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다윗과 하늘, 그리고 갈마(褐磨)-15회
박희주
다윗은 자신을 잃었다. 금방이라도 성 밖에 자신을 해치려는 무리들이 몰려들 것만 같았다. 어찌해야 하나. 아무리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도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도리가 없었다. 우선은 시간을 벌기 위해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었다. 그 수많은 대적들과 싸움에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도 끝내는 승리를 쟁취하여 이스라엘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그였지만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현실 앞에 전의를 상실한 것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신하 하나가 힘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죽을 각오로 싸우든가 그렇지 않으면 다음을 기약하고 이곳을 피하는 수밖에는.”
누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다윗은 주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많던 신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렇다. 이곳에서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다. 무고한 백성들의 피만 부를 뿐. 일단 이곳을 피하고 보자.”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궁에는 험난한 피난길을 예상하고 열 명의 후궁들을 남겨두어 궁을 관리하도록 일렀다. 압살롬이 아무리 반란을 일으켰다 할지라도 어미나 다를 바 없는 그녀들을 어쩌진 못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또한 제사장인 아비아달과 사독에게 성에 남아 여호와하나님의 언약괘를 지키라 명했다. 그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가 자신을 버리지 않으신다면 언젠가는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와 언약괘와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우러나온 소신이었다. 그리고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인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으로 하여금 성과 자신과의 연락을 맡도록 당부했다.
다윗은 기드온 시내를 건너 광야로 향했다. 처량한 유랑 길이었다. 아들에게 쫓겨 달아나는 아비의 신세. 하늘을 볼 엄두도 나지 않고 백성들을 바라볼 면목도 없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과였고 예견된 하늘의 응보였다. 얼굴을 가리고 신도 신지 않은 맨발로 감람산을 오르다보니 따르는 백성들이 슬피 울었다. 다윗도 그만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미어지고 갈가리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같은 무고한 백성끼리 피를 볼 게 너무나 뻔했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누구냐! 압살롬을 돕는 머리는.”
“아히도벨입니다.”
“아히도벨이?”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밧세바의 조부가 아닌가? 그가 어떻게?
아히도벨은 전략의 귀재이자 지혜 덩어리였다. 전장의 다윗 옆에는 언제나 아히도벨이 있었다. 그 많은 승리 뒤에는 아히도벨의 전략이 있었다.
“여호와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이 종을 잊지 않으셨다면 아히도벨의 모략이 아무 쓸모없게 하옵소서.”
자신도 모르게 다윗은 여호와께 울부짖었다. 산마루에 있는 여호와를 경배하는 성소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때 마침 다윗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가 굳게 신뢰하는 후새가 옷을 찢어발기고 얼굴엔 흙을 잔뜩 묻힌 참담한 모습으로 나타나 다윗을 맞이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다윗은 천군만마를 만난 듯 후새가 반가웠다.
“얼마나 침통하십니까, 폐하. 이럴 때일수록 옥체보존하소서.”
“그대를 만나 더없이 다행이구려.”
“제가 무슨 힘이 될 수 있을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무슨 겸손의 말이오.”
“폐하가 가시는 곳 어디라도 보필하겠나이다.”
다윗은 그때 머리를 스치는 비상한 생각을 끄집어냈다.
“그대는 나와 같이 갈 게 아니라 꼭 해줘야 될 일이 있소. 그대가 아니면 못 할 일이오.”
“무슨 일입니까? 목숨을 바쳐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압살롬에게 거짓으로 투항하시오. 압살롬은 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도 필시 그대를 중용할 것이오. 저쪽에선 아히도벨이 전략을 쥐락펴락하니 그 전략에 내가 곤경에 처할 게 틀림없소. 그 전략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게 그대가 할 일이오. 또한 그곳엔 사독과 아비아달이 언약괘와 함께 있으니 내가 알아야할 일이 있으면 그들에게 전하시오. 그들의 아들들이 내게 알려주게 돼 있소. 나는 광야 나루터에서 소식이 오길 기다리겠소.”
다윗답지 않은 계략이었으나 후새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갔다. 천륜을 거스른 압살롬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거라 맹세하며. 반석 위에 서있는 이스라엘을 패륜아의 손에 넘길 수 없다고 다짐하면서.
다윗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다. 일행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힘들고 지친 판에 사울 왕의 친족인 시므이가 무리를 이끌고 나타나 돌멩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어대는 것이 아닌가.
“잘 되었도다, 네가 사울 왕께서 키워준 은혜를 저버리고 그 일족을 처단하여 왕위를 차지하더니 영원히 잘 될 것 같았느냐. 칼로 일어서는 자 칼로 망하고, 배신하는 자는 똑같이 배신을 당하는 법. 피 보기를 좋아하는 자여, 천하의 배신자여, 가라, 가라, 사라져가라. 사울 왕의 원한을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셨도다. 네가 잠시 왕이 되었을지언정 끝내 네 자식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는 건 여호와하나님의 뜻이 어떻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니더냐. 바로 너의 업보이고 갈마이니라.”
다윗은 꾹 참았다. 그러한 시므이의 저주도 자신의 부덕의 소치이고 여호와의 뜻이려니 생각했다. 그래서 옆에서 듣고 있던 장수가 그의 목을 베려는 걸 막았다. 시므이는 사울의 친족 중 한 사람으로 다윗에 대해 별다른 이유도 없이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아무 말 없이 나아가자 시므이는 따라가면서 더욱 더 소리 높여 저주를 퍼부으며 돌을 던지고 일행을 못살게 굴었다.
사람들은 간사했다. 다윗은 그 간사한 마음을 어려운 상황에 이르자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기어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겠노라고. 압살롬만 괘씸한 게 아니었다. 압살롬을 부추긴 세력, 그들이 원수였다.
마침내 압살롬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별 어려움 없이 다윗왕성을 접수했다.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는 찾아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왕의 신하였던 자들의 열렬한 환영까지 받았다. 또한 언약괘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과 함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여호와의 축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을 맞아 열광하는 백성들도 보았다.
“여호와하나님 만세, 이스라엘 만세, 압살롬 왕 만세!”
그 와중에 후새의 정중한 환대가 특히 감격스러웠다.
“귀하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충성스러운 신하였는데 어찌하여 따라가지 아니하였소?”
“저는 여호와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의 백성일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전하를 선택하였고 모든 백성들이 원하는데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전하의 아버지를 섬기듯이 저는 이제 전하를 섬길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젠 늙으셨습니다. 그래서 판단도 흐려졌습니다. 옛날과 같은 용맹함과 총기도 사라졌습니다. 이젠 쉬실 때가 되었지요. 이런 방법을 택한 거야 물론 잘못인 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아바마마의 고집을 아시잖습니까. 부디 저를 도와 아바마마를 설득하여 주십시오. 저도 피를 원치 않습니다. 아바마마를 편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자문도 구할 것이고요.”
“그래서 제가 남았습니다. 성심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압살롬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윗이 앉았던 의자에 기고만장하여 책사 아히도벨에게 물었다.
“짐이 첫째로 해야 될 일이 무엇이오?”
아히도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성에는 선왕을 따라가지 못한 후궁들이 있습니다. 그녀들을 취하십시오.”
“뭐라고요! 아바마마의 후궁들을?”
“그렇습니다. 예로부터 승리자는 패배자의 아녀자를 갖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부자의 관계가 아닙니다. 피아(彼我)일 뿐입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압살롬은 망설였다. 어떻게 아버지의 여자를 깔아뭉갤 수 있단 말인가.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런 자를 죽이는 자에게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율법이 무서웠다. 그러나 율법도 전쟁 시에는 예외가 아니었던가.
“적장의 여자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이제 전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마땅히 그 여인들도 전하의 소유입니다. 뭘 망설이십니까. 궁궐에서부터 선왕의 잔재를 사그리 없애야만 합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의를 그르치지 마시옵소서.”
아히도벨의 간계였다. 그는 다윗이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괘씸했다. 자신의 손녀인 밧세바. 남편인 우리아를 죽이면서까지 뺏어간 행위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너도 치욕을 맛보아라, 앙갚음이었다. 그는 자진해서 다윗을 죽이려는 역적이 되었다. 그렇지만 다윗이 어떤 인물인가. 그 많은 시련에도 굴하지 않은 역전의 용사 중의 용사가 아닌가. 압살롬이 부자간의 정을 내세워 다윗을 살려주지 않을까 아히도벨은 두려웠다. 다윗이 살아있는 한 압살롬을 도운 자신은 다리를 뻗고 잠들지 못할 건 자명한 일이었다. 따라서 압살롬이 다윗과의 관계를 철저히 끊도록 해야만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도록 하는 것이었다. 족쇄를 채우는 것. 부자간이 아니라 철천지원수가 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선왕의 여자였다. 압살롬으로 하여금 후궁들을 취하게 하는 건 부자간의 정 따위는 생각지도 말라는 족쇄였다. 절대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어떻게 해서든 건너도록 하는.
압살롬은 이제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다. 전쟁에 승리한 자가 처첩을 취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권리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저항이 있을 수 없었다. 경(經)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
지붕이 문제였다. 다윗이든 압살롬이든.
이 소식을 접한 다윗은 온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압살롬의 패륜행위도 그렇지만 나단의 경고가 너무 생생했다. 그것은 곧 여호와의 뜻이 아니던가.
“내가 너를 저주하여 밧세바를 취한 대가로 네가 두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데도 백주에 네 부인들이 능욕을 당하게 되리라.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서 네가 죽게 될 줄을 정녕 몰랐단 말이야.”
그것도 이방인이 아닌 믿고 사랑했던 아들에게 능욕을 당하다니! 치욕이었다. 살고 싶은 의욕이 싹 가셨다. 그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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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등단한 후 첫 시집 『나무는 바람에 미쳐버린다』와 두 번째 시집 『네페르타리』를 발간하고 2005년 <월간문학>에 중편소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소설계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절벽과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과 장편소설집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 『나무가 바람에 미쳐버리듯이』가 있다. 2021년 제46회 한국소설문학상, 우수출판콘텐츠로 ‘박희주 중편3선’이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