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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외출 - 5회

박주호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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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3.3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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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음파를 감지할 능력을 갖추길 바랐어. 지난밤 창문 밖에서 박쥐들이 춤을 추는 것인지 오래도록 날개를 퍼덕거렸지. 그 날갯짓은 무언가 전하고 있는 듯했어. 만약 박쥐와 같은 초음파를 낼 수 있다면 대꾸해주었을 것이고 박쥐의 세상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을 텐데. 또 눈을 감고도 다가오는 생명체를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강아지와의 교감은 수없이 시도해보았지만, 워낙 어려서 그런지 잘 통하지 않아. 강아지가 크면 내 길잡이가 될 거야. 재롱만 부리는 것으로 제 소임을 다한다고 하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하거든.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언니 말고 남동생도 있어. 하지만 동생이 고등학생이 되자 도움 청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제대하고 3학년에 복학한 오빠는 자기밖에 몰라. 동생이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해보았어. 목욕탕에서 함께 물장난치며 때도 밀어줄 텐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여행을 떠날 수도 있는데. 동생은 내년에 고3이 되는데 그때가 되면 얼굴조차 못 볼 거야. 언니가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그 역할을 엄마가 대신해. 쇼핑센터에서 옷가게를 하는 엄마는 저녁 7시경에 귀가해. 집에 와서는 간식을 챙겨주거나 잠자리를 봐주지. 늘어나는 내 몸무게 때문에 언니나 엄마가 점점 더 힘들어해. 그래서 엄마는 가끔 화장실에 데려다줄 때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곤 하지.  


 나는 팬티를 입지 않는 대신 두툼한 솜이불을 착용할 때가 더러 있어. 솜이불은 기저귀를 애칭 하는 말이야. 솜이불은 쇼핑하거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때 그리고 멀리 여행을 떠날 때 비상용으로 착용하지. 나는 애초부터 착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바깥에서 장시간 있어야 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어. 엄마는 성인용 기저귀가 시판된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 만약 성인용 기저귀가 아니었다면 유아용 기저귀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이즈를 입혔을지도 몰라. 성인용 기저귀가 없었던 시절, 도움받아야 할 위급한 상황에서 그만 침대에 방뇨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었지. 그 이후로 부모님은 대비책을 찾고자 노력했어. 하지만 도움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해결될 일이 아니라며 화장실에 다녀온 시간과 횟수를 메모하기까지 했었어.

 

 물 좀 가져다주세요!

 인쇄용지를 넣어주세요!

 생리대 좀 처리해주세요!

 

 언니는 건강보험공단에서 파견된 요양보호사야. 오로지 나와 관련된 일만 하고 있어. 그런데 맞벌이하는 엄마나 아빠는 더 많은 일이 필요한 거야. 그래서 언니에게 별도의 비용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집안일을 맡긴 거야. 그러니깐 언니는 적잖은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는 거지. 그래도 매번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시키고 나면 나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특별한 일로 인해 학교에 가는 날에는 항상 곁에 붙어 있어야 하고 노트에 일일이 받아 적기까지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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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열 그림

  

내가 나비를 찾아낸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휠체어 역시 마찬가지야. 휠체어를 움직이는 데에는 적잖은 에너지가 필요해. 나는 바다를 건너는 나비에게서 용기를 얻었어. 아버지는 휠체어가 넓은 세상으로 인도할 것이고 꿈이 현실로 이어질 거라고 하셨어.


 나에게는 꿈이 있어. 꿈을 갖는 사람 자체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인내를 갖고 노력함으로써 이루는 것이라고 들었어.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생각이 작거나 꿈이 없는 게 아니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바닷가에어떻게 거센 파도를 구경하고 갈매기의 공중곡예를 지켜볼 수 있으며 끝도 보이지 않는 해변을 어떻게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었을까. 인터넷이 아니라면 어림없는 일이야. 책상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는 무려 29인치로 벽걸이 TV나 다름없어. 이것 또한 아버지의 특별한 배려 가운데 하나지.


 세상은 넓고 인터넷은 이 넓은 세상을 담았어. 나는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이 뛰어내렸다는 절벽을 인터넷으로 실감 나게 느낀 적이 있어. 바다의 끝은 보일 듯 말 듯했지. 바닷물은 출렁이고 거센 파도는 끊임없이 검은 바위를 때렸어. 파도가 하얗게 부서질 때마다 검은 바위는 으르렁거렸어. 가파른 절벽 위로는 괭이갈매기들이 먹잇감을 찾기 위해 또는 먹잇감을 물고 둥지로 날아다녔어. 모니터로 봐도 아찔한 절벽을 어떻게 뛰어내릴 수 있었을까?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 어떤 각오였는지 생각해 보았어. 뛰어내릴 용기를 어디서 찾았을까? 사람이 새가 되어 날게 된 이유 말이야. 그곳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강렬했기 때문이 아닐까. 살고자 하는 필사적인 의지가 없다면 새가 되지 못했을 거야. 빠삐용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했지만 유일한 동료인 드가는 남은 인생을 그곳에서 조용히 보내겠다고 선언했어. 빠삐용처럼 목숨을 걸면서까지 무모한 행동을 벌이느니 차라리 돼지를 기르며 평생토록 안일하게 살겠다고 했어. 결국 빠삐용은 자바섬에서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드가는 돼지를 기르며 자바섬에서 살았지.


 새장 같은 나의 작은 상자도 사방이 가로막혀 있어. 빠삐용이 그랬던 것처럼 이 공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빠삐용은 아무리 구속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고립된 섬에서 살 수 없다며 바다에 뛰어들었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기다리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야. 기다리는 가족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이라 여겼던 거지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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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호 소설가

 

2007년 부천신인문학상 수상<단편소설 부문>. 

2012년 아시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소설 부문>.

2017년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동화 부문>.

현재 :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부천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저서 : 단편소설집 <하늘로 날아오른 종이학>

동화장편 <바둑이와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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