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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5회
    다윗은 자신을 잃었다. 금방이라도 성 밖에 자신을 해치려는 무리들이 몰려들 것만 같았다. 어찌해야 하나. 아무리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도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도리가 없었다. 우선은 시간을 벌기 위해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었다. 그 수많은 대적들과 싸움에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도 끝내는 승리를 쟁취하여 이스라엘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그였지만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현실 앞에 전의를 상실한 것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신하 하나가 힘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죽을 각오로 싸우든가 그렇지 않으면 다음을 기약하고 이곳을 피하는 수밖에는.” 누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다윗은 주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많던 신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렇다. 이곳에서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다. 무고한 백성들의 피만 부를 뿐. 일단 이곳을 피하고 보자.”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궁에는 험난한 피난길을 예상하고 열 명의 후궁들을 남겨두어 궁을 관리하도록 일렀다. 압살롬이 아무리 반란을 일으켰다 할지라도 어미나 다를 바 없는 그녀들을 어쩌진 못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또한 제사장인 아비아달과 사독에게 성에 남아 여호와하나님의 언약괘를 지키라 명했다. 그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가 자신을 버리지 않으신다면 언젠가는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와 언약괘와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우러나온 소신이었다. 그리고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인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으로 하여금 성과 자신과의 연락을 맡도록 당부했다. 다윗은 기드온 시내를 건너 광야로 향했다. 처량한 유랑 길이었다. 아들에게 쫓겨 달아나는 아비의 신세. 하늘을 볼 엄두도 나지 않고 백성들을 바라볼 면목도 없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과였고 예견된 하늘의 응보였다. 얼굴을 가리고 신도 신지 않은 맨발로 감람산을 오르다보니 따르는 백성들이 슬피 울었다. 다윗도 그만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미어지고 갈가리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같은 무고한 백성끼리 피를 볼 게 너무나 뻔했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누구냐! 압살롬을 돕는 머리는.” “아히도벨입니다.” “아히도벨이?”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밧세바의 조부가 아닌가? 그가 어떻게? 아히도벨은 전략의 귀재이자 지혜 덩어리였다. 전장의 다윗 옆에는 언제나 아히도벨이 있었다. 그 많은 승리 뒤에는 아히도벨의 전략이 있었다. “여호와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이 종을 잊지 않으셨다면 아히도벨의 모략이 아무 쓸모없게 하옵소서.” 자신도 모르게 다윗은 여호와께 울부짖었다. 산마루에 있는 여호와를 경배하는 성소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때 마침 다윗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가 굳게 신뢰하는 후새가 옷을 찢어발기고 얼굴엔 흙을 잔뜩 묻힌 참담한 모습으로 나타나 다윗을 맞이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다윗은 천군만마를 만난 듯 후새가 반가웠다. “얼마나 침통하십니까, 폐하. 이럴 때일수록 옥체보존하소서.” “그대를 만나 더없이 다행이구려.” “제가 무슨 힘이 될 수 있을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무슨 겸손의 말이오.” “폐하가 가시는 곳 어디라도 보필하겠나이다.” 다윗은 그때 머리를 스치는 비상한 생각을 끄집어냈다. “그대는 나와 같이 갈 게 아니라 꼭 해줘야 될 일이 있소. 그대가 아니면 못 할 일이오.” “무슨 일입니까? 목숨을 바쳐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압살롬에게 거짓으로 투항하시오. 압살롬은 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도 필시 그대를 중용할 것이오. 저쪽에선 아히도벨이 전략을 쥐락펴락하니 그 전략에 내가 곤경에 처할 게 틀림없소. 그 전략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게 그대가 할 일이오. 또한 그곳엔 사독과 아비아달이 언약괘와 함께 있으니 내가 알아야할 일이 있으면 그들에게 전하시오. 그들의 아들들이 내게 알려주게 돼 있소. 나는 광야 나루터에서 소식이 오길 기다리겠소.” 다윗답지 않은 계략이었으나 후새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갔다. 천륜을 거스른 압살롬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거라 맹세하며. 반석 위에 서있는 이스라엘을 패륜아의 손에 넘길 수 없다고 다짐하면서. 다윗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다. 일행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힘들고 지친 판에 사울 왕의 친족인 시므이가 무리를 이끌고 나타나 돌멩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어대는 것이 아닌가. “잘 되었도다, 네가 사울 왕께서 키워준 은혜를 저버리고 그 일족을 처단하여 왕위를 차지하더니 영원히 잘 될 것 같았느냐. 칼로 일어서는 자 칼로 망하고, 배신하는 자는 똑같이 배신을 당하는 법. 피 보기를 좋아하는 자여, 천하의 배신자여, 가라, 가라, 사라져가라. 사울 왕의 원한을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셨도다. 네가 잠시 왕이 되었을지언정 끝내 네 자식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는 건 여호와하나님의 뜻이 어떻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니더냐. 바로 너의 업보이고 갈마이니라.” 다윗은 꾹 참았다. 그러한 시므이의 저주도 자신의 부덕의 소치이고 여호와의 뜻이려니 생각했다. 그래서 옆에서 듣고 있던 장수가 그의 목을 베려는 걸 막았다. 시므이는 사울의 친족 중 한 사람으로 다윗에 대해 별다른 이유도 없이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아무 말 없이 나아가자 시므이는 따라가면서 더욱 더 소리 높여 저주를 퍼부으며 돌을 던지고 일행을 못살게 굴었다. 사람들은 간사했다. 다윗은 그 간사한 마음을 어려운 상황에 이르자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기어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겠노라고. 압살롬만 괘씸한 게 아니었다. 압살롬을 부추긴 세력, 그들이 원수였다. 마침내 압살롬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별 어려움 없이 다윗왕성을 접수했다.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는 찾아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왕의 신하였던 자들의 열렬한 환영까지 받았다. 또한 언약괘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과 함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여호와의 축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을 맞아 열광하는 백성들도 보았다. “여호와하나님 만세, 이스라엘 만세, 압살롬 왕 만세!” 그 와중에 후새의 정중한 환대가 특히 감격스러웠다. “귀하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충성스러운 신하였는데 어찌하여 따라가지 아니하였소?” “저는 여호와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의 백성일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전하를 선택하였고 모든 백성들이 원하는데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전하의 아버지를 섬기듯이 저는 이제 전하를 섬길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젠 늙으셨습니다. 그래서 판단도 흐려졌습니다. 옛날과 같은 용맹함과 총기도 사라졌습니다. 이젠 쉬실 때가 되었지요. 이런 방법을 택한 거야 물론 잘못인 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아바마마의 고집을 아시잖습니까. 부디 저를 도와 아바마마를 설득하여 주십시오. 저도 피를 원치 않습니다. 아바마마를 편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자문도 구할 것이고요.” “그래서 제가 남았습니다. 성심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압살롬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윗이 앉았던 의자에 기고만장하여 책사 아히도벨에게 물었다. “짐이 첫째로 해야 될 일이 무엇이오?” 아히도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성에는 선왕을 따라가지 못한 후궁들이 있습니다. 그녀들을 취하십시오.” “뭐라고요! 아바마마의 후궁들을?” “그렇습니다. 예로부터 승리자는 패배자의 아녀자를 갖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부자의 관계가 아닙니다. 피아(彼我)일 뿐입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압살롬은 망설였다. 어떻게 아버지의 여자를 깔아뭉갤 수 있단 말인가.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런 자를 죽이는 자에게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율법이 무서웠다. 그러나 율법도 전쟁 시에는 예외가 아니었던가. “적장의 여자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이제 전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마땅히 그 여인들도 전하의 소유입니다. 뭘 망설이십니까. 궁궐에서부터 선왕의 잔재를 사그리 없애야만 합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의를 그르치지 마시옵소서.” 아히도벨의 간계였다. 그는 다윗이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괘씸했다. 자신의 손녀인 밧세바. 남편인 우리아를 죽이면서까지 뺏어간 행위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너도 치욕을 맛보아라, 앙갚음이었다. 그는 자진해서 다윗을 죽이려는 역적이 되었다. 그렇지만 다윗이 어떤 인물인가. 그 많은 시련에도 굴하지 않은 역전의 용사 중의 용사가 아닌가. 압살롬이 부자간의 정을 내세워 다윗을 살려주지 않을까 아히도벨은 두려웠다. 다윗이 살아있는 한 압살롬을 도운 자신은 다리를 뻗고 잠들지 못할 건 자명한 일이었다. 따라서 압살롬이 다윗과의 관계를 철저히 끊도록 해야만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도록 하는 것이었다. 족쇄를 채우는 것. 부자간이 아니라 철천지원수가 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선왕의 여자였다. 압살롬으로 하여금 후궁들을 취하게 하는 건 부자간의 정 따위는 생각지도 말라는 족쇄였다. 절대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어떻게 해서든 건너도록 하는. 압살롬은 이제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다. 전쟁에 승리한 자가 처첩을 취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권리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저항이 있을 수 없었다. 경(經)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 지붕이 문제였다. 다윗이든 압살롬이든. 이 소식을 접한 다윗은 온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압살롬의 패륜행위도 그렇지만 나단의 경고가 너무 생생했다. 그것은 곧 여호와의 뜻이 아니던가. “내가 너를 저주하여 밧세바를 취한 대가로 네가 두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데도 백주에 네 부인들이 능욕을 당하게 되리라.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서 네가 죽게 될 줄을 정녕 몰랐단 말이야.” 그것도 이방인이 아닌 믿고 사랑했던 아들에게 능욕을 당하다니! 치욕이었다. 살고 싶은 의욕이 싹 가셨다. 그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절벽과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과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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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03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4회
    어찌해야만 합니까. 어디까지가 무지한 인간의 소치이고 당신의 뜻이며 회개의 끝입니까. 당신의 경고에 의한 희생제물은 무엇입니까. 나 같은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또 다른 인간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정녕 당신의 뜻입니까. 우러르고, 매달리고, 때론 원망도 하며 보낸 세월. 그 세월이 흐르고. 어찌할 수 없는 부정(父情). 아들이 보고 싶었다. 울고만 싶은 마음, 마침 요압이 때려주었다. 실컷 울도록. 그런데 막상 압살롬의 얼굴을 대하려니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용서하는 마음보다 미움이 더 컸고 보고 싶은 마음보다 괘씸함이 더 컸다. 너는 그래도 살아있다. 너를 볼 수 있는 날은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다. 결국 다윗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불러 놓고도 이 년 동안이나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압살롬.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은 압살롬. 그는 당당했다. 그는 전보다 더욱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 압살롬을 경(經)은 이렇게 적고 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러나 압살롬은 초조했다. 다윗이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부른 것은 지은 죄를 용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기대도 컸다. 성심을 다해 아버지를 보필하리라 다짐하며 마음껏 자신의 포부도 펼쳐보리라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다윗으로부터 기별은커녕 얼굴조차 대할 수 없게 되자 용서한 것이 아니라 신하와 백성들의 요구에 마지못해 응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압살롬은 자신을 데려온 요압을 불렀다. 무엇 때문에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냐고 따질 심산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 처박혀 세월만 보내느니 그술에 그대로 있는 편이 나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몇 번의 부름에도 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던 압살롬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완전 다윗과 요압의 술수에 놀아난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하인들에게 명하여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질러버리라고 명했다. 그리하면 요압이 화가 나 자신에게 분명 따지러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압은 은혜를 모르는 압살롬의 행위가 너무 괘씸하여 부리나케 그를 찾아 따지고 들었다. “어찌하여 왕자님의 하인들이 저희 보리밭에 불을 지르는 못된 짓거리를 한 겁니까?” “그걸 정녕 모른단 말이오?” “모르오.” “왜 나를 그술에서 데려왔습니까? 하고 많은 날 침대나 지고 있으라는 거요? 도대체 무엇 때문이오! 어째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는 거요.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십니까? 차라리 날 죽이라고 그러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느니만 못합니다. 나는 아바마마와 이스라엘을 잊고 체념했던 사람입니다. 나마저 체념했었단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왔습니다. 아바마마께서 날 그리워하신다면서 말이오. 그래서 여기로 왔을 때는 아바마마와 이스라엘과 나의 앞날에 대한 기대로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내가 할일이라곤 그술에 있는 것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하도 답답해서 장군을 불렀지만 내 얘기에 콧방귀나 뀌었습니까? 밭에 불을 지른 건 사과드리지요.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아바마마를 뵙게 도와주시오. 아직도 내게 죄를 물으신다면, 암논을 징계치 않고 방치한 결과 제가 대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처단한 죄를 물으신다면 달게 받을 것입니다.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서 뜻 한번 펴지 못하고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백번 낫겠습니다.” 하긴 요압도 다윗의 처사가 못마땅하던 참이었다. 요압은 압살롬에 대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빼어난 용모와 거기에 용맹스러운 데다가 지혜까지 출중함은 분명 이스라엘을 위한 여호와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백성들의 마음은 다분히 다윗 다음은 압살롬이라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서두름은 기다림만 못하다는 판단 아래 다윗의 처분만 바라고 있었는데 압살롬이 그걸 못 참아 엉덩이를 들썩이고 방정을 떠는 것이다. 다윗은 아직까지도 압살롬의 자중을 바라고 있을 텐데. “다시 그술로 돌아가리까?” “알겠습니다.” 요압은 무거운 심정으로 다윗을 만났다. 그리고 간청했다. 조그마한 화로 큰 복을 걷어차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압살롬은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이라고. 지나간 죄에 연연하지 말라고 다윗의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다윗은 압살롬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어차피 늦고 빠름이 다를 뿐 길은 원상회복 쪽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과 압살롬 부자는 그렇게 해서 다시 만났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다. 압살롬을 만난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한 압살롬의 죄가 봄눈 녹듯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여호와의 축복이라 여겨졌다. 땅에 엎드려 절하는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이놈, 압살롬 내 아들아. 어디 보자. 그동안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마음고생이 여간 아니었음을 내가 다 안다. 이제 지나간 일은 잊기로 하자.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고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구나. 더욱 분발하여 네 꿈을 활짝 펴보아라.” “아바마마, 이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 이 아들을 믿어주십시오. 전심을 다하여 아바마마를 위하고 이스라엘을 위하겠습니다.” 압살롬은 고무되었다. 장애는 사라졌다.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예상하긴 했지만 민심을 살펴보니 어느 왕자보다도 자신에게 이스라엘의 미래를 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족쇄가 풀리자 암중모색하고 있던 신하들이 하나 둘 자신에게 줄을 대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다윗은 지는 해고 자신은 떠오르는 해라는 걸 신하들이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이리라. 압살롬은 실력을 쌓고 힘을 비축해갔다. 사병을 조직하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한편으로 자신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기병 오십 명이 항상 호위하게 했다. 또한 그는 다윗에 앞서 백성들의 불만을 탐지하고 해소하려 노력했으며 심지어 다윗의 고유 권한인 재판까지도 노고를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서슴없이 가로채어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에 혈안이 되어갔다. 이러기를 사 년. 백성들은 차츰 압살롬의 민심 사로잡기에 편승하여 그를 지지하기에 이르렀으니, 압살롬과 그의 가신들은 기고만장해지고 오만해져 갔다. 그때에. 통일 왕국 이스라엘이 될 때까지 수도였던 헤브론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수도가 옮겨가자 불만이 쌓여있던 터였다. 헤브론은 압살롬의 탄생지였다. 가신들은 세력이 커지게 되자 다윗이 있는 예루살렘의 한계를 절감하고 헤브론으로 근거지를 옮기자고 압살롬을 부추겼다. 그도 원하던 바였다. 그리하여 그술에 있을 때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헤브론에서 실행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붙여 다윗의 허락을 받아냈다. 다윗도 헤브론의 불만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압살롬이 스스로 간다고 하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줄은 모르고 오히려 더없이 좋은 일이라 여겨 쉽게 허락한 것이다. 헤브론으로 온 압살롬은 거칠 것이 없었다. 비가 내린 땅이 더 굳어지듯이 왕은 자신을 믿고 있었다. 막강한 사병 조직과 백성들의 호응은 의외로 커 그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갔다. 다윗의 신하들도 서서히 압살롬의 수하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의외로 다윗의 가장 뛰어난 책사 중의 하나이자 밧세바의 할아버지인 아히도벨이 끼어 있었다. 압살롬은 자신의 세력이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되자 여호와의 은혜가 다윗으로부터 자신에게 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호와는 곧 하늘이었다. 하늘이 사울 왕을 저버리고 아버지 다윗을 선택한 것처럼 이젠 나를 선택할 차례. 하늘의 뜻을 받들지 않는 것 또한 죄악 아닌가.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한다. 압살롬은 나름대로 자신이 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자기최면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근본인 열두 지파에 사람을 보내 민심잡기에 들어가는 한편 때가 되었을 때 즉각 호응할 수 있도록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윗으로부터 홀대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서슴없이 떠나온 신하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더욱 더 압살롬을 부추겼다. “하루라도 빨리 여호와의 영광을 받으소서. 다윗 왕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민심은 압살롬 전하에게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대세입니다. 천심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주저치 마시고 대업을 받드소서.” 그것은 마약이었다. 끊을 수 없는 유혹은 현혹으로 진화하기 마련.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니 아비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취된 기분은 날이 갈수록 왕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로 바뀌어 결국 자신이 하나뿐인 이스라엘 왕임을 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이제 압살롬 본인입니다. 본인의 아비이자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은 충신의 아내를 짓밟고도 모자라 그 충신을 사지로 몰아 죽게 한 살인자이며 끝내 그 아내를 탈취하여 부인으로 삼은 죄인입니다. 또한 왕자인 암논이 여동생을 강간한 죄를 사사로운 감정으로 묻지도 않고 방관하여 율법을 우롱하고 여호와하나님을 무시하였으며 오히려 그 패륜아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응징한 본인을 변방으로 돌게 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궁은 온통 후궁 천지라 그 치마폭에 휩싸여 국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고, 그가 뿌린 씨앗들의 세상이라 율법이 바로 서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은 그런 다윗에게서 떠났습니다. 이에 본인은 민심을 존중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자 감히 나섰습니다.” 그것은 다윗에 대한 반역이었다. 아들이 아비를 배신한 것이다. “폐하,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뭐라고!” 다윗은 그러한 보고를 신하로부터 듣고는 깜짝 놀랐다. “폐하, 이스라엘 대다수 백성의 마음이 예루살렘을 떠나 헤브론을 향해 있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폐하를 떠나 압살롬 왕자에게로 임했다는 풍문까지 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동안 압살롬 왕자는 암암리에 막강한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고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떻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여호와여, 언제까지입니까? “많은 신하들마저 속속 압살롬 휘하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부덕했단 말인가.”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세우셔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은 하루 이틀 전에 계획을 수립한 것이 아닐진대 지금 당장 어떻게 대책을 수립할 수 있겠느냐.” 눈앞이 캄캄했다. 무력감만 넘실거렸다, 압살롬이 아닌 여호와께. 나단에게서 여호와의 경고를 받을 때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여호와는 그때 이미 나를 버렸구나. 나는 일찍이 이 자리를 떠나야 했었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믿었던 자식이, 그토록 사랑했던 자식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나의 울부짖는 기도도 뼈를 깎는 회개도 소용이 없었구나. 자식에 의한 반란이 일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내게서 여호와는 떠난 것인 걸. 아직도 나단을 통하여 여호와는 대답이 없지 않은가. 내 죄악으로부터 나를 모질게 살려두었던 것, 그것도 응징이 아니고 무엇인가. 두고두고 고통을 받으라는. 여호와의 용서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 그렇지만 내가 의지할 데라곤 오로지 그 분밖에 없지 않은가. 자비를 주시든 안 주시든 그 분의 뜻인 것을. “지금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 중이랍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신하들이 모조리 헤브론에 있다고 합니다. 어서 대책을 세워 주소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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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5
  •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3회
    다윗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달랑 시종 하나만 데리고 길르압의 집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정말 아무도 몰라야 했다. 만약 이 사실이 백성들의 입에 회자된다면 길르압은 물론이고 여호와의 기름부음의 은혜를 받은 자신마저 내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여호와를 거역한 사울 왕의 비참한 최후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길르압은 태연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다윗을 보자 황급히 일어나 무릎을 꿇어 그를 맞이했다. 얼굴도 요르답이 말한 것과 달리 그대로였다. 다윗은 적이 안심이 되었다. 분노가 많이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요르답의 말이 거짓말이길 빌면서. “요르답의 말이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다윗에 비해 길르압은 여전히 태연했다. “무엇이 사실이란 말이냐?” “여호와는 없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의 여호와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의 염원일 뿐입니다.” “그만!” 더 들을 말이 없었다. 더 들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정신이 아뜩했다. 다윗은 그대로 눈을 감고 기도했다. “사랑의 여호와하나님, 이 불쌍한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다윗가의 멸망이 눈에 선했다. “너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 이 애비가 미워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라고 어서 말해다오, 내 아들아!” 그러기를 바랐다. 자신이 미워서 길르압이 반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아바마마께서는 눈에 훤히 보이는 모순을 어째서 여호와의 뜻으로 돌리시는 겁니까.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여호와께서 살인을 종용해왔습니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던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이방 침략을 숱하게 묵인해왔습니다. 저는 이런 모순의 여호와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선 모순이 없으시다. 전지전능하실 뿐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말부터 모순입니다. 저에게는 모순의 전지전능함만 보입니다.” 길르압은 울고 있었다. 다윗은 고개를 돌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만시지탄이었다. “너는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언약을 믿지 못하느냐?” “이방인도 사람입니다. 죄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죽었습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이스라엘을 죽일 것이니라.” “그래서 모순입니다.” “이단이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다윗은 다윗가의 멸망을 보았다. 그리곤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다윗이 다녀가고 난 후 길르압의 집은 철저하게 봉쇄되었다. 그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길르압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지내다가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고 몇날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 쓸쓸하게 죽고 말았다. 요나답의 운명도 마찬가지. 백성들은 길르압이 애초부터 병치레를 자주 한 걸로 알고 있어 그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다윗은 길르압을 잊었다. 철저하게 잊었다. 패륜아 암논이 죽고 이단아 길르압도 죽었다. 압살롬은 형을 죽이곤 도망쳐버리고. 첫째와 둘째와 셋째아들까지 잃어버린 다윗의 괴로움 중에도 세월은 흐르기 마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처럼 전쟁이 없는 평화를 즐겼다. 변방이 안정되자 백성들은 생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더욱 강력해지고 다윗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온 정성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아들들에 대한 괴로움을 잊어갔다. 시간은 역시 명약. 슬픔과 분노를 잊게 해주고 새로운 기쁨을 안겨주었다. 여러 부인들을 통해 왕자와 공주가 계속 태어나 다윗에게 웃음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태평성대는 성군을 낳는다던가. 다윗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모든 백성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과 칭송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다말은 그술로 피한 오라버니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거의 모든 시간을 여호와를 향하여 그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로 보냈다. “사랑과 은혜와 용서의 여호와하나님이시여. 이 못난 여종으로 인한 여러 사람의 불행이 주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있사옵니다. 부디 저희를 향한 노여움을 거두시고 우리가 이제는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로 인하여 또 다른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저의 길을 살펴주시며 그술에 가있는 압살롬 오라버니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항상 동행하여 주시고 그를 향한 아바마마의 고통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대신 그 자리에 사랑이 다시 일렁이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또한 그녀는 다윗에게 나아가 눈물로 하소연했다. “아바마마, 압살롬 오라버니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선처하여 주시옵소서. 그가 어찌 죄인이 되었습니까. 모두가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아바마마의 오라버니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을 여셔서 오라버니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소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거절치 마시옵소서.” 기쁨을 잃어버린 딸을 보는 다윗의 가슴은 미어졌다. 다말의 간절한 청이 아니더라도 다윗은 차츰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외모에다가 믿음직스럽고 듬직했던 아들이 아니던가. 사내대장부로서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용맹과 지혜까지 겸비한 압살롬. 자신을 빼닮은. 그래 다말의 말대로 그놈이 무슨 죄가 있는가. 내 탓이고 나의 직무유기이자 방임이었다. 어쩌면 내 죄로 인한 피해자이고 희생제물일 뿐. 그렇게 생각하자 다윗은 압살롬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 들기 시작하자 파도가 되어 요동치더니 거대한 밀물이 되어 다윗의 온 가슴을 적셨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 법. 그러한 다윗의 심중을 꿰뚫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군대장관 요압이었다. 다윗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지가 몇 년이던가. 그는 다윗의 눈짓, 손짓, 발짓만 보고도 그가 무얼 하려는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압살롬이 그술에 거한 지 삼 년. 아무리 그가 이스라엘 왕의 장자이자 이복형인 암논을 죽였을지라도 그 죽임에는 백성이 공감하는 명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누이를 강간한 자를 처단했다는. 다윗의 수많은 왕자들 중에 압살롬만한 인물이 있는가. 다윗의 후계자는 압살롬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윗은 분명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럴 때 내가 나서야 한다. 다윗이 어떻게 스스로 나서서 그를 데려올 수 있으랴. 그렇게 생각한 요압은 장담했다. 다윗은 못이기는 척 자신의 말을 따르리라고. 누가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을 거라고.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금물. 분위기를 띄워야 했다. 그래서 그는 수소문하여 드고아에 사는 슬기 넘치는 여인을 찾아내 계교를 일러주고 왕과의 면담을 성사시켜 주었다. 그녀는 요압이 일러준 대로 상복을 입은 채 다윗 앞에 엎드려 구슬피 울었다. “그대는 무슨 연고가 있어 그리 슬피 우는가?”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우리 백성들의 주인이시여, 이 불쌍한 여인을 도와주시옵소서.” “무슨 일인지 말해 보시오.” “저는 일찍이 전쟁터에서 남편을 여읜 가난한 백성입니다. 이런 제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들에서 일을 하다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말다툼을 벌이다가 감정이 격해져 몸싸움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걸 보고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형이 동생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로고.” “뒤늦게야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동생을 죽인 형을 똑같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아들 하나가 죽은 것도 서러운데 이제 둘 다 죽게 생겼습니다. 그리되면 저의 가문의 대가 끊기는 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니라. 그대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내가 별 일 없도록 조처할 것이니.”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다윗이 모를 리 없었다. “저와 저의 집안의 불행으로 우리의 주인이신 폐하께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걱정 마시오. 이후로 그대를 괴롭히는 자가 있다면 내게 알리시오. 다시는 그대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엄히 다스릴 것이오.” “저의 아들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여호와께 맹세하노니 그대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리라.” “참으로 살아계신 여호와하나님과 같은 주인이십니다. 한 말씀만 더 여쭙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 하시오.” “사람은 나면 필히 죽습니다. 한번 죽게 되면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저의 작은아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 작은아들을 죽인 큰아들의 죄는 심히 막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죄인의 생명을 거두지 않으시고 또한 내버려두시지도 않으며 회개하고 뉘우치게 하십니다.” 다윗은 그제야 눈치를 챘다. 드고아 여인의 일은 바로 자신의 일이자 아들의 일이었던 것이다. “내게 숨기지 말고 고하라. 요압이 시켰느냐?”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그렇습니다.” 다윗은 요압을 불렀다. 요압은 다윗 앞에 엎드렸다. “암논 왕자는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옵니다. 압살롬 왕자는 단 한번 폐하의 심중을 거스르고 스스로 죄인이 되어 그술 땅에 은거하고 있습니다. 이미 삼 년이 지났습니다.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고자 하십니까. 참척의 고통이야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위하여 어떤 것이 현명한 처사인지 헤아려 주시옵소서. 우리 이스라엘은 여호와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또한 폐하의 탁월한 인도로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고 이제 당할 자가 없을 정도의 강국이 되었습니다. 압살롬 왕자의 인격과 됨됨이는 모든 백성들이 우러러보고 있음을 폐하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고 왕자로 하여금 전하 곁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심이 지당할 줄 압니다. 그리하시면 왕자 또한 그 전보다 더 전심전력할 것이라 믿습니다.” 모두가 맞는 말이었다. 구구절절 다윗과 같은 심정의 말이었다. 이제 더 이상 뭘 머뭇거리랴. “알았다. 가서 데려오라.” 다윗은 무겁게 신음하듯 내뱉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는 전하의 현명하신 판단에 기뻐할 것입니다. 여호와하나님이시여. 간절히 빌고 원하옵건대 우리의 주 다윗 대왕의 앞날을 영원토록 축복하시고 언제까지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요압은 그 길로 그술로 떠나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을 보지 않았다. 막상 아들이 돌아오니 사랑했던 만큼 미움이 되살아난 것이다. 압살롬은 나단에 의한 여호와의 저주였던 골육상쟁의 칼부림을 불러온 장본인이 아닌가. 그는 두려웠다. 살얼음을 밟는 기분으로 살아온 나날이었다. 그래서 나단의 경고가 경고로서 그치길 간절히 기원했다. 그런데 압살롬이 그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거기엔 암논의 패륜이 있었다. 찢어죽이고 싶은. 그러나 밧세바와의 간음, 우리아에 대한 살인 교사라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 씻고 또 씻어도 씻지 못할 자신의 원죄가 도사리고 있었다. 밧세바. 사랑하는 밧세바. 이제는 부인이 되었지만 그녀는 부하의 아내였다. 어떻게 씻어낼 수 있단 말인가. 암논과 다말. 자신이 뿌린 씨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자신을 닮아버린 암논의 행태. 그래서 더 미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던, 피를 보고 싶지 않았던 심사, 조마조마하게 버텨온 나날. 압살롬은 그걸 깨뜨려버렸다. 자신을 기만하고 형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들. 그 아들이 나단의 경고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절벽과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과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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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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