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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쯤 와있는가

부천문학 70호를 간행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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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10.1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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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이미 나있는 반질반질한 길, 평탄하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을 거부하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정해진 방향도 없이 막연하기만 한 길을 감히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신심이 깊은 지도자와 갈망하는 목적지가 있었다. 모세와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그곳을 가는 데는 이미 길이 나있었다. 바다의 길이라 불리는 비아 마리스Via Maris. 그 길을 따라가면 40일 안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길을 버리고 광야를 선택했다. 광야는 길이 아니었다. 길이 아니었기에 40년을 헤매고 다녔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별로 없는 삭막한 광야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여정을 계속해서 의심하면서도 결국엔 만나와 메추라기와 쓴물이 단물이 되는 기적을 체험하고, 경(經)을 얻었으며, 그 길을 새로운 길로 만들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고통스러운 헤맴을 기록으로 남겼으니. 그것은 곧 이스라엘의 역사가 되고 종교가 되었으며 마침내 그들 삶의 좌표가 되었다.
부천문단의 선구자들은 1983년도에 서울의 변두리에 불과했던 문학의 불모지에서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부천문학> 창간호를 발행했다. 그러나 막상 창간을 하고 돛을 올렸지만 <부천문학>이라는 배가 어찌 평탄하게만 항해할 수 있었을까. 이후 부천문단도 인간사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헤게모니 다툼으로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끼리끼리 모여 의도적으로 서로를 무시했다. 그러한 갈등 속에서 에고를 바탕으로 한 자기희생과 경쟁의식이 나름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한 결과가 오늘의 <부천문학>70호 발행에 이르지 않았을까. 어찌됐든 이러한 족적이 부천이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가 되는 데 여러 문화예술적인 인프라와 함께 일정 부분 밑거름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이제 부천문단은 변화의 새로운 물결을 맞고 있다. 꼭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가 되어서가 아니라 앞 강물이 뒤따라오는 강물에 밀리는 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통일이라는 민족적 대의 아래 한줌밖에 되지 않는 지지에 의지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보수의 논리는 얼마나 옹색하고 초라하던가. 소통과 양보와 이해와 존중과 통합 같은 아름다운 단어들 앞에서 부천문단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문단 권력이라 부를 가치도 없고 차라리 탐욕이나 독선이라 해야 마땅한 ‘자신만 할 수 있다’는 같잖은 오만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게 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위치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그럴수록 자신만 더 초라해지고 추해질 뿐이라는 걸 당사자들은 진정 모르는가. 필자 또한 예외일 수 없으니 이 글은 나에 대한 경고이자 각오이다.
광야를 헤매며 길을 찾기에도 벅차다. 문학 환경의 변화는 선택마저 회의하게 만든다. 젊은 작가들의 문학단체 기피 현상은 특별한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고 구태의연하기만 한 기존의 행태에 실망했기 때문이리라.
<부천문학>70호.
이쯤에서 우리는 어디쯤 와있는가 성찰해야 할 때이다. 내 문학은 어디쯤 있는가, 처절하게 자기를 반성하고 주제파악도 해야 한다. 문학 한답시고 개폼이나 잡는 행태, 요란할 수밖에 없는 빈 수레, 이런 것들이 문학의 추락을 부추겼다. 이젠 정말 버려야 한다. 우리는 문학인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다운 글을 쓰기 때문에 문학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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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문인협회부천지부 회장 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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