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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부천에서의 3년은 너무 짧았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이재학의 소새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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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12.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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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히리야'

대한민국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노래 ‘향수’(鄕愁)의 첫 구절이다. 향수는 월북 작가 정지용(1902-1950)을 작사가이자 시인 정지용으로 세상에 알린 노래이다. 그리고 향수는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함께 불러 대중가요 가수와 도도한 성악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킨 노래이다.
 
18년 3월 9일 소새울DSC_1433.JPG
 소사 삼거리 정지용 시인이 살턴 곳

그런 정지용이 부천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정지용 시인의 작가 연보를 보면 “1944년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로 이사했다”라고 적혀있다. 그는 일제말기, 2차 세계대전말기 소개(疏開)령을 받고 소사리로 이사했다. 그는 소사리에 3년을 사는 동안 적산가옥인 소림별장(현 성가요양원 성당 자리)를 불하받아 소사성당을 개설하는 등 부천 기독교 발전에 기여하였다.
  
정지용 시인의 소사리 활동이 알려진 것은 부천‘복사골문학회’의 구자룡이 ‘소사성당 반세기’를 발간하기 위하여 자료를 정리하던 중 시인의 활동기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구자룡은 정지용 시인의 장남을 찾아 기록에 나온 주소지가 시인이 살던 곳이 맞는지 확인하였고 그 자리에 1993년 ‘복사골문학회’ 이름으로 정지용 시인이 살던 집터라는 표지석을 설치하였다. 구자룡의 노력으로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에서 정지용 시인이 활동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정지용 시인은 충북 옥천에서 출생하였고 휘문고등학교와 일본 동지사 대학을 졸업하였다. 1922년 첫 시 ‘풍랑몽’을 썼고, 1926 [학조]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를 비롯한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1939년 [문장]지의 추천위원이 되어 유명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을 등단시켰다.
부천시에서는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변영로, 정지용, 목일신 등 부천이 고향이거나 부천에서 활동한 작가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특히 정지용시인은 소사본동에 정지용의 거리가 조성되어 소사본동 주민들과의 깊은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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