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20(일)

부 추/황정순 수필가

초봄에 돋는 첫 부추 싹은 며느리에게 주지 않고 딸한테 준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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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5.0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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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순.jpg
황정순 수필가

봄볕에 부추 싹이 바늘 끝처럼 올라온다. 달래, , 부추는 향을 지니고 있는 푸새나 나무새로 가장 먼저 봄을 뚫고 올라오는 밭작물이다. 그 중에서도 부추는 비늘줄기 같은 얇고 뾰족한 싹이 어찌 그리 힘이 좋은지 겨우내 응겨 붙은 흙을 밀고 나오는 모양새가 여간 예사롭지 않다. 처음 올라오는 부추 싹 끝이 발그스레한 그 놈들을 볼 때마다 빙그레 웃음부터 새어 나오니 이유가 사뭇 그럴싸하지 않은가. 초봄에 돋는 첫 부추 싹은 며느리에게 주지 않고 딸한테 준다고 했던가? 고것이 남자들한테 강장제가 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댁을 자주 드나들며 갖가지 농산물을 얻어다 먹었지만, 첫 부추 싹을 얻어다 먹어본 기억이 안 난다. “봄에 올라오는 부추 싹이 사람한테 좋단다.”라는 소리는 언제인가 시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때 그 첫 부추 싹의 행방이 묘연하지 않은가.

 시아버님이 계시지 않았으니 시아버님 아침상에 올랐을 리는 만무하고, 며느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시누이한테 보냈을 것이라는 추측이 며느리된 나의 심보인 것이다. 초봄 부추 싹이 품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비밀을 이제야 알았으니 나는 얼마나 우매한 아내였는가.

 부추는 그동안 한갓 양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여름철 더위에 쪽파가 귀하면 부추를 넣는다. 삼복더위에 쪽파가 맥을 못 추는 틈새에도 부추는 계절을 넘나들며 처녀의 풀어헤친 머리처럼 너풀너풀 잘 자라니 파보다 생명력이 강함을 증명하여 주는 셈이다. 그 뿐인가, 어디서든 사시사철 씨를 뿌리거나, 뿌리를 갈라다가 심어만 주면 자생력이 강하여 몸살도 없이 제 집인 양 잘 자란다. 달래과에 속하는 다년생 산성식품으로서 내 고향 충청도에서는 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어렸을 적에는 부엌에서 급히 양념을 찾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마당가에서 한 줌 베어다가 씻어서 갖다드리곤 했다. 그 부추를 벨 때는 칼을 땅에 바짝 대고 잘라야 그 다음 싹이 깨끗하게 올라온다

 

  

그 부추 싹이 빠알갛게 솟아오르니 어찌 아녀자의 눈웃음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꼭 버섯망태기를 뚫고 나오는 사내놈의 것이기처럼 말이다. 온몸의 혈기를 끝으로 모아 꼿꼿하게 일어서는 그 놈의 모습으로 밖에 볼 수 없지 않느냐. 그리 힘이 좋으니 바늘 끝 같은 연약함으로도 겨우내 굳어진 땅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진시황의 강장제를 금강산에서 찾을 소냐. 바로 코앞에 있거늘. 봄철 부추는 인삼 녹용보다 좋다는 남성 특유의 보약인 봄철 부추가 바로 옥상 텃밭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집에서는 알 리가 없으리라.  그러고 보니 부추와 개고기는 쌍쌍 파트너이다. 굳이 음식물도감을 펼쳐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붉은 색의 근육질 고기에 벌건 고춧가루를 넣고 살짝 데쳐낸 새색시 같은 연초록 부추를 넣어 버무리면 그만인 요리. 오천년 이어온 전통의 요리비법이 맥을 이어오는 이유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아녀자의 손끝에서 버무려질 때 어이, 부추 좀 더 넣어 , 오늘밤 보양탕 먹고 얌전히들 있으라고 하랑께그 고기 맛에 빼놓을 수 없는 아저씨 아줌마들의 농담 한마디는 잇밥에 달려드는 물고기들처럼 까르르, 까르르해학과 웃음꽃이 줄줄이 낚아 올려진다. 그 웃음소리에 하루 농사일의 고단함도 풀어냈을 것이다.

사본 -DSC_5307신문2020년 1월.jpg
부추

아직도 농촌에서는 한 여름 진땀이 빠지면 부추를 곁들인 보양식을 빼놓을 수 없다. 여름철 특별 음식으로 치는 것이다. 부추는 성질이 따뜻하고 알린이라는 향을 지니고 있어 향신료 대용 푸새지만 남과 여 사이의 정을 돋우는 향료임에도 틀림없다. 예전에는 마당 귀퉁이나 밭 가장자리에서 조금씩 키워서 양념으로 사용하였으나 요즘은 부추 즙, 부추죽으로도 먹으며, 하우스에서 대량으로 재배한다. 하우스에서 키워낸 쭉쭉 빵빵한 미녀부추는 보기에는 좋지만 맛과 향은 좀 덜한 편이다. 근육질이 발달한 남성미처럼 야생으로 자라난 털털하고 좀 뻣뻣한 부추를 먹어야 제 맛의 부추다. 그것은 아녀자만의 안목에 속하는 일이라고나 할까.

 

 옥상에서 더러는 듬성듬성, 더러는 참빗처럼 뭉텅뭉텅 올라오는 첫 부추 싹아, 빨리만 자라다오. 단칼에 베어다가 참기름에 고춧가루 넣고 돌돌 말아내어 식탁에 올려놓고 남편한테 날달걀 넘기듯이 미끄럽게 넘기라고 할 테니까.

 부추! 네가 산화하는 즉시 고소한 기름으로 변하리라.

      

 

한국작가회의 부천지부, 수필분과회장()

수필시대 등단 (2005)

수필집예지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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