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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은 지식과 같지 않다 / 구유현의 명상노트

인성은 지식을 전달하듯이 길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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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5.0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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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은 더불어 살면서 적응해 나가는데 필요한 행동덕목이다. 인성은 지식을 전달하듯이 길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길러진다. 인간성은 주어진 환경이나 가정환경, 성장과정, 교육배경, 세대 차 등에 따라서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살아가려면 성장과정에서 좋은 습관을 많이 만들어 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파스칼이 말한 대로 좋은 습관이 잘 길러지지 않으면 다양한 여건에서 중심이 없고 허약하게 되어 의도하던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것들을 수용하려면 올바른 생활습관이 형성되어야 한다. 

인성은 성장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길러져야 한다. 자라면서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서 바람직한 생활방식과 인간의 도리를 알게 된다.

 

사본 -DSC_5321신문2020년 5월.jpg

 

예전에는 동네 어른들이 ‘아무개 집 자식들 참 잘 됐어.’ 하면 부모님에게 욕되지 않기 위하여 자식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행동의 신중성도 있었고, ‘인사 잘 한다.’, ‘심부름 잘 한다.’, ‘똑똑하다.’ 하면 여기에 어긋나지 않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다.

 지금은 만나는 사람들이 제한적이고 정해져 있어 칭찬의 의미를 모를 뿐더러 사회생활에 필요로 하는 품성과 덕목이 무엇인지 자기 입장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인성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생활을 하는데 자기 입장과 생활방식대로 이루어진다면 만남의 소중함과 공동체의 필요성도 느낄 수 없다. 사회생활에 요구되는 생활습관이 형성되지 않아 인간관계가 짜증나고, 소통이 안 되고 자기 본위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툼과 시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렇게 나타나는 현상이 잘못 되었다 하여 쉽게 이해하고 해결할 수 없다. 잘못되면 잘못된 대로 받아들이고 나타난 현상대로 참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성적인 판단의 중요성을 으로  주장하지만 사사로운 일로 여과 없이 허용한다면 서로가 상처를 입는다 해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지 않겠는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행동 습관을 길러야 하고 습관화하여야 한다. 이를 기르지 못하면 성숙한 사회 환경을 조성할 수 없다. 언행에 신중하지 못하고 잘못됐다면 그만큼 상대에게 피해를 준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주변인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품성이 바르지 못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란 힘이든다. 학교에 다녀서 배운다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익혀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다.

 

사본 -DSC_5345신문2020년 1월.jpg

 

 체험이 없는 지식은 맹목적인 것에 불과하고 자기 자신에 국한할 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든가, 기분이 나쁘다든가 하는 것은 의사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짜증내고, 퉁명스럽게 하는 아이를 보고 기분 좋은 선생님이나 부모가 있을 수 없다. 잘못되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서 아이를 키운 대가가 아닐까.

 언행이 바르지 못한 사람과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 없다. 바로 이런 것을 치유하기 위하여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 아이를 바르게 키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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