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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하여/김은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1주년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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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4.10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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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관하여/김은혜

      

속은 뜨겁다. 900도 흙으로 만든 기물을,

끌고 불구덩이로 들어간다.

속에서 지지고 볶고 살다가, 뜨겁게 한번 살아보자

 

다시 냉전이다, 차갑게 식은 우리 사랑이다.

다시 한번 살아보자고,

그림도 그리고 또 다른, 색색의 옷을 입힌다.

다시 한번 심기일전 지난번,

온몸과 마음을 다 준 것이 아니다.

 

이제 다시 시작한다.

1250도 뜨겁게 더 뜨겁게,

밖에서는 모른다. 그들이 무얼 하는지,

오랜 진통 끝에 태어난 달항아리,

이제 세상을 향해 나갈 일이다

 

뜨겁게 사랑한 결과물이 영웅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깨지지 마라 살아만 있어라,

1250도 불구덩이 속으로,

흙으로 만든 기물을 끌고 들어간다.

     

시집 <상자를 벗어나려는 여인의 몸부림>, 시선사, 2018.

부천 시소리낭송회 회원

 

4월달항하리.png
국보310호 백자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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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구워서 만든 넓은 의미의 도자기는 태토(胎土)의 굳기에 따라 토기土器, 도기陶器, 자기瓷器 등으로 나눈다. 토기는 일반적으로 유약을 입히지 않고, 섭씨 700~1000도의 낮은 온도에 구워지고. 도기는 토기보다 단단하고 유약을 입혀서 섭씨 1000~1100도에서 번조燔造한다. 화분이나 떡시루 같은 기물이 여기에 속한다. 자기는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내기 때문에 태토가 유리질화 된 반투명체다.

 

시적 화자는 도자기를 구우면서 사랑의 이미지를 번조 하고 있다. 사랑, 모든 예술과 문학, 인간의 영원한 주제이다. 결코 삶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중년의 그윽한 눈빛 사랑, 칠십, 팔십 노년에게도 사랑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묘약이고, 대마초와 모르핀 같은 환각제이다. 화자는 불구덩이로 들어간다.”, ‘뜨겁게 살아보자에서 보듯 사랑은 가마의 불 구덩이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자고 한다. 도자기기가 불의 예술이듯 사랑 또한 불꽃의 타오름이다.

 

기물은 한 번 가마에 들어가면 며칠 동안 나오지 못한다. - 요즘은 가스가마, 전기가마 사용하기에 그렇지 않다 사랑 또한 한 번 빠지면 입구나 출구가 없다. ”지지고 볶고 살다보니 제정신이 아니기에 형체가 있어도 볼 수 없다.

 

더 아름답고 질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표면에 얇은 유리질막, 즉 유약을 덧씌운다. 이것은 광택과 색깔을 아름답게 만드는 효과를 내기 위함이다(”색색의 옷을 입힌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서로가 예뻐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변신을 하듯이 말이다. 비록 몸과 마음이 아직은 덜 익은 미완의 상태일지라도 온전하고 성숙한 결말을 위해서 다시 한번 살아보자고 한다.

 

시인은 사람과 언어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한다. 사람과 사물, 영혼과 육체, 더 나아가 우주와 존재를 이어주는 큐피드이자 헤르메스가 된다. 점진적인 불꽃의 소멸로 인해 태어난 도자기란 존재는 불꽃의 울부짖음이듯, 시 또한 시인 자신이 소멸하면서 모든 걸 포용하며 탄생한 존재의 울음이다.

 

드디어 사랑의 완성을 위해 1250도 가마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무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불가마, 승염식이든 오름 가마든 상관없이 어떠한 작품이 완성될지 모른다. 다만, “오랜 진통 끝에 태어난 달항아리에서 보듯 달항아리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뜨겁게 타오른 사랑이라는 가마 속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듯 말이다.

 

달항아리는 너무 커서 물레에서 한 번에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위아래의 몸통을 각각 만들어 이어 붙인다. 기계가 아닌 수작업으로 빚기에 완벽하지 못하고 반듯하지도 않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달항아리는 정형화된 조형미보다는 부정형의 달덩이 같은 항아리가 구워진다. 도자기는 너무 구워졌거나 덜 구워졌을 때의 기묘한 빛깔을 낸다. 그래서 같은 백자 달항아리도 乳白, 牙白, 純白 등등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화자는 단순 명료한 사랑보다는 둘 사이의 사랑은 단조롭고 일방적인 것이 아닌 다양한 색상으로 조각조각 붙여 만든 조각보, 상보 같은, 치맛자락, 바짓자락을 끌고 오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도자기도 구우면서 생기는 빙렬(氷裂)로 인해 더 가치 있듯이 사랑 또한 때론 아옹다옹, 싸우기도 하는 엷은 틈새 같은 식은태가 있어야 더욱 아름답지 않겠는가.

 

조르쥬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에 보면 에로티즘, 그것은 죽음까지 인정하는 삶이다라고 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세상의 스크린이다라고도 했다. 1250도의 불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이고, 영웅이 아닌 민초의 삶일지라도 그냥 깨지지 말고”,“살아만 있어라이다. 바로 사랑의 위대함이고 경건함이다.

 

온몸으로 사랑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어떤 예술인, 문학인일지라도 결코 진정한 사랑 노래를 부를 수 없다. 멀쩡한 눈을 멀게 하고, 사막에서도 촉촉한 이슬을 맺게 하는, 그 알 수 없는 묘한 힘,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일단 사랑부터 하자그 사랑에 에고이즘이 싹을 트면 둘 사이의 융복합은 현실적으로 멀어진다. 비록 불안하고 고통이 동반되더라고 사랑하자.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자.

 

화자는 불가마 속에 도자기를 굽기 위한 과정에서사랑이라는 추상적 이미지를 떠 올리며 달항아리 굽듯 사랑의 달항아리를 희망하며 가마 속 이글거리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광기 어린 히틀러 마져도 에바 브라운에게는 순정으로 대해주었고, 하물며 베를렌느와 랭보, 그 둘의 사랑은 동성애를 나눴던 사이였다. 그뿐인가, 백석의 사랑 자야(김영한)’는 그 짧은 동거 끝에 이별하고 평생을 잊지 못해 지금의 성북동에서 요정집을 운영하며 그를 그리워했다.(그 요정은 법정 스님에게 대가 없이 주었고 지금은길상사로 변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그렇게 해서 잉태된 자야에 대한 사랑 이야기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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