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구유현의 명상노트 - 자식 농사

단순히 교육과정의 운영이 교사의 역할이라면 교사의 관심이 없는 아이들의 교육은 기대하기 어렵다.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1.12.18 15:34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농사는 자식을 키우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노상 아내는 시골에 얼마간의 땅이라도 사서 공기 좋은데 가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한다. 나는 깡촌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들은 체도 안하지만 말 같은 소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가 하는 말도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나는 아내의 생각과 달리 도시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 이것저것 구경도 하면서 농촌에서 보냈던 어려운 시절을 채우고 싶다. 우리 부부는 시간이 나면 다툴 구실을 찾는 것 같다. 이럴 때 어떻게 증명해 보일지 난감하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툴 일도 아니면서 걱정을 한다.

 “우리 시골에 가서 상추도 키우고 마늘, 깨, 파, 고추, 콩 등을 우리 먹을 만큼만 가꾸면서 공기 좋은데 살면 어떤가요?”

그럴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답변하기가 껄끄럽다.

 “다짜고짜로 농촌에서 살아본 적이 있어요?”

“시골에서 살아보지 않았으니 그런 말을 하지”

 “나는 도시에 가서 이층 이상 올라가 보고, 농촌에서 언제 벗어 날 수 있을지 꿈만 꾸었어요” 

아내는 삐딱하게 들렸는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냥 해본 소리예요” 

미안한 생각이 든다.

 “당신 마음 따라 하고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농촌에 내려가서 살자는 말은 낭만으로 들려요”

 “농촌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농촌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 몰라요” 

 더 이야기하면 다툴 것 같아서 이쯤에서 답답한 마음을 접었다. 주변에서 듣기 좋은 말로 귀농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콧등으로 흘려들었다. 더러 뜸해지고 심심할 때면 어김없이 우리 부부는 똑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 여보, 우리 공기 좋은 데 가서 채소밭에다 당근, 상추 심으며 당신 비염도 치료할 겸 건강하게 살면 어떨까요?”

 “당신 농촌 일해보기나 하고 그런 말 해요”

 “ 당신 때문에 해본 말이에요”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는 이렇게 언제나 일방적이다. 아내가 기분이 상할 일이지만 얼떨결에 나온다. 농촌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가부 간의 이야기조차 하기 싫어 침묵으로 일관하다 마지못해

 “나는 논, 밭을 사주며 농사를 지으라고 해도 하기 싫어요”

 아내는 머쓱한 생각이 들었는지 더는 말이 없다.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농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쉽게 이야기를 한다. 농촌에 살아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속이 터진다.

 '농사나 짓지'라고 식은 죽 먹듯 아무나 하는데 농사를 지어 보지 않고 할 소리가 아니다.

 

2021 11월사본 -DSC_5819.jpg

 

 “ 여보, 농사는 말을 못 하므로 무엇이 필요하고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지 농사를 지어 보지 않는 사람은 알지 못해요. 농사는 일일이 사람의 손이 필요하고, 손길이 닿는 만큼 잘 거둘 수 있어요. 현재 건강 상태라면 병원에도 가야 하는데 시골에 가면 쉽게 병원에 갈 수 있겠어요? 농사를 지으려면 종자를 잘 관리하고, 씨를 뿌려서 적절하게 거름을 주고, 병충해 관리, 사람이 목욕하듯 잡초를 매 줘야 해요. 조금이라도 방심을 하거나 실기를 하면 큰 손실이 따를 수 있으며, 자칫 게으르면 잡초밭이 됩니다. 그래서 자식 농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겠어요. 아이들 교육도 농사와 다를 바 없답니다."

 이렇게 일장 훈시를 하면 농사에 “농”자도 꺼내지 못하는 날이 된다

 “부모나 교사의 관심 없이 아이들을 버려두면 아이들이 어떻게 될 수 있을지 안봐도 비디오지요”

“안그래요?”

“아이를 좋은 환경에서 잘 길러야 한다는 말은 부모가 잔소리하지 않고 편안하게 아이의 기분대로 키워야 한다는 말과 뭐가 다르겠어요”

 “막연한 생각이나 의지로만 아이를 키울 수는 없지요. 자식 교육을 잘해야 한다는데 반론이 있을 수 없지만, 자식을 키우는데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생각이나 해봤어요?” 

 아이를 키우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방법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데 아쉬움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가 아이 교육에 관하여 소통이 잘 될 것 같지만 쉽지 않다.

'세 살 먹은 아이가 천자문을 줄줄이 읽고 쓴다며 요즈음 아이들 똑똑하여 가르칠 것이 없다.' 며 무식인지 유식의 소치인지 모를 말을 하는 사람에게 더는 토를 달 수 없다. 아이가 싸우고, 욕하고, 떠들고, 수업 시간에 왔다 갔다 소란스럽게 해도

'선생님, 아이가 자라면서 다 그러니 이해해야지 않겠어요?' '제 자식이라 그런지 우리 애는 다른 애보다 착합니다. 집에서 집안 청소도 잘하고, 심부름도 잘하고, 부모 거역하는 일이 없어요'  '선생님은 왜 우리 애한테만 그렇게 보세요? 다른 애들도 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일장 훈시를 들은 선생님은 '아무개는 아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잘하고, 말고요.' 이렇게 상담을 끝낸 학부모님은 애 칭찬에 취해서 정말 상담 잘하고 그런 줄 안다.

 학교 선생님도 학부모님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선생님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할 때는 학부모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 말썽이 있어 말할 때면, '우리 학교보다 다른 학교 애들은 더 심해요'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양반입니다' 라고하면 선생님들이 아이 진로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의논하기 힘듭니다. 더 말해봤자 입씨름이나 하게 되고 결론을 낼 수 없다.

 '학생은 112로 전화를 하여 선생님이 욕하고 때리며, 인권을 무시했어요'라고 신고한다. '학생을 지도했다고 신고를 당하는데 어느 선생님이 학생을 지도하려고 하겠어요?' 선생님도 힘들다고만 하지요. 학생, 부모, 선생님 모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서 무슨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안타까운 일이 세월이 되어 가지요. 한 번은 탁구장에서 이런 주의를 당부하였지요. '앞에 가는 아이 가방끈이 잘못되어 그것을 보고 뒤 따라가던 사람이 바르게 고쳐줬는데 성희롱으로 신고가 되었다' 며 무서운 세상이라고 반장이 들려주며 '탁구장에서 어르신은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열심히 운동이나 하고 가시라'며 관장이 하는 말을 당부하였다.

학부모, 선생님 모두가 자신이 직접 해보려고 하면 이렇게 어려운 일 같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담론은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일보 2011년 7월 13일 보도 내용이다. '전체 초중고교생의 90%인 4,900만 명이 다니는 미국의 공립학교 시스템은 모든 선거에서 1순위 현안일 만큼 국가적 골칫거리란다.' '미국 학생들의 학력은 수십 년간 OECD 하위권을 맴돌고 있고 학교는 제멋대로인 학생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폭력이나 절도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학교는 전체의 15%에 불과하며, 고교생의 7.8%가 무기를 지닌 학생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어 금속탐지기로 등교 학생을 검사하는 학교가 20개 중 1개꼴이고 5개 중 1개는 마약 소지 불시 조사를 벌인다고 한다.'  미국 학교가 이렇게 된 배경은 20세기 초 불기 시작한 진보주의 교육 바람에 있다. 1919년 진보주의교육협회(PEA)를 결성한 교사와 교육학자들은 교사는 학생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촉진제 구실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교사는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커리큘럼만 진행하면 그만인 기능인으로 내려앉았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고사하고 천방지축 나대는 아이들을 꾸짖을 힘도 의욕도 잃은 지 오래다. 미국 신임교사의 절반은 5년 안에 교직을 버리고 떠난다고 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촉진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배움의 끌림이 있게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한다. 정상적인 수준일 때는 가능할 수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배움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영국의 ‘열린교육’이나 ‘참교육’이 아이들을 위한 절대적인 교육의 대세라 할 때도 있었지만 어떤 방법으로 할 건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 수밖에 없었다.

 참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교사의 관심과 열정으로 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스스로 할 수 있게 자유의사에 맡겨서,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냥 두는 교육 중 교사들은 어느 쪽을 선택했을지 의문이 간다. 막연히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라 하면서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면 선생님의 관심 어린 교육은 기대할 수 없다. 장난치고 욕하며 떠들고 놀든지, 잠을 자든지, 마음대로 돌아다니든지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문제 학생을 보고도 고개를 돌리고 지나치거나 못 본 척, 모르는 척 미온적으로 학생을 지도하다 보면 학교는 난장판이 되어갈 수 밖에 없다.

 어른들의 생각대로 아이들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제멋대로 하게 하면서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나 배우려는 노력 없이 학생들의 인권을 상대적으로 중시한다면 우리의 교육도 미국과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단순히 교육과정의 운영이 교사의 역할이라면 교사의 관심이 없는 아이들의 교육은 기대하기 어렵다.

  '영국 정부도 학생 체벌을 전면 금지한 ‘노터치(no touch) 정책을 도입한 지 13년 만에 폐기하기’로 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육은 학생과 교사가 함께 가는 교육이 될 수 있을 때 바른 교육으로 돌아올 수 있다. 교육은 교사가 하는 만큼 학생들이 따른다. 교사가 하기 싫은 교육은 있을 수 없다. 교사의 얼굴빛, 복장, 언행, 관심과 열정에 따라 시시각각 아이들이 달라진다.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이 따라 한다. 교육의 방법은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기업에 상품을 만들 듯 학교에서는 사람을 만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범유행 현상을 맞이한 어려운 시기에 교육을 말한다는 것이 부끄럽다. 내일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으로 쓴 내용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구유현의 명상노트 - 자식 농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
작업수행시간 :: 0.270492076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