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경종 / 구유현의 명상노트

구유현의 명상노트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18.06.16 10:54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경조사는 누구나 일생일대의 큰 개인사로 축하와 위로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혼례를 올리는 날은 일가친척을 비롯하여 평소 알고 지내는 하객이 들려서 축하하고 슬픈 일에는 서로 위로해 주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일처럼 아름다운 시간이 없다. 우리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당연지사로 안다. 당사자는 이럴 때 얼마나 좋고 다급하면 안면밖에 없는 사람까지 연락하겠는가.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내 일머리 모두 끝났다고 눈을 감고 모른 체 할 일인가. 
경종 사진.jpg
 
가는 정속에 오는 정이 싹튼다고 하는데 어느 경우가 더 불쾌하고 기분 나쁜 이야기가 될까. 자기의 일머리만 중요하다고 챙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애경사에 오고 가는 마음은 불문율로 직접적인 이야기 자체를 꺼린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이 많이 나가는 고운정은 영웅담 하듯 긍정적으로 바쁘다고 이야기 한다. 가고 오지 않는 미운 정을 말하면 부정적이고 잘못된 사람으로 금기시한다. 가는 정은 일반화되어있지만 오지 않는 정을 말하면 시선이 곱지 않게 인식한다. 언제나 가는 정만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게 하며 속내를 불편하게 만든다. 속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 언급 자체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이를 말하면 왕따를 당한다. 애경사는 개별적으로 당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대소사에 축하와 위로는 당연하다면서 자기 일이 모두 끝났다고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하여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인가. 이렇게 얄팍하고 천박한 생각이었다면 자신의 애경사를 타인에게 알려서 우를 범하게 하는 일처럼 치사한 게 없으리라.
혼례에 하객이 찾아서 축하를 해주면 더 없이 감사한 일이다. 애사가 있을 때는 슬픔을 서로 나누어 갖고 힘을 보탠다. 애경사에 다녀오면 하나같이 귀댁에 대소사가 있으시면 꼭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러한 중차대한 일에 삼십 수 년 봉사를 해서 정작 돌아오는 것은 낯 뜨겁게 하는 실망일때 유구무언이다. 어떤 사람보다도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하며 존중했는데 미온적이고 언제 봤냐는 식이라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좋게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런 사람은 상실감을 넘어 배신감이 든다. 시장에서 사 온 과일이 집에 와서 보고 썩었다면 속상한데 하물며 내가 정성을 들인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면 두고두고 기분이 상할 일이다. 부조한 만큼 돌려받는다는 마음으로 부조하는 사람은 없다. ‘썩어도 준치라는 데 정성을 들여서 나 몰라라 물리게 한다면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리라. 남이 하는 것은 당연지사로 알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방관하는 사람과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해야 할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말인가. 그런 사람과 콩 한쪽도 반으로 나누어 먹는다라고 생각했으니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종2.jpg
 
자기는 싫어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청구서 같은 청첩장을 내밀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 마지막 남아 있는 미풍양속이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아가듯허접스럽게 되어간다니 무슨 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4차 산업의 문명을 목전에 두고 고작 이렇게밖에는 할 수 없다니 안타까운 일이리라. 어느 연세가 지긋하신 수필 작가님이 축하를 해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가장 감사를 느끼는 부분이 저의 아들딸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주신 분들이 가장 고마웠어요. 그래서 저는 저와 안면이 있는 분들의 자제 혼사 때는 꼭 참석하려고합니다라는 말씀이 감명 깊었다. 감사란 내가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진정성을 알 수가 없는가 보다. 막상 우리 아들 결혼을 시켜 보니 그 말씀이 새삼스럽게 들렸다. 그래서 달걀로 바위 치기 하듯 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은 돌에다 새겨야 한다고 했던가.
내 일머리 모두 끝났으니 앞으로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일이 있을 때 대문짝만하게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있었는지 염치도 없다. 고작 자신이 필요할 때만 들러리 서게 하겠다는 뜻이었나. 손 한번 잡아 보고 문고리 한번 잡아 봤다고 연락을 할 정도로 자기 일은 중시하면서 다른 사람 들러리 서게 할 수는 없다. 서로 돕고 살자고 앞장섰던 사람치고는 너무나 비겁하고 고약하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늘 오해의 진실 게임은 상대적이어서 생각하기에 따라 화가 나게 한다. 자기 대소사는 빠짐없이 보내면서 누가 오라고 했나. 하기 싫으면 말지’ ‘그러려면 왜 하고 말해’ ‘나는 부조를 하면서 받을 생각은 안 한다라고 하며 할 말 없게 만들고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든다. 누구는 돌려받을 생각을 하고 경조사를 가나. 아무렇지 않다는 불필요한 말이 오고 가며 물리게 한다.
장승.jpg

돌려받는 다는 생각으로 애경사에 다니지는 않는다미래에 우리 모두 겪을 일이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닥치는 일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으리라. 사회생활하면서 선배분의 애경사에 수없이 다니며 축하를 해준 일들이 마냥 흐뭇하기만 하였다. 오가다 만났다고 알릴 정도로 자기의 일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남의 일에 무관심한 이 시대의 구경꾼에게 아쉬운 대목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틀리다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리라. 이런 사람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가 신뢰 없고 불편하게 되어간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 일은 금과옥조처럼 중시하면서 다른 사람 일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일인가. 애경사가 있을 때 가까운 지인에서부터 문고리 잡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대소사가 있다고 연락이 오면 어떤 일보다도 더 챙겨 다녀왔다. 안다고 친하다며 기별을 했는데 하등의 망설일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다녀와서 봉투의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 놓는다.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시쳇말이 되리라. 
나무.jpg
 
자기 일만큼 다른 사람 일도 소중하다. 남에게 베풀 줄 모르면서 자기 일은 꼬박꼬박 챙기면 얄미울 정도다. 쩨쩨하다고 하기 전에 얌체 짓부터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을 만큼 비겁하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비난을 받기보다 돈이 많고 갑질을 하며 부자로 더 잘 산다. 얄미울 정도로 야비하고 치사하게 하면서 성인군자 같은 말은 다하고 다닌다. 이런 사람에게는 편들어주고 두둔하는 사람이 많고 비서 역할까지 자임한다. 그러니 이런 사람에게 놀아 날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자기 일이나 잘해야 할 사람이 사돈 남말 하 듯 놀아나게 부채질한다. 갚는 정이 없는 사람보다 고운 정을 보여준 사람이 억울하고 낯 뜨거워지게 만들며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서로가 위로해야 할 일을 흐지부지하며 수수방관하면 되겠는가. 자기 일은 계약을 하듯 하는데 남의 일은 계약해지가 된다. 자기 애경사는 연락을 했으면서 자기의 일머리가 끝났다고 어떻게 상대의 일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아무 나무랄 데 없는 말로 망신을 준다. 뭐 주고 뺨 맞는 것도 억울한데 망신까지 당하다니 고개를 들 수 없다.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의 짓거리는 덮어주고 다리를 뻗고 자게 하면서 어떻게 살기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편견과 아집이 공동체가 되어 물레방아 돌고 돌 듯 한다. 싹수가 노란 사람은 한두 번 겪어보면 대충 안다. 잘 될 수 있다고 고운정이 미운정 따라하게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기막히게 들린다. 헌신짝 버려지듯 하는데도 긍정적으로 보라며 부정적이라고 한다. 누구 좋아하라고 하는 말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장승2.jpg

사악한 무리에게 기분이나 비위를 맞추어 주면서 더는 들러리 서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귀댁에 대소사가 있을 때 꼭 연락하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꼭 헌신짝 버리듯 하면서 진짜 낯 뜨거워질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진짜 나쁜 놈이라고 불리어지리라.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경종 / 구유현의 명상노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
작업수행시간 :: 0.7200229167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