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6(월)

동짓달 기나긴 밤을/황진이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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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2.0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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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황진이

 

동짓(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사본 -겨울풍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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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행복을 찾는 순간일까, 서정적인 평시조 한 수 읊조리며 누굴 저리도 애타게 기다릴까. 사박사박 눈을 밟으며 임은 오지 않을까? 성엣장 같은 차가운,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 밤은 깊어 가는데 …… 송도삼절의 조선 최고의 뮤즈인 황진이, 밤중에 가슴에서 부화한 그리움 한 줌 안겨준 그이는 하룻밤 풋사랑이었을까 아님, 정 주고 떠난 풍류객의 사대부였을까? 누가 되었던 그 임이 언제 올지 몰라 기나긴 밤의 시간을 한 토막 잘라낸다니, 비록 기녀의 신분이지만 순수 우리말을 잘 구사하는 그녀, 얼마나 겨울밤 동치미 같은 맛 난 표현인가.

 

그 시간을 봄바람 같은 따스한 이불 아래 넣어두었다가 사랑하는 임이 오거든 펴 드린다니, 이토록 으늑한 정성, 장작불에 달궈진 사랑방 구들장인들 이보다 더할까. 당대 최고의 문장가요 풍류객이 사실 여부를 떠나 백호 임제가 평안도 관직에 부임하기도 전 파직 당할 만하지 않은가. 한 번쯤 황진이 같은 여성에 젖어보고 싶지 않은 사내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이 嚴冬雪寒……

 

동짓달 기나긴 밤에 황진이가 임이 오길 바라는 밀물의 기다림이었다면 폭풍한설에 실연의 아픔을 안고 방황을 하며 괴로운 심사를 토해내면서 겨울 여행을 떠나는 썰물의 떠남이 있다. 비더마이어 시대의 가곡 왕 슈베르트다

 

죽기 한 해 전, 빌헬름 뮐러의 시에 24곡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짓는데 그 마지막 곡이 ‘Der Leiermann 거리의 악사이다. 빌헬름 뮐러는 연인에게 배신당한 뒤 그 어떤 세속적인 욕망이나 미련도 다 벗어 던지고 애통한 마음으로 시를 썼다. 그러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고독감과 사무친 고뇌의 심정으로 황량한 허허벌판에서 안식을 얻는다. 슈베르트는 바로 이 빌헬름 뮐러의 보고 <겨울 나그네>라는 걸작을 탄생시킨다.

 

황진이와 슈베르트는 기다림과 떠남의 엇갈린 운명을 노래한다. 기다림은 떠남을 예고하고 떠남은 또 다른 기다림을 예약하는 모순의 진리 속에 동일성의 사유를 발견한다.

 

황진이가 시조 한 수 짓고서 밤새도록 임 그리며 읊조린 것처럼 슈베르트 또한 거리의 악사를 마치 250여 년 앞선 황진이 시조처럼 길게 늘어뜨리며 우울하게 슬픈 곡조로 여운을 남긴다. 사랑하는 임의 곁을 떠나면서 차마 떠나기 싫은 마음에서일까. 슈베르트와 같은 나이(31)에 세상을 등진 명동백작 시인 박인환도 그랬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법화경에서 말한 會者定離(회자정리) 이다. 사람은 만나면 헤어진다. 인생의 무상함을 의미한 것이리라. 또한 去者必返(거자필반)처럼,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것, 이 또한 거슬릴 수 없는 인생의 순리이다. 만남과 헤어짐, 헤어짐과 만남 속, 인생은 그렇듯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지고 만나고, 만나면 헤어지는 순리 앞에 황진이나 <겨울 나그네> 속 주인공도 순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은 괴롭고 슬픈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시를 짓고 노래를 읊조린 것이다.

 

실연과 시련을 겪은 사람들, 우린 그 누구도 타인의 비애를 알지 못한다. 시조 한 수의 문학과 노악사의 음악, 오감으로 스며든 향기여! 난 동짓날을 얼마 앞두고 삼경의 겨울밤에 이 곡을 들으며 황진이와 겨울 나그네가 되어 본다.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https://www.youtube.com/watch?v=7OvZWtHH3mI&list=RD7OvZWtHH3mI&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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