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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사랑/이천명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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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7.2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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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눈 먼 사랑/이천명

  

사랑에

눈이 멀어

눈 먼 사랑을 한다

 

백일의 해맑은 눈동자

허공을 맴돌다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

첫사랑이었다

 

웃는 모습

활화산 되어 가슴에 피고

웃음 소리

귓가에 맴돌지만

 

함께 해서 더 황홀했던 순간도

세월 지나고 보니

그것은 가슴 아픈

짝사랑이었나 보다

 

밤을 새워도

한 줄의 기막힌 문장이

오지 않는 날들

 

첫사랑은

눈 먼 사랑으로 자라나

세월 담은

기다림만 가득하다

  

산문집. <섬 그리고 자유>. 산과들. 2013

 

장한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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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에게로 가지만 다가가지 못한다. 욕망은 앞서지만 안타까움 속 닿을 수 없는, 어릴 적 목숨도 바칠 것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의 사랑, 그 순간만은 분명 진실이었을 것이다.

 

어쩜, 살아가면서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순수와 진실한 사랑은 딱 한 번, ‘첫사랑이 아닐까. 그렇기에 화자는 해맑은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심장이 쿵하는 첫사랑이라고 단정 짓는다. 사실 살아가면서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지만,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첫사랑만큼 무의식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몰의 서해에서 바라보는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괜스레 눈시울이 적셔지고 눈으로 노을 한 점 당겨 와인 잔에 부어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은 곧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관념 때문이리라. 사라지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 머문 상태라면 굳이 넋 놓고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변치 않는 것은 없다. 변하기에 아름답고 변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울 수가 없다. 사랑, ‘첫사랑’, 또한……

 

인간에 대한 사랑도 바로 그러한 성정 때문이 아닐까. 더욱이 눈 앞을 가리고, 뭔가 낀 눈먼 사랑이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이미 영원한 사랑이 아니라는 걸 미리 짐작하기에 화자는 시제를 눈 먼 사랑이라 했고, “눈먼의 맞춤법마저 일탈해서눈이 멀다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눈 먼이라 띄어쓰기를 했다. 인간은 사랑할 때는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첫사랑이라면야.

 

시인이 되려면 화산의 불구덩이로 빠져드는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얼마나 웃는 모습이 심쿵했으면 활화산 되어 가슴에 피고라고 할까. 그리고 웃음소리는 활화산에서 쉼 없이 뿜어져 오르는 마그마의 뜨거움이 되어 귓가에 맴돌았을 것이다.

 

첫사랑은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다가올 때도 있지만 중고시절에 이웃집 오빠, 또는 친구의 오빠를 친구 몰래 만나게 되는 것이 대체로 일반적인 첫사랑의 방식이다. 첫사랑! 세간의 말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렇기에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며 그 고통을 넘어서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이성 간에서 오는 고통 속 쾌락, 은밀하게 마음을 휘어잡고 관통하며 지속시키는 내적 충만감. 라깡이 말한 주이상스(jouissance)”. 그래서 화자는 함께 해서 황홀했던 순간이 세월 지나 가슴 아픈 짝사랑첫사랑라고 한다. 참혹한 기쁨의 첫사랑.

 

필자의 중고등 시절은 펜팔이 대단히 유행했다. 말 그대로 오직 펜으로 남녀 사이에 주고받는 편지이기에 초 멋진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 밤새워 글을 쓴다. 그러나 아침에 다시 읽어보면 유치함을 넘어 찢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그때 그 시절의 펜팔이라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문학지망생들에게 초석이 되지는 않았을까. 라디오의 주파수에 귀를 기울이고, - 혹시 편지가 올까 하는 마음에 - 시선은 동구밖에 서성이고. ‘밤을 새워도’, ‘기막힌 문장이 오지 않는 날들의 화자의 심상을 보면 다분히 공감할 수 있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사람은 항상 첫사랑에게 돌아간다라는 어느 나라 속담이 있다. 시인의 세월을 지팡이가 짚고 가는 지금, ‘세월을 담은’‘기다림만 가득하다고 한다. ‘첫사랑’,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그 첫사랑의 행복은 이미 깃을 잃고 추락한 행복일 뿐이다. 천하의 백거이도 - 첫사랑이었던,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했던 - “남몰래 이별하는 사랑을 했다.

 

潛別離/白居易

 

남몰래 이별해야 하기에

 

울 수 없어요

남몰래 이별해야 하기에

말할 수 없어요

남몰래 사랑해야 하기에

우리 둘 외에는 아무도 몰라

깊은 새장 한밤에 갇혀 홀로 깃든 새

봄날 날카로운 칼날에 잘린 연리지

황하 강물 탁하지만 맑아질 날 있고

까마귀 머리 검지만 희어질 날 있으리

오로지 남몰래 이별해야 하기에

우리 만날 기약 없음을 감수해야 하리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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