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6(월)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2회

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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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2.2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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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밤이 되었다. 그날따라 다윗가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걸쭉한 저녁식사 자리의 맨 위쪽에 다윗이 앉고 그 우편엔 첫째 부인 미갈을 비롯하여 다른 부인들이 순서대로 앉았다. 부인들의 맞은편에는 아들들이 앉았는데 아히노암에게서 낳은 다윗의 장자인 암논과 아비가일이 낳은 길르압과 마아가에게서 낳은 압살롬과 학깃에게서 낳은 아도니야와 아비달에게서 낳은 스바댜와 에글라에게서 낳은 이드르암 등이었고 다윗의 맞은편엔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이 앉아 풍성한 식사를 즐겼다. 그러나 다윗은 씹는 빵이며 고기 맛을 밧세바에 대한 생각으로 뺏기고 있었다. 오직 어서 식사가 끝나 밧세바에게 달려갈 궁리뿐이었다.

부인과 아들딸들은 별 말이 없었다. 유독 맏아들 암논의 눈길만 식사는 건성인 채 아름다운 처녀로 자란 이복동생 다말을 좇아 부지런히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그런 식사 분위기를 깬 건 첫째 부인 미갈이었다.

폐하, 식사 후에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다윗은 뜻밖의 미갈의 말에 번쩍 고개를 들어 눈짓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 자리에선 말씀드리기가 쑥스럽사옵니다.”

그러면 다음에 듣겠소. 오늘밤엔 내게 긴한 일이 있소이다.”

미갈은 금방 샐쭉해졌다. 미갈은 정부인임에도 다른 부인들은 모두 아들을 낳았지만 그녀만 자식이 없었다. 자식이 없다는 건, 특히 아들이 없다는 건 여자의 제일가는 수치였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다윗의 사랑은 식어가기만 해 그녀는 초조했다. 그래서 요로에 수소문해 최고의 합환채를 구해 놓았으나 다윗과 좀처럼 동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해 큰맘 먹고 꺼낸 얘긴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합환채는 남자의 정력을 강하게 하고 여자에게는 임신을 쉽게 하는 약초로 사랑의 묘약이라 불리고 있었다.

다윗은 미갈에게 옛날의 다윗이 아니었다. 그 옛날 미갈이 다윗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안 사울 왕은 설령 다윗이 자신의 사위가 될지라도 백성들에게 자신보다 월등하게 인기가 높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언제라도 왕위를 뺏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그래서 꾀를 낸 게 다윗을 사위로 삼기는 하되 블레셋 군사의 양피 백 개를 바쳐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도 그런 조건을 내걸었으며 양피 백 개를 취하기 위해서는 분명 다윗이 먼저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만큼 블레셋 군사들은 사납고 무서웠다. 다윗이 그 조건을 수락한다면 어쩌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눈엣가시 같은 사자 새끼를 없앨 수 있으리라는 희망 섞인 흉계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다윗은 요구한 것의 두 배인 이백 명의 양피를 바쳐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사울은 백성들의 눈을 의식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다윗을 사위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울은 그 일로 인해 더욱 더 다윗을 미워하고 질투하여 어떻게 해서든 죽이려 들었는데 한번은 부친의 흉계를 미리 알아챈 미갈이 체포하려고 온 군사를 따돌리고 창을 통해 다윗을 도망시켜주기도 했다. 미갈은 다윗에겐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그렇지만 사울은 집요했다. 그는 끈질기게 죽이려 했고 그때마다 다윗은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그 와중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도움이 지대했다. 아버지는 죽이려 하는데 자식들은 살리려 했다. 결국 사울은 다윗 죽이기에 번번이 실패하자 미움도 더욱 극심해져 사위라는 올무마저 내팽개치고 미갈을 족장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 주어버렸다. 그 후, 사울이 죽어 다윗에게 모든 힘이 쏠리자 미갈은 다윗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미 여러 명의 부인을 두었던지라 꼭 미갈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단지 정략적인 차원에서 데려왔을 뿐이었다. 사울은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다윗은 반쪽 유다 왕에 불과했기에 통일 왕국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왕권의 정통성 확립 차원에서 미갈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연유로든지 미갈이 한동안 다른 사내의 아내가 되었다는 흠으로 그녀와 다윗의 사랑은 옛날과 같은 순 없었다. 미갈로서는 오히려 발디엘과의 생활이 그리울 정도였다. 그의 넘치는 정력과 사랑이 미갈의 밤을 괴롭혔다. 어쩔 수 없이 다윗의 막강한 권력에 의해 떠나올 수밖에 없을 때 발디엘은 멀리까지 따라오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만약 미갈이 오지 않으려 했다면, 아니 발디엘이 보내지 않았다면 그는 다윗에게 죽음을 면치 못했을 터. 미갈은 자식도 없이 늙어가는 자신의 신세가 서글프기도 하고 자신이 아니었다면 다윗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신을 무시하고 홀대하는 처사가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잊어버린 것 같아 가소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일도 바쁘시겠지요?”

미갈은 비꼬듯 물었다. 그러나 다윗은 일어섰다. 묵묵부답인 채로. 미갈을 포함하여 여러 부인들의 눈이 한꺼번에 그에게 쏠렸지만 옷 바람을 일으키며 휑하니 식당을 나가버렸다.

다윗은 빠른 걸음으로 왕궁 복도를 지나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상현달이 왕궁 가득 넘쳐흐르고 있었다. 왕궁 초소를 지키는 병사들의 긴 창이 한결 믿음직스러웠다. 다윗의 침실 앞에선 밧세바를 데려오라 지시 받은 시종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데리고 왔느냐?”

그렇사옵니다.”

수고했구나. 각별히 명심할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허락 없이 그 누구도 들여보내서는 안 되느니라.”

여부가 있습니까, 폐하.”

다윗은 발소리를 죽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먼저 반기는 건 물씬 풍기는 향품 냄새였다. 여러 개의 등경은 널찍한 방안을 환하게 밝히고 고대하던 밧세바는 등을 보인 채 창가에 서서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숨이 차오를 지경이었다. 고개를 약간 치켜든 밧세바는 달빛의 정기를 맘껏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어험.”

다윗은 헛기침을 했다. 그 소리에 놀란 밧세바가 고개를 빠르게 돌렸다.

오래 기다리셨소?”

아니옵니다. 폐하, 당신의 종 밧세바가 문안 여쭈옵니다.”

밧세바는 허리를 숙여 다윗에게 예를 표시했다.

이리 가까이 오시오.”

다윗은 그러면서도 자신이 더 빠른 걸음으로 두 팔을 벌리며 밧세바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아름다웠다. 자신을 그토록 설레게 하고 들뜨게 만들었던 시간이 결코 아깝게 여겨지지 않았다.

두 눈이 마주쳤다. 이글거리는 불과 불의 만남. 이 불꽃 튀는 두 개의 불이 만나니 당연히 더 큰불로 활활 타오르기 마련인가. 밧세바는 대담했다.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왕과 아녀자 된 백성의 신분임에도 열정적으로 다윗의 열린 품에 달려들어 안겼다.

다윗은 흡족했다. 왕의 체면도 밧세바는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안기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뭉클하게 느껴지는 밧세바의 젖가슴에 자신의 가슴이 녹아버릴 것만 같은 격정이 일었다.

둘의 포옹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연인들이 다시 만난 것처럼 열정적이었다. 다윗의 머릿속엔 자신을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백성들의 전쟁도 없고 우리아도 없었다. 밧세바의 머릿속에도 남편은 없었다. 둘은 왕도 아니고 아녀자도 아니었다. 오로지 정력적이고 여체에 능숙한 남자와 농익을 대로 익어버린 여인의 만남일 뿐이었다. 둘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여호와도, 그 율법도 없고 왕과 신하의 의리도 없고,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는 형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둘은 서로를 사로잡았고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의 자리는 에덴동산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조상 아담과 하와처럼 어떤 제약도 받지 않았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 그들은 부끄러움을 몰랐고 단지 서로만을 필요로 했다 하지 않았던가. 다윗과 밧세바, 그들의 갈망은 서로에게 전혀 부끄러움이란 걸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로지 언젠가는 만나야 할 상대를 이제야 만나게 된 걸 억울해하며 머리끝이 쭈뼛하도록 거대한 갈증을 풀어내려 안간힘을 다했다.

그토록 신실했던 다윗에게 또한 밧세바에게 여호와가 내린 모세의 계명은 벌써 하얗게 지워졌다. 율법에선 간음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지 죽이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도 가장 잔인하고 모욕적인 방법이었던 돌로 쳐서 죽이는 걸로. 심지어 그들의 선조 유다는 자신의 며느리 다말이 아들이 죽고 없는데도 잉태한 걸 알고 분명히 간음의 죄를 저질렀으리라 믿고 그녀를 불살라 죽이라 했는데, 그들은 그런 끔찍한 형벌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다말의 잉태는 간음은 간음이었을망정 가문을 잇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상대는 술에 취한 유다 자신이었으니. ()에서 간음이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인 교배로 인정된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 베레스는 다윗의 직계 선조가 된다.

침대가 들썩거리고 연달아 괴성이 터졌다. 몰아치는 폭풍이었고 사막의 뜨거운 모래 바람이었으며 그칠 줄 모르고 거세게 떨어지는 폭포수였다. 사자의 포효였고 발정 난 암말의 몸부림이었다.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휘어졌다가 펴지고.

다윗의 단단한 근육질을 밧세바의 부드러운 살결이 어루만져주고 밧세바의 부드러운 여체는 다윗의 단단한 남성이 사로잡았다. 상대의 희열에 상대가 더 들떠 괴성을 질렀으며 그 괴성에 또다시 더 자지러진 괴성이 숨 가쁘게 증폭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언제까지나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던 그들의 정사도 결국엔 극에 달할 수밖에. 그 절정의 순간, 소돔에 뒤질세라 고모라가 지랄을 하고 고모라에 뒤질세라 소돔이 발광을 했다. 그리고 두 눈 뜨고선 도저히 볼 수 없는 지랄발광에 대한 응징이었을까, 소돔과 고모라에는 비처럼 유황불이 내렸다. 그리곤 다 타버렸다. 살아있는 것들 모두가.

옹기점 연기같이 길게 둘은 숨을 몰아쉬었다. 바람은 멎었고 뜨거운 태양이 마지막 핏빛 열정을 남기고 서쪽으로 숨어버리듯이 몸을 부르르 떠는 순간 어쩐 일인지 둘 사이엔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나 둘 사이의 갑작스런 침묵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밧세바는 여한이 없는 순간을 음미하는 침묵이었다. 그녀는 가장 깊은 곳에 다윗의 씨를 받아들였다. 행여 한 톨이라도 흘릴세라 한참이나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었으니. 반면에 다윗은 절정의 폭발이 이루어진 순간부터 막연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밀려드는 것이었다. 아무리 가장 믿을 수 있는 시종과 자신만 알고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왠지 모르게 허탈해지면서 두려워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그 저릿저릿한 쾌감을 쉽사리 잊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능하다면 귀신도 모르게 밧세바와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둘은 얼마동안 숨을 고르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을 깬 건 밧세바였다.

폐하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밧세바는 몸을 일으켜 부드러운 천으로 다윗의 성가름을 닦아주며 다윗이 들어 가장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말에 다윗의 머릿속을 회오리치던 두려움이 싹 가셔버렸다.

오호 밧세바, 우리가 어째서 이제야 만났단 말이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구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죽긴 왜 죽는단 말이오. 나는 이스라엘의 왕이오.”

저는 남편이 있는 몸, 백성들이 알까 두렵습니다.”

…….”

다윗은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어찌 알겠는가.

저를 지켜주시겠습니까?”

이 일이 발설되는 순간 시종은 죽은 목숨이오.”

…….”

나는 왕이란 말이오.”

다윗은 밧세바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녀의 알몸을 힘주어 껴안아주며 위엄 있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폐하는 이스라엘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폐하의 소유물입니다.”

밧세바는 그러며 다윗의 품을 파고들었다. 다윗은 흡족한 웃음을 터뜨리며 파고드는 밧세바를 더욱 힘차게 끌어안았다. 사그라졌던 욕정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 계속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운암.jpg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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