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0-15(화)

펄 벅과 한국의 인연 1 - 이재욱 작가의 문학칼럼

펄 벅의 첫 한국 방문- 1960년 11월 1일 오전 11시 15분, 노스웨스트 항공편으로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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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3.2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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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서사문학 연구위원)

 

    

공식적으로 펄 벅(Pearl Sydenstricker Buck)의 한국방문은 조선일보사와 여원사의 초청으로 내한한 1960111일이 처음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 사실보다도 훨씬 이전인 1927년에 펄 벅은 이미 한국 땅을 밟은 적이 있다. 당시의 한국은 일제강점기하에 있었고 중국에서는 남경대학살 사건이 발발하고 있었다. 펄 벅 일가는 어디론가 피신을 해야 했는데 어떤 중국인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압록강을 건너 한국으로 왔다.

 선교사인 펄 벅의 아버지 압솔름 시던스트리커(Absalom Sydenstricker)는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을 모색했던 것으로도 보이지만 결국은 일본의 나가사키로 건너가 1년여를 지내고 다시 난징으로 돌아갔다. 동생인 그레이스 요키(Grace Yaukey)가 쓴 펄 벅 전기 (1945)에 기술되어 있고 자신이 쓴 회고록 (1978)에서도 최초의 한국체험을 서술하고 있다.

 1960111일 오전 1115, 노스웨스트 항공편으로 도착한 펄 벅은 대지를 한국어로 번역한 장왕록 교수, 조선일보 이규태 기자, 모윤숙 시인 등의 영접을 받으며 반도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내한 910일 동안 서울 대구 부산을 순회하며 공개강연 및 각종 좌담회에 참석하고 판문점과 명승지를 둘러볼 예정이었다. 서울에서 6일을 지내고 4일 동안은 지방을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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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본동 펄 벅 기념관 내부

 그해 4월에 있었던 4.19 혁명에 관해 묻는 민감한 질문도 쏟아 졌다. 그러나 펄 벅은 정치문제는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잘 알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민감한 문제일수록 유머와 위트를 섞어 우회적으로 대답했다.

 112, 국립국악원과 비원을 관광하고 저녁에는 아서원(雅敍園)에서 국제펜클럽과 영여영문학회가 주최하는 환영회에 참석했다. 장왕록 교수가 펄 벅과 휴머니즘이란 주제로 펄 벅을 소개했고 피천득 교수(서울대학교)3명의 교수들이 환영사를 했다.

 한국에 온지 이틀밖에 안되지만 내가 우선 느낀 것은 한국은 한국이요,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경치가 그러하고 사람들 역시 그러합니다. 한국인은 정의(情誼)가 두텁고 개성이 강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답례에 나선 펄 벅은 나의 작가수업이란 강연을 통해 이번 여행에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과는 또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113일 오전, 펄 벅은 청와대로 윤보선 대통령을 예방했다. 영부인 공덕귀 여사도 함께 자리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펄 벅을 정중하게 맞이한 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본 한국의 인상은 어떻더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퍽 좋습니다. , 아주 좋습니다. 솔직하고 소탈하고 .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인보다 빨리 마음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한국에 관해 읽었던 것들이 틀렸구나 싶었습니다.”

 매체를 통해 들어오던 한국에 관한 어두웠던 정보가 사실과 다름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이어서 공덕귀 여사가 잠자리는 편한지 음식은 입에 잘 맞는지를 묻자 만면에 미소를 띈 펄 벅은 김치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대답했다. 한국을 떠나는 날까지 한국음식을 먹을 거라는 포부를 밝혀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 감사하던 윤보선 대통령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한국소설과 한국 예술관련서적을 펄 벅 여사에게 전달하며 한국을 소재로 하는 여사의 소설을 기대한다는 속내를 내 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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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본동 펄벅 기념관

 

  앞으로 다양한 계층의 한국 사람들을 만나보시면 아시겠지만 한국에는 여사님의 소설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아요. 그들은 여사가 한국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쓰게 되겠지요. 아마도.”

 윤보선 대통령의 은근한 기대에 대한 짧지만 강한 여운이 남는 대답으로 환담을 마쳤다.

 후일 여원(19611월호)에 게재된 펄 벅의 인상이라는 공덕귀 여사의 회고담에 의하면 펄 벅의 첫인상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대문호로서의 펄 벅이라기보다 지극히 예절바른 외국인을 대하는 것 같았고 인자한 한 인간을 대하는 것 같아서 처음 만나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고 했다.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젊었고 고색창연한 모자와 손가방 그리고 의상은 너무도 검소해서 사치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 했다고 술회했다 

 

 글/ 이재욱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서사문학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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