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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본동-우리 동네 어떻게 생겼지

이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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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7.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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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은 소사구 원미구 오정구 세 개의 구(區)에 36개 동(洞)으로 이루어져있었다. 2016년 구(區)를 폐지하고 현재는 행정복지센터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36개 동(洞)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헌에서 부천 소사본동을 알아보면 1789년 (호구총수)에 부평도호부 옥산면 소사리로 부천의 소사가 등장한다. 그러다 부천이란 지명은 1914년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나타나고 부천군 옥산면 소사리가 되었다. 부천군의 계양면, 오정면이 김포시에 편입되고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된 채 소사읍이 1973년 부천시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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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70년에서 1980년대까지 부천이란 말보다는 소사란 말을 더 많이 사용했다. 지금의 부천역은 전에는 역명이 소사역이었고, 부천군이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부천역으로 바뀌었다. 지금 있는 소사역은 별개의 이름이다.
부천시는 70년, 80년대까지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부천시의 논과 밭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고, 공장이 이전하면 그 자리에 또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렇게 부천시에 대단위 베드타운이 형성되면서 생산하는 도시에서 소비하는 도시로 성격이 변하였다. 부천의 경제적인 활력이 급격히 떨어진 이유이다. 도시의 발전과 물가 등 공장이 이전할 수밖에 없는 외부적인 요인이 있었겠지만 공장을 떠나보낸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예전의 재정이 튼튼한 도시 부천의 이미지는 성격이 변하면서 전설이 되고 말았다.
소사본동에도 신한주철 등 크고 작은 공장이 많았다.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역의 주민들이었고, 월급날이면 삼삼오오 모여 공장 근처의 식당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그간의 회포를 푸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소사본동에서 볼 수 없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다.
소사본동첫번째1.jpg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부천시는 문화도시를 표명하고 있지만 시민에게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부천의 문화정책과 시민이 밀착하지 못하고 서로 겉돈다고 할까. 시민이 문화를 향유하지 못하는 것은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부천이 경제적 활력을 잃은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소사본동은 문화도시 부천에서 문화의 불모지이다. 소사본동에 어떻게 하면 문화의 향기가 진동하게 만들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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