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0-15(화)

月下孤吟/김현구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1주년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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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0.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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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아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독자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月下孤吟/김현구


달이 기척 없이 떠와 하늘에 걸리고
벌레 하나 지껄이지 않는 
이 밤 玲瓏한 沈黙! 

 

때도 그 걸음을 멈추운 듯
고요한 달빛 아래
꽃가지 잡습니다

 

天理가 그윽한 밤 三更 
無我한 나는
달 아래
佇立합니다.  

 

永劫의 一隅에 서서 
슬픔과 기쁨을 떠나
나는
不死身이 되오리까

 

-시집(비매품) <현구시집>


김현구.jpg
김현구(오른쪽 두 번째)와 김영랑(왼쪽 첫 번째)이 지인들과 경주 분황사 여행 중에 촬영한 기념사진(1940.5.26.) (출처. 강진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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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처럼 맑고 투명한 달밤이 아니던가. 누구나 청명한 시골의 밤하늘을 쳐다보면 발걸음 멈추어 달빛에 젖어 보고 싶어 한다. 시인의 고향 강진 밤하늘이 얼마나 청명하고 고요하기에 –자동차도 가로등도 흔치 않은 시절- 벌레마저 울음을 멈춘 가을의 달밤, 오죽했으면 침묵마저 영롱하다고 하겠는가. 

시인 이백이 달빛 아래 외로이 술잔을 들었다면(月下獨酌), 시인은 달빛 풍경을 홀로 읊조리고 있는 모습에서(月下孤吟) 禪詩 한 수를 접한 느낌이다. 덩달아 우리도 시적 진술에 의해 강진만의 달빛 아래 서서 꽃가지를 잡고 서 있는 듯하고 아님 이백처럼 此忘憂物에 취하는 듯하기도 하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시가 시인에게 다가오는 것이고 다가오는 것을 시인은 적고, 쓰는 것이다. 시인을 채우고 있는 생각들을 비우지 않으면, 한마디로 自我가 죽지 않으면 다가오려는 시도 도망가고 사라져버린다. 시가 시인에게 다가올 때 시인은 내 안에 들어앉은 누군가를 죽여야 그 빈자리에 시가 들어와 채운다.

 ‘無我’란 불변의 나, 진정한 나가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특정한 연기적 관계 속에서 내가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자아’란 나를 그 안에 가두는 틀이 된다. 이러한 틀을 깨부수고 넘어서야 하는 것이 ‘무아’라고 할 때 시인은 이미 지금의 ‘나’를 벗어나 넘어서고 있다. 어쩜 신앙적 체험이나 깊은 명상에서 오는 몽환적 환상의 황홀경, 엑스터시의 상태처럼 보인다. 한밤중인 삼경, 가을의 달밤, 나를 벗어나 내가 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자기도 모르게 天理를 터득하며 스스로 젖어든 것이다.

동서양 미학의 차이는 서양은 형이상학적이고 동양은 일원론적이다. 흔히 플라톤이 말했듯이 서양은 사물에는 실재하는 이데아가 있고, 동양은 사물 자체가 본질이고 실재이다. 주객을 초월한다. 스테이스 교수가 말했듯이 “초주관적”적이다. 마찬가지로 시인이 달을 보고 달이 시인을 보고 있는, 시적 화자와 달의 이미지가 합일된 경지를 초월한 무아지경의 상태에 있다. 얼마나 가을 달빛에 도취되었으면 아니, 달빛과 자신을 초탈했으면 영겁의 한 모퉁이에 서서 일희일비하는 속세를 떠나 불사조가 되고 싶었을까.

며칠 전(9/28) 경남 하동군의 ‘禪詩’공모전의 시상식장에 다녀왔다. 시의 특성상 불교적이기에 ‘해인총림 방장, 벽산 원각’ 큰스님께서 직접 시상하셨다. 이때 하신 말씀이 선이란  선악과 호불호, 彼我와 장단고저 등등을 떠나면 “隨處作主,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되어 선 자리에 바로 참다운 삶이 된다”라고 하셨다. 슬픔과 기쁨을 떠나고자 한 시인 자신이 ‘禪’이다. ‘禪詩’공모전의 대상 작품을 보자.

 

여여 如如/구정혜(부천)

 

산길을
한 시간쯤 걷다보니
나무의자 하나

별 생각 없이 기냥 누웠다
걷는 동안 따라오던 잡다한
생각들 온데 간데 없다.

허공과 하나 되어 누운 몸에
하늘과 나무와 숲이
모두 들어온다

내가 있는데 내가 없고
만물이 가득한데
만물이 없는 듯
세상과 내가 둘이 아닌
알 수 없는 그 말의 경계를 헤맨다.

오래전 와불이 누워서 바라본
하늘이 이러하였을까
생각에 생각을 포개고 있다.

시집 <아무 일 없는 날>, <말하지 않아도>

 

오래전, ‘서편제’ 촬영지였던 완도군 청산도를 갔다가 막 배를 놓치고 예비로 들어오는 배를 차 안에서 기다렸다. 선착장 잔물결에 일렁이는 달빛을 보면서 cd로 듣는 드뷔시가 작곡한 ‘달빛’, 몽환의 선율을 듣는 게 아니라 마시고 있었다. 은빛의 학꽁치도 함께. 조석으로 서늘한 가을이다. 시인이 달빛에 젖어 무아의 경지에 이르렀듯이 드뷔시의‘달빛Debussy Clair de lune ’을 들으며 필자도 잠시 취해본다.

 

덧붙이며
전라남도 강진 출생. 본명 현구(炫耉). 시인은 1930년대 김영랑 시인과 함께 시문학파 동인으로 지금은 매우 활발한 조명을 받고 있다. 주요작품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 《물 위에 뜬 갈매기》 1930년 박용철(朴龍喆)이 주관하던 《시문학(詩文學)》 2호에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 《물 위에 뜬 갈매기》 《거룩한 봄과 슬픈 봄》 《적멸(寂滅)》 등 4편을 발표하고, 그 뒤 《문예월간(文藝月刊)》과 《문학(文學)》지를 통해 1934년 4월까지 8편의 시를 더 발표하였다. 그 후 낙향하여 계속 시를 썼으며, 그것을 묶어 《무상(無常)》이라는 제목의 시집 발간을 준비했으나 6·25전쟁 중에 사망함으로써 좌절되었다. 김현구 시인의 차남 김문배 님이 현재 부천에 거주하고 있다.


홍영수 시인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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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 09581
양성수

시인 김현구 
 
 
 
누구는 
머리맡에 원고지 쌓아놓고 글 쓰는 게 소원이고 
 
어떤 이는
시집 한번 내놓는 게 소원이었을 텐데 
 
그런 원, 풀 수 있었건만 
지전 몇 닢에 팔리기 싫어
한 권 시집 발간마저 포기한 이는 누구신가요 
 
나라 잃고
나랏말마저 잃어가던 시절
남도의 자연과 인정을 사랑한 만큼 쏟아낸
여든다섯 수 
 
육필에서 
묻어나는 서늘한 기운 
 
획마다 
검불 한 점 없는 정화수 
 
당신은 삶이 어떠했길래 
이다지도 글이 
시퍼렇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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