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2-07(토)

서경열-동네를 위해서라면 땅인들 못 주리

이재학의 소새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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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12.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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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본동에는 여우고개 이야기, 천년 은행나무, 250년 대동산신제, 백성욱 독립운동가 및 교육자, 이제는 하나만 남은 우물 등 다양한 자랑거리가 있지만 그중 최고의 자랑거리는 ‘소새울 어울마당’이다. 이 소새울 어울마당은 마을의 발전을 위하여 부천시에 땅을 기부한 복지가의 애향심의 산물이다.
부천시에 동사무소가 입주할 땅을 내어놓은 서경열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의 마을에 반드시 동사무소를 지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부천시에 땅을 내놓았고, 시는 그 약속을 지켜서 그가 기증한 땅에 동사무소를 지어서 화답했다. 그게 1975년 일로 1973년 부천시가 부천군에서 시(市)가 된지 2년만의 일이다.
서경열이 부천시에 동사무소를 건립할 땅을 기증함으로써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는 당시 부천시의 재정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 수 있다. 명색이 시(市)가 동사무소 하나 건립할 땅을 구입할 돈이 없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의 형편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1970년대의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리면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이 열악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는 소사본동의 자랑인 서경열을 얻었다는 것이다. 마을을 위하여 자신의 땅을 무상으로 기부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부천시에 땅을 기부하면서 우리 마을에 동사무소를 지어야 한다는 조건 하나만 걸었다고 한다. 서경열의 장남 서정현의 증언에 의하면 아들이 “왜 땅을 내 놓느냐” 물으니 서경열은 “우리 마을에 동사무소가 생기면 사람들이 모이고 동네가 발전한다” 고 했다. 그의 애향심 덕에 소사삼거리에 자리해야 할 동사무소가 당시로서는 외진 소사본동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소새울 어울마당’으로 이용하는 공간이 서경열이 기증한 땅에 건립한 동사무소다. 소새울 어울마당의 옛 이름은 ‘서경열 공부방’이었다.
소새울 어울마당은 서경열의 마음이 구현된 곳이다. 마을이 발전하고, 더불어 주민들이 행복해지를 바라는 게 서경열의 마음이다. 서경열이 마을을 위해 땅을 기증한 숭고한 마음이 이어져 또 다른 서경열이 소사본동에 줄이어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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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열의 마음-소새울 어울마당의 기부자(이 글은 아키비스트 활동으로 서경열의 장남 서정현과 인터뷰한 것이다)
소사본동에는 주민들의 공부방이자 쉼터인 ‘소새울 어울마당’이 있다. 부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경열(1915-1998)이 1975년 부천시에 기부한 건물이다. 서경열의 장남 서정현에게 ‘소새울 어울마당’ 기부의 사연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선구자(先驅者)였다.
1973년 시(市)로 승격한 부천시는 재정적으로 열악했다. 소사본동에 동사무소를 신축하고 개설해야 했지만 돈이 없는 시는 동사무소 터를 누군가 기부해주기를 바랐다. 땅을 기부할만한 사람들이 나몰라 할 때 서경열이 나섰다. 아들 서정현의 말에 의하면 소사삼거리와 떨어져서 부천시가 생각하는 동사무소 자리로는 마땅치 않았지만 서경열이 ‘소새울 어울마당’ 자리에 동사무소가 들어와야 한다는 조건으로 땅을 기부했다고 한다. 그때 서경열은 “부자도 아닌데 왜 땅을 기부 하냐는 자녀들에게 ‘내가 벌어 마련한 땅 내 마음대로 한다’ 하면서 ‘우리 마을에 동사무소가 들어오면 사람들이 모이고 동네를 발전시킬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냐’고” 했다. 1975년 서경열의 혜안과 결단이 외진 마을을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지로 만들었다.
서경열이 기부한 땅은 ‘소사본동사무소’로 마을 행정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이후에는 ‘서경열 공부방’으로, 다시 ‘소새울 어울마당’으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주민과 함께 해왔다. 서정현은 바람이 있다면 ‘소새울 어울마당’이 크게 확대되어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발전하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정현은 “앞으로는 복지 예술의 시대고, 이곳 ‘소새울 어울마당’이 소사본동 문화의 마당(場)이 되면 좋겠는데 (부천시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서정현에게 “‘소새울 어울마당’이 아니라 ‘서경열 어울마당’이나 ‘서경열 소새울 어울마당’으로 이름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빠진 게 서운하지 않냐”고 묻자. 서정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님이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동사무소를 유치하려 하셨지 이름을 남기려 하신 건 아니니 아들인 내가 이름이 빠졌다고 해서 불만이 있거나 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소새울 어울마당’이 더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우리는 서경열의 장남인 서정현과 인터뷰를 마치고 ‘소새울 어울마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둠 속에서 서경열이 ‘여러분이 우리 동네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면 고맙겠네’ 하면서 웃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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