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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걸음/이상호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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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1.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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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나비 걸음/이상호

 

꽃바람 공원길을

낡은 유모차 하나

느릿느릿

사람들 사이를 건너가고 있다

아기에게 처음으로 세상 구경시켜 주었을

5월의 하늘 속보다 더 깊은

등 굽은 유모차에

접힌 박스, 찌그러진 빈 페트병

철 지난 신문지가 실려 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물처럼

세월의 모퉁이 섶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아기의 아기가 되어

이팝나무 꽃길을 지나가고 있다

아카시아 꽃길을 지나가고 있다

물푸레나무 그늘 속에서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걸어가고 있다

 

2019Moment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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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어찌 보면 고통스러움을 안고 사는 존재이다. 왜냐면, 삶과 죽음, 극과 극을 동시에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생과 사를 아파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피어난 시 한 송이는 독자에게 진한 감동의 향기를 풍긴다. 물론, 어느 예술 장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시인은 극단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유모차와 할머니를 대비시킨 화자의 시적 진술이 돋보인다. 우리가 나비를 좋아하는 것은 나비 자체라기보다는 애벌레에서 羽化(우화)하고 난 뒤 훨훨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그 과정을 사랑한 것이다. 화자는 폐지를 줍는 등 굽은 할머니의 걸음에서 나비의 우화를 상상했을 것이다. 그것은 유모차의 아이가 지금의 할머니로 변화하는 과정에서이다. 그냥 놓치기 쉬운 일상의 풍경들에 입김을 불어 넣고 눈으로 더듬으며 때론, 귀로 마시면서 묘사를 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라고 할 때 시적 화자는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 이렇듯 관조로 이루어진 작품일수록 시적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등 굽은 유모차에는 파릇파릇한 5월의 새싹 같은 어린아이가 타고 있는 게 아니라 접힌 박스, 찌그러진 빈 페트병등이 실려 있다. 새싹 돋는 ‘5월과 아기’, ‘철 지난 신문지와 모퉁이 진 세월의 섶다리를 통해 화자는 극한 대비를 시키고 있다. 그리고 철 지난 신문지에서 이미 저물어가는 황혼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시상의 흐름에서 할머니를 연상시킨다. 왜냐면, 시제의 나비 걸음에서 나비는 곡선(여성적)의 날갯짓으로 변화무쌍하게 날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등 굽은 유모차접힌 박스’, ‘찌그러진 페트병’, 그리고 철 지난 신문등의 표현은 할머니의 상징이며 또 다른 이름이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물처럼/세월의 모퉁이 섶다리를 건너가고 있다에서 굽이쳐 돌아가는 강물같이 모퉁이 세월의 다리를 건너는 할머니를 직유의 화법으로 강조하고 있다. 굽은 허리에 매달린 고독 한 바구니와 곰삭힌 침묵 한 종지, 나비 걸음과 함께 걷는 한숨 소리에서 화자는 가슴 아린 감정의 흐름을 느끼면서 인고와 희생의 삶을 살았을 할머니의 辛酸(신산)한 삶을 떠올리고 있다.

 

봄바람처럼 속삭이는 바람이든, 엄동설한의 폭풍이든, 봄 햇볕 같은 따사로움이든, 살을 에는 듯한 겨울 추위든 아무리 현실이 반어적으로 다가와서 몰아치더라도 폐지와 찌그러진 페트병과 같은 것을 주워야 한다. 그것이 삶의 방식이고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는 일에 대한 귀천이 없음은 물론일뿐더러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 비본질적인 존재가 아닌 본질적인 존재를 찾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팝나무 꽃길’, ‘아카시아 꽃길’, ‘물푸레나무 그늘 속을 걸어가는 할머니의 나비 걸음은 결코 허무도 아니고 헛됨도 아니다. 비록, 가녀린 발걸음은 비록 몸짓 가벼운 걸음이지만 그 걸음 자체에서 삶의 호흡을 감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화자는아기의 아기가 되어’‘꽃길나무 그늘 속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걷고 있다고 한다. 여기 할머니 걸음에서 화자는 차라리 삶의 역동성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과거에 대한 회한과 덧없음에 몸서리칠 필요도 없고, 불안한 미래에 떨 필요도 없다. 아직은 나비의 걸음걸이를 할 수 있고 자유로운 날갯짓을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흔들리고 휘청이는 걸음일지라도 사뿐사뿐 걷는 나비 걸음은 삶의 몸부림이고 영혼의 발걸음이다. 커다란 목표가 없더라도 5월의 파란 하늘의 공기 아래 걸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산자락에서 바라보는 산과 산속에서 바라보는 산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이렇듯 화자는 폐지 줍는 할머니의 겉모습만 봤다면 한 마리의 나비도, 그 나비의 발걸음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모차와 할머니’, 꽃길을 지나고 있는 아기의 아기’, 그 아기의 발걸음은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천사의 옷깃처럼 가벼운 아기의 발걸음이다. 그 발걸음엔 소리가 없다. 침묵의 메아리만 있을 뿐이다. 고치 속에 갇힌 과거를 회상하면서 더 높은 곳을 날기 위한 아름다운 곡선과 부드러운 침묵의 걸음, 그것은 나비 걸음이다.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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