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6(월)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6회

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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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1.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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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 장군 친전. 그동안 얼마나 노고가 많았소. 내가 직접 참여하진 않았어도 이토록 마음이 든든한 것은 장군이 있기 때문 아니겠소. 기필코 대적들을 크게 무찌르리라 믿고 있다오. 내가 이렇게 밀지를 보내는 것은 우리아 때문이오. 우리아는 충신이긴 하나 어쨌든 이방인이오. 이유를 묻지 말고 우리아를 죽이시오. 장군의 칼에 피를 묻히지 말고 적의 손에 죽게 만드시오. 전투를 하다가 죽은 것처럼 말이오. 그는 용사 중의 용사요. 최고로 치열한 곳, 최전방으로 보내시오. 그는 살기보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오. 그 이유는 차차 알게 될 것인즉 나의 명을 차질 없이 수행하시오. 이건 오직 장군과 나만 아는 비밀이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아는 이방인일 뿐이오. 그는 죽어야 하오. 나와 장군의 안위를 생각하시오. 부디 건투를 비오.’

다윗은 이성을 잃었다. 자신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끝내 살인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도 간음의 상대인 밧세바의 남편이자 이스라엘의 충신이며 더할 나위 없는 심복인 우리아를 죽이라는, 또 하나의 죄악을 저지르려는 것이었다.

우리아가 다윗 앞에 나타났다. 다윗은 굳은 표정으로 밀봉된 편지를 우리아에게 넘겼다.

요압 장군에게 전하시오. 작전명령이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아는 허리를 구부려 공손하게 그 편지를 받았다. 자신을 죽이라는 편지. 그 편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자신을 죽여야 하는 요압에게 건네야 했다. 얄궂은 운명이었다.

다윗은 돌아섰고 우리아는 다시 한 번 허리를 구부려 자신을 죽이려는 자에게 예를 다했다. 그는 다윗의 어두운 표정이 자신을 위한 술자리의 후유증이라 생각하여 더욱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는 바로 전장으로 떠났다.

요압은 우리아로부터 받은 다윗의 편지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편지는 분명히 우리아를 죽이라고 되어 있었다. 우리의 손으로 말고 적의 손에 죽게 만들라고. 뭔가가 있다. 우리아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음모가 분명했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이복누이 스루야의 맏아들로 다윗과 함께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용맹을 떨치고 승리를 낚아챈 용사 중의 용사. 밧세바의 조부 아히도벨의 계략을 따라 여부스 족을 멸하고 예루살렘을 탈취한 것도 그였다. 에돔성을 점령하고 성의 모든 남자들을 죽여 버린 것도 그였다. 다윗에게는 무조건 충성하였으며, 과단성 있고 탁월한 군사전략가로서 군대장관의 위치에 있는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2인자였다. 그러나 그는 너무 잔인하고 성격이 불같아서 부하들로부터 진정한 신망을 얻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다윗이 요압을 이용하여 우리아를 죽이려 한 데에는 그의 무조건적 충성과 다윗의 말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따르는 순종지심을 이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요압은 모든 지형지물과 적의 동태와 에워싸고 있는 랍바성과 관계를 면밀히 분석하여 우리아 죽이기 작전을 짰다. 먼저 그는 암몬족을 유인하기 위하여 소수의 군사들을 성에 접근하도록 명했다. 명을 받은 장수는 수하들을 이끌고 성을 향해 진격했으나 상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요압의 군사들이 성의 지척에 이르자 화살이 쏟아지면서 성문이 열리고 수많은 암몬 군사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요압의 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퇴각하여 적들이 성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쫓아오도록 유인작전을 폈다. 암몬 군사들은 요압의 계획에 호응이라도 하듯 줄기차게 쫓아왔다.

드디어 요압은 우리아를 지휘관으로 하여 출전을 명했다. 우리아의 수하에는 요압이 신임하는 장수를 출전시켜 자신의 계획을 차질 없이 수행토록 지시를 내렸다.

우리아는 선봉에 서서 번개처럼 말을 몰아 달려 나갔다. 적과 적이 맞붙었다.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우리아는 순식간에 암몬 군사 여러 명의 목숨을 빼앗으며 성 가까이 접근했다. 그러나 암몬 군사는 수적으로 우세했다. 처음엔 당황하여 밀리는가 싶더니 거세게 대항해왔다. 아군 몇이 쓰러졌다. 우리아는 여호와께 울부짖었다.

만군의 여호와여, 우리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저들을 무찌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나 군사들은 밀리기만 했다. 어찌된 일인지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압이 사태를 충분히 파악했을 터인데도.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었다. 그런데 한참을 정신없이 싸우고 보니 자기 주변에 아군이라곤 단 한 명도 없지 않은가.

벌써 다 쓰러지고 말았단 말인가.’

샅샅이 둘러봐도 자신의 군사들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혼자서 아무리 날뛰어 봐야 소용없었다. 그는 기진맥진, 달려오는 적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할 때 자신도 화살에 당했음을 알았다. 그는 쓰러졌다. 그리고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혼신의 기도를 올렸다.

이스라엘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다윗 왕께 은혜를 베푸시어 대적들을 모조리 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는 다윗의 얼굴을 떠올리며 죽어갔다. 왕은 위대하다. 끝내 암몬을 멸하지 못하고 그렇게 죽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밧세바의 미소 짓는 얼굴도 떠올랐다. 가엾고 안타까웠다. 자신이 죽더라도 다윗이 그녀를 보살펴 주리라, 안도했다. 수많은 창과 칼이 그의 몸에 꽂혔다. 그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속절없이 죽었다. 우리아에게 철썩 같이 믿었던 하늘, 전능하신 여호와의 공의는 없었다.

그러나 그날 요압이 잃은 군사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다윗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한 요압이었다. 사실상 그날의 패배는 다윗의 승리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백성을 사리사욕의 제물로 희생시킨 죄악의 승리. 요압은 다윗에게 보낼 사자를 불렀다.

오늘의 전투는 암몬 군사를 밖으로 유인하여 멸하고자 하였으나 의외로 적이 강력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우리 군사 수 명과 불행하게도 폐하께서 신임하는 장수 우리아가 죽고 말았다. 그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장렬하게 죽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불찰이니라. 다음부터는 오늘의 전투를 교훈삼아 적들을 섬멸하는데 추호도 실수가 없도록 할 것이니 폐하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라고 내 대신 무릎을 꿇어라. 우리아의 죽음을 결코 헛되게 하진 않을 거라고 말일세.”

요압은 능청스러웠다. 그의 얼굴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까지 피어올랐다. 사자는 질풍같이 말을 몰아 순식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다윗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어 그대로를 전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다윗은 담담하게 말했다.

요압 장군에게 전하라. 전투에서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거라고. 우리가 그날은 운이 나빴을 것이다. 또한 이번 전투는 사소한 패배 중 하나일 뿐이니 그리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아의 죽음은 분명히 애석한 일이지만 적의 칼이 누구를 가려서 베려 했겠느냐. 적의 칼에 나도 죽을 수 있고 요압도 죽을 수 있느니라. 이 일로 우리 군사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고 우리에게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적에 대하여 더욱 담대하게 마음을 다져먹고 기필코 랍바성을 함락시켜 우리아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라고 말이다.”

그는 또 시종들에게 지시했다.

우리아의 죽음은 이스라엘에 여호와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그의 용맹함을 기려 우리아가()에 상을 내리고 경건하게 장례를 치르는데 궁중에서 최대한 도와주도록 해라. 그 망부(亡婦)를 위로하는 일은 특별히 내가 맡겠다.”

밧세바는 울었다. 우리아의 인생이 불쌍하여 울었다. 우리아가 절대강자의 위치로 올라설 수 없게 타고난 운명을 애도했다. 그의 절대적 한계가 자신이 충성하는 자의 조종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배신에 의한 죽음이어서 울었다. 그 사랑하는 여자가 바로 나, 자신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소스라치며 갈마(karma)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를 떨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바닷가의 수많은 모래알과 같은 범부의 아내로서 만족할 수 없다는, 이름도 뜻도 없이 인생을 살아가긴 싫다는, 그런 욕심의 결과로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우리아의 처참한 죽음이라는 분명한 현실로 나타나자 그것도 여호와의 뜻이고 하늘의 섭리라며 자신을 변명하고 위로하기에 바빴다. 우리아의 죽음은 자신에게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야 했다.

밧세바는 담대하게 장례를 치렀다. 섭리에 의한 오늘의 슬픔은 내일의 성취를 위한 화목제물이라며. 그녀에게 여호와의 공의는 아주 편리한 것이었다. 다윗에게 잉태를 알리고 나서 사실 밧세바는 초조했다. 다윗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아무리 비밀을 유지하려 조심스럽게 움직였어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눈들,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귀들이 있을 것이었다. 그 눈과 귀가 문제였다. 남편이 전쟁터에 있는데 임신이라니? 본 것이, 들은 것이 중차대하고 비밀스러울수록 입들은 안달을 하기 마련일진대. 이제 서서히 불러오는 배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그렇지만 상대는 왕이었다. 그의 뾰족한 수를 기대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아의 소환. 어쩌자고? 어떻게 하려고 그를 불렀는가. 실망이었다. 우리아를 집에 가서 푹 쉬게 하려는 다윗의 조치는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아의 우직한 충심이 밧세바를 안도케 했다. 다윗과 관계만 안 가졌더라면, 아니 다윗의 씨만 잉태하지 않았더라면 그녀 스스로 왕궁수비대 숙소를 찾아갔을 터였다. 가서 수시로 엄습하는 정염을 보상받으려 아낌없이 불태웠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우리아는 오지 않았다. 밧세바도 우리아를 찾지 않았다. 그를 찾아가는 날엔 꿈도 사라지리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우리아는 전쟁터로 떠났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함부로 끄집어낼 수도 없으리만치 무서운 바람이었지만, 하늘이 날벼락을 내려도 싼 바람이었지만, 차라리 뒤끝이 없는 원하던 결과였다. 우리아를 죽인 건 다윗도, 요압도, 암몬군사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 그토록 우리아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부인, 밧세바였다.

장례가 끝나고 율법이 정한 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다윗의 사자가 들이닥쳤다. 부인이 되어달라는 전갈이었다. 밧세바가 충분히 예상한 수순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다면 우리아의 죽음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막상 전갈을 받고 보니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해일처럼 밀려드는 것이 아닌가. 어금니를 악물고서 단단히 각오를 했는데도. 그래서일까.

밧세바는 그러한 전갈을 받자마자 엄청난 구토의 욕을 치러야 했다. 표시도 나지 않는 간음의 씨앗이 뱃속에서 한바탕 소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아비를 찾아 기뻐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징조한 것인가, 밧세바는 애써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결국.

밧세바는 남편의 죽음으로 흘린 눈물(그 눈물이 우리아가 불쌍했든 자신의 배신에 의한 죄의식이든 엄청난 결과에 당황하여 흘렸든)이 마르자마자 다윗 왕의 부인 자격으로 당당하게 궁궐에 들어갔다. 께름칙한 게 없지 않았지만 빼든 칼이고 엎질러진 물이었으며 궁극적으로 소원하던 결과였다.

다윗이 이토록 서둘러 밧세바를 부인으로 맞이한 것은 간음의 씨앗을 합리화하기 위한 술책의 하나였다. 왕의 비가 되기 전의 씨앗이 아니라 된 후에 잉태한 씨앗이라는 술책. 곧 불러올 밧세바의 배, 거기에 따른 신하와 백성들의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또 하나 전쟁미망인이 넘쳐나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녀들을 솔선수범하여 돌본다는 얄팍한 꾀, 권모술수였다.

다윗을 만난 밧세바는 결코 슬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아는 죽었고 자신은 이제 다윗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환호작약하지도 않았으며 다윗의 품에 안겨 희희낙락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헤프게 보이거나 가볍게 보이거나 해서 싸구려로 대접 받고 싶지는 않았다. 오직 다윗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되었다는 걸로 뭇시선에게 보이길 원했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게 타이르고 다독였다. 그녀는 다윗뿐만 아니라 궁인들에게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정숙하고 품위 있는 왕비여야 했다.

다윗은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감에 만족했다. 대적들은 갈수록 힘이 약해졌고 왕의 권위는 갈수록 높아만 갔다. 백성들은 왕을 칭송했으며 신하들은 그를 의지하고 따르며 충성을 다했다.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의심할 수도 없었다.

밧세바의 배는 빠르게 불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대변인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왔다. 찔끔할 수밖에. 예전에 나단 선지자는 여호와의 계시를 이렇게 말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너를 양치기에서 이스라엘의 주인으로 삼고 내가 너와 동행하며 너의 적들을 멸하여 너를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되게 하였느니라. 너의 가정과 네 나라가 너로 인하여 영원히 보전되고 네 보좌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그랬던 나단이 자기를 찾아왔다는 것은 여호와의 계시가 분명히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드러나는 치세와는 다르게 정욕을 위하여 죄악을 범한 행위들이 이미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단을 맞은 다윗은 숨을 죽였다.

나단은 성큼성큼 걸어와 어전의 한 중앙에 서서 다윗을 무섭게 쏘아보며 수염을 파르르 떨면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 세상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 계속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운암.jpg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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