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꽃이 몸을 벗는다/김양숙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1주년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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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1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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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아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독자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꽃이 몸을 벗는다

 -홍랑묘를 찾아서

 

젖은 마당이 길을 막는다

발이 빠지고 땅이 깊이 패이고

마침내 왔구나

청석골* 좁은 골목 안

창백한 도라지꽃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펄럭인다

 

묏버들 갈혀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단 한 번으로 건너버린 이승

함관령***사이에서 시간이 명료해지고

왈칵 쥐었다 풀어지는 빗줄기가 잔가시를 쏟아낸다

순도 높은 눈물이 몸 밖으로 흐른다

 

손톱 끝 발바닥까지 뜨겁게 지져대던 그 여름

내 몸 어디쯤으로 건너오는지

혀 아래 삼키지 못한 말이 펄펄 끓는다

몸 안에 칼금 긋고 제단 위로 눕거나

용암으로 넘쳐나거나 펄펄 끓어오르는

 

꽃이 몸을 벗는다.

 

 

*파주 교하면 다율리 소재

**“묏버들 갈려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홍랑의 시

***홍랑이 최경창과 헤어진 곳

 

김양숙 <지금 뼈를 세우는 중이다>. 시와산문사.

    

홍랑의 묘.png
홍랑지묘

   

몸은 천민이요, 눈은 양반이라는 말처럼 이중적 신분 구조 속에 위치했던 妓女, 조선 시대 여성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무형의 문화재로 위치해야 할 예술인임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왜곡된 의 상품으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필자는 詩書畵에 능했던 몇 명의 기생 및 여류 문인들의 음택을 꽤 오랫동안 답사했었다. 그 후 난, 만능 예술인인 그들을 妓生이 아닌 伎生으로 이름 짓고자 했다. 이 또한 딜레탕트의 여유가 아닐까 싶다.

 

시인은젖은 마당이 길을 막고”, “발이 빠지고 땅이 깊이 팼다고 한다. 묘역을 찾아가는 길에서마음도 젖고, 깊은 땅 속에 발이 빠지는’ -당시에는 논밭 두렁을 따라 걸어 들어가야 했다.- 느낌이 들었으리라. 왜냐면 시인은 논밭을 만나면 곡식이 되어주고, 산을 만나면 계곡물이 되고, 소나기를 만나면 폭포가 되는, 시인은 본질적으로 페르소나를 갖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청석골은 고죽 최경창과 홍랑의 음택 근처의 지명이다. 드디어 마을에 도착해서 주민들에게 위치를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때 주민들의 표정이 다소 궁금해진 이유는 뭘까.

 

문학, 예술인들은 의식주와 예술의 살핏점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문학은 예속을 벗어나는 역량이다라고 블랑쇼가 얘기했듯이. 문학인, 특히 시인은 돈 버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은 익히 아는바 이다. 그러다 보니 물질 만능의 사회에서는 심한 박탈감과 이방인의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시를 써야만 하는 정언명령과 같은 의무감이나 그 자체가 선이라 생각하고 느끼는 창작의 희열과 기쁨 때문일 것이다. 시인의 피는 워낙 뜨거워서 시심이 끓어올라 시상의 꽃을 피우고 한 편의 시는 열락의 불새가 되어 난다. 거기에 뒤따르는 고독과 고통은 어차피 시인의 식량일 수밖에 없지만.

 

조선 사대부들은 와 같은 관능적 향락은 성정(性情)을 흐리게 한다 해서 극히 금기시 한 시대였다. 이 시기에 대문장가인 孤竹 최경창과 기녀 홍랑은 짧은 만남을 통해 雲雨之情을 나누면서 의 의미가 내포하고 있듯이 홍랑은 외로운 대나무의 벗이 되어준다

 

그러나 어찌하랴. 다음 해 봄 서울로 발령을 받아 떠나는 고죽 앞에 홍랑은 첫사랑의 애틋한 정을 가눌 길 없어 영흥까지 따라나섰지만 더 이상 갈 수 없어 함관령(咸關嶺)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왜냐면, 당시에는 평안도나 함경도 사람은 서울에 못 들인다는 금법인 兩界을 어겼다는 죄명이다.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홍랑에겐 분노의 장벽이었을 것이고, 혀 안엔 죽은 단어만 고였을 것이다. 고죽 또한 머루알 같은 그녀의 손을 차마 어찌하지 못하고 놓았을 것이다

 

헤어짐의 사랑앓이에 딱딱한 빵을 씹고 있는 애틋한 사연 앞에 시인의 말처럼 함관령과 시 사이, 헤어져야 할 시간이 명료해지고 그로 인해 순도 높은 눈물이 눈앞을 가릴 수밖에 없음을 얘기하고 있다. 또한 뜨거운 여름의 몸 안, 혀 속에서 용암처럼 펄펄 끓어오르는, 아님 제 몸 안에 칼금을 긋고서 제단 위에 누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들 사이의 연정에 스며들어 단장의 비애를 읊조리고 있다. 답사를 떠나기 전 시인은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공부했음이 역력해 보인다.

 

결국 고죽은 이러한 일로 파직 되었고 홍랑은 눈물을 뿌리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고향으로 옮겨야만 했다. 창가에 드니 날은 저물고, 이별을 위로한 것인지 아니면 슬퍼하는 것인지 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홍랑은 길가에서 물 오른 묏버들을 꺾어 고죽에게 보내며 심회를 읊었다.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난 창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에 새닙 곳 나거단 나린가도 녀기쇼셔.

 

단 세 개의 구로 된 짧은 평시조이다. 관념을 표출한 사대부들과는 달리 솔직하고 애상적이고 여성적인 표현을 하면서 떠나는 임에게 홍랑도 느꺼운 감정을 드러냄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임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묻어나고, 첫 구절의 임의 손대처럼 도치법을 써서 묏버들을 꺾어 주는 의미를 강조하고, 버들가지에 파릇파릇 돋아나오는 새잎을 통해 청순한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여자의 섬세함을 연상케 하는 표현력은 홍랑이 엘레지(elegy)詩妓임에 틀림이 없다.

 

울연한 마음, 얼마나 애가 끓었기에 버들가지를 꺾어 보내며 창밖에 심어 놓고 보아달라고 애원을 했겠는가! 그러면서 새잎 나거든 애련의 이별을 상기 시켜 달라는 홍랑. 그녀의 시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고, 문학사에서 아름다운 戀詩로 꼽히고 있다. 이렇게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작품으로는 黃鳥歌를 비롯해서 고려가요인 서경별곡정지상의 送人황진이의 시조와 김소월의 진달래꽃등의 문학작품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홍랑이나 고죽 또한 만만치 않다. 時時變轉하는 요즘의 사랑법을 되새겨본다.

 

그 뒤 최경창과는 소식이 끊겼다가 3년 뒤 고죽이 병이 드러누워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홍랑은 그날로 길을 재촉하여 밤낮을 걸어서 일주일 만에 서울의 고죽을 찾아갔다. 그리고 정성을 담아 간호를 하며 곁에 있어 주었다.

 

그 후 고죽의 사망 소식은 그녀로 하여금 몸조차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을 안겨주었고, 죽은 자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死者不可還生) 법이니 이제는 두 번 다시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통한에 홍랑은 목을 놓아 울 수밖에 없었다. 홍랑은 곧바로 마음을 추슬러 객사를 한 고죽을 위해 시묘살이를 했다.

 

꽃이 몸을 벗는다.” 왜 꽃이 몸을 벗어야만 했을까?

시인은 함축적이고 숨겨진 시니피에는 버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시니피앙만 남겨 놓았다.

 

 글/시인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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