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1-26(목)

낙관적으로 보여야 긍정적인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여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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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1.1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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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래를 밝고 희망 있게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상대가 자신과 의사가 다르다고 하여 부정적이라거나 비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부정적이라거나 비관적이라는 말은 상대를 자극하고 불쾌하게 한다. 일의 경중에 따라야 할 것을 낙관적으로 생각한다고 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 막연하고 적절하지 않게 강요된다면 무모한 일이다. 언행이 습관화되어 나침반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미군 장교다. 8년간이나 수용소에 갇혀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는 가능한 한 많은 포로가 살아서 수용소를 나갈 수 있도록 해 전쟁 영웅이 되었다. ‘낙관주의자들은 살아남지 못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나가게 될 거야.’라고 대책 없이 낙관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희망에 찬 모습을 보이다가 자신이 낙관했던 시간이 지나면 급격히 비관적으로 되었다가 끝내 쓰러졌다고 한다.

 위기 속에서는 내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위기 극복 사례로 전해지는 이야기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사본 -DSC_8998.jpg
임진강 DMZ 구역의 평화의 등대

 

 세종시, 천안함, 4대강을 볼모로 눈만 뜨면 좌파니, 극우니 하는 키워드가 난무하는데 어느 누가 시대를 낙관하겠는가. 문제는 무관심이다. 아니 어쩌면 무관심해 보이는 많은 이들은 살기 위해 스톡데일이 말한 가장 냉혹한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이 ‘버거운 생업’이라는 현실을 말이다. 감성이란 이성의 겉옷이다. 21세기 문맹자는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다. 스톡데일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냉혹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라고 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낙관적으로 보는 자체가 긍정적인 시각이라며 현실을 무사안일하게 받아들인다. 문제 자체를 무시하며 ‘잘 될 거야.’, ‘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과도기야!’,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아!’, ‘크면 다 알아!’ 하면서 현재의 상태를 온건하게 보지만 현실주의자는 현실을 그대로 보고 ‘문제가 있다’와 ‘괜찮다’는 입장으로 진단한다.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과 같은 일을 두고도 찬반으로 엇갈려서 눈을 가리게 한다. 6·25전쟁을 예상하고도 안일하게 ‘괜찮다’ 하다가 위기를 맞는 것과 같다. 아이 교육도 똑똑하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다가 자식 교육을 낭패한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여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

 낙관주의자는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듣기 좋은 편한 말로 긍정적인 척하며 아무 일이 아니라며 동조하거나 거든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없다고 하여 무분별하게 책임성 없이 본질을 흐리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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