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1(목)

구유현의 명상노트 - 교육의 중요성은 어디에 있나

학교 교육이 사회 환경에 긍정적으로 활용되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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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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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초년생일 때 나는 학교 교육이 현장에 적용되는 것이 없는 것 같아 실망을 한 적이 있었다. 돌아다보면 무지한 소견이 아닐 수 없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으니 그럴만도하다. 이렇게 한 번쯤 나와 같은 생각을 해본 사람이 없었을까.

 

 중알일보 2011년 4월 13일 김환영의 시시각각에 의하면,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78)는 인간을 “강제로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누구나 자유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평등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강제로 평등하게’ 만들어진다. 교육의 경우가 그렇다. 국민은 의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예체능 같은 과목을 강제로 배워야 한다. 교육과 평등의 만남은 비효율을 잉태한다. 직업상 수학·과학을 사용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20분의 1가량이지만 누구나 배워야 한다. 국어만 잘해도 되는 직업이 많고 이민을 가서도 영어를 쓰지 않고 살 수 있지만 영어는 누구나 배워야 한다. 그러나 개인 차원이냐 집단차원이냐에 따라 비효율의 의미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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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받는 국민 중 누가 과학에 소질이 있어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엔지니어가 되고, 누가 영어를 잘해 나라에 유리한 협상 결과를 이끌어낼지 알 수 없다. 국가 입장에서 국민 모두에게 과학·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평등을 구현하는 일임과 동시에 불확실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대학과 대학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학교육은 상당부분 훌륭한 학자를 키우는데 맞춰져 있다. 박사·교수가 되는 졸업생은 소수다. 대부분의 대학생이 취업하거나 자영업자가 된다. 그러나 모교를 빛낼 미래의 지도자를 교육하기 위해 대학은 강제성·비효율성·불확실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교육을 하게 된다. 특히 대학 교육에서 평가 방법은 강제성·비효율성·불확실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교육을 하게 된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기본적으로 교육은 평등한 조건으로 이루어지지만 모두 똑 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진로 선택에 따라 학교 교육이 반영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교육이 우리 삶의 근간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일관성이 없다면 문제가 아닐까. 학교 교육이 사회 환경에 긍정적으로 활용되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 해방되었다는 기분보다 최소한도 행동규범이 사회 환경에 아름답게 적용되기를 갈망해 본다. 교육은 상징이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모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시도 되어야 하나 문제점이 개선되었다고 하여 인간의 능력을 동등하게 할 수는 없다. 양극화가 심화되어 빈부의 격차를 줄인다고 하지만 똑 같은 수준으로 할 수는 없다. 국제 경쟁은 날로 심화되어가고 피할 수 없으며 비효율성과 불확실성 문제가 가중되고 있다. 지구촌의 모든 나라는 살아남기 위해 과학과 기술의 혁신을 추구한다.

 

 아울러 국제 사회에서도 학생보호는 물론 비효율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를 전체적으로 적용하려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대세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듯 소수의 주장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마냥 자기주장을 구태의연하게 되풀이 하는 사회환경이 되면 바람직하겠는가. 교육은 큰 바위 얼굴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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