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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매듭 /5회

이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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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0.3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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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수치심도 없이 벌거벗은 채로 자신의 성기를 내 눈앞으로 향한 채 침대에 앉더니 담배를 피워 물더군요. 그는 연기를 깊이 빨아 당겨 삼키며 당신을 향하여 말했지요.

"관객이 있으니 더 짜릿한데. 어때. 언젠간 쟤도 알 거 아니야. 쟤 그런데 생리는 하냐. 여자 구실은 할 수 있나."

그의 말에 당신은 뭐라 말하지 않고 덤덤했습니다. 사실 결혼 한지 반년이 다 되어 가도록 당신이나 나나 그 문제에 대해 별로 심각히 생각해 보지 않았지요. 난 고양이나 개보다는 말을 나눌 수 있는 당신이 낫다고 생각했을 뿐 더 이상은 생각지 않았으니까요.

"왜 온 거야 .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게, 주문 받은 소삼작 노리개를 가져가지 않아서."

"그럼 전화를 하지. 그럼 내가 가져다주었잖아."

당신은 그제 서야 화가 난 듯 했습니다. 난처한 표정을 짓기도 했고요.

"됐어. 어차피 언젠 간 알게 될텐데. 오히려 잘 됐지. 잘 된 거야. 오히려 짜릿한데. 이리 와봐."

J는 당신을 향하여 팔을 벌렸습니다.

"아이, 자기는....?"

당신은 J에게 교태까지 부리며 다가갔습니다. 나는 그때서야 놀랐습니다. 아이, 자기라니.

"가서 쟤 들여놓고 문 닫아."

그러자 당신은 나를 방안에 들이고 문을 닫았습니다.

"잘 봐. 니 주제에 언제 이런걸 보겠나."

J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더니 당신의 몸 위를 뱀처럼 기어 다녔습니다. 당신은 여자와 같은 몸짓과 표정을 지으며 J에게 감기더군요. 나는 구태여 눈을 감거나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놀라지도 않았고 혐오스럽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당신과 J가 파정을 할 때 뭐랄까 약간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그런 나날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는 때로는 당신과 J를 지켜보기도 하였고 간혹 라면을 끓여 주기도 하였지요. 어떨 땐 주방에서 매듭을 맺고 있기도 했어요.

내가 놀란 것은 J와 당신의 서로를 탐하는 행위보다도 당신이 여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J보다 체구도 크고 훨씬 남자답게 생겼는데 어째서 당신이 여자 역할을 하는지 의아했어요. 게다가 당신이 J를 더 사랑하여서 J가 없으면 당신은 아마 살지 못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남편이면서 또 J의 여자였던 거지요. 우리는 삼각 관계 였나요?

"나 사랑하지. 나 버리지 않을 거지. 나 버리면 그땐 자기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 버릴 거야."

당신은 가끔 J의 빈약한 가슴에 안겨 이렇듯 애처로운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난 주방에서 매듭을 맺다가 싱크대 밑에서 기어 나와 어디로 갈까를 망설이는 바퀴벌레를 향해 재빨리 휠체어 바퀴를 굴렸습니다. 휠체어 바퀴 아래서 바퀴벌레는 으깨어져 버렸습니다. 바퀴벌레를 휠체어 바퀴로 깔아뭉개 죽이는 이 솜씨는 하루 이틀에 길러진 게 아닙니다. 바퀴벌레만 보면 나는 사냥꾼 마냥 맹렬한 투지가 끓어오릅니다. 난 바퀴벌레를 향하여 돌진하며 당신이 J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 봤습니다.

"나 사랑하지. 나 버리지 않을 거지. 나 버리면 그땐 자기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 버릴 거야."

J가 일이 있어 오지 못하거나 연락이 되지 않거나 하면 당신은 몹시 신경이 날카로워 지고 화가 나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이유 없이 내 뺨을 갈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나를 끌어안고 울기도 했습니다. 당신 말에 의하면 J는 인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 말에 의하면 J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생활 신문에 조그맣게 난 남자 누드 모델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고 거기서 만난 게 J였다고 했지요. 당신과 J는 벌써 오 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J는 수입이 없어서 당신은 택시 운전을 하여 J의 물감과 붓을 사줬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면 삥땅을 많이 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지요.

햇볕이 잘 들던 가을 어느 날, 나는 소삼작 노리개를 만들며 당신에게 물었지요.

"그럼 당신도 하리수 같은 사람인가요?"

당신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아니다. 하리수는 여성이 되고 싶어 여성이 된 것이고 나는 단지 동성애자일 뿐이다. 하리수 같은 경우는 육체는 남자이지만 정신은 여자이다. 그래서 여자가 되고 싶고 여자가 된 것이다. 트렌스젠더라고 하지. 동성애자는 육체도 정신도 남자이다. 오히려 남자인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그래서 여자가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랑의 대상이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 할 뿐이지. 나 같은 사람을 게이라고 하는 거야."

"트렌스젠더와 게이가 같은 줄 알았는데 다르군요."

"트렌스젠더는 자신의 생식기나 신체에 거부감이 있는 반면 나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식기나 신체에 대한 불만은 없지."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의 미술 선생이 내 첫 사랑이었지. 그 후로 나는 그림 그리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지. 아마 첫 사랑을 못 잊기 때문인가 봐."

난 문득 노리개를 만들던 손을 멈추고 말했지요,

"당신도 장애자예요. 당신은 나 보다 더한 장애자예요."

당신은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햇볕을 바라만 보았지요.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건 장애자가 아니고 단지 다를 뿐이야."

그래서 나도 말했지요.

"그렇담 나도 장애자가 아니고 다를 뿐이에요."

줄창 그것만 꽂아서 큐빅이 세 개나 빠진 핀을 다시 꽂아 주며 당신은 느릿하니 말했지요.

"핀을 다시 하나 사 주어야겠네. 그래. 난 너를 장애자라고 생각해 보진 않았어. 내가 다르듯 너도 다를 뿐이야."

난 톰행크스가 나왔던 필라델피아라는 영화를 당신 때문에 당신이 일을 나가고 나면 몰래 다섯 번이나 보았지요. 톰행크스의 그 절박한 표정. 톰 행크스의 절규하는 표정 위로 화면 가득 넘치던 음악.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으로 퍼지던 마드레느의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의 그 소름 돋던 음원. 난 매듭을 판 돈으로 마리아 칼라스의 CD를 샀지요. 그 영화를 보고 당신을 좀 더 알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은 정말 장애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뭐 꼭 남자는 여자만을 사랑하란 법은 없으니까요. 그건 그냥 사회의 상식이며 통념일 뿐이니까요. 그러면 당신은 J의 아내인가요? 그렇담 나도 남자가 아닌 여자를 사랑하는 건가요? 당신은 J의 아내이면서 나의 남편인가요?

오늘 당신이 나가던 날, J에게서 전화가 왔지요. 다른 사랑하는 상대가 생겼으니 그만 정리하자는 것이었어요. 당신은 가만히 있다가 묻더군요.

"젊어?" 

저쪽에서 아마 스므 살이라고 대답한 모양이에요.

"스물?" 

당신은 되묻더니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전화기를 놓고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부들부들 떨었지요. 그러더니 나의 따귀를 때리며 소리쳤습니다.

"개자식. 죽여 버릴 거야. 나를 버려. 스물이라고?" 

- 일주일 후에 계속 - 

 

이준옥 :소설가. 1회 전태일 문학상 소설 당선한국작가회의회원복사골문학회 주부토 소설동인.

아름다운 지구에 여행 온 것을 축복으로 여기며지구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살아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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