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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외출 - 마지막 회

박주호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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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4.1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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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꿈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앞에 놓인 장애물을 넘는데 그만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말았어. 살짝 뛰어넘는다는 것이 하늘을 나는 새처럼 날아오를 줄 누가 알았겠어.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은 상상도 못 할 일이야. 사람이 새가 된다? 꿈이 현실로 이어질 수는 없지만 오랜 여운이 남아 주위를 맴돌았어. 자유를 찾아 절벽에서 뛰어내린 빠삐용처럼 나는 이 네모난 공간에서 벗어날 거라고. 그것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나갈 거야. 혼자서 바깥출입이 가능한 일인지는 몰라도 성공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나의 독립을 선언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더 넓은 무대에서 내 존재감을 과시하게 될지도 몰라.

 그동안 연마한 날갯짓을 펼치는 순간 더 이상의 주저함이나 두려움 따위는 없어. 곤충들은 화산폭발이나 지진 또는 해일이 일어날 징조를 미리 안다고 들었어. 그래서 안전한 지대로 이동한다고 들었어. 창문 밖에서 오래도록 날개를 퍼덕거린 박쥐들의 움직임은 무언가 전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 움직임은 분명 용기를 내라는 신호일지도 몰라. 그 뜻이 맞다면 나는 어쩌면 그들과 첫 교감이 이루어지게 되는 셈이야. 휠체어는 나비의 날개처럼 가볍지 않아도 나의 유일한 날개야. 날개를 장착한 첫 목표는 혼자서 상자를 벗어나는 일이야.

 작은 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묘책 수단과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해. 자기 몸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에너지,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다 순간적으로 멈추는 에너지, 작은 요철쯤은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범함이지. 나는 박쥐와 나비에게 이 작은 공간에서 벗어날 것이고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나를 찾아보라는 메시지를 날렸어.

 평소보다 30분 일찍 퇴근한 언니. 볶음밥은 언니가 만든 것이 아니라 진공 팩에 든 완제품이야. 그래서 언니는 내용물에 당근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등한시한 거지. 언니가 사이보그라 여겼던 내 생각을 수정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워. 강아지는 진한 버터 향으로 길들었는지 계속 달라고 꼬리를 열심히 흔들어. 매번 방에 들어오자마자 짖어대기만 했었는데 어느새 얌전한 고양이로 변했어. 이젠 내 말귀를 알아듣는 것일까? 나는 쟁반에 떨어진 밥알까지 던져주었고 강아지는 바닥 청소하듯 열심히 핥아먹었어. 강아지가 길을 인도하기란 어렵지만, 최소한 앙앙거리며 방해하지는 않을 거야. 화장실은 한 시간 전에 언니가 데려다주었어. 그동안 작은 공간 안에서 수많은 연습을 했지. 실전 돌입에는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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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거실로 나와 현관문 앞에 다가섰어. 신발은 신을 필요가 없지만 신어야겠지. 현관문이 여전히 어려워. 문고리에 손이 닿기까지 거리가 멀거든. 그래도 문고리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휠체어를 옆으로 갖다 댔어. 문을 열었지만, 휠체어가 옆으로 서 있는 바람에 나갈 수가 없어. 위치를 여러 차례 바꿔 봐도 휠체어 방향과 문고리 둘 다 해결하기 쉽지 않아.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그건 신발이야. 정확히 동생의 운동화이지. 현관문을 열고 문틈으로 신발 한 짝을 끼워두는 거야. 그럼 현관문이 닫히다 말겠지. 그다음은 휠체어 방향을 바로 세운 뒤 힘으로 밀고 나가면 돼. 똑똑한 강아지도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왔어. 이제 엘리베이터 앞이야.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면 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휠체어를 들이밀고는 1층 버튼을 가볍게 눌러. 휠체어 방향을 돌리는 동안 곰곰이 생각했어. 정말 계획대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문이 열리자 전방 십여 미터 앞에 밝은 빛이 너울거리며 나를 반기고 있었어. 휠체어를 아주 조심스럽게 밀고 나갔어.

 경비실 앞이야. 경비실 앞에는 계단이 있고 그 옆에 유모차나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 나 있어. 그 길은 비탈진 커브 길로 세심한 운전이 필요하지. 브레이크를 수시로 잡아주어야 하고 아주 천천히 내려가야 해. 예상은 이랬지만 브레이크 사용이 적절하지 않아 바퀴에 붙은 원형 금속 테만 느슨하게 잡아주면서 내려갔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려갔지. 짧은 구간인데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 강아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내 주위를 맴돌았어. 가끔은 내가 위태로운지 휠체어가 설 때마다 불안해했어.

 이제 아파트 단지 한 바퀴 도는 것이 첫 번째 목표야. 그다음은 누가 먼저일지 몰라도 가족들을 마중하기 위해 아파트 단지 입구에 진을 치는 것이 두 번째 목표이지. 아마도 엄마가 가장 먼저 나타날 거야. 엄마와 딸이 달려가다가 끌어안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도 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연출하고 싶어. 머릿속에 저장해둔 항공사진이 눈앞에 펼쳐졌어. 인터넷이라는 세상보다, 때론 영화와 같은 가상의 일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 더 이상 꽉 막힌 상자 안의 인형이 아니야.

 동네 한 바퀴 도는 나의 행보에 걸림돌이 있을까? 어쩌면 나의 탈출기를 듣기 위해 박쥐들이 창문 틈으로 몰려들지도 모르겠다. 아니 좀 더 어두워지면 나타날지도 몰라. 빠삐용은 자바섬 절벽 위에서 야자 열매를 채운 자루를 바다에 던졌어. 자루가 절벽으로 돌아와 부딪히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도 바다에 뛰어들었지. 그리고는 자루에 몸을 매단 채 먼 바다로 나아갔어. 자유를 찾아 떠난 나비의 탈출기는 이렇게 시작됐지. 예상한 것과 달리 동네가 좁다는 생각이 드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휠체어의 속도를 좀 더 높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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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호 소설가

2007년 부천신인문학상 수상<단편소설 부문>. 

2012년 아시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소설 부문>.

2017년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동화 부문>.

현재 :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부천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저서 : 단편소설집 <하늘로 날아오른 종이학>

동화장편 <바둑이와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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