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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잠/ 구미정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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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6.2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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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바깥잠/ 구미정

 

일기예보에 없던 비가 까맣게 쏟아진 날

바깥잠 사내가 버스에 올랐다

등에 짊어진 커다란 배낭과

양손에 들린 보따리보다

무거운 버스 요금 앞에서

지갑을 두고 왔다고……

요람처럼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

출근하는 사람을 본다

!

!

떨어지는 물방울

젖은 신발이 된 사내는

눈 감아야 보이는 세상으로 걷는다.

흔들흔들 기점을 돌아온 원점

눈 뜨면 보이는 세상으로

바깥잠 사내가 내렸다

비를 몰고 바람이 휘돌아 간다

 

* 월간 시 31회추천시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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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아님, 사회적 제도, 또는 의도치 않게 소속된 집단에서 떨어져 나온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인생이 끝났다거나, 낙오되었다고 할 수 없다. 스스로 떨어져 나오는 경우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타인에 의했을 경우는 힘들겠지만, 스스로 마음을 접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가 되었든 바깥잠 사내가 버스에 올랐다”. 화자는 예고 없이 내리는 비를 까맣게쏟아진다며 왠지 어두운 분위기를 예감한다. 그때 등에 짊어진 커다란 배낭양손에 들린 보따리그 무게가 버스 요금보다 무겁다고 하는 바깥잠이 승차를 한다.

 

언제부터인가, 어쩜 IMF 이후부터 우리의 주변, 특히 지하철 역, 공원의 벤치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등에 얹힌 짐양손에 든 짐은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속에 옷가지와, 딱딱한 바닥에 펴고 자야 할 이불 같지 않은 이불 등이 순서도, 질서도 없이 빼꼭히 들어차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저들이 살아오면서 일구고 가꿔놓은 삶의 텃밭과 경작지, 그 위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화자는 이미 그러한 점을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지갑을 두고 왔다고……하는 그의 말이 차라리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줄임표(……)”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언어 너머의 뜻(言外之意)을 알아차린 시인은 신호등의 불빛처럼 번뜩이며 반짝이는 시선으로 바깥잠의 내면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시인은 머리로 사는 게 아니라 심장의 고동으로 사는 사람이다.

 

내가 스스로 비참하게 된 것은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나 스스로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화자의 시선은 요람처럼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다. 대중교통인 버스를 운행하면서도 바깥잠을 살펴보는 화자는 버스 요금을 내지 않고 승차한 무임승차너머의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출근길 내리는 비의 모습을 !/ ”’으로 행갈이 해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의 느낌을 더해주었고, 또한 이라는 단어 옆의“!” 은 빗방울을 형상화 시킨 일종의 상형의 그림시로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It’s raining처럼 도형화시켜 바깥잠의 메마르고 황폐한 그의 가슴속에, 그리고 영양실조 걸린 고요한 혈맥에 한 줄기 수액으로 내리게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빗줄기의 리듬을 자장가 삼은 그가 잠이 들었다. 흔들리는 의자 위에서 자는 쪽잠일지언정 어쩜 그는 호접몽을 꿈꾸지는 않았을까. 왜냐면, 어린 날의 기억들이 꿈속에서나마 떠올라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어난 그는 나비가 나였는지 내가 나비였는지 비몽사몽간에 기점으로 돌아온 버스에서 눈 뜨면 보이는 세상으로다시 돌아왔다. 욕망으로 가득한 숨을 허공을 향해 내쉬고 있는 세상 속으로.

사회적, 또는 일반적인 눈으로 볼 때 좀 허름하고 허술하게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과 정신까지 허름, 허술하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히 잘못이다. 인간의 정신은 보여지는 것과 보이는 것 등이 단순하지 않다. 커다란 저택에 살든 지하 쪽방에 살든, 삶의 장소는 중요치 않다. 그렇기에 본질을 떠나 피상적이고 외형적인 것으로 가치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이러한 점을 익히 경험했던 것 같고 더 나아가 스스로 내면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살아가는 지혜는 내 삶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비록 가난할지언정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우아할 수 있는 누구의 말대로 우아한 가난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또한, 돈이 없으면 대체수단을 통해서 실천해야 한다. 참으로 어렵고 어렵지만 어찌하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은 되지 않은가?

 

디오게네스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줄이기 위해 노숙인보다 못한 생활을 자처했다 한다. 그 어딘가 알 수도 없는 곳으로 홀연히 떠나려고 할 때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의 소유를 거부해버리는 게 그의 삶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바깥잠은 노숙인의 삶으로만 반드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다. 표층적인 그의 겉모습이 아닌 심층적인 내면에는 또 다른 디오게네스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스토아학파에서 추구했던 가지지 않은 것처럼 가져라라는 삶의 방향성을 추구하는 사람도 많다. 너무 수준 이하의 경제적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해 인간성마저 말살과 동의어로 부추겨서는 아니 될 것이다.

바람이 비를 데리고 휘돌아 가게 하고 있다젖지 않고, 춥지 않게.

바깥잠을 향한 화자의 시선이 따스하다.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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