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1(목)

구유현의 명상노트/ 희망적인 삶의 좋은 환경

아무리 완벽한 인성교육을 했다고 해도 일관성이 결여되면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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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8.2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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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환경의 지배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가 이를 잘 시사한다. 사회 환경이 좋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고 행복한 삶의 좋은 환경을 위하여 함께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큰못에서 놀아야 더 크는 ‘코이’라는 송종호 중소기업청장의 칼럼이 있다. 일본의 ‘코이’라는 잉어는 지능이 제일 높고, 가장 먼저 지진을 감지하기 때문에 일본 정원의 관상용으로 기른다고 한다. 코이는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연못에 넣어두면 25㎝까지 큰다. 강물에 방류할 경우 연못의 5배에 가까운 120㎝까지도 성장한다고 한다. 코이는 자기가 숨 쉬고 활동하는 세상의 크기에 따라 피라미나 대어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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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이처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카네기 명언 집 등에서는 ‘꿈의 크기에 따라 성장한다.’는 취지로 이해한다. 코이의 사례를 다시 되짚어 보면 성장이라는 것은 결국 ‘활동하는 무대의 크기’와 ‘다른 주체와의 교류의 폭’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무대란 물리적 장소라기보다 ‘경쟁의 장소’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우리는 예전에 흔히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라고 했다. 사람 없는 서울은 백 번 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협력자가 될 수도 있고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수많은 주체가 활동하고 있는 곳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큰물에서 놀아야 더 크는 ‘코이’같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할까.

 

 환경은 아이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아이가 우연히 잘 자라서 성공하기도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데 막연한 기대감으로 효과가 쉽지 않다. 거친 세파를 헤쳐나가려면 무엇보다도 이를 헤쳐나갈 능력을 길러줘야 하며 이에 적합한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성교육은 가정, 학교, 사회에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강조될 수 없다. 인성교육은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생활 습관이 형성될 수 있는 자람의 분위기와 환경이 일관성 있게 조성될 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학교를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면 인성 교육은 하나 마나다.

 

 흔히 학생이 예의가 없거나 좋지 못한 행동을 보고 ‘학교에서 뭘 배웠어’라는 이야기를 이구동성으로 예사롭게 한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를 예의 바르게 교육했지만, 중학교에서는 초등교육이 잘못돼서 그렇다 하고, 고등학교에서는 중학교에서 인성교육이 안 돼서 그렇다며 연쇄적으로 반응을 한다. 이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품성 교육이 될 수 없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라는 속담같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있어야 말을 하고 행동이 이루어진다. 아무리 완벽한 인성교육을 했다고 해도 일관성이 결여되면 무용지물이다. 행동은 상황에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신뢰를 잃으면 불신을 하고 모든 것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타인에게 잘못하면 결례라는 생각이 들어야 도덕적이고 긍정적인 삶이 된다. 좋은 사회 환경이란 모두가 열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까.

 

 사소한 것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고 존중하며 좋은 습관이 길러질 수 있도록 부모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여주어야 교육적 효과가 반영될 수 있다.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한다. 품성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가 뭔데, 잘난척하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 ‘순진도 하셔’와 같이 조롱하거나 무시하면 상처를 입는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겸손하게 사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잘되는 이기적인 환경에서 인성이란 말조차 꺼내기가 부끄럽지 않을까. 사람의 품성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사회 환경이 되려면 이타적인 삶이 사회 환경에 배어 있어야 한다. 몰라서 못 하는 사람 보다 알면서 안 하는 사람이 사회 환경의 본보기로 보이면 되겠는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돈키호테는 말했다. ‘산초야, 너는 알아야 해. 인간은 남보다 더 노력하지 않고서 남보다 더 훌륭해질 수 없다는 것을.’ 세상의 모습은 남들이 어떻게 하든 내가 스스로 갈등보다 배려, 희생, 봉사의 미덕으로 아름답게 살자고 외치자. 마음의 아름다운 정원은 노력해야 만들어질 수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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