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 편- 이장로/한돈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100세 까지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인가. 노인들은 평소에도 몸을 조심하고 살아야한다.
코로나가 일어나기 몇 달 전 이장로는 세상을 떠났다. 몇 년간 병으로 고생하다가 떠난 것이다. 나와는 20년 30년 가깝게 지낸 분이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 그분 내외와 우리 부부는 형제같이 지냈다. 그분은 멋을 아는 분이다. 착실한 교인이고 장로이다. 교인을 비롯하여 친지 등이 많이 와서 조문을 하고 장례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사모님인 정권사의 말을 들으니 파주에 가족묘지를 사서 모시었고 식구들도 죽으면 그리로 간다고 한다.
사망 소식을 듣고 나와 아내가 어느 병원 장례식장에 가보니 이장로의 영정사진이 걸렸는데 활짝 웃는 사진이어서 마음이 가벼웠다. 이장로는 기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가는 듯 보이였다. 이장로는 교회에서 장로 직분을 받고 아주 좋아하였다. 그의 부인은 긴 병에 간호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한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장로 하고는 친구 겸 가족처럼 지냈기 때문에 아들, 며느리를 만나 보았고 손자들도 만나보았다. 호주에 사는 둘째 아들 내외는 비행기를 타고 오는 중이라고 하였다. 손자의 백일잔치에 나와 아내가 참석한 일이 있는데 자라서 대학입시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장로는 부천중동에 큰 아파트에 살고 있다. 부천에 오면서 제일 큰 교회 두 곳 중에 한 곳을 정해서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부천의 K교회이다. 이장로의 아내와 나의 아내는 나이가 같고 교회에서 만나고 같은 속회이다 보니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부부 동반으로 자주 만나다 보니 잘 어울리는 친구 가족이 되었다. 가족끼리 등산도 많이 다니고 자가용차를 타고 구경도 다니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그분이 더 살았으면 더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장로 부부는 신앙심이 깊은 분들이다. 교회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분이다. 이장로는 건강하고 얼굴에 항상 화기가 돌았다. 나이가 70대가 되자 그분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프다는 소문이 돌았다.
우연히 부천역에서 두 가족이 만났다. 근처의 빵 집으로 들어갔다. 이장로는 말을 어눌하게 하였으나 정신은 말짱하였다. 서로 반가워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 후에도 몇 번 뷔페 등에서 만나 가족끼리 식사를 하고 담소를 하였다. 장로님 내외분은 호인이고 명랑한 사람들이었다.
몇 년이 지나갔다. 몸이 편찮다는 연락이 전화로 오고 갔다. 병문안을 간다고 해도 어떤 의도인지 안 와도 된다고 하였다. 병문안 가는 것도 상대방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분들이 나와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여러 번 와서, 나와 아내는 병문안을 가기로 하였다. 이장로는 작은 병원에도 다니고 큰 병원에도 가서 진찰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었다. 병명도 들었다. 치매가 되는 병이다. 그분이 회복되기를 기도하고 바라고 있다.
한 때 이장로 집에서 예쁜 강아지를 주어서 데려다가 키운 일이 있었다. 요크셔테리어 이었다. 얼마나 예쁘고 똑똑한지 주인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었다. 사람처럼 한 식구로 살고 애지중지 데리고 살았다. 12년을 살다가 죽었다. 즐거운 추억을 남기고 가서 가끔 나와 아내는 애완견, “미미”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강아지를 준 일이 고마워서 그분들에게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1914년도에 아내는 중동 치과병원으로 스케일링을 하러 간다면서 같이 가서 일을 보고 이장로가 재활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니 가서 만나자고 하였다. 내가 치과병원 가면 아내가 따라 오고 아내가 치과병원 가면 내가 따라간다. 노부부가 되니 같이 가야 마음이 안정된다. 치과병원 근처에 이장로가 입원한 병원이 있다. 두 가지 일을 보기로 하였다.
아내가 병원 치료를 마치고 이장로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 위치를 알아서 걸어서 갔다. 재활병원이 어떤 곳인가 말만 들었는데 가서 보니 기구를 가지고 하는 체력 단련 운동장 같다. 환자들이 하는 운동장이다. 다리를 저는 사람, 몸이 불편해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등이다. 대개 노인들이다. 재활치료사들이 한사람, 한사람 맡아서 운동을 시키었다. 저쪽에서 이장로도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운동이 끝나자 가서 만나 보았다. 그는 우리를 척 알아보지 못하고 기억을 더듬어서 알아보았다. 얼굴 모습도 훤하고 몸도 전처럼 뚱뚱한 편이다. 원래가 날씬한 분이 아니다. 그분 부인도 왔다. 부인은 권사여서 정권사라고 부른다. 환자를 입원시키고 뒷바라지를 하니 힘이 든 일이다. 입원을 해서 간병인이 돌보아준다고 한다. 간병인이 남자인데 잘 해준다고 한다. 간병인은 주로 중국 연변 출신 사람들이라고 한다. 환자가 있으면 식구들도 힘들고 경비도 만만하지 않다고 말한다.
4층 입원실로 가 보았다. 노인들이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다. 나도 노인이다 보니 남의 일로 보이지 않는다. 늙으면 저렇게 살다죽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운동을 마친 이장로도 한쪽 침대에 누워있다. 얼굴 표정은 와주어서 고맙다는 눈빛이다. 말은 하기가 힘든 모양이다. 눈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고 나왔다. 또 문병하러 온 여자 분이 있다. 환자만 빼고 모두 나와서 근처의 설렁탕집으로 와서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가서 눈으로 보고 만나고 집에 오니 마음이 시원하다. 노인병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차이가 얼마간 있을 뿐 누구나 거쳐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100세 까지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인가. 노인들은 평소에도 몸을 조심하고 살아야한다.
그간 정권사는 여러 번 만나서 식사도 하고 위로의 말을 하였지만 이장로는 직접 가서 보지는 못하였다. 상태가 중해서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장로는 작년에 돌아갔다. 나이도 나와 비슷하고 잘 통하는 사이이었다. 그간 추억은 수 없이 많다.
한돈희: 시조시인, 수필가 (문학공간) 1995년 시조등단, (문예사조) 1996년 수필등단. 전 서울고등학교 교사 엮임
출처-부천문학 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