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6(월)

구유현의 명상노트 - 행복의 집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환경이 더불어 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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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1.0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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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의 집을 잘 지어 볼 수 있을까. 행복은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지만, 타의에 의하여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경향이 많다. 사람이 잘 태어나 유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 명예, 권력이 있다고 하여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각자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잘 적응하며 최선을 다할 때 행복한 삶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어도 본의 아니게 입방아에 오르고, 근심 걱정, 불안, 불편, 갈등, 오해, 증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즐겁고 편안할 수 없다. 주변에서 선의의 불쾌한 상황을 보고 듣기에 따라 좋은 말을 한다며 잊으라라고 위로해주지만, 감정이 앞서 불편한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누구나 말로는 배려하고 존중하자는 덕목을 금과옥조처럼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원수지간처럼 상대하는데 속이 편할 수 있겠는가.

 갑질, 이간질, 무시, 비방, 폄하, 욕설, 무책임, 배신이 일상화되는 데 잊고 잘해보려고 해도 속수무책이다. 친목 모임조차 이해할 수 없는 불편한 대화가 일상화되고 매번 경직된 분위기로 안 만나느니 못한 만남이 되기 일쑤다. 걸핏하면 나눈다는 대화가 지시나 통제하듯 불편한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이 오래간만에 만나서 평소 친분대로 아픈 속내도 드러내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상한 감정을 풀기보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며 가르치듯 분위기가 조성될 때 즐겁고 유쾌한 생각이 들까. 이런 말이 능력이라도 되듯 팽 시키듯 한 익숙한 분위기에 알 듯 모를 듯 피해자가 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편한 진실이 음계가 되듯 생활화되고 허용된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누구나 서로 다른 시각에서 상대를 불편하게 하며 매일 껄끄러운 일상이 반복되고 똑 같은 사람을 만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냥 긍정적인 생각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 부적절한 언행은 잘못되었다고 알려야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즐겁고 기분 좋은 만남이나 행복한 직장생활을 마다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꼭 그런 것처럼 대단하듯 호도하는 사람이 꼴불견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해지고 싶지만, 주변 환경이 행복한 삶의 터가 되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다. 부정적인 환경으로 고민이 쌓이고 스트레스를 받아 무기력해지고 생활에 회의를 느끼며 의욕이 꺾이는 환경에서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 당한 사람만 억울하고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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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희망이 충족되었다고 하여 행복한 것은 아니다. 주변 환경이 불편하다면 행복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환경이 더불어 살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말 대로 사회와 개인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개인은 물론 불편한 사회 현실은 숨길 수 없다. 우리는 각자가 개별적으로 성숙해지려고 하는 것이지 사회생활을 배타적으로 하자는 뜻이 아니다. 이타적으로 노력하며 공동체 생활덕목을 잘 길러야 서로가 상처를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누구나 물불 안 가리고 욕심을 우선시하는 환경에서 행복한 삶은 기대하기 어렵다. 서로가 기쁨과 감동을 주는 마음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나눠 가질 수 있는 사회가 희망과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

 상대를 인정하기보다 경멸하고 질타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공유하지 못하는 환경은 창살 없는 감옥과 다를 바 없다. 아쉽게도 당하는 사람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면 되겠는가. 오죽 허접스럽게 보였으면 그렇게 했겠냐고 당하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우리의 환경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그래서 언제나 악순환이 되풀이되며 잘못된 환경이 조성된다. 하기 좋은 말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현실성 없는 말이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이는 행복한 집을 짓기보다 부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

 우리는 행복의 집과 같은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사전적 행복의 정의는 생활에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한 상태이다. 사람마다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개별적으로 행복을 느껴야 한다.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이 있고, 승진하지 못한 사람은 승진하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아픈 데만 없으면 살 것 같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없는 것 없이 다 가졌다고 행복한 삶은 아니다. 세월이 지나고 아쉽게도 가지고 있던 것을 다 잃고 나서 그땐 행복했었다고 후회한다.

 사소하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가볍게 보지 말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등산할 때 땀을 흘리며 힘들게 정상에 올랐을 때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만일 당신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온 세상을 모두 소유하더라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끼게 하는 앎이 중요하다. 행복연구가 게만 허는 좋은 행복은 지속 가능한 행복이라고 했다. 바람직한 행복의 집은 가족, 친구, 이웃, 학교, 사회 등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기쁨을 나눌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행복뿐만 아니라 타인의 행복까지 관심을 두도록 나눔과 배려, 공감과 소통, 대화와 협력, 참여와 자치로 행복하게 사는 문화 환경으로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길러줘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행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말고 필연적으로 받아들일 때 긍정의 집을 지을 수 있다. 가정, 학교, 사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모두가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때 건강한 삶의 집이 되고 행복한 거울로 자축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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