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12(일)

한계령을 위한 연가 - 8회

박희주 중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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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12.1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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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설레고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며칠 이내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는 없었다. 만약 가게 된다면 남편에겐 뭐라 할까. 결혼 이후 학교의 수학여행이나 친정과 시댁의 애경사와 같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의 외박은 없었다. 나는 누가 보기에도 표면적으로는 충실한 아내이고 아이들의 자상한 엄마였다. 남편의 외박은 잦았다. 며칠씩 걸리는 출장도 잦았다. 물론 회사 일 때문이었다. 그 모두가 회사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외박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직도 뭘 기다리나. 내가 뭘 두려워하나. 우리에게 한계령의 한계가 무엇인가. 눈이 오지 않으면 눈이 온다 생각하면 될 것을. 허울뿐인 명분이 굳이 필요하단 말인가. 스물여섯 해, 구천사백구십 일, 이십이만 칠천칠백육십 시간을 새장에 갇혀 살았는데 아직도 먹이가 오기만 기다리나. 문은 열려 있거늘. 나가서 먹이를 찾으면 될 게 아닌가.
경숙에게 전화를 했다.
“상현 오빠 전화가 몇 번이니?”
“갈쳐 준다고 헐 때는 내비두람서 갑자기 왜?”
“빨리 가르쳐 주기나 해.”
“별일이네, 가시내.”
“그런데 너 상현 오빠 부인이 죽은 거 아니?”
“뭐라고? 상현이 오빠 부인이 죽다니?”
“너도 모르고 있었어?”
“오매, 어째쓰까. 전화 한 번 해봐야겠네. 그 오빠 카페에도 안 들어오잖아. 시골에 산만 샀다 뿐이지 발 끊은 지도 아주 옛날이고. 사실 오빠가 그러니까 나도 전화하기도 조심스럽당게. 너는 그 소식 어떻게 들었간디?”
“그럼 그 오빠가 글을 쓰는 줄도 모르겠구나?”
“네가 어떻게 나보다 상현 오빠에 대해 훤히 아냐?”
“우연히 그 오빠 책을 보게 됐어.”
전화번호를 알게 된 순간 기쁘다기보다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억울했다. 타의에 의해 왜곡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뭘 망설이겠는가. 경숙과 통화를 끝낸 후, 머뭇거리지 않고, 서성대지도 않고 전화했다.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콩콩거리며 뛰던 가슴이 슬그머니 까무러졌다. 무슨 일일까. 초조해졌다.
남편이 들어왔어도 그가 보지 않는 데서 나는 수시로 전화기를 만지작거렸으며 컴퓨터를 내내 켜둔 채 틈만 나면 메일을 살폈다. 침대에 누웠어도, 남편이 오랜만에 배 위에 올라와 용을 쓰는 동안에도, 내 생각은 온통 그에게만 가있었다. 이윽고 욕심을 채운 남편이 잠에 빠져들었을 때 나는 슬그머니 침대를 빠져나와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보낸 메일도 그는 아직 열어보지 않은 상태였다. 전화기는 여전히 꺼져있고. 소리샘에 안달이 난 내 목소리를 남겼다.
“오빠, 나 정은이. 왜 전화기가 꺼져있어? 나 오빠의 진실을 오늘에야 알게 됐어. 책을 봤어. 버마재비의 사랑. 나 한계령에 오빠와 함께 갇히고 싶어.”
나의 이런 행위와 생각들이 다른 사람이 보기엔 불륜이라 하겠지. 나는 나에게 위선적이고 싶지 않았다. 그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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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여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박빙이 되어갔다. 남편은 대상은 다르지만 나만큼 초조해 하고 있었다. 벌써 남편이 참여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살리기’는 죽어가는 것을 살린다거나 살아있는 것을 더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건설사들의 담합과 보의 부실공사가 드러나고, 녹조가 심화되고, 걸핏하면 침수가 일어나는 판이고, 철새는 찾아오지 않고, 물고기는 죽어가고, 멀쩡했던 습지에 인공의 구조물들이 들어서 매끄럽게만 보이니 강에 깃든 생명들에게 혼란은 빤한 일. 국민의 혈세 22조원이 들어간 대역사가 결과적으로는 강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기’가 되고 말았다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국민들이 동조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자연은 인간이 간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그 대안으로 밀어붙인 게 4대강 살리기였다. 건설업체에서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생존방식으로 경영주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성공가도를 달려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에 오르고 모든 샐러리맨들의 신화가 되더니, 그 여세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마침내 서울시장과 일국의 지존의 자리를 거머쥔 이.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부릴까마는 여론은 그의 사심마저 의심하기에 이르렀으니. 야당이 집권한다면 4대강 살리기는 도마 위에 오를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초조해진 남편은, 아니 남편의 회사는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만약을 위해 반대편에 미래의 생존을 담보하는 보험 들기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했으리라. 이런 행태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재벌들의 생존 방식이었음에랴.
“나 감쪽같이 사라질지도 몰라.”
“이 가시나가 미쳤구나!”
경숙인 내 말에 실소를 터뜨리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도 짓지 않고 실없는 소리 마라는 듯 내뱉었다. 상현 오빠의 전화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 못해 경숙이라도 만나 초조감을 달래려한 자리였다. 책을 읽었다면 그 못 잊을 여인이 나라는 걸 알 수도 있으련만 경숙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긴 읽지 않았으니 잠잠하지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전화로 난리를 쳤으리라. 경숙인 원래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젠 행복에 겨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왜 금방이라도 옆에 없으면 죽고 못 살 연하라도 생겼간? 요즘 신간 편한 여편네들 연하 하나씩 키우는 게 대세라등만 너까지 그런 거시여?”
“왜 안 믿기니?”
“세상 여자들이 다 그런다 하더라도 너는 그런 짓 못 혀.”
이렇다. 나를 보는 세상의 눈은 여지없이 현모양처다. 윤리에 반하는 나를 상상하기 힘들다는. 나는 세상을 감쪽같이 속인 셈이다. 상현 오빠에 대한 아직도 변함없는 내 사랑과 앞으로 어떻게 하리라는 심사를 털어놓으려던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아직 이르지. 철썩 같이 믿었던 결혼이 헝클어졌던 것처럼. 내 보험은 의뭉한 침묵이었다. 내 소갈머리에도 화사 몇 마리는 똬리를 틀고 있는가보다.
“참, 상현 오빠에겐 전화해봤어?”
경숙이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내게 물었다. 그것까지 감출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그래, 그런데 전활 받지 않더라. 아니 전화기가 계속 꺼져 있던데?”
“그렇지? 나도 해보니까 꺼져 있더라. 집전화도 받지 않고. 워낙 고향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이라 알 만한 사람도 없고.”
그가 고향이나 고향사람들과 담을 쌓고 산 건 설움 받은 기억도 있겠지만 더 큰 원인은 나와 무관치 않으리라. 그보다 더 한 상처가 어디 있었으랴.
“암이었다더라, 부인이.”
난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암? 부인의 성격이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요즘엔 암도 초기에만 발견하면 병도 아니라는디, 자세한 내막을 알아야 중매라도 서지.”
경숙의 중매라는 말에 어이가 다 없었다. 일편단심인 내가 있는데 중매라니?
“넌 자세한 거 알지도 못하면서 벌써 짝 지워 줄 생각부터 하니?”
아차,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짜증이 묻어나왔다.
“옴마야, 네가 왜 성질을 부려? 네가 갈 것도 아니면서. 참 별 꼴이네 얘.”
“얘는 내가 무슨 성질을 부렸다고.”
나는 금방 오그라들었다.
“한 번으로 족하다. 너 그 오빠 아프게 한 거.”
경숙으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면서 내 몸이 아득한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알고 있었다. 경숙인 우리의 사랑과 파국을. 아니, 요즘의 내 심사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의 파국이 나라고? 내가 원인이라고? 내가 아프게 했단다. 아니야, 경숙아. 그게 아니야. 내가 아팠어.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뎌냈는데? 나는 변명하지 못했다. 그 잘난 보수를, 보수의 딸임을. 나는 한없이 무력했다. 그 무력감에 화가 솟구쳐도 아무 말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오빠한테 전화하지 마. 그 오빠 언니가 살아있다면 몰라도 죽었다면서…… 그런께로 더욱이 전화하지 마라는거시여.”
나는 경숙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나는 내가 피해자였다. 그렇게 믿고 나를 가엾어 하며 살았다. 그런데 가해자가 되어 있다니. 나의 진실은 어떤 것인가. 영혼을 빨려버렸다 생각해온 내 진공의 세월은? 나도 혼란스러웠다. 상현 오빠에게 전화하는 나는 파렴치한 여자가 분명했다. 오빠의 처지를 이용해 화냥기를 채우려는, 다시 한 번 농락이 될 게 빤한 파렴치한 나. 오기가 생겼다. 그래? 그렇다면 파렴치한 년이 되리라. 경숙과는 서먹해진 상태에서 헤어졌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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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주 시인. 소설가. 전북 임실 출신. <월간문학>신인상.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 『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봉이』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 부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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