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1-26(목)

매창의 무덤 앞에 서다

김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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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1.1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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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창의 무덤 앞에 서다/김문배

  

해마다 배롱꽃은 피고 지는데

세월은 모든 걸 거두어 가버렸네

거문고 뜯던 가냘픈 손가락

그 따스한 온기는 간데없고

윗자리 아랫자리 가리던 시절

매창*과 같이한 술상 앞에서

시담을 주고받던 선비의

못다 한 사랑 이야기만 분분하다

 

봄날 배꽃으로 피어나

백일홍으로 여름을 지내고

가을은 낙엽으로

겨울엔 냉가슴에 따뜻한 불을 지핀

무수한 세월들

한평생 한 몸으로 모자라

뭇 선비의 가슴에 점만 찍는다

 

누군가 따라 논

무덤 앞 술잔이

외롭지 않다.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매창공원이 있음

 

시집 <번짐의 속성>. 문학공간. 2020.

 

 

홍영수.png
홍영수 시인이 매창의 시비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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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이란 공원의 둘레길을 산책했다. 늦가을의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무엇으로 불태우길래 저리도 푸를까. 얼마나 잘 연소시켰기에. 내 삶의 대부분은 불완전하게 태워져서인지 매운 연기에 눈물 흘리고 재채기하며 살아왔는데……

 

만약에 남녀의 사랑이 이렇듯 불완전 연소가 된다면 굳이 사랑할 이유가 없다. 활활 타올라 남은 재마저 불태워도 모자랄 판에 구름 한 점 없는 가을하늘이 아닌 연기만 피운 미지근한 사랑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렇듯 매운 연기에 눈물 흘리고 뿌연 연기 속으로 사라져가는 어쩔 수 없는 사랑 아닌 사랑을 해야 하는 기구한 숙명적 사랑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신분이 있다. 바로 기생(통상적 호칭)이다.

필자는 무슨 때문인지 몇 번에 걸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인들의 음택, 그 가운데 기생의 음택을 몇 군데 찾아 답사했다. 이 중에 부안의 매창뜸은 문학단체의 기행 때 어쭙잖은 앎으로 필자가 길라잡이를 했다. 기생의 역할은 고구려 벽화의 무용총에서 보듯 삼국시대부터 를 담당해 왔다.

 

여성과 남성의 만남. 그때나 지금이나 배신 없는 사랑이 있을까? 하물며 신분의 계급이 뚜렷하고 조선 시대, 그것도 천한 기생의 신분이라면 그 어떤 남성도 마음과 마음으로 엮이어 매듭짓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매창 또한 원하면 언제든지 떠나라고 하면서 난 울지 않고, 불평하지 않아요라고 했지만, 어찌 정분을 주고받는 남녀 사이에 울지 않고, 떠난 자에게 불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한 역설로 읽힐 뿐이다. 평생 촌은 유희경을 사랑하고 그리며 살아서 행복할 것 같았지만 전해지는 그녀의 작품, 한시 57수와 시조 1수 중 한시는 대부분 과 기다림이 중심을 이룬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엮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 신분, 그걸 받아들인 매창, 그래서 오히려 매창은 자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진정한 의미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한 신분 사회에서 나름대로 거문고를 뜯으며 시조 한 수 짓고 읊조렸던 그녀는 온데간데없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매창과 술상을 마주하고 직접 옛 선비가 되어 그녀의 못다 했던 사랑 얘기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서화악에 능한 종합예술인으로서 지금까지도 전통무용 등은 계승 발전해 오고 있는데 그들의 신분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윗자리 아랫자리 가리던 시절의 천인 계급이었다. 그렇지만 기생들의 만남은 王侯將相부터 무명의 閑良에 이르기까지 신분의 귀천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화자는 윗자리 아랫자리 가리지 않고 21세기의 매창과 술상 앞에 손목을 부여잡으며 시담을 주고받던 선비가 되어 정담을 나누는 것이다. 왜냐면 시인의 가슴은 활화산의 마그마처럼 뜨겁고 항상 끓어오르기 때문에. 또한 解語花, 은유와 상징으로 무장한 시인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꽃 앞에서라면 더욱 불타오를 수밖에.

 

노래 한 곡을 상기해보자. 상징과 풍자가 넘친 고려 시대 속요인 <쌍화점>만두가게 회회 아비’, 삼장사 절 지주’, ‘술 파는 집 아비등이 한결같이 여인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밀애를 나누고 있지 않던가. 더구나 매창과 같은 시서악에 능하고 미인이 - 비록 무덤 앞이지만 화자의 눈앞에 謫仙來가 되어 나타나면 천하의 정지상이나 이규보가 그랬듯이 화자 또한 향렴시香奩詩 한 잔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봄날 배꽃’, ‘여름의 백일홍’, ‘가을의 낙엽’, ‘겨울의 냉가슴사계절의 흐름을 그녀의 인생에 이입시켜 꽃, 낙엽, 냉가슴등의 시어로 표현했다. 어찌 보면 그녀에게 계절은 봄 여름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염염焰焰한 영혼으로 妖妖한 꽃다움으로 홀연히 37세에 떠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몸으로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몸인 가슴에 뭇 선비들이 찍어 놓은 점들뿐이다. 매창의 가슴은 한 폭의 슬픈 점들이 스며든 점묘화로 점철되어있을 것이다. 서경덕과 황진이, 허균, 이귀 등과의 매창, 기생은 이렇듯 수많은 시인 묵객들과의 교류에서 시가 탄생 되어 국문학사에 전해지고 있다. 조선 시대 이전의 대부분 여류시인은 기생들이었다. 사대부들의 도학적 유학적인 시가 아닌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정으로 사랑을 노래하기에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뭇 선비의 가슴에 점만 찍는다에서 은 분명 사랑의 임은 분명하다.

 

천하 미인 西施도 술에 취하면 비실비실하며 취한 모습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같다고 했던가. 그렇다. 누구도 매창뜸의 시비 앞에서 서면 묵념의 자세가 아닌 술 한잔을 따르면서 시담도 주고받고, 적당히 취해 持花者하면서 꽃을 쥐고 춤추는 모습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십 년도 훨씬 지난 기생 김부용의 묘 앞의 술잔은 여전히 그날의 나를 담고 있을 것이다. ’지화자持花者하면서.

 

시인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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