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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주 작가의문학 칼럼 / 문학에서 나이는 장애가 아니다

내 존재의 확인이자 남은 생을 다른 이와 차별화를 통하여 또 다른 만족을 느끼려는 의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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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5.2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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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미래가 암울해 보입니다. 매스미디어의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하여 문학에 대한 고전적인 독자층의 감소와 그에 따른 출판시장의 불황, 종이책의 판매부진은 끝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세 시대에 접어들어 다양한 곳에서 문학을 향한 중장년층의 열망은 이 시대의 새로운 풍조가 되었습니다. 내 존재의 확인이자 남은 생을 다른 이와 차별화를 통하여 또 다른 만족을 느끼려는 의지일 것입니다. 이는 문학으로 이윤을 추구하려는 시장의 보편적인 상황과는 전혀 무관해 보입니다. 하여 문학의 미래가 암울해 보인다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별이 뚜렷했던 고전적 방식에 의한 재단 탓일지도 모릅니다.

 

박희주.jpg
박희주 작가

 오륙십 년대에는 각 장르별 등단 작가들이 대부분 이삼십대의 푸릇푸릇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들은 등단하자마자 야심차게 대표작이라 할 작품들을 발표했고 사오십대에 전성기를 보냈으며 육십대가 넘어가자 작품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아도 원로 대접을 받았지요. 그러다 보니 외국작가에 비해 조로(早老)의 경향이 아주 농후하다는 달갑지 않은 평판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제 시대가 변하여 작가로서의 등단이 어렵지도 않거니와 연령이 딱히 어느 세대로 특정되지도 않습니다. 작가예비교실에는 은퇴를 한 이나 앞둔 이, 나이 지긋한 주부가 많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문학이 특정인만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번뜩이는 감성도 중요하지만 체험적 깨달음도 중요하다는 건 문학의 기본입니다. 따라서 나이가 많다는 것은 문학에서 장애가 아니라 커다란 자산으로 작용하지요. 문학의 질적 저하를 차지하고라도 문학판의 내일이 어떤 모습일지 짐작케 하는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설가로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박완서의 등단은 마흔이었습니다. 김훈은 마흔일곱이었습니다. 특히 이병주는 마흔넷에 등단하여 사망할 때까지 27년 동안 한 달 평균 1천여 매를 써내 8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지요. 최문희 소설가는 <월간문학>으로 53세에 등단했으나 별다른 청탁이 오지 않자 작품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와신상담 끝에 1995년 한 해 동안 「서로가 침묵할 때」로 국민일보문학상, 「율리시즈의 초상」으로 작가세계문학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때가 60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난설헌」이라는 작품으로 제1회 혼불문학상을 차지한 나이가 76세의 일입니다. 박경리는 70이 가까운 나이에 대하소설 「토지」를 완성했고 복사골문학회의 신말수 선생은 70에 김만중문학상 소설 부문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김진기 시인이 2010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로 최고령자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쓴다고 해서 다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아무리 감동적인 내용을 담는다 해도 기본이 되지 않으면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빛나는 점은 늦은 나이에 시작한 문학, 행여 노욕으로 보이지 않을까, 트집이나 잡히지 않을까 스스로를 갈고 닦은 노심초사의 결과일 것입니다.

 


 

박희주
시인, 소설가. <월간문학>(2005) 신인작품상 중편소설 당선. 시집『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네페르타리』 소설집『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장편소설『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한국소설>편집위원, <통일문학>편집위원, 한국문인협회 문협70년사 편찬위원장 galbeolhee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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