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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 부천에 오다 - 제4회

이재학 단편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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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2.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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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펄벅기념관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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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은 9살 때 미국으로 갔습니다. 유일한의 아버지는 이승만 박용만 등의 개화파 지식인들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서양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강연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유일한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서양의 문물을 배워 나라에 공헌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남인 유일한을 선교사를 통해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미국으로 떠나는 어린 아들 유일한에게 아버지는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유일한은 낯선 곳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고 자꾸만 부모님과 고향 생각이 나서 힘들었지만 곧 그곳의 생활에 적응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었지만 유일한은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당부를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유일한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더욱 노력하였습니다. 부지런한 유일한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어느덧 청년이 된 유일한은 대학에 다니면서 중국 사람을 상대로 사업을 하였습니다. 유일한이 있는 곳에는 유일한과 마찬가지로 고국을 떠나와 말 설고 낯 설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중국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일한은 무슨 사업을 할까 궁리하다 중국 사람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비단, 찻잔, 부채 등 중국 물건을 팔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물건이 잘 팔릴까 걱정하였지만 오랫동안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는 중국 사람들에게 중국 물건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유일한은 중국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습니다.

첫 사업에서 성공한 유일한은 이번에는 중국 사람들에게 숙주나물을 팔기로 하였습니다. 숙주나물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두에 꼭 들어가므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유일한이 콩나물을 팔았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유일한은 콩나물이 아니라 숙주나물을 통조림에 넣어 팔아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유일한의 사업은 번창했지만 그럴수록 유일한은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일한이 사업을 한 것도 일본에게 강제 합병된 조국의 독립을 위한 방편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일한은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유일한은 미국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귀국하였습니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유일한은 유한양행을 세웠습니다. 유한양행의 상표 버드나무는 서재필 박사가 유일한에게 선물한 목판 그림속의 버드나무였습니다. 유일한은 조회 때 마다 직원들에게 강조하였습니다. 유한양행은 결코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회를 위해서 있는 것이며 이 길을 통하여 경제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일제의 방해에도 1924년 시작한 유일한의 사업은 크게 번창했습니다. 1936년 유일한은 부천 심곡본동에 유한양행의 소사공장을 세웠습니다. 소사공장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과 목조 건물 세 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곳에는 직원들을 위한 사택과 기숙사 운동장 수영장 등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편히 쉴 수 있도록 좋은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옛 펄벅기념관과 펄벅여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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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몹시 궁금한 게 있는지 선생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질문을 했습니다.

그 유명한 유일한 선생님의 유한양행이 부천에, 그것도 깊은구지 심곡본동에 있었다니 정말 놀랍네요.”

놀랍죠. 사실 유한양행이 부천 심곡본동 깊은구지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아마 부천에 사시는 분들도 잘 모를 걸요.”

그런데 선생님 유일한 선생님이 왜 부천 심곡본동에 유한양행 공장을 세웠을까요?”

저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대강 짐작할 수는 있어요.”

왜죠?”

공장은 대부분 교통이 좋은 곳에 짓죠. 그리고 공장을 돌리려면 전기가 있어야겠죠.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서 교통이 좋고 전기가 들어오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천 소사역에는 서울 인천을 왕래하는 기차가 다니고, 소사역 주변의 소사삼거리에는 전기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인천의 항구도 가깝고요. 깊은구지가 소사역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공장이 들어서기에 안성맞춤인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죠.”

선생님 설명을 들으니 정말 이곳이 좋은 입지조건을 갖고 있었네요.”

이제는 다 이전하고 부천에 없지만 좋은 입지조건 덕분에 2000년 전까지만 해도 부천에 많은 공장들이 있었죠. 사실 부천은 산업도시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파트 도시라는 오명을 덮어쓰고 있으니 참 안타까워요.”

아빠와 선생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아가 끼어들었습니다.

펄벅 할머니는 유일한 할아버지의 소사공장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빠도 이제 생각이 난 듯 정아의 말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선생님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 사이에 무슨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선생님이 아빠와 정아를 바라보면서 말을 했습니다.

당연히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 사이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죠.”

아빠가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두 분의 나이 차이가 겨우 두 살인데 혹 연인 사이는 아니었나요?”

아빠의 말에 깜짝 놀란 선생님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습니다.

무슨 그런 엉뚱한 말씀을 하세요. 연인이라니.”

그럼 두 분이 어떻게 알게 되었죠?”

시대 상황이 두 분을 만나게 만들었죠.”

시대 상황이라니 무슨 뜻이죠?”

일본이 세계 제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국은 대한민국과 중국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죠. 당시에는 미국에서 대한민국과 중국에 대한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죠. 한마디로 미국은 미국에 좋은 정보를 제공해줄 만한 특별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그 특별한 사람으로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가 뽑힌 거고. 펄벅 할머니는 중국에서 오래 살았고 중국어에 능통하니 중국 담당 고문으로, 유일한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대한민국의 사정에 밝으니 대한민국 담당 고문으로 OSS의 요원이 되셨죠. ! OSS는 미국 CIA의 전신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국정원이 맞겠네요.”

그러니까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가 정보원이 되었네요.”

참 내가 깜빡했는데 유일한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OSS의 요원이 되셨죠. 대한민국으로의 침투를 대비해서 힘든 훈련을 모두 받으셨지요. 그때 유일한 할아버지의 나이가 50대였습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OSS에서의 인연이 유한양행의 소사공장으로까지 이어졌군요.”

아버님의 말씀이 맞아요.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는 두 분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죠. 우선 두 분은 서로 마음이 통했으니까요. 펄벅 할머니는 자신의 고국과도 같은 중국이 일본의 침략을 당하고 있죠. 유일한 할아버지는 조국을 일본에 빼앗겼지. 그러니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죠.”

사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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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펄벅은 대한민국에 있는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의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유일한 할아버지도 교육사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펄벅 할머니의 뜻을 알게 된 유일한 할아버지는 부천 심곡동의 유한양행 소사공장을 펄벅재단에 기증하기로 하였습니다. 유일한 할아버지로부터 유한양행 소사공장 건물을 기증받은 펄벅재단은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시작하였고 많은 수의 혼혈 아이들이 펄벅재단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펄벅 할머니가 우리 부천 심곡본동 깊은구지에서 소사희망원을 하게 된 게 우연이 아니었군요?”

우연이 아니죠. 펄벅 할머니의 마음과 유일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으로 이어져서 소사희망원이 탄생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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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펄벅 할머니 같은 훌륭한 분이 우리 동네에서 소사희망원을 했다는 것을 알아서 너무 기뻐요.”

아빠는 펄벅 할머니가 우리 동네에서 혼혈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하신 것도 좋지만 유일한 할아버지가 펄벅 할머니의 소사희망원에 도움을 주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정아는 아빠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도 크면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 같이 불우한 이웃을 돕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그럼 아빠도 분명히 좋아하실 거야.’

정아는 빨리 집에 가서 엄마와 오빠에게 펄벅 할머니와 유일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정아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아빠의 손을 잡고 끌었습니다. 아빠는 정아가 왜 서두르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끝---

 

 

 

 

 

 

 

이재학2.jpg

이재학

마라토너/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협회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부천 소새울에 산다(1,2,3,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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