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고 고요한
김명리
죽은 줄 알고 베어내려던
마당의 모과나무에
어느 날인가부터 연둣빛 어른거린다
얼마나 먼 곳에서 걸어왔는지
잎새들 초록으로 건너가는 동안
꽃 한 송이 내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인가부터 연둣빛 어른거린다
얼마나 먼 곳에서 걸어왔는지
잎새들 초록으로 건너가는 동안
꽃 한 송이 내보이지 않는다
모과나무 아래 서 있을 때면
아픈 사람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적막이 또 한 채 늘었어요
이대로 죽음이
삶을 배웅 나와도 좋겠구나 싶은
바람 불고 고요한 봄 마당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 잎이 번지나보다. 그것은 아주 먼 곳으로부터의 힘겨운 발걸음. 나무는 아픈 사람처럼 오래 가쁜 숨을 고르는 중이다. 지켜보는 이의 적막한 마음을 헤아려서 죽음이여, 이제 그만 꽃들을 이 고요한 마당으로 내보내주시길. 그 꽃들 가을의 향기로운 열매에 닿도록 힘껏 손 흔들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