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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의 새벽 기도/김은자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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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5.2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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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수의 새벽 기도/김은자

  

세상이 내 삶을 데려다주고

만남과 이별의 이중주가

고개 한번 돌리는 순간처럼

짧은데도 벌써 80

 

주변에 버팀목은 유명을 달리하고

남은 생 어림짐작하지만 잘 모르고

막연히 망 구의 언덕에 올라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한다.

 

동녘에는 뜨거운 해가 떠오르고

지구의 한 지점에 내가 중심점

원을 그리며 우주를 품고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살아간다

 

합장하면서 불경을 듣는 아침

주어진 삶이 건안 하길 빌며

버팀과 발전이 영글기를 기도하며

고해 길목에 시심의 징검다리 건넌다.

  

시집 한 잔 그리움 추억에 얼룩질 때. 도서출판 글벗, 2022.

 

2022. 3월청계천 징검다리-홍영수 촬영.jpg
청계천 징검다리 사진-홍영수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만남과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생명체들의 섭리이다. 법화경에서 말하듯 會者定離 去者必返(회자정리 거자필반)이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렇다, 화자는 만남과 이별의 이중주가/고개 한번 돌리는 순간이라면서 속세의 만남과 이별 속 정한을 읊조리고 있다. 그러면서 짧은데도 벌써 80이란다. 여기서 벌써라는 수식어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시 제목의 미수(米壽)”는 쌀 를 파자하면이 두 개 있어 88세를 가리키는 말인데 화자는 팔순을 미수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세속의 나이 80년이면 일반적으로 거의 1세기에 가깝게 느껴지는 긴 세월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벌써라면서 고개 한번 돌리는 순간으로 치환하고 있다. 화자는 80이라는 높은 고갯길에서 걸어왔던 발자취를 뒤돌아보는 순간 눈송이 하나가 장작불에 떨어지는 순간으로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떠오른 서산대사 휴정의 마지막 법어,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전거시아 팔십년후아시거.)”가 떠오른 이유는 왜일까?

 

화자는 팔십 고개를 지나 망구(望九) 고개의 언덕으로 향하면서 지나온 추억과 기억들을 떠올린다. 걸음걸음마다 맺힌 인연의 끈과 고리들, 그토록 긴 여정으로 생각했던 한 생의 앞날이 벌써어림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삶이란 찰나적임을 간파고 하고 있다. 그러하니 더욱 아쉬워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더구나 옆지기마저 이미 훗승길로 가고 없으니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할 수밖에.

 

비록 지구의 중심점에 우주를 품고 있을지라도 자기를 한껏 낮추며 살아가는 자세는 3연의 마지막 행아주 작은 씨앗으로 살아간다에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이란 잘나고 못나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결국엔 한 떨기 이슬처럼 사라져감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일까합장하면서 불경을 듣는 아침//주어진 삶이 건안 하길 빌며//버팀과 발전이 영글기를 기도하며에서는 어쩜 화자는 無住相布施(무주상보시) 덕목의 실천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굴 위해 기도한다는 것, 그것은 베푼다는 의식 없이 맑고 밝은 마음으로 보시하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4연의 마지막 행 고해 길목에 시심의 징검다리 건넌다와 같이 화자는 생사고해의 바다를 건너 피안의 이상세계에 가기 위해 어쩜 시심이 고해의 바다인 듯 징검돌 하나하나를 건넌다고 하고 있다. 그 건넘이 바로 고해의 징검돌일 것이다. 이처럼 세상을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에 시심이라는 징검돌을 놓아가며 고해의 세상을 건너는 것이다. 감동은 기교가 아니라 진실에 나온 것이 아닐까.

 

화자는 고해의 길목을 그냥 건너는 게 아니라 징검다리라는 이미지를 형상화해서 시인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시는 하고픈 말을 그냥 내뱉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비유와 이미지를 통해 함축적으로 주제를 드러낸다고 할 때, 여기서 시인은 실제 경험과 상상적인 체험들을 미학적으로 호소력 있게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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