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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주 칼럼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에 대한 단상"
부천시가 주최하여 시행하는 디아스포라 문학상에 대한 설왕설래가 작금에 이르러 더욱 많아짐을 본다. 혹자는 지금까지 수상한 이들이 외국 작가들이다 보니 쓸데없는 혈세 낭비 잔치라 하고, 또 다른 혹자는 굳이 수상작의 주제를 디아스포라로 한정하여 스스로 문학의 범위를 좁힐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한다. 극단적으로는 5천만 원이라는 상금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부천 문학인을 들쑤셔 폐지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정된 국제문학상은 2011년부터 수상자를 배출한 박경리문학상이다. 이 상은 소설가 박경리의 작가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토지문화재단에서 주관한다. 국내 작가가 2회, 외국 작가가 11회 수상했다. 이러한 국제문학상이 없었다면 2019년 원주가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상은 탁월한 문학적인 업적을 성취하여 높은 평가와 함께 많은 영향력을 지닌 작가에게 수여된다. 즉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상금은 1억 5천만 원. 디아스포라는 특정 민족이 자의든 타의든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 정착해 형성된 집단을 의미한다.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대표적 사례인데 이는 좁은 의미의 디아스포라이다. 부천시가 디아스포라 문학상을 제정할 때의 의미는 광의(廣義)였다. 부천시 인구 구성을 생각할 때에 토착민의 비율은 극소수에 그칠 것이다. 대부분이 이주민이라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부천 시민 대다수가 디아스포라라는 얘기다. 한발 더 나아가 도시화가 집중된 우리 국민 다수도 디아스포라이며 세계 여러 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부천시 디아스포라 문학상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생존을 위해, 때로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문구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 밑에는 ‘우리는 모두 디아스포라’라고 되어 있다.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 탄생의 단초가 여기에 있다.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문학상은 세계에서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이 유일하다고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존재의 의미가 분명하다고 본다. 장편소설에 주는 국제문학상 후발주자로서 상금 5천만 원도 결코 많은 편이 아니다. 국내 문학상도 5천만 원이 넘는 문학상이 여러 개다.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하였기에 그나마 이 정도 상금만으로 전 세계 소설가들에게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이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 겨우 4회를 치러놓고 폐지를 주장한다? 그래서 문학창의도시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게 된다면 그 부끄러움은 누구 몫이 될 것인가.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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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발간과 출판기념회 소식 - '내 마음의 실루엣'을 출간한 김명숙 시인의 녹슬지 않는 꿈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부천에는 많은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15일 시집 "내 마음의 실루엣" 출판기념회를 겸한 문학강연을 연 김명숙 시인의 녹슬지 않는 꿈을 소개합니다. 김명숙 시인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제1회 한국아동문학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2008년 국립국악원 생활음악 「화전놀이」가 공모 당선되었고, 2011년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천재교육)에 「새싹」이 등재되었다. 가곡, 동요 작사가이기도 하며 작품으론 가곡 「달에 잠들다」 외 45곡, 동요 「새싹」 외 80곡이 있다.시집으론『그 여자의 바다』와『내 마음의 실루엣』이 있다. 김명숙 시인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제1회(사)한국아동문학회 신인문학상 수상(동시 등단)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 "새싹" 저자 ▲작시: 가곡 ‘달에 잠들다’ 외 47곡/ 동요 ‘새싹“ 외 80곡과 제54회, 57회 4.19혁명 기념식 행사곡 "그 날", 제60회 현충일 추념식 추모곡 "영웅의 노래" ▲수상:부천예술상, 한국동요음악대상, 도전한국인대상(문학부분), 문예마을 문학상, 시흥문학상 우수상, 제5회 오늘의 작가상, 방송대문학상 수상 외 다수 ▲부천문인협회,(사)한국아동문학회, 고흥작가회 등 다수의 회에서 활동. ▲현)부천시노인복지관 작문강사, 방과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명숙 시인 시집 발간과 출판기념회 소식 2023년 10월 15일 오후 3시~5시김명숙 시인의「내 마음의 실루엣」출판기념회 및 문학 강연이 경기도 부천 교보문고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내빈으로 참여한 박노진 교보문고 지점장, 국민 가곡으로 잘 알려져 있는 “얼굴” 작곡가인 신귀복 작곡가, 최숙미 부천문인협회 회장, 조영훈 부천시 원미노인복지관 관장이 덕담과 축하의 말을 전했다. 북 사인회 출판기념회 1부는 문학 강연 및 북 사인회, 2부는 김명숙 시인의 시로 진행하는 시낭송과 시극, 시인이 작사한 가곡, 동요 공연이 있었다. 작가의 말을 겸한 문학강연 <꿈은 녹슬지 않는다.>에서 “어릴 적 꿈이 하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노래하는 가수(성악가), 그리고 잘했던 것은 글쓰기였고 노래 부르기였다.” 고 밝혔다. 역경과 실패를 딛고 일어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노래를 좋아해 성악가가 되고자 했던 꿈은 작사가가 되어 가곡 47곡, 동요 81곡을 지었습니다. 그리하여 노래를 성악가처럼 주업으로 무대에서 부르진 않아도 작사를 하여 음반에 수록되고 제 이름이 기재된 여러 곡이 방송과 무대에서 불러지고 있고 교과서에도 실리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 또한 복지관, 학교 등에서 강사를 하고 있어 흡족 친 않지만 가르친다는 점에서 나름 이뤄졌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시 '고래의 꿈'은 수능 학습 저작물과 강남 인강에 실렸습니다. 그리고 두 권의 시집을 펴내 오늘 여러분 앞에서 출판기념회 및 문학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제 꿈은 녹슬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신귀복 작곡가 꿈은 찾고 두드리는 자에겐 반드시 기회가 온다. 그 기회가 나를 찾아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며,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고, 꿈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보시기 바란다는 인사 후 북 사인회가 열렸다. 2부 공연엔 시낭송가 민준기, 신영기, 문회숙, 이호봉이 출연해 김명숙 시인의 시(詩) <아리랑>,<밤의 눈>,<가지를 익히며>,<혼자가 아닌 여럿은>을 낭송하였고, 복사골 시낭송 예술단 이현주· 김성숙· 이희· 정나래 시낭송가들이 김명숙 시인의 시 <억새>, <어미>, <엄마바지>, <목욕재계>, <누름돌>을 각각 낭송하고 <고흥 유자차를 마시며>를 시극으로 꾸며 시 퍼포먼스를 선물했다. 신귀복 작곡가의 곡으로 김명숙 시인이 작사한 가곡 “산길에서, 그대 그리워, 어느 날 오후”와 동요 3곡이 있는데 출판기념회에선 “그대 그리워”와 “어느 날 오후”가 각각 연주되었고 소프라노 유미자 성악가의 <그대 그리워>와 <달에 잠들다(이재석 작곡)>, 베이스 이용찬 성악가의 <어느 날 오후>와 <비와 나그네(조원경 작곡)> 열창은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았다. 단체사진 김명숙 시인이 작시한 동요 4곡이 연주되었다. 김종명 작곡가가 작곡한 <새싹>은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린 곡으로 부천상일초 3학년 최영연 학생이, 전준선 작곡의 <빗방울 여행>은 부천상일초 3학년 이지민 학생이, 오세균 작곡의 <통통볼>은 인천청호초 2학년 정다원 학생이, 김춘남 작곡의 <허수아비와 고추 잠자리>는 이지민· 최영연· 정다원 학생의 중창으로 합창해 관객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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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바다는 노을로 말한다 / 황주현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보령 바다는 노을로 말한다 / 황주현 처음 내게, 보령 바다는 말이 없었다. 그 먼 길을 달려와 마주한 보령 바다는 한 자락의 푸른 옷깃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잔잔한 파도가 섬 한 채를 풀었다가 조였다가 그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수평선은 한 줄의 단호한 문장으로 길게 누워 있을 뿐이었다 읽어 낼 수 없는 바다의 안부 말수 적은 아버지 같았다 어둑한 저녁의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와 구석진 마당가에 빈 지게로 우두커니 서서 발 디딜 곳 없는 어둠을 부려 놓곤 했었다 어스름한 저녁의 수평선은 고단한 생의 시작과 끝을 단단하게 결박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무수히 많은 할 말들을 알아챈 건 노을이 물든 서해 바다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아버지의 삶도 저토록 붉고 찬란하게 타오르고 싶었을까. 다시 잿빛으로 타다 남은 검붉은 밑불로 남아 세상의 바닥을 단 한 번만이라도 따뜻하게 데우고 싶었을까 아버지의 핏빛 노을은 하늘로 번지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 40년 만에 마주한 중년의 아들에게 불타오르는 노을의 마지막 문장을 건네주고 싶었던 것이다. 해후의 마중물 같은 검붉은 노을의 심장은 뜨거웠다 온몸을 휘감고 도는 바람의 잔등은 차가웠다 거칠고도 짠 아버지의 비릿한 냄새는 노을과 함께 그렇게 바닷속으로 잠잠히 젖어 들어 갔다 보령 바다는 노을로 말한다 한순간 뜨겁게 불살랐으나 어느 순간 차갑게 스러져 간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 대신 읽어주는 한 권의 노을, 보령 바다 황주현 시인, 시낭송가. ----------------------- 시인은 쌀 한 톨에서 나뭇잎 하나, 바람 한 줄기에서 시를 따고 집어 들 듯, 시적 화자는 말 없던 보령 바다가“잔잔한 파도가 섬 한 채를 들었다 조였다가”라고 한다. 그러한 바다에 귀를 기울이다가 “노을이 물든 서해 바다의 막다른 골목이었다”에서 찬란하고 붉게 타오르는 아버지의 삶을 떠올린다. 이 순간 시인의 머릿속의 잠든 초인종을 눌렀던 것은 바로 ‘노을’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마지막 연 첫 행 “보령 바다는 노을로 말한다”와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 대신 읽어주는/한 권의 노을, 보령 바다”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화자는 노을이라는 심상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한 권의 노을’로 이미지화한다. 그 한 권의 노을이라는 책 속에 아버지의 삶에 대한 추억, 그리움, 기억 등이 페이지마다 구구절절이 노을빛의 붉은 해서체로 때로는 초서체로 적혀 있었을 것이다. 그 보령 바다의 노을, 그 노을을 차마 어찌 한 잔 마시고 싶지 않았겠는가? ‘노을’이라는 실존적 현상에서 아버지에 대한 정체성과 내면성을 들어내면서 “40년 만에 마주한 중년의 아들에게/불타오르는 노을의 마지막 문장을 건네주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시상을 펼치고 있다. 표층적 심상인 보령의 앞바다에서 심층적 이미지인 노을을 형상화해 아버지를 그리는 것은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보령 앞바다보다 더 넓고 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인간의 실존적인 삶을 관통하지 않은 문학과 예술은 있을 수 없다. 노을빛 한 줌 한 알을 가슴으로 느끼며 푸른 옷깃의 바다와 노을빛 바다의 대칭적 표현으로 아버지의 삶을 읽어내는 시인의 시혼에 두 손을 잡는다. 그 어떤 문학, 예술작품에서 커다란 울림을 만난다는 것은 속 깊은 가슴 인연이다. 감동을 주는 작품도 때론, 스쳐 지나간 바람에 묻힌 향기처럼 날아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긴 여운으로 영혼에 스미고 마음의 살갗에 무늬로 박히는 작품이 있다. 「보령 바다는 노을로 말한다」의 시가 그러하다. 그렇다. 햇귀를 맞이하며 해가 떠오르는 아침의 수평선과 벌겋게 물들며 해를 집어넣는 수평선은 시작과 끝의 연속이다. 이러한 수평선에 반해 우리 아버지들의 삶은 시작의 끝에도 끝의 끝에도 오직 자식만 있을 것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식들에게 모든 걸 다 내주고 나면, 아버지는 저토록 서녘의 형형한 노을빛처럼 빛나는 것일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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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김석심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삶이란/김석심 앞만 보며 달려왔던 인생이었지 건강과 얽힌 실타래 푸는 동안 서산에 노을은 짙어만 갔네 어느덧 남편은 한줄기 구름과 바람으로 왔다가 떠나가고 아이들은 자라 제 갈 길 찾았으니 허전한 마음에 뒤돌아보니 출발점은 저 멀리서 몸을 숨기고 종점이 가까워질 때 유일한 내 친구는 문학의 길이라네! 알량하게 쓰는 글이지만 글 한 편이 나의 애인이고 자식이고 친구일세! 유통기한이 없는 글을 쓰고 언제까지 정신력 잃지 않은 삶으로 뜨락에서 피어나는 수채화 같았으면. 시·수필집 『인생의 숲을 통해서』, 해드림출판사, 2021 ---------------------------------------------------------- 최근엔 노년의 삶에 대한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에이지즘(ageism)’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즉 노인들을 경원시하고 고립시키면서 차별화하는 의미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러나 건강한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것 못지않게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삶이란> 이라는 시제에서 이미 삶의 연륜이 두터움을 느낄 수 있다. 1연에서의 “앞만 보며 달려왔던 인생이었지//건강과 얽힌 실타래를 푸는 동안”에서 그 어디에도 한눈팔지 않고 오직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어느새 “서산에 노을은 짙어만 갔네”라고 한다. 이제야 뒤돌아보니 서녘에 지는 붉은 노을이 보인 것이다. 그 사이 평생지기인 남편은 “바람으로 왔다가 떠나가고”에서 보듯 남편은 이미 이승을 떠나 훗승에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만나면 헤어지고, 떠나면 반드시 만난다고 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다 화자는 삶의 뒤안길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다. 3연의 “아이들은 자라 제 갈 길을 찾았으니” , 자식들은 장성해서 이미 부모 곁을 떠나고 없다, 뒤돌아보니 마음이 허전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노년의 삶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고고의 울음을 터뜨렸던 인생의 시작점은 점점 멀어져가고 끝점이 서서히 다가옴을 알 수 있다(“출발점은 저 멀리서 몸을 숨기고//종점은 가까워질 때”) 예로부터 ‘품 안의 자식’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자식과 떨어진 노년의 삶이 결코, 외로워서는 안 되고 또한, 외롭지도 않다. 시인 존던은 “누구도 외딴섬일 수는 없다 No one is an island”라고 했다. 노년의 삶은 세월로 층층이 쌓아 올린 하나의 높은 탑이다. 그 탑에 켜켜이 쌓인 인생의 풍부한 경험과 깊고 높은 역량으로 외딴섬도 아니고 무인도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섬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살아 숨 쉬는 섬이 되기 위해 화자는 “유일한 내 친구는 문학의 길이라네!” 하면서 느낌표까지 달아놓았다. 이렇듯 ‘문학’을 의인화해서 서녘을 물들이는 노을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겨‘애인’,‘자식’, ‘친구’로 삼아 白髮의 길을 걸어간다니 얼마나 멋진 황혼 녘 삶의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 아닌가. 그러면서 “유통기한이 없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당연히 문학은 무통기한이다. “언제까지 정신력을 잃지 않은”에서 보듯 나이 듦에서 오는 건강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하면서 그래도 “삶의 뜨락에서 피어나는//수채와 같았으면” 하면서 <삶이란>의 시를 아퀴짓고 있다. 분명 화자가 희망하는 삶의 뜨락에는 수채화가 유통기한 없이 꾸준히 피어날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나이 듦에서 오는 여러 상황을 이미지화해서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노인들을 경제적 시선의 잣대로 한계치를 바라보는 외눈박이 시선은 던져버려야 한다. 그들 삶의 세월은 수없이 많은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에 섰고, 겪었던 노하우가 있다. 또한, 체험적 요소에서 우러나는 축적된 층층 탑 같은 살아있는 풍부한 연륜 등, 그것은 소중한 자산이다. 쓸데없이 낭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노인 자신도 변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고정불변의 사고방식과 변치 않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장자에서 보듯 스스로 자신의 상喪을 치뤄야 한다(吾喪我) 이분법적인 의식을 버리려면 스스로 의식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의식의 변화 없는 배타적 고정관념은 절대로 변화 없는 그저 평범한 노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옹고집을 버려야 한다. 아래의 시 한 수로 글을 맺고자 한다. 生也一片 浮雲起(생야일편 부운기) 死也一片 浮雲滅(사야일편 부운멸) 浮雲自體 本無實(부운자체 본무실) 生死去來 亦如然(생사거래 역여연)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다. 뜬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무상함이니 삶과 죽음의 오고 감이 역시 이와 같도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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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세에 피어난 여드름/조인형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73세에 피어난 여드름/조인형 낯선 이국땅 이방인 길 찾듯이 심쿵하며 더듬는 볼살 위 여드름 부대가 떼창 하듯 시끄러워 가만히 들어보니 청춘을 돌려 달라 아우성치는 듯하다 열여덟에 피어난 여드름 자국 위에 황혼에 돋아난 철없는 너를 보며 만추의 울타리에 착각한 덩굴장미 피었다가 서리에 얼어 죽은 최후 생각나 은근슬쩍 겁이 났지만, 그래도 나는 청춘이란 착각에 여드름 짜면서 즐기고 있구 인생이란 덧없이 흘러가는 강줄기 위 삶이란 배를 띄워 노 저으며 73세 황혼 녘 남모르게 여드름 만지며 미소 감추네 시집 『73세의 여드름』, 도서출판 글벗, 2022. 시집을 구입할 때 특히 제목이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물론 시집 내용을 보거나 미리 준비한 시집을 사지만, 제목이 눈에 띄면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요즘은 출판되자마자 대부분의 책들이 사장된다. 온 정성 쏟아 각고의 노력 끝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인데 그러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집의 제목은 시집의 맛을 느끼게 하는 키워드이다. 그래서 저자의 고심이 깊숙이 배어 있다. 왜냐면, 요즘처럼 독서 하지 않는 현실 속에 독특하고 눈에 띄는 인상적인 제목이어야만 독자들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집의 내용이나 제목에 함축된 특별한 그 무엇(something special)에 관심을 둔다. ‘73세에 피어난 여드름’은 시집 제목의『73세의 여드름』의 표제시다. ‘여드름’은 청춘의 심볼이다. 그 청춘의 상징인 ‘여드름’을 의인화했다. 그래서 1연의“여드름 부대가 떼창 하듯”, 2연의 “청춘을 돌려 달라//아우성치는 듯하다”처럼 73세, 늘그막의 얼굴에서 여드름이 떼창하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처럼 화자는 여드름을 의인화시킨 다음 거기에 청각적 이미지로‘여드름’을 형상화했다. “열여덟에 피어난//여드름 자국 위에//황혼에 돋아난 철없는 너를 보며”라고 한다. 어쩜 화자는 얼굴의 여드름이 생긴 것을 보고‘회춘(回春)’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비록 고희(古稀)의 나이지만, 신체적인 연륜을 떠나 젊음의 표상인 여드름에서 그 옛날의 젊음을 상기하며 정신적인 이팔청춘으로 승화시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때론, 나이가 들면 특별할 것 없는 것에서도 애착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이 무상한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이 믿을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만추의 울타리에//착각한 덩굴장미//피었다가 서리에 //얼어 죽은 최후 생각나//은근슬쩍 겁이 났지만” 이렇듯 늦가을 울타리에서 피었다가 때가 되어 사라지는 덩굴장미를 떠올리면서 “그래도 나는 청춘이란 착각에//여드름 짜면서 즐기고 있구”라고 한다. 이렇듯 시인에게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고정관념과 자동화된 시선은 버려야 한다. 타성에 젖은 익숙한 질문이 아닌 보다 의미심장한 물음표를 가지고 경생상외(境生象外) 즉, 깊은 뜻이 형상 너머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 4연의 마지막 두 행을 보자“73세 황혼 녘 남모르게//여드름 만지며 미소 감추네”라고 한다. 화자와 비슷한 나이라면 어쩜 이 시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지 않을까. 덧없이 지나가는 게 인생살이다. 칠순의 황혼 녘, 술잔에 노을 한 잔 따라 마시고 싶은 시간이다. 늙어가는 것이 아닌, 아름답게 물들어야 한다. 늘그막의 여드름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층층이 쌓인 세월의 퇴적층에서도 꽃과 나무가 피고 자라듯, 김시습의 시구처럼 “老木開花心不老(노목개화심불로 : 늙은 나무에 꽃이 피니 그 마음 늙지 않았네)”처럼 얼굴의 여드름은 젊디젊은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라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리고 무료한 나날에 잠들지 말고 눈을 불끈 뜨고 참나를 찾으라는 죽비인 것이다. 시인은 밤낮 가림없이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왜냐면, 인간에게 주어진 자잘한 씨앗의 시간들은 바람에 실려 날아가기 때문이다. 삶이 힘들고 아플 때 우린 그것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고, 때로는 하소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한 편의 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행과 연(聯)갈이가 다소 변칙적인 시이지만, 칠순의 시 한 수 읊조리며 조조의 아들 조식의 시 한 수 시인에게 올리고 싶다. 인생은 하루를 더 살아도 아쉽고 하루를 덜 살아도 충분하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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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무는 세상/정현우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내가 머무는 세상/정현우 길을 걷다가 문득 돌아보니 누군가 따라 걷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여 발끝만을 바라보며 상념 가득한 모습이 참으로 나를 닮아 있습니다. 양지쪽 흰 눈은 파르라니 몸을 녹이고 애써 바라본 하늘은 삼킬 듯 나의 몸을 파랗게 물들여 갑니다 함께 걷던 그도 간데없고 나도 어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돌아가려니 어디로 얼마만큼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녹으면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곳 파란 하늘과 또 다른 내가 있는 내가 멈춰 서 있는 이곳이 내가 돌아갈 곳이고 또 나아갈 곳이라는 것을 못내 인정해야만 할듯싶습니다. 가슴 가득 들여 마셨던 맑은 공기는 가슴에서 입술로 입술에서 눈으로 전해져 맑고 따뜻한 세상을 바라볼 수도 말할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머무는 세상이 가장 행복한 세상일 테니까요. ▶시낭사(시를 낭송하는 사람들) 대표 ------------------------------ 시인은 사물에 대한 직관과 더불어 많은 의미를 시어로 응축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리적 사고보다는 단순하면서 순수한 사고를 해야 한다. 헤겔은 “서정시의 내용은 시인 그 자신이다”라고 했다. 그렇듯 시제의 <내가 머무는 세상>에서 펼쳐진 내용을 보면 작가는 시적 화자를 내세워 작가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1연에서의 ‘문득’이라는 시어를 보자. ‘문득’은 의도를 가지고 뒤돌아보는 게 아니라 우연히 뒤를 돌아본다는 의미이다. 도연명 <음주> 5에서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누나)“의 ‘유연히’와 같은 맥락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뒤돌아봄인 것이다. 그 순간 “상념 가득한 모습이 참으로/나를 닮아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화자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3연에서 “애써 바라본 하늘은 삼킬 듯/나의 몸을 파랗게 물들여 갑니다”는 하늘이 화자를 삼켜 채색시킨 게 아니라 화자 자신이 바라본 하늘에 스스로 물들어가는, 즉 “대나무를 그리려면 대나무 속으로 들어가야 하듯” 것과 같이 자연과의 합일하는 화자의 순수 자연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 돌부리를 만나면 디딤돌로 만들면서 “함께 걷던 그도 간데없고”에서 보듯 인생사 오고감에 초탈한.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의 순리를 이미 터득하고 있다. 이것은 평소 작가의 자연 순응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삶의 자세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4연의 “그런데도 돌아가려니/어디로 얼마만큼 가야 할지/모르겠습니다.”라고 한다. 푸르스트의 시 “아직도 잠들기 전에 갈 길이 조금 남아 있다.”는 시구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자, 돌아 가자꾸나/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는 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로”라는 <귀거래사> 또한 함께 생각게 한 시구이다. 이렇듯 시상의 전개가 자연과의 교감 속 인간의 본향인 자연의 자궁에 대해 동경을 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또 다른 자아가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생각하고 느낄 수 없이 내 안에 존재한다. 7연의 “파란 하늘과 또 다른 내가 있는”에서 보듯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멈춰 있는 곳이 돌아갈 곳이고, 나아갈 곳이고, 그곳을 “못내 인정해야만 할듯싶습니다”라면서 읊조리고 있다. 그곳이 이니스프리인지 유토피아인지, 무릉도원인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그러한 곳이기에 그렇다. 모든 사람의 내적 성찰의 밑바닥에는 자신을 응시하면서 뒤돌아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용서와 화해 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9연의“입술로 입술에서 눈으로 전해져”, “맑고 따뜻한 세상을 바라볼 수도/말할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와 같이 말입니다. 감동은 기교가 아니라 진실에서 나온다. 이 시를 보면 함축적이기보다는 조붓한 숲속을 거닐다 만난 깊은 산골의 옹달샘 물맛이요 광천수 물맛이다. 내 안의 나를 너무 밖으로 내보내지 말자. 그래서 내 안에서 껍데기로 존재하게 하지 말자.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떼어내어 그에게 또 다른 세계의 삶과 알찬 영혼을 주어 하나의 개체적 ‘나’로 키우자. 지금, 이 순간 내가 딛고 서 있는 이곳, 그리고 생각하는 이곳, 바로 이곳이 나의 세상이고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이다. 그렇기에 가장 행복한 세상이다. 여기서 종교적 성찰과 믿음, 철학과 사상의 책받침이 무슨 필요로 하겠는가. 이곳보다 더 나은 그곳은 없다. Now and Here, 지금 여기가 바로, 행복이 있는 곳이다. 카르페 디엠. 글/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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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칼럼 31,제20회 부천마라톤대회와 복사골마라톤클럽
- ‘2005년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부천마라톤대회’가 2025년 10월 26일 대회로 20회째를 맞는다, 매년 가을이면 부천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이기에 몇 회 대회인지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20번째 대회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어느새 20년의 세월이 흘렀단 말인가? 필자는 부천마라톤대회의 20회라는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는 ‘복사골마라톤클럽’이 만든 대회이다. 복사골마라톤클럽은 2000년 장거리달리기를 즐기는 10명의 마라토너들이 모여 결성한 클럽이었다. 복사골마라톤클럽를 결성한 10명의 마라토너는 달리기가 대중화되기 전부터 장거리달리기를 해온 마라토너로 뛰어난 달리기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복사골마라톤클럽을 만든 이후 각종 마라톤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어 전국적으로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마라톤에 대한 자신감은 복사골마라톤클럽의 정도영회장과 정범희사무국장이 주도하여 부천 인천의 인천대공원에서 활동하는 마라톤동호회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마라톤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친선마라톤대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2002년 2월 3일 열린 제1회 경인클럽친선마라톤대회이다. 제1회 경인클럽친선마라톤대회는 복사골마라톤클럽과 인천사랑마라톤클럽의 친목도모로 시작했고, 제2회 대회부터는 인천대공원에서 마라톤을 즐기는 클럽들의 참여로 확대되었다. 이렇듯 지역마라톤클럽의 작은 행사가 된 경인클럽친선마라톤대회는 주관하는 클럽을 바꾸어가면서 매년 겨울 2월이면 인천대공원에서 2007년까지 6번의 대회를 개최했다. 경인클럽친선마라톤대회의 자양분은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의 씨앗이 되었다. 2005년 11월 20일 제1회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 개최는 첫째 2000년대 초 각 지역마다 지역의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마라톤대회의 열기와 둘째 경인클럽친선마라톤대회를 개최한 복사골마라톤클럽의 경험과 셋째 복사골마라톤클럽의 꼭 부천에 마라톤대회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필자도 복사골마라톤클럽의 회원으로 경인클럽친선대회를 개최한 경험을 공유하였지만 부천시를 대표하는 정식 마라톤대회를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기에 복사골마라톤클럽의 장경문회장과 김윤찬사무국장이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를 만들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치열한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장경문회장은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리더십으로 회원들을 설득하고 대회개최를 목표로 작업을 하였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생기기까지 했다. 2005년은 복사골마라톤클럽 전체가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 개최를 위하여 똘똘 뭉쳐있던 한 해였다. 그런 노력과 열정의 결과로 만들어진 대회가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이고, 2025년 20회를 맞이하는 2025년부터 명칭이 변경된 부천마라톤대회이다. 동호인 클럽이 대회를 계속진행하기에는 벅찬 일이라서 제2회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부터는 부천시로 이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회째를 맞이하는 부천마라톤대회가 마라톤열풍의 한가운데서 부천시민의 건강을 지키고 부천시의 홍보대사가 되는 것을 보면 부천마라톤대회를 만든 복사골마라톤클럽의 마라톤대회를 만들기 위해 불태웠던 2005년의 뜨거운 열기가 2025년까지, 그리고 미래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복사골마라톤클럽은 부천복사골마라톤대회를 만든 것 이외에도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전국의 마라톤동호인들이 이어달리는 ‘통일염원국토종단이어달리기’에 참여하였고, ‘마음으로 달리는 복사골이야기’라는 클럽의 책을 발간하였으며, 지역의 고등학교학생(덕산고)들과 함께 연습하여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251004이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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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칼럼 31,제20회 부천마라톤대회와 복사골마라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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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마라톤. 이재학 칼럼 30
- 1980년대의 일이다. 서울의 이태원, 한남동, 남산순환도로에 가면 오전이든 오후든 상관없이 간단한 운동복차림에 혹은 상체를 벗고 땀을 흘리며 달리기를 하는 외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외국인들이 훤한 대낮에 달리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참 팔자 좋은 놈들이네’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다. 버스에 동승하고 있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저놈들이 힘이 남아도나 밥 먹고 왜 뛰어 배 꺼지게’ 하는 식으로 한마디씩 하곤 했다. 그 당시에는 외국인들이 달리는 모습이 신기하고 낯설게만 보였다. IMF를 거치고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1만 불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선수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장거리달리기인 마라톤을 하는 일반국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1999년 마라톤을 하자는 후배의 말을 들었을 때 ‘미쳤어’라고 했다. 마라톤은 아주 특별한 사람인 선수들만 하는 운동인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마라톤 입문을 권한 후배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은 풀코스마라톤을 완주한 아주 소수의 인간과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풀코스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게 대단한 자부심이었다. 내가 2000년에 풀코스마라톤을 완주했을 때 사람들은 “풀코스마라톤을 뛰었어” 하며 놀라워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도 화이트칼라 운동이라는 마라톤이 국력의 신장과 함께 일반국민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마라톤은 분명한 한계도 있었다. 마라톤은 누구나 쉽게 입문하고,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과는 심리적으로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마라톤은 나이 먹은 사람들의 운동이라는 것이었다. 2000년 이후 마라톤을 하는 인구가 꾸준히 늘어갔다. 마라톤 인구가 늘어가는 과정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함께하고 있었다. 마라톤이 국민스포츠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 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풍족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운동이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마라톤 인구가 늘었지만 전 세대를 아우르는 운동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2020년이 넘어가면서 마라톤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생활마라톤으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건강의 중요성을 더욱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마라톤의 특별한 장점도 작용한 것 같다. 그것은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혼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단체로 운동을 하더라도 다른 운동과 달리 마라톤은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운동이다. 얼마나 현대적이고 또 얼마나 개인적인가 바쁜 현대인과 코드가 맞다. 코로나 사태이후 마라톤인구의 눈에 띄는 변화는 중년이 이끌었던 마라톤을 젊은 청년들인 2030세대가 중심이 되어 이끈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함께하면서 그전과는 달리 기록위주의 마라톤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 즐기는 마라톤이 되었다. 단축마라톤에 참가자들이 몰리는 이유이다. 밤에 동네를 돌아보면 젊은이들이 혼자서 혹은 두 세 명이 모여 달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다. 그 전에는 밤에 달리는 사람이 흔치 않았고, 또 있더라도 중년의 마라토너들뿐이었다. 요즘은 전 국민이 달리기를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어디를 가든 길이 있으면 달리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생활마라톤이 정착된 게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 이곳저곳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볼 때면 1980년대 서울의 이태원, 한남동, 남산순환도로에서 보았던 달리는 외국인들이 생각난다. 이제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대한민국도 어느덧 선진국이 되었다. (2025.09.12 이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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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마라톤. 이재학 칼럼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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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에세이(2) 삶-쥐의 도전
- 나는 지금 쌀자루를 옮길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 중이다. 삼일 째 나에게 연패의 쓴 맛을 보게 한 쥐 때문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쥐가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다. 삼일 째 집주인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나는 쥐다. 집주인은 나를 잡기 위해 온갖 묘책을 짜내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나는 곧 집주인의 덫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집을 떠날 수가 없다. 원래 나는 이집의 하수도 구멍과 담벼락의 음침한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집안에서는 주인집 식구들이 혹시 내가 안으로 들어올까 경계를 하고, 집밖에서는 요즘 부쩍 수가 늘어난 고양이들이 음식물쓰레기를 먹거리로 삼고 있지만 나를 별미로 생각하여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고양이들의 눈을 피해 냄새나고, 그늘지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살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사람들이 사는 집 안으로는 들어가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안도록 듣고 자랐다. 매일 아침 노모는 나에게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삼촌들이 천수를 누리지 못한 것도 사람들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쥐의 교훈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아들을 위한 노모의 애정 어린 충고였지만 이미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삼촌들이 갔던 길을 가고 있었다. 삼일 전 나는 집안으로 들어왔다가 집주인하고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나는 오일 전부터 집안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아주 우연히 나는 집안의 그곳에 쌀자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내가 평상시에 수시로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혹 활짝 열려있는 경우가 있어도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 그곳을 몇 번 집주인 몰래 들어가 본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는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그런데 그날따라 무심코 그곳을 지나다가 문이 열려있기에 들어갔더니 쌀자루가 보이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로또 일등에 당첨된 것만큼이나 기뻤다. ‘노다지’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나는 그곳을 밤에만 가야하고 또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은 참을 수 있어도 그 이상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쥐의 생존 제1원칙을 어기고 낮에 그곳을 찾고 말았다. 처음에는 쌀을 배불리 먹고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낮에 한 번만 그곳에 갔더라면 지금까지 집주인에게 안 걸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쌀의 유혹에 눈이 멀어 오후에 또 그곳을 찾았다가 그만 집주인과 마주친 것이다. 나와 마주쳤을 때 놀라는 집주인의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내 얼굴이 곧 집주인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한편으로 소름이 끼치기도 하지만 집주인의 얼굴만 떠올리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평생 그렇게 통쾌했던 적은 없었다. 아마도 집주인은 그곳에서 나와 마주치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집주인이 더욱 놀랐는지 모른다. 집주인은 나와 마주친 즉시 약국에서 쥐끈끈이를 구입했다. 꼭 다니던 길로만 다닌다는 나의 습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집주인은 나의 성격을 역이용하여 내가 다닐 것이라고 예상되는 길목에 그것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내가 다니는 길목에는 장애물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지뢰(쥐끈끈이)가 매설된 꼴이었다. 집주인이 나를 잡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것만큼이나 나의 스트레스도 극에 달하였다. 나는 낮에는 될 수 있으면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쌀의 유혹을 참는 것은 죽기만큼이나 힘들었다. 밤에 쌀에 접근을 하는 것은 낮보다 더 위험하였다. 낮에는 사람들의 눈이 있어 지뢰를 잘 보이지 않는 곳에만 매설하였지만 밤에는 쌀자루 주변에 엄청난 수의 지뢰가 매설되었기 때문이었다. 밤이면 집주인은 쌀자루 바로 앞에 둥그렇게 지뢰를 매설하고는 그 위에 미끼를 올려놓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선배 쥐들과는 달랐다. 미끼를 무시하고 쌀에 접근하기도 하고, 미끼를 취하더라도 지뢰를 교묘히 빠져나오곤 하였다. 이렇게 내가 많은 지뢰를 피해 쌀에 접근하는 것에 성공하면 집주인은 분통을 터트리고 다음날 지뢰를 더 많이 매설하였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것이다. 나는 지금 기약 없는 이 전투를 삼일 째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알고 있다. 집주인이 나를 잡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을.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결코 그곳의 쌀자루를 포기할 수 없다. 집주인은 나를 잡지 않으면 쌀자루를 지킬 수 없고, 나는 쌀자루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으면 밥을 굶는다. 그러니 우리는 외나무다리에서 아주 제대로 만났다. 단지 내가 걱정하는 것은 내가 정신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집주인이 아주 영리하다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우리(쥐)가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기로 하면 반드시 산다는 사즉필생(死卽必生)의 각오로 매일 쌀자루가 있는 곳으로 간다. 사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최초의 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 밤에 쥐끈끈이에 걸려 장렬히 전사하게 될지라도. 오늘밤에도 쥐가 쌀자루를 찾아 올 것이다. 나는 쥐를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밤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쥐도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재학 작가 마라토너,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전), 부천작가회의, 부천수필, 부천시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소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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