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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3회

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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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3.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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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달랑 시종 하나만 데리고 길르압의 집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정말 아무도 몰라야 했다. 만약 이 사실이 백성들의 입에 회자된다면 길르압은 물론이고 여호와의 기름부음의 은혜를 받은 자신마저 내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여호와를 거역한 사울 왕의 비참한 최후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길르압은 태연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다윗을 보자 황급히 일어나 무릎을 꿇어 그를 맞이했다. 얼굴도 요르답이 말한 것과 달리 그대로였다. 다윗은 적이 안심이 되었다. 분노가 많이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요르답의 말이 거짓말이길 빌면서.

요르답의 말이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다윗에 비해 길르압은 여전히 태연했다.

무엇이 사실이란 말이냐?”

여호와는 없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의 여호와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의 염원일 뿐입니다.”

그만!”

더 들을 말이 없었다. 더 들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정신이 아뜩했다. 다윗은 그대로 눈을 감고 기도했다.

사랑의 여호와하나님, 이 불쌍한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다윗가의 멸망이 눈에 선했다.

너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 이 애비가 미워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라고 어서 말해다오, 내 아들아!”

그러기를 바랐다. 자신이 미워서 길르압이 반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아바마마께서는 눈에 훤히 보이는 모순을 어째서 여호와의 뜻으로 돌리시는 겁니까.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여호와께서 살인을 종용해왔습니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던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이방 침략을 숱하게 묵인해왔습니다. 저는 이런 모순의 여호와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선 모순이 없으시다. 전지전능하실 뿐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말부터 모순입니다. 저에게는 모순의 전지전능함만 보입니다.”

길르압은 울고 있었다. 다윗은 고개를 돌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만시지탄이었다.

너는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언약을 믿지 못하느냐?”

이방인도 사람입니다. 죄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죽었습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이스라엘을 죽일 것이니라.”

그래서 모순입니다.”

이단이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다윗은 다윗가의 멸망을 보았다. 그리곤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다윗이 다녀가고 난 후 길르압의 집은 철저하게 봉쇄되었다. 그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길르압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지내다가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고 몇날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 쓸쓸하게 죽고 말았다. 요나답의 운명도 마찬가지. 백성들은 길르압이 애초부터 병치레를 자주 한 걸로 알고 있어 그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다윗은 길르압을 잊었다. 철저하게 잊었다.

패륜아 암논이 죽고 이단아 길르압도 죽었다. 압살롬은 형을 죽이곤 도망쳐버리고.

첫째와 둘째와 셋째아들까지 잃어버린 다윗의 괴로움 중에도 세월은 흐르기 마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처럼 전쟁이 없는 평화를 즐겼다. 변방이 안정되자 백성들은 생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더욱 강력해지고 다윗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온 정성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아들들에 대한 괴로움을 잊어갔다. 시간은 역시 명약. 슬픔과 분노를 잊게 해주고 새로운 기쁨을 안겨주었다. 여러 부인들을 통해 왕자와 공주가 계속 태어나 다윗에게 웃음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태평성대는 성군을 낳는다던가. 다윗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모든 백성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과 칭송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다말은 그술로 피한 오라버니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거의 모든 시간을 여호와를 향하여 그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로 보냈다.

사랑과 은혜와 용서의 여호와하나님이시여. 이 못난 여종으로 인한 여러 사람의 불행이 주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있사옵니다. 부디 저희를 향한 노여움을 거두시고 우리가 이제는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로 인하여 또 다른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저의 길을 살펴주시며 그술에 가있는 압살롬 오라버니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항상 동행하여 주시고 그를 향한 아바마마의 고통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대신 그 자리에 사랑이 다시 일렁이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또한 그녀는 다윗에게 나아가 눈물로 하소연했다.

아바마마, 압살롬 오라버니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선처하여 주시옵소서. 그가 어찌 죄인이 되었습니까. 모두가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아바마마의 오라버니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을 여셔서 오라버니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소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거절치 마시옵소서.”

기쁨을 잃어버린 딸을 보는 다윗의 가슴은 미어졌다. 다말의 간절한 청이 아니더라도 다윗은 차츰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외모에다가 믿음직스럽고 듬직했던 아들이 아니던가. 사내대장부로서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용맹과 지혜까지 겸비한 압살롬. 자신을 빼닮은. 그래 다말의 말대로 그놈이 무슨 죄가 있는가. 내 탓이고 나의 직무유기이자 방임이었다. 어쩌면 내 죄로 인한 피해자이고 희생제물일 뿐.

그렇게 생각하자 다윗은 압살롬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 들기 시작하자 파도가 되어 요동치더니 거대한 밀물이 되어 다윗의 온 가슴을 적셨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 법. 그러한 다윗의 심중을 꿰뚫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군대장관 요압이었다. 다윗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지가 몇 년이던가. 그는 다윗의 눈짓, 손짓, 발짓만 보고도 그가 무얼 하려는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압살롬이 그술에 거한 지 삼 년. 아무리 그가 이스라엘 왕의 장자이자 이복형인 암논을 죽였을지라도 그 죽임에는 백성이 공감하는 명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누이를 강간한 자를 처단했다는. 다윗의 수많은 왕자들 중에 압살롬만한 인물이 있는가. 다윗의 후계자는 압살롬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윗은 분명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럴 때 내가 나서야 한다. 다윗이 어떻게 스스로 나서서 그를 데려올 수 있으랴. 그렇게 생각한 요압은 장담했다. 다윗은 못이기는 척 자신의 말을 따르리라고. 누가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을 거라고.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금물. 분위기를 띄워야 했다. 그래서 그는 수소문하여 드고아에 사는 슬기 넘치는 여인을 찾아내 계교를 일러주고 왕과의 면담을 성사시켜 주었다.

그녀는 요압이 일러준 대로 상복을 입은 채 다윗 앞에 엎드려 구슬피 울었다.

그대는 무슨 연고가 있어 그리 슬피 우는가?”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우리 백성들의 주인이시여, 이 불쌍한 여인을 도와주시옵소서.”

무슨 일인지 말해 보시오.”

저는 일찍이 전쟁터에서 남편을 여읜 가난한 백성입니다. 이런 제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들에서 일을 하다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말다툼을 벌이다가 감정이 격해져 몸싸움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걸 보고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형이 동생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로고.”

뒤늦게야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동생을 죽인 형을 똑같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아들 하나가 죽은 것도 서러운데 이제 둘 다 죽게 생겼습니다. 그리되면 저의 가문의 대가 끊기는 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니라. 그대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내가 별 일 없도록 조처할 것이니.”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다윗이 모를 리 없었다.

저와 저의 집안의 불행으로 우리의 주인이신 폐하께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걱정 마시오. 이후로 그대를 괴롭히는 자가 있다면 내게 알리시오. 다시는 그대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엄히 다스릴 것이오.”

저의 아들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여호와께 맹세하노니 그대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리라.”

참으로 살아계신 여호와하나님과 같은 주인이십니다. 한 말씀만 더 여쭙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 하시오.”

사람은 나면 필히 죽습니다. 한번 죽게 되면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저의 작은아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 작은아들을 죽인 큰아들의 죄는 심히 막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죄인의 생명을 거두지 않으시고 또한 내버려두시지도 않으며 회개하고 뉘우치게 하십니다.”

다윗은 그제야 눈치를 챘다. 드고아 여인의 일은 바로 자신의 일이자 아들의 일이었던 것이다.

내게 숨기지 말고 고하라. 요압이 시켰느냐?”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그렇습니다.”

다윗은 요압을 불렀다. 요압은 다윗 앞에 엎드렸다.

암논 왕자는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옵니다. 압살롬 왕자는 단 한번 폐하의 심중을 거스르고 스스로 죄인이 되어 그술 땅에 은거하고 있습니다. 이미 삼 년이 지났습니다.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고자 하십니까. 참척의 고통이야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위하여 어떤 것이 현명한 처사인지 헤아려 주시옵소서. 우리 이스라엘은 여호와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또한 폐하의 탁월한 인도로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고 이제 당할 자가 없을 정도의 강국이 되었습니다. 압살롬 왕자의 인격과 됨됨이는 모든 백성들이 우러러보고 있음을 폐하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고 왕자로 하여금 전하 곁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심이 지당할 줄 압니다. 그리하시면 왕자 또한 그 전보다 더 전심전력할 것이라 믿습니다.”

모두가 맞는 말이었다. 구구절절 다윗과 같은 심정의 말이었다. 이제 더 이상 뭘 머뭇거리랴.

알았다. 가서 데려오라.”

다윗은 무겁게 신음하듯 내뱉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는 전하의 현명하신 판단에 기뻐할 것입니다. 여호와하나님이시여. 간절히 빌고 원하옵건대 우리의 주 다윗 대왕의 앞날을 영원토록 축복하시고 언제까지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요압은 그 길로 그술로 떠나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을 보지 않았다. 막상 아들이 돌아오니 사랑했던 만큼 미움이 되살아난 것이다. 압살롬은 나단에 의한 여호와의 저주였던 골육상쟁의 칼부림을 불러온 장본인이 아닌가. 그는 두려웠다. 살얼음을 밟는 기분으로 살아온 나날이었다. 그래서 나단의 경고가 경고로서 그치길 간절히 기원했다. 그런데 압살롬이 그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거기엔 암논의 패륜이 있었다. 찢어죽이고 싶은. 그러나 밧세바와의 간음, 우리아에 대한 살인 교사라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 씻고 또 씻어도 씻지 못할 자신의 원죄가 도사리고 있었다. 밧세바. 사랑하는 밧세바. 이제는 부인이 되었지만 그녀는 부하의 아내였다. 어떻게 씻어낼 수 있단 말인가. 암논과 다말. 자신이 뿌린 씨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자신을 닮아버린 암논의 행태. 그래서 더 미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던, 피를 보고 싶지 않았던 심사, 조마조마하게 버텨온 나날. 압살롬은 그걸 깨뜨려버렸다. 자신을 기만하고 형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들. 그 아들이 나단의 경고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 계속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희주 작가 운암.jpg
박희주 작가

 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절벽과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과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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