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20(일)

또 다른 나를 찾아서 8 - 홍성균

도로를 건너려고 차도 쪽으로 내려와 걷고 있는데 아무런 느낌도 감촉도 없이 휴대폰만 쏙 빼서 달아나는 오토바이를 보고나서야 날치기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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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2.0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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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과달라하라 삐삘라언덕에서신문12월.jpg
과달라하라 삐삘라언덕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이면도로로 왕복 2차선 도로인데 희미한 가로등불로 인해 주변은 어두컴컴하고 간혹 지나가는 버스가 길을 밝혀 줄 뿐이었다. 바둑판식 격자도로라 한번 방향이 엇나가면 엉뚱한 곳을 헤맬 수밖에 없는데다가 랜드마크 건물이나 특별히 티가 나는 건물은 없고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구별이 어려운 곳이다.

밤이 늦어서 빠르고 확실하게 숙소를 찾아 간답시고 휴대폰으로 지도를 확인하며 걸었다. 도로를 건너려고 차도 쪽으로 내려와 걷고 있는데 아무런 느낌도 감촉도 없이 휴대폰만 쏙 빼서 달아나는 오토바이를 보고나서야 날치기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늘이 노래지고 허탈해져 기운이 쭉 빠졌다. 곧 정신을 차리고 한국말로 고함을 치며 한참을 쫓아갔다.

 “야 이 새끼들아! 거기 서! 도둑이야! 저 놈 잡아라!”  

그러다 더 이상 쫓아가다가는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어두컴컴한 길로 사라져가는 오토바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본 -과달라하라 전경신문12월.jpg
과달라하라 전경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밤에 탱코 공연 보러 갈 때 이외에는, 밤에 혼자서 다니지 않았고, 거리를 걸으면서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꺼내지도 않았다. 꼭 꺼내야만 될 경우에는 커버 고리를 손가락에 끼고 다녔다. 길을 가면서도 차도 쪽에 있는 손에 들지 않고 반대 쪽 손으로 옮겨서 들고 다녔으며, 늘 뒤돌아보면서 신경 쓰고 걸었었다.

 그런데 일이 어그러지려고 밤에 다니고, 커버도 셀카봉에 안 들어간다고 배낭에 처박아 놓고, 길을 가면서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길을 바로 건너지도 않으면서 차도를 따라서 걸었고, 차도 쪽 손에 들고 걸었으니, 이건 그냥 가져가라 한 거나 마찬가지다.

 

사본 -과달라하라 중심가신문12월.jpg
과달라하라 중심가

 

휴대폰 탈취범 일당은 그런 나를 목표로 정해서 아무런 기척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슬금슬금 내 뒤를 따라왔나 보다. 길을 건너려고 차도로 내려와 걷는 순간을 포착해서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마치 휴대폰이 알아서 몰래 공중부양해서 빠져나간 것처럼 손에서 빼 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전거도 아니고 오토바이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뒤따라 올 수 있다니! 무척 경이롭게 느껴지면서 소름이 돋았다. 정말 대단한 기술이고, 내 휴대폰을 가져갈 자격이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본 -과달라하라 지하차도 입구신문12월.jpg
과달라하라 지하차도 입구

 

 무슨 일이 생길 때는 계속 거기에 해당되는 증상이 나온다. 어제 과달라하라에 도착해서 부터 지금까지 많은 전조증상이 있었는데 그걸 알아채지 못한 것이 불행의 시작 이었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 이제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하얘져서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슬프고 화나고 울고 싶고 다리에 힘이 쭉 빠져서 주저앉고 싶었다. 한참을 멍하게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서 숙소로 돌아왔는데, 천당에 있다가 갑자기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사본 -과달라하라 그래피티 2신문12월.jpg
과달라하라 그래피티

 

 씻고 침대에 누우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서 뚜껑이 열리고 가슴은 벌렁거리고 심장 뛰는 소리가 쿵쿵대고 울고 싶어 미치겠어서 안정이 안 됐다. 병신 같은 놈이라고 자책도 하고 벽에 머리를 들이 받고 싶기도 했다.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참고 있었다. 여럿이 함께 있어서 꼼짝 못하고 누워있으려니 사지가 떨리면서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고, 너무 슬프고 화가 났다.

 

사본 -과달라하라 우니온 정원신문12월.jpg
과달라하라 우니온 정원

 

 ‘마누라 먼저 보내고 나면 이런 기분이 들까’

 쿠바에서 처음 잃어버렸을 때에는 예비용으로 가져온 게 있어서, 또 하나 있으니까 하는 생각에 여유가 있었다. 오히려 새 걸로 바꾸려다 안바꾸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3일 만에 똑 같은 실수를 다시 했다는 사실에, 더욱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주의해야 된다는 생각을 깜빡한 거다.

 ‘이 새대가리야 그걸 금방 까먹니?’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이게 나와 어떤 관계가 있지? 과연 인생을 즐겁게 살고 있기는 한 건가? 그래서 그 결과가 고작 이거야?'

 휴대폰을 강탈당하고 나니까 모든 게 싫어졌다. 회의가 들면서, 머릿속에서는 예약을 변경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 과정을 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낮에 무장 경찰이 잔뜩 깔려 있어봐야 밤에는 모두 철수하고 없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는 밤에 무장군인들이 골목마다 경비를 서고 있어서 정말 안심하고 다녔었는데, 여기는 낮에만 다녀야 되는 곳인가?

 

사본 -과달라하라 중심가를 배경으로신문12월.jpg
과달라하라 중심가를 배경으로

 

 항상 걸어 다니며 여행을 하는 타입이라 최대한 신경 쓰고 조심하면서 다녔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날아갔다. 휴대폰에는 여행지 정보, 지도앱에 표시해 놓은 행선지, 그동안 찍은 사진과 여행 기록 등 너무나 귀중한 것이 많이 있다. 휴대폰이 없으면 여행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카드를 한번이라도 잘못 사용하게 되면, 카드사에서 문자를 보내고, 회신이 없으면 바로 카드를 정지해서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홍성균(洪性均) 1957.10.3대일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세종대학교 대학원 산업환경학과 졸업.

여행경력 : 1998 단체여행(독일, 프랑스, 스위스 2005 자유여행(일본 동경, 교토, 오사카 2006 단체여행(싱가폴, 인도네시아, 중국 곤명, 계림, 상해 2007 단체여행(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2008 단체여행(호주, 뉴질랜드 2010 단체여행(싱가폴, 인도네시아), 랜터카 자유여행(일본 후쿠오카, 큐슈 2011 랜터카 자유여행(미국, 일본 동경 2013 단체여행(싱가폴, 인도네시아 2015 패키지여행(중국 상해), 단체여행(대만), 랜터카 자유여행(일본 홋카이도 2016 랜터카 자유여행(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 2017 패키지여행(이탈리아), 자유여행(중국 대련, 연길), 배낭여행(인도, 네팔 2018 배낭여행(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페루, 에쿠아도르, 콜롬비아, 멕시코, 쿠바 2019 패키지여행(중국 장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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