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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訪曹處士山居(방조처사산거)- 박순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訪曹處士山居(방조처사산거)- 박순(1523~1589, 중종 17~선조 22) 醉睡仙家覺後疑 (취수선가각후의) 취해 자던 신선 집 깨어보니 의아하다 白雲平壑月沈時 (백운평학월침시) 흰 구름은 골 가득 메우고 달이 지는 새벽녘 翛然獨出脩林外 (소연독출수임외) 주인 몰래 혼자 나와 긴 숲길 벗어나니 石逕筇音宿鳥知 (석경공음숙조지) 돌길에 지팡이 소리 자던 새에게 들켰네. 술 취한 후 희미하게 눈을 뜨니 너붓한 반석이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으늑한 장면, 좋은 벗과 주거니 받거니, 달무리로 주안상 차리고, 솔잎 향 몇 방울 술잔에 떨어뜨리며 명지바람에 실려 온 실솔(蟋蟀) 울음소리로 세속의 찌든 귀 헹구면서, 맴도는 흰 달빛도 초대한 깔축없는 분위기에 실컷 마시고 쓰러졌다. 깨어보니 너부러져 있는 술상 앞에 주인은 쓰러져 코를 골고 주변을 살펴보니 골을 메운 흰 구름 雲海를 이뤘다. 밤새도록 마신 달도 취해 서녘으로 어슷하게 비틀거릴 무렵 미안한 마음에 슬며시 일어나 숲길 나서는데 돌길에 그만 지팡이 소리가 난다. 아뿔사! 잠자던 새에게 들키고 말았다. 상영소견(觴詠消遣), 어찌 벗과 자연과 술잔 기울이며 시 한 대접 선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작자의 자연에 대한 관조, 곰살궂은 마음씨, 익살미의 ‘宿鳥知’에서 순수를 읽는다. 박순은 ‘숙조지선생(宿鳥知先生)’이라는 별호를 얻는다.   300년 후,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 (Claude Achille Debussy)는 결곡한 대학자 박순에게 헌정하듯 곡 하나 짓는다. ‘달빛’(Clair de lune)‘이다. 그는 음악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 않고 단지 느끼게 한다. 바로 ‘분위기 음악’이다. 베를렌느의 시 ‘달빛’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1위에 선정되기도 한 곡이다. 知音의 벗과 달빛 친구 삼아 이슥토록 술잔 기울일 때, 적요가 적요롭게 숲에 내려앉을 때, 나뭇잎 사이를 타고 흐르는 곡 ‘달빛’, 몽환적 운율의 우주성에 두려움마저 느낀다.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달빛이 내게 와서 빛나는 것일까. 내가 달빛 속에서 달이 된 것일까. 잡을 수 없는 신비로움 애매한 윤곽, 모호한 선에 핀 인상주의 모네와 르누아르 드뷔시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미묘함으로 흐르는 멜로디 말하려 하지도 않고 느끼게 할 뿐 달빛의 몽환 꿈속의 달빛. -필자의 드뷔시 <달빛>에 대한 斷想-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음악듣기/드뷔시-달빛 https://www.youtube.com/watch?v=zpIgoy3Q1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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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천의 문학향기
    2021-08-25
  • 당신의 빈자리/홍영수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빈자리/홍영수    냉기를 머금은 침대 하나 하얀 시트 위에 적막함이 누워있다. 깊게 파인 육순의 자국 위에 귀를 기울이니 떠나지 못한 당신의 심장 소리 여전히 들려오는 듯 창문 틈새로, 바람을 안고 들어온 차가운 체온이 침대 위에 눕는다. 온기 없는 온기가 따스하다. 숨소리 잃은 베개를 당겨 안으니 한숨에 실린 베갯잇이 긴 한숨을 짓고 메말랐던 눈물 자국이 촉촉한 눈물을 흘린다. 한 생이 저물기 전의 깊이를 알지 못하고 이제야 당신의 고단했던삶의 한 자락을 휘감으니 따스한 그림자로 가만히 다가와 타오른 그리움의 내 가슴을 감싸준다. 당신은 알고 있을까. 움푹 들어간 베갯속의 허전함을 아직도 세탁하지 않은 침대보에 스며든 고단한 숨소리를 곁에 없어 더 사랑하게 되는 이 절절한 모순 앞에 나의 심장에서 잊혀가는 것에 대한 상실감과 당신의 기억 속에 내가 지워지는 두려움을 꽉 찬 공허의 그리움으로 동살 잡히는 새벽녘까지 당신으로 하얗게 지새운 밤이다.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시 부문   홍영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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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천의 문학향기
    2021-07-24
  • 눈 먼 사랑/이천명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눈 먼 사랑/이천명    사랑에 눈이 멀어 눈 먼 사랑을 한다   백일의 해맑은 눈동자 허공을 맴돌다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쿵, 첫사랑이었다   웃는 모습 활화산 되어 가슴에 피고 웃음 소리 귓가에 맴돌지만   함께 해서 더 황홀했던 순간도 세월 지나고 보니 그것은 가슴 아픈 짝사랑이었나 보다   밤을 새워도 한 줄의 기막힌 문장이 오지 않는 날들   첫사랑은 눈 먼 사랑으로 자라나 세월 담은 기다림만 가득하다    산문집. <섬 그리고 자유>. 산과들. 2013   ---------------------------------------------------   나는 너에게로 가지만 다가가지 못한다. 욕망은 앞서지만 안타까움 속 닿을 수 없는, 어릴 적 목숨도 바칠 것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의 사랑, 그 순간만은 분명 진실이었을 것이다.   어쩜, 살아가면서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순수와 진실한 사랑은 딱 한 번, ‘첫사랑’이 아닐까. 그렇기에 화자는 ‘해맑은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심장이 쿵’ 하는 ‘첫사랑’이라고 단정 짓는다. 사실 살아가면서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지만,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첫사랑만큼 무의식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몰의 서해에서 바라보는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괜스레 눈시울이 적셔지고 눈으로 노을 한 점 당겨 와인 잔에 부어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은 곧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관념 때문이리라. 사라지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 머문 상태라면 굳이 넋 놓고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변치 않는 것은 없다. 변하기에 아름답고 변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울 수가 없다. 사랑, ‘첫사랑’, 또한……   인간에 대한 사랑도 바로 그러한 성정 때문이 아닐까. 더욱이 눈 앞을 가리고, 뭔가 낀 눈먼 사랑이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이미 영원한 사랑이 아니라는 걸 미리 짐작하기에 화자는 시제를 ‘눈 먼 사랑’이라 했고, “눈먼”의 맞춤법마저 일탈해서‘눈이 멀다’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눈 먼’이라 띄어쓰기를 했다. 인간은 사랑할 때는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첫사랑’이라면야.   시인이 되려면 화산의 불구덩이로 빠져드는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얼마나 웃는 모습이 심쿵했으면 ’활화산 되어 가슴에 피고’라고 할까. 그리고 웃음소리는 활화산에서 쉼 없이 뿜어져 오르는 마그마의 뜨거움이 되어 귓가에 맴돌았을 것이다.   ‘첫사랑’은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다가올 때도 있지만 중고시절에 이웃집 오빠, 또는 친구의 오빠를 친구 몰래 만나게 되는 것이 대체로 일반적인 첫사랑의 방식이다. 첫사랑! 세간의 말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렇기에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며 그 고통을 넘어서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이성 간에서 오는 고통 속 쾌락, 은밀하게 마음을 휘어잡고 관통하며 지속시키는 내적 충만감. 라깡이 말한 “주이상스(jouissance)”다. 그래서 화자는 함께 해서 ‘황홀했던 순간’이 세월 지나 ‘가슴 아픈 짝사랑’ 곧 ‘첫사랑’ 라고 한다. 참혹한 기쁨의 첫사랑.   필자의 중고등 시절은 펜팔이 대단히 유행했다. 말 그대로 오직 펜으로 남녀 사이에 주고받는 편지이기에 초 멋진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 밤새워 글을 쓴다. 그러나 아침에 다시 읽어보면 유치함을 넘어 찢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그때 그 시절의 펜팔이라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문학지망생들에게 초석이 되지는 않았을까. 라디오의 주파수에 귀를 기울이고, - 혹시 편지가 올까 하는 마음에 - 시선은 동구밖에 서성이고. ‘밤을 새워도’, ‘기막힌 문장이 오지 않는 날들’의 화자의 심상을 보면 다분히 공감할 수 있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사람은 항상 첫사랑에게 돌아간다”라는 어느 나라 속담이 있다. 시인의 세월을 지팡이가 짚고 가는 지금, ‘세월을 담은’‘기다림만 가득하다’고 한다. ‘첫사랑’,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그 첫사랑의 행복은 이미 깃을 잃고 추락한 행복일 뿐이다. 천하의 백거이도 - 첫사랑이었던,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했던 - “남몰래 이별”하는 사랑을 했다.   潛別離/白居易   남몰래 이별해야 하기에   울 수 없어요 남몰래 이별해야 하기에 말할 수 없어요 남몰래 사랑해야 하기에 우리 둘 외에는 아무도 몰라 깊은 새장 한밤에 갇혀 홀로 깃든 새 봄날 날카로운 칼날에 잘린 연리지 황하 강물 탁하지만 맑아질 날 있고 까마귀 머리 검지만 희어질 날 있으리 오로지 남몰래 이별해야 하기에 우리 만날 기약 없음을 감수해야 하리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 예술/창작
    • 부천의 문학향기
    2021-07-21
  • 바깥잠/ 구미정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바깥잠/ 구미정   일기예보에 없던 비가 까맣게 쏟아진 날 바깥잠 사내가 버스에 올랐다 등에 짊어진 커다란 배낭과 양손에 들린 보따리보다 무거운 버스 요금 앞에서 지갑을 두고 왔다고…… 요람처럼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 출근하는 사람을 본다 툭! 툭! 떨어지는 물방울 젖은 신발이 된 사내는 눈 감아야 보이는 세상으로 걷는다. 흔들흔들 기점을 돌아온 원점 눈 뜨면 보이는 세상으로 바깥잠 사내가 내렸다 비를 몰고 바람이 휘돌아 간다   * 월간 시 31회추천시인상     -------------------------------------- 스스로, 아님, 사회적 제도, 또는 의도치 않게 소속된 집단에서 떨어져 나온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인생이 끝났다거나, 낙오되었다고 할 수 없다. 스스로 떨어져 나오는 경우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타인에 의했을 경우는 힘들겠지만, 스스로 마음을 접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가 되었든 “바깥잠 사내가 버스에 올랐다”. 화자는 예고 없이 내리는 비를 “까맣게”쏟아진다며 왠지 어두운 분위기를 예감한다. 그때 “등에 짊어진 커다란 배낭”과 “양손에 들린 보따리”그 무게가 버스 요금보다 무겁다고 하는 “바깥잠”이 승차를 한다.   언제부터인가, 어쩜 IMF 이후부터 우리의 주변, 특히 지하철 역, 공원의 벤치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등에 얹힌 짐”과 “양손에 든 짐”은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속에 옷가지와, 딱딱한 바닥에 펴고 자야 할 이불 같지 않은 이불 등이 순서도, 질서도 없이 빼꼭히 들어차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저들이 살아오면서 일구고 가꿔놓은 삶의 텃밭과 경작지, 그 위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화자는 이미 그러한 점을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지갑을 두고 왔다고……”하는 그의 말이 차라리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줄임표(……)”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언어 너머의 뜻(言外之意)을 알아차린 시인은 신호등의 불빛처럼 번뜩이며 반짝이는 시선으로 “바깥잠”의 내면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시인은 머리로 사는 게 아니라 심장의 고동으로 사는 사람이다.   내가 스스로 비참하게 된 것은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나 스스로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화자의 시선은 “요람처럼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다. 대중교통인 버스를 운행하면서도 “바깥잠”을 살펴보는 화자는 버스 요금을 내지 않고 승차한 ‘무임승차’너머의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출근길 내리는 비의 모습을 “툭!/ 툭”’으로 행갈이 해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의 느낌을 더해주었고, 또한 “툭”이라는 단어 옆의“!” 은 빗방울을 형상화 시킨 일종의 상형의 그림시로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It’s raining」처럼 도형화시켜 “바깥잠”의 메마르고 황폐한 그의 가슴속에, 그리고 영양실조 걸린 고요한 혈맥에 한 줄기 수액으로 내리게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빗줄기의 리듬을 자장가 삼은 그가 잠이 들었다. 흔들리는 의자 위에서 자는 쪽잠일지언정 어쩜 그는 “호접몽”을 꿈꾸지는 않았을까. 왜냐면, 어린 날의 기억들이 꿈속에서나마 떠올라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어난 그는 나비가 나였는지 내가 나비였는지 비몽사몽간에 기점으로 돌아온 버스에서 “눈 뜨면 보이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욕망으로 가득한 숨을 허공을 향해 내쉬고 있는 세상 속으로. 사회적, 또는 일반적인 눈으로 볼 때 좀 허름하고 허술하게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과 정신까지 허름, 허술하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히 잘못이다. 인간의 정신은 보여지는 것과 보이는 것 등이 단순하지 않다. 커다란 저택에 살든 지하 쪽방에 살든, 삶의 장소는 중요치 않다. 그렇기에 본질을 떠나 피상적이고 외형적인 것으로 가치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이러한 점을 익히 경험했던 것 같고 더 나아가 스스로 내면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살아가는 지혜는 내 삶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비록 가난할지언정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우아할 수 있는 누구의 말대로 ‘우아한 가난’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또한, 돈이 없으면 대체수단을 통해서 실천해야 한다. 참으로 어렵고 어렵지만 어찌하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은 되지 않은가?   디오게네스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줄이기 위해 노숙인보다 못한 생활을 자처했다 한다. 그 어딘가 알 수도 없는 곳으로 홀연히 떠나려고 할 때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의 소유를 거부해버리는 게 그의 삶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바깥잠”은 노숙인의 삶으로만 반드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다. 표층적인 그의 겉모습이 아닌 심층적인 내면에는 또 다른 디오게네스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스토아학파에서 추구했던 “가지지 않은 것처럼 가져라”라는 삶의 방향성을 추구하는 사람도 많다. 너무 수준 이하의 경제적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해 인간성마저 말살과 동의어로 부추겨서는 아니 될 것이다. “바람이 비를 데리고 휘돌아 가게 하고 있다”젖지 않고, 춥지 않게. “바깥잠”을 향한 화자의 시선이 따스하다.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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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천의 문학향기
    2021-06-22
  • 생의 바다/이부자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생의 바다/이부자   전철 속 마주한 군상들이 졸고 있다 저마다의 삶을 눈꺼풀 위에 얹고 찰나 충전의 시간   내리실 손님은 오른쪽입니다.   친절한 안내에 놀란 인생의 주인 황망히 뛰어내린다. 매달린 삶의 무게를 달고   몸부림치듯 세파를 가르며 종일 피라미만큼의 생존의 떡과 노래미 같은 자식을 위한 처절함과 지친 무릎, 힘을 다해 바다로 간다.   생존으로 흘린 눈물처럼 짜디짠 생의 바다로 간다   시집 <생의 바다를 건너다>. 에세이아카데미. 2021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   우린 살아가면서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가는데 그 어떤 상황일지라도 삶에는 자기만의 리듬이 중요하다. 더욱이 속도전 시대에는 압박감과 억압감 때문에 자칫 자기만의 리듬감을 잃게 될 때가 있는데 이럴 땐 한낱 부유물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도 하고, 독서, 등산, 낚시, 숲길을 거닐거나 취미 생활을 하며 여가를 즐기지만, 여러 제약조건으로 쉽사리 실행하긴 힘들다. 그렇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삶의 향기를 갖지 못하고 어떤 삶의 의미도 부여받지 못한다. 향기는 천천히 걸어야 맡을 수 있고, 내 몸에 향기가 머물 수 있다. 그러나‘생의 바다’에 던져진 거친 삶, 먹고사니즘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생의 바다”, 즉 ‘고해苦海의 바다’에 던져진 우린 삶의 영위를 위해 출근을 하게 된다. 출퇴근 시간의 전철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그 지옥 속에서도 “삶의 눈꺼풀 위에 얹고” 졸음이 순간적으로 온다. 그 찰나적 시간 속에서 눈을 뜨면 대부분 한두 정거장 전이거나 한두 정거장 더 갈 때도 있다. 이럴 때의 상황을 화자는 “황망히 뛰어내린다.”라고 한다. 늘 그렇듯 친절한 안내 방송은 변함이 없다. 특히 출퇴근 시간, 붐비는 역에서는 어쩌다 신발 한 짝 벗겨지면 그대로 인파에 밀려 계단 끝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렇듯 어깨에 “매달린 삶의 무게”를 짊어진 우린, 먹고사니즘에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삶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이러한 광경을 다람쥐 입장에서 본다면 “사람 쳇바퀴 돌 듯”이라고 하지 않을까.   주변과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바쁜 삶을 위해 “세파를 가르며” , “무릎”에 힘을 다해 삶의 터전인 고해의 바다로 향한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섰다고 보면 벌써 눈앞에 또 다른 고지가 우뚝 서 있게 마련이다. 정말 ‘삶의 리듬감’과 ‘향기 있는 삶’은 저 멀리 있는 것일까?   속도와 경쟁의 시대, 현명한 삶을 위해서는 스스로 느낌 있고 향기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삶의 리듬감’이다. 빠른 속도감과 경쟁과는 반비례 관계이다. 좀 더 여유 있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삶을 관조하자. 삶의 향기와 삶의 리듬감은 속도감과 욕심이 앞서면 저 멀리 사라진다.   장자는 입신출세를 주장하지도, 그렇다고 세상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는 “ 자아를 비우고 세상에 노니라고 한다. 허기유세虛己遊世, 얽매이지 말고 현실과 적당한 거리를 두라는 것이리라.   폴 라파르그는 <게으를 권리>라는 책을 썼다. 하루 세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한가로움을 즐기라는 것이다. 100여 년 전에 이런 글을 썼다는 자체가 좀 의아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이러한 방향으로 –주 4일제 – 흘러가는 것 같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대단히 시스테믹한 사회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한편으로 그가 공산주의를 선언하고 <자본론>을 집필했던 마르크스의 사위라는 점에서 좀 특별한느낌이 들기도 한다.   게으르고 싶은 권리가 있어도 게으름을 피우지 못한 우리에게 스스로 경쟁의 틈바구니로 밀어 넣는 이유는 다양하다. 먹고사는 문제의 생존 경쟁으로 치닫는다는 것, “짜디짠/생의 바다로 간다”라며 화자는 시를 끝맺고 있다.   욕망과 집착을 벗어나 때론 게으르고 느리게 생의 바다를 항해한다면 메말라가는 우리의 허기진 혈맥에 한 줄기 수혈이 될 것이다. 어둠 속 항해는 아직 밝아오지 않는 새벽일 뿐, 비록 고해의 삶일지언정 바다가 품고 있는 욕망은 푸르름이다.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 예술/창작
    • 부천의 문학향기
    2021-04-21
  • 사랑에 관하여/김은혜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관하여/김은혜        속은 뜨겁다. 900도 흙으로 만든 기물을, 끌고 불구덩이로 들어간다. 속에서 지지고 볶고 살다가, 뜨겁게 한번 살아보자   다시 냉전이다, 차갑게 식은 우리 사랑이다. 다시 한번 살아보자고, 그림도 그리고 또 다른, 색색의 옷을 입힌다. 다시 한번 심기일전 지난번, 온몸과 마음을 다 준 것이 아니다.   이제 다시 시작한다. 1250도 뜨겁게 더 뜨겁게, 밖에서는 모른다. 그들이 무얼 하는지, 오랜 진통 끝에 태어난 달항아리, 이제 세상을 향해 나갈 일이다   뜨겁게 사랑한 결과물이 영웅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깨지지 마라 살아만 있어라, 1250도 불구덩이 속으로, 흙으로 만든 기물을 끌고 들어간다.       시집 <상자를 벗어나려는 여인의 몸부림>, 시선사, 2018. 부천 시소리낭송회 회원   국보310호 백자 달항아리   ---------------------------------------   흙을 구워서 만든 넓은 의미의 도자기는 태토(胎土)의 굳기에 따라 토기土器, 도기陶器, 자기瓷器 등으로 나눈다. 토기는 일반적으로 유약을 입히지 않고, 섭씨 700~1000도의 낮은 온도에 구워지고. 도기는 토기보다 단단하고 유약을 입혀서 섭씨 1000~1100도에서 번조燔造한다. 화분이나 떡시루 같은 기물이 여기에 속한다. 자기는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내기 때문에 태토가 유리질화 된 반투명체다.   시적 화자는 도자기를 구우면서 사랑의 이미지를 번조 하고 있다. 사랑, 모든 예술과 문학, 인간의 영원한 주제이다. 결코 삶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중년의 그윽한 눈빛 사랑, 칠십, 팔십 노년에게도 사랑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묘약이고, 대마초와 모르핀 같은 환각제이다. 화자는 “불구덩이로 들어간다.”, ‘뜨겁게 살아보자“ 에서 보듯 사랑은 가마의 불 구덩이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자고 한다. 도자기기가 불의 예술이듯 사랑 또한 불꽃의 타오름이다.   기물은 한 번 가마에 들어가면 며칠 동안 나오지 못한다. - 요즘은 가스가마, 전기가마 사용하기에 그렇지 않다 – 사랑 또한 한 번 빠지면 입구나 출구가 없다. ”지지고 볶고 살다“ 보니 제정신이 아니기에 형체가 있어도 볼 수 없다.   더 아름답고 질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표면에 얇은 유리질막, 즉 유약을 덧씌운다. 이것은 광택과 색깔을 아름답게 만드는 효과를 내기 위함이다(”색색의 옷을 입힌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서로가 예뻐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변신을 하듯이 말이다. 비록 몸과 마음이 아직은 덜 익은 미완의 상태일지라도 온전하고 성숙한 결말을 위해서 다시 한번 살아보자고 한다.   시인은 사람과 언어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한다. 사람과 사물, 영혼과 육체, 더 나아가 우주와 존재를 이어주는 큐피드이자 헤르메스가 된다. 점진적인 불꽃의 소멸로 인해 태어난 도자기란 존재는 불꽃의 울부짖음이듯, 시 또한 시인 자신이 소멸하면서 모든 걸 포용하며 탄생한 존재의 울음이다.   드디어 사랑의 완성을 위해 1250도 가마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무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불가마, 승염식이든 오름 가마든 상관없이 어떠한 작품이 완성될지 모른다. 다만, “오랜 진통 끝에 태어난 달항아리”에서 보듯 ‘달항아리’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뜨겁게 타오른 사랑이라는 가마 속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듯 말이다.   달항아리는 너무 커서 물레에서 한 번에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위아래의 몸통을 각각 만들어 이어 붙인다. 기계가 아닌 수작업으로 빚기에 완벽하지 못하고 반듯하지도 않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달항아리는 정형화된 조형미보다는 부정형의 달덩이 같은 항아리가 구워진다. 도자기는 너무 구워졌거나 덜 구워졌을 때의 기묘한 빛깔을 낸다. 그래서 같은 백자 달항아리도 乳白, 牙白, 純白 등등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화자는 단순 명료한 사랑보다는 둘 사이의 사랑은 단조롭고 일방적인 것이 아닌 다양한 색상으로 조각조각 붙여 만든 조각보, 상보 같은, 치맛자락, 바짓자락을 끌고 오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도자기도 구우면서 생기는 빙렬(氷裂)로 인해 더 가치 있듯이 사랑 또한 때론 아옹다옹, 싸우기도 하는 엷은 틈새 같은 식은태가 있어야 더욱 아름답지 않겠는가.   조르쥬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에 보면 “에로티즘, 그것은 죽음까지 인정하는 삶이다”라고 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세상의 스크린이다”라고도 했다. 1250도의 불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이고, 영웅이 아닌 민초의 삶일지라도 “그냥 깨지지 말고”,“살아만 있어라”이다. 바로 사랑의 위대함이고 경건함이다.   온몸으로 사랑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어떤 예술인, 문학인일지라도 결코 진정한 사랑 노래를 부를 수 없다. 멀쩡한 눈을 멀게 하고, 사막에서도 촉촉한 이슬을 맺게 하는, 그 알 수 없는 묘한 힘,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일단 사랑부터 하자’그 사랑에 에고이즘이 싹을 트면 둘 사이의 융복합은 현실적으로 멀어진다. 비록 불안하고 고통이 동반되더라고 사랑하자.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자.   화자는 불가마 속에 도자기를 굽기 위한 과정에서‘사랑’이라는 추상적 이미지를 떠 올리며 달항아리 굽듯 사랑의 달항아리를 희망하며 가마 속 이글거리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광기 어린 히틀러 마져도 에바 브라운에게는 순정으로 대해주었고, 하물며 베를렌느와 랭보, 그 둘의 사랑은 동성애를 나눴던 사이였다. 그뿐인가, 백석의 사랑 ‘자야(김영한)’는 그 짧은 동거 끝에 이별하고 평생을 잊지 못해 지금의 성북동에서 요정집을 운영하며 그를 그리워했다.(그 요정은 법정 스님에게 대가 없이 주었고 지금은‘길상사’로 변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그렇게 해서 잉태된 자야에 대한 사랑 이야기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 예술/창작
    • 부천의 문학향기
    2021-04-10
  • 태안 연가戀歌·4/박경순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안 연가戀歌·4/박경순  -신두리   신두리* 사막 너머에는 나만 아는 바다가 있다   떠나고 싶어도 차마 떠날 수 없는 바다가 아버지처럼 기다리고 있다.   매일 뜨거운 태양을 만나야 하는 당신은 아직도 낙타도 없이 떠날 채비만 한다   바람 불 적마다 용케도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읽은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만 그린다   바람의 땅, 그 어디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바다 그 바다, 그 바다 위에 또 다른 바다를 그린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 있는 해수욕장   시집 <그 바다에 가면>, 리토피아, 2019. 시 낭송가(부천 시소리 낭송회)   ‘신두리 해안 사구’ 다음 카페 ‘산사모2009’에서 가져옴   ------------------------------------------  태안반도의 신두리, 거기엔 해수욕장과 이어져 있는 ‘사구(砂丘)’가 있다. 조류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밀물 등에 의해 올라온 모래펄을 강한 계절풍의 바닷바람 작용으로 인해 형성된 모래언덕(砂丘)은 빙하기 이후 1만 5천 년 전부터 형성되어 왔다고 한다. 대략 3Km 정도 해수욕장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 어린 딸을 데리고 당일치기로 지도를 보면서 찾아갔던 곳이기도 하다. (키가 작은 솔밭에서 아침 라면을 끓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펜션, 위락시설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펄럭이는 ‘개발 반대’,‘개발 찬성’의 두 극단의 깃발만이 나를 맞이했고 저 먼 곳에서 포크레인의 움직임도 보였다. 무엇보다 몸집이 큰 황소와 여러 마리의 소들이 매여져 있는데 박수근 화백의 황소와는 전혀 달리 한가로움 그 자체였다. 지금은 천연기념물,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뒤로 2번 답사하러 갔었다.   화자는 바로 신두리 해변, 해조음이 자갈자갈 속삭이고, 세월 씻는 파도 소리 들으며 ‘砂丘’를 소재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만 오천 년 알알의 층층인‘신두리 사막’, 그 너머에는 ‘나만 아는 바다가 있다’고 한다. 이곳은 실제로 생각보다 높은 야일의 모래언덕이 있다. 사구가 형성되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세월의 퇴적층이 쌓여 있다. ―어머니의 삶 또한 두꺼운 퇴적층으로 이뤄져 있다.― 얼마나 잦은 파도의 울부짖음과 거센 바람의 휘날림이 있었겠는가, 또 거기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다양한 식물, 생물들의 진화과정, 이들은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지금은 한 편은 개발되고 한 편은 보존하고 있는 듯하다)).   화자의‘사막 너머에는/나만 아는 바다가 있다’에 알 수 있듯이 境生象外, 즉 눈앞의 광경인 사막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그 무엇, 화자만이 알 수 있는 ‘바다’를 보고 있다. 바다와 평생을 함께한 화자(해양경찰 64년 역사상 첫 여성 총경이다)는 사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를 것이다. 바다는 어머니와 같다고 한다. 모든 걸 다 안고, 받아주고, 품어주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한 바다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파도를 붙잡고 울고, 해안 바위를 껴안기도 하면서 모래에 스며들어 포근히 안기기도 한다. 긴 세월을 함께 한 바다가 지겹고, 싫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바다 너머의 무엇을 그리고 상상하고 있다. 시는 자연을 보는 돋보기이다. 그렇다. 비록 현재 딛고 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을지라도‘떠나고 싶어도/차마 떠날 수 없는 바다’ 그래서‘戀歌’를 부르고 있다.   사실 우린 사회적 제도와 주변의 환경적 요소의 틀에 맞춰 살아간다. 그게 페르소나다. 그렇게 정해진 틀을 깨부수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연극무대에서 탈출하여 가면을 벗어던지고 싶다던가, 때론 사막을 정처 없이 떠돌고 싶은 자유함을 느끼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비록 다시 페르소나 속으로 되돌아올지라도. 그래서 상상하고 꿈을 꾸는 것이다.   화자 또한 바다와 같은 ‘꽉 찬 충만함의 텅 빈 공허’의 여성(어머니)이기에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고, 기대고픈‘아버지’의 바다를 기다린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화자가 갈망하는 저 너머‘상상 세계’의 상징이다. ‘나만 아는 바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만 그리는 바다’라고 읊조린 것에서 알 수 있다. 화자는‘나만 아는 바다, 아버지 같은 바다’의 상징을 통해서 또 다른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곳이 바로 가면을 훌훌 벗어 던지고 떠나고 싶은 곳, 바로 동양에서의 무릉도원, 서양에서의 이니스프리, 유토피아가 아닐까 한다.   마지막 연의 ‘그 바다, 그 바다 위에/또 다른 바다를 그린다’ 바다마저도 바다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바다, ‘바다 너머의 세계’, 실제로는 없으면서 있는 상징의 세계인 유토피아를 화자는 찾고 있다. 근본적으로 예술가와 시인들에게는 고독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그 고독의 시간은 자신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면 시인은 홀로 깊이 열리는 시로 살고 싶기에 시를 쓸 수밖에 없다. 시인은 창조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고독이라는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면 창조적인 영혼은 고독 속에서 살아나기 때문이다. 시인은 천성적으로 독신이면 좋지 않을까 한다.   미셀 푸코는 우리가 살수 있는 공간을 호모토피아(homotopia)라고 했다. 즉 사회적 규범과 제도에 의한 공간, 화자는 이러한 공간을 넘어서 누구나 추구하는 이상적인 유토피아(utopia)의 공간을 상상하고 그리고 있다. 비록 상상적이고 저 너머 미완의 세계일지라도. 이러한 현실의 공간인 호모토피아와 이상세계의 유토피아, 이 둘이 섞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자기만의 공간인‘헤테로토피아(heterotpia)’이다.  어찌 보면 현실적으로 다가온 무릉도원, 이니스피리, 유토피아적인 장소들, 오직 자기만이 특별한 경험을 간직한 공간, 장소라 할 수 있다. 화자는 실제처럼 현실화되는 장소, 푸코의 말처럼 ‘깊숙한 정원’,‘다락방 한가운데’ 같은 곳, 시인 자신만의 특별한 공간인 ‘헤테로토피아’,‘다시 돌아올지 모르는/바다’일지라도‘그 바다, 그 바다 위에/또 다른 바다를 그린다’이렇듯 시인은 자기만의 공간, ‘헤테로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작년 4월에 서울 대림미술관에서‘?찌’라는 회사가 전시회를 했는데 그 제목이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No Space, Just a Place, Heterotopia>였다.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거기 흙과 가지로 작은 오두막을 지으려네. 아홉 이랑 콩밭을 가꾸고, 꿀벌 치게 벌통을 놓고 벌들이 붕붕거리는 숲속 작은 빈터에서 나 홀로 살려 하네.”  - 下略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
    • 예술/창작
    • 부천의 문학향기
    2021-03-27
  • 물의 잠을 위한 아르페지오/임은주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물의 잠을 위한 아르페지오/임은주 -세월호 100일 후, 백건우의 추모 독주회가 있었다   이것은 구명조끼의 아랫단을 묶고 나란히 피아노 속으로 걸어간 메아리들에 대한 이야기   제1의 조명탄이 반복적인 아르페지오로 이름을 부른다 제2의 조명탄이 트릴로 따라간다 제3의 조명탄이 물 위에 손을 얹고 밤바다를 어루만진다 제4의 조명탄이 찾지 못한 이름에게 도 와 시 사이 솔과 파 사이의 검은 눈물을 닦아낸다 제…… 10의 조명탄이 누구도 함부로 잊혀서는 안 된다고 물의 지문을 센다 아가야 내 아가 ……. 제50의 조명탄이 물비늘 빛나는 보름사리의 먼 바다에까지 이름을 찾는다 ……. 제100의 조명탄이 흰 갈기로 일렁인다……. 제200의 조명탄이 닿을 수 없는 잠으로 곤두박인다……. 제300번째 조명탄 아래 깊게 눌린 검은 건반이 마지막 이름을 부른다 어둠 속에서 뒤척이며 한껏 멀어진 양손을 건반 한가운데로 모은다……. 제304번째의 조명탄이 오른손으로 사랑의 죽음*을 연주하고 왼손으로는 풍랑을 쓰다듬는다   영혼들의 격랑이 창백해진 물보라로 일어선다 수평선 너머 선율이 날개를 펼치고 몰려온다 물의 건반과 한 몸을 이룬다. 건반 위로 오른 울음들이 물의 울타리를 무너뜨린다 제주 제7항구로 내달리는 유속이 빨라진다 산맥처럼 몰려든 터지지 않는 울음, 물의 흰 건반이 일제히 물 위로 치솟았다가 내려앉는다 해저 수만 마일 아래 갇힌 발목들을 인양중이다 다 못 읽힌 악보가 다치지 않도록 겉봉투를 뜯는 세심한 파문, 파문들 심해로부터 이끌려 나오는 빛의 날갯짓, 회오리치던 조류와 수평을 맞춘 피아노 선율의 밀물이 긴 잠의 귓전에 가 닿는다   상현달이 양의 뿔처럼 밤하늘에 걸린다   *바그너 곡을 리스트가 편곡한 곡       시집 <사라진 포도월>. 현대시. 2020   NEWSIS에서 가져옴-편집자 주  ------------------------------------------------------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 쪼이는 8월 중순 오후, 팽목항을 가족과 함께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깃발과 애도의 글들이 휘날리고 즐비했다. 평소 같으면 듣기 좋은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 소리가 갑자기 곡비의 슬픈 곡조 같았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은 아픈 상처 부위에 염장을 했었다.   건축가 노베르 그 슐츠는‘장소의 魂’이 있다고 했는데, 그 장소에 스며든 喜怒哀樂과 삶의 발자취, 역사가 켜켜이 쌓아져 만들어진 장소를 말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필자가 찾은 ’장소의 혼‘인 팽목항은 喜樂’은‘세월호’와 함께 심연으로 수장되고 오직‘怒哀’만이 찾는 이의 가슴에 새겨지고 있을 뿐이었다.   화자는 기억하기도 싫은 커다란 참사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를 소재로 시상을 펼치고 있다. 특히 바닷속 깊이 잠들었을, 그들을 찾기 위해 불 밝히는 조명탄을 음악적 이미저리로 끌어와 감각적인 전개를 하면서 백건우의 추모 독주회를 함께 상기시킨다.   ‘조명탄’은 아르페지오로 음을 펼치고 이름을 부르면서, 트릴의 물결로 이어간다. 밤바다를 어루만지고, 조명탄은 닿을 수 없는 잠으로 곤두박질치고, 드디어 ‘조명탄이 찾지 못한 이름에게 도 와 시 사이 솔과 파 사이의 검은 눈물을 닦아 낸다’ 피아노 건반은 ‘파와 솔’, 시와 도‘사이는 ’검은건반‘이다. - 여기서‘검은건반’은 죽음을 의미한 또 하나의 장치다 -. 그러면서 지문을 세어보며‘아가야 내 아가…….’라고 오직 부모만이 성인의 자식에게 호칭할 수 있는 부르짖음으로 이름을 부르고 부르며 찾고 찾는다. 이 얼마나 침통하고 애절한 시상의 전개인가.   그리고 마지막 304번 째의 조명탄은 사랑의 죽음을 연주하고 풍랑을 어루만짐에서 보듯이 화자는 청각적 상상력과 촉각적 이미지의 씨 날줄로 직조한 한 필의 진혼곡을 헌정하고 있다.   “갑작스런 죽음은 혼을 동요시키고 적의나 원한을 품게 한다. 생명이 갑자기 끊어졌을 때 죽은 자의 혼은 자기가 소속되어 있던 공동체 근처에서 일상생활로 남겨진 일들을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고 상상한다.”  -엘리아데의 글 부분-   그렇다. ‘갑작스런 죽음’, 아이(자식)를 잃은 슬픔과 고통, 과연 치유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못하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면화시켜 끌어안고 그냥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차라리 자학하며 살아가는 수준일 것이다. 슬픔, 아픔, 고통의 크기와 넓이를 낮추고 줄이며 오직 버틸 뿐, 누구의 哀悼(애도)도 동정도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일 뿐이라고 여기며 …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는데 봇물 터지듯 치솟으면 큰 사고 나고, 언어 또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듯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고 거친 언어는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다. 터지고 넘치는 물과 언어의 함수 관계. 낮고 비좁은 천막에서‘물의 잠을 위해 아르페지오’를 뜯는 유족들 곁에서 치킨과 피자를 시켜 먹고 누군가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을 향해 징그럽게 (?)쳐 먹는다고 했잖은가.‘물과 언어’ 물속은 생명수가 넘쳐야 하고 사람의 말속에는 숨겨진 신비와 비밀이 있어야 하는데 불순물과 광기 서린 언어가 웬 말인가. 세월호 사고로 고통받는 이들을 규탄하고 비난하는 사회, 그렇게 만연되어 있는 선과 악의 顚倒(전도)를 우린 이미 目睹(목도) 했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생각보다 인간은 잔인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개인적일 때 보다 집단적일 때 잔인성은 더한 것 같다. 중세시기 이단자로 내몰린‘마녀재판’이 성행하면서 화형 시키는 무렵의 수사형(水死刑)이 떠올려진다. 물에 던져진 여자가 떠오르면 마녀로서 죽임을 당한 것이고, 가라앉아서 떠오르지 않으면 그냥 끝이다. 시인이 읊조리고 있는 시상을 펼쳐보며 수사형(水死刑)이 떠 올려지는 것은 비단 필자일 뿐일까.   화자는 마지막 행에서‘영양괘각羚羊掛角’을 떠올리는 게 하는 한 행으로 마무리를 한다. 송나라 엄우의 시론서인 <滄浪詩話>에 나온 얘기다. 영양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고 나뭇가지에 뿔을 걸어 발자국 흔적을 없앴듯이 탄생의 발자국인‘죽은 자의 이름’을 상현달의 뿔에 걸어 버렸으니 흔적이 사라질 수밖에. 이렇듯 화자는 죽은 혼들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상현달 바라보고 있다. 밤하늘에 걸린 그 상현달을.     https://www.youtube.com/watch?v=2jMdRxeZEkQ (백건우가 당시 연주했던 곡 중 하나인 ‘비창’)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 예술/창작
    • 부천의 문학향기
    2021-03-22
  •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 민들레 홀씨로 피어나다”
     부천시는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개발하고 상표출원을 완료했다.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영문명칭 Bucheon Diaspora Literary Award, 이하 문학상)은 국제 문학상을 말한다. 이는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 네트워크와 함께 문학을 통해 세계의 연대와 환대, 협력의 정신을 고양하고자 제정한 것이다. 현재 2021년 첫 수상작 선정과 제1회 시상식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부천시에서 이번에 개발한 문학상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바람을 따라 전 세계로 퍼져 낯선 땅에서 다시 꽃을 피우고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 홀씨’를 모티브로 한다.   흩날리는 홀씨는 디아스포라의 확장성과 창의성,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또한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 다른 문화의 교류를 촉진하고 분열된 세계를 잇고자하는 디아스포라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부천시는 이를 친숙하게 전달하고 응용이 가능하도록 문학상 명칭(워드마크) 대신 이미지(심볼마크) 중심으로 로고를 디자인하였다. 시는 2월부터 문학상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바탕으로 상패 디자인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편‘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은 한국어나 영어로 출판된 현존 작가의 디아스포라 주제 장편소설이 심사대상이다. 총 상금은 6,000만원 (작가 5,000만원, 번역가 1,000만원)으로, 매년 1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고 시상할 예정이다.   아울러 제1회 문학상의 경우 현재 작품 접수와 예비심사(추천위원회)를 거쳐 올 1월부터 본심사(심사위원회)에 돌입했다. 심사위원회 심사가 완료되면 문학상 운영위원회 승인을 거쳐 7월 중에 첫 번째 수상작을 결정한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심사위원 명단과 최종후보작(shortlist, 최대 12개 작품)은 수상작 발표 시 함께 공개하며, 상패 디자인 역시 함께 발표한다. 시상식은 10월 중 개최할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부천문학창의도시 블로그(https://blog.naver.com/bucheon_unesco)에서 확인하면 된다.  
    • 예술/창작
    • 영화/만화
    2021-02-03
  • 책 읽는 시민, 2021년 ‘부천의 책’ 선정
    부천시는 시민과 함께 ‘2021년 부천의 책’을 선정했다. 2021년 부천의 책으로 선정된 도서는 ▲일반분야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미예, 팩토리나인)’, ▲아동분야 ‘담을 넘은 아이(김정민, 비룡소)’, ▲만화분야 ‘연의 편지(조현아, 손봄북스)’ 다.          도서선정위원회는 10월부터 시민 공모와 독서 관련 기관을 통해 추천받은 총 528종 800권의 도서 가운데 일반, 아동, 만화 분야별 5권의 후보도서를 선정했다. 이후 53개소 투표판과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 선호도 조사를 실시해 분야별 후보도서 2권을 추렸다. 지난 19일 시민선정단과 도서선정위원이 참여한 가운데 온라인으로 비대면 투표를 실시하여 최종 ‘2021 부천의 책’3권을 선정했다.   ‘2021 부천의 책’ 도서선정위원회 고경숙 위원장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어려운 시기에 희망 쪽을 바라보면서 세대 간 주제를 놓고 토론할 수 있는 세대를 관통한 책”이라며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꿈은 있어도 현실의 상황이 많이 비껴간’ 사람들이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어떤 꿈을 살 것인지 토론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독서 내내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아동분야 시민선정단 주어진 어린이는 “<담을 넘은 아이>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며 “내 안에 오랜 시간 있었던 담을 넘어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하고, 아기를 살리기 위해 마음을 합쳤던 효진이와 선비, 푸실이처럼 모든 사람이 마음을 모아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준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도서선정 위원 김종옥 위원은 “만화 분야 <연의 편지>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에 대해, 폭력성의 과도한 노출보다는 폭력의 현장에 제3자로 존재하는 무수한 우리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라며 “학교폭력을 둘러싼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통해 ‘선한 영향력’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냈으며 정감 가는 그림체와 아름다운 색감으로 만화적 완성도를 높인 따뜻한 작품”이라고 추천 사유를 설명했다.   시는 2021년 1월 중 ‘2021 부천의 책’을 누구나 읽어볼 수 있도록 부천시립도서관, 작은도서관, 학교 등에 비치할 계획이다.   부천의 책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2월부터 부천의 책 선포식과 작가와의 만남 북 콘서트를 시작으로 독서 릴레이, 작가초청 강연회, 찾아가는 독서 토론회, 청소년 독서 캠프까지 약 8개월간 범시민 독서 운동을 펼쳐 책 읽는 문화도시 부천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자세한 내용은 부천시립도서관 홈페이지(www.bc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예술/창작
    • 부천의 문학향기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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