자들이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다 하옵니다.” 헐레벌떡 달려온 시종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시종은 너무 놀라서인지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다윗은 믿기지가 않아서 숨을 죽이며 다시 물었다.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자신을 청하던 압살롬의 얼굴이 어른거리자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잘 모르지만 분명히 오늘의 잔치에서 왕자님들과 관계되는 칼부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경악했다. 압살롬을 만났을 때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신경과민으로 돌렸는데…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선지자 나단의 경고가 드디어 현실로 나타났단 말인가. 표정 하나 변치 않고 자신을 가리키던 나단의 손가락이 이제는 자신의 눈을 찔러오고 있는 듯했다. 언제나 가슴 졸이며 자신의 형제들을 지켜보고 그들의 아들을 감시하며 왕자들의 동태도 살피는 걸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단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불거졌다. 암논은 자신을 팔아 다말을 능욕했고 그로 인해 압살롬마저 자신을 속였다. 암논의 경우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압살롬은 설마, 했었다. 그런데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단 말인가. 다윗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낭떠러지로 한없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추락.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내가 죽어야 한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 얼마나 더 험한 꼴을 봐야 하나. 다윗은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여호와여, 끝내 저를 버리시나이까. 저의 죄가 그렇게 크더이까. 저를 벌하시옵소서. 차라리 저를 죽여주시옵소서. 이런 고통을 당하고 못 볼 거 다 보며 산들 무슨 의미가 있으리까.” 어전에서 다윗을 따라와 죽 늘어서있던 신하들도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 다윗의 형 시무아의 아들 요나답이 코 막힌 소리로 왕자들의 죽임을 전한 시종을 나무랐다. 그는 암논에게 다말을 범할 수 있는 계책을 가르쳐 준 암논의 친구이자 사촌이었다. “무엄하도다. 어찌하여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뜬소문을 가지고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힌단 말인가.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만약 왕자들께서 압살롬 왕자에게 변을 당하셨다면 아마도 암논 왕자만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예전에 다말 공주를 암논 왕자가 욕을 보였던 일로 압살롬 왕자는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시끄럽도다. 썩 물러가거라.” 다윗은 아무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으면 싶었다. “폐하,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분명히 다른 왕자님들은 무사하실 겁니다.” 요나답은 다윗 가까이 기어와 고개를 숙이며 다윗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때 왕궁을 지키는 병사가 소릴 질렀다. “왕자님들이 오십니다. 왕자님들이 오십니다!” 다윗은 그 소리에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요나답이 더 바싹 다가와 울먹였다. “폐하, 소신의 말이 맞았습니다. 왕자님들이 오신다 하옵니다. 어서 가보시지요.” 다윗은 일어섰다. 요나답의 말이 사실인가? 역시 암논은 보이지 않았다. 다윗은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왕자들은 다윗 앞에 다가와서는 땅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다. 그들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찌된 일이냐?” 다윗은 왕자들을 부둥켜안으며 물었다. “아바마마, 암논 형님이 갑자기 밀어닥친 압살롬의 부하들의 칼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압살롬이 양털 깎는다는 명목으로 우리들을 초청하여 암논 형님을 죽이려 했던 계략임이 분명합니다.” 차남 길르압이 숨을 헐떡이며 겨우 말했다. 다윗은 아들과 함께 통곡했다. 아들들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낫다는 안도감과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에 울었고 다윗은 허탈감과 참척의 고통에 울었다. “내 탓이로다. 모두가 내 탓이로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른 내 탓이로다. 이 일을 어찌할 거나.” 자초지종을 들은 왕도 울고 왕자들도 울고 신하들도 울었다. 다윗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선택된 사람이었음을 뼈저리게 자각했다. 그래서 징계도 남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자비로우신 여호와여. 언제까지입니까. 저에 대한 징벌이 언제나 끝나는 것입니까. 자식들 보기 부끄럽사옵니다. 저를 치소서. 자식들에 대하여 내려지는 저에 대한 분노를 이만 거두소서. 어떻게 하여야 여호와께서 진노를 거두실지요. 가르쳐 주소서. 우매한 저를 일깨워 주옵소서.” 다윗은 무서웠다. 하늘이 무서웠고 여호와가 무서웠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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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소설
    2022-02-26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0회
    어떻게 친오빠인 압살롬의 집에 왔는지 알지 못했다. 무의식중에 허겁지겁 걸었고 무심결에 압살롬의 집에 도착했으며 엉겁결에 오빠를 보자마자 서러움이 북받쳐 통곡을 했다. 차마 말도 못하고 까무러질 때까지. 압살롬은 다말의 행색을 보고 대번에 알아차렸다. 하나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암논에 의해 몹쓸 짓을 당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과 무언의 경쟁을 벌이는 이복형 암논이 갑자기 아프다는 것이 의심스러웠고 어째서 다말이 그 음흉한 놈의 수발을 들어줘야 하는지 불만이었던 그였다. 결국 불길한 예감은 설마, 설마 하다가 최악의 현실이 되고 말았으니. ‘이 짐승만도 못한 놈, 내가 이 더러운 놈을 결코 가만 두지 않으리라.’ 압살롬은 분에 겨워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용서치 못할 짓이었다. 그러나 먼저 해야 될 일은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한 동생을 위로하는 일이었다. 다말이 입은 상처와 충격은 그녀 스스로 삶을 포기할지도 모를 상황처럼 보였다. 그는 다말을 부둥켜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말, 진정하여라. 힘든 얘기다만 네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버려라. 암논 그 놈은 나의 형도 너의 오라비도 아니다. 미친개다. 차마 아바마마까지 이용해서 네게 음흉한 짓거리를 벌일 줄은 정말 몰랐다. 내게도 책임이 있다. 그 놈의 수작이 비열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하나 밖에 없는 내 여동생을 지켜주지 못했구나. 나를 용서해다오. 내 기어코 가만있지 않을 게다. 너의 수모를 몇 배로 갚아 줄 것이니. 중요한 건 바로 너다. 빨리 잊어버려라. 재수 없이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란 말이다. 심각하게 여길수록 너만 손해야.” 압살롬은 이를 악물었다. 계속해서 흐느끼기만 하는 다말을 보고 그의 눈에서도 분노의 눈물이 솟구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눈은 불꽃을 뿜어내며 이글거렸다. 그 후로 다말은 압살롬의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지내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다윗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근친상간이 자신의 왕궁에서 자신의 아들딸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말을 어떻게 믿으랴. 그것도 믿고 있던 장자, 암논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 다말을 범했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기가 막혔다. 처음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묻고 또 물었다. 사실이었다.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드디어 노발대발했다. ‘나를 속이면서까지?’ 찢어죽이고 싶었다. 당장에 암논을 잡아들여 돌로 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니 자신이 직접 쳐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밧세바와 자신의 지난날이 너무나 또렷하게 떠오르는 게 아닌가. 자신의 간음과 그걸 감추기 위해 충신인 우리아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죄악들. 나단 선지자의 골육상쟁의 칼부림이 끊이지 않을 거라는 경고. 자신이 암논을 처벌한다면 똥 묻은 것이 겨 묻은 걸 탓하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랴. 분노는 하늘을 찔렀지만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죄는 죄를 낳고 그 죄는 또 다른 죄악을 잉태하는 것이라. 다윗은 자신의 망설임이 율법을 어긴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지켜져야 할 징벌이 막상 자신이 뿌린 죄악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게 된 맏아들을 죽여야 한다는 엄청난 현실에 고민이 따른 것이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거의 다 소탕되고 정복되었는데, 외부로부터 오는 우환은 사라졌는데, 어쩌자고 내부에서 이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그는 괴로웠다.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런 시험을 어찌해야 하오리까. 어떻게 해야 합당한 일이 되오리까.” 그러나 하늘은 무심했다. 다윗이 아무리 간구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따라서 다윗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세월만 보내게 되었다.   압살롬은 다말을 볼 때마다 암논에 대하여 이를 갈았다. 다말의 그토록 해맑고 아름다웠던 얼굴이 그 일이 있고부터 항시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고 웃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으며 날이 갈수록 야위어만 가는 것이었다. 치장도 하지 않았다. 말도 거의 없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 누가 아는 체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며 움츠러들곤 했다. 왕궁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살아있다고 하지만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다윗은 그런 딸을 보러 와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꼭 안아주고는 한숨만 푹 내시다갈 뿐, 그것도 잠시였다, 나중엔 딸의 모습을 보기가 괴로웠는지 발걸음조차 하지 않았다. 왕궁에서 벌어지는 공식 행사나 만찬석상에서 암논은 의도적으로 압살롬의 눈길을 피했다. 아무래도 뒤가 구렸던 것이다. 그러나 압살롬은 예전과 다름없이 암논을 대했다. 다윗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영 딴 사람이 돼버린 다말을 보면 울화통이 터져 암논을 처벌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치밀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는 형편에 속병만 늘어갔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다윗은 밧세바를 의지하고 사랑했다.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마다 밧세바는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다시 아들을 낳았고 또 낳고 연이어 낳았다. 다윗과 불륜의 관계로 낳은 아들을 이레 만에 잃은 후 여호와가 언제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모든 일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했으며 자신은 아직도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신실한 삶을 영위해 나갔다.   압살롬의 암논에 대한 증오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해갔다. 그는 언젠가는 암논을 처단하리라 자신과 수없이 다짐하며 힘을 길러갔다. 왕자의 신분에 걸맞게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의 세력을 확대하는 한편 신체 건강한 청년들을 모집하여 부하로 삼고 군사 훈련을 시켰다. 암논을 죽인다는 목표에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다윗은 비록 아버지로서 자식을 죽일 수가 없어 징벌을 내리지 못했으나 자신은 암논과 친형제도 아닐뿐더러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강간한 범법자에게 율법이 정한 대로 처단할 뿐이라는 논리였다. 율법은 그렇게 죽인 행위를 시비하지 못하도록 돼있었다. 다말이 암논에게 당한 지 이 년이 지나고 양털을 깎는 시기가 되었다. 양털을 깎는다는 건 중요한 연중행사의 하나였다. 압살롬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모든 왕자들을 양털 깎는 축제에 초청하곤 다윗에게 나아갔다. 다윗은 언제 보아도 늠름하고 잘생긴 셋째 아들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아바마마, 만군의 여호와께서 아바마마와 항상 함께 하심으로 온 이스라엘에 아바마마의 힘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감히 대적할 자가 없는 듯합니다.” “허허, 그래 어서 오너라. 오늘따라 네 얼굴이 더욱 환히 빛나는구나. 기분도 좋아 보이고.” “그렇사옵니다. 오늘은 소자가 아바마마께 청이 있어 왔사옵니다.” “청이라니?” 다윗은 인자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이 바로 양털 깎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르고 있는 양들을 자랑하고 싶어 잔치를 마련할 예정이옵니다. 아바마마께서 모든 신하들과 함께 참석하셔서 축복해 주신다면 소자로선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습니다.” 다윗은 양털을 깎는다는 아들의 말에 가슴이 다 설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양을 도맡아 풀을 뜯기던 양치기 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양털을 깎는 날은 하늘에도 온통 양떼 모습을 한 구름들이 뭉게뭉게 떠다녔다. 그것은 곧 평화였다. “아, 그렇구나. 벌써 그렇게 좋은 날이 되었구나. 나도 가보고 싶구나.” “오시옵소서.” “그렇지만 나까지 가서 북적거릴 필요가 있겠느냐. 괜히 네게 부담을 끼치고 싶지 않구나. 다말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기운을 많이 회복하였습니다. 다말도 아바마마를 기다릴 것입니다. 부디 소자의 청을 거절치 마시옵소서.” “허허허. 나도 가고 싶다니까 그러는구나. 네가 이 애비 맘을 몰라서 그러느냐. 나도 한때는 양치기였느니라. 그러나 그 많은 신하들까지 가서 너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다.” 다윗의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이 감으로 인하여 모든 신하들이 따라갈 것이고 시위대가 이동해야 하고 후궁들이 따를 것이며 시종과 궁녀들까지 모두 맞이하려면 왕자의 신분에는 버거운 규모가 뻔했다. “소자의 간절한 청이옵니다.” 압살롬은 시종 머리를 조아렸다. 다윗은 그런 아들을 보고 흡족했다. “내가 간 거나 다름없이 너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빌어주마.” 다윗은 압살롬에게 다가가 한손은 압살롬의 머리에 얹고 또 한손은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압살롬은 감격해 하며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아바마마께서 그토록 소자를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소자는 아직도 아바마마를 모시고 싶은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아바마마를 대신하여 암논 형님께서는 필히 참석해 주시길 원하나이다.” “그건 암논이 결정할 일이 아니냐?” 다윗은 불현듯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 형님은 우리 형제들의 장형이 아니십니까. 그동안 불미스러운 일로 관계도 소원하였사오니 모든 형제간의 우의를 더욱 돈독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혹 연락을 받고도 참석치 않을까 염려되어 감히 아바마마께 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형님이 오게 되면 아바마마를 대하듯 모시겠습니다.” 다윗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금방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지난 일을 연관시켜 생각한다고 자성했다. 압살롬은 외모와 마찬가지로 호탕하고 대범했다. 그래 그동안 너희들이 다말의 일로 껄끄럽게 지냈겠지. 암논이 먼저 풀기는 어려울 거다. 역시 압살롬이구나. 이번 기회에 지난 일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압살롬. 너는 역시 내 아들이로구나. 내 모든 왕자들에게 너의 행사에 필히 참석하라고 이르마. 특히 암논에게는 너의 기특한 뜻을 꼭 전하도록 하겠다. 참으로 기쁜 일이로고.” 다윗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곪은 상처가 터져 고름이 시원스럽게 빠져나오는 기분이었다. 잔뜩 찌푸린 먹구름 속에서 마침내 햇살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고름이 빠지면 상처는 금방 아물 것이리라. 우중충하던 날이 곧 화창해지리라. 다윗을 만나고 나온 압살롬은 어금니를 굳게 깨물었다. 이제야 다말의 원수를 갚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왕궁을 나와 말을 달려 그의 집에 오면서도 흥분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당장 다말에게 암논을 죽일 수 있게 되었노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창가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다말을 본 순간 그는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다가 돌아서버렸다. 암논을 죽인들 다말이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것 같지 않았다.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더욱 더 암논에 대한 적개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적개심에는 암논이 사라진 이후 장자권에 대한 야망도 포함됐다. 어쩌면 다말을 위한다는 건 명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압살롬은 그의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 계속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 예술/창작
    • 웹소설
    2022-02-20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9회
    다말이 보기에 암논은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얼굴도 듣기보다 건강해 보였다. “오라버니, 그토록 건강하시더니 아프다니요?” “오, 다말. 점점 더 예뻐지는구나.” “오라버니도 참,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어서 이거나 드셔보세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고맙구나. 네가 내 생각을 그렇게 해주다니 미처 몰랐구나. 사실은 네가 보고 싶어서 밥맛을 잃었던 것이야. 하하하.” 암논은 상사병을 농반 진반으로 얼버무리며 웃었다. 다말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수단이었다. 다말은 얼굴을 붉혔다. “정말로 아프지 않으신 거예요?” “아프긴 누가 아프단 말이냐. 이렇게 말짱한데.” “아바마마께서는 심각하게 말씀하시던데요?” “아바마마께서 다녀가실 때는 많이 아팠지. 하지만 네가 온다는 기별을 듣고 이렇게 싹 낫지 않았니. 네가 바로 보약인 게야.” “오라버닌 농담도 잘하십니다.” “농담이 아니다. 정말 보고 싶었다.” 암논은 진지했으나 다말은 소름이 쭉 끼치는 기분이었다. 침실은 다윗의 장자 신분에 어울리게 넓고도 화려했다. 그녀는 어색하게 접시를 내밀었다. “제가 만든 거예요. 드세요.” “이걸 꼭 먹어야 하느냐?” 암논은 침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요, 아프셨다면 빨리 기력을 회복하셔야죠.” “그렇다면 네 손으로 과잘 집어서 직접 내 입에 넣어 주거라. 그러면 먹겠다.” 암논은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다말은 할 수 없이 과잘 집어 손을 암논의 입에 가져갔다. 그 순간 암논이 다말의 손을 낚아채더니 몸을 바싹 끌어안아버렸다. 다말은 너무 놀라 들고 있던 접시를 놓쳐버려 결국 깨지고 말았다. 과자는 이리저리 흩어지고. “다말, 오 다말.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너만을 생각했다. 너 때문에 밥맛도 잃고 잠도 오지 않는다. 내 색시가 되어다오. 나는 너를 안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내 말을 들어다오.” “오라버니, 왜 이러십니까. 안 되는 일입니다.” 다말에겐 청천벽력이었다. 그녀는 몸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왜 안 된다는 거냐. 나는 너로 인해 죽을 지경이란 말이다.” “진정하세요, 오라버니. 이런 일은 아바마마를 욕되게 하고 여호와께 죄를 짓는 일입니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단 말이냐? 지금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 나와 너만 있다고.” 암논은 다말을 끌어안은 팔을 흔들며 애원했다. “다른 말은 다 듣겠나이다. 허나 이것만은 안 되는 일인 줄 오라버니도 뻔히 아시잖아요.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율법의 징벌을 모르고 계신 건 아니시죠?” 율법에는 폭행과 협박에 의한 부녀자의 간음 행위 시 남자는 죽이도록 되어 있고, 근친상간은 수간(獸姦)하는 자나 남색(男色)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짐승 같은 범죄로 취급되어 곧 죽임을 당했다. “뭐라고? 네가 내게 감히 율법을 들먹이다니.” 암논은 다말을 침대에 쓰러뜨렸다. 다말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래, 네가 나를 무시하는구나. 그렇다고 내가 순순히 물러설 성 싶냐? 어림도 없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라도 너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어디 나만 간음의 벌을 받을 것 같으냐? 너도 마찬가지다.” 암논은 쓰러진 다말을 덮쳤다. 그리고 버둥거리는 다말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입을 입술로 가져갔다. “그렇다면 오라버니, 부탁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부탁이라니? 빠져나갈 생각은 추호도 마라.” 암논은 더운 입김을 뿜어댔다. 그의 눈은 이미 정상적인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배고픈 하이에나가 함정에 빠진 사슴의 힘이 빠지길 기다려 이빨을 들이대려는 그런 눈빛이었다. “정 그러시다면 아바마마께 말씀을 드리십시오. 저를 오라버니의 색시로 맞게 해달라시면 아바마마께서도 오라버니의 청은 거절치 못하실 겁니다. 아바마마의 승낙이 떨어지면 저도 기꺼이 오라버니 앞에서 옷을 벗겠습니다.” 다말은 우선 암논을 진정시키고 위기를 벗어날 속셈으로 다윗을 들먹였던 것인데. “닥쳐라.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아바마마가 율법이 허락지 않은 걸 승낙하실 것 같으냐. 어림도 없는 소리 마라. 네가 나를 희롱하는구나.” “그러면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 “입 좀 다물고 있어. 너와 나만 아는 일이다. 뒷일은 내게 맡겨라.” 암논은 다시 다말을 덮쳤다. 눈이 뒤집혀 발광하는 그를 다말이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쳐봤지만 옷은 벗겨지고 나신은 여지없이 드러나 끝내 하체가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다말은 모든 걸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자 야수와 같이 허겁지겁 제 욕심을 채운 암논은 그녀 곁에 누워 아직도 숨을 쌕쌕거렸다. 다말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일에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다윗이 시킨 일이어서 아무런 생각 없이 가장 나이 많은 오라버니를 간병한다는 마음뿐이었는데 모든 게 그 오라버니의 음흉한 계획이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어떻게 됐건 자신의 정조를 암논이 빼앗았으니 싫든 좋든 간에 그의 여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말은 옷을 추스르고 물었다. “이젠 어쩌시겠습니까. 오라버니의 욕심을 채우셨으니 저를 어쩌시겠어요?” 암논은 눈을 감고 있다가 다말의 말을 듣고는 눈을 떴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다말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 똑같은 얼굴인데도 더 이상 사랑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 얼굴과 눈빛엔 원망과 증오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또한 앙칼지게 반항하던 조금 전의 모습도 겹쳐 보였다. 비위가 확 상했다. 너는 나를 싫어했었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너를 차지하고야 말았으니. 이젠 아쉬울 게 없어. “어쩌다니?” 암논은 경멸 섞인 웃음을 흘렸다. “나는 오라버니의 여자가 됐어요.” 다말은 애원조로 얼굴이 변했다. “뭐라고? 내 여자? 참 웃기는구나. 한번 그랬다고 내 여자?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버티고 뻐길 때는 언제고 지금에야 내 여자라? 그게 그런다고 어디 흠이 지고 닳는다던? 너와 나밖에 모르는 일이야. 우리에겐 아무 일도 없었어. 너는 내 여자가 될 수가 없어. 단지 동생일 뿐이야.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다른 이복동생이라고. 어떻게 동생이 부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마찬가지며 내일도 너는 동생일 뿐이야. 아니 동생도 이젠 아니다. 차라리 앞으로 서로 보지 않고 지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 아예 남남으로 지내는 게 낫겠지.” “왜 이러십니까, 오라버니. 색시가 돼달라고 하셨잖아요. 왜 저를 놀리십니까. 아까는 당연히 안 되는 일이어서 그랬지만 어쨌거나 오라버니가 저를 차지했잖습니까. 저를 이대로 내쫒는다는 것은 조금 전의 일보다 더 큰 죄악임을 오라버니가 누구보다 더 잘 아실 텐데요?” “오호라, 이젠 협박까지? 그래 네 맘대로 해봐라. 나는 네게 아무 짓도 안 했으니까. 설령 무슨 일이 있었다면 아파 꼼짝을 못하는 내 앞에서 네가 요망을 떨었던 게지.” “참으로 뻔뻔스럽군요.” “이제야 알았니?” “아바마마를 생각하십시오.” “듣기 싫다. 아바마마도 남자니라. 누구보다도 나를 이해하실 것이다.” 암논은 다윗의 간음을, 우리아의 속절없는 죽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여호와는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징계도 서슴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용서치 않으실 겁니다.”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다, 그만 썩 나가거라.” 암논은 꽥 소리를 질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다말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지나쳐 상사병까지 얻었던 그가 단 한 번의 욕심을 채우고 나자 사람이 백팔십도 바뀌어 상사병보다 더 한 미움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암논의 다말에 대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 동물적인 욕정에만 사로잡혀 그 욕망이 충족되자 변태적인 행태를 드러낸 것이다. 수치심과 모멸감, 혐오감과 허탈감이 뒤죽박죽된. “오라버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현실을 인정하세요.” “어서 나가지 못하겠느냐. 네 꼴도 보기 싫으니 빨리 꺼져라.” “오라버니,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제가 죽는 꼴을 기어이 보시려고 이러십니까.” 다말은 무릎을 꿇고 암논에게 사정했다. “안 되겠구나. 억지로라도 끌어내야지. 아랫것들 보기 민망하다.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암논이 큰소리로 하인들을 불렀다. 그러자 곧바로 하인 둘이 대령했다. “이 계집애를 대문 밖으로 어서 끌어내라. 행동거지가 아주 요망하기 그지없구나.” 그들은 거칠게 다말의 양팔을 붙잡아 순식간에 대문 밖까지 끌어내어 문을 닫고 문빗장까지 걸어버렸다. 암논은 그러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토록 보고 싶고 안고 싶고 차지하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었는데 정조를 빼앗자마자 보기 싫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어머니가 다르다지만 아버지가 같은 동생이라서 뒤탈이 겁나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게 되었을까. 그렇게도 열망하던 순간이었건만, 아무리 강제로 몸부림을 치며 합을 치렀다 치더라도,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을까. 그와 함께 급격히 식어버린 다말에 대한 애정은 또 무엇 때문인가. 암논은 그러한 자신의 변화에 화가 치밀고 한편으로 왕의 장자로서 율법에 금기시 되어 있는 짓, 즉 동생을 강간하고 말았다는 부끄러운 현실과 정조가 모든 것인 양 애원하는 다말의 행동도 견딜 수가 없었다. 암논의 집에서 쫓겨난 다말은 절망했다. 이젠 여자로서, 시집가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정조를 잃어버렸으니 자신의 인생은 끝난 거라 생각했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었다. 아예 세상의 종말이 지금 당장 닥쳤으면 싶었다. 어떻게 살아갈거나. 암논은 실력자였다. 다윗이 죽으면 왕위도 그에게 넘어갈 공산이 컸다. 신하들은 벌써 그의 눈치를 보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암논을 향해 감히 누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인가. 없었다. 강력한 암논에 맞서 자신을 변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비로소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주의 신분도 싫었다. 비틀거리며 한참을 거닐다 보니 밭 가운데에 밀짚을 태운 시커먼 재가 보였다. 그걸 보자마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뒤집어썼다. 더러워졌으니 더 더러워지라며 얼굴에도 바르고 옷에도 바르며 서럽게 울었다. 내 낭군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수줍게 얼굴 붉히며 마냥 그리던 꿈이 정말로 꿈이 되어버렸음에 겉옷마저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울부짖었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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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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