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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과 한국의 인연 2 - 이재욱 작가의 문학칼럼

여행을 통해 접한 한국, 그리고 한국인=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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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4.2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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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소설가,한국문인협회 서사문학 연구위원

여행을 통해 접한 한국, 그리고 한국인

114, 펄 벅은 지방여행을 시작했다. ‘대지를 한국어로 번역한 장왕록 교수와 이규태 조선일보 기자 모윤숙 시인도 함께했다.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천안을 지날 무렵에는 지금도 유명한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맛보고 원더풀!’ 을 연발했다.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미국공보원장과 미고문관이 준비한 칵테일파티에 참석했다. 자리를 함께한 한국장교들과도 잠깐 환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청라언덕으로 이동해 미국에서 가져와 이식한 너무 많은 사과들이 열려 있는 사과나무를 보게 되었다. 가지가 찢어지도록 많은 사과들이 달리도록 가꾸어 온 것을 보고 한국적이 아니다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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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 소설속의 한국'- 펄 벅 기념관 내부.

 

곧바로 2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이 초만원인 계성고등학교 강당에 도착했다. ‘민주주의와 학생의 의무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기로 했다. 입장이 불가한 밖에서 기다리는 수많은 청중들을 위해 부랴부랴 대형 스피커를 설치할 정도로 펄 벅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연단에 오른 펄 벅은 서양의 이상과 동양의 현실 틈에서 고민해 온 중국을 한국과 비교하면서 민주주의를 이끌어 가는 청소년 학생들의 역할에 관해 역설했다. 이 역할은 파괴로서가 아닌 평화적인 교양(혁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유에는 몇 개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용기, 자제정신, 적극적인 해결태도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드릴 말씀은 나의 짧은 여행 동안 만난 여러분들의 얼굴에서 씩씩한 기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이 반드시 성취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4.19이후 당시 혼란하던 사회상을 빗댄 대미를 마치는 마지막 당부의 이야기였다.

 강연이 끝나고 수 백 명의 사인을 받고자하는 인파에 포위 되었다. 밀고 밀치는 틈에 하마터면 다칠 번도 했으며 곁에 있던 한 미국인이 모브(폭도)라고 중얼거리며 바짝 긴장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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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 기념관 앞- 펄 벅 동상

 

 저녁에는 경주로 이동 불국사호텔에 투숙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경주 관광에 나섰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쳐다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천고마비라는 사자성어에 관한 설명을 듣고는 재미있어 했다. 불국사, 첨성대, 오릉, 분황사 터, 박물관 등을 두루 돌아 다녔다.

 오릉을 둘러보던 중 이 오릉이 도굴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중국에서는 한 왕조가 망하면 왕릉은 산적들에게 모조리 도굴되고 파괴된다고 했다. 진짜 왕릉의 소재를 감추기 위해 아홉 개씩의 왕릉을 만든다고 하며 이 오릉도 진짜 임금의 능을 감추기 위한 같은 임금의 능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유물유적의 감추어진 부분에 더 주의를 기우렸으며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봤다.

 분황사 9층 석탑 석문에 새겨진 수문장은 그리스 조각과 닮았다고 관심을 나타냈고 박물관에 있는 에밀레종을 보고는 이런 종은 중국에서도 흔치 않는 종이라고 했다. 특별히 종을 쳐 울리고 에밀레하고 들리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에서도 그런 전설이 많다고 했다. 오히려 며칠 전 들었던 가야금소리가 마치 사람 우는 소리와 흡사하다고 했다. 오랜 중국에서의 생활이 동양역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게 한 모양이었다.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

 

 펄 벅은 특히 한국문화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으며 평범한 한국인들의 일상에도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지나가는 남루한 차림의 어린아이를 측은하게 바라보았으며 뒤춤에 나락이삭을 차고 있는 노인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다. 일꾼들의 새참 먹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기도 했으며 소복한 할머니에게 친근감을 표시하기위해 다정하게 손을 얹으려하자 황급히 달아나는 놀란 할머니에게 미안해하기도 했다.

 늦가을 한창 추수가 바쁜 저녁 무렵의 경주 들판을 지날 때였다.

 한 농부가 지개에 볏단을 진 채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볏단도 달구지에 실으면 될텐데 농부는 왜 고생을 사서하는 것일까?’

 펄 벅은 의아한 생각이 들어 농부에게 다가갔다.

 소달구지에 볏단을 실으면 되지 왜 직접 볏단을 지고 가는 겁니까?”
 농부는 오히려 질문이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

 오늘 우리 소는 종일 밭을 갈았소. 그러니 집에 갈 때만이라도 좀 가볍게 해 줘야 하지 않겠소?”

 농부의 말을 들은 펄 벅은 가축이라지만 가축의 고단함까지 헤아리는 한국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미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크게 감탄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집필하고 싶게 만든 직접적인 동기였다고도 했다.

 마을을 지나면서 펄 벅은 또 한 번 탄성을 지를 감동의 순간을 맞이했다. 빨갛게 익은 감나무 가지 끝에 10여개의 감이 아직도 매달려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저 감들은 따기 힘들어 그냥 놓아둔 것 입니까?”
 우선 함께하고 있는 일행들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저 감들은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 둔 까치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그렇구나!”

 이것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오기를 아주 잘했구나!”
 펄 벅은 다시 한 번 탄성을 질러댔다.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다.”

 주변의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은 여러 세기를 통해 잘 알려져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유독 한국만은 아직까지 서구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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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 기념관 내부의 펄 벅 여사의 모습

 

 후일 펄 벅이 쓴 소설의 첫머리에 나오는 한국인에 대한 인상의 서술이기도 하다.

 경주여행을 마치고 불국사에서 부산으로 떠나는 자동차 안에서 펄 벅은 아름다운 한국의 산하에 심취했다. 만일 자신이 한국에 살게 된다면 작가는 때려치우고 화가가 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래야만 되는 이유를 예로 들어 주었다.

 그 첫째가 한국에서 만난 인자한 사람들의 얼굴이고 두 번째는 갓 쓰고 수염 긴 백발노인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시골 아낙네, 지개에 볏단을 지고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의 모습, 그리고 산천과 너무 잘 어울리는 동해바다의 경관, 등등이라고 했다. 이런 풍광 아름다운 한국의 땅이 많은 작가들을 배출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라고도 했다.

 

글/ 이재욱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서사문학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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