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6(월)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3회

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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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2.2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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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세바는 행복했다. 몸이 녹아나는 듯했다. 혼자만의 생각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게만 느껴졌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젖가슴이 두드러지고 남성이 수줍게 그리워지던 소녀 시절부터 다윗은 밧세바의 영원한 남성상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너무 멀고도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자신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남자. 꿈은 꿈일 뿐. 단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에 불과할 뿐. 밧세바는 다윗을 알고 있었지만 다윗은 밧세바를 몰랐다. 밧세바가 아무리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길 때 일등공신이었던 자신의 책사, 아히도벨의 손녀였을지라도. 이방인이지만 재산 많고 건장했던 우리아는 다윗의 대타가 되었다. 우리아를 다윗이라 여기며 살리라. 이스라엘의 정치와 군사에 깊숙이 관여하는 고위층인 아히도벨의 손녀라는 신분이 이방인과 결혼하는데 약간의 장애가 되었지만 밧세바는 우리아에 충실했다. 그러자 성실하고 힘이 빼어난 우리아는 차츰차츰 밧세바의 전부가 되어갔다. 이상보다 현실이, 다윗보다 우리아가 중요해지고 나름대로 행복도 느꼈다. 나는 우리아의 아내일 뿐. 밧세바는 그렇게 만족했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고 그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태. 우리아는 역시 우리아일 뿐 다윗은 아니었다. 우리아가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다윗의 명령에 복종하는 용사에 불과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용사.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나 집을 떠나 전쟁터를 누벼야하는 전쟁용사. 하늘과 땅, 호랑이와 고양이의 간극과 같은 다윗과 우리아. 밧세바는 처량했다. 스멀스멀 다윗에 대한 연모의 정이 되살아났다.

심난함을 달래기 위해, 용사의 아내로 왕궁을 출입했다. 다윗은 왕궁에 있었다. 호위호식하며 편안하게 왕궁에 남아있어도 승리의 몫은 언제나 그의 것이었다.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던 다윗. 그런 그는 다시 밧세바의 영혼을 온통 흔들어 놓았고, 그의 수려한 용모며 왕으로서의 권위와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힘은 짜릿한 흥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직한 용사의 아내로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뜻이라 스스로 만족을 찾았던 요조숙녀 밧세바. 그녀는 흔들렸다. 전부인 줄 알았던 우리아가 너무 하찮게 여겨졌다. 많은 재산도, 건장한 육체도, 둘이 나누었던 사랑의 순간도 시시하게 여겨졌다. 그런 하찮은 남자의 아내로서 그녀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우리아의 품이 너무 작게 느껴지고 그 품에 안겨 행복을 느꼈던 자신이 가소로웠다. 듬직하게만 보이던 남편의 우직한 충성이 미련한 곰처럼 느껴졌다. 이제와 생각하니 우리아는 자신보다 이스라엘을, 아니 왕인 다윗을 더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정에 안주하기보다는 전쟁터를 누비는 걸 더 좋아했다. 그렇다고 특별한 야망을 꿈꾸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밧세바는 젊고 아름다웠다. 그녀도 외모만큼은 자신만만했다. 꿈을 꾸었다. 다윗왕의 품에 안기는 꿈. 꿈만으로도 온몸이 저릿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윗에 대한 흠모의 정은 쌓여만 갔다. 우리아는 전쟁터의 거리만큼 멀어져가고 다윗은 손을 뻗치면 닿을 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충만감이 온몸에 퍼졌다. 그 생각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가 이제는 온종일 그만 생각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예전과 달리 더욱 더 빈번하게 왕궁을 드나들었다. 전쟁의 소식을 듣는다는 명분이 있었다. 다윗의 여러 부인들의 말벗이 되기도 하고 궁인들을 통하여 궁중의 법도도 익히며 혼자서 궁중을 산책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그녀의 온 신경은 다윗의 일거수일투족에 모아졌다. 다윗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귀담아 들었고 그의 습관과 하루의 일과를 체크했다. 오후엔 낮잠을 즐긴다는 것도 알았고 왕궁의 높은 지붕에 올라가 예루살렘 시가지를 살펴보길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밧세바의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갔다. 집을 왕궁 곁으로 옮겼다. 운명의 그날, 그녀는 시간을 정확히 계산하고 궁녀에게 포도즙을 부탁하여 실수를 유도했다. 자신의 앞가슴에 가져온 포도즙을 왕창 쏟아버리게 만든 것이다. 그리곤 어쩔 줄 몰라 하는 궁녀를 위로하고 미리 가꾸어 놓은 사가 안뜰 연못가에서 목욕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곳은 다윗 왕이 지붕에서 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침 부정한 달거리도 끝나고 시의적절한 배란의 시점이었다.

밧세바는 포도즙에 얼룩진 옷을 벗었다. 젖가슴 사이에도 포도즙이 흘러 끈적끈적했지만 오히려 향기만 좋았다. 궁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속옷까지 흠뻑 젖어버렸다는 걸. 목욕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는 걸.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볼 수조차 없었다. 여인의 나체를 훔쳐본다는 건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다윗은 꼭 봐야만 했다. 자신의 완벽한 알몸을.

훈훈한 봄바람이 벌거벗은 몸을 핥고 지나가자 밧세바는 황홀한 꿈에 젖어들었다. 서둘 것이 없었다. 연못가에 앉아 먼저 발만을 담그고 따스한 햇볕에 온몸을 맡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성큼성큼 서쪽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언뜻언뜻 추위가 느껴졌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왕궁의 지붕에는 아직 어떤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조금씩 몸에 물을 끼얹었다. 나는 목욕하는 것이다, 라고 밧세바는 생각했다. 천천히, 끈기 있게 시간을 늦춰 가면서.

황혼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서쪽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바람은 온몸에 닭살이 돋을 만큼 서늘해지고 턱이 덜덜거리며 이빨이 서로 부딪쳤다. 밧세바는 조급해졌다. 하녀는 몇 번이나 옷을 가지고 들락거리며 감기에 걸린다고 목욕을 끝내길 종용했지만 밧세바는 이를 악물었다. 기필코 나타나리라. 물속 깊이 몸을 담갔다. 오히려 따뜻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도 기다리던 다윗이 지붕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 순간 밧세바는 전율을 느꼈다. 이제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토록 흠모하던 왕의 눈길을 느끼자 짐짓 모른 체하며 맘껏 자신의 알몸을 요염한 자세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바라던 눈길은 꿈쩍도 않고 자신만을 보고 있었다. 밧세바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결코 서두르지도 않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목욕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여전히 왕의 눈길은 못 박힌 듯 자신의 알몸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밧세바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왕을 쳐다보다 놀라는 몸짓을 해보이곤 수줍은 척 미소를 보냈다. 왕이 손을 들어 보였다. 밧세바는 승리를 자신했다. 다윗 왕은 이제 나의 포로가 되었노라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있어 왕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포로가 된 다윗이 이 밤에 포도주를 같이 마시고자 한다는.

 

밧세바는 다윗의 품에 안겨 털이 덥수룩한 그의 가슴을 가운데 손가락으로 요리저리 쓸어내렸다. 다윗의 손은 밧세바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주물럭거리고. 그들 사이에 우리아는 까마득히 잊힌 존재였다.

폐하.”

밧세바는 눈을 지긋하게 감고서 자신을 즐기고 있던 다윗을 나긋한 목소리로 불렀다. 다윗은 꿈결처럼 노곤한 충만감에 취해 있었다.

왜 그러시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하기만 했다.

가뿐하게 목욕을 하시고 주무심이 어떠실까요.”

목욕을?”

다윗은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목욕을 하시고 주무시면 피곤이 싹 가실 겁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밧세바의 주문이었다.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더군다나 자신을 위한 주문인 것을.

그것도 좋은 생각이오. 우리 같이 합시다.”

약간의 피곤도, 또한 약간의 귀찮음도 다윗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요. 제가 씻겨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알몸 그대로 침실 안쪽에 있는 기둥과 바닥과 벽, 욕탕 전체가 온통 대리석으로 장식된 욕실로 들어갔다. 알맞게 데워진 욕탕의 물은 언제나 잔잔하게 넘쳐흘렀다. 그래서인지 욕탕에선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며 야릇한 향기마저 내뿜고 있었다.

다윗이 첨벙첨벙 욕탕 안으로 들어가자 밧세바는 다시 침실로 돌아가 미리 준비해 온 합환채로 만든 미약 두 알과 포도주 두 잔을 손에 들고 다윗 곁으로 다가갔다.

다윗은 보고 또 봐도 밧세바의 육감적인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에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동공과 흰자위가 분명하여 생글거리듯 모든 걸 빨아들일 듯한 눈이며 짙은 눈썹, 알맞게 솟은 콧날과 붉은 입술, 잘 생기고 잘 익은 사과 꼭지 같은 볼우물, 탐스럽게 찰랑거리는 머리칼이 감싸고 있는 암사슴을 닮은 목이며 터질 듯 풍만하여 출렁거리는 유방과 톡 솟아오른 젖꼭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허리며 앙증맞은 배꼽, 다시 허리에서부터 어깨 넓이로 굴곡진 엉덩이의 도발적인 모습, 그리고 쏙 빠진 다리, 그 가운데 황홀한 비밀을 간직한 듯한 숲, 그 절정, 신비로움,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다윗은 밧세바가 건네주는 잔을 받았다. 더운 김이 그들을 감싸고돌았다.

당신은 볼수록 나를 미치게 하는구려.”

송구스럽습니다. 그토록 예쁘게 봐주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본 대로 느낀 대로 얘기할 뿐이오. , 이 아름다운 밤을 위해, 우리의 만남을 위해 듭시다.”

다윗은 잔을 치켜들고 밧세바가 들고 있는 잔과 건배하려 했다.

폐하, 이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이것부터 드시지요.”

밧세바는 손바닥을 펼쳤다. 미약이었다.

이건 무엇이오?”

다윗은 알고 있었다. 그 사랑의 묘약을. 그러나 짐짓 모른 체했다.

폐하와 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싶은 저의 마음입니다.”

하하하, 당신은 마음까지도 황홀하구려.”

밧세바는 미약 한 알을 입에 물더니 다윗의 입으로 가져갔다. 다윗은 고개를 숙여 입으로 그걸 받아먹었다. 밧세바는 다시 한 알을 자신의 입에 넣었다. 둘은 잔을 부딪치고 포도주의 달콤한 맛을 즐겼다.

밧세바는 고대하던 다윗과의 밤을 단 하루 만으로 끝내고 싶진 않았다. 될 수만 있다면 계속 이어지길 원했고 더 바란다면 다윗의 아이를 갖길 원했다. 오죽하면 그 엄청난 이율배반을 알면서도 이왕 엎질러진 물, 여호와께 간절히 구하기까지 했으랴. 우리아와는 아직 아이가 없었다. 다윗은 왕이다. 자신이 아이를 갖는다면 왕의 권한으로 우리아에겐 새로운 아내가 주어질 수 있고 자신은 다윗의 또 하나의 아내, 가장 총애를 받는 부인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윗 왕의 부인이 수십 명이 될지라도 다윗을 완전히 사로잡을 자신이 있었다.

밧세바는 다윗의 손을 이끌어 따뜻한 물에 온몸을 담갔다. 그들은 곧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녀는 물속에서 온몸으로 다윗의 몸을 애무했다.

다윗은 눈을 감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밧세바가 이끄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구름 위를 붕붕 떠다니는 기분, 무료하고도 갈증 나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첨벙거리며 꿀꺽꿀꺽 물을 마셔대는 기분, 끝없이 이어지는 들장미 숲길을 향기를 음미하며 거니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다윗은 시간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도.

밧세바는 다윗을 욕탕 밖으로 유도하여 바닥에 눕히고 궁녀들이 준비해 놓은 맛사지 기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르고 손바닥으로, 때로는 얼굴로, 때로는 젖가슴으로, 때로는 입술로, 때로는 혀끝으로, 때로는 허벅지로, 마지막엔 온몸으로 정성을 다해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다윗은 바로 자신의 미래였다. 그 미래를 위해 철두철미하게 그물을 만들고 던졌다. 고기는 여지없이 그물에 걸렸다. 이제 그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실수 없이 어떻게 끌어올리느냐가 문제였다. 그리고 안전하게 바구니에 담을 때까지 긴장을 풀어선 안 될 일이었다. 고기가 빠져나가버리면 자신의 미래는 없다 생각했다. 간음, 그것은 곧 죽음까지 각오해야 할 파계였다. 그러기에 밧세바는 최선을 다해 자신이 다윗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되고 목적이 되도록 노력했다.

  - 계속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운암.jpg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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