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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매듭 /1회

이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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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0.0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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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셔요.

우리는 지금 이렇게 한 공간에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병풍 저 뒤쪽에, 나는 병풍 앞쪽에 있습니다. 당신은 병풍 뒤쪽에 누워 있고 나는 앞쪽에 앉아 병풍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병풍엔 단지 검은 먹으로 대나무와 새와 앙상한 등걸에 꽃 두어 송이를 달고 있는 매화와 초서체로 흘려 쓴 글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그 글이 무슨 뜻인지 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네요. 하긴 그 글의 뜻을 알았다 해도 뭐 내 신산 한 생활이 달라질 건 없었을 테지만 요. 아니 오히려 그 뜻을 이해하려 애쓰느라 고단한 내 생활만 더 무겁게 했을 테지요. 이 병풍을 사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는 여름이었어요. 9층의 9살 난 대길이가 쭈쭈바를 먹으며 아파트 입구에서 우리에게 허부죽이 웃었었지요. 미처 대길이의 입으로 들어가지 못한 쭈쭈바의 분홍색 물이 목이 늘어진 대길이의 흰 면 티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대길아. 빨리 먹어라. 쭈쭈바가 녹아서 옷으로 흐르잖니. 그래. 그렇게 옳지. 먹을 땐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거야."

"어디가?"

대길이는 흐르는 쭈쭈바를 후루룩 소리나게 빨아들이더니 우리에게 물었지요.

"응. 복지관에. 아줌마 갈 게."

"응. 알았어."

대길이는 이내 무심한 표정으로 쭈쭈바를 빨기 시작했는데 쭈쭈바는 다시 그 애의 목이 늘어진 흰 면 티 앞으로 그 분홍색 끈적한 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가 입고 있던 면 티는 어디서 얻어 입혔거나 그 애의 어미가 다른 동네의 헌 옷 의류 함을 뒤져 가져다 입힌 것이거나 했을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구요. 그 옷이 크기도 했지만 그 옷 앞에 그려진 인물이 우습게도 베레모를 쓴 체게바라의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애나 그 애의 어미가 체게바라가 누군지 모르는 게 당연하지요. 또 안다 한들 그것은 그들 모자에게는 쭈쭈바만도 못한 인물일 것입니다. 대길이는 눈이 사시라 언제나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그 애는 뇌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사람들은 그 애를 장애아라 부릅니다.

대길이와 헤어져 당신이 내 휠체어를 밀고 차가 있는 쪽으로 가는데 한 노파가 검은 보자기로 싼 길다란 장방형의 물건을 검은 띠로 묶어 어깨에 매달고 오고 있었습니다. 내 눈에 비친 그 검은 끈은, 노파의 어깨를 당장이라도 파고 들어가 본래 거기에 있던 힘줄을 살갗 밖으로 밀어내기라도 할 듯, 노파의 어깨를 옥죄고 있었어요. 노파의 얼굴은 까맣고 굵은 주름 투성이고, 키는 가로로 짊어진 병풍보다 짧았고, 힘이 들고 지쳐 반쯤 벌린 입술 사이로 보이는 이는 듬성듬성 빠져 있었습니다. 노파의 쪼그라든 젖가슴이 노파가 입은 갈색 반소매셔츠 위로 비추름이 그 모양을 만들고 있었지요. 대길의 티셔츠에 쭈쭈바의 달콤한 분홍 물이 흘렀다면 노파의 갈색 셔츠 위로는 찝찔한 땀이 흘러 갈색의 셔츠를 군데군데 더욱 짙은 색깔로 만들고 있더군요. 저렇게 작고 마른 몸에서 흐를 땀이 있다는 게 의아했습니다. 노파 가까이 가니 노파는 힘이 들어서 하아 하아 하며 애절한 숨을 뱃속에서 밖으로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뿜어내는 숨보다 들이마시는 숨이 더 적은 것 같아 안타깝더군요.

"병풍 사. 싸게 줄 테니. 날이 아직 초복도 안 되얏는디 밉살스럽게 덥구 만."

그렇게 말하는 노파의 음색엔 우리가 병풍을 사리라는 기대는 없다는 것이 묻어 있었지요.

당신은 내 휠체어를 딱 하고 세웠지요.

"보소. 장사를 할라 믄 팔릴 만한 곳에서 해야 제. 이런 곳에 누가 병풍을 사것다고....여긴 장애자 아파트라 병풍 거튼 호사시런 물건 살 인간 아마 모르긴 해도 없지 싶니더. 고마 힘 빼지 말고 팔릴 만한 곳으로 가 보소."

"아이그. 이거나 좀 부짜바 줘 바. 좀 땀이나 들이그로."

노파는 등을 당신에게 돌려 대었고 당신은 병풍을 받아 아파트 주차장의 화단 모서리에 기대어 놓았지요.

"힘도 좋을 시 더. 노인네가 이 무거운 거를 짊어지고 다니니. 다른 것도 많은데 하필 와 이 무겁고 잘 팔리지도 않는 병풍 장사를 하느라꼬."

"딴 거슨 밑천이 있어야 하지만 이 거슨 밑천이 안 들거든. 하나 팔믄 파는 데로 주거든."

당신은 노파를 우두커니 보더니 다시 병풍을 바라보다 나를 보고는 내가 배시시 웃자 얼만교. 하고 노파에게 물었지요.

"노파는 후우 하고 숨을 몰아 쉬더니 고마 12만원인데 8만원만 내라. 날도 덥고 그냥 오늘은 수당 포기하고 들어 갈란다. 삭신도 쑤시고. 아이고 구신은 얼매나 바쁘믄 날 같은 인간 안 잡아가고 누굴 잡으러 댕기나 몰라. 그마 칵 죽어 버리믄 삭신 쑤신 것도 모릴텐데. 사는 게 무섭다니까. 날 밝는 게 웬수 같아."

해서 그 병풍을 우리는 팔만 원에 샀지요. 나중에 딴 곳에서 우리는 그 노파를 보았는데 오만 원에 팔고 있었지요. 노파는 여전히 '아이고 구신은 얼매나 바쁘믄 날 같은 인간 안 잡아가고 누굴 잡으러 댕기나 몰라. 그마 칵 죽어버리믄 삭신 쑤신 것도 모릴텐데. 사는 게 무섭다니까. 날 밝는 게 웬수 같아.' 하는 소리를 하고 있었지요. 우리는 그런 노파를 모른 척 하며 지나쳤었습니다.

그 병풍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팔만 원이 당신을 가리고 있는 셈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나는 병풍 저 너머에 누워 있는 당신이 웬 지 나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할거라는 느낌입니다. 전혀 슬프지도 않고 눈물도 나지 않아요. 오히려 가슴 한 구석에 두웅하고 뜨는 풍선 하나가 들어앉아 있는 느낌입니다.

내가 그 전화를 받은 것은 요즘 놓기 시작한 십자수의 돈황곡자(敦煌曲子)-보살만(菩薩蠻)

枕前發盡千般愿 :베개 위의 머리 다 빠지도록 원하노라

要休宜侍靑山爛 :청산이 다 썩어

水面上枰鐘浮 :물위에 저울추가 뜨고

直侍黃河徹底枯 :황하가 다 메말라도 그대에 대한 사랑 변함없어라

白日參辰現 :낮에 별이 보이고

北斗回南面 :북두칠성이 남쪽에서 돌아가도

休卽未能休 :그만둘 수 없노라

直侍三更見日頭 :밤중에 해가 뜨기 전에는

중 마지막 연 한글의 밤중에 해가 뜨기 전에는 중 자를 수놓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돈황곡자 보살만은 인천 관교동 신세계 백화점 선물 코너에서 중년의 아줌마들에게 잘 팔리는 십자수입니다. 이 시구가 맘에 들어 내 스스로가 십자수 본을 만들고 수를 놓아 석 장을 백화점 선물 코너에 의탁했는데 이외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아직도 중년의 여성들에게는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녀들은 아마 이 시구가 적힌 액자를 경대 위나 거실의 티브이가 자리한 벽에 걸겠지요. 그렇지만 우습지 않나요. 낮에 별이 보이고 북두칠성이 남쪽에서 돌아가고 밤중에 해가 뜨다니요. 시란 불가해하고 추상적일수록 사람의, 그것도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모양입니다. ‘자의 윗변 가로획을 뜨는데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바늘을 천의 면에 꽂느라 몰두해 있었기에 전화벨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리고 나는 놀라 바늘이 천을 바치고 있는 왼손 중지를 찔렀습니다. 피가 천에 베어 들까 봐 재빠르게 천을 무릎 위에 놓고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피를 빨며 시계를 힐끗 보았습니다. 시계는 새벽 한시 십오 분이더군요.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가슴이 빨리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도 전화벨이 계속 울렸는데 이 짧은 사이에 나는 위의 행동과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 일주일 후에 계속 - 

 

이준옥 :소설가. 1회 전태일 문학상 소설 당선. 한국작가회의회원. 복사골문학회 주부토 소설동인.

아름다운 지구에 여행 온 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지구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살아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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