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7회

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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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1.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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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성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였지만 또 한 사람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부자는 양과 소가 아주 많이 있었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이 단지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암양 새끼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여서 식구들이 먹을 때 같이 먹고 그들이 먹는 그릇에 물을 마시며 그들과 함께 어울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등 딸이 없는 그 집의 귀염둥이 딸 노릇을 톡톡히 하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나그네가 부자의 집에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손님을 접대하긴 해야겠는데 자기의 양과 소를 잡으려니 아무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가난한 자의 양을 강제로 뺏어다가 잡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그 많고 많은 양과 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의 가족처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양을 말입니다.”

뭐라고요? 그런 쳐 죽일 놈이 있나. 그렇게 나쁜 놈이 정말로 우리 이스라엘에 있단 말이오? 그 놈이 어디 사는지 아십니까?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그 놈을 붙잡아다가 당장에 물고를 내리이다. 이 땅에선 마땅히 사라져야 할 참으로 악독하고도 파렴치한 놈이구려. 그런 자와 함께 이 거룩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숨을 쉰다는 게 왕으로서 부끄럽습니다. 여호와께서도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내 당연히 율법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겠소. 율법이 명한 대로 그 자를 죽이기 전에 먼저 억울한 일을 당한 가난한 백성에게 네 배로 변상케 할 것입니다. 그 놈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다윗은 노발대발했다. 자신을 분명히 질책할 걸로 알았던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여호와의 화가 자신이 아님을 알고 자신의 죄악을 변호하기 위해서라도 일벌백계로 다스리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자신이 왕으로 있는 한 약자에게 그토록 억울한 일이 한 가지라도 있어선 안 된다고 새삼 다짐하면서. 자신은 여호와의 사랑과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성군이 되어야만 했다. 선지자 나단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다윗을 그대로 응시했다.

그 자가 우리 성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까?”

다윗은 어서 빨리 그 괘씸한 부자를 처단하고 싶었다. 그는 어느새 기고만장해져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 놈이 어디에 있소?”

바로 폐하, 왕의 보좌에 앉아있는 폐하께서 바로 그 부자이올시다.”

나단은 표정 하나 변치 않고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다윗을 가리켰다. 다윗은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신까지 속이려들었던 최면이 속절없이 풀려버린 순간이었다.

내 무덤을 내가 팠구나.’

다윗은 탄식했다. 나단의 말은 계속되었다.

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오. 하나라도 더하거나 빼지 않는다는 걸 폐하께서 더 잘 알 것이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기 위하여 기름을 부어 축복하였고 너의 주인이었으나 너를 질시하여 죽이려 했던 사울의 손아귀에서 너의 생명을 지켜 주었으며 끝내는 내게 순종치 않았던 사울 왕의 자리마저 빼앗아 너에게 주고 권세 또한 네게 주어 온 십이 지파, 곧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여 네가 무엇이든지 더 달라고 하였다면 나는 또 네가 원하는 것을 다 주었을 것이니라.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나 여호와를 무시하고 업신여겨 악행을 일삼더란 말이냐. 네가 우리아의 처와 간음의 죄를 저지르고도 모자라 백성들을 속여 우리아를 이방인의 칼에 죽게 만들고 마침내 밧세바를 네 처로 삼았으니 앞으로 너희 가문에 골육상쟁의 칼부림이 일어나 그 피가 네 얼굴에 튀고 네 가슴엔 시퍼런 멍이 생길 것이니라. 또한 내가 너를 저주하여 밧세바를 취한 대가로 네가 두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데도 백주에 네 여자들이 능욕을 당하게 되리라.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서 죽게 될 줄을 정녕 몰랐단 말이냐.”

다윗은 숨조차 쉴 수 없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나단이 전하는 여호와의 말을 고스란히 새겨들었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칼이 되어 가슴을 후벼 파고 심장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았으며 그 진노의 음성은 어전을 쾅쾅 울리고 있었다.

, 내가 여호와가 계시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망아지처럼 날뛰며 불의한 일을 저질렀도다. 내가 언제부터 왕이었단 말인가. 내가 누구에 의해 왕이 되었더란 말인가. 양치기 시절을 잊고,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때를 잊고, 또한 고비 때마다 살아난 은혜를 잊어버리고 어느덧 교만이 나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가려 결국 마음까지 시커멓게 변해 어둠 속을 헤매게 되었구나. 여호와께서 주신 율법,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이웃을 탐하지 말라는 계를 모두 어겼구나. 나는 이제 나의 죄로 인해 죽었도다. 이 한 몸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죄로 더럽혀진 욕을 씻을 길이 없고 죄인이란 이름을 지울 길이 없으며 여호와의 은혜와 사랑을 원수로 갚았으니 그것이 한이로다.’

다윗은 보좌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나단 선지자 앞으로 걸어와 무릎을 꿇고 엎어져 피를 토하듯 여호와를 처절하게 불렀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여호와, 나의 하늘, 나의 하나님! 저의 죄가 너무나도 엄청나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할 수 있으시거든 자비를 베푸시어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죄를 씻어낼 기회를 주시옵소서.”

시종들도 덩달아 무릎을 꿇고 엎드려 울부짖었다.

여호와여,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다윗은 이제 바닥에 머리를 짓찧으며 간구했다. ()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나단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여호와께서 폐하의 참회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사하셨습니다. 폐하께선 이 일로 결코 돌아가시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은 자들에게 조롱할 빌미를 주었으니 폐하의 시험은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 계속될 것이며 이번에 낳게 될 아이는 분명히 죽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나단은 어전을 떠나버렸다.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그 후회는 밧세바를 취한 것에 대한 후회는 아니었다. 비겁한 방법으로 우리아를 죽인 것에 대한 후회였다. 밧세바는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는, 무력한, 하늘의 뜻까지도 거역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이제 와서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되돌릴 수 없는 것. 다윗은 한동안 일어설 줄을 몰랐다. 나단이 서있던 자리는 허망만 남았다. 시종들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얼굴은 피와 눈물이 범벅되어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우리아를 죽이지 않고서 밧세바를 내 사람으로 만들 방법이 정녕 없었단 말인가. 내가 너무 서둘렀도다.’

다윗은 밧세바에게 갔다. 밧세바는 어전에서의 일을 궁녀들을 통해 알았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침상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만삭의 몸이었다. 아기가 곧 태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분명 죽게 될 것이란다. 세상 빛도 누리지 못한 채. 자신의 죄로 인해. 다윗은 밧세바의 모습을 침통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또 다시 울부짖었다.

여호와시여, 나의 여호와 아버지하나님이시여. 한량없는 은혜를 입었던 제가 감히 당신을 욕보였나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살려 주시니 감사하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시여, 할 수 있으시거든 저 여인과 뱃속의 아이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제가 죄인입니다. 저들은 죄가 없습니다. 저로 인해 저들이 죄를 받는다는 게 너무도 두렵습니다. 이 죄인에게 베푸신 자비를 거두시어 저들에게 베풀어 주소서. 이 목숨을 가져가 주소서. 저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어느새 밧세바도 다윗의 곁에 와서 하늘을 우러러 두 손을 모았다.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 이 죄 많은 여인의 간구를 부디 외면하지 말아 주소서. 아시잖습니까. 제가 바로 죄인입니다. 저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왕을 유혹한 저의 죄가 더 크나이다. 제가 뱀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뱃속의 아이가 무슨 죄가 있으리까. 저의 영혼이 더러웠나이다. 욕심이 끝이 없었습니다. 분수를 몰랐습니다. 이 버러지 같은 영혼의 탄식을 들어주셔서 이 아이로 하여금 여호와의 영광을 온 천하에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다윗과 밧세바는 여호와를 향한 간구를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어쩔 수 없는 정욕으로 인해 가리어졌던 충신과 남편에 대한 회한과 죄스러움이 공범의식으로 번져, 끝내 두 사람 간 불륜의 씨앗이 불행을 맞게 될 것이라는 나단의 경고에 전율하며, 다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다윗은 밧세바에게 죄스러웠고 밧세바는 다윗에게 죄스러웠다. 하늘은 말이 없었다.

 

그래도 밤이 가고 날이 갔다.

달이 차고 때가 되매 밧세바는 아들을 낳았다.

다윗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축복은커녕 아이가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 초조하기만 했다. 아이의 얼굴조차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죄악의 씨앗으로 어차피 불행하게 될 아이였다. 바꿀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목숨과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은 심정의 나날이 계속되고. 아직도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는 끝나지 않았는데.

여호와의 징계는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열이 펄펄 끓고 아프다는 전갈이 득달같이 온 것이다. 다윗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체념했다. 그는 그 핏덩이의 불행이 자신의 죄에 대한 불가항력의 결과라는 데에 더 괴로웠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어찌해야 하는가.

땅바닥에 엎드렸다.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오로지 여호와께 더욱 더 간절하게 간구하는 수밖에. 빌고 또 빌었다. 여호와가 내린 징벌이니 거둘 수 있는 자도 그 분 밖에 더 있으랴.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리오. 오직 한 가지 그 어린 핏덩이를 사랑하신다면 이 죄인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옵소서. 나의 왕, 나의 여호와시여. 그 아이를 살려 주시옵소서. 저의 죄가 심히 가증스러우나 그래도 저를 살려 주신 것 같이 자비의 끈을 놓지 말아 주시옵소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죄가 없는 그 핏덩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아픔을 느낍니다. 저의 남은 온 생애를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저에 대한 노여움을 거두시고 핏덩이에 불과한 아이에게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않았다. 오직 어린 생명을 살리고자 혼신의 기도만 드렸다.

 - 계속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운암.jpg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와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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