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5(금)

예술/창작
Home >  예술/창작  >  칼럼-연재

실시간뉴스

실시간 칼럼-연재 기사

  • 이재학 칼럼 31,제20회 부천마라톤대회와 복사골마라톤클럽
      ‘2005년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부천마라톤대회’가 2025년 10월 26일 대회로 20회째를 맞는다, 매년 가을이면 부천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이기에 몇 회 대회인지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20번째 대회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어느새 20년의 세월이 흘렀단 말인가? 필자는 부천마라톤대회의 20회라는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는 ‘복사골마라톤클럽’이 만든 대회이다. 복사골마라톤클럽은 2000년 장거리달리기를 즐기는 10명의 마라토너들이 모여 결성한 클럽이었다. 복사골마라톤클럽를 결성한 10명의 마라토너는 달리기가 대중화되기 전부터 장거리달리기를 해온 마라토너로 뛰어난 달리기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복사골마라톤클럽을 만든 이후 각종 마라톤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어 전국적으로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마라톤에 대한 자신감은 복사골마라톤클럽의 정도영회장과 정범희사무국장이 주도하여 부천 인천의 인천대공원에서 활동하는 마라톤동호회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마라톤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친선마라톤대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2002년 2월 3일 열린 제1회 경인클럽친선마라톤대회이다.     제1회 경인클럽친선마라톤대회는 복사골마라톤클럽과 인천사랑마라톤클럽의 친목도모로 시작했고, 제2회 대회부터는 인천대공원에서 마라톤을 즐기는 클럽들의 참여로 확대되었다. 이렇듯 지역마라톤클럽의 작은 행사가 된 경인클럽친선마라톤대회는 주관하는 클럽을 바꾸어가면서 매년 겨울 2월이면 인천대공원에서 2007년까지 6번의 대회를 개최했다. 경인클럽친선마라톤대회의 자양분은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의 씨앗이 되었다.  2005년 11월 20일 제1회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 개최는 첫째 2000년대 초 각 지역마다 지역의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마라톤대회의 열기와 둘째 경인클럽친선마라톤대회를 개최한 복사골마라톤클럽의 경험과 셋째 복사골마라톤클럽의 꼭 부천에 마라톤대회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필자도 복사골마라톤클럽의 회원으로 경인클럽친선대회를 개최한 경험을 공유하였지만 부천시를 대표하는 정식 마라톤대회를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기에 복사골마라톤클럽의 장경문회장과 김윤찬사무국장이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를 만들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치열한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장경문회장은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리더십으로 회원들을 설득하고 대회개최를 목표로 작업을 하였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생기기까지 했다. 2005년은 복사골마라톤클럽 전체가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 개최를 위하여 똘똘 뭉쳐있던 한 해였다. 그런 노력과 열정의 결과로 만들어진 대회가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이고, 2025년 20회를 맞이하는 2025년부터 명칭이 변경된 부천마라톤대회이다. 동호인 클럽이 대회를 계속진행하기에는 벅찬 일이라서 제2회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부터는 부천시로 이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회째를 맞이하는 부천마라톤대회가 마라톤열풍의 한가운데서 부천시민의 건강을 지키고 부천시의 홍보대사가 되는 것을 보면 부천마라톤대회를 만든 복사골마라톤클럽의 마라톤대회를 만들기 위해 불태웠던 2005년의 뜨거운 열기가 2025년까지, 그리고 미래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복사골마라톤클럽은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를 만든 것 이외에도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전국의 마라톤동호인들이 이어달리는 ‘통일염원국토종단이어달리기’에 참여하였고, ‘마음으로 달리는 복사골이야기’라는 클럽의 책을 발간하였으며, 지역의 고등학교학생(덕산고)들과 함께 연습하여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251004이재학)
    • 예술/창작
    • 칼럼-연재
    • 이재학의 마라톤 연재
    2025-10-11
  • 생활마라톤. 이재학 칼럼 30
     1980년대의 일이다. 서울의 이태원, 한남동, 남산순환도로에 가면 오전이든 오후든 상관없이 간단한 운동복차림에 혹은 상체를 벗고 땀을 흘리며 달리기를 하는 외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외국인들이 훤한 대낮에 달리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참 팔자 좋은 놈들이네’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다. 버스에 동승하고 있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저놈들이 힘이 남아도나 밥 먹고 왜 뛰어 배 꺼지게’ 하는 식으로 한마디씩 하곤 했다. 그 당시에는 외국인들이 달리는 모습이 신기하고 낯설게만 보였다.  IMF를 거치고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1만 불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선수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장거리달리기인 마라톤을 하는 일반국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1999년 마라톤을 하자는 후배의 말을 들었을 때 ‘미쳤어’라고 했다. 마라톤은 아주 특별한 사람인 선수들만 하는 운동인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마라톤 입문을 권한 후배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은 풀코스마라톤을 완주한 아주 소수의 인간과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풀코스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게 대단한 자부심이었다. 내가 2000년에 풀코스마라톤을 완주했을 때 사람들은 “풀코스마라톤을 뛰었어” 하며 놀라워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도 화이트칼라 운동이라는 마라톤이 국력의 신장과 함께 일반국민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마라톤은 분명한 한계도 있었다. 마라톤은 누구나 쉽게 입문하고,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과는 심리적으로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마라톤은 나이 먹은 사람들의 운동이라는 것이었다.    2000년 이후 마라톤을 하는 인구가 꾸준히 늘어갔다. 마라톤 인구가 늘어가는 과정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함께하고 있었다. 마라톤이 국민스포츠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 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풍족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운동이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마라톤 인구가 늘었지만 전 세대를 아우르는 운동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2020년이 넘어가면서 마라톤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생활마라톤으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건강의 중요성을 더욱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마라톤의 특별한 장점도 작용한 것 같다. 그것은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혼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단체로 운동을 하더라도 다른 운동과 달리 마라톤은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운동이다. 얼마나 현대적이고 또 얼마나 개인적인가 바쁜 현대인과 코드가 맞다. 코로나 사태이후 마라톤인구의 눈에 띄는 변화는 중년이 이끌었던 마라톤을 젊은 청년들인 2030세대가 중심이 되어 이끈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함께하면서 그전과는 달리 기록위주의 마라톤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 즐기는 마라톤이 되었다. 단축마라톤에 참가자들이 몰리는 이유이다.  밤에 동네를 돌아보면 젊은이들이 혼자서 혹은 두 세 명이 모여 달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다. 그 전에는 밤에 달리는 사람이 흔치 않았고, 또 있더라도 중년의 마라토너들뿐이었다. 요즘은 전 국민이 달리기를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어디를 가든 길이 있으면 달리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생활마라톤이 정착된 게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 이곳저곳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볼 때면 1980년대 서울의 이태원, 한남동, 남산순환도로에서 보았던 달리는 외국인들이 생각난다. 이제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대한민국도 어느덧 선진국이 되었다.   (2025.09.12 이재학)
    • 예술/창작
    • 칼럼-연재
    • 이재학의 마라톤 연재
    2025-09-30
  • 이재학 에세이(2) 삶-쥐의 도전
     나는 지금 쌀자루를 옮길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 중이다. 삼일 째 나에게 연패의 쓴 맛을 보게 한 쥐 때문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쥐가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다.    삼일 째 집주인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나는 쥐다. 집주인은 나를 잡기 위해 온갖 묘책을 짜내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나는 곧 집주인의 덫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집을 떠날 수가 없다.   원래 나는 이집의 하수도 구멍과 담벼락의 음침한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집안에서는 주인집 식구들이 혹시 내가 안으로 들어올까 경계를 하고, 집밖에서는 요즘 부쩍 수가 늘어난 고양이들이 음식물쓰레기를 먹거리로 삼고 있지만 나를 별미로 생각하여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고양이들의 눈을 피해 냄새나고, 그늘지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살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사람들이 사는 집 안으로는 들어가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안도록 듣고 자랐다. 매일 아침 노모는 나에게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삼촌들이 천수를 누리지 못한 것도 사람들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쥐의 교훈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아들을 위한 노모의 애정 어린 충고였지만 이미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삼촌들이 갔던 길을 가고 있었다.      삼일 전 나는 집안으로 들어왔다가 집주인하고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나는 오일 전부터 집안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아주 우연히 나는 집안의 그곳에 쌀자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내가 평상시에 수시로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혹 활짝 열려있는 경우가 있어도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 그곳을 몇 번 집주인 몰래 들어가 본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는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그런데 그날따라 무심코 그곳을 지나다가 문이 열려있기에 들어갔더니 쌀자루가 보이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로또 일등에 당첨된 것만큼이나 기뻤다. ‘노다지’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나는 그곳을 밤에만 가야하고 또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은 참을 수 있어도 그 이상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쥐의 생존 제1원칙을 어기고 낮에 그곳을 찾고 말았다. 처음에는 쌀을 배불리 먹고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낮에 한 번만 그곳에 갔더라면 지금까지 집주인에게 안 걸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쌀의 유혹에 눈이 멀어 오후에 또 그곳을 찾았다가 그만 집주인과 마주친 것이다.     나와 마주쳤을 때 놀라는 집주인의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내 얼굴이 곧 집주인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한편으로 소름이 끼치기도 하지만 집주인의 얼굴만 떠올리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평생 그렇게 통쾌했던 적은 없었다. 아마도 집주인은 그곳에서 나와 마주치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집주인이 더욱 놀랐는지 모른다.    집주인은 나와 마주친 즉시 약국에서 쥐끈끈이를 구입했다. 꼭 다니던 길로만 다닌다는 나의 습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집주인은 나의 성격을 역이용하여 내가 다닐 것이라고 예상되는 길목에 그것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내가 다니는 길목에는 장애물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지뢰(쥐끈끈이)가 매설된 꼴이었다. 집주인이 나를 잡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것만큼이나 나의 스트레스도 극에 달하였다. 나는 낮에는 될 수 있으면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쌀의 유혹을 참는 것은 죽기만큼이나 힘들었다.     밤에 쌀에 접근을 하는 것은 낮보다 더 위험하였다. 낮에는 사람들의 눈이 있어 지뢰를 잘 보이지 않는 곳에만 매설하였지만 밤에는 쌀자루 주변에 엄청난 수의 지뢰가 매설되었기 때문이었다. 밤이면 집주인은 쌀자루 바로 앞에 둥그렇게 지뢰를 매설하고는 그 위에 미끼를 올려놓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선배 쥐들과는 달랐다. 미끼를 무시하고 쌀에 접근하기도 하고, 미끼를 취하더라도 지뢰를 교묘히 빠져나오곤 하였다. 이렇게 내가 많은 지뢰를 피해 쌀에 접근하는 것에 성공하면 집주인은 분통을 터트리고 다음날 지뢰를 더 많이 매설하였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것이다. 나는 지금 기약 없는 이 전투를 삼일 째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알고 있다. 집주인이 나를 잡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을.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결코 그곳의 쌀자루를 포기할 수 없다. 집주인은 나를 잡지 않으면 쌀자루를 지킬 수 없고, 나는 쌀자루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으면 밥을 굶는다. 그러니 우리는 외나무다리에서 아주 제대로 만났다.     단지 내가 걱정하는 것은 내가 정신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집주인이 아주 영리하다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우리(쥐)가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기로 하면 반드시 산다는 사즉필생(死卽必生)의 각오로 매일 쌀자루가 있는 곳으로 간다. 사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최초의 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 밤에 쥐끈끈이에 걸려 장렬히 전사하게 될지라도.           오늘밤에도 쥐가 쌀자루를 찾아 올 것이다. 나는 쥐를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밤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쥐도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재학 작가 마라토너,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전),  부천작가회의, 부천수필, 부천시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소사천』
    • 예술/창작
    • 칼럼-연재
    • 이재학의 마라톤 연재
    2025-09-16
비밀번호 :
작업수행시간 :: 0.387454032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