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2-07(토)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기념 특집 - 이재욱 소설가와 함께하는 부천 향토 문학이야기 / 부천이 낳은 시인- 素鄕 李相魯 연구

소향관-부천 태생의 시인 이상로(李相魯)[1916~1973]의 호 소향(素鄕)에서 이름을 따온 행사 및 공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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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1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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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기념 특집- 이재욱 소설가와 함께하는 부천 향토 문학이야기
 부천이 낳은 시인- 素鄕 李相魯 연구
                     
들어가며
 
소향(素鄕) 이상로(李相魯)는 1916년 10월 8일 경기도 부천군 계남면(桂南面) 궁리(宮里)(1963년 서울시 구로구 궁동으로 편입)에서 평범한 농부인 전의(全義) 李씨 근영(根泳)의 4남으로 태어났다. 부천문단(1966년)에는 7남매 중 막내라는 또 다른 기록이 있어 전의(全義) 이씨 종친회에서 확인했던 바 4남과 7남매의 막내라는 기록 모두가 맞는 사실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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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관-부천 태생의 시인 이상로(李相魯)[1916~1973]의 호 소향(素鄕)에서 이름을 따온 행사 및 공연장이다.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에 있던 구 소사구청이 1996년 소사본동 새 청사로 이전하면서 구청 내 별관에 신축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아들로는 4남이고 형제자매를 합치면 7남매였으니 7남매의 막내라는 사실도 틀린 기록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만 소향(素鄕)이라는 그의 호를 소경(素卿)으로 표기해 놓은 족보의 오기를 발견하고 소향(素鄕)으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소향이 태어난 궁리는 안동(安東)권씨(權氏)와 더불어 전의(全義)이씨(李氏)가 대대로 살아 온 집성촌이어서 이웃 모두가 일가친척이었다. 불행하게도 이상로는 젖먹이를 면하지도 못한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아버지마저 저세상으로 떠났다. 잘 살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이 보살펴 주던 시절은 잠깐 동안에 불과했다.
 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이상로는 17세가 되어서야 한문을 배우러 서당에 다녔고 이어 보통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24세가 되던 1940년 일본 메이지(明治)학원 고등문학부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빼앗긴 땅,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여 중퇴하고 떠돌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귀국해서 언론계에 투신하였다. 귀국하던 그해인 1945년 5월 서울 YMCA에서 개최된 「예술의 밤」에서 시 「5월」을 발표했으나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회원이 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 소사(素砂)를 사랑한 소향(素鄕)
 
 이 벌을 지나면 저기
 남향받이 산기슭
 다소곳한 마을에
 복사꽃 오 오
 화안한 그
 복사꽃을 피리니
 
소향 이상로.jpg
소향 이상로

이 시(詩)는 이상로와 친했던 박두진의 작품으로 이상로가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을 무렵인 1941년 이상로에게 보낸 편지 속에 포함 돼 있었다. 편지에서 박두진은 복사꽃 피는 마을을 찾아 시혼(詩魂)을 불러야 한다며 복사꽃 피는 마을을 마치 유토피아인양 서술하였다. 소사가 고향인 친구 이상로에게 마치 복사꽃 흐드러지게 핀 고향 소사의 소식을 전해주는 작품 같기도 해서 이상로가 무척 좋아했던 시 구절이지 않았을까 해 본다.
 박두진의 편지전문을 소개한다.

 친한 시인에게
 만연히 집을 나와 만연하게 다니는 길이 예정이 일그러져 최초 일정의 세 배가 늦어졌습니다. 오늘은 스무 나흘, 지금은 0시 반쯤, 추풍령까지 왔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차 중입니다.
 옥천에서 묵을 때 군서라는 촌을 찾아가다가 물이 푸르고 맑기가 금강산 옥류천과 맞선다는 것을 알고 곧 금강에 가 보았는데 물가의 흰모래가 하도 깨끗하기에 한나절 동심에서 어린애같이 놀다가 온 것입니다. 소박한 자연에 안기어 새로 어린 춘색에 나는 겨울을 벗어난 사슴과 같이 즐겁고 편안합니다. 어떤 글을 쓰는 동안 차는 황간에서 벌써 영동에 왔습니다. 차 안에는 불과 8,9인이 있을 뿐 거진 반 빈 것 같게 한적합니다. 바같 풍경이 매우 화창하여 차에서 내려 걸어가고 싶습니다.
 소향 형!
 그간 어떠하십니까?
 형은 무엇을 생각하며 지내십니까?
 흰 구름 둥둥 구름은 가고…………
 이제 다시 저 잠자는 시혼, 나의 잠자는 시혼을 일깨워야 하겠습니다. 또는 멀리로 나들이 간 시혼! 복사꽃 피는 마을, 화안하니 복사꽃 피는 마을을 찾아 혼자 나들이 간 나의 시혼을 나는 어서 불러야겠습니다.
  이 벌을 지나면 저기
 남향받이 산기슭
 다소곳한 마을에
 복사꽃 오 오
 화안한 그
 복사꽃을 피리니
 형!
 나는 이제 복사꽃, 복사꽃 피는 마을을 향하여 가오리까?
 영원히 영원히 화안한 나라를 찾아 가오리까?
 -그러므로 이 세상 장막이 무너지면 , 그는 너희를 위하여 다른 한 성을 예비하였나니- 성서(뜻만)
 소식 주십시오.
 더욱 강건하시기를 비옵니다.
                         1941년    월     일
                                           박 두 진
 
 그의 호 소향(素鄕)은 소사(素砂)가 고향(故鄕)이라는 뜻이지만 소사(素砂)를 무한하게 사랑한다는 의미도 포함 돼 있다. 그의 작품에는 소사(素砂) 곳곳의 지명이 많이 등장하며 이런 작품 모두에서 고향 소사(素砂)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게 묻어난다. 『실락원(失樂園)』에서 보이는 여월리.(오정구 여월동) 『분이』에서 보이는 당아래,(원미구 춘의동) 『인간파편』에서 보이는 성골,(오정구 성곡동) 『냄새』에서 보이는 까치울,(오정구 작동)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실락원(失樂園)
 하얗게 눈이 덮힌 소래산(蘇萊山)이 바라다 보이는 사랑방 툇마루에서 발돋음하며 나는 곧잘 산봉우리들을 바라보곤 하였다. 어느 해 여름날이었다. 나는 혼자서 논두렁 밭모퉁이로 나비, 잠자리와 뭔지 모르게 좋기만 한 그 야생(野生)의 꽃들에 취(醉)하여 노는 중에서도 염록색(廉綠色) 이파리와 엷은 자색(紫色) 항가새 꽃에 나는 매혹(魅惑)되었었다.
 
 일록달록 꽃배암- 꽃풀 속에 도사렸던 꽃뱀 떼가 머리를 들면 꽃다발이랑 꽃신짝을 동댕이치며 달아났고 낡은 빛 비석(碑石)이 서 있는 산(山)모롱이 길로 질겁을 하여 도망하였다.
 
 한번은 아마 무슨 난리(亂離)소동이었는가 생각한다.
 

여월리(如月里)로 시집간 누나와, 치맛자락에 매어 달리듯이 언제나 내가 따르더란, 지금은 가고 없는 다홍치마를 입은 과천(果川) 누이 손에 잡혀 집들을 텅텅 비운 채 동네 사람들 서낀 산 너머 골짜기로 난피(難避)를 하여 쫓기던 일

 
 ----이 집이 비록 북향(北向)이로되 아예 옮기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고 청룡(靑龍)골에서 하아얀 선노인(仙老人)이 나타나 할아버지께서 이르드란 그 현몽(現夢)의 집은 지금 삼종숙(三從叔)께서 증손(曾孫)까지 거느리시고, 앞으로 소래산(蘇來山)을 향하고 오른 편으로 계양산(桂陽山) 왼켠으론 북한(北漢)을 동남(東南)향으론 관악(冠岳)의 봉(峰)들이 바라다 뵈는 이 마을은 려조(麗朝)때부터 내려오는 우리문중과 이씨부마(李氏附馬)의 후손 안동권씨(安東權氏)들로 지켜오는 옹긋한 터전, 그리 멀지 않은 고장으로 출가(出嫁)한 대고모(大姑母), 고모(姑母), 누님들이 시시(時時)로 와서 반가웠고 어른들과 곧잘 나드리도 떠나곤 하였다.
 때로는 먼 조상(祖上)쩍 얘기며 병자호란(丙子胡亂)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얘기를 들려주시곤 하였다.  
 
DSC_2563.JPG
원미산 진달래 축제

그 훗날,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진달래꽃이 진하게 핀 뒷동산엘 올랐었다. 아무것도 잊고 멀리 양아두 나루쪽과 제물포의 아득한 수평선(水平線)을 바라보다가 해 저뭇이 눈물 지었었다.

오늘, 원추리꽃 한떨기 피지 않은 산마루에 나는 오른다. 갈포기도 아쉬운 산은 산울림도 없다. 갈려진 벗들, 원수를 일컫는 핏줄들을 생각해 본다.
---------황폐한 산과 들들, 그래도 철따라 연두빛 어려오는 먼 산들.
 
 이윽고 나는 현무봉(玄武峰)이며 청룡(靑龍)이며 백호(白虎)며를 살펴 본다.
 주작(朱雀)을 안(案)하여 머언 봉(峰)들을 바라본다.
  
 실락원(失樂園)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해가는 그의 고향 소사(궁리)마을을 안타까워하는데서 쓴 작품이다. 사랑방 툇마루에서 발돋움하여 바라보았다는 소래산(蘇來山)은 부천과 경계에 있는 시흥시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주말이면 많은 등산객들이 붐빈다. 2연부터 그는 그의 마음껏 뛰 놀던 대자연속의 궁리(宮里)를 회상한다.
 4연에서 지금의 여월동인 여월리(如月里) 그리고 과천(果川)이라는 지명과 함께 애틋한 누님들에 관한 회상이, 5연에서는 풍수설(風水說)을 인용하며 대가족이 함께 살던 고택(古宅)을 그리고 있다. 이어 계양산과 관악의 봉우리가 보이는 마을 위치며 부마(附馬) 마을이 된 안동권씨(安東權氏)를 비롯한 마을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 웃어른들을 통해 들어오던 먼 옛날이야기까지 전설처럼 아름답게 펼쳐지다가 마지막에는 황폐한 산과 들을 만나며 사라져 가는 고향마을에 대한 강한 회한의 가슴을 내 보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분이(粉伊)
 
 길마봉(峰) 언저리에 시울진 노을빛이
 아주 산너머로 스러지는 것을 보자
 분이(紛伊)는 누구도 모르게 없어지고 말았다.
 
 〈당아래 고갯길에 山 그림자 가리도록 오늘도 긴 하루를 시름 짓던 분이는
 「----눈물은 덧없어라-------」
 갓 낳은 것 묻은 자리. 상수리 이슬 받는 뒷 산골에 다시 허리끈을 졸라맸었다.〉
 
 삼년째 신었대야 서슬도 닳지 않은
 별표 고무신만이 나란히 놓여 있는 -----
 
 무슨 일이냐는 듯이
 삽사리도 짖지 않는 밤
 
 마을은 모밀꽃으로
 환하기만 하였다.
  
갈마봉에 죽은 갖 나은 아이를 묻고 시름에 젖어 있던 분이는 오늘도 갈마봉이 보이는 당아래 고갯길에서 긴 하루를 보낸다. 당아래 고갯길에 산(山) 그림자가 드리우자 눈물이 덧없음을 느끼며 치마(허리)끈을 졸라매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 온 분이-. 별표 고무신이 나란히 놓여 있는 삽사리도 짖지 않는 고요한 밤 메밀꽃만 환하게 펴 있는 분이의 집, 분이의 고달프고 애달픈 마음을 읽게 해 준다.
  
  인간파편
       -성골 누님 영전(靈前)에.
 
 팔쭉지며 흐므러져 선지피 흐르는 기총탄상(機銃彈傷)
 응급 구호도 받을 길이라고는 없이 죽어 간다는
 두 시체(屍體)의 모습이랑
 마음 저리게 하는 기별 들으며.
 
 피투성이 된 모자(母子)의 사랑----
 한 덩어리의 시체(屍體)로 쓰러진
 수원(水原) 남양(南陽) 땅의 눈길 위.
 
 엄마 잔등에 업힌채 곤드래 수그러진
 모가지의 꼴이랑
 죽어서 있는 인간(人間)-
 고사리같은 두 주먹에
 
 계레의 원한(怨恨)을 움켜 쥔채.
 
 아아.
우리 다시 원한(怨恨) 남기지 못할지니---
  
 성골 누님의 최후를 그린 가슴을 애는 시(詩)다. 기총 탄환을 맞고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있는 모자(母子)는 성골 누님과 조카일 텐데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엄마 등에 업힌 조카는 고사리 손을 움켜쥐고 목이 꺾인 처참한 모습이었다. 가슴이 뭉클해 온다. 전쟁은 재앙이다. 우리 인류에 다시는 없어야 할 일임에도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일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기회가 있다면 이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전쟁의 폐해를 널리 알리고 싶다.
  
 백오(白烏)의 노래
 
 저도 모르게
 내려 왔음이여!
 
 먼 나라의 향수(鄕愁)로
 두 눈에는 항시 이슬 맺히고
 
 종일내
 나의 날아 갈 곳을 응시(凝視)하기
 
 놀 빛
 바알갛게 시울지노니----
 
 마지막 「백오의 노래」에서는 스스로도 모르게 고향(素砂)에 내려 왔음을 알고는 감격한 나머지 느낌표 하나로 그 감동을 나타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고향 소사(素砂)를 그리던 소향(素鄕)은 한국문학사에 작품으로는 커다란 공은 남기지 못했다. 시인이라기보다 언론활동이 더 활발하던 언론인이었던 때문이다. 그가 6.25를 겪는 동안은 어수선한 나라를 걱정하며 ‘나라 실정이 이러한데 내가 글을 써서는 뭐한단 말이냐’ 며 한동안 펜을 버린 적도 있었다.
소사구청베롱나무.JPG
소향관 앞의 베롱나무 꽃이 피었을때

1953년 첫 시집 『귀로』를 시작으로 그의 문단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는데 출판이 되자마자 과감한 그의 시 세계가 독자들에게 어필하여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이어 1957년 두 번째 시집 『불온서정』을 출판하고 1961년에는 세 번째 시집인 『세월 속에서』를 펴냈는데 이 두 권의 시집에서 이상로는 정적인 표현의 정서적인 시와 사회풍자의 정치적인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사회 부조리와 정치적 부패를 신랄하게 고발한 대표작으로는 「남대문 시장」 「태평로」등이 있다. 일부 평론가들이 사회 혐오와 정치적 부패에 대한 시류를 부각시켜 문제화하자 그것은 ‘오직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는 것으로 맞섰다. 유독 그런 주제들을 많이 다루게 된 원인으로는 아마도 그가 언론에 종사해 온 때문일 것이다.
 그는 또한 술과 담배를 많이 즐겼다. 어린 시절 이미 부모를 여의고 항상 외롭다는 마음에 술을 퍼 마셨으나 술이 그의 마음을 달래 주지는 못했다. 담배 또한 입에 달고 살았으며 술을 마실 때와 글을 쓸 때는 아예 줄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즐기는 것은 생각을 하는 - 새로운 싯귀를 연상케하는 매개체로 생각했다.
 온화하면서도 내성적인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개성이 강했다. 일찍이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의 문하에서 수학한 그는 주로 민족적 향토성과 윤리적 역사적 의식으로 창작에 몰두했다.
 소향은 시 외에도 수필을 많이 썼다. 그 중에도 세 번째 수필집「저 태어난 고장에 살면서도」는 수주 변영로의 시 구절을 인용했는데 수주 변영로를 존경하고 따랐음에 기인했다. 수주의 수필집 『수주수상록(樹州隨想錄)』을 책임 편집하기도 했다.

---계속

 

글/ 이재욱

 

이재욱프로필.jpg

 

한국소설가협회 서사문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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