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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기념 특집 - 이재욱 소설가와 함께하는 부천 향토 문학이야기 / 부천이 낳은 시인- 素鄕 李相魯 연구2

소향(素鄕)의 『문장가(文章家)』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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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8.0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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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기념 특집- 이재욱 소설가와 함께하는 부천 향토 문학이야기
 부천이 낳은 시인- 素鄕 李相魯 연구

 

 소향(素鄕)의 『문장가(文章家)』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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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관-부천 태생의 시인 이상로(李相魯)[1916~1973]의 호 소향(素鄕)에서 이름을 따온 행사 및 공연장이다.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에 있던 구 소사구청이 1996년 소사본동 새 청사로 이전하면서 구청 내 별관에 신축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1964년 소향(素鄕)은 『문장가(文章家)』라는 동인지(同人誌)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단지 시(詩)나 소설(小說)을 쓰는 문인(文人)들만이 아니라 음악(音樂) 미술(美術) 분야의 대가들도 포함했으며 당시 문헌정보가 부족했던 현실을 감안 번역가(翻譯家)들도 함께 했다. 『문장가(文章家)』에는 소향 이상로가 심혈을 기우려 전력투구한 그의 화려한 문학(文學)이 녹아 있다. 시와 수필을 쓰는 것은 물론 편집도 하고 동인들의 연락사무도 보는 등 혼자서 동인일 모두를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때문에 『문장가』를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는 이상로의 문학 활동을 쉽게 파악할 수가 없다.
 1964년 봄, 창간호를 발행했다. 공교롭게도 1964년에 발간한 창간호는 64페이지짜리였다. 페이지가 말해 주듯이 창간호는 지면이 그리 넉넉하지 못해 많은 작품을 수록 할 수가 없었다. 임인수의 시, 김기승의 논고(論考) 이희승의 「인간가치의 붕락(崩落)」 외 수필 6편 금동원 이상로 김화진 남용우의 기행문 등이 내용의 거의 전부였다.
 이어 118페이지나 되며 문제작까지 수록 돼 있는 제 2호를 발행하게 된다. 여기 제 2호에는 문제작을 위시한 많은 사람들의  많은 작품이 수록 돼 있다. 소향의 편집으로 발간 된 동인지이다 보니 여기 저기 소향의 채취가 물씬 풍기어 소향을 알 수 있게 하는 아주 좋은 자료라 아닐 수 없다.
 우선 『문장가』 2호에는 서문으로 초대게재<招待揭載)라 하여 월탄 박종화의 글이 올라 있으며 삽화로는 「고바우 영감」의 만화가 김성환을 비롯 노수현 백영수 구인회등 무려 7인의 이름이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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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가 2호 표지 - 소향이 삽화가 박서보(朴栖甫)선생에게 보낸 것으로 소향의 친필이 보인다)

 

서문 다음으로 수주 변영로의 글이 올라 있는데 이「불혹(不惑)과 부동심(不動心)」은 한국일보 천자춘란(千字春秋)란에 발표한 것으로 큰 반향을 이룬 글이었다. 당시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제직하고 있던 수주를 교수회나 이사회의 결의도 없이 총장과 이사장에 의해 하루아침에 파면의 길로 내닫게 했던 문제의 글이다. 이상로는 그의 저서 『논문강화(論文講話)』(계몽사 간 418페이지)에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설명했으며 『문장가(文章家)』 2호에 게재하여 다시 당시의 사태를 심각하게 부각 시켰다.
 또 한편의 문제 글은 「가면인두상(假明人頭上)에 일봉(一棒)」이라는 것으로 1920년 5월 8일~9일 2회에 걸쳐 동아일보(東亞日報)에 최유(崔溜). 권직규(權直奎)가 발표하여 당시 유림(儒林)들 특히 영호남 유림(儒林)들의 분노를 크게 자극했던 글이었다. 파장은 점점 커져 전국적으로 동아일보 불매운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성균관을 통하여 정간운동까지 일으키는 대소동이 있었다. 이상로는 이글 또한 『문장가』 2호에 게재하여 언론 자유화의 기치를 높게 외치기도 했다.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성환의 「인간 동물원」이란 수필도 게재돼 있다. 이상로의 절친한 문우(文友)이자 친구인 김성환은 만화가로 더 유명했지만 유화를 즐겨 그리는 정통 화가이기도 했다. 유화만의 개인전을 두 번이나 가졌으며 미술로 다하지 못하는 그의 나머지 인생 스토리는 수필로 써 나갔다. 보성사 간 『에드버룬의 미소』는 「구두쇠」를 비롯한 그의 수필이 55편이나 수록 돼 있으며 그가 그린 삽화도 함께 수록 돼 있어 한층 더 흥미로운 수필집이라 하겠다. 그가 『문장가』의 동인으로 활약한 것은 만화가나 화가가 아닌 순수한 수필분야의 수필가라는 것도 이상로의 『문장가』를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상로는 자신의 작품을 2편이나 수록하고 있는데 그 중 한편은 「바닷가 통신」이라는 수필 형식의 글로 제 1신(信)에서 5신(信)까지 각기 독립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대천 해수욕장 수영강습회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쓴 글이나 이 글 역시 문제가 있다하여 동아일보의 편집장에게 “세상이 뒤숭숭, 안정되지 못한 때라 서요.------”라며 게재를 거절  당했던 글이었다. 1963년 여름의 일이고 보면 1962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 군이 정권을 쥐고 있던 시대라 이해가 가기도 한다.
 “여기 해변에 와서 밤에 자지 않고 달리는 마음이란 우리도 그 전설의 덕망과 선정아래 쌀 걱정이랑 모든 번거로움을 잊고 국민들이 다 같이 태평세월을 노래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바다의 품에 안겨 저 구름속의 달로 하여금 운중풍월(雲中風月)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달빛의 서늘한 바닷가에서 청룡(靑龍)의 전갈 성좌(星座)를 동경하여 마지않음이 어찌 나뿐이겠습니까.”
 위와 같이 직설이 아닌 은유로 시대를 풍자하였으나 그것이 직접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아직 국민소득이 바닷가의 낭만을 즐기기에는 부족하여 자칫하면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큰 이유였으리라 보여 진다.
 제 3신(信)의 첫 구절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느낀다는 대목이 재미있어 인용해 본다.
 “우리나라의 전설에도 신라 때에 신(神)들이 모여 앉아서 어디에다 산을 앉히고 어느 쪽으로 강물을 흐르게 하고 또는 넓은 들을랑 어떻게 배치하고 등등을 논의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읍니다마는 마호메트는 어느 날 산(山)에게 명령을 내려 산더러 지정한 날에 자기에게 오라고 하였더랍니다. 그리하여 그날에 많은 사람들은 산이 움직여 오는 것을 구경하려고 모여 들었는데 마호메트가 아무리 큰 소리로 산에게 호통을 쳤어도 산은 드디어 다가오지를 않았읍니다. “암만해도 산(山)이 말을 듣지 않으니 내가 산(山)에게로 가야만 되겠다.”하고 사람들을 남겨두고 산을 항하여 걸어갔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신라시대의 신(神)들도 마호메트도 아닙니다마는 서울 시내(市內)로 바다를 불러들일 념의(念意)도 하지 않았으며 아예 당초부터 바다를 찾아서 여기 대천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파도는 부르지 않아도 진격하듯이 밀쳐 들어오고 또 물러가도록 명령을 내린 적이 없건마는 조수(潮水)는 제시간이면은 물러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저절로 상대성원리(相對性原理)를 느끼는 것입니다.”
 (습니다.)의 당시 표기가  (읍니다.)여서 (읍니다.)를 그대로 인용했다. 불과 수 십 년 전의 글이 이미 古文처럼 보여 지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문장가 2호 목차-제목과 필진들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다.)

 두 번째의 것은 칼럼으로 역시 문제의 글이다. 1963년 신문의 날에 붙여서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역시 속(俗)된 처세(處世)의 심정에서 스스로 유보(留保)하였던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햇볕보지 못한 칼럼」이라는 장문의 글 가운데 “변변치는 못하지만 그래도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사명을 다하자는 일념으로 쓴 글들이 수도 없이 통과부문에 걸려 활자화 되지 못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제우스의 神일지라도 나의 정신을 정복 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는 인용구를 주석으로 달고 있는 이유가 결국은 이렇게라도 하고픈 말은 하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편집후기 이전의 4면은 창간호의 반향인 독자들의 의견을 수록했는데 이 또한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의견들이 편지형식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시대인 요즘에는 소셜 네트워크로 즉각 알 수 있는 반향(反響)을 몇 달 후에까지 취합해야 했던 그 시절의 시대성을 엿볼 수 있다.
 끝으로 편집후기에서는 기업출판에 의한 잡지에는 없는 『문장가』지(誌)에서만 접할 수 있는 명사들의 글을 수록했다고 이상로는 자부하고 있다. 또한 선언에서도 밝힌 것처럼 행세주의(行世主義)적인 문인(文人)됨을 저어하듯이 동인지 운동을 꾀하지 않으며 오직 동호인끼리 편집 발행 배부하는 자기표현이 있을 따름이라고 했다.

 

소향2.jpg
(박서보 선생에게 보낸『문장가』책에서 발견한 집필진들의 친필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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