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5(월)

구유현의 명상노트 - 학교폭력

예나 지금이나 맞은 학생은 공포, 불안, 협박으로 시달리는데 때린 가해자는 위풍당당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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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1.2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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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문제가 왜 뉴스메이커가 될까.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떠들썩하다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게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하여 의문이 있었으나 의견이 각양각색으로 도출될 뿐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맞은 학생은 공포, 불안, 협박으로 시달리는데 때린 가해자는 위풍당당하게 보였다. 우리 환경은 정서적으로 부모는 아이가 맞고 들어오는 것 보다 때리고 들어오는 것이 낫다고들 한다. 아이가 싸우고 엉엉 울며 들어오는 아이를 보면 부모는 얼마나 속이 상할까. 때린 아이의 부모는 있을 수 있다며 지극히 예사롭다. 정말 화가 난다. 상대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생활화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부모의 잘못된 사고방식이 아이의 폭력성을 키우는 계기가 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2021 10월은.png

 

 애들이 자라며 싸우면서 크지 싸우지 않고 크는 이이가 어디 있나요?”

 우리도 어릴 때 다 자라면서 싸우며 컷잖아요, 애들이 싸운 것 하나 가지고 뭘 그래요?”

점점 울화통이 치밀며 한동안 고성이 오간다. 이렇게 답답한 이야기가 오가며 답보상태를 면치 못한다.

 우리 애로 인하여 심려를 끼쳐드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제 자식 잘못 교육한 죄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얼마나 속이 상하세요,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이렇게 사과하면 쉽게 서로 이해할 만도 하다. 잘못하면 아이들 싸움이 부모 싸움이 된다. 이웃에 살면서 아이들끼리 다정하게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을지 안타깝다. 그런데 맞고 들어오는 것보다 때리고 들어오는 것이 낫다며 때린 아이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 맞은 아이는 영악하지 못하고 허약하며 부족하게 취급한다. 얻어맞은 것도 참기 힘든데 얼마나 억울하게 하는가. 그러니 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이 간다. 이가 부러지고 얼굴이 깨진 정도가 아니면 거들떠보려고도 않는 눈치다. 피차 감정이 격화되기 일쑤다. 사사로운 것으로 취급될 뿐 잘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가리지도 못한다.

 내가 너 싸우라고 시켰냐?”

 싸우지 말라고 했잖아

 꿈자리가 사납더니 별일이 다 있네

되레 폭행당한 아이를 죄인 취급 하듯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아이가 싸워서 힘들어하면 부모가 앞으로 잘 지낼 수 있도록 중재를 하고 사과하고 이해를 시키는 일이 중요한데 부모 간에 감정싸움으로 변질 된다. 알게 모르게 폭력성을 키우는 것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아이가 청소 시간에 이가 부러진 일이 있었다. 걸상을 책상에 올려놓는데 팔을 잘못하여 옆에있는 친구의 이가 부러졌다고 한다. , 아이가 발목을 차여 계단 앞으로 넘어져 이가 부러지는 어이없는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학생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화시키려는 사람이 있겠는가. 차후에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면서도 석연치 않을 때가 있다.

 장난이래요, 장난하면서 그럴 수도 있잖아요

 아이가 장난으로 운이 없어 일어난 일인데, 걱정할 것 없어요!”

장난이라도 이가 부러지게 하면 되겠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장난이라고 했지만 말 못 할 사연도 있으리라. 아이가 장난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했다. 장난이라도 이라 부러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가 망가지면 평생 이를 관리해야 하고 금전적인 보상 문제도 따르니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일은 폭력성이 없다고 해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상대에게 이런 피해가 있었다면 큰일이 아닌가. 장난으로 발생한 문제니 괜찮다는 발상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다.

 

나는 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아이를 학교에서 친구들이 왕따를 시키고 힘들게 한다며 전학을 시켜야겠다며 답답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학교에 방문하여 선생님을 찾아뵙고 상담하면 해결방법이 있을 거라고 하였지만 자기 생각만 부정적으로 고집하기만 하였다, 명색이 나도 전문가라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견을 좁힐 수 없다니 부끄러웠다.

 애 문제가 알려지게 되면 보복을 당하기 때문에 할 수 없어요

 돈 가져오라고 협박하면 돈 갖다주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보복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잖아요

 말은 쉽지만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아요

 사기꾼이 돈 요구하면 그대로 하겠어요

 , 답답도 하사네. 그렇게 모르세요

결코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또 다른 피해 학생이 발생합니다. 꼭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보복이 두려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요지부동이다. 아이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런 문제를 고려하여 선생님이 아이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고려하여 간접적으로 아이들을 지도하지 드려 내놓고 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기다. 별의별 얘기를 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했던 이야기가 지금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며 이어지고 있다니 학교폭력이 사라질 수 있을까.

 

나도 학창 시절에 학교폭력으로 시달린 적이 있어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부엌으로 끌려가 흉기로 위협을 당한 적도 있었다. 선배랍시고 아무 까닭 없이 공연하게 트집을 잡고 귀찮게 할 때 부모님과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려 해결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되레 마음이 상하기만 하였다.

선생님은 사내새끼가 그런 걸 가지고 쩨쩨하게 다 이야기하네!”

내가 선생님께 말씀드리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한 시도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운데 선생님은 듣는 둥 마는 둥 할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였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해결할 수 없어 부모님께 정황을 말씀드려 도움을 요청하고 선생님을 찾아뵙고 상담을 하였다. 이럴 때 얼마나 부아가 나겠는가

 어머니는 평소에 선생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 아이 문제로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우리 애가 지나가는 데 아무 이유 없이 선배랍시고 욕하고 발로 차고 때렸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아이가 다니는 길이 꼭 그 애 집 앞을 지나다니는데 걱정입니다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저희가 잘못 지도한 결과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지도를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시간도 없으신데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효과가 있을지 미심쩍었지만, 부모님이 담임선생님과 말씀을 잘 나눈 것 같아 그 후로 별 탈 없었다. 지금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다툼이 있을 때 내가 큰 소리로 기선을 제압하던지, 안되면 숨기지 않고 부모님과 선생님께 말씀드려 해결한 것이 잘됐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아이는 의리가 있는 양 이를 숨기며 문제를 키우는 경향이 있다. 정작 문제가 터졌을 때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 후다. 이유가 어떻든 당하지만 말고 맞서야 한다. 안되면 도망가기라도 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나는 방어용으로 흉기를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안 되면 집에 알려서 어떤 방법이라도 이런 환경을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맞설 수 없으면 삼십육계가 최고다.

 야 이 새끼, 거기 못 서

나는 죽기 살기로 도망쳤다. 쳐다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겠지. 뒤를 돌아보니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다. 시내에 갈 때는 그 애 집 앞을 항상 지나야 하는 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를 부끄럽고 보복이 두려워 감추면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온다. 모두가 다 함께 노력해야 학생폭력을 극복할 수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가벼운 일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면 자라면서 폭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미리 예방 교육을 하여 왕따나 폭력을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해야 한다. 아이가 문제가 있을 때, 내 새끼만 안전하면 된다는 식으로는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 모든 문제는 어른이 잘못이다. 어른이 배려를 못 하고 폭력적이면서 아이에게만 잘하라고 해서 듣겠는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지속적인 생활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 살 때와 여든이 됐을 때의 마음이 한결같아야 한다.

 

2021 10월열매1.png

 

얼마 전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무대에 선 사람이 학교 다닐 때 자기에게 폭력을 한 사람이란 걸 텔레비전을 보고 우연히 알게 되어 문제가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사화되고 무대에 선 사람이 뭇매를 맞으면서 안타깝게도 무대를 떠나야 했다. 왜 당시에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지금에서야 문제가 되는지 되짚어 보게 되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을 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있었야겠지만 아쉽기만 하다. 피해자는 당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했겠지만, 소극적인 책임도 간과할 수는 없다. 어떠한 경우라도 학교폭력은 있을 수 없다. 있다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학교폭력은 무대에 선 사람만이 아니다. 하필 무대에 선 사람이어야 했을까. 현재에 이르기까지 드러나지 않은 학교폭력은 많이 있을 것이다. 유명인으로 무대에 서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폭력을 한 사람도 내 배 째라며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고, 피해 학생도 좋은 게 좋다며 막연히 지나칠 수 없다. 당시는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터부시하는 것도 적절하지 못한 일이 아닐까. 우리는 항상 학교폭력을 해결해야 할 갈림길에서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속앓이하며 억울한 세상이 되고,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배려심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결과가 아닐까. 협박하며 입에다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붓는 등 학교폭력이 날로 심각한 수준이다. 안타깝게도 무대에 이름이 떠서 학창 시절에 학교폭력과 관련한 문제로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기사가 더 안타깝다. 당시에 시시비비를 가렸더라면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논란이 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텔레비전 무대에 서지 않았더라면 조용히 묻혔을 일이다.

 

학교폭력도 일종의 나쁜 거래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하기 쉬운 말로 바보같이 했으니까 그랬겠지, 변변하면 당했겠어라고 피해 학생을 더 억울하게 자극하기도 한다. 가해 학생이 진심으로 사과하여 피해 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사과하면 아픈 사연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학교폭력이 영원한 미제로 평생 후유증으로 남는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좋지 못한 거래는 될 수 있으면 빨리 훌훌 털어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도 학교폭력으로 시달려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련의 사례가 학교폭력에서 벗어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정보를 공유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적이며 상대가 자신에게 어떤 언행으로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이를 초월한 분이라면 성인군자와 다를 바 없으리라.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이 있듯 청소년의 문화 환경도 이와 같지 않을까. 모두가 나서서 손가락질하고 십 수 년 철 지난 학교폭력에 일희일비하며 학교폭력을 불러온다면 또 다른 선례를 남길 수 있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도록 학교폭력에 대한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만남의 자리를 활용하여 화해를 모색하여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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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현의 명상노트 -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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